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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1 수밤
제목 : 아무리 어려도 하나님 말씀은 전해지니 돌아보며 조심하며 필요하면 예리하게
찬송 : 186장(황무지가 장미꽃 같이)
본문 : 이사야 49장 1절 -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만유 주 하나님 아버지 되셔서 목적도 창조도 예정도 오늘의 운영의 섭리도, 정확무오하게 절대 완전의 사랑 속에 인도해 주시는데 자유성을 주신 생명이 자라가는 이 과정의 실수도 어려움도 고난도 연단도 필요하여, 여러 가지 현실 속에 우리를 여러 면으로 기르시는 이 배려 이 사랑을 깨닫는다면 감사밖에 없겠나이다. 아지 못하면 불안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나이다. 아는 가운데 자라가는 저희들이 되어 이 밤도 감사하게 이 밤도 주를 향한 소망에 불타는 저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소돔보다 더 음란하고 악한 시대에 우리는 롯 정도도 되지 아니하오니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사람에게 맡긴 것은 한계가 있고 성령이 각자를 붙들어 역사하신다 했사오니, 이 밤도 함께 모여 자기를 인도하시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 교인들 되게 하시고, 오가는 차량 안전 두루 살펴 생존과 건강의 은혜로 지난날의 부족을 채우게 하시며, 부산의 동천 모덕 서진과 또 여기 조례와 세종과 서인과, 강동과 해외에 두신 우리 LA 교회까지, 또 내계의 집회 5월과 8월에 모이는 모든 식구들, 또한 이 노선 이 복음을 옳다 인정하고 소망하는 모든 교인들, 이 밤도 주신 사명 인하여 곳곳에서 눈과 귀를 기울일 천하에 모든 우리 교인들, 마음 마음속에 각자를 인도하시는 주님으로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사야 49장 전체를 살펴보려 합니다. 중간쯤까지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녁에 찬송가 186장 반주하시는 분들은 유의하여 봐두셨죠. 이솔이 봤죠? 예 또 뒤에 반주하는 분계시나요? 좀 원칙을 당분간 지켜서 비교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사야 49장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북쪽은 열 지파 망해 가다가 망해버렸고, 그리고 12지파 중에 남쪽에 두 지파만 이거 폭풍 앞에 촛불처럼 꺼질지 말지 이렇게 애매할 때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소망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뿐이다. 그런 최후의 경고를 이사야가 강하게 외침으로 돌아서고 그리고 이스라엘은 100년 이상 살아남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환경이 이사야서 때보다 더하지 덜하지를 않습니다. 모르면 기찰일이고 잘 살펴보겠습니다. “섬들아” 1절 섬이라는 것은 살아가는 육지 땅이 이어지다가 바다 때문에 끊겨버리면, 그러면 바다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인데 바다로 끊어졌다가 뚝뚝 떨어져 하나씩 우뚝 서 있는 섬, 그 겨우 살아남는 그런 불리한 땅 떨어져 있는 격리의 땅. 살기 어려운데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것을 섬이라 그럽니다. “섬들아”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뚝뚝 떨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아 생활들아. “나를 들으라” 이사야가 나를 들으라 했으니 이사야선지의 말을 들으라. 이사야 선지자 말이 아니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이렇게 한 예배당에서 모여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오다가 차가 고장 나면 어디 저 도로가에 차를 세워 놓고, 요즘은 차 안에서도 화면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여기가 육지라면 그렇게 뚝 떨어져 버렸으면 그것은 섬이 될 수가 있겠지요. 오늘은 주일이 아닌데 직장이나 학교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어 피치 못하게 참석을 못했다면, 대학에 캠퍼스 한 모퉁이 빈 곳에 혼자 7시 저녁 예배 잠깐 자기만 드릴 수 있습니다. 또 ktx 차를 타고 간다면 레시바 꽂고 자기 혼자 조용하게 남에게 불편 없이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것도 섬이 되겠습니다. 또는 온 가족이 지금 함께 가정에서 우리 예배를 실시간으로 본다 해도 그건 좀 큰 섬이 될 겁니다. 섬도 작은 섬 큰 섬 여기저기 별별 것이 있습니다. 함께 모여 연결되면 육지 땅입니다. 여기저기 뚝뚝 떨어져 있으면 섬이 됩니다. 일반적으로는 섬으로 떨어지면 좋은 것이 연결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군 생활 때문에 저 전방에 있는 청년들 또 한 달 이달 말이면 또 군에 갈 청년들, 훈련소 바쁜 일정 속에 홀로이 마음속에 오늘도 수요일 저녁 예배가 있는데 그리고 마음을 이쪽에 모으면,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은 그 섬에 떨어져 있는 그 홀로 있는 그 마음속을 주님은 지켜봐 보실 겁니다. 그런 거 다 생각하고 지금 입대 준비하고 그러시겠지요?
결혼으로 홀로이 어디 살 수도 있고 직장도 그렇고 출장도 그렇고 좋기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안에 사는 것이 가장 복이나, 다니엘도 요셉도 모세도 자기들은 원치 않아도 하나님께서 한 번씩 뚝뚝 떼다가 멀리 둘 수도 있습니다. 또 복이 없어 복음을 듣지 못하는 먼 섬에 간 사람들도 그 불행합니다마는, 어쨌든 하나님께서 이사야 49장 1절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섬처럼 떨어져 있지는 않으나 육지로 연결은 되어 있지만은 멀리 멀리 먼 곳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곳은 다 불리한 겁니다. 그래서 직장도 가정도 될 수 있으면 예배당 옆에 생활 거리에 계시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어떤 직장 어떤 공부 어떤 활동이든지 문제가 생기면 내 발로 걸어올 수 있는 생활 거리 항상 이걸 목표로 삼으시되, 요셉처럼 모세처럼 원치 않게 떨어지는 수도 있고, 동방의 박사들은 태어났는데 이스라엘과 멀리 멀리 원방에 있어 전연히 연결될 줄 몰랐지만은, 양심으로 하늘을 연구해보니 별이 인도를 했고 따라와서 주님을 맞이하는 첫 성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로서는 가장 유리한 걸 잡는 게 복입니다. 신앙으로 유리한 거. 안 믿는 사람은 세상 사는데 유리한 걸 먼저 잡아놓고 신앙은 뒤로 밀어버립니다. 믿는 사람이란 신앙의 가장 유리한 거리 먼저 잡아놓고 나머지는 뒤로 밀어버립니다. 군인은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이런 준비와 이런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군인입니다.
얼마 전에 뭔 대한민국 60만 군대는 북한이 쳐들어오면 다 죽어도 좋다고 이렇게 무기를 내려놓는, 이런 놈의 인간들 가지고는 나라가 유지가 안 될 건데 하나님이 우리 신앙을 불쌍히 여겨, 그런 시대를 바꿔 준 것도 눈치나 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둑놈이 있으면 경찰이 따라가다가 박을 깼는데 잘못 깰 수도 있는 거고, 일부러 남의 박을 깬 거는 책임을 물어야 될 거고 도둑 강도를 잡다가 그거 두드릴 수 있는 건데, 경찰을 갖다 마구 짓밟아 놓으니까 경찰들이 월급 받고 그냥 도둑놈들 강도들, 휘둘리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번져놓으니까 이 나라 이리 된 겁니다. 요즘은 도둑 강도들 지금 꼼짝도 못 하는 거 알지요. 억센 것들이 막 두드리려고 그냥 눈이 시퍼러니까 지금 총 맞을까봐 이렇게 떠는 겁니다. 뭐가 좋은지 안 좋은지 이렇게까지 눈치가 없는지 아무리 내 부모라 하고 아무리 내 가족이라도 틀린 거는 틀린 줄 알긴 알아야 되는데 “섬들아 원방 백성들아” 우선은 불리해 보이나 알고 보면 섬과 원방이 더 복될 수도 있는 겁니다. 우리 공회의 본부는 부산입니다. 신풍은 거리뿐이 아니라 교류 적으로 본부 부산에서 제일 외따로 떨어진 섬처럼 그리 되었었습니다. 여기 처음 와보니까 이게 뭔 공회교회입니까. 저한테다 대고 공회교회를 가르친 그때 집사님들 지금도 몇 분 앉아 계시는데 다 거꾸로 배웠고 잘못 배운 겁니다. 하도 본부와 멀어 놓고 아는 사람이 없다보니까 뭐 그냥 희한하게 예배당이 돌아가는데, 그 예배당에 좀 오래 다닌 분들은 자기가 공회라고 악을 써 쌌는데 그거 다 공회 아닙니다. 여기는 공회 본부로부터 섬처럼 뚝 떨어져 놓으니까 엉뚱했는데 지금은 공회 제일 본부가 되어 있습니다.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옳고 바른 걸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겁니다. 다른 데는 얽혀서 난장판이 되는 바람에 알아도 옳은 걸 붙들고 가지를 못합니다. 주변에서 뒤흔들어 싸서.
원방과 섬이라는 것은 불리합니다. 근데 다시 들여다보면 그 속에 또 보배가 있는 겁니다. 떨어져 있는 섬들아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멀리 멀리 떨어져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아 귀를 잘 기울여 보거라 불리할 것 없다. 그리고 이사야가 백성들에게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나를 부르셨고, 이사야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이사야 귀에다 대고 이사야야 난 다른 아이와 다르단다. 넌 내가 심부름 할 일이 있어 특별히 골라놨으니 넌 다른 아이와 다르단다. 이게 어머니 태에서 나올 때부터 하나님이 이사야를 불렀더라. 이사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사야 49장 1절을 읽는 오늘 이 밤에 우리에 태어날 때, 우리는 듣지를 못했으나 하나님은 아가 내가 너를 붙들고 특별히 좀 시킬 일이 있으니,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딱 주님만 바라보고 우리 둘이 손잡고 가자. 그렇게 약속이 되어 있어 이 밤에도 다 예배당에 오신 겁니다. 이사야인들 태어날 때 하나님이 부른다고 알아들었겠습니까? 뒤에 깨닫고 보니까 하나님은 이사야를 태어날 때부터 불렀는데, 이사야 지기가 몰라서 몰랐지.
오늘 이 밤에 주일 학생 이 밤에 멀리서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교인들, 또 이 밤에 달리 예배드리는 교회는 그 말씀으로 따로 살피고 우리는 이사야 49장 1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날 때부터 하나님은 지켜보고 불러놓았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럴 때 태어난 아이 귀에다 대고, 아가 내가 낳느라고 고생은 해도 날 통해 하나님이 너를 부른 것이라. 그리고 너 양심 속에 하나님은 늘 찾아가시니 어릴 때부터 잘 들어야 된다. 여기 엄마들 그렇게 아이들을 다 어릴 때부터 소곤소곤했지요? 해 놓으니까 2월 1일 수요일 저녁 예배에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지, 그 어린 귀에다 대고 얘기 안했다면 주먹질하겠습니까. 송아지 몰고 오듯이 끌어다 놓겠습니까. 혹시 엄마는 그런 거 필요 없다. 그러고 길렀는데 여기 아이들이 앉아 있다면 엄마 제쳐놓고 하나님이 직접 부른 겁니다. 그런 어머니들은 회개 좀 하셔야 됩니다. 아이 낳아놓고 돈이 중요한 거다. 아이 낳아놓고 건강하게 백 년을 살아라. 김정은이 같이 살아서 인류를 불행하게 하는 그런 애도 건강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요 마음 요 정성을 아이에게 쏟아 넣어야 믿는 사람입니다. 여학생들 다 듣고 계시나요. 결혼이 10년 남은 사람은 10년 전부터 그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이게 움싹부터 되는 겁니다. 돈이면 전부인데, 엄마 때문에 그냥 가정에 싸움이 날까싶어 할 수 없이 밤에도 와서 앉아있는 거지. 머리 푹 쳐 박고 그냥 시계나 보고 앉았으면 그 시계가 잘 안 갑니다. 다 해봐서 아는 일인데. 뭔 말하는지 들어보자 그러면 시간이 빨리 가고, 빨리 끝이 안 나냐 그러면 시계가 고장이 나가지고 참 그게 설교 시간 시계는 안 돌아갑니다. 그러니 이왕 와서 앉으셨다면 뭔 말인고. 그렇게 들어보시면 두루두루 좋은 게 많습니다.
저 김성찬인가요? 정솔이 뒤에 한번 쳐다봐요 누군고. 추정솔 뒤에 누구지요? 바로 뒤 좀 깨워 봐요. 성찬이 맞지요? 뭔 말인지 라고 들어보면 시간이 빨리 갑니다. “섬들아” 난 신앙이 뭔지 모르는데? 난 이 밤에 교회 가기 싫은데? 이렇게 뚝뚝 떨어져 있는 사람은 섬입니다. 근데 그 섬 속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면 또 얼마든지 우리보다 앞서 갈 수도 있는 겁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원방 백성들아. 멀면 불리한데 동방박사들이 바로 원방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끝까지 대봐야 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사야는 태어날 때 엄마 태에서부터 나올 때부터 출산할 때부터 하나님이 불렀다. 믿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다 지켜보고 그때부터 대화를 시작합니다. 멍청한 엄마의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태어난 아이가 말을 알아들을까? 1년 동안은 말해봐야 알아듣지 못할 테니까 1년 동안은 놔두고, 1년 지나가서 이제 말하기를 시작하면 아이 벙어리 됩니다. 벙어리 돼요 그게 정말로. 못 들으면 말을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난청 못 들으면 100% 벙어리 됩니다. 듣기는 들리는데 목청이 잘못된 벙어리는 좀 드뭅니다. 뭔 태어나는 아이가 듣습니까. 우리 이 대화는 못 듣는데 아이는 아이답게 머릿속에 다 녹음을 해놨다가, 그 1년 동안 들은 말 중에 제일 많이들은 말을 딱 기억했다가 입에서 먼저 끄집어 냅니다. 다 같이 그 단어가 뭔가요? 엄마던가요? 돈 벌어준 아버지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고 맨날 엄마엄마 해 놓으니까, 1년 동안 돈 벌어준 아버지 말은 안 배우고 엄마 말만 1년 동안 몇 천 번 듣고 이제 첫 마디가 엄마 그러고 앉았습니다. 그 양심에 좀 생각도 해보셔야 됩니다. 아이를 기르는 방법에 할 수 없이 엄마를 가르치나 아빠를 못 가르쳐 미안하다. 그런 마음은 있으면 충분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가 듣기 싫고 안 듣고 싶어 안 들린 거지. 태어난 아이가 한 달 두 달인데 다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딱 생기면 배속에서부터 다 듣고 앉았으니까, 일단 아이가 생기면 그때부터는 우리는 그리 살았으나 아이 때문에라도 말조심 마음 조심 행동 조심, 또 조심 또 조심 다 그리 길러서 우리교회 아이들은 다 착해서 교회에서 한마디 하면 결혼도 하고, 저 서울대를 갈 수 있는데 아이 뭐 그까짓 것 가! 순대 나와도 되는데 다 그래서 이제 이 주변에서 살고 다 그런가요? 가라 해도 뭐 공부를 못해서 갈 수가 있어야지 커닝도 안 되지. 할 수 없어 그냥 집구석에 난 좀 가출 좀 못 해보나 모두들 화딱지가 않아서 그냥 인상들이 다 우거지상이 돼 있나요? 하나님은 이사야가 태어날 때부터 귀에다 대고 늘 불렀습니다. 뭐라고 불렀습니까. 이사야야, 이사야야. 그 말만 했겠습니까? 넌 특별하다 이 시대에 물들지 말아라 난 너를 통해 너한테 이 백성에게 한 말이 있다. 하나님은 태어날 때부터 믿는 모든 우리에게 그런 역사를 하십니다. 중생이 되지 않고 중생이 10년 20년 뒤에 될 사람도 하나님은 객관적으로 일반적인 부르심은 미리 불러놓습니다. 이게 밑거름처럼 다 깔리기 때문에 때가 되면 이제 굉장히 일을 하는 겁니다.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나올 때도 어릴 때도 철없을 때도, 나는 몰랐는데 하나님은 항상 한 사람 사람 귀에다 대고, 남자는 남자에게 여자는 여자에게 훗날 목사로 쓸 사람에게는 철이 없어 엉망이라도, 그 속에 사이사이 한 마디씩 넣어서 나는 내 멋대로 엉망진창으로 사나, 하나님은 데려가고 싶은 대로 딱딱 그렇게 끌어가십니다. 하나님 끌어가는 대로 방향을 맞추면 하나님도 좋고 나도 좋고 서로가 좋은데, 하나님은 나를 동쪽으로 끌어가려고 작정을 하는데 나는 서쪽으로 남쪽으로 발버둥치고 앉았으면, 다메섹으로 가는 사도 바울을 주님이 하늘에서 부르며 그때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 놈이 발버둥을 치고 한다고 하는데 마구 뒷발질을 하면서 예수를 짓밟는다고 난리인데, 가시채를 치는 것과 같으니 네 발만 다 미지 나고 있다. 이등신 같은 것아. 바울이 안 믿을 때부터 주님은 불렀습니다. 귀를 꽉 틀어막고 예수 제자들 죽인다고 발버둥을 치고 사방천지 난리 나고 잘난 사람인데, 그 언행심사 전부가 뒷발로 가시채를 밟고 차고 자해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가시철망을 가서 맨발로 가지고 막 지근지근 밟아 봐보십시오. 그게 네가 가시채를 뒷발질 하는 거다. 라는 말씀은 해석을 그리 하면 됩니다. 또 있습니다. 유리창을 바짝 깨놓고 맨발로 마구 그냥 뛰고 굴려봐 보십시오. 뛸수록 자기만 손해 봅니다.
“섬들아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지난 토요일 날 태어났는가요. 오랜만에 교회에 태어난 아이 이름이 소원이던데 소원이 지금 조리 중이니까 순천 중앙에 병원에 있을 겁니다. 근데 실시간 예배로는 듣고 있는지 이 뚝 떨어져 있는 원방이나 섬이나, 거리적으로는 그렇지만은 하나님은 그 아이 조리하느라고 따로 관리를 하고 있다면, 주님은 그 속에 직접 들어가 아가 참 세상 별별 세상이 다 있는데 넌 내가 딸로 보냈고 여자로 자라가라고 했으니, 그 뭐 같은 딸들 뭐 같은 ‘ㄴ’들 흉내 내지 말고 넌 사라처럼 넌 하나님 앞에 귀한 그런 한나 처럼 복된 길로 걸어가거라. 태어난 아이한테 하나님은 매일 설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찾아가서 그 아이 마음에 감화 감동을 하는데. 엄마는 얘야 돈이 문제다 딱 태어났는데 지금부터 영어 테이프를 많이 들어야 그래야 경쟁력이 있는 거다. 이래가지고 뭐 클래식 음악을 트는 인간 또 영어 테이프를 트는 인간. 클래식 음악 죄 되는 거 아닙니다. 아이 정서에 좋은 거지. 영어? 2개 국어 하면 좋은 거지 왜 나쁜 겁니까. 트는 엄마가 예수 필요 없다. 설교 필요 없다. 이거면 돈 벌이에는 더 낫다. 이러면 그게 이제 우상 무당 굿하는 소리에 그냥 지글지글 버글버글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그 아이 속에 중생된 영이 있다면 그 아이 속에 장차의 심령은, 마구 태어난 걸 갖다가 이렇게 막 시끄럽게 그냥 엉망을 만들어 놓으니 내가 사람이 되겠습니까. 요즘 시내 여자애들 같은 그런 여자애가 돼버렸지. 현재 그렇게 되었으면 그리 된 겁니다.
시내 또래 여자 애들은 동쪽으로 가든 서쪽으로 가든 훌떡 벗고 발광을 하든 말든 난 내 길 걸어간다고 그랬으면, 주님이 그 귀에 어릴 때부터 필요한 말씀 하셨을 거고, 그 부모와 교회는 그 아이에게 주님이 주시는 말씀 잘 전달하느라고 애썼을 것이고, 많이 노력을 했으면 열매가 좀 더 좋아지지 안 좋아질 리가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결과가 좋으면 수고를 한 겁니다. 막 수고를 하는 척 했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헛농사 지은 겁니다. 벌 짓한 겁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을 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너야 노력한다고 했지만 엉뚱한 짓 했지? 네가 엉뚱한 짓 했으니까 그렇지. 네가 감나무 심었으니까 감열매가 맺어지지 네가 사과 묘목 심었으면 감이 열리겠냐? 얼마나 거름을 많이 했는데 그러십니까. 네가 그 나무에 거름 안하고 가시덩굴 밑에다 대고 거름 했으니까 가시가 그렇겠지. 애 생긴 거, 걸어가는 거, 커 놓은 거 딱 봐보면 이유야 막론하고 목사와 교회와 부모는 하나님 앞에 책임지는 겁니다. 잘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런 소리 치우고. 잘 가르쳤냐? 못 가르쳤냐? 아이 가르쳐도 요즘 애들 안 듣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그 귀에다 대고 말씀과 능력이 들어가도록 네가 애 터지게 말을 했냐? 이렇게 따지면 뭐 교인 잘못된 거 있으면 목사는 하나님 앞에 가서 그 꾸지람 다 들어야 됩니다.
한 번 듣고 치워 버리지. 한 번 듣고 끝납니까. 영원무궁토록 이게 천국에서 울려 나오는데. 저 느그 교인 저 산 넘어 저거 좀 봐라. 네가 기도 없이 말만 잘해 놓으니까 듣는 척 했으나 듣더냐? 거름을 한 지게지고 밭에 들어갔는데 가라지 밑에 저 탱자나무 밑에 돌감나무나무 밑에다 대고 거름을 해놨으니, 참 포도나무 참 감람나무 열매에 열매가 맺히냐? 엉뚱한데. 학교야 20년 갔지 그런데 학교 20년 가지고 만화나 봤으니 20년 만화나 봤으니 학교는 20년 다녔는데 ABC 하는 걸 보면 알지. 그 애 주는 돈 가지고 주는 밥 가지고 학교 가서 그래도 한다고 했으면, 집안의 학습력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1등은 못해도 3등은 하고 5등은 하고, 반벙어리처럼 버버버 해도 그래도 뭔 영어를 한다고 손발을 해서 통하고 그랬을 건데, 교복도 요즘은 치마를 절반씩 잘라서 어느 놈이 그렇게 여학생 치마를 절반 자르도록 해놨는지 박 뭐시기 그거죠? 초등학교 여자애들 치마를 절반 잘라도 아동의 권리다. 망할 놈, 지 딸년이나 그러지. 돈도 안 내고 남의여자 만지다가 뭐 어찌 저찌 다 된 거죠? 그거? 자본주의 하는 놈들은 돈은 내고 만집니다. 좌파 이놈들은 돈도 안 내고 만집니다. 나쁜 놈들. 그러다가 법원에 가면 다 나올까봐 그때는, 요즘은 극단적 선택이라나? 그거나 자살이나 같은 말 아닌가요? 그래가지고 꼬리를 딱 잘라서 자기편은 또 살려놓습니다. 그러면 이 뱀들이 또 이제 돌아 댕기도록. 그 놈들이나 그 밑에 또 꼬봉 노릇 하는 5천만 절반이나 제 눈엔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태어나는 하나님의 백성의 귀에다 대고. 귀라니? 마음에다대고. 마음이라니? 신앙의 양심이 귀입니다. 하나님은 불신자일 때는 일반의 원리도 중생이 되면 진리의 말씀으로, 두 눈 딱 뜨고 저게 맞냐 안 맞냐 보거라. 벗는 게 양심의 가책이 없으면 훌떡 벗고 돌아 댕길 건데 이것들이 벗을 때 안 벗을 때 다 표시를 하거든요. 지그 양심에 찔리니까 그런 겁니다. 도둑놈이 진짜 양심에 안 찔리면 경찰서 문 턱 열고 들어가서 서장 현금부터 들고 나옵니다. 내 겁니다. 이렇게. 양심에 찔리니까 기웃거리고 그런 겁니다. 네놈은 네 양심이 너를 도둑놈이라 그러지 않냐. 불신자에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온갖 양심으로 다 가르칩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 그런 게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이게 빵긋빵긋 웃어서 엄마한테 요금을 내고 젖을 얻어먹습니다. 돈을 내야 젖을 얻어먹지. 맨날 짜고 울고 죽는다고 그러면 그거 옛날에 애들이 많을 때는 갖다 던져 내버립니다. 그래서 웃음으로 부모에게 선물을 하고, 그 한 번 웃어 준 그 얼굴을 못 잊어서 부모는 실컷 먹고 가서 젖으로 쭉쭉 짜 먹이고 그런 거지.
울고 애 먹이면 갖다 내버린다는 말을 한 몇 백 년 전에 혹시 얘기로 들으십니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풍 와서 한 10년 정도 채 가지 않아서 저 합천 어디 우리 공회교회가 어려워서, 가을에 추수 감사 때 쌀이 우리 교회는 한 열 가마 이상 들어오면 한, 두 가마 세 가마 교회 차로 가서 그 교회에 몰래 갖다 드립니다. 사모님이 그래요 합천은 양반 동네입니다. 근데 이 골짜기에 아이가 딱 태어나면 여자아이가 딱 태어나면, 그 예배당 바로 앞에 골짜기 험해서 비가 오면 물이 세게 갑자기 내려갑니다. 여자애 태어나면 이 집도 내 버려버리고 저 집도 내 버려버린답니다. 그분하고 저하고는 거짓말할 사이가 아니거든요. 이게 저 어릴 때 얘기가 아닙니다. 신풍교회 근무할 때 얘깁니다. 정말 그게 지금도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그 교회에 나 많은 사람 한 두세 명만 교회를 나오는데, 여학교 아이들 초등학교 중학교 여자아이들이 한 10명이 교회를 나옵니다. 그 애들을 말하면서 그래요. 쟤도 갖다 내 버린 거 옆집에서 주워가지고 구사일생. 쟤도, 쟤도. 못 걷어 온 것은 그냥 물에 떠내려가고, 세상에. 목회를 하다 보니까 또 목회도 좀 요상하게 하다 보니까, 전국에 여기저기 별별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까 제가 남의 집 가정 비밀은 여기 계시는 분보다는 열배 백 배 많이 알 겁니다. 말하자면 몇 십 년 전 이야기입니다. 30년 전 이야기.
그때 아이들이 지금 40대입니다. 40대 여자로 태어났다고 자기 동네에 흐르는 물에다 대고 던졌더라. 어떻게 안 됐어서 하나 둘 모은 거더라. 그러니 옛날에 부모 먹고 살 것 없는데 애는 자꾸 자꾸 생겨나지, 근데 애가 좀 못났지 짜기만 짜지. 인간 딱 안 된다 싶으면 솎아내는 겁니다. 짐승도 그럽니다. 새도 다 그럽니다. 이해타산을 하는 겁니다. 아니면 다 죽으니까. 태어나는 아이가 본능적으로 해맑은 눈을 가지고 부모를 향해서 빵긋빵긋 이게 웃는 것은, 잘 좀 봐달라고 구걸하는 그런 애 터지는 밥값입니다. 밥값 내고 얻어먹는 겁니다. 근데 이게 한 10년 지나서 이제 덩치가 어느 정도 되면 부모한테 밥값은커녕 밥그릇을 집어던지고 대들고 그래요? 그게 아동 인권입니까? 나쁜 짓을 마음껏 해라 이게 아동의 권리입니까? 하나님은 믿는 사람 태어날 때 어떤 사람은 그러니 세례요한은 태어나기 전에 중생이 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10년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나이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 서른이나 넘어서 이렇게 중생이 된 사람입니다. 중생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자연과 만물의 생존의 원리로, 창조주 하나님은 알걸 양심을 흔들어가며 알립니다. 그거 못 듣는 것 같아도 다 듣습니다. 그래서 10살은 10살의 양심이 있고 두 살은 두 살의 양심이 있고, 그 세 살짜리가 한 살짜리 동생 엄마 없을 때 쥐 박아 놓고 엄마하고 눈이 딱 마주치면, 안 그런척하고 얼굴을 딱 돌리고. 그게 양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지가 나쁜 짓을 한 줄 다 압니다. 그거. 이거 다 하나님이 그 아이에게 미리미리 또박또박 하시는 말씀입니다.
1절입니다. 1절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태어날 때 나를 불렀더라? 내게 필요한 말씀 했습니다. 내 이름을 말씀했다. 이사야야 그 이름을 말하는가. 이름이란 내가 할 일 내가 맡은 인물을 이름이라 그럽니다. 창세기 2장에 아담을 만들어 놓고 짐승을 만들어 놓고 아담에게 네가 짐승들마다 이름을 붙여 보거라. 소 말 토끼 사자 이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담이 이름을 지으니까 하나님께서 다 들어보고 맞다, 맞다, 맞다. 100점. 그대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게 호랑이 말 사자라는 이름일까요? 너는 덩치가 크니까 일꾼 좀 하거라. 너는 날래니 뭐가 오는지 귀를 들고 좀 발견 하거라. 너는 입이 쫑알쫑알 그러니 아이들 데리고 막 쫑알쫑알 그렇게 아이를 맡아라. 넌 남자니 일 좀 하거라. 넌 나이가 많고 머리가 희니 이제 현장은 젊은 사람한테 맡기고 중요한 결정 중요한 방향을 지도 하거라. 종류에 따라 존재에 따라 하나님이 만들어 온 소를 보니 이건 하나님이 뭘 맡기실런고. 원숭이를 보니 이건 어디 살라고 이렇게 지어놓으셨던가. 원숭이는 나무 위에 살아라. 소 너는 풀밭에 살아라. 물고기 너는 물에 살아라. 각 존재의 위치에서 해야 될 일이 인사 업무를 배정한 걸 이름을 지었더라. 이렇게 해석하면 성경은 무한한 진리가 되고 소 말 돼지 이름을 지었답니다. 이런 말 표를 붙였답니다. 그러면 아무나 다 하는 겁니다. 성경을 읽는 방법입니다.
49장 1절 다시 봐볼까요. “섬들아” 뚝 떨어져 홀로 사는 사람들아 “원방 백성들아” 연결은 되어 있는데 너무너무 거리가 먼 백성들아. 공부한다고 해외 가버리면 섬입니다. 공부한다고 저 광주쯤 간 사람은 요즘 1시간이면 오고가니까 그 정도면 원방입니다. 뭐든지 그렇게 들으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사야 나를 이사야뿐이 아니라 믿는 사람은 태에서 나올 때부터 하나님은 부르신다. 그러면 안 된다. 시내 친구들이 아무리 한 잔 하자고 붙들어도 그런 건 딱 뿌리쳐라 간에 안 좋다. 여자애가 홀짝홀짝 맥주 한 잔 두 잔 포도주 한 잔 두 잔 하다가 온몸에 알코올이 깔려 놓으면, 태어나는 그놈은 나중에 술주정뱅이가 돼가지고 너 죽는 날까지 애 먹일 거다. 그때 회개를 하니 뭐 난리 치지 말고 지금부터 네 몸 관리나 하거라. 양심에 찔리는 게 눈에 들어오는 게 전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야 네가 사는 시대는 이스라엘의 환란이다. 멸망 때다. 너로 인하여 너와 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출발했으면 좋겠다. 이사야에게는 그런 이름을 불렀습니다. 근데 오늘 우리가 이사야와 비슷한 형편이니, 오늘도 네 가정에 부모도 어중간 형제도 어중간 사촌도 어중간, 얘야 네가 좀 이사야처럼 너 집안을 하나님 기쁘시게 좀 그렇게 너 집안에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거든지 자기 양심에 대해 짚어보면 알 겁니다.
2절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이사야의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들었다? 참새 주둥아리와 매의 주둥아리의 차이를 추이솔은 아시나요? 곡식을 쪼아 먹는 식물성 참새와 다른 새를 잡아먹는 매의 부리의 생긴 모양의 차이를 아시나요? 알아요? 초등학교 선생님. 아 지금 초등학교 선생님 해산 조리하느라고 듣지를 못하겠네. 초등학교 몇 학년쯤 나오나요? 참새 부리하고 저 매 부리하고 생긴 거 초등학교 몇 학년 쯤 나오나요? 3, 4학년 자연 쯤 나올까요? 참새는 낱알 만 주워 먹습니다. 그래서 부리가 보면 주워 먹도록 젓가락처럼 그리 돼 있습니다. 매는 낱 알 주워 먹은 참새를 잡아먹고 뜯어 먹어야 되기 때문에, 매 부리는 포크처럼 생겼습니다. 주사 바늘처럼 생겼습니다. 이건 막 찔러야 되고 찢어버려야 되니까. 이사야 입술 좀 봐볼래요 이사야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이사야 그림을 그리면서 이사야 아래 위에 입술을 갖다가 그냥 매 부리처럼 만들어서 이게 이사야다. 49장 2절에 이사야가 그리 말하지 않았냐. 이러면 너는 육체의 이스라엘을 벗어나지를 못한다. 이사야의 발언 이사야의 발표 이사의 이사야의 교훈 이사야의 예언은, 교회도 한번 나와 보시면 좋을 텐데요. 이게 참새 부리입니다. 너 교회 안 나가면 느그 집구석 그냥 지진이 나서 다 고라처럼 죽어! 이래도 교회를 나올까 말까 강퍅하게 떡 버티고 앉았는데 교회를 한번 좀 나와 주시지요.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감동이 되어 교회를 나오면 그게 날카로운 입술입니다.
이렇게 부드럽게, 부드럽게 말하니까 아이 저거 가도 되고 말아도 되는가 보다 너나 가거라. 이래가지고 교회에서 심방을 하면서 마음 상할까봐, 이 사람 그냥 동글동글 저 사람 비단 옷 주름처럼 부드럽게 마사지나 해가지고, 전부 그냥 미용실 마사지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렇게 아이 볼 닦듯이 미용실에 얼굴을 문지르듯이 십계명을 갖다가 지켜도 되지만은 지켜도 되고, 대충 알아서 하시고 슬슬 솜방망이로 가지고 이래 놓으니까 예배당마다 모두 예배당 안에서 죄 짓는데 겁이 없습니다. 중놈들도 대웅전에서는 함부로 나쁜 짓을 못합니다. 예배당은 예배당 강단이 성전이 강단이라 해놓고 별의 별 발광을 다 하고 앉았습니다. 두려운 하나님은 유배를 보내버리고 교도소 다 보내버리고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만 촐촐 추려 놓으니까, 이 사랑과 용서만 가진 하나님은 허깨비인데 이건 우상인데 이거는 가짜배긴데 사기꾼인데, 이사야는 49장 2절에 선지자의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요즘 말로 말하면 니뽄도라 그 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 일제 니뽄도.
이사야 1장부터 이사야 66장까지의 말씀을 읽어보면 날카롭습니다. 앗수르가 마구 쳐들어와 모두들 그냥 난리가 나서 다 죽어 나가는데, 아이를 깨서 머리가 난리가 나고 그냥 막 제가 난 아이를 잡아먹고 남들 몰래 혼자 먹고 싸우고, 온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데 어느 놈이 이렇게 만들었느냐 앗수르가 혹독해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우상 섬길 때는 앞에서 나팔을 불고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성전 생활은 부드럽게, 부드럽게 여유 있게 푸근하게 막 그냥 시험 될까 봐서 10년 교회 안 나와도 괜찮습니다. 시험 들까봐. 10년 교회 안 나왔으면 더 시험들 게 뭐 있습니까? 그만하면 지옥 밑바탕인데. 그냥 밑바탕 가니 죽기나 살기나 해서 한번 끌어나 내보지 딸려 오면 되고 아니면 말고. 10년 교회를 안 나온 사람한테 가가지고 좀 세게 얘기하라니까 시험 듭니다. 그래요. 10년 교회를 안 나왔으면 불신자 지옥 밑바닥에 가 있는데 거기서 시험 들면 천국으로 오겠지. 대나 개나 화풀이 하는 것은 문제지만은 열 번을 달래고 스무 번을 달래도 안 되면, 그때는 목소리에 힘을 좀 실어야 되는 겁니다.
그리 안 해놓으면 목사 집 애들이 남의 등짝을 패가지고. 저 서인이가 그랬던가요? 대학교 다니는 남자 선생님 등짝을 패면 맞아 죽어요. 그거. 아빠 없는데 가가지고. 내가 오늘 가가지고 싹싹 빌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몽둥이를 한 50개 패가지고 다리를 분질러서 두 번 다시 못하게 하겠는데, 뭔 놈의 세상이 자기 아이 손 찔끔만 해도 아동 학대했다고 부모를 잡아가 버리고 격리를 시켜버리니, 뚜드리지도 못하고 온 집안이 지금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할아버지 목사지 부모 간부지. 딱 눈치 보니까 이거는 그냥 스무 살짜리 선생님 정도는 한 개 쥐 박아도 탈이 안 나겠구나. 벌써 그거 다 읽은 겁니다. 그거 읽었단 말은 그놈은 뚜드려 맞아서 정신을 차려야 되는데, 박원순 같은 사랑의 사도가 돌고래도 제주도 고향으로 가라고 풀어놓는데, 아이를 만약에 손가락으로 건드렸다가는 잡아먹으러 올 거 아닙니까? 그런 인간들이 법을 뭐같이 만들어 가지고 제 아이를 교육으로 눈치 줘도 아동 학대했다고 잡아가고 애하고 그냥 격리를 시켜버리니, 이거 아동학대를 안하고 어떻게 아이를 사람 만들죠? 그럼 태어난 아이가 그냥 불장난하면 어떡할 겁니까? 자꾸 성냥 줄 겁니까? 그런 법 만드는 놈 집에다 대고 그런 애들을 모두 몰아놓고 불장난을 시켜버려야 되는데. 자기 집에 그러는 거는 좀 막 생난리 난리 다합니다. 그런 굿판을 했으면 신풍에 나 많은 분들은 생욕을 해버려야 될 건데 신풍 나 많은 분들이 더 밀어 주고 앉았으니, 할아버지가 목사라고 안 믿는 20대 남자의 등짝을 패요? 여덟 살짜리가? 어디 가서 맞아 죽으려고? cctv 있는 데서 쥐 박아 버리겠습니까? 안 보이는데 가가지고 주 밟아 버리지.
이건 한 번 손 움직이고 한 10배를 당해가지고 이러다가는 맞아죽겠구나. 이걸 심어야 애가 사람이 되는데. 아 뭐 이 정도는 파출소가 지켜주고 학교 아동폭행 상담사가 너 지난 주간에 혹시 좀 슬픈 일이 없었냐. 그러면 학생 정서를 폭행했으니 잡아가주마. 돈 받고 자격증 가지고 이 짓을 하고 앉았습니다. 신풍교회 목사 손주가 불신자 스무 살 남자의 등짝을 패면서 이리 힘쓸 줄 압니다. 근데 이걸 갖다 못 쥐 박아요. 이걸 제 거니까 이 정도 얘기하지 지금 장로님 손주 이 정도 얘기했다가는 집 안에서 난리 날걸요. 아마? 그 집에 절반은 우리 편이고 절반은 우리 편 아닐 건데 아마? 어느 집이든지 한 집 딱 찍어서 그 집 손주 그 집, 제일 예쁜 애 제가 한 번 이렇게 했으면 저하고 평생 원수 될걸요. 제거 걸릴 때까지 말 못하는 겁니다. 이제 제 걸 이렇게 이제 뚜드리는 겁니다. 근데 이것도 더 많이 두드리면 바늘방석이 되니까. 듣는 것도 귀찮습니다. 강단에서는 그런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럼 교회에서 그냥 아 1계명도 좀 어기시고 절에 가서 절도하시고 그냥 아니 뭐 하려고 교회 나옵니까? 그냥 안 나와도 하나님 안 계시는 데가 없는데 뭐, 두 세 사람 모이면 다 계신다 했으니 집집마다 그냥 하나님 계시는데 뭐 하려고 밤에 나올 겁니까. 이러면 참 신사적 복음이다. 거기는 그래도 동냥 좀 줘도 되겠다. 이래가지고 10만 한국의 교회가 다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차라리 말 세게 하다가 야단을 맞아도 이사야 49장 2절, 이사야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칼이라고 아무 때나 이렇게 흔들고 댕기면 되겠습니까? 칼집에 잘 넣어놓고 꼭 써야 될 때만 써야지. 이사야는 딱 쓸 때만 쓰니까 고장이 없고 저는 잘못 써가지고 탈이 좀 생기고, 어쨌든 믿는 사람의 입은 날카로운 칼이 될 때가 있습니다. 돼야 됩니다. 죄 앞에서는.
부부끼리 너도 나 몰래 한 잔 나도 나 몰래 한 잔, 너도 나 몰래 저 시내에 하나 챙기고 너도 그랬으니까 나도 그렇고 이래 둘이 슬쩍슬쩍 바꿔주다가, 나중에는 우리 한 곳에 가가지고 바꿔치기 하자. 이 말 알아들은 사람 한 3분의 1 되고 3분의 2는 아마 못 알아들을 것 같은데. 너그 여자 너그 남자 한 방에 가서 서로 바꿔가지고 뒹굴러보자 그 얘깁니다. 이게 총공회 50년 전에 경상도 울주 땅의 공회교회 안에서 집사들이 했던 일입니다. 다른 교단도 아니고 총공회 교단 70년대에. 괜히 뭣도 아닌데 큰 소리 치는 줄 아십니까? 그 울주라는 데가 양반, 양반, 보수, 보수, 시골, 말도 못하는 덴데 70년대에 그 짓을 총공회 집사가 했으니, 다른 교단은 까뒤집어 놓으면 말도 못 할걸요. 그렇다고 강단에서 맨날 그 말을 못하니 조심하십시오. 정도로 하는 겁니다. 조심하시라고 그러니까 저 목사는 뭐 그렇게 그런 걸 다 그런 줄 알고 그런 것만 봤나? 그럽니다. 그 말 하는 사람들은 더한 인생 살았을 걸? 근데 너도 나도 서로서로 이렇게 다 묻혀주니까 네 병은 내가 옮고 내 병은 네가 가져가고, 마지막에 홍수에 다 몰아넣었지. 칼을 휘두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나 알 것은 있고 조심할 것은 있고 최저의 선이라는 것은 있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자기는 자기를 아무리 혹독해도 탈나지 않습니다. 남에게 대해서는 따져보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그리고 불가피할 때는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할 수도 있는 겁니다.
1차: K.Y.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