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3.2.1 사49:9 악.성과 악습에 잡혀 종이 된 흑암, 정리하고 끊어 자유와 해방의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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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3.2.1 사49:9 악.성과 악습에 잡혀 종이 된 흑암, 정리하고 끊어 자유와 해방의 하루를

관리1 0 60 02.0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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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1_수새

제목 : 악성과 악습에 잡혀 종이 된 흑암, 정리하고 끊어 자유와 해방의 하루를

찬송 : 88장(주의 주실 화평)

본문 : 이사야 49장 9절 -

내가 잡혀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이사야 말씀 전부는 시대적으로 북쪽의 열 지파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고 남쪽 유다 지파도 위험에 빠졌을 때 이스라엘 전체의 북동 쪽 위쪽에 앗수르라는 역사에 앗시리아 라고 나옵니다. 강대국이었습니다. 이 앗수르 강대국이 북쪽 열 지파를 먼저 흔들고 삼키고 또 남쪽 유다 지파까지 밀고 들어오는 이런 참 위기에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하나님이 불러들인 하나님의 매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구원 받으라 이게 이사야서 전체의 기록입니다.

다른 나라는 세금을 거두어 군대를 만들고 군인과 무기로 된 군대로 국방을 하고 안보를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앗수르 18만 5천의 군대를 하룻밤 자고 나니까 전부 송장을 만들어 버린 이런 하나님으로 국방을 하고 안보를 해야 된다 평소에 말씀으로 살고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이 나라도 지키시고 안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활을 책임진다, 이게 이사야 전부의 말씀입니다. 이게 역사고 성경 기록이니까 당연히 역사를 살피고 성경의 기록을 살피는 것이 맞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그걸 전부로 삼으면 구약을 전부로 삼는 이스라엘 유대인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사야 이 말씀에 따라 몇 만 명이 넘는 인구가 한 5만 10만 그런다는데 수만 명이 넘는 인구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안의 한 구역을 수만 명이 살면서 여기서는 군대도 안 갑니다. 군대 안 간다고 나라에서 잡아가지도 않습니다. 왜 안 가느냐 물어보면 이사야서 봐라 우리가 율법 이대로만 살면 우리나라는 군대 필요 없다 하나님이 지금도 지켜준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도 지켜준다, 대통령과 국가와 온 나라 백성들이 율법 말씀대로 사는 척 해도 그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전쟁이 계속되는 거다  이렇게 이스라엘 나라 안에 제일 극단적인 우파 수만 명은 지금도 아이 낳는 거, 머리 깎는 거, 옷 입는 거 구약 딱 그대로 지금도 지킵니다. 안식일에는 냉장고 문도 열지 않는답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으면 전기가 껐다  켜졌다 그러는데 전기가 꺼졌다 켜지면 그게 안식일에 금지한 불 피우는 것이라고 엘리베이터도 눌리지 않는답니다. 가스레인지 뭐 안 돌리는 거 이런 거는 기본이고.

구약의 말씀을 지금도 그렇게 100% 지키며 군대를 가지 않는 거 또 아예 지금 자기 나라 정부도 인정을 안 하는 이유가 말라기 이후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나라를 세우지 말라 이게 예레미아 또 에스겔 말씀인데 예레미아 에스겔 말씀이 구약 마지막 선지자들입니다. 바벨론 밑에 가서 고생하고 그냥 살아라, 그래서 자기 나라도 인정하지 않고 지금도 몇 천 년 전 딱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수만 명 뭐 한 5만 명이 넘는다 그럽니다.

공회는 한때 10만 명을 넘겼는데 공회 원래 각오하고 옳다고 말해놓고 그대로 걸어가는 곳이 우리 빼고 한 열 명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로는 하나 더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 둘도 어려운데 저렇게 수만 명이 저러니 저런 걸 볼 때마다 말씀으로 사는 것도 맞고 그런데 말씀을 잘못 읽으면 엉뚱하게 가버리는 겁니다.

여기 9절에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바벨론에 잡혀간 사람 앗수르에 잡혀간 사람
이 나라 저 나라에 가서 붙들리는 사람들 전부 고향 이스라엘 나라로 돌아오라 그렇게만 읽어야 될 것인가 또는 안 믿는 사람은 죄와 마귀와 사망에게 붙들려 사니 교회로 출석을 하라는 말이냐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 첫 발만 디디면 인제는 세상에서 해방되고 죄에서 해방되었는가? 하루를 살며 되돌아보면 또는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내 속에 털어버리지 못한 죄 또는 그런 악습이 없는 것일까?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했는데 말 한마디 들으면 나도 모르게 먼저 반응하지 말하기는 더디 하라 했는데 왜 이렇게 내가 반응이 빠른가?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 옆을 툭 건드려 보면 말이 빨리 나오는지 반응이 생각하고 조심하는지 그 뭐 알기는 쉽습니다.

평소에 가정생활하며 한마디 들으면 입이 뭐 그냥 쫙쫙 나가버리는 사람 빠르게 나가는 사람 거침없이 나가는 사람 말 보따리를 풀어 놓고 보는 사람 습관이 되어 그러는 사람 그건 그 습관에 잡혀 있는 것이 아닐까? 10계명만 지키면 나머지 말씀은 습관적으로 어겨도 되고 그것에는 붙들리는 경우가 없겠는가? 성경 말씀 전부를 가지고 살펴볼 때 아무리 잘 믿는 사람이라도 이면에 붙들린 사람 저 면에 약한 사람 다 있기 마련입니다.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그 잡혀 있는 곳이 흑암입니다. 무엇이 흑암인가? 말씀을 모르면 흑암이고 말씀을 알아도 습관에 붙들려 자유하지 못하면 그게 진리 없고 성령의 은혜가 없는 어두운 곳이겠지요. 북한을 모두가 어둠의 나라라 그럽니다. 밤중에 인공위성에서 한반도 사진을 찍어보면 38선 밑으로는 밤에도 불이 환하고 저 북한 땅은 밤에 사진을 찍어보면 인공위성에서 새카맣습니다. 불이 없어 흑암이면 우리나라 전기 나가버리면 우리나라도 흑암의 땅인가? 인간의 자유가 없는 땅, 인간의 발언에 자유가 없는 땅, 인간의 통행의 자유가 없는 땅 인간답게 살고 인간답게 말하고 인간답게 생활하는 이것이 전부 차단되어 한 사람이 틀어쥐고 마음대로 뒤흔들어 버리니 이런 걸 세상에서도 흑암이라 그럽니다.

그러면 성경을 읽는 우리는 전깃불 없는 것만 흑암일까? 400년 애굽에 포로 되었던 때만 흑암인가 광야 40년은 모세가 앞장섰으나 늘 모세 죽이고 애굽으로 돌아간다 그랬는데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그 심보는 흑암이 아닌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오며 원래는 자유민이었습니다. 숫자는 작아도 하나님 가자는 대로 어디까지든지 따라가는, 고향 땅도 버려두고 하나님 가자면 따라갔고 또 생전에 늘 하나님이 맡긴 양떼를 위해 어디든지 움직인 것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었습니다. 사람은 몇 되지 않아도 자유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 때문에 환영받고 애굽에 갔는데 가서 눌러 앉는 바람에 400년, 자유민들이 400년 종살이를 했습니다. 한 400년 종살이 하다 보면 조상이 자유민이든 말든 400년 종살이 하면 왕의 아들도 400년 종살이 하면 노의 근성이라는 게 생겨버립니다.

직업 근성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교사는 가르치려 듭니다. 정치가는 어디 가든지 자기가 머리인 줄 압니다. 경찰은 누구든지 도둑놈이라고 잡아갈 연구만 합니다. 장사는 누구를 만나든 그냥 싹싹하게 돈 벌 연구만 합니다. 이런 걸 세월 속에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자기 속에 근본 성향이 생겨버리는데 그런 걸 근성이라 그럽니다. 400년 노예 생활을 해놨으니 자유라는 것은 내버린지 옛날이고 잊어버린지 옛날이고 써먹어본 적은 없고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뭐든지 시키면 움직이고 안 시키면 움직이질 않습니다. 400년 애굽 그 좋은 나라에 갔다가 하나님을 따라 어디까지든지 순종하는 원하고 원하는 말씀 순종은 잊어버렸고.  잊어버렸고. 억센 것이 위에서 잡아 틀면 끌려 다니는 노예근성만 남아놓으니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끌어내니까 더 센 게 끄니까 바로를 이기려고 더 센 것이 끄니까 끌려는 나왔는데 모세의 나라 모세에 걸어가는 걸음에 목이 메어 끌려가는 강아지처럼 염소처럼 내가 가야 되는 내 길인가? 모세가 앞에서 끌어대니 끌려가는 건가? 40년 끌려가는 그 짓하다가 이런 자유 없는 노예들은 가나안이라는 더 좋은 곳에 갖다 놓으면 더 나쁜 인간이 되기 때문에 요단강 건너지 못하고 전부 묻어버렸습니다. 이런 성격 이런 생각 이런 인격은 가나안 땅에 해당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땅위에 오늘 우리가 자기중심을 가지고 천국에까지 들어간다면 자기중심이 이 땅 위에서는 자기와 주변만 어렵게 만들지만 자유의 나라 하늘나라에 자기중심을 가지고 들어간다면 영계 우주 전부를 다 생지옥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죽어서 가는 천국에는 내속의 자기중심 말씀에 다른 요소는 다 정리를 해버립니다. 이 땅 위에서는 놔둡니다. 말씀 어기는 그 마음 그 생각 그 욕심 말씀에 익어지지 않은 나 중심 세상 좋아하는 그 습관 만약에 100% 정리를 했다면 굉장한 성자가 된 겁니다.

인간이 100% 정리했을 리는 없고 내 속에 돈에 대한 잘못된 애착 내 속에 오기 감정의 잘못된 습관 알고 보면 그게 나를 틀어쥐고 있는 겁니다. 그건 내속에서 나를 틀어쥐고 나는 거기에 매여 있는 겁니다. 물고기 잡을 때 물고기가 한 자라고 낚시를 두 자 세 자로 잡아내는 거 아닙니다. 낚싯바늘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물고기가 이걸 물면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삼켜버린 게 아니고 낚싯바늘이 물고기를 틀어쥐고 있는 겁니다. 우리 예배당만큼 집채만큼 이렇게 큰 고래를 잡을 때 이 고래보다 몇 배 큰 그물로 잡는 게 아니라 고래 덩치에 비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살 하나를 꽂아 놓습니다. 고래가 작살을 붙들고 마음대로 끌고 댕기는 것 같은데 작살을 당기면 덩치 큰 고래가 딸려옵니다.

내 속에 나를 틀어쥐고 있는 것은 말씀인가 아니면 내 자율인가 나 중심인가 말씀이 금지한 습관인가 뭔가 “잡혀있는 자에게 나오라” 나는 어디에 잡혀있는가? 우리끼리는 뭉치고 본다, 신앙의 손해를 봐도 그런 거 다 잘라놔야 됩니다. 우리 동네 주변에서 수근 거리면 나는 무조건 한 편 된다, 동네 수근 거리는데 잡힌 사람 뭐 이것저것 따지려면 한도 없이 많습니다.

난 소리 없이 어디에 노예가 되었는가? 동네마다 연락되는 사람들한테 이런 말해라 이런 말해라 살살살살 말 퍼주면 교인이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고 신앙도 신앙의 자유도 말씀으로 사는 앞날의 환란도 생각하지 않고 수군수군 수근수근 전부 그냥 딱 붙들려버리는 것이 낚시 바늘 무는 겁니다. 이거 다 잘라야 잡힌 자에게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야 은혜의 때에 구하고 응답받아 구원의 날에 복된 걸음을 걸어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이번 주 안에 날이 따뜻해졌는데 새벽 기도 왜 이렇게 허전하지요? 오은정 집사님 얼른 봐도 한 절반으로 보이는데 어디 저 영종이 집하나, 또 잘 나오다가 많이 빠진 분들 계십니까? 명단 좀 살펴 내주십시오. 제가 일일이 부탁 좀 하겠습니다. 김현숙 선생님 안 보이네요? 차량 운행이 안 됐는가요?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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