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23.2.5 사49:5 하나님 사랑 기쁨 만족의 대상, 오늘 믿는 나는 존귀한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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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3.2.5 사49:5 하나님 사랑 기쁨 만족의 대상, 오늘 믿는 나는 존귀한 이사야

관리1 0 87 2023.02.0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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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30205 주전

제목 : 하나님 사랑 기쁨 만족의 대상, 오늘 믿는 나는 존귀한 이사야

찬송 : 7장(만 입이 내게 있으면), 191장(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192장(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본문 : 이사야 49장 5절 -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완전자 하나님 영원불변에 무한하신 하나님 한 줌의 흙으로 된 못난 우리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영원히 아버지의 나라의 아들로 살 수 있는, 이한 목적을 위하여 만물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며 오늘까지 세상을 운영하시고, 지난 한 주간 또 날 중에 귀한 주일 이 아침을 우리에게 주일과 예배를 통한 은혜를 베풀어,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아들답게 복되게 은혜롭게 소망 중에 살아가도록, 이 땅위의 하루가 영생을 만들어가는 복된 우리로 인도하시려고 이아침도 모이게 하셨으니, 주시는 말씀으로 함께 살피며 새로 배우고 새로 고치고 더욱더 자라가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희들 되도록, 육체의 건강도 허락하시고 생존의 날들을 허락하여 지난날에 부족한 것 다 메꾸게 하시고, 험악한 세상 어려운 세상 복잡한 세상을 주시며, 한편으로는 너무 좋아 탈이고 눈 뜨고 보면 위험하고 어두운 세상인 줄 알아, 이러나저러나 주님께 간구하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이 자리 함께 했사오니, 어려도 노년의 종들이라도 또 기쁨으로 온 교인들이라도, 어려움 인하여 주님 앞에 간구하는 모든 교인 하나 하나 살펴주시고 인도하시고, 한 해를 준비하고 주신 모든 은혜를 일일이 담아주실 때,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모든 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줄 아는 교인들 되게 해 주옵소서. 이아침도 천하 만방에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곳마다 함께 하시되, 부족함으로 이 길을 고수하는 우리 공회교회들 위해 더욱 크신 은혜로 더해 주시고, 여러 형편인하여 해외에서 또 군대 근무 중에서 병원에서 요양 중에서, 또는 가정단위 홀로이 곳곳에서 귀를 기울이며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우리 교인들 위에 필요한 은혜로 더하여 주옵소서. 함께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하나님이 보실 때 나는 존귀한 자라. 이런 말씀을 소망의 말씀이라고 그럽니다. 우리는 별 거 없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보신다니, 들어도 좋고 소개해도 좋고 남이야 뭐라 하든 말든 나를 하나님이 존귀하다 하셨으니, 이건 착각이 아닐 것이고 나는 존귀한 자다. 이아침에 한 주간 다시 이 말씀으로 살펴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이사야 49장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의 선지자 중에 한 분이 이사야서를 기록하며 이사야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다. 대통령이 자기 혼자 나는 이 나라 존귀한 자다 그러는데, 신풍 농사짓는 사람이 너야 귀하겠지마는 나야 귀할 것 없다. 이야기가 그리 되지 않겠습니까. 대학의 교수가 나는 많이 안다 너는 많이 알지만은 농사짓는 나야 아는 것이 없다. 이게 세상입니다. 이사야는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이사야서의 이사야가 나는 존귀한 자다 하나님이 봐도 존귀한 자다. 이 말씀을 읽는 우리는, 우리는 못났다 우리는 우리가 다 못난 줄 알고 계십니까.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 때 한 줌의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참나무로 만들어도 되고 백향목으로 만들어도 되고 하나님은 실력이 있어 다이아몬드로 우리를 만들어도 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이라 마음먹으면 다 합니다. 근데 왜 다이아몬드로 우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이 사람 몸을 다이아몬드 만들어 놨으면, 사업하다 돈 없으면 손가락 하나 빼서 팔고 발가락 하나 빼서 돈 바꾸고 다 그러지 않을까요. 급하면 신장도 빼서 뭐 판다니까. 하나님은 전능자인데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밟고 사는 땅이 제일 낮고 못 났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밟고 삽니다.

이 땅위에 흙 한주먹 가지고 만든 것이 사람의 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운동선수라 펄펄 날아다녀도, 숨 끊어지면 전부 한 줌의 흙으로 다 돌아갑니다. 갖다 묻어놓으면 저나 여러분이나 왕이나 거지나 숨이 끊어지면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한 줌의 흙이 됩니다.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원래대로 돌아갈 뿐입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왜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을까. 못난 줄 알고 겸손하라고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흙으로 만들었는데 이 흙으로 만든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올려놓으셨는가. 여기 이사야만 존귀한 것이 아니라 이사야 49장 5절을 읽는 오늘 이 아침에 우리가 이사야처럼 다 존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믿는 사람은 존귀한 자다. 그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믿는 우리를 가르치는 겁니다. 수천 년 전에 이사야 존귀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는 믿는 우리는 이사야 자리에 자기를 올려놓고, 우리가 이 시대의 이사야처럼 위대하지는 못해도 자기 동네 자기 가정 자기 사는 주변 현실에 자기는 이사야와 같다. 그러므로 이사야 49장 5절을 읽으며.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보시기에 당대에 존귀한 자입니다. 오늘 나의 현실에 나는 이사야처럼 존귀한 나입니다.

나라의 장관이나 되고 대학의 총장이나 되는 사람이 위대한 거야 위대한 일을 하겠지만, 가족 3명 5명 밥상에 둘러 앉아 거기서 이사야 되어봐야 뭔 그렇게 쓸모가 있고 정말 존귀하겠는가. 우리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많은 사람이 우러러 보고 나의 영향력이 많이 미쳐져야 그게 위대하다. 우리는 그리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왕궁에 배치시켜 왕으로 존귀하게 만들기도 하시고, 어떤 사람은 다리 밑에 거지가 되어 가족 한 명 없이 얻어먹는 신세로만 평생 살았는데, 부잣집에 얻어먹다 보니까 그 집에 강아지들이 와가지고 이 거지 몸을 핥고 있었습니다. 개가 와서 사람을 핥을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몸에 음식이 묻으면 냄새를 맡고 핥는 경우가 하나 있고, 거지야 있는 대로 자기가 다 핥던데 뭘 먹을 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몸에서 진물이 나면 개들이 영양가 된다고 와서 핥아버립니다. 왕궁의 왕만 존귀한 줄 알았는데 부잣집에 얻어먹는 거지가 얻어먹다 보니까 개들과 함께 주워 먹었고, 먹을 게 없으면 개들이 와서 피부병으로 진물 나는 이 거지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도 이사야 49장 5절을 읽으며 이사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사람인 것처럼, 개들이 와서 몸을 핥고 있는 나는 하나님 앞에 존귀하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 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 같이 그 사람 이름이 뭐던가요? 찬양대의 좋은 목소리로 다 같이 누구지요? 몰라요 혹시? 그 사람이 나사로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이 땅에 제일 부자 제일 잘 먹고 사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집에 얻어먹고 사는 거지가 나사로였습니다. 이 부자는 매일 잔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부자인지. 그 바람에 개들과 이 거지는 매일 그 집에 와서 주워 먹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았는데 죽어 하나님 앞에 서고 보니 매일매일 지 좋은 대로 살았던 홍포 입은 부자는, 인생 전체를 살고 결산을 해보니 인간 생각과 인간 모든 평생은 지옥에 다 버릴 것 밖에 없었습니다. 쓰레기만 만들고 세상을 살았습니다. 한 인생 평생을 자기 원하는 대로 입고 먹고 즐겁게 살았는데 하나님이 그 인생 전부를 들여다보니까, 이 인생 전부는 지옥에 영원히 땔감으로 쓸 그런 생애였습니다. 부자의 생각 부자의 행위 부자에 가치 부자의 걸음걸음, 이 부자가 생산해놓고 버려놓은 것은 다 모아가지고 영원한 지옥에 태워버렸습니다. 그 부잣집에 얻어먹는 거지 나사로의 생애를 주님이 들여다보니까, 겉모습은 헐벗었고 겉모습은 개들이 와서 핥고 앉아 있는 수준이었으나, 나사로의 중심 마음 생애를 들여다보니까 나사로의 생각 나사로의 중심 나사로의 신앙 나사로의 그 인생 가치관은, 지옥에 보낼 게 하나도 없어 전부 천국에 갖다 놨습니다.

천국에 믿고 온 많은 사람 중에 아브라함 품에 나사로를 안겼습니다. 서류만 차이가 있지 아브라함과 나사로의 생애는 같다. 그러면 나사로의 누가복음 16장에 처참했던 그 생애는,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되는 아브라함의 복된 생애로 읽으면 정확하게 하나입니다. 그래서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이 볼 때는 존귀한 나사로였습니다. 근데 부자와 당대의 모든 사람은 가장 불쌍하다 그렇게 봤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장 불쌍하게 본 나사로 하나님이 볼 때는 네가 제일 귀하다 그리 봤습니다. 어느 걸음이 더 나을까요? 영원한 천국에 영원히 지옥에 불타는 생애가 될지라도 난 하룻밤 잘 먹고 잘 살겠다. 그런 사람은 주로 도박을 합니다. 밤새도록 기분 좋게 도박하고 한 달 번 거 다 털어먹고, 아니 뭐 하룻밤 좋았으면 됐지 뭐 한 달 수고를 하든지 말든지. 어떨까요? 애써 번 돈 귀하게 알토란처럼 길러 이자 붙여 집 사고 적금 들고 젊은 날보다 나 많은 날 더 경제가 나아지고, 나보다는 자녀가 더 나아지고 손주가 더 나아지고 가면 갈수록 더 나은 이런 생애로 걸어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 살면 됩니다. 나, 나이 들어 먹을 것 내 자녀 내 손주 먹을 것 전부 털털 털어 한 방에 도박에 날려도 됩니다. 홍포 입은 부자의 하룻밤 인생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것 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 전부를 하나님이 보니까 영원히 지옥에 불사르면 딱 맞을 생애만 살았습니다. 어떤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 그럴까요? 지 좋은 대로 하나님은 싫어도 저 좋은 대로. 주변의 모든 사람이 시기질투하고 난리가 나도 짓밟아버리고 나 혼자 좋도록. 이게 홍포 입은 부자의 생애입니다.

여수 25만 명이 욕을 해도 나 혼자 빼먹고 혼자 좋으면 됐지. 25만 시민이 전부 다 손가락질하고 저 녀석 그냥 어떻게 할까 이러는데 혼자 좋으면 끝까지 좋아질까? 여수에 25만 명이 인생 저렇게 살아서 되겠느냐 전부 질타를 하는데, 나야 뭐 오늘 나 혼자 좋으니까 뭐 이랬든 저랬든. 그러고 아마 시장 자리 버티고 앉았으면 5년 다음에 더 해먹지는 못할 겁니다. 5년 시장하고 10년씩 10년여씩 교도소 들어간 분 이야기 혹시 아십니까? 여기 가족들도 와 계실 건데. 우리 가족이라도 그러면 애 터지는 겁니다. 다른 사람 있는 대로 다 해먹고 25만 명이 욕을 하든지 말든지 난 내 멋대로 한다. 그러다가 뒤에 애 터지게 인생 주저앉는 걸 볼 때, 반대로 다른 사람은 대충 하던데 저 사람은 열심히 한다. 열심히 하니까 25만 명이 참 그분이 5년간 하고 나니까 우리 동네도 좋아지고 옆에 동네도 좋아지고, 여수 전부가 좋아지고 전국이 부러워하고 참 똑같이 한 번 해도 그런 생애가 있구나. 우선 힘든 것 같았는데 두고두고 모든 사람들이 맞다 옳다. 심지어 여수의 시장으로 왔다 간 분 중에 이름을 아시는지 몰라도 400년이 지났는데 일본의 원수들도 수십만 명이 죽은 원수들도, 여수시장 그 인간은 참 뭐 그냥 존경할 만하지 그 인간은 욕하지를 못하겠다. 여수시장 중에 제일 유명한 시장 이름 혹시 아십니까? 또 시장 그래버리니까 다 잊어버렸지요. 어떨 때는 시장 어떨 때는 군수 이름이 이렇게 바뀐 겁니다. 20년 전에 여수의 시장은 여수 군수였습니다. 여수 군수가 어느 날 가다 보니까 여천 군수가 됐다가 또 다시 여수 군수가 됐다가 또 여수 시장이 됐다가, 이름이 이렇게 몇 번 바뀌어 버리니까 전부 다 정신없어 따라가지요. 노름 야바우 사기 치는 사람은 이랬다저랬다 자꾸 바꿉니다. 바꾸면 헷갈려 버리니까 바뀌든지 말든지 본질을 딱 들여다보고 앉았으면 속지 않습니다. 그리고 큰 걸 잡습니다.

여수에 지나간 시장 중에 한 분은 그분 때문에 일본이 몇 만 명이 여수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몇 만 명이 빠져 죽었으면 400년 동안 이를 갈아야 될 건데, 여수시장을 한국이 알아주는 것보다 일본의 원수들이 광고를 해가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건 또 다 모르시고 계시지요. 서양 역사의 해군 중에 넬슨이 제일 유명하답니다. 일본의 유명한 해군 장군에게 서양의 넬슨이 유명하면 일본에는 도고던가요? 그 장군이 유명하지 않냐 하니까 어떻게 내 이름을 갖다가 그렇게 함부로 하느냐. 여수 시장 지낸 그 정도가 되어야 유명하지. 그 바람에 외국과 세계가 알아준 것은 우리가 선전해서 알아준 것이 아니고 일본 사람들이 광고해서 알려준 겁니다. 원수 것이라도 좋은 거는 이럴 줄 알아야 발전을 합니다. 심보라는 게 그렇습니다. 이거 인문학을 설명하고 학교에서 배운 거 거꾸로 배운 걸 지금 고치는 수술도 되고, 신앙의 기본도 되고 오늘 말씀에 다 연결이 되는 건데 이렇게 여러 차원으로 알아듣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아는 분들은 신풍 설교는 저 도시에 가야 먹히는데 그럽니다. 근데 그분들이 잘 모른 게 시골에서 먹혀야 도시에 가서도 뒤에 좋지, 시골에서는 안 먹히는데 도시에서 잘 먹히면 우선 장사는 잘 될지 몰라도 그게 끝은 별로 좋지를 못합니다. 신풍에서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알아듣게끔 되어 지고 그게 도시까지 나가야 더 좋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시골에서 고수하고 있습니다.

내 원수 속에서 장점을 뽑아내면 이 사람은 원수를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원수를 이갈고 미워만 하면 원수 발밑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한국 사람에게 불리한 겁니다. 어떻게 저것들이 우리는 노예나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노예 부려 먹기도 덩치가 작아 시시한 것들이 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짓밟았을까. 일본 애들은 등치가 작아 노예 머슴 부려먹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저것들이 우리를 짓밟았을까. 그리고 그쪽의 장점을 연구해내면 그쪽을 이겨버립니다. 이게 좋겠습니까. 욕만 하다가 맨날 일본 밑바닥 신세지는 게 좋겠습니까. 이게 우리 신풍 이게 우리 여수 우리 주변의 단점 중에 하나입니다. 신풍으로부터 목포까지는 체격이 좋습니다. 월등하게 체격만 좋은 것이 아니고 천재들이 많이 나옵니다. 체격 좋고 머리 좋으면 세상 살아가는 데는 제일 중요한 거 두 개 다 잡았지 않습니까. 근데 왜 밀리고 삽니까? 욕만 하니까 그런 겁니다. 머리 좋고 덩치 좋은데 남 욕만 하니까 별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덩치 좋고 머리 좋은 사람이 왜 등신 같은 저 작은 것들한테 먹히고 짓밟히고 지고 살았을까? 연구해서 그거 하나 가져와 버리면 덩치에 그다음 머리 좋지 단점 하나까지 고쳐버리면, 늘 웃고 윗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런 작은 진리가 이 말씀에 있고 성경에 있고 믿는 사람은 기본이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요래 만들어놨는데, 여기에서 벗어나니까 될 것도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원래 안 되고 그러는 겁니다.

지난 한 주간은 49장 8절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다. 지난 주간에 첫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족하게 못 나게 만들어 놨다. 못난 줄 알면 이거는 희망 있는 출발이 되고 못난 게 잘난 줄 알면 이건 밑바닥으로 내려만 갑니다. 이게 지난 주간 설교 말씀의 시작이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은 귀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못나게 만들어놨는데, 못난 걸 길러야 이게 끝까지 잘 되고 영원토록 잘 되기 때문에 일부러 한 줌의 흙으로 못나게 만들어 놓으니까, 이 못난 것들이 잘난 줄 알고 헛 집고 앉았습니다. 될 리가 없는 겁니다. 못난 게 못난 줄 알고 못났으니 해결이 없어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요래 버리면 못난 게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다고 되는 순간, 못난 거 더하기 하나님의 은에 두 개가 더해지면 이건 세상을 초월해 버립니다. 이것까지 계산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못나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좀 못난 줄 알고 있나요? 지난 주간에 이름을 불렀을 건데 잘 났는가요? 못 났는가요? 잘 났는데 이제 앞에서 말을 이리 하니까 못났다고 말을 해야 되겠지요. 속으로 못난 줄 정말로 알면 못나면 세상을 못 삽니다. 근데 믿는 사람은 아무리 못 나도 하나님이 아버지니 도와주옵소서. 내가 못난 줄 알고 1번 하나님이 도와주면 된다는 거 알고 둘, 둘을 더 해버리면 하나님이 해결합니다.

신풍에 400년 전에 잘난 시장님은 칼로 많은 사람을 죽여서 유명해졌다면, 그 자리에 400년 뒤에 키가 저보다도 작은 분이 한 분 잠깐 왔다 가셨는데, 그분 키가 커서 유명한 거 아닙니다. 직접 본 분들은 그렇게 작아서 놀랐답니다. 이렇게 작으면 세상 살아가는 데는 불리합니다. 키만 작았을까 남들은 잘 봤든 못 봤든 그분은 평생에 나는 참 못났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평생에 구하고 살았습니다. 끝까지 근데 못났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는데 조금 잘 되면 건방져가지고 좀 교만해져 버리는데, 이분은 못났는데 하나님 앞에 죽는 날까지 못났다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없어서, 전국이 다 쳐다볼 때도 끝까지 못난 줄 알았고 하나님의 은혜만 구했고. 그리고 세월이 70년이 더 지나고 보니 가까운 데도 먼 데도 더 먼 데도 더 먼 데도 어떤 사람도 그분 같으면 야 참 부럽다. 그럽니다. 그분에 대한 생애를 이사야 49장으로 읽어보면 해석이 다 나옵니다. 돌아가신 남 연구하는 거 아닙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가 못난 줄 안다면, 그 못난 해결을 달리기로 고액 과외로 눈치로 커닝으로 편법으로, 남 뒷발 걸어 넘어지고 넘어지면 밟고 추월하는 이런 방법이 아니라, 난 못났는데 하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로 가지고 대신했으면 참 좋겠다. 이래버리면 이사야 49장입니다. 이건 탈이 나지 않습니다. 돈 들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이렇게 해가지고 올라가면 모든 사람이 그 걸음은 맞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리 되어 집니다. 이사야 49장 8절. 참 못났는데 하나님이 아버지 되셔서 은혜로 주시겠다니 해결은 있겠구나. 그래서 구한 것이 은혜의 때에 구했고 하나님이 적어놨다가, 구원의 날 인간이 이길 수 없을 때 하나님이 해결한 게 8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은 5절로 올라온 겁니다.

8절을 가지고 5절로 올라오니 나는 존귀한 자라. 원래 존귀한 것이 아니라 한 줌의 흙이라 내가 나를 보면 못났는데, 내가 나를 보면 못났는데 은혜를 주실 하나님의 눈으로 다시 나를 보면, 하나님은 못난 나를 존귀하게 귀하게 보신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나는 내가 나를 볼 때 못났는데 하나님은 나를 존귀한 자로 목적을 정해놓았으니 나는 존귀한 자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못났다는 것과 존귀하다는 것을 떼놓지 말고 두 개를 짜 매고 묶고, 하나로 만들어 늘 마음속에 난 참 못났다 하나님 떼놓으면 나는 희망이 없다. 살아봐야 살 것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하니 하나님 앞에 존귀한 걸음 걸어보자. 5절로 다시 돌아옵니다. “나는” 옛날에 이사야가 나는 했는데 오늘 믿는 우리를 가르친다고 그랬습니다. 나는 누가 볼 때 존귀하다고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인데 하나님의 이름 중에 약속의 하나님, 약속하고 틀림없이 지키는 하나님 그럴 때에 여호와라고 합니다. 믿는 우리는 약속의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다. “여호와 보시기에” 세상 기준으로 보면 뭐 잘난 사람 중간 못난 사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근데 여호와 보시기에 세상 기준 말고. 세상의 기준 말고 적금 얼만데 아파트 평수 얼만데, 아파트 공시지가 실물 매매가 현장 현재 시세 어찌 되는데 그 기준 말고, 학교 졸업장 어디 건데 그거 말고 아이큐 얼만데 그런 거 말고. 네 인물이 5등신이냐 7등신이냐 8등신이냐. 팔등신 되면 옛날에는 장애자라 그랬습니다.

도시는 8등신 할 거고 신풍은 팔등신 연세 많은 분들은 뭔 말인지 잘 모르실 것 같은데. 한순희 집사님은 아실 거 같고 이순금 집사님 혹시 팔등신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머리가 쥐처럼 쪼그만 하면 그걸 팔등신 미인이라 그럽니다. 예전엔 저처럼 머리가 커야 어이구 인물 같다. 이럽니다. 요즘은 저처럼 머리가 크면 저거 좀 장애자냐 그리 봅니다. 일부러 만들어서 머리가 작아요. 새 머리처럼 예전에 머리 작으면 장애자입니다. 지금은 미녀의 출발입니다. 팔등신이 그런 뜻입니다. 이 기준 저 기준 별의별 기준이 다 있는데 모든 기준을 배척하고 배제하고 하나님 보실 때, 약속의 하나님이 하나님 기준으로 보실 때 믿는 사람은 존귀하다 이리 되는 겁니다. 제 부모님 시대만 해도 며느리는 등치가 좋아야 예쁘다 그랬습니다. 저 첫선 보는데 아가씨가 빼빼한 게 들어오니까 어머니가 집에 와가지고, 아 이거 뭐 장애자를 갖다가 누가 소개를 했을까 구시렁거리는데, 그때 서부교회 그 큰 교회에서는 인물 좋다고 전부 쳐다보는데, 어머니는 뭐 그런 것 같다가 그냥 이렇게 구시렁거렸었습니다. 등발이 좋아야 예쁜 거지. 시대 따라 이렇게 바뀌는 겁니다. 북한의 애국자는 남한에 오면 처단입니다. 남한의 애국자는 북한 가면 전부 처단입니다. 이 나라 이사회 이 학문 이 사람 저 기준 다 치우고, 여호와 보시기에는 믿는 사람은 전부가 존귀한 자입니다. 그러면 오전에 예배드리러 온 우리는 직업에 상관없이 인물에 상관없이 연세에 상관없이 따라 합시다. 존귀한 자(존귀한 자). 제가 아니고 우리를 말합니다. 우리 전부는 존귀한 자입니다. 왜 존귀한가 하나님이 만들 때 하나님이 상대하려고 만들어 놨습니다.

임금님 밥상에 올라간 음식은 뭐든지 전국에 최고일 겁니다. 이건 임금님 밥상에 올라간 김입니다. 다른데 김과 틀리구나. 이거는 임금님 밥상에 올라간 무 입니다. 이거는 임금님 이불에 쓴 재료입니다. 임금님이 썼다하면 그거는 무조건 최상품입니다. 그런 건 아시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상대하려고 만들어 놓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키 크다 뭐 영어 잘한다. 돈 많이 벌었다. 말 잘한다. 눈이 크다. 눈이 적다. 이런 거 따지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이란 하나님이 얼굴 보고 하나님이 영원무궁토록 상대하려고 목적을 정해놓은 대상입니다. 무조건 귀한 겁니다. 여수시에 공무원은 여수시에서 지방공무원으로 따로 선발합니다. 여수시에 합격한 공무원은 중앙에 못갑니다. 중앙에 쓰려고 선발하는 직원들은 중앙 직 공무원들은 아예 따로 선발합니다. 공무원인데 스무 살짜리라도 합격만 하면 막 바로 간부부터 출발하는 것은 행정고시라는 시험으로 따로 선발합니다. 이건 선발하면 그냥 여수에 오면 바로 과장입니다. 스무 살짜리 혹시 기억하십니까? 20대에 판사 된 사람 20대에 검사 된 사람 혹시 기억하십니까? 20대에 군수로 발령받고 온 사람. 행정고시 합격한 사람은 20대에 군수시장 발령 내버립니다. 선발이 다릅니다. 그래서 행정고시 출신들은 100만 명 공무원은 전부 다 내 밑에 부하고 나는 머리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자존심이 다릅니다. 행정고시학교 가면 무조건 위에서도 이건 특수하다 빼가려고 난리가 납니다. 우리는 만들 때부터 하나님이 하나님 혼자 상대하려고, 하나님만 모시려고 하나님과만 하나 되려고 하나님 용도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런데 이게 시내 돌아다니면서 이 골목 저 골목 별의별 군데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뭐 어디 여기 저기 오란 데가 많다고 자기를 그리 알면 하나님은 요런 믿는 사람 뒤 꼭지를 보며, 그거 기생이다. 성경에서는 창기다 이렇게 보시고 분노 하신다 그랬습니다. 나 혼자 쳐다보려고 만들어놨는데 어디 남의 남자들 쳐다보고 기웃거려.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보는 겁니다.

하나님만 쳐다보고 하나님과 마주 앉아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이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만족하고 영원무궁토록 나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존재. 믿는 사람은 만들 때부터 이렇게 만들어 놨으니 이게 이제 참 고장입니다. 믿는 사람 교회 한 번 올 때마다 돈 백만 원 준다. 천만 원 준다. 그래야 교회가 미어터질 건데 돈 그까짓 것 돌아보지 말고, 하나님이 나는 너만 상대하고 싶다 그러니, 하나님을 상대한다. 그 뭔 말인가 돈도 안 되고 공부도 안 되는데 그건 옆집 주십시오. 저 시내 다른 사람 주십시오. 저 미운 집에 가져가게 하시고 전 돈이면 됩니다. 저는 합격증이면 됩니다. 저는 취업이면 됩니다. 저는 선거 당선만 되면 됩니다. 하나님 하고 앉아서 하나님 마주 보는 것은 다른 사람 주십시오. 다 그러지요. 그래서 세상 기준과 하나님이 보는 기준이 다르다는 겁니다. 이사야가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오늘 믿는 우리가 우리 현실에 이사야입니다. 약속의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하다 해놨습니다. 존귀하게 만들어 나버릴 겁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이걸 교리적으로는 견인이라 그럽니다. 한번 따라 해 보시지요. 견인(견인). 차 고장 나면 끌고 가는 걸 견인이라 그러지요. 차 목을 딱 쇠사슬로 거머쥐고 안 되면 바짝 들어다가 끌고 가 버리는 걸 견인이라 그럽니다. 칼빈의 5대 교류 중에 마지막을 견인이라 그럽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 기어코 해내지 막히는 수가 없고 지장되는 수가 없다. 반드시 하나님은 목표를 이루고야 만다. 다만 방법을 부드럽게 놔주며 기다리니까 사람들이 시시하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목표 정하면 완전 자라 실패가 아예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마주 보기를 원하고 상대하기를 원합니다. 돈도 싫고 뭐도 싫고 다 싫고 하나님은 이사야 너만 상대하고 싶다. 오늘 내 현실에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나는 너 하나면 됐다 그 대상이 나입니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임금이 어느 여자 하나에 눈이 딱 꽂혀서 저 여자 아니면 안 된다고 발버둥을 치면 그 여자 팔자 고친 겁니다. 암행어사고 정승이고 과거 시험 급제고 뭐고 다른 사람 다 주고. 임금이 저 여자 아니면 못 살겠다고 발버둥 치면 그 딱 관심 임금의 관심 하나가 돈이고 나머지는 다 해결이 되어 집니다. 임금님에 관심은 없는데 돈이 너무너무 너무 많으면 어느 날 임금이 의심을 합니다. 저 놈이 어느 날 돈으로 사람을 사서 날 뒤집지 않나 이렇게. 한국에 칼을 제일 잘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게 칼을 제일 잘 쓰면 임금은 그 다음부터 의심을 합니다. 어느 날 저 녀석이 마음 바꿔 먹으면 내 목이 날아가고 저 놈이 주저앉지 않나. 여수시장님을 원수 일본 애들도 세계적인 영웅으로 봤는데, 여수시장 서울에 불러다가 반 죽여 놓은 그때 대통령 이름을 혹시 아십니까? 초등학교 때도 나올 것 같은데 학교 안 나와도 요즘 텔레비 보면 다 알 것 같은데. 그 대통령 이름이 뭔가요? 선조입니다. 선조. 이게 그냥 칼싸움을 너무 잘하니까 이 인간이 어느 날 마음 바꾸면 왕 날려버리고 자기가 왕 하지 않을까. 임금이 좋아하면 그 사람은 무조건 임금이 있을 때는 출세하는 겁니다. 임금의 관심에 벗어나면 돈 많아도 의심받고 칼 잘 써도 의심받고 충신이라도 의심을 받습니다. 저게 충신인 척하면서 마지막에 뒤집지 않나 이렇게. 세상의 왕은 하룻밤 살고 잠깐 살고 이리 되고 저리 되니까 어찌 될지 모르지만은, 영원무궁 불변의 하나님이 난 저 인간이 좋다. 영원무궁 불변의 하나님이 난 저 인간이 마음에 든다. 그게 믿는 우리입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순간, 그 전에는 공부가 중요했으나 이제 하나님이 날 좋아하신다니 이게 첫째고 공부는 2등이고. 사업한 사람은 덮어놓고 돈 버는 게 1차였는데 사업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나면 하나님이 날 좋아한단다. 이게 일등이고 전부고 돈 버는 거는 부업으로 2등으로 제쳐 지는 겁니다. 이 좋은 세상 오래 살아야 좋으니 건강이 제일이라고 그러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보면, 건강이 좋으나 하나님이 나만을 상대하고 나만 좋아하신다니 이게 1등이고 전부고, 건강은 그다음 2등으로 물러가는 겁니다. 죽으면 하나님 바로 보러 갈 건데 뭔. 만사가 이리 되는 겁니다. 이래서 순서와 가치관과 생각과 살아가는 모든 것이 완전히 100% 뒤집어지면 믿는 사람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가 믿기는 믿는데 믿는 사람답지는 않게 살아왔겠지요.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답게 살았으면 이 정도가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이사야 49장 5절. 이사야가 나 이사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다 당대 임금과 모든 백성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존귀하게 본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나는 부족해도 내 가정 내 현실 내 직장 나 살아가는 주변에 모든 사람이 날 어떻게 봐도 상관없다. 하나님은 믿는 나를 들여다보며 너는 내 것이다. 너는 나의 사람이다.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은 나 하나만 쳐다보고 살 거다 좋은 겁니다.

아기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잘 모를걸요. 대통령을 해도 박사라도 아기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걸 잘 모를 걸요. 아기를 낳아보면 그다음에 아기 얼굴을 딱 쳐다보면 이것만 쳐다보고, 누가 밥만 먹여주고 해결만 해준다면 애만 쳐다보고 하루 종일 놀아도 지겹지를 않습니다. 아기 엄마들 이 말은 맞습니까? 뭐 3일이나 봤는데 뭐 또 4일째 봅니까? 어떤 만화든 영화든 소설이고 아무리 좋아도 본 거 세 번 네 번 다섯 번 보면 지겨워서 못 봅니다. 그런데 제가 낳아놓은 제 아이는 1년을 뚫어보게 쳐다봐도 안 보면 또 그리워 못 견디고 그렇지요. 아이를 낳아본 분들은 제 말이 맞나요. 맞는가요? 한 30년 보면 지겹지 않던가요? 이거 못 보면 그리워집니다. 더 못 보면 사모가 되고 발광을 합니다. 봐야 해결되지. 돈도 집도 다 좋은데 이 아이를 쳐다보다가 돈 없어 나중에 못 쳐다볼까 봐, 그래서 돈도 벌고 그래서 건강도 유지하고 다 그러는 겁니다. 부부끼리는 첫사랑에 잠깐 좋아 못 죽다가 이건 나중에 아이 놓을 때쯤 되면 벌써 이거 식어져 가지고 그냥 애 때문에 붙여놓고 사는 거고, 또 다독거려야 뭐 별 문제가 없으니까 그런 거고 아이는, 첫사랑이 미쳐서 난리가 나도 그는 오래 못 갑니다. 옛날에 석 달 그랬습니다. 요즘은 뭐 3주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바꿔 치아 버리지 지겨우니까 자동차 바퀴 갈아치우듯이. 근데 아이는 한 번 낳아놓은 거 더 예쁜 거 있는데 바꿔줄까요? 바꿔줘요? 느그 애 하나 주면 이게 더 좋은 거 열 개 줄게 열 개로 바꿉니까? 천 개 만 개 줘보지요. 아이라는 것은 한 번 낳아 놓으면 이건 죽는 날까지 죽을 때 잊지도 못하고 눈도 못 감고 죽는 게 아이입니다.

하나님이 나 아니면 안 된다. 라는 말을 이 땅 위에서 비교할 방법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아버지라고 우리를 아들로 이렇게 비유를 해놓은 것은, 네가 결혼해가지고 아이를 한번 낳아놓고 네가 놓은 아이를 한번 들여다 봐봐라. 10번 보면 더 좋고 100번 보면 더 좋고 그런 것도 저는 잘 몰랐었습니다. 그냥 늘 좋은 줄 알았지. 아이를 낳아 놨는데 이 정이 깊어지면 나중에는 못 뗄까 봐, 떼려면 일찍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면 좋고 보면 더 좋고 보면 더 좋고 갈수록 더 좋고. 그래도 인간은 자기가 죽을 판이 되면 잠깐 잊어버리고 하도 애를 많이 먹이면, 이 원수야 보기 싫다는 말이 나오기도 나옵니다마는 하나님은 영원불변입니다. 영원불변의 완전자 하나님이 난 너만 좋다. 하나님이 나만 좋게 보시려고 만들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존귀하게 만들었는데 왜 이 사람 저 사람이 못 났다. 키가 작다. 크다 그러는데 왜 흔들립니까? 낳아 놓은 요대로 하나님이 예쁘다고 만들어놓고 하나님은 날 보고 전부라 그러는데, 왜 여기저기 가서 떠들고 저거 이러고저러고 자꾸 이걸 뒤바꿔가지고, 다른 사람 볼 때는 이리 바꾸면 좋지만은 하나님은, 난 네가 이렇게 되는 게 좋아 원래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난 이걸 영원무궁토록 보고 싶다. 하나님의 상대가 우리입니다. 아니 뭘 그렇게 상대하는데? 아이 가진 엄마들은 별일 없으면 애를 보고 히죽히죽 자꾸 웃습니다. 미쳤나? 일도 없고 돈도 못 벌었는데 뭐 히죽 거리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애만 쳐다보면 히죽거리고 자꾸 웃습니다. 돈 없어도 아이 있는 집은 웃음이 나온다더라 뭐 그런 이야기가 있지요? 천만금 천만금을 벌어도, 벌어도 아이 없는 집에 저녁은 밥상은 웃음은 별로 없습니다. 가난해도 아이가 있으면 온 가족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상대하려고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우리만 보면 하나님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데. 그 어쩔 줄 모르는 걸 예를 꼭 들자면 아이 낳아 놓고 아이를 쳐다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이게 한 살 되면 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세 살 되면 그냥 좋아서 죽을 만큼. 근데 일곱에는 미운 일곱이 아닌가? 그건 인간이라 그리 되는 거고.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길러가는 것은, 가면 갈수록 더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기쁨 때문에 만들어 놓은 겁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를 상대하시고 우리만. 두 번째는 우리를 상대하며 아이를 보며 기뻐하는 그 기쁨을 하나님이 영원무궁토록 가지도록, 이렇게 기쁘면 그다음 어찌 되는데 결과가 이것만이 만족입니다. 예배당 연보 궤 금반지로 가득 가득 채워도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예배당을 온 교인이 우리 예배당도 한 500명까지는 너끈하게 앉을 건데, 500명을 채워도 하나님은 그것보다는 믿는 그 믿음 그 믿는 그 신앙 믿는 그 생각. 우리의 마음이 주의 말씀으로 살아봐야 되겠다. 참 주님 때문에 감사하다 이 부족한데 주님이 나를 상대한다니 난 존귀한 자다. 이 생각 이 생활 이 마음씨를 보며 네가 나를 아는구나. 상대. 그러니 기쁘구나. 둘. 세 번째 하나님의 만족은 여기에서만 만족이 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만족. 이래서 하나님 앞에 믿는 사람은 존귀한 자입니다. 이렇게 존귀하게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개는 개를 만나야 좋아 어쩔 줄 모릅니다. 소는 소끼리 놀아야 행복합니다. 쥐는 쥐끼리 모여야 되고 뱀은 뱀끼리 우글우글 겨 안아야 좋아집니다. 도둑놈은 도둑놈들끼리 만나면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야당은 야당들끼리 만나면 이렇게 좋은데 제 여당 저놈들만 보면 그냥 속이 뒤틀어집니다. 또 여당은 안 그렇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야당만 전부 다 한꺼번에 없으면 이 좋은 천국이 되겠는데 또 여당은 또 그럽니다. 그걸 끼리끼리라 그럽니다.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 때부터 동물로 만들지 않고 컴퓨터로 만들지 않고, 노예로 만들지 않고 하늘의 별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 딱 베껴서 만들어놓은 게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이걸 기뻐하고 이걸 상대하는 겁니다. 난 널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었다. 넌 누구의 신앙을 위해서 한 번 수고했냐. 저 아이를 위해서 저는 이 친구를 위해서 신앙으로 도움 되도록 이런 수고를 했습니다. 이게 하나님과 상대가 되고 짝짝이 맞고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고 이걸 하나님이 만족해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은 어떤 분인데?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 전부를 바쳤고 넌 다른 사람의 신앙을 위해서 몇 번 수고했냐. 무슨 수고를 했느냐. 어떤 속을 썩었으며 어떤 노력을 했느냐. 그게 하나면 그 하나가 바로 하나님 상대입니다. 저는 그게 열입니다. 그만큼 열이 하나님의 상대입니다. 저는 제 인생의 절반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자기의 절반은 하나님의 상대가 된 겁니다. 이걸 보며 아이를 본 엄마의 그 기쁨처럼 그 만족처럼 그 전부처럼 하나님을 이렇게 우리를 들여다봅니다. 하나님처럼 완전 하나님처럼 거룩 하나님처럼 깨끗 하나님처럼 구원 하나님처럼 주일, 하나님처럼 예배 하나님과 같은 그 마음 말씀으로 살아야지. 주의 뜻 찾아 살아야지. 주님 모시고 살아야지. 영생의 구원을 바라봐야지. 그 마음 그 행위 그 생각 이게 하나님의 형상이며 이걸 하나님 상대하는 대상으로 만들어 놓고 세상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이것만 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모아주십니다. 이게 안 되면 다 흩어버립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믿는 사람의 성공하는 법. 믿는 사람이 세상까지 잘 되는 법.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 상대가 되어 지면 하늘도 땅도 만물도 하나님이 다 모아 들이 부어버립니다. 이사야 49장 전체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상대 하나님 기쁨 하나님의 만족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기도)
천국을 준비하는 세상으로 주셨는데 세상은 살며 세상은 가지나 천국은 잊어버렸고, 사람으로 태어나며 사람을 주변에 주심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상대하라고 주셨는데, 사람 상대하다가 사람의 생각만 남고 자기만을 길러가며 하나님은 잊어버리기 쉽고 그렇게 살아온 저들에게, 존귀한 자로 우리를 불러주시고 존귀한 자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심은 인간 자체가 존귀해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상대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며 하나님이 만족케 하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 우리의 인격 우리의 하루하루를 주님이 기뻐하는 주님 동행으로 살아, 존귀한 자가 존귀한 자로 살면 우리에게 필요한 이 땅 위의 모든 것은 주님이 직접 알아서 조절하시고 넘치게 부어줄 터이니, 이 땅 위에 인간의 염려와 근심 일단 제쳐놓고 마음속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말씀으로 기도로 주의 뜻을 찾으며 복된 길 걸어가는 우리 교인들이 되어, 어떤 어려움도 난관도 주의 은혜로 헤쳐 가는 저들 되게 하시고, 교만하여 방심할 수 있는 어떤 현실 환경도 주님이 주신 귀한 선물로 받아, 주님 앞에 존귀한 참 사람의 저들이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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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23.2.5주전    사49:5      존귀한 우리      엡1:5/7 191 192      총공신풍



□ 23년 요절 ①요6:55 ②요15:7 ③요15:12 ④요14:26 ⑤사49:8

■ 우리는
나는  :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믿는 (우리)들은
여호와 : (약속) 하나님,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 기준, 사람의 생각을 배제할 것
존귀한 자: 우리는 존귀한 자


■ 존귀한 이유
1. 용도 : 만든 목적
 ① 하나님 (상대)
 ② 하나님 (기쁨)
 ③ 하나님 (만족)

2. 상태 : 만든 상태
 ① 하나님 (형상)
 ② 하나님 (자녀)
 ③ 하나님 (수족) 

3. 관리 : 유지 인도
 ① 하나님 (동행)
 ② 하나님 (대신)
 ③ 하나님 (역할)

■ 존귀와 연단
1. 인간의 특징
 ① 기계 : (연단)으로 (최상) 제작 > (사용)하면 낙후
 ② 사람 : (은혜)로만 (최저) 출발 > (연단)하여 존귀

2. 고난의 은혜
 ① (은혜)로 만들고
 ② (탈선)으로 연단
 ③ (돌아)와서 존귀

3. 돌아 온 둘째
⑴ 못난 인간이니
 ① (지식)이 없고
 ② (경험)이 없고
 ③ (실력)이 없어 탈선, 시행착오는 불가피

⑵ 실패를 한 후
 ① 돌아오면 (존귀)한 자
 ② 흩어지면 영원 (지옥)
 ③ 돌아오는 것이 소망, (존귀)한 자가 목적
 
⑶ 돌아오라는 말씀
 ① 소망 : (태어)날 때부터, :5
 ② 구원 : (보존)시킨 것,  :6
 ③ 목표 : 이방의 (빛)으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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