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23.2.5 사49:1 절대 예정 하나 뿐인 존귀, 어떤 상황에도 주의 종된 순종, 예비된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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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23.2.5 사49:1 절대 예정 하나 뿐인 존귀, 어떤 상황에도 주의 종된 순종, 예비된 영광

관리1 0 71 2023.02.0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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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30205 주후

제목 : 절대 예정 하나 뿐인 존귀, 어떤 상황에도 주의 종 된 순종, 예비 된 영광

찬송 : 198장(우리 주여 목자 되어서), 196장(예수께서 오실 때에) / 121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본문 : 이사야 49장 1절 -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영원 전 목적을 정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것으로 삼으시고 아버지의 소유 심부름꾼이 아니라 아버지를 닮은 아들로 불러, 끝없이 아버지를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처럼 온전하게 거룩하게 깨끗하게, 우리 마음 우리 생활을 말씀으로 가르치며 고치며 길러 가시는, 주일과 예배와 우리의 평생의 이 기회를 감사하고, 자기 양심을 통하여 특별히 인도하는 매 순간의 주의 뜻을 찾아, 이아침도 또 이 오후에도 거듭 하나님이 존귀하게 불러 존귀하게 만들어 가신다니, 우리의 부족을 돌아보며 늘 감사하게 순종하여 주의 목적 그대로 내 마음 내 생활되기까지, 어떤 현실 어떤 시대를 주시더라도 말씀으로 우리의 인격을 행위를 마음을 생활을, 매일의 걸음걸음을 잘 가꾸고 만들어 주님은 우리만 들여다보고 기뻐하시고, 우리의 이 행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위에서 부어주시고, 우리는 보이는 세상 속에 볼 수 없는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복된 길 소개하며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저희들 되도록, 생존의 은혜를 더하여 사는 날이 많고 건강할수록 주를 향한 이 소망의 걸음에 진력하게 인도해 주옵소서. 오후에도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섬들아” 라는 말은 뚝 떨어져 별세계 따로 사는 사람들아. 복음을 모르고 떨어져 여기저기 흩어진 사람 이런 저런 면을 다 포함하는 겁니다. “섬들아” 또 “원방 백성들아” 이어져는 있지만 너무 멀어 그 알 수 없는 그런 먼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아. 그런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예수님 오셨을 때 동방의 박사들은 멀고멀고 먼 원방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너무 멀어 복음을 몰랐는데 그들에게 하늘에 별이 인도하여 따라오다 보니까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멀다고 안 되는 거 아닙니다. 멀어도 주님이 일부러 불러주시면 되어 집니다. 주님이 태어난 이스라엘 주님이 태어난 베들레헴에서도 주님을 몰라보고 밀어냈습니다. 주님의 나라 왕궁에서는 주님 잡아 죽인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안에 있으면 유리한데 유리한 걸 뒤집어 바보 노릇하는 것이 못난 우리들이고, 또 멀면 불리해 보이나 주님이 인도하면 소망인데 좌절을 해버리고 주저앉아 버리고 어떡합니까.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니 어떡할 거냐. 그러면 좌절하고 죽어버려야 되지요. 또 부잣집에 태어났다고 거드름 부리면 그 건방진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 그거 몹쓸 인간이니 엉망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태어나도 사람 어찌 될지 모르고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다. 겸손하면 복입니다. 가난한 집에 불리하게 태어나도 얼마든지 좋아지는 소망이 있으니 라고 주님을 의지하면 복이 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부자로 태어났는데 일부러 거지되러 가지 않고 거지로 태어났는데 일부러 부잣집 간다고 그러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또 현실에 자기를 맡기고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현실은 주님이 주신 것이고 이 현실에서 어디까지 인도하는지 따라가는 이 마음 이 소망이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사야를 통해 시대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먼저 가르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현실이 되며 병풍이 되며, 모든 다스리는 에덴동산 밖에 일반 모든 천하를 향한 것이 이방들인데, 멀리 있는 섬들아 떨어져 있는 섬들아 너무 멀어 포기하고 있는 백성들아 귀를 기울여라. 약속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사야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딱 불러 어떻게 쓰시려고 불렀고, 어머니 복 중에 나옴으로부터 이사야에 할 일 그 이름을 챙기며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사야를 일반 사람으로 생각 말고 귀 기울여 잘 들어라. 수천 년 전에 이스라엘의 이사야의 글을 우리가 왜 읽어야 됩니까. 이 오후에. 오늘의 이사야는 우리들이니 오늘의 내 현실 내 가정의 이사야는 바로 내가 되는 것이니, 여기 이사야를 자기 이름으로 올려놓고 자기를 살펴보면 이 말씀이 쉽게 해석이 되어 집니다.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세상에 나올 때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하나 생기고 그렇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세상이 굴러가다가 그냥 사람이 튀어나왔더라. 그걸 머리 종 과학자들이 과학적으로 증명을 했다는데 그걸 뭐라고 그러던가요? 공부 좀 하신 분들 김진영 선생님 그런 걸 뭐라고 그러나요? 세상이 막 그냥 이렇게 그냥 난리를 부리다가 인간이 하나 툭 튀어나왔더라. 그걸 과학에서 뭐라고 그래요 그걸 진화론이라 그럽니다. 무식하게.

사람이 무식하다고. 어떻게 하다가 원숭이 중에 한 마리가 사람이 됐고 또 원숭이는 어쩌다 되고 원숭이가 됐냐. 그러니까 도마뱀 한 놈이 그냥 나무에 기어 올라가다가 나무를 잘 타니까 원숭이가 됐더라. 그러고. 그럼 또 도마뱀 그 녀석은 어디서 나왔냐? 이러니까 물고기 중에 왜 토끼처럼 거북이처럼 오고 가는 것 중에 하나가 그리 됐다. 그러고 그럽니다. 그래놓고 이걸 과학이라 그러니 아니 무식해도 한마디로 딱 보면 넌 점쟁이고 전설이고 짐작이지 그렇게, 그렇게 계속 짚어 가면 마지막에는 뭐냐 이제 영어로 빅뱅이라고 그럽니다. 영어 써버리니까 전부 다 뭔 말인 고 해서 옳은 줄 알지만은, 빅뱅이란 애들이 불장난을 했다 그 말입니다. 가스난로에다 대고 불장난 하니까 펑 터져서 그냥 온 집이 박살났다더라. 그게 우주의 시작이고 그 불꽃놀이 중에 한 마리가 툭 튀어나왔는데, 그게 도마뱀이고 그게 원숭이고 그중에 하나 또 게 튀어나온 게 사람이라더라. 이걸 과학이라고 그냥 모두들 난리 난리하고 앉았는데 만드신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면서 육갑 한다고 그럴 겁니다. 육갑이고 말고 그 공부 못해가지고 또 발광인데 전부들. 우리 같은 사람을 무식하다 그러든지 말든지 창세기 1장 태초에 하나님이. 1장 2절에 빛과 어두움으로 하나 둘 만들고 만들어 종류대로 다 만들었더라. 그냥 그 말씀에 모든 걸 걸고 끝까지 가다보면, 진화론 네놈들이 미신인지 너들이 미신이라 하는 성경이 미신인지 길고 짧은 거는 대보면 되지. 확실한 것은 역사 이후에 바뀌지 않은 과학은 없습니다.

좀 많이 아는 과학자들은 과학이 바뀌어 왔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쥐꼬리만 한 걸 배운 사람들이 과학이 변치 않는다 하지. 제대로 배운 사람은 과학은 바뀝니다. 성경 바뀐 적 있느냐. 없는 가운데 만드신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다가 영원무궁토록 다시 되돌려 당신의 뜻대로 운영한다. 이 진리 바뀐 적이 없습니다. 바닷가 신풍 무식한 우리가 모여 큰소리치지만 진리에 맞는 말 하면 옳은 말 되는 거고, 말씀에 딱 벗어나면 신학을 했던 원어를 쓰던 몰려가든 말든 그건 나중에 다 틀리게 돼 있는 겁니다. 북한에 수천만 명이 자기들이 옳다고 70년 몰아붙였는데 지금 세계 제일 거지 되서 다 굶어죽고 앉았습니다. 세계는 아직도 그런 나라가 있냐고 배를 잡고 웃는데 자기들은 또 수령님 하나 믿고 간답니다. 그 뒤를 과학이 뒤따라가는 겁니다. 원래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가 과학을 믿다가 그리 됐습니다. 공산주의의 시작은 과학이 최고고 전부라고 따라가다가 나온 게 공산주의입니다. 공산주의에 하나 요상한 게 튀어나온 게 북한이고, 그 북쪽에서도 다 내버린 거 붙들고 서울 강남에 앉아가지고, 청바지 입고 코카콜라 마시면서 반미 운동하는 놈들이 내나 또 그 제일 괴물 중에 또 괴물들입니다. 그 사람들 지지하는 데가 제일 많은 데가 여수순천이고, 우리는 여수 순천 한 바닥에서 말씀만 향해서 걸어간다. 아이 참 뭐 아시는지 몰라도 오늘도 목 내놓고 이 소리 하지. 지금이야 그런 테러가 있으려고? 모르는 사람은 지금 안전한 줄 알지요. 아는 사람은 목숨 걸고 이런 것 전하는 겁니다.

지금 오후예배 우리 찬송이 이런 찬송도 200년 된 찬송입니다. 옳고 바른데 오래되면 보배입니다. 옳고 바른 것이 오래되면 그거 보배입니다. 인삼 1년 된 거하고 7년 된 거하고 어느 것이 비싼지 아시지요? 산삼 10년짜리하고 천 년짜리하고 어느 것이 좋은지 아시지요? 한국교회 10만 교회 중에 지금 100년 200년 전 찬송 그대로 딱 붙들고 있는 것 우리 교회밖에 없습니다. 이 찬송 이 성경 가지고 순교했고 이 길 걸어간 사람들, 그들 덕에 이 좋은 나라 살면서 성경 다 바꾸고 찬송가 가사 다 바꿔 가지고, 바꾼 저것들이 괴물인데 안 바꾼 우리를 보고 이상하다고 그러고 앉았습니다. 동물원에 원숭이, 원숭이 구경을 하러 가면 인간은 저런 것도 있구나 하고 구경을 하는데, 또 원숭이들끼리는 아이 저런 놈들 봐라 또 원숭이들은 찾아온 인간 구경하고 앉았습니다. “섬들아” 이런 말씀을 이렇게 전하는 것을 처음 들어본 사람들 그래도 들어봐라. 옛날에 들은 것 같은데 요즘도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데가 있어? 이게 원방입니다. 귀를 기울여라. 이사야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딱 골라서 이 시대에 이런 선지자를 기르려고 작정을 했는데 이사야만 그러냐. 이사야만 그렇다 이렇게 읽으면 유대교가 됩니다. 구약의 이사야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신약의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이런 가정에 이런 아이가 태어난 것은 그냥 부부 결혼해서 살다보니까 하나 태어난 것 아니냐.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우연히 보고 진화론으로 보지만은 믿는 우리는, 영원 전 하나님이 이런 아이를 이런 부부를 통해 이런 때에 딱 세상에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려고, 아들로 딸로 여기에 저기에 태어나게 하려고 짜놓고 하나님이 순서를 따라, 정확하게 한 명 한 명을 부르시고 맡기시고 길러 가십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그냥 5천만 명 중에 한 명이 아니고 80억이 사는 지구의 한 명이 아니고, 나라는 사람은 나 하나 외에 하나님이 둘도 없는 나로 만들어 이 땅위에 보내셨다. 이런 걸 존재론의 자존감이라 그럽니다. 따라 해 보십시다. 자존감(자존감) 예.

자존심 똑같은 말이라도 자존심 이러면 오기 나쁜 말이 돼버립니다. 오기 교만한 것 자존감 나도 소중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바로 알면 좋은 뜻의 자존감입니다. 이사야도 태어날 때 이사야를 태어나게 하는 부모 골라 만나 살게 했고 때가 되어 이사야를 태어나게 했고, 어릴 때 딱딱 길러 때가 되어 쓰신 것처럼 오늘도 이 사람 저 사람 둘을 이리 살고 저리 살게 하다가 어느 날 어떻게 만나고, 사람들끼리 이러고저러고 해서 만난 것 같은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게 뒤에서 이쪽저쪽을 움직여가며 하나님이 작정하고 부모를 통해 한 아이가 나오게 합니다. 그래서 한 아이의 등장은 많은 아이 중에 또 한 명 출생했습니다. 숫자로 하나 더하기가 아닙니다. 하나밖에 없는 보배입니다. 그 아이가 10년 30년 80년 세월을 보내고 여기 예배드리는 우리 각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귀하게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 놨는데 우리가 이 귀한 보석을 갖다 발로 차고, 뭐 그냥 진흙탕에 던져버리고 잡석이라고 내다 팔고 우리는 우리의 귀한 보배를 우습게 알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이 불러놓은 택한 백성 중생된 교인은 하나하나가 전부 하나님의 외동아들이다. 귀한 보배들이다. 잡석이 아니다. 네가 너를 못난이로 쥐어박지 말아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존귀한 자들이다. 만들기는 흙에서 만들었으니까 재료는 못났는데 하나님 없으면 참 몹쓸 것들인데, 하나님이 손을 대고 하나님이 작정을 하기를 존귀하게 작정하고 만들어 놓았으니, 나는 부족한데 하나님 때문에 나의 신앙 나의 기회는 존귀한 자다 잊지 마십시다. 섬들아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참 이거 알고 들어야 될 일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각 가정 그리고 지난 날 믿지 않을 때도 이런 걸 구경하고 이런 걸 겪을 때마다, 훗날 믿게 될 때 쓰시려고 안 믿을 때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게 했고, 또 신앙 없을 때 멋모르고 죄를 짓고 그랬던 것까지 하나님은 다 이용을 해서, 오늘 이후로 복되게 쓰시려고 태어날 때부터 딱딱 정해놓고 주신 사명이 있었습니다. 이게 1절의 해석입니다.

2절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이사야는 선지자로 쓰시려니 이사야의 입술은 아주 면도칼처럼 날카로웠는가 보다. 이사야의 66장에 예언을 읽어보면 말이 너무 사납습니다. 강합니다. 칼입니다 면도입니다. 구약이라 그렇습니다. 신약의 우리들의 입은 나는 내 속에 무엇이 문제인가. 이걸 찾아 이걸 도려내는 그런 지식 그런 노력이 여기 2절에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셨다. 입이란 발표입니다. 입이란 발표. 저 사람 이게 틀렸고 저 교회는 저게 문제고 한국 교회는 이게 문제고 다 맞는 말입니다마는, 너는 네 속에 단점 없냐. 너는 네 속에 잘라버릴 맹장염 없냐. 너는 네 속에 털어버릴 먼지가 없냐. 남의 잘못을 발견하는 것은 쉽습니다. 눈에 보이니까. 자기 속에 들어앉아 있는 암세포는 이거 참 발견하기도 어렵고 알아도 손대기가 어렵습니다. 국가의 잘못 세계의 문제점 여당 야당의 장단점 이런 거는, 거지도 한 마디씩 하고 무식쟁이도 한 마디씩 다 합니다. 그런데 나는 내 속에 무엇이 문제냐 자기 속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예리하고, 정확하지 않으면 발견하고 이걸 해결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근데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그다음 자기 속을 들여다보면, 그러면 내 이 마음의 자세는 문제구나 이거는 자세가 틀렸구나. 이건 표현이 잘못되었구나. 이렇게 날카롭게 딱딱 구별해낼 수 있기 때문에 히브리서 4장에 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좌우에 날선 검이라. 이사야 49장에서는 이사야의 입이 날카로운 칼과 같이 만드셨다. 이사야는 그 날카로운 칼로 왕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잘못된 걸 쳐버렸습니다. 이방 나라들을 마구 휘저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며, 내 속에 들어 있는 나의 단점 나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자르고 이걸 수술해버리면, 바로 2절이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칼은 찌르고 베고 자르는 겁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여기에 살이라는 말은 화살이라는 말입니다. 살 화살 같은 말입니다. 화살은 화살 쏘는 군인이 화살 한 개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 개를 가지고 있습니까. 화살은 많아야 쏘고 쏘고 또 쏩니다. 이런 적도 있고 저런 적도 있고 또 쏘았는데 잘못 쏘면 새로 쏘아야 되니까,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마광이라는 것은 화살 끝을 갈고 갈아서 아주 주사기 바늘처럼 송곳처럼, 갈아서 뾰족하게 만드는 것을 마광이라 그럽니다. 이렇게 나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들어 하나님의 전통, 전통이란 화살 통을 말합니다. 전통이 화살 통이면, 전통이 화살 통이면 질문입니다. 전통이 화살 통이면 전자는 무슨 전자지요? 추이솔. 화살 통이 전통이면 전자는 무슨 글자가 나오지요? 화살이란 뜻입니다. 전통의 전자는 화살 ‘전’자입니다. 불화살은 화전 성경에 그렇게 말합니다. 국어 몰라도 이렇게 읽어보면 나오는 겁니다. 나를 화살로 만들었는데 하나님이 전통에 감췄다. 칼은 넣으면 칼집일 거고 화살은 넣으면 화살통일 것이고, 이거 100년 전에 우리를 전도한 선교사들이 번역한 겁니다. 선교사들이 번역한 거라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박사학위 받고 와가지고 글자가 틀렸다고 시비를 해 싸는데, 그놈의 박사들 전부 다 박살을 내버려야 되는 10원짜리 지식으로 가지고 천하를 홀리는 인간들이고, 100년 전의 선교사들은 복음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박사들은 예수 팔아 돈 만드는 것들이라 기본적으로 믿지를 못합니다.

환자 치료를 위하여 의사가 목숨을 걸 수 있다면 그 의사는 믿을 수가 있고, 환자가 돈으로 보이면 맞는 말인지 틀리는 말인지 의사 마음속을 이해하려면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화살을 화살이 뭉뚱하면 필요가 없겠지요. 섬들아 이사야의 말을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이사야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복음을 모르고 안 믿는 사람이라도 멋모르는 사람이라도 잘 들어 보거라. 여호와 하나님이 이사야를 태어날 때부터 복음을 맡겨 복음을 전하려고 예언자로 일을 맡겼으니 1절입니다. 2절 선지자가 되는 이사야의 입은 날카로운 칼같이 만들었다. 오늘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 아이의 이 입을 붙들고, 하나님은 부모에게 한 마디 할 겁니다. 이게 5살 7살쯤 되다가 근데 엄마 오늘은 왜 교회에 안 가? 부부 둘이 싸움 했거든요. 부부 둘이 싸우다가 엄마가 화가 나서 오늘 교회에 안 가 그러면 5살 7살 두 눈망울은, 교회 간다고 맨날 그래 쌌다가 오늘은 왜 또 교회 안 갔지? 어 엄마 아빠 싸우니까 화가 나서 안가? 나서 안 가 이거 애들은 정치가 없고 선입견이 없기 때문에 배운 대로 그대로 톡 튀어나옵니다. 이게 날카로운 화살입니다. 이게 날카로운 칼날입니다.

아니 아빠는 엄마하고 목소리 높고 나면 그날 밤에 한잔 해가지고 취해서 비틀 거리 대? 그러면 화만 나면 나도 평생 술 퍼 먹고 이렇게 부모한테도 나중에 대 들어? 이게 5살 7살이 두 눈으로 가지고 두 귀로 가지고 자기 가정에 부모 하는 말 행동을 전부 찍고 다 그려놓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게 이제 10살이 되고 20살이 되면 행동으로 툭 튀어 나올 때, 누굴 보고 배웠습니까? 부모 보고 배웠지. 딸은 주로 엄마 보고 배웠습니다. 아들은 주로 아버지 보고 배웠습니다. 그 집에 아들 하는 행동 딱 보면 그 집에 아버지 뭐 그냥 대충 알겠구나. 딸들 하는 짓 보니 엄마는 아닌 것 같은데 뒤로는 엄한 짓 다 했구나. 그걸 갖다가 호박씨를 어떻게 한다. 다 그러지요. 표현이 그래서 강단에서 말도 못하겠는데 부뚜막에 딱 올라 앉아있는 거 보니까 얌전한 고양이인데, 잽싸게 그냥 제사상에 올라갈 조기 한 마리 물고 튀는 걸 보니까, 아따 그놈 얌전한 줄 알았더니만 엄청 재빠르기를, 딸이 누구를 보고 누구를 닮겠습니까. 지보고 지 닮았지. 딸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면 내 속에 저런 인격이 있었구나. 회개를 해야 이거 하나님이 고쳐줄 가능성이 있을 건데 나는 천사고 선녀인데 저 딸 저건 누굴? 시어미 닮아서 그렇지. 이런 식으로 가니까 하나님께서 저거 고치려면 애를 더 먹여야 되겠다고 더 놔둬 버립니다. 더 놔두는 겁니다. 남의 잘못이 눈에 보일 때는 딱 찍어서 그걸로 가지고 내 속을 날카롭게 잘라보고 해결하라고, 이사야 선지자의 66장까지의 예언은 표현이 날카로운 칼날 같고 뾰족한 화살 같습니다. 꼭꼭 다 찔러버립니다. 오늘 한 가정의 식구들끼리 또 혼자 사는 분들은 혼자 자기가 자기 속을 이 말씀으로 들여다보며, 나는 내 생애에 내가 나에게 예언을 하고 내가 나를 필요 없는 것 자르고 잘못된 걸 꼭꼭 찍어 전부 다 해결을 해야 되겠구나. 2절입니다.

그 다음 3절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이사야야 넌 나의 종이다. 그 말은 왕의 종 아니다. 백성의 종 아니다. 이방의 종 아니다. 과학의 종 아니다. 돈의 종 아니다. 왕의 종은 하나님 말씀 듣겠습니까. 왕의 말 듣겠습니까. 선지자도 아합 시대에 450명 선지자를 모아놨는데, 아합 왕 시절에 선지자 450인을 모아놨는데, 아합이 길르앗 라못이라는데 전쟁을 하러 가고 싶어서 여호사밧까지 불러다가 전쟁을 하러 가자니까 여호사밧은 신앙이 좀 있는 사람이라.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쟁을 해도 하나님께 물어봐야 되지 않습니까. 아합은 전쟁하러 가자고 그러는데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모시고 좀 들어보시지요. 이러니 동맹의 왕을 위해서 내키지는 않지만은 선지자들을 다 모았습니다. 450명 선지자가 와가지고 아합 왕이여 길르앗 라못에 전쟁을 하러 가고 싶은데 오늘 가면 다 이깁니다 가십시오. 450명 선지자가 생난리를 내고 아합 왕이 싸우러 가면 다 이긴답니다. 이것들은 왕의 종들이라 왕 원하는 대로 갔다가 그냥 나팔만 불고 앉았습니다. 왕이 동쪽 하면 동쪽 가고 왕이 서쪽 하면 서쪽 예언 쏟아 넣는 사람입니다. 과거에 정권 잡은 사람 중에 하나 아시는지 몰라도 총으로 정권 잡을 때, 저 남산 밑에 대한민국 최고의 무당들이 다 모여 있는 그 동네 이름이. 김현숙 선님 그 동네 이름이 어디죠? 그 동네가 회현동인가요? 대한민국 서울 빼놓고 제일 유명한 무당은 부산 영선동하고 영도다리 밑에 있고 서울 빼놓고는, 그리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최고의 무당 중에 최고 무당들은 서울 남산 밑에 회현동에 딱 모여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왕이 이리 되겠다. 나라가 이리 되겠다. 세계가 이리 되겠다. 앞으로 대통령이 누가 되겠다. 이런 점을 치거든요. 중앙정보부 직원들을 보내서 점쟁이들을 다 잡아다가, 너 다음에 대통령 누가 될 것 같아? 아이 전 씨가 되겠는데요. 너는? 아이고 뭐 그냥 딱 보니까 다음 대통령은 전 씨가 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무당들을 정보부에서 불러다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것 같으냐 해가지고 족쳐놓으니까, 눈치가 빨라서 알아서 기고 예 전 씨입니다. 다 그래버렸거든요. 이거 쥐 박을 것 없는 겁니다. 눈치가 빠르니까 풀어놓으니까 그다음부터는 이제 누가 쳐다볼 거니 막, 전 씨가 대통령 된다고 남산 무당들이 전부 점을 그리 치니까 소문이 딱 퍼지니까, 이제 민심을 얻는 겁니다. 불교 믿는 사람이 정권 잡으니까 그런 식으로 잡았겠지. 세상 돌아가는 게 다 지금도 다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성경에 아합 왕은 하나님 나라의 왕인데 하나님이 요놈 괘씸해서 어디 가서 죽일꼬. 회의를 하니까 사탄이 와서 그걸 꼬셔서 길르앗 라못으로 살살 불러다가 거기에서 잡아 죽이겠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리 해라 하늘에서 회의가 있었고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거짓말하는 귀신이 이스라엘의 선지자 속에 들어 가가지고 거짓말을 하도록 하니까. 450 선지자가 전부 길르앗 라못에 가시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이믈라의 아들 선지자 누구지요? 이믈라 아들 선지자? 시드기아를 불렀습니다. 심부름하는 내시가 가가지고 시드기아 선지자여. 왕 앞에 450명의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전쟁에 이긴다고 전부 선전을 해놓고 예언을 해놨습니다. 벌 소리 하면 큰일 나니까 그냥 조용히 넘어가시지요.

왕 앞에 간 시드기아 선지자가. 미가야? 아 미가야 선지자가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내가 말할 거다. 그리고 가가지고 오늘 가면 아합 왕 죽습니다. 이게 선지자입니다. 이게 선지자. 미가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 시키면 죽든 말든 말합니다. 나머지 450명 중국의 최고의 목사 선생들은 선지자들은, 왕의 눈치 딱 봐가지고 어디 붙어야 얻어먹는 게 있는가 봐서 옳건 그르건 돈 나오는 대로 예언하면 돈의 종, 왕 원하는 대로 선전하면 왕의 종, 시드기아가 미가야 선지자 반대쪽에 있던 선지자지요? 예. 시드기아 선지자와 450명의 선지자들은 왕의 종입니다. 왕이 원하는 대로 선전하는 선지자. 미가야 선지자 한 명은 난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 원하는 대로만 말한다. 여기 3절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사야야 너는 나의 종이다. 하나님이 말하라면 예. 하나님이 입 닫으라면 입 닫고 여자가 말하라면 말하고. 하나님이 말하라면 그건 모르겠고 아이들이 동쪽 하면 동쪽 따라가고 오늘 주일이지만 날 좋은데 놀이공원 가시지요. 애들이 말하면 따라가는 부모 그 아이의 종 됩니다. 아이가 하나님이고 아이를 하나님으로 모시는 종이 되는 겁니다. 세상에서야 뭐 아이들을 사랑하니 좋은 부모라 그러고 하나님은, 너희 하나님은 느그 집 아이냐? 그거 참 잘 되겠다. 너! 넌 누가 너의 왕이냐? 남편입니다. 돈 많이 벌어주니까. 너는? 여자가 왕입니다. 예쁘니까. 너는 누가 왕이냐? 교인들이 회비를 내야 교회 운영되니까 교인 좋아하는 대로 저는 따라갑니다. 여론 따라갑니다. 넌? 목사 말하면 죽는 데라도 따라갑니다. 너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말씀이 맡긴 양을 책임지라면 죽어도 양을 책임집니다. 적군이 밀려오는데도 양을 책임지라면 전 죽어도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 때문에 저는 순종합니다.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종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요 오늘 우리는 누구의 종입니까?

삼성의 이사 간부 시켜놓고 이재용 회장님이 오니까 주일날 출근, 그러면 다 갈걸요. 삼성 이사 되면 버는 돈 혜택이 말도 못합니다. 말도. 회장님 말 한마디에 이사들은 데모도 못하고 바로 잘려버립니다. 군인도 이등병 달고 졸병으로 가면 주일을 지킬 수 있습니다. 버티면. 그런데 소위가 되고 대위가 되고 계급이 높아지면, 별자리들이 위에서 보는데 소대장이 아니라 대대장 대령쯤 되면 주일을 지켜요? 위로 올라가면 주일 못 지킵니다. 바닥에 있을 때 해보는 거지. 너는 누구의 종이냐. 믿는 사람은 못나도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사야 너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 하나님의 종은 몇 명 되지 않았고, 구약의 선지자들 제사장들 대부분이 왕의 눈치 보는 왕의 종들이었습니다. 왕이 신앙이 있으면 믿는 척하고 왕이 신앙 없으면 전부 제사 지내 버리고 미신 지내버리고, 이사야는 죽든 말든 곧이곧대로 딱 그냥 하나님의 종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현실이 어렵던 좋던 어쨌든 하나님의 종 하거라. 목사 되거라. 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원하면 저는 갑니다. 하나님 원하면 저는 그리 하겠습니다. 그러면 처음 교회에 온 분도 하나님의 종, 저처럼 목회를 몇 십 년 해도 속으로 나 원하는 대로 하면 하나님의 종은 아닙니다. 대개 목사는 사모의 종이다. 소문이 그리 나 있습니다. 사모가 이런 공회 찬송은 시시하니까 케케묵었으니까 요즘 신판 유행가 찬송으로 바꿉시다. 집에서 앵 알 앵 알 세 번 네 번 계속 흔들면 처음에는 조용히 해 그러다가, 두 번 10번 찍어 넘어지지 않는 나무 있습니까? 결국은 어느 날 우리도 이제 새로운 복음을 위하여 전도를 위해서 할 수 없이 하나 해 봅시다.

저 목사가 평생 큰소리치다가 언제부터 바뀌었지? 뒷조사를 해보면 사모 입에서 나왔는데 그 사모 입은 또 누가 그랬냐. 그 집에 딸이 앵 알 앵 알 하면 결국은 사모 물들고 사모 물들면 목사 따라갑니다. 장로는 장로 아들이 집에 와가지고 학생에 대해서 남학생 여학생 연애를 해야 전도됩니다. 교회가 그런 짓을 해? 안 돼! 장로가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 집 아들이 계속 흔들면, 아들이 흔들면 장로가 움직이고 딸이 흔들면 사모를 통해 목사가 흔들고, 마지막에 보니까 장로 아들 목사 딸 둘이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면서 교회 전부를 갖다 전부 다 썩은 통을 만들어 버린 겁니다. 한국교회 전부의 탈선은 이거라고 저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너는 누구의 종이냐 쉬운 말이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하는 하나님의 종이지요. 정말? 설에도 그럴래? 정말? 방학 때도 그럴래? 돈을 많이 벌어서 세계 여행을 해야 되는데 또 그러니? 좋아서 탈 굳어서 탈 이렇게 흔들고 저렇게 흔들고 계속 흔들면, 돈의 종이냐 하나님의 종이냐 사람의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람이냐. 거참 한 시대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하나님의 종은 그렇게 흔하지를 않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목회하는 목사가 한 5만 명에서 10만 명 된답니다.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목사는 한 50만 명 넘을 겁니다. 그중에 한두 명 두세 명 많아봐야 열 명 그렇지. 하나님이 정말로 주인 되어 그 밑에 설설 기는 목사가 백 명 되고 천 명 되고 그러면, 이 시대는 어마어마한 시대가 됩니다. 그렇게 많지를 못합니다. 내가 그런지 남이 그런지 모릅니다. 길고 짧은 거는 흔들어 봐야 알지. 태풍이 와서 마구 뒤흔들어 봐야 뿌리가 제대로 박혔는지 알지. 뿌리가 제대로 박힌 나무는 태풍이 와서 아무리 찢어도 가지는 찢겨집니다. 가죽은 찢겨지고 교회는 찢겨져도 나무는 버팁니다. 근데 겉보기에 멋있는데 뿌리가 약하면 태풍이 와서 흔들면, 가지가 찢어질 것 없이 뿌리째 뽑혀버리는데 뭔 가지가 찢깁니까. 뿌리가 뽑혀버리면 드러누워 있는데.

역사적으로 일제 말을 지내며 하나님께 뿌리를 박아 끝까지 버틴 사람 한 50명 정도 잡습니다. 한 50명 정도. 아무리 조사를 해도 100명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한 50명. 그런데 그 50명을 5년 뒤에 6.25 전쟁으로 또 흔들어 보니까 한 서너 명 남았는가. 그렇습니다. 이건 교회 역사가 적지 않습니다. 일제 때는 한 50명 버텼기 때문에 50명을 가지고 고려파도 장사하고 여기저기서 장사를 했는데, 5년 후에 인민군으로 한 번 더 흔들어 보니까 남은 것이 몇 명 되지 않으니까 그냥 모두 입 닫아 버렸습니다. 공회는 두 개를 다 거친 교단입니다. 공회밖에 없습니다. 교단 치고는. 목사님으로서는 우리 손 목사님 백 목사님 같은 분들 한 서너 사람 주남선 목사님 제가 알기로는 셋입니다. 저도 뭐 몇 십 년 큰소리치지. 네가 큰소리치는 거는 네 멋대로 인데 평화 시에. 코로나 가지고 한번 슬쩍 흔들려 봐가지고 뿌리가 뽑혔는데. 아니 그게 코로나야 감기인데 그게 뭐 태풍이나 됩니까? 그게 봄바람이지 봄바람에 다 뽑혔는데. 우리는 봄바람은 버텼습니다. 봄바람 버텼다고 태풍을 견디나요? 이건 수준이 다른데. 하나님의 종이냐. 하나님의 종이면 좋은 겁니다. 그러면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어 집니다. 이게 참 어렵기 때문에 8절에 평소에 부족하기 때문에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겁니다. 아니 뭐 이 정도야 얼마든지 주의 종 한다고 큰소리칩니다. 그러나 시대가 견디지 못한 이런 태풍이 불 때는 인간이 각오한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니, 평소에 미리 기도하며 환란 때에 변치 않도록 주여 도와주옵소서. 평소에 애 터지게 기도하고 애 터지게 또 기도하고 자꾸 기도하고 기도해 놓으면, 잔뿌리 굵은 뿌리가 나무 밑에서 계속 자리를 잡다가 남들이 보면 시시해 보여도, 어느 날 태풍이 정말로 불 때 가지는 찢겨져 나가도 그 태풍을 버티고 또 한 시대를 열어나가는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사야 49장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근데 지금은 귀신이 환란을 일으키는 방법들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못 먹는다. 이걸로 환란을 일으켰고 쥐 박는다. 이걸로 가지고 위협했고 지금은 마음껏 먹고 마음껏 살아라. 마음껏 그냥 줘버리니까 먹다가 전부 퍼져버렸습니다. 세상이 험해서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 좋으니까 먹고 쓰느라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미 노아 홍수 때는 물로 넘쳤는데 모든 것이 너무 좋아 홍수 속에 들어간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천만금을 줘도 주님 한 분만 보고 주님 한 분의 약속을 따라 나갑니다. 3절 너는 나의 종이다. 맞냐? 말씀대로 살고 주의 뜻을 찾으면 맞고 말로는 주의 종이라 명함을 써 붙이고 교회 간판도 써 붙이지마는, 교회 간판도 여기는 교회입니다. 써 붙였는데 교회 간판 써 붙이는 거야 뭐 한 10만 원이면 다 붙이는데 누가 못 붙여? 그런데 느그 교회가 정말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하냐. 느그 멋 대로냐. 분명히 교회가 아닌데 전부 교회라고 간판을 갖다가 막 네온사인으로 간판 전쟁을 벌이니까 술집 전쟁하듯이 음식점 전쟁하듯이 모텔 선전하듯이, 교회도 전부 광고를 써 붙이니까 그게 미워서 교회 간판을 안다는 겁니다. 교회가 참으로 좋으면 알아서 찾아올 건데 들어가 봐야 교회는 없는데 교회라고 간판만 전부 써 붙이니까.

음식점이 중국집이라고 간판을 붙여놨는데, 중국집 중국 음식 먹으러 들어간 사람한테 한식 주면 그게 사기지 그게 양심입니까. 레스토랑이라고 양식점이라고 해놓고 김치 주고 된장 주면 그게 양식점입니까. 장사꾼들이지. 장사꾼도 그리 되면 오래 못할 건데. 교회가 간판을 붙여야 교회입니까? 하나님을 모신 한 사람 사람이 교인인데. 신풍에 몇 백 명이 신풍 교회를 다니니 간판 안 붙여도 신풍 안에서는 신풍교인을 다 앞집 뒷집에서 접하기 때문에, 저 사람들은 교회가 맞더라. 진짜 주일과 예배를 알더라. 그랬으면 이미 간판 광고는 넘칩니다. 거기다 대고 또 간판을 달면 남들한테 죄송하고 옆에 다른 교회하고 경쟁하는 것처럼 그래서 죄송하고. 간판 달고 싶은 교회는 달고 네온사인으로 달고 싶은 사람은 네온사인으로 달고, 또 십자가도 그냥 천주교 식으로 천 십자가 달 사람들은 울긋불긋 또 그냥 장식을 하고. 오색으로 달 교회는 오색으로 달고 크게 달기에는 크게 달고. 신풍교회는 십자가 어디 달았는지 혹시 아십니까? 자기 마음에 십자가 다 그리고 앉았습니까? 예배당 종탑에는 십자가 큼직하게 달아놓고. 남을 지져 먹고 볶아 먹고 갈아먹고 남을 갖다가 구워 먹고 앉았으면, 십자가를 모독하는 짓입니다.

중이 중간판 떼고 고기를 먹으면 일반인은 되는데, 머리 깎고 고기 먹고 앉았으면 자기 교주 석가를 갖다가 지근지근 밟는 겁니다. 차라리 머리를 기르고 고기를 먹으러 댕기지. 머리를 깎고 나는 중이다 해놓고 불고기집에 들락날락하다가 요즘은 가발을 쓰고 댕긴답니다. 중들이 고기 집 갈 때 술집 갈 때는 가발이 하도 좋아서. 해인사 중 가발 쓰고 저 골프 치러 갔다가 사진 찍힌 거 보셨습니까? 중이 가발을 쓰고 그것도 해인사 주지승인가 그러는데 해인사 주지승 가발을 쓰고 골프장 갔는데 누가 알겠습니까. 그것도 저 필리핀인가 해외 가서 또 골프를 쳤는데 누가 알겠습니까. 주지하고 싶은 주지 경쟁자가 아니까 가가지고 사진을 찍은 겁니다. 신사 참배에 반대하느라고 기도실 간사람 잡아준 사람은 순사가 모릅니다. 중들도 모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모릅니다. 신사 참배 거부하고 기도실 간 목사 잡아준 사람은 그 기도실을 같이 댕긴 동지들입니다. 신앙생활을 끝장 볼 연구 안 하고 대충 오고 가는 사람은 나중에 순사들이, 느그 목사 잡아내 그럴 때 불신자한테 고문하지 않습니다. 안 믿는 친척 잡아다가 훌치지도 않습니다. 저 목사 밑에 비슷하게 오고 간 사람이 누구더라? 그 2인자 3인자를 잡아다가 치면 목사 가 기도실은 언제 어디 가는지 다 나옵니다. 그래가지고 다 잡아들였습니다. 6.25 때도 그랬습니다. 진짜배기 순교자들을 순교하도록 잡아준 사람들을 뒷조사해 보면 먼 데가 아닙니다. 죽이는 것은 원수들인데 잡아준 것은 예수님이 어디 있는지는 가룟 유다가 정보를 준 겁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이 시간에 지금쯤 어디 있는지 아니까.

cctv 없던 시절 가로등 없던 시절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 주님은 늘 새벽으로 늘 밤중에 기도 다녔는데, 사람들이 보는 눈이 많으면 요동을 하고 일이 생길까 봐 몰래 딱 잡쳐야 되는데, 그 밤중에 주님을 잡으러 갈 때 늘 기도 다니던 가룟 유다가 주님이 어디 기도 하러 가는지를 알았더라. 그리고 그 길을 성경에는 지로 했다. 그랬습니다. 지로 손가락으로 지시해서 길을 가르쳐 줬더라. 신앙이라는 것은 어설프게 믿으면 자기는 원치 않아도 나중에 자기 스승을 잡아주는 사람 되고야 맙니다. 못 피합니다. 해인사 주지 가발 쓰고 술집 가고 해외 골프를 갔는데 사진을 모조리 다 찍었습니다. 누가 찍었지? 보니까 우연이 아니라 주지 경쟁하는 동료들이 가가지고 다 잡아낸 겁니다. 믿으려면 똑바로 믿고 똑바로 못 믿으면 똑바로 믿으려고 애라도 쓰고. 그냥 눈치껏 대충대충 하면 나는 원치 않아도 나중에 예수님 팔아먹는 사람 됩니다. 여기 3절에 주님이 이사야에게 너는 나의 종이다. 너는 내 말만 듣는다. 오늘 우리로 말하면 제가 어려워도 좋아도 싫어도 이래도 저래도 주님 뭘 원하실까. 이럴 때 우리는 오늘 현실에 내가 이사야가 됩니다. 너는 나의 종이요. 하나님의 종이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누구를 들고 영광을 받겠습니까. 하나님 순종한 그 종을 붙들고 치켜 올리며 봐라. 하나님께 순종은 이게 끝을 보니까 손해 보는 짓이냐 아니면 영광의 길이냐.

순교자 살아생전에는 대개 비웃었습니다. 죽고 나서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니까 그 길이 옳았구나. 지금은 모두들 그냥 우상을 만들 만큼 동상을 만들어 놓고 저 몰래 가서 아마 절하는 사람도 있을 걸요? 동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는 사람도 있을 걸요? 이거 벌말인 줄 아시지요. 천주교 교인들은 동상만 보면 자기도 몰래 슬금슬금 절을 합니다. 그래야 복 받는다고 훈련이 돼 있는 사람들이라. 천주교 교인들이 왜 기독교 성자 부를까. 안내가 거꾸로 가면 그래도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너는 나의 종이구나 하나님이 볼 때 맞다. 너는 내 눈치 보고 나 시키는 대로 하는구나 하나님이 볼 때. 내가 하나님 종이 되려고 노력을 해도 하나님이 볼 때는 아닌 수가 많은데, 내 스스로 내 양심으로 생각해도 난 내 멋대로 사는 사람이면 빨리 돌아서야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이 되면 마지막에 우여곡절을 떠나 저 뒤의 결과를 보면, 참 하나님께 순종의 결과는 무궁토록 영광이구나. 부럽도록 좋구나. 그때 나도 그럴 걸. 홍포 입은 부자가 죽고 나서 다시 보니까 거지 나사로의 걸음이 영광의 걸음이었고, 살아생전의 영광의 걸음으로 제 멋대로 100% 다한 홍포 입은 부자의 생애는 수치요, 수치요. 고난이요 고통이요 못 견디는 자해를 했던 겁니다. 오늘과 한 주간 주의 뜻 생각하고 걸어가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지난날에는 다가올 환란과 어려움을 두고 미리 기도했고, 오늘 저희시대는 돌아보니 이미 어둠과 환란이 짙어져 진리 앞에 밤중이 되었고, 인간답고 하늘을 준비하는 모든 신앙의 생활에는 더 이상 어려울 수 없도록 밤중에 어려움이 극하게 되었나이다. 그러나 아직도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준비의 은혜를 주시니, 각자 가정마다 자기마다 주님 앞에 주의 뜻으로 기도할 일 은혜를 구할 일을 간곡히, 간곡히 애 터지게 기도하며 준비하여 인간이 넘어갈 수 없는 모든 고비마다, 주의 은혜로 영광 가운데 승리로 넘어가는 저희들 되도록 오늘도 한 주간도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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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23.2.5주전    사49:5      존귀한 우리      엡1:5/7 191 192      총공신풍



□ 23년 요절 ①요6:55 ②요15:7 ③요15:12 ④요14:26 ⑤사49:8

■ 우리는
나는  :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믿는 (우리)들은
여호와 : (약속) 하나님,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 기준, 사람의 생각을 배제할 것
존귀한 자: 우리는 존귀한 자


■ 존귀한 이유
1. 용도 : 만든 목적
 ① 하나님 (상대)
 ② 하나님 (기쁨)
 ③ 하나님 (만족)

2. 상태 : 만든 상태
 ① 하나님 (형상)
 ② 하나님 (자녀)
 ③ 하나님 (수족)

3. 관리 : 유지 인도
 ① 하나님 (동행)
 ② 하나님 (대신)
 ③ 하나님 (역할)

■ 존귀와 연단
1. 인간의 특징
 ① 기계 : (연단)으로 (최상) 제작 > (사용)하면 낙후
 ② 사람 : (은혜)로만 (최저) 출발 > (연단)하여 존귀

2. 고난의 은혜
 ① (은혜)로 만들고
 ② (탈선)으로 연단
 ③ (돌아)와서 존귀

3. 돌아 온 둘째
⑴ 못난 인간이니
 ① (지식)이 없고
 ② (경험)이 없고
 ③ (실력)이 없어 탈선, 시행착오는 불가피

⑵ 실패를 한 후
 ① 돌아오면 (존귀)한 자
 ② 흩어지면 영원 (지옥)
 ③ 돌아오는 것이 소망, (존귀)한 자가 목적
 
⑶ 돌아오라는 말씀
 ① 소망 : (태어)날 때부터, :5
 ② 구원 : (보존)시킨 것,  :6
 ③ 목표 : 이방의 (빛)으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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