.수새23.2.8 사49:5 태생적 존귀로 살지 못한 야곱, 존귀한 이스라엘로 만들어가는 하나님 능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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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3.2.8 사49:5 태생적 존귀로 살지 못한 야곱, 존귀한 이스라엘로 만들어가는 하나님 능력의 힘

관리1 0 69 2023.02.08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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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8 수새

제목 : 태생적 존귀로 살지 못한 야곱, 존귀한 이스라엘로 만들어가는 하나님 능력의 힘

찬송 : 179장(저 뵈는 천국에)

본문 : 이사야 49장 5절 -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완전자의 영원 전 첫 번째 나타난 외부의 발표가 목적입니다. 완전자 안에 있었으나 그 목적이 또 예정이 그리고 밖으로 창조로 나타날 때 그 창조 속에 보면 목적이 있고 예정이 있었습니다. 완전자의 상대가 되고 완전자라야 완전자의 상대가 되어 집니다. 또 완전자가 완전의 기쁨으로 우리를 향하시고 둘, 그리고 이것을 볼 때 만족하시고 완전, 완전 완전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자랐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완전은 더 이상이 없는 완전, 우리의 완전은 그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완전 어린 완전, 자녀의 완전, 아버지를 닮아가는 완전 닮지 않은 것은 전부 세상에 버렸다가 전부 지옥으로 쓸어 태웁니다. 육체에 대한 것도 마음에 대한 것도.

영은 단일성의 하나님 형상 자체이므로 죽고 사는 연결 문제만 있지 그 속에 잘못된 게 끼어 들어갈 틈이 없어 영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고 죄의 책임으로 지옥을 가면 가지 중생된 사람의 영 안에는 분리할 것 내버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신은 우리에게 평생 자유성으로 맡겨놓았고 건 하나님 없던 시절에 온갖 죄를 다 지으며 악령의 수족이 되어 세월 속에 악습으로 찌든 심신이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두면 부활 때 세탁하여 형체는 자체는 천국의 부활로 가지만 이 몸과 마음속에 담아 놓은 것은 하나하나 현실마다 고치지 않고는 가져가지 못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원래 존귀하게 만들었고 존귀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자격 그 기회는 존귀하나 그냥 두면 이거 다 몹쓸 것이 되어 지는데 이 정교한 우리를 하나님이 능력으로 존귀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만이 “우리에게 힘이 되셨도다” 힘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는 성공 인간적으로는 좋아 보이고 또 믿는 사람이 가졌는데 믿는 사람이 가진 것 중에 세상이 그 부러워하는 것은 복이 아니냐? 그러지만은 그건 우리의 생각이고 하나님이 볼 때는 하나님의 것은 아닙니다. 포도나무 둥치에 뻗어 나온 가지가 있는데 둥치에서 뻗어 나온 가지는 포도나무에 속한 것이나 그 포도나무 가지에 바람에 날려 와서 비닐이 씌워졌던 좋은 비단 옷감이 와서 두르고 있다면 옷감이 좋으면 좋지만은 좋으니까 좋다 그러면 되지만은 포도나무 가지에게는 그거 귀찮은 겁니다. 이거 걷어내지 않으면 열매 맺는데 큰일 납니다.

주님이 인도하시고 주님이 주셔서 가진 복. 그것만 복입니다. 주님 떨어지고 인간의 노력으로 세상 것으로 얻은 거 가진 거 이건 포도나무 가지 위에 떨어진 별의별 다른 오물들입니다. 좋은 게 덮어도 그거는 오물입니다. 왕궁에 태어난 왕자의 신분 그거 믿는데 별로 좋지를 못합니다. 왕궁에 태어난 왕자의 신분 하나님이 주신 복인가, 다리 밑에 태어난 거지의 신분도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현실이라는 면으로는 똑같습니다. 왕자라는 그 신분 때문에 방심하고 교만하고 그게 뭐나 되는 것처럼 그러는 순간 그게 들어 자기 천국이 절단 나 버립니다.

그런데 그 왕자가 왕궁에서 기도 중에 받은 은혜가 있다면 그건 여기 5절의 말씀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그건 하나님이 주신 능력입니다. 그건 왕자 안에 있는 기도의 힘 진리 순종의 실행에 어려움 그로 인하여 가지게 되는 것은 전부 은혜입니다. 그건 능력입니다. 이건 존귀한 자가 존귀한 자로 자랑하는 존귀성입니다.

이거 외에 타고나면서 가지고 나온 왕자,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풍요로운 여건, 이거는 신앙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죽을 때는 그거 다 버리고 가야 됩니다. 왕궁의 왕자의 신분 지옥,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현실로 받아 왕자라 교만할 수 있는데 교만하지 않았다면 그 겸손은 더 큰 겸손의 복이 될 것이고 왕자라 풍요롭게 먹을 수 있는데 주를 위해 성경 읽는다고 덜먹고 물질 사용하는 데 책임이 따른다는 말씀 때문에 절제하고 아꼈다면 절제 그 인내 말씀으로 자기를 만들어간 왕궁 속에서의 더 어려움 그것은 주님이 주신 능력이고 그 힘으로 그 왕궁에서 왕자가 신앙의 걸음을 제대로 걸어간 것은 그건 존귀한 자의 영원한 존귀 천국에 가져갈 인격입니다.

그다음,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구원의 계통을 야곱이라고 그럽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내려오는 구원의 계통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겁니다. 주어진 이 야곱의 구원의 혈통을 야곱이 복되게 사용하지를 않았습니다. 존귀한 자로 태어나게 해줬으나 존귀 한 자 답게 살지를 못하던 시절이 야곱입니다. 이스라엘은 존귀한 자로 태어난 것이 존귀하지 않은 세상의 꾀로 세상의 수단으로 살다가 세상으로 살던 야곱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인도의 순종의 야곱이 되어 신앙 출발이 제대로 되었을 때의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는 야곱이 들어있고 이스라엘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 새벽에 예배당 안에도 세상밖에 없는 옛 사람도 우리 마음속에 딸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고 또 새벽이니 다른 때보다는 더욱 신앙으로 애쓰는 이스라엘적인 요소도 우리 속에는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사야 시기가 되어 지면 야곱이든 이스라엘이든 전체의 신앙의 단계 때문에 전부 다 엉망이 되었을 때입니다. 사방으로 잡혀가고 잡혀가지 않아도 포위가 되어 포로된 거나 마찬가지고 끌려가야 포로라 그럽니다. 그런데 끌려가지 않고 성안에서 버티고 있어도 성 밖에 나갈 수 없고 꼼짝달싹할 수 없도록 포위가 되었다면 그거 좀 약하지만 그거 좀 단기간이지만은 포로 된 기간은 또 포위된 기간은 포로된 거 아닙니까?

교도소가 크면 자유의 세계입니까? 교도소 안에 독방도 교도소고 교도소 안에 운동장에 공을 차도 담 밖에서 보면 그건 교도소 지금 내부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방이 원수들로 둘러싸이고 북쪽은 다 짓밟혔고 남쪽마저 꼼짝달싹할 수 없도록 이렇게 꽉 잡혀 있던 시절 이때가 이사야 때입니다. 야곱이든 이스라엘이든 이거는 둘 다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전체의 인도의 단계 때문에 모두가 붙들려 꼼짝하지 못하고 신앙의 자유 없이 세상에 흩어져 붙들려 있을 때 야곱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하나님 여호와 당신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이사야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여호와의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와 시대에는 죄를 지어 악령과 세상에 종이 되었고 이대로는 희망이 없고 그러나 그중에 이사야 하나를 태어나게 하고 이사야 하나를 붙들어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이 “회개하라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오라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아도 양털같이 눈과 같이 희게 되리라” 이렇게 이사야 1장이 시작되며 하나님이 이사야를 붙들고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씩 둘씩 전하고 던지는 것이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 앞으로 붙들리고 세상과 끊어지고 죄와 싸워 이기고 악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소망이었습니다. 이렇게 돌아서는 것이 하나님께로 나오는 것이고 돌아오는 것이고 모이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 속에 오늘 하루에 세상에 붙들려 세상으로 요동하는 나도 있고 내 속에는 늘 신앙의 양심으로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런 이스라엘적인 요소도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 양심에는 성령이 오셔서 믿는 사람 믿는 사람답게 오늘 하루 살아가자, 이럴 때에 이 양심의 가책 속에 진리를 찾고 그 진리를 찾는 마음속에 성령이 올 때 이게 이사야가 되고 이사야의 말씀이 되어 그 이사야의 활동으로 내속의 야곱적인 요소는 다시 회개시켜 바르게 잡고 내 속에 이스라엘적인 요소는 더욱 힘을 내어 말씀에 붙들려 말씀으로 오늘 하루가 복되게 살아가도록 유행이 뒤흔든다고 유행 속에 나의 신앙까지 뽑아다가 맡기지는 말고 집안에 행사가 있든 요즘 또래의 그런 가치관이 있든 뭐가 있든 세상이 어떻게 뒤흔들고 위협하고 난리를 하든 말든 나는 주께 붙들려 주의 인도 따라 오늘도 걸어간다.
 
연세 많은 분들은 요즘 연세 많은 사람들은 용돈이 많아서 그 돈 쓰러 어디를 간다, 저리를 간다, 가더라도 우리는 신앙에 상관없는 것은 딱 빼내버리고 젊은 사람은 요즘은 뭐 무슨 시대다 mg 시대라 그런 말이 다 있는지 별의별 말을 쏟아 놓는 여기 뒤지지 않으려다 보면 벌써 귀신 입속으로 들어간 겁니다. 이 시대다 저 시대다 그러든 말든 그냥 강아지 짖는 소리로 외국인 말하는 소리로 들리면 듣는 것이고 안 들리면 마는 것이고 개 짖는 소리에 도둑이 오는가 보다 알아차리면 도둑 조심하면 되고 멀건 대낮에 뻔한 것이라 도둑이 올 리가 없는데 개가 짖어 싸면 그런데 별일이 없으면 또 개는 개 대로 할 일이 있어 짖는가 보다 그러면 될 일을 개 짖는 소리 전부 분석해서 개가 아픕니다, 개가 즐겁습니다, 개가 뭘 원합니다, 잡아먹을 개를 갖다가 외동아들보다 더 귀하다고 뒹굴고 앉았으면 개 같은 인생 되지 그거 개가 사람 되는 건 아닙니다. 개 사람 둘을 똑같이 뒹굴게 만들어 놓으면 개가 사람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개판 되지.

먹을 것은 넘치고 천국에 소망이 없으니 세상은 개라도 붙들고 시간을 보내야 되지만 믿는 사람은 개 너는 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고 종자가 다르고 가는 길이 다릅니다. 난 존귀한 자니 주께 붙들려 말씀 연구에는 있는 힘을 다하나 과잉 충성도 하지마는 세상에 발맞추려고 세상에 뒤지지 않으려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이게 야곱이 야곱 노릇 하는 것이고 이게 이스라엘이 야곱처럼 후퇴를 하는 길이니 존귀한 자로 오늘도 존귀하게 걸어가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추외심씨 새벽 기도 좀 챙겨주시고 한겨울 때문에 못 나오셨다가 구정도 있고 한번 출발하면 꾸준하신 분인데 새벽 자리가 많이 비어서 아쉽습니다. 따로 한번 챙겨봐 주십시요.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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