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23.1.22 요14:26 충성으로 노력하나 한계를 주실 때는 성령에게 맡길 것. 주님도 맡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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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3.1.22 요14:26 충성으로 노력하나 한계를 주실 때는 성령에게 맡길 것. 주님도 맡기심

서기 0 95 2023.01.2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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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2 주전

제목 : 충성으로 노력하나 한계를 주실 때는 성령에게 맡길 것. 주님도 맡기심

찬송 : 10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7장(만 입이 내게 있으면) /83장(아버지여 나의 맘을)

본문 :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만유 주 하나님 우리 구원 위하여 사람 되어 오심으로 한없이 낮아지셨고 고난 받으셨고 가난해지셨고, 우리 위한 영원한 영생의 영광 위하여 완전자의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으셨으니, 이 사랑 생각하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의 천국과 영생과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주님처럼 말씀으로 살도록 또 주의 뜻으로 살도록 주와 동행하며 영생의 나라를 바라보도록, 두고 갈 세상 끝 자기중심 하나 스스로 꺾고 희생함으로, 나와 주변의 신앙 말씀의 생활 주님만을 바라보는 신앙의 생활에 도움 되도록, 매년 첫 주일을 성찬의 결심으로 시작하듯 기회마다 때마다 또 이렇게 가족이 모이는 연휴에, 하늘에서 받은 이 소중한 은혜가 죽음으로 이 땅 위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사망을 넘고 세상을 넘어 영원불변의 천국이 이루어지도록, 한마음 한 뜻을 가지는 날 중에 귀한 주일날 귀한 예배 시간에 말씀되도록, 이 시간도 불러주시고 오고가는 길 안전하게 지켜주시되, 군무에 있는 아들들 해외 두신 자녀들 출장 출타 여러 입장에 있는 우리 모든 교인들 곳곳마다, 주일과 예배와 주님 날 위하여 모든 것 다 희생하신 고난의 길이 십자가의 길이며 신앙의 길임을 알아, 이 한 길 걸어가는 각오와 결심이 하나 되는 저희들 되고, 때마다 기회마다 깨달아가며 복으로 쌓아가는 저희들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주일과 예배를 생각하여 모이는 곳곳마다 함께 하시되, 이 한 길 끝까지 변치 않고 걸어갈 우리 공회 모든 강단들 위에 더욱 크신 은혜로 동행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병원과 요양과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 주님께 호소하는 가정마다 마음마다, 하나님의 모든 것 다 내려 놓으시고 이 땅 위에까지 오신 십자가의 이 길과 이 고난이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생이오니, 소망 중에 다시 일어서는 교인들 되게 하시고 영육 간에 모든 것이 평안하고 좋아 방심하거나 또는 낙관할 수 있는 우리 마음 마음에, 조심과 겸손과 충성으로 함께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보혜사라는 말은 주신 은혜를 보관하고 관리한다. 라는 말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오신 주님이 아버지라 할 때는 하늘의 하나님 성부 하나님을 말합니다. 성부 하나님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여기 나라는 분은 주님입니다. 제2위 하나님 우리가 예수님으로 간단하게 부르는 주님입니다. “내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러면 26절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 절에 다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만 기억하기 좋게 따라합니다. 보혜사 성령(보혜사 성령), 성자 예수님(성자 예수님), 성부 하나님(성부 하나님). 이렇게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냥 하나님으로 한 단어 속에 넣지만은, 한 단어 속에 들어온 하나님 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항상 계신다는 거 잊지 않기 바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 하나님인데 왜 이름을 세 가지로 쓸까 정확하진 않으나 쉽게 표현을 하면, 회사원으로서 아버지가 있고 근데 그 회사가 경찰서라면 그 직업이 좀 무서운 겁니다. 경찰 아버지가 집에까지 와서 경찰 노릇 해서야 이게 부부가 되겠습니까? 아이들이 가정을 알겠습니까? 그렇다고 아내와 사이좋은 남편이 또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경찰서 가가지고도 좋은 아빠 좋은 남편처럼 그리 여수를 관리하면 여수 도적떼로 가득 찰 겁니다. 같은 하나지만 출근하면 혹독한 경찰이 되어야 우리가 편합니다. 아무리 혹독한 경찰이라도 집에 와서는 따뜻한 아버지며 아빠라야 됩니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직책을 가진 것이 그게 이중이구나. 분열이 아니라 알고 보면 이중으로 오히려 하나 되는 복입니다.

직장의 남편 집에 와서 아내에게 남편. 그리고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는 부자가 되는 또 다른 모습을 가질 때, 삼면으로 하나가 되어 좋아지는 이런 면을 알기 쉽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사람이 좋은 아버지면 좋겠다. 동시에 좋은 남편이면 좋겠다. 그리고 가정을 위해서 좋은 사회생활에 훌륭한 직책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세 가지 면이 하나로서 내게 도움이 된다면 모든 것은 좋은 겁니다. 한 분 하나님이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 이름을 가졌을 때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변치 않고 흔들림이 없는. 이게 좋아 보여도 이게 엄한 겁니다. 변치 않는 내 아들이라도 잘못될 때는 처벌합니다. 원수라도 좋을 때는 칭찬합니다. 그리고 악인과 선인이 함께 살아도 한 태양으로 함께 해를 주시고 그리고 비를 주십니다. 이렇게 전부를 변치 않게 관리한다 할 때에 하나님을 일위 성부 하나님이라 그럽니다. 근데 이런 하나님의 세계에 아들 되는 우리가 죄를 지어 지옥을 가게 되었을 때 이걸 해결하러 오신 하나님, 이면을 가르쳐서 성자 예수님이라고 그럽니다. 세상을 좋게 만드시고 영원토록 변치 않게 만들어 놓은 좋은 우리에게, 고장 난 나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 성부 성자 하나님입니다. 해결은 해 놓으셨는데 해결된 이 모든 혜택을 매일매일 내 마음속에 오셔서, 하나씩 감화와 감동으로 알려주고 우리 손에 모든 은혜를 쥐어주는 하나님. 세 번째 하나님을 성령 하나님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교회 나오는 것도 힘든데 뭔 하나님이 삼위일체라 교리적으로 어려우냐. 여기는 토시 하나라도 잘못되면 이단 되고 다른 종교가 돼 버리는 위험한 건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느냐. 차의 기능이 많으니까 좋지 않습니까?

한 학교 안에 학과가 100개가 되니까 다양한 전공 때문에 좋지 않습니까? 한 학과의 한 전공의 교과서가 하나보다는 10개가 되고 20 개가 되니까 자세해서도 좋지 않습니까? 구구단에 외울 게 구구단이면 팔십 한 개입니까? 구구단이 80 한 가지라 복잡합니까? 외워놓으면 모든 숫자가 입에서 돕니다. 그중에 하나 빼놓으면 가다가 고장 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복잡하다 생각 마시고, 아버지처럼 나를 관리하시고 변치 않게 나를 붙들어 주신 하나님 그거 참 감사하다. 내가 고장 낸 것은 직접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해결해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 빼낼 겁니까? 얼마나 좋은데 구원의 예수님. 2천 년 전에 구원의 예수님으로 사활의 대속을 베풀어도 성령으로 내 마음속에 오셔서 이아침도 우리를 감아 감동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내 마음은 어디까지 갈지를 모릅니다. 내 마음 안에까지 오셔서 날 붙들어 주시고 눈빛 하나 마음씨 하나 두 손 잡고 나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우리가 성령 하나님이라 그럽니다. 조금 복잡하게 될 때는 좀 좋은 마음으로 복되게 받으면 복의 복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 다시 봅니다. 보혜사 성부와 성자의 은혜를, 은혜를 보존하고 보관하고 붙들어 주시는 분 그 좋은 뜻입니다. 보혜사 어떤 분인데? 아버지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이름 예수님의 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통해 보내주실 성령, 그러면 보혜사 성령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 때문에 우리에게 보내주셨구나. 예수님의 십자가 아니면 성령은 오지를 않습니다. 발전소의 전기가 넘쳐나도 이 예배당 좁은데 등이 대충 봐도 한 50개나 되어 보입니다. 등 50개가 기다려도 발전소의 전기가 넘쳐나도 전선 없으면 전기는 나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성자 예수님의 해결이 아무리 날 위하여 준비가 되어도 성령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데, 성령 하나님은 절에도 가고 아무 데나 가고 죄인 속에 죄 짓는데도 도와주시고 그러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의 대속 예수님의 이름이 간 곳만 성령이 뒤에 가서 해결을 해 주십니다.

이 좋은 성령 전능의 성령이 믿는 우리의 성령이지. 이 좋은 명절 설날 아침에 한 가족이 한 밥상에 둘러앉아도,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남편에게는 성령의 은혜는 못갑니다. 전선 없는 집에는 전기가 못가는 것처럼. 왜 그렇게 차별하느냐 왜 그렇게 왕따를 시키느냐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예수님 받아버리면 성령은 저절로 들어갑니다. 전기선 하나에 요술처럼 여름이 겨울처럼 겨울이 여름처럼 이렇게 좋은 전기가 전선 하나면 되는데, 전선 잘라놓고 한전을 욕하겠습니까? 옆집을 욕하겠습니까? 왜 차별하느냐고 성내봐야 자기 마음도 좋지를 못합니다. 전선 들어간 집집마다 저렇게 좋구나. 우리 집도 전선 끌어오면 되는구나. 똑같은 하나를 복되게 받으면 복이 되고, 뭐든지 원망 뭐든지 짜증 뭐든지 남 탓 남 탓 하다보면, 6천 년 역사에 가장 좋은 이 나라를 생지옥이라고 욕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뭐 해결의 방법이 없습니다. 그분들 원하는 대로 다 해주면 그 다음 하나님도 은 30에 팔겠다고 나섭니다. 이게 에덴동산이고 이게 오신 예수님을 파는 일이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주님의 구원은 우리 위에서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내 마음 하나만 돌아서면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주님의 해결이 성령으로 내 마음속에 오셔서, 이 좋은 설날 전부 다 어디 가 있을 건데 이렇게 예배당까지 오시는 이 걸음도, 좋아서 오면 복의 복이고 눈치 때문에 할 수 없이 왔다면 그 눈치의 환경이 또 복의 복입니다. 만사 복을 복인 줄 알고 사는 것이 복입니다.

올 네 번째 주일입니다. 새해를 주실 때마다 지난해와 지난날을 잘 살았기 때문에 또 하나님이 올해를 주셨느냐. 늘 반대로 생각하자 그랬습니다. 지난날이 부족하기 때문에 또 한 해를 주셔서 올해는 작년과 지난날보다 좀 더 잘 믿는 기회를 가지라. 하나님은 이 목적으로 한 해를 주셨는데 이 한 해를 돌려서 세상으로 달리 쓰면, 이런 걸 요즘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예산전용이라 그럽니다. 내가 쓰지 않아도 용도를 바꿔버리면 횡령으로 봅니다. 예산전용 도둑입니다. 쓸 때 써야지. 나의 지난날이 이렇게 훌륭하니 하나님이 또 한 해를 더 주셨구나. 그런 걸 교만이라 그럽니다. 그 말 속에 하나님과 끊어진 모습이 보입니다. 인간끼리야 잘난 사람이 있고 앞서는 사람이 있지만은, 하나님 앞에서야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족을 찾는 것이 그게 기본입니다. 세계를 휩쓸고 다녀도 부모 앞에 와서는 그 출산 때 고생하셨겠습니다. 그 입이 예쁜 입 아닙니까? 지가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지가 세계를 휘어잡는 사람이라도 부모 앞에 와가지고는 저 태어날 때 고생하셨겠습니다. 그 한마디 그 자세가 고운 입 고운 마음입니다. 한 해를 새로 받을 때마다 한 해라는 거는 굉장히 비싼 건데 천만 원에 살 수 있습니까? 삼성전자 100조를 들이면 한 해를 살 수 있습니까? 1초도 시간은 사는 수가 없습니다. 운 좋아서 가졌습니까? 돈 주고 사셨습니까? 타고난 건강이 있어서 1년을 더 사셨습니까? 따져보고 계산하면 하나님이 악인이든 선인이든 시간이라는 생명은 은혜로 그냥 주셨습니다. 굉장히 비싼 겁니다. 이걸 돈으로 계산을 뽑아보면 참 감사하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걸 또 1년짜리를 준 것은 나의 지난날이 훌륭해 그런가. 참 부족한데, 부족한데 주시는 수가 있습니까? 세상은 좋은 사람 잘하는 사람에게 자꾸 합격을 주고 좋은 걸주고 또 망치고 또 사고를 치면 점수를 깎고 마지막에는 내쫓아버립니다.

회사 망치는 직원한테 계장 과장 자꾸 올려주면 그 회사 견뎌나겠습니까? 전투 나갈 때마다 실패하는 장군한테 자꾸 진급하면 그 나라 유지되겠습니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잘해야 올려주고 잘못하면 뭔가 있는 건데, 지난날이 부족하고 하나님 앞에 부족한 것 밖에 없는데도 한 해를 또 주는 것은 상이 아닙니다. 대가도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은 사랑이라 사랑으로 은혜로 또 기회를 주신 겁니다. 부족한데 1년 주셨으니 1년을 잘 써야 되겠구나. 그 1년 살아보나마나 도둑은 도둑질 할 거고 강도는 강도짓 할 거고 학생은 공부할 거고. 절 믿는 사람이야 1년 동안 또 절에나 다닐 건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해를 또 주심은, 하나님 앞에 지난날이 부족하니 하나님의 뜻 이 땅 위에서 천국을 마련하고 인간이 하나님을 상대하는 신앙에 요기 나게 쓰겠습니다. 그러라고 주신 겁니다. 신앙에 전력한다고 굶는 거 아닙니다. 신앙에 전문한다고 세상에 바보 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4계명 때문에 우리와 종교를 달리하는데, 그들은 세계 어느 역사의 어느 속에서도 안식을 지키다가 민족이 절단 난 그런 역사적인 사람들입니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어떤 불리함이 있어도 주일은 주일입니다. 그들은 토요일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목숨 걸고 잘라 내버렸으니 그 민족은 망하고 없어져야 되는데, 세계경제 세계학문 세계의학 세계 언론 문화 한 손에 다 잡고 있는 민족이 그들 아닙니까. 7일의 하루를 통째로 딱 잘라내서 하나님께 바쳐버리고 아예 손대지 않는 그 하나를 보고, 지금 두고 갈 세상을 이렇게 주시면서, 우리들에게는 세상이 아니라 주일은 하나님을 향한 날이라. 그래서 신앙의 기본은 주일이고 그 주일을 조금 옆으로 넓히고 부채 살을 넓히듯이 넓히면 7일이 되어 집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부족함으로 한 해를 주셨으니, 이 한 해는 작년보다 이 한 는 지난날보다 주일을 더욱 마음에 두고, 하룻밤 지나가면 없어지는 세상에서 영원불변의 천국을 마련하는 신앙에 집중을 해야 되겠다. 작년보다 더 좀 그러라고 한 해를 또 주셨습니다. 목적이 이렇게 확실하게 정해놓고 주신 것은 그 목적에 써야 주신 하나님이 위에서 도우시는 은혜가 더해집니다. 벌써 한 20년쯤 되었을까요. 컴퓨터 한 개 정품 100만 원 하던 시절 신풍까지 100만 원짜리가 깔리던 시절. 초등학생은 몰라도 중학생부터는 숙제해야 된다고 100만 원짜리 컴퓨터 노래를 불렀고, 컴퓨터가 뭔지 모르는 시골에서 100만 원 그때는 큰 건데 사서 줬는데, 그거 들고 앉아서 밤새도록 보고 앉았으니까 글 모르는 부모는 그게 공부인 줄 알았습니다. 게임만 하고 있었는데. 인생을 그 게임에 다 파묻고 있었는데. 아는 부모는 빚을 내서라도 100만 원짜리 공부에 필요하면 사 준 다음에, 공부에 필요하면 100만 원이 아니라 천만 원짜리라도 사주지. 근데 이걸 가지고 제 인생을 망치면 눈치코치 있고 사랑하는 부모는 깨 버리든지 해결해 버리지 그거 놔둘 수는 없는 겁니다. 한 해를 다시 줄 때마다 이 한해는 하나님이 공짜로 만들고 공짜로 주신 거다 은혜다. 이 한해는 주일과 예배와 신앙에 주력하라고 주신 거다 이게 흔들리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는 그 정성 그 걸음 걸음에다대고 인간이 계산할 수 없고, 자기가 생각할 수 없는 위에서 더해지는 은혜가 안팎에서 늘 차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새해를 만날 때마다 우리가 늘 마음속에 기본적으로 가져야 되기 때문에 이 생각이 바로 성찬입니다. 신앙의 양식. 이 일을 위하여 주님 오셔서 몸 버려 피 흘려 날 구원하셨으니, 수고한 그 몸을 떡으로 다 쏟은 그 피를 잔으로 마음속에 생각하고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날 위하여 이 희생하셨으니, 나도 어떤 고난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 길은 걸어가겠다. 이게 새해마다 결심을 하라고 성찬을 가집니다. 한 해의 첫 주일이 그렇습니다.

그 다음 지난 두 번째 주일은 각오 결심은 했는데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어려우나, 한 해의 첫 시간뿐이 아니라 주님이 한 해를 그렇게 해주셨으니 그렇게 늘 매주 매 주 걸어가야 되겠다. 이게 흔들리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 안에 사는 것이 되어 지고, 그리고 주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사는 게 되어져 학교를 가도 가정생활을 해도, 보이지 않게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살게 되어 지면, 겉은 나고 속은 주님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겉은 인간난데 내 마음 내 중심이 주님으로 바뀌면 손해를 보겠는가. 말할 수 없는 그런 기적과 복이 뒤를 따라갑니다. 이걸 계산해보고 느껴보고 적어보고 역사에서 살펴보고 점검을 철저하게 해본 사람마다, 이 땅 위의 소망은 주님 하나밖에 없구나. 비결은 주님뿐이구나 라고 되어 질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을 가족으로 주변에서 접하고 살다 보면 뭔가 있으니 저러는구나 라고 이렇게, 이렇게 옆에서 베어 들어가고 함께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복음 운동이라고 그러고 이걸 위해서 주님이 교회를 세우고 주일과 예배를 주신 겁니다.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주일은 너만 한 해를 받아 주의 은혜 가운데 신앙생활 잘하고 그러니 좋으냐? 네가 받아 좋은 것은 너 주변에 가족 너 주변에 하나님이 네게 맡겨 놓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장점이 많은데 장점 중에 하나 단점이 한 가정에 가진 비법과 비결이 있으면, 자녀에게도 죽을 때 알려주지 생전에는 알려주지를 않습니다. 뭐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한의사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 어려운 시절에 비법을 가지면 자기 아들들한테는 좀 알려주면 좋겠건만, 죽는 날까지 버티다가 마지막 죽기 직전에 딱 주는데, 주는데 사고로 이어 미리 가버리면 비법이 대가 끊겨버립니다. 모든 면에 일본이 우리보다 불리한데 저 인간들은 무조건 대대손손 천년도 그대로 한 집안의 비법이 내려갑니다. 아무리 등신이라도 3대 5대 백년 천년이 내려가면 그건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보다 아무리 우수해도 전해지지 않고 끊어져 버리면 그러면 없어지는 겁니다. 이게 신앙의 세계까지도 그리 되어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도 그렇고 우리는 우리 단점만 고치면 무조건 좋아지는 겁니다.

이런 발언은 친일 발언 아닙니다. 하도 멀리서 오해를 해 싸서 한번 새기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데, 모든 게 불리하고 못난 것들이 우리보다 앞섰으면 욕을 할 것이 아니라, 어디가 고장이 나서 이런 가 살펴서 내 고장 내가 고쳐버리면 뛰어나버립니다. 그들보다 뛰어나면 그 사람들은 알아서 또 기는 사람들입니다. 다 좋은 방법이 있고 욕만 하다가 화병에 복장 터져 죽어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습니다. 새해를 주심은 하나님이 이 엄청난 것을 공짜로 은혜로 주신 거다 목적이 붙어 있습니다. 신앙생활 잘하라고 주는 거다. 다른 목적 일절 없습니다. 이걸 기억하고 한주 두주 이어가다 보면 어느 틈에 나는 주님 안에 들어가 버렸고, 주의 말씀은 내 속에 들어오는 순간 겉은 난데 내 속의 사상과 내 속의 실력과 내 속에 생애가 주님이 주도하는 것이 되어 집니다. 안에는 주님 밖에는 나. 이런 기가 막힌 복된 세계를 깨닫고 알고 나면 혼자 먹고 말아야 되겠습니까? 밥상 너머 남편에게 아내에게 가족에게 부모에게 조카에게 이 좋은 명절에 모였을 때 이거 아느냐. 뭔데? 이번에 이 주식 사서 500만 원짜리 주식 10억 했다. 그 비법 풀어놓으면 이게 문제가 생겨서 가족끼리도 입 닫는 거 다 아시지요? 진짜배기 비법은. 그건 그럴지라도 이번에 입시 문제 하나 빼서 큰소리 쳤다가 대거 구속된 사건 아십니까? 한 20년 전에 연세대 편입시험에 부총장한테 아마 1억 1억 2억 주고 합격했다가 공개가 돼 버렸습니다. 누가 공개했겠습니까? 돈 주고 받은 부모끼리 공개 안합니다. 합격한 애 이것이 둘도 없는 친구한테 너만 알아라 그리고 공개 해 버린 겁니다.

설날 밥상에 앉아 나눠도 좋은 것은 나누겠지. 가족끼리도 나눠서 곤란한 것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 뭐 요즘은 그런 일이 없어 예를 들어도 오해는 안 하시겠죠. 옛날 설날 노련한 부모가 큰 애만 불러다가 저 앞에 놓은 저거 네 거다. 한마디 던져놔야 이게 효도하지. 또 장남 나가고 둘째 따로 불러가지고 이거 너 거다. 이렇게 2중 3중 해가지고 나중에 장례 치를 때 보니까 대판 싸워서, 멀리 갈 것 없이 신풍 안에서도 가족끼리 영 지금까지 못 보는 집안들 하나 둘이 아니지요. 부모는 죽는 날까지 효도 받으려고 2중 3중 두 다리를 걸쳤는데 자자손손 원수 되어 놓으면, 죽은 귀신이 불편해서 제대로 누워 있지도 못할 겁니다. 깨닫고 보면 모든 것은 간단한데. 살아보니 알고 보니 아무리 연구를 해봐도 주님 밖에 없다. 이걸 꺼내서 손주에게 이걸 꺼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이거 외에는 비법이 없고 해결이 없더라. 이런 거 하나를 딱 쥐어줄 때 듣는 가족들끼리 딱 봐보면, 설날 가족들끼리 모였다고 오래 믿던 할머니가 그냥 덕담으로 하는구나. 이거 다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를 안 해도 우리 할아버지는 뭐 그 속에 구구절절이 맺힌 게 주님밖에 없는데, 이걸 두 번 세 번 말하면 반발심으로 역효과 날까 싶어서 말 안 하지. 우리 부모는 예수 외에는 없더라. 가정마다 이 가정은 뭔가 저 가정은 뭔가 저 사람은 뭔가 다 있습니다. 하나씩. 성령은 주님 가신 데만 가지 주님 가지 않은 데는 성령은 가지 않습니다. 부부끼리라도 어떤 동지라도 어떤 민족이라도 제 부모라도 안 믿으면 지옥이지 천국은 못갑니다. 내가 내 마음도 주님의 대속 잊어버리고 주님의 고난 감사를 잊어버리면, 그 순간 성령이 일단 밖으로 빠져버립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날 구원하러 오셨으니 참 감사하다. 이때 성령이 물밀듯이 내속에 들어오시는데 이 성령이 내속에 물밀듯이 들어오면, 성경 가르치는 연경 성경 공부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이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나를 붙드는 순간 저런 등신 같은 것이 저렇게 지혜로웠을까. 속에 저런 악한 것이 드는 것이 저렇게 고운 마음을 가졌을까. 인격도 세상 살아가는 모든 영육의 복도 넘치게 담아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이번 네 번째 주일은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예수의 이름 예수의 공로 예수님의 수고 때문에 들어오게 되고 보내져서, 내 속에 오는 성령. 성령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칠 것이다. 평소는 주님이 부족한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성경을 주시고 읽으면 깨닫게 하시고 이렇게 알려주십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막히는 부분. 그렇게 막힐 때는 더 알려 하지 마시고 저로서는 이만큼입니다. 그 다음에는 모순이고 그다음에는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게 헝클어져 안 되겠습니다. 할 때 깨달을 수 있는 데까지는 깨달으시고 막힐 때는 거기에서 중단을 하셔야 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신천지처럼 됩니다. 통일교처럼도 됩니다. 별의 별 이단 미신이 하나님이 알려줄 때는 깨닫고 나가다가, 하나님께서 알려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되는데, 학구력 학습력 경쟁력으로 온 김에 힘을 가지고 깨닫지 못하는 부분을 억지로 밀고 나가버리면 교통사고 납니다. 아무리 급해도 빨간 불은 일단 섰다가 가야 되는데, 아무리 급하다고 빨간 불에 직진하면 응급실에 가기 전에 그 자리에서 초상 칩니다. 공부는 못했고 시험은 쳐야 되고 급하긴 하지만은 옆에 걸 보고 베끼면 퇴학 당 합니다 시험장에서 쫓겨납니다. 그마저 50점도 못 맞습니다. 그런 것은 피해가는 수가 있어도 하나님이 마음속에 알려주는 것을 막고 앉았으면 하나님과 싸우는 게 되고, 하나님이 알려준다고 깨닫게 된 것은 거기까지만 가다가 도무지 더 이상 모르겠다 싶을 때는 거기에서 중단하고 더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이걸 주님께 맡긴다고 의탁이라 그럽니다. 중요한 단어니까 한번 기억해 보십시다. 충성과 의탁(충성과 의탁). 충성이란 말은 하나님이 주신 것은 다하는 겁니다.

태어나도 엄마 저 젖은 빱니다. 본능의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태어난 아이가 수고하는 부모 때문에 한 푼이라도 벌어야 되겠다. 하고 젖 먹는 아이가 돈 벌러 나가면 죽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태어나도 숨 쉬는 것과 젖 빠는 것은 저절로 합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1년 3년이 되면 이게 걸어 다닙니다. 1년 3년이 되어 걸어 다닐 수 있는데 업혀 다니려고 울면, 그렇다고 계속 업어주면 안짱다리 되거나 아니면 앉은뱅이 됩니다. 때를 따라 단계별로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면 있는 힘을 다해야 됩니다. 그걸 충성이라 그럽니다. 그런데 실력 있는 사람들이 주로 의욕이 있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 남들보다 잘하고 해보니까 되니까 욕구가 있고 실력이 따라가다 보면, 가다가 막히는데 막히는 걸 억지로 풀어 한 걸음 더 나가버립니다. 그러면 신천지처럼 새로운 세상이 좋게 벌어집니다. 작년 한 해만 신천지에서 맹렬 핵심만 10만 명을 만들었더라고요. 10만 명 대단하죠. 10만 명. 우리 교회보다 만 배는 더 뛰어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되는데, 성경을 읽고 맞춰보면 제까짓 게 안 깨달아져? 수학은 밀어붙이고 반복하다 보면 터지는 수가 있고, 영어는 입에 오르지 않으면 백 번 천 번을 발음하다 보면 발음이 비슷해지고 문장이 외워지며 입이 터지는 수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이 인도하여 깨달아 가는 길은, 알려주는 것은 배워야 되고 깨달아야 되고 기억해야 되고 노력해야 되고, 하나님이 더 이상 알려주지 않을 때는 기다려야 됩니다. 언제까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라. 요한복음 14장은 주님이 잡혀 죽기전날에 기록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장. 주님이 하나님인데 사람 되어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셨는데도 못 알아봤습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도록 주님이 오셨는데 보고도 전부 부정했습니다. 요한이 지목을 하고 저분이 어린 양이라고 말을 하는데도 전부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2장에 가나 혼인 잔치에 기적을 베풀어 하나님의 솜씨를 보여줬는데도 전부 부정입니다. 그리고 주님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해 버렸습니다. 수만 명을 먹인 적도 있었고 물위를 걸은 적도 있었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했고, 설교도 했고 가르치기도 했고 직접 하늘의 하나님이 내 아들이라 2위 성자 예수님이라고 직접 공고를 했는데도, 12제자 중에 하나는 돈 받고 주님을 팔았고 열 하나는 다 도망갔습니다. 평소에는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까 주님을 믿고 끝까지 따라간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르치는 주님이 이걸 잘 아십니다. 주님이 오셔서 가르칠 걸 다 가르쳤는데도 다 믿고 따르는 사람이 없던 마지막 순간에 기록한 것이 26절입니다.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셔서 보이는 하나님이 모든 걸 가르치고 모든 솜씨를 다 보였는데, 겉으로 믿는 척해도 돌아서면 믿는 사람이 없을 때 26절 보혜사 성령,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가 구원의 주님의 수고를 이어 보낼 성령, 성령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뒤에 나타납니다. 오십니다. 성부 하나님의 첫 단계가 있었고 성자 예수님의 해결이 있었고, 성자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면 그다음 세 번째 성령 하나님이 오시게 되는데, 성령 그가 오시면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라. 오신 주님을 보고도 헷갈렸습니다. 혼돈스러웠습니다. 뭐가 뭔지 몰랐습니다.

세 살짜리 아이는 출근하는 부모가 왜 자기를 떼놓고 매일 이산가족을 하는지를 이해하겠습니까? 못하겠습니까? 한 살짜리 두 살짜리 세 살짜리는 부모가 매일매일 이산가족으로 떨어지는데 이해를 못 할 겁니다. 그래서 출근할 때마다 울고 난리가 납니다. 아이가 맞고 부모가 틀렸습니까? 비정입니까? 아동학대고 아동 유기입니까? 아이가 나이가 세 살이라 모르는 겁니까. 그 부모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런 겁니다. 크면 안다 근데 크면 안다. 라는 말도 유치원 정도 되어야 그 문법이라도 알아듣지, 한 살짜리 세 살짜리는 그 말도 무슨 말인지 모르니 그냥 떼놓고 도망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보이는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알려주시고 모든 걸 다 베풀었는데, 근데 12제자부터 아무도 알고 아무도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간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어려서 그런 겁니다. 어려서. 우리 교회는 이렇게 저렇게 좀 모가 났을까 묘해서 멀리서 해외에서까지 여러 가지 상담이 좀 많은 데입니다. 흔히들 마지막에 나오는 그 상담이 그런 겁니다. 근데 혹시 하나님 보셨냐고. 일반 교인 교회 대충 다니는 사람들 대화가 아닙니다. 신학생 목회 많이 해보신 분들. 평생에 외쳤고 가르쳤고 선생을 했으나 정작 자기가 막히는 거 어떡합니까. 소문 안 날데 가서 물어봐야지. 하나님 보셨습니까? 천국 가 보셨습니까? 늘 신앙의 기본적인 물음입니다. 첫 신앙 때도 이거는 막히는 거고 한참 잘 믿다가 되돌아보면 근데 이거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니야? 보고 믿는 자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보다 복이 없다. 도마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 말씀 할 것 없이 뭐 그럴 때마다 간단하게 그렇게 대답합니다. 혹시 마음 보셨습니까? 마음이 움직이면 마음을 단면을 쪼개면 정신인데 마음 보셨습니까? 정신 보셨습니까? 마음을 못 봐서 마음이 없으면 정신 빠진 사람 정신없는 사람 미쳤지 않습니까? 얼굴은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하는 거고 마음은 마음으로 보지 마음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닙니다. 인간 속에 들어 있는 마음조차 눈으로 못 보는데, 몸과 마음을 없는 가운데서 만드신 하나님을 눈으로 보겠다고 확인한다는 것, 이렇게 간단하게 따져보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근데 왜 모릅니까. 어리면 모를 수 있는 겁니다. 정답을 써서 보여줘도 공부 안 한 녀석들은 커닝도 못합니다. 공부해본 사람들 그런 거 아십니까? 공부를 어느 정도 해보고 애매한데 커닝하는 애들은 슬쩍 봐도 바로 쫙 풀려버립니다. 공부를 안 한 것들은 선생님 없을 때 이렇게 답안지를 보여줘도 베껴 적지도 못합니다. 초등학교야 1 2 3번 중에 찍는 거니까 되겠지. 글로 적어야 되는 답안은 보여줘도 공부 안 한 것들은 커닝도 못합니다. 어려서 모르는 게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커봐야 안다. 없으니까 거짓말로 그런 것도 있습니다. 일찍 이혼했고 일찍 돌아가셨는데 아이가 아빠를 찾을 때, 옛날에는 외국에 돈 벌러 갔다 이걸로 챙겼습니다. 실제로는 돌아가셨는데 이혼해서 없는데 그건 거짓말입니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그 거짓말을 알아듣게 돼 있습니다. 그런 거 말고 왜 한 살짜리 세 살짜리를 떼놓고 매일 이산가족을 하냐. 이 부모는 비정한 엄마냐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겁니다. 커봐야 안다 그런 것도 있는 겁니다.

주님이 오셔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셨으니 그 불평 그 고생은 이루 말도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수고만 주님의 고난이라고, 천주교 성당에는 벽화에다 대고 그리고 모두들 미술로 그림으로,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가 흐르는데 찢기는 그 고통만 그려대는데 그건 천주교식입니다. 기독교는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는 그런 차이입니다. 말하자면 천주교는 어린이 유치원 동산에 아기자기한 것이 많은 겁니다. 인형도 많고 그림도 많고 놀 게 얼마나 많은지 눈으로 보면 그냥 딱 좋습니다. 근데 대학교 전공과목을 놀이동산으로 가르치려면, 미술학과나 몰라 일반적으로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주님이 피 흘려 십자가에 죽는 그 순간만 모두 고난인 줄 아는데, 무한의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는 그 순간 무한이 유한이 되는 순간 이미 고난은 다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고문과 순교는 공산혁명을 위하여 끝까지 동지를 불지 않고 찢겨 죽은 사람 많습니다. 유교의 공자의 말 한마디 지키느라고 단종이던가요? 단종 하나 왕 자리 복위시키려고 사육신들 인두로 지져서 불고기 냄새가 나도 끝까지 버텼습니다. 유교의 순교자 불교의 순교자 공산혁명의 순교자, 일본의 천왕을 위하여 수백만 명 다 줄줄이 죽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처형이 쉽단 말이 아니라, 무한의 하나님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오는 순간 이미 무한의 하나님의 고난은 전부 다입니다. 그다음에 40일 금식을 했니 뭐 여러 가지 이런저런 고난을 당했니, 그건 인간도 하면 할 수 있는 고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님의 고난이 부활입니다. 무한의 하나님이 다시 유한의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게 성령의 감화와 감동입니다.

천지를 없는 가운데서 만드신 하나님 우리의 공기 우리가 지구에 붙어사는데, 지구가 총알보다 더 빨리 돈다고 그러지요? 지구가 돌며 태양을 돌아가는 것이 총알보다 더 빠르다 그러지요. 거기에 서 있는 우리가 왜 어지럽지 않습니까. 왜 우주로 날아가지 않습니까. 만유인력이라는 물리의 법칙 하나가 딱 붙들어주니까 이렇게 편안하게 있는 겁니다. 모든 존재의 모든 존재의 운영 모든 존재의 상태 전부를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주셨는데, 이걸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감사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지옥 갈 우리를 주님이 오셔서 구원해 주신 이 구원 두 가지 단계, 이런 무한한 사랑 무한한 은혜를 받았는데 문제는 내가 느끼지를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느끼질 못하니 자녀들이 부모와 충돌을 하고 부모와 노선 사상 이런 저런 문제로 가정마다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은혜 주님의 이 고난을 생각하면 아 이까짓 일생 하나 주님 원하는 대로 받쳐 살겠습니다. 말이라도 그리 할 건데. 아이 하나 태어날 때 엄마의 고생 그 아이 하나에 부부 둘의 모든 인생과 소원을 다 쏟아 부은 걸 생각하면, 나는 A길로 가고 싶으나 부모가 B길을 원하면 아니 뭐 애 하나 내버리고, 어찌 될지도 모르니 부모를 따라 B길을 따라보겠습니다. 말이라도 그리할 건데. 그 출생 그 고난에 십분의 일 백분의 일도 계산을 안 해보고 마음속에 못 느껴보니까,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왜 부모가 뭐 자기인생이냐 이럽니다. 남의 인생이면 왜 얻어 먹었습니까 거지입니까? 도둑놈입니까? 식당가서 밥 한 끼 먹으면 밥값을 만 원 내놓지 그냥 나오면 경찰이 잡아갈 건데? 수십 년 공짜로 밥 얻어먹었으면 밥값은 해야지. 설날이라고 드리는 말씀 아닙니다. 그냥 신풍교회는 1년 12달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얘기입니다. 신풍 시골까지 평생을 밥 얻어먹고 부모한테 눈을 부릅뜨고 대들어 싸서. 죽어라 해도 죽는 흉내라도 말하자면 낼 것 같은데. 그래도 더 살아보고 더 좋은 길일 것 같아서 아이디어를 내보면, 그런 아이디어도 있을 것 같은데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이라도 그래야 그게 합리적이지. 부모 말 한마디 하면 티내고 그냥 맞서기부터 한다? 어릴 때부터 교육 잘못돼 그런 겁니다. 부모 탓입니다. 자녀 탓이 아니라.

하늘에 하나님 다 만들어 주셨지 공짜. 한 해 공짜로 주셨지. 주님 해결하여 이 한 해가 나에게 복만 되도록 되었지. 성부 성자의 은혜가 무한한데 우리가 느끼질 못해 주님이 오셨는데도 열두 제자부터, 주님은 갖다 맡기면 은 30쯤 간다더라. 주님이 돈으로 보였지 주님이 주님으로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니 일은 생기는 겁니다. 이걸 비판을 하자면 맹렬하게 비판을 할 수 있지만은 이해를 하자면 어려워서 그런 겁니다. 이건 언제 해결되느냐 세 번째 성령 하나님이 마음속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주님 가신 뒤 10일 만에 성령이 오셔서 너희들이 손잡고 다닌 주님이 이런 분이다. 그 주님을 보낸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가 이런 분이다.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한마디 깨닫게 해주니 그날부터 제자들이 철이 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설날 구정 명절 가족이 모일 때 요즘은 뭐 다 좋은 일 밖에 없겠지요. 만은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가족이 모이면 서로 불편한 진실이라 말은 못해도 한두 가지씩 맺힌 것이 있겠지요. 이럴 때 이걸 한 마디 말하고 두 마디 말하고 이게 밖으로 나오면 대개는 전쟁이 되고 좋지를 못합니다. 그냥 두고 볼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고 이럴 때 믿는 사람은 성령이 깨닫게 해 주옵소서. 이겁니다. 평소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는 하시고 그리고 인간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더 이상 하지 않도록 나이나 형편이나 모든 것이 되어졌을 때, 그때 한마디 더하면 잔소리라 그건 나쁜 겁니다. 그건 전쟁입니다. 어린 사람하고 싸워서 이기는 아버지 같고 나많은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놔두겠습니까. 그럴 때 주님 앞에 애 터지는 마음으로 기도하시면 그리고 성령이 들어가셔서 그 마음을 움직이면 해결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오신 주님은 하나님인데 33년 가르치고도 한 사람도 가르치지를 못했습니다. 주님 가신 뒤에 성령이 오셔서 전부 다 만들어 버렸습니다.

(기도)
성부 하나님의 목적과 창조와 섭리와 영원무궁 영생의 이 영광에 이복이 무안함으로 너무 크므로, 우리는 상상도 못하여 감사도 못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 영원한 지옥인데 오셔서 십자가 사활의 대속으로 해결한 구원의 이사랑.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나 적고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은 무한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시작의 사랑 성자 예수님의 해결의 사랑, 두 사람이 너무 크고 무안하나 우리가 부족하여 깨닫지 못하는 이런 연약함을 아시고, 성령 하나님 우리 속에 오셔서 성부 하나님의 그 큰 은혜와 성자 예수님의 구원의 사랑을, 믿는 세월 우리가 노력하는 행동을 보며 알리시고 길러 가시며 한 해 한 해 또 올해도 다시 새로운 기회를 주시며, 내가 아니라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속에 연구하고 생각하다가, 우리가 알 수 없는 대목마다 성령이 알려주시며 인도하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 내 마음속에 오셔서 은밀하게 양심을 통해 늘 준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시오니, 귀한 한 해를 받은 우리 모든 신풍 식구들 각자 주신 전국 어느 곳에서라도, 어떻게 살지라도 늘 마음속에 주님 베푸신 은혜 성령의 감화와 감동의 귀를 기울여, 알려줄 때마다 감사하고 인도할 때마다 따라가며 모를 때마다 주님께 여쭈며 기다리는, 이런 가정 이런 교회 이런 저희들이 되어 주시는 은혜의 복이 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과 앞날은 주의 인도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 의지하고 맡김으로, 담대함과 소망 속에 올해가 복이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광고)
잠깐 광고 하나 합니다. 나가지 마시고 저 손동길 목사님 밖에 나가셔서 설날이라서 1년에 한 번밖에 안 오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저 현관에서 인사 한번 해주십시오. 우리 저 손동길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자녀 중에 남아 있는 아들 한 분입니다. 손양원 목사님 돌아가시던 그날 유복자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교회 교인인데 모두들 모르고 다니시지요? 김현숙 선생님 같이 나란히 인사 좀 하십시오. 신풍에 교회가 들어온 게 지금 100년째입니다. 100년째. 일제 때와 6.25 때 흔들렸다가 6.25 직후 손양원 목사님 사모님이, 신풍교회를 저 공항 쪽에 새로 시작한 게 작년이 만 70년입니다. 70년. 우리는 우리교회 소개를 안 하다 보니까 제가 신풍 오면서 신풍 교회가 우리 공회 있는 줄도 모르고 왔습니다. 여기 올 때. 제가 공해 교단 본부에 있었는데 신풍교회를 손양원 목사님 사모님이 개척하는 것 저 모르고 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광고를 안 하다 보니까 이 정도를 모르면 이거 무심한 거고 좋지 않은 겁니다. 다른 데는 광고를 해서 탈 우리는 광고를 안 해서 탈. 나가시면서 평소 보시는 분들은 그냥 가시고 설이라서 한 번 오신 분들은 꼭 손동길 목사님 얼굴 잘 보고. 손양원 목사님 사모님이 도평 집회 거창 도평 8월 집회를 오셨었습니다. 근데 백 목사님도 소개 안 하지 광고를 안 하지 그러니까 저도 집회를 같이 참석하고도, 손양원 목사님이 사모님이 집회 온 줄은 전 모르고 그냥 사모님은 가신 겁니다. 그때 누가 좀 말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 겁니까. 이번 한 번밖에 없습니다. 자 나가십시다.

얼굴 잘 기억해 놓으십시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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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23.1.22주전      요14:26          충성과 의탁          예장총공 신풍교회


□ 1년 요절
① 성찬: 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다
② 동행: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
③ 계명: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

■ 충성
1. 각오 -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으니                          요15:12
 ① 범위 : 나도, 주신 (한계) 안에서      자기 십자가, 간섭 침해 금지
 ② 전력 : 나도, 나의 힘을 (다)하여      자기 분량, 과욕 허비 금지
 ③ 목적 : 다른 사람의 (신앙) 위해        목적 지향, 분산 전용 금지

2. 진행 - 주님으로 충성할 것                              고전11:24 
 ① 기억 : 주님 (고난)을 생각하며                인정 감성 자기 배제 
 ② 순종 : 주님 (인도)를 따라가며                주도 파생 포기 배제
 ③ 동행 : 주님 (수종)으로 충성함                주관 개성 자판 배제

3. 소망 – 중단하고 맡길 것                                  요14:26
 ① 기한 : 주신 (기회)를 살필 것              예정의 경륜 전4:1 엡1:9
 ② 의탁 : 의지하고 (맡)길 것                맡기지 못하면 惡 전7:16
 ③ 기도 : (소망)하고 지켜 볼 것              참 믿음의 세계 롬11:36

■ 의탁
1. 우리를 위해                      학생들의 이성 > 뷔페식 > 먼저 먹으면
 ① 맡길 때, 마14:22                나머지는 포기, 자기 결정. 외화내빈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② 직접 할 때, 마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 직접하실 때는
 ① 소망으로 기도, 행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② 지켜보며 배울 것,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3.주님도 성령에게 맡김
 ① 오셔서 지사충성했고, 요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② 나머지는 성령이 역사,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a. 전7: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b.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라
c.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d. 눅22:38,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e. 히5:13,14 대저 젖을 먹는자 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f.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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