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3.1.24 요14:26 주님의 수고를 인하여 성령이 모든 것 가르침, 진실한 인내의 충성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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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3.1.24 요14:26 주님의 수고를 인하여 성령이 모든 것 가르침, 진실한 인내의 충성이 관건

서기 0 42 2023.01.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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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4 화새

제목 : 주님의 수고를 인하여 성령이 모든 것 가르침, 진실한 인내의 충성이 관건

찬송 : 34장(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

본문 : 요한복음 14장 26절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주님이 하나님이시나 주님이 가르친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성부 하나님의 역사 성자 예수님의 친히 오신 모든 가르침.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 사활로 돌아가시고 다시 되돌아가시고 주님이 계시지 않는 그 자리를 성령이 오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리라. 구약에도 성부 하나님이 다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해를 주시고 비를 주시고 열매를 주시며 세상의 운영을 통해 알 만큼 다 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성경 없이 살았습니다. 성경은 모세 때 적어주셨습니다. 노아도 성경 없이 믿고 갔습니다. 아벨도 그랬습니다. 성경이 없어도 자연의 양심으로 알 만한 것을 알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까지 이르렀습니다. 모세부터 성경을 주셨습니다.

또 주님은 오셔서 직접 하나님을 보여주셨고 직접 말씀하시고 모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돌아서면 모르고 돌아서면 소용없이 살아온 것이 예수님 오셨을 때에 모든 제자들이며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시고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붙들고 성령이 본격적으로 역사를 시작하셨고 보혜사 성령 주님이 베푼 은혜를 보충하고 알려주고 책임지는 성령이 오셔서 주님 십자가 부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40일 계시다가 승천하시고 주님 승천한 다음 10일쯤 뒤 채 10일은 되지 않았을 건데,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을 알려주시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깨닫고 나니까 제자들이 비로소 모든 걸 다 알았습니다. 주님 가신 뒤 오순절부터 제자들은 모든 것을 다 알았고 그 전에는 주님 손 잡고도 몰랐고 주님 부활한 창에 찔린 옆구리 또 손에 난 못 자국을 보고도 제자들 다 돌아섰습니다. 디베랴 바다로 가버렸으니.

주님이 오셔서 부활까지를 다 보여줘도 알아보는 제자는 없었으나, 정작 주님이 완전히 가신 다음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쳤고 그때는 모든 것을 가르치는 대로 다 깨닫고 다 배웠습니다. 이게 바로 주님이고 이게 바로 생명이고 이게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어릴 때 주시는 은혜 있고 또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야 깨닫고 주시는 은혜가 있고, 나이가 더 많아져야 비로소 알고 깨달아지는 단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씨 뿌려놓고 추수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나님이 길러가는 단계가 그렇지 않습니다. 씨를 뿌려놓고, 그 다음 싹이 나고 자라야 그다음 열매가 맺어지고. 열매가 맺어진 다음에라야 추수를 하는 법입니다. 아이가 자란 뒤에라야 깨닫는 것도 있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알 수 없는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아이와 청년을 지나 장년으로 이렇게 평생을 살지만은, 우리 속에 있는 신앙은 자라가는 아이처럼 아무리 말을 해봐야 못 알아듣는 그런 나이가 있습니다. 다니엘처럼 어려서부터 깨달아 일찍부터 모든 것을 알고 평생을 살아간 사람도 있고 특수하게 그렇게 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자라가는 과정을 다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라가는 것이 꼭 같은 것이 아니라 경제면은 아주 일찍 깨달아 어릴 때부터 성인처럼 되고. 인사성은 어른이 돼서도 애들만 못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인사성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 부러울 만큼 그런 사람이 있고. 그런데 그 사람이 경제면은 죽을 때야 철드는 정도로 이렇게 각각 요소별로 산별로 자라가는 것이 또 다릅니다.

자기가 맡은 집안의 식구, 자기가 맡은 교회의 식구. 하나님이 붙여주신 영육간의 식구란, 내가 책임지고 내가 지도하고 내가 도와야 되는 사람들인데. 지도하고 돕는 입장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위대한다 한들 주님만큼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주님도 이 땅 위에 오셔서
여기 요한복음 14장이면 잡혀가기 바로 전날입니다. 이 땅 위에서 가르칠 것 다 가르쳤고 보여줄 것 다 보여준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 알아들은 사람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26절에, 성령이 내가 가면 성령이 오실 거다. 아버지께서 예수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주님이 가셔야 성령이 오십니다. 성부의 역사가 있고 오신 성자의 구원의 역사가 있고. 주님은 씨 뿌리고 할 일만 다 해놓으시고, 가시고 나면 그다음 성령이 오실 건데 성령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오게 된다. 이때 예수 이름이란, 예수님의 구원 예수님의 수고 예수님이 열어놓은 길, 이게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으로 오셔서 죄 문제 해결하시고 영생으로 어디까지든지 자라갈 수 있는 자본을 마련하시고 자격을 주시고 모든 것을 해결을 해놨기 때문에, 수도관이 깔렸기 때문에 저수지의 물이 수도관을 통해서 쏟아지는 것처럼, 전선이 마지막까지 이어지고 공사가 끝났기 때문에 마지막에 이제 발전소의 전기가 집집마다 밀려가는 것처럼, 비행기나 교통비를 미리 지출을 하고 예약을 해놨기 때문에 이제 그냥 타면 되는 것처럼. 이전에는 기차 탈 때 티켓을 끊어서 티켓을 보여주고 들어갔지 않습니까? 지금 미리 돈 주고 미리 예약해 놓으면 차표 보는 사람도 없이 그냥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주님이 성령이 오셔서 역사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했고 길을 뚫었고, 모든 필요한 것을 다 마련해 두셨기 때문에 이게 바로 주님의 이름입니다. 주님의 수고.

주님의 수고 때문에 그 수고를 통해 그 수고를 붙들고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칩니다. 성령이 오시면 다 가르칠 것이니 나 할 일은 없겠는가? 주님처럼 내게 준 기회 내게 준 힘 내게 준 것으로는 노력해야 됩니다. 할 만큼 하고 하는 대로 하고 애도 터지고 붙들고 시루고 애를 먹고 눈물도 고통도 고생도 내가 할 수 있도록 기회 주신 대로는 있는 힘 다하고. 그러면서 내가 노력하는 이 노력에 붙들려 사람이 될지 내가 노력하는 이 노력은 끝까지 결실을 보지 못했는데 내가 노력하는 노력을 다 하고 나면, 그 노력을 붙들고 그 다음 성령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이 알아야 되는 것 그 사람이 깨달아야 되는 것 그 사람이 결심해야 되는 것, 그 사람이 실행해야 되는 것을 사안별로 하나씩 둘씩 길러가고 만들어 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할 것은 사람이 하고 주님이 할 것은 주님이 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게 역할 분담인데 그 역할 분담은 마치 나눠진 것 같으나 속으로 보면 하나입니다. 자기가 노력할 때 노력할 걸 하느냐? 노력 안 할 거라고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도 않았느냐? 자기가 할 걸 성실하게 한 사람과 해야 될 걸 안 한 사람과,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둘 다 안 되는 거는 마찬가지였지 않느냐? 그때나 마찬가지인데, 할 수 있는 걸 안 한 사람의 뒤를 보면 그 사람의 수고를 붙들고 일하지를 않습니다. 씨를 뿌리지 않았으니 나는 게 없다. 그 얘기입니다. 둘 다 밭에 씨 뿌린다고 나가기는 나갔는데 한 사람은 밭에 가서 씨를 뿌렸고 한 사람은 놀러 갔고. 집안에 있는 사람이 보면 이 집의 남자나 저 집의 남자나 똑같이 씨 뿌리러 나갔고. 씨 뿌린다고 바로 결실되는 건 아니고. 그런데 씨 뿌리러 가서 씨를 뿌리고 온 사람과 씨 뿌린다고 말해놓고 놀고 온 사람과, 시 뿌린 것이야 그날 확인할 수 없지만 며칠이 지나 움싹 돋는 걸 보니까 한쪽은 움이 돋고 한쪽은 안 돋았으면 이쪽은 안 뿌린 겁니다. 이게 한 달 지나고 몇 달 지나고 추수 때가 되면 누가 봐도 다 보이는 겁니다. 집에 있는 부모가 보면 똑같이 학교를 갔습니다. 밥 먹여 학교 보냈습니다. 그런데 학교 가서 칠판을 마음 먹고 쳐다본 사람과 멍하니 딴 생각하고 시간만 떼우고 온 사람과, 속에 든 것은 나중에 이 속에 배운 것을 써먹을 때 보면 학교만 갔다 왔는지 학교 가서 공부까지 담아 왔는지 그건 알 수가 있습니다.

가족이 모이는 또는 가족을 평소보다 많이 생각하게 되어 있는 이런 명절에 내가 첫째한테 할 것을 했었는가? 하나님 주시는 기회에 할 일을 했었는가? 내가 둘째에게 경제에 대하여 이면을 가르칠 걸 행동으로 보이고 가르쳤는가? 내가 셋째에게 신앙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있다고 심어야 되는데 내가 그때 심을 노력을 할 만큼 했었는가? 아니했는가? 내가 하는 대로 했다면 내 눈 앞에서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내가 주님처럼 주의 걸어가신 그 길 따라 수고한 구원의 수고 구원의 애터지는 그 노력 그 충성을 붙들고, 그 아이가 사람이 돼야 될 단계가 오면 그때는 성령이 직접 가르칩니다. 직접 가르쳐 깨닫고 나면 그때 돌아서서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니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그 다음 모든 것을 알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그때 배운 건데 그때 알았는 건데, 그때 그 말이 그 말이었구나. “주님이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은 성자 없이 주님 없이 주님 상관없이 활동하지 않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보니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 눈에 모든 것이 다 잘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후 주님처럼 걸어갔고 가르쳤고 모두 자기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깨닫고 보니, 아 이거 옛날 주님 계실 때 다 배운 건데. 그때 배웠고 그때 알았고 그때 들어뒀고 그런데 그때 잊어버렸고 그때 그게 뭔지 몰랐었던 겁니다. 엉뚱한 것 새 것 모르던 것 없는 것을 받은 것이 아니라 원래 알던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부모와 아이의 교육의 과정도 그렇습니다. 알아들어야 될 때 알아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알아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부모가 눈물로 애터짐으로 부모로서는 있는 힘을 다했다면 부모로서 있는 힘을 다했는데 열매가 생전에 보이지 않았다면, 죽고 나서라도 또는 부모가 기대한 그 나이에는 되지 않아도 그 다음에 주님이 붙들고 뒤에 결실합니다. 이런 가족을 생각하고 가족이 모이는 이런 때에, 특별히 나는 주님이 주신 내 식구들에게 그때 어떻게 했나? 지금이라도 살아있으니 지금이라도 이런 말씀 들을 때 바쁘게 보충하시면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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