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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0 금밤
제목 : 주님 몰라본 요1-9장, 주님을 바로 아는 자에게 구원의 수고는 복 중 복
찬송 : 145장(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본문 : 요한복음 15장 12절-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먹고 마시며 살아봐야 하룻밤 나그네 흙이 되며 죽는 것인데, 날 구원하기 위해 오신 주님의 고난을 신앙의 양식으로 삼아, 주님께서 주신 이 신앙으로 어둠 속에 진리를 찾고 인간 속에 하나님을 찾으며, 세상 속에서 천국을 준비할 수 있는 신앙의 생명 이 생명이 자라가는 우리가 되도록 이 밤도 5일 예배로 불러주신 주님. 세상 연휴 명절에 수천 년 묻어둔 악습과 세상의 모든 것이 아직도 곳곳에서 우리를 유혹할 터이나, 영육에 넘치는 좋은 세상을 주셨으니 밝히 보고 복된 깨달음으로 거침없이 주일과 예배와 말씀 속에 기도로 동행하며, 주님은 날 위해 고난당하신 그 고난을 양식 삼아 주변에 맡겨주신 식구의 신앙을 위해, 찾아갈 자리 자기를 꺾으며 살펴볼 만사 주의 제자 되고 주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이 밤도 걸어가는 저희들 되도록, 요한복음의 모든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굳게 새기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이 밤이 되게 해주옵소서. 연휴로 오고 가는 곳곳마다 왕복의 교통과 분주한 마음 두루 살펴, 명절과 휴가와 가족과 여러 변하는 현실 때문에 주님 잊어버리고 말씀 생활 떠나는 일 없도록, 남녀노소 우리 모든 교인들 깨어 연휴의 기간도 주일을 중간에 두셨으니, 주일이 먼저며 주일 앞뒤로 지혜롭게 은혜롭게 복되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들 되게 해주옵소서. 곳곳에 두신 우리 공회 강단들 위해 특별하신 은혜로 동행하시고 추신 환경 인하여 해외에서 또는 군무에서, 또는 출장과 가족 단위로 이한길을 마음 모으는 곳곳마다 함께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새해 첫 말씀이 요한복음 6장 55절 “내 몸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먹어야 사는 우리들에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먹어봐야 죽는다. 주님 날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신 그 고난을 기억하는 것이 신앙의 양식이 되어, 주의 은혜 받아 주님처럼 감사하고 기쁨이 넘치다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은 모든 것을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으로 가져가는 이런 길을 받아 가지거라. 이게 요한복음 6장 55절에 성찬의 첫 말씀이었습니다. 두 번째 주간은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상호내주입니다. 주님과 한 편이 되었습니다. 원하는 대로 구해봐라 주님과 하나 된 마음이 원하면 그건 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 다음 한 주간 살피는 것은 요한복음 15장 12절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 너 위해서 고생했지 않냐 그대로 너도 주변을 살펴 보거라. 그 말씀 때문에 하나님은 내 주변에 내가 필요한 사람으로 모아놓습니다. 나는 경제로 제일 가난하고 내 주변은 다 부자밖에 없는데 뭘 도우라는 말이냐. 현금만 주고받는 게 전부입니까 건강도 있는 것이고 너 스스로 똑똑하다 생각할 건데 똑똑한 네가 너 주변을 좀 살피거라. 성적도 별로고 돈도 별로고 건강도 별로라면 살펴 보거라. 온몸에 뒤꿈치 발가락이 제일 밑바닥에 제일 못생겨서 제일 냄새 나고 고생하는 줄 압니다. 발가락 뒤꿈치 문제 생겨 놓으면 잘난 이마도 잘난 눈도 잘난 손도 전부 꼼짝없이 교도소입니다. 교도소 가야 교도소입니까? 발가락 뒤꿈치 고장 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야 됩니다. 발꿈치 발가락한테도 온몸을 지고 다니느라고 참 애먹는다. 불평하지 말고 스스로 못났다고 자기를 그렇게 우울하게 보지 말고, 하나님이 맡긴 중요한 위치에 나도 수고를 하니 열심히 하자. 마음을 이렇게 먹으면 자기 마음이 먼저 좋아집니다. 마음이 좋게 생각이 되면 자기가 행복합니다. 그러면 안 될 것도 되고 하나 될 것도 둘됩니다. 귀신은 원망하게 만들고 복 있는 사람은 부족하나 내가 수고할 일은 뭔가 항상 이걸 찾습니다.
두 번째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하는 것이지 내가 할 수 없는 이상은 못하는 겁니다. 내가 먼저 수고하되 내가 할 수 있는 선이 있습니다. 발이 발 노릇만 해야지. 발이 식사 밥상 위에 오르내리며 국을 떠준다든지 또 젓가락을 집는다고 설친다든지 그래 놓으면, 이게 밥상이 밥상 되겠습니까. 할 수 있는 게 있고 아무리 안타까워도 딱 잘라서 지켜만 봐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럴 때 뭐 매정하다 잘났다고 그렇게 잘났다고 발을 빼냐. 별의 별 소리가 나도 그건 괜히 억지소리고 괜히 억지로 이말 저말 해서 복잡해지는 겁니다. 차분하게 살펴보면 간단하게 몇 마디 더 이상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을 이렇게 살피다가 수요일 저녁에 요한복음 1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7장까지 8장까지를 살폈습니다. 오늘 저녁 다시 1장에서 쭉 살펴 나갑니다. 요한복음 1장 성경 66권 중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네 가지라 해서 따라 하십시다. 사복음(사복음). 복음이 다 붙어 있지요. 사복음서라 그럽니다. 똑같은 주님을 똑같이 설명하는데 마태 마가 누가와 요한복음은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앞에 제 손가락 보시지요. 손가락 네 개는 비슷하게 생겼지요. 근데 요 엄지손가락은 이걸 짜리몽땅하게 생겼다고 그럽니까? 길쭉길쭉해야 멋진데 요즘 한 1m 80은 돼야 멋지다고 칩니까? 예전에는 사람이 키가 크면 영 등신인 줄 알았습니다. 장애자인 줄 알았습니다. 옛날은 쭉쭉 빠지면 장애자로 봤습니다. 지금은 훌륭하게 봅니다. 옛날 사람들 말이 맞는지 요즘 사람들 말이 맞는지 그 길고 짧은 거는 좀 대봐야 되는데 좀 살고 보면, 굳이 적으려고 할 것도 없고 굳이 크려고 할 것은 없지만은 크면 불리한 게 많구나. 느낄 겁니다.
머릿속에 공부도 많이 들어가면 자기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딱 가지면 좋은데 그 이상을 쑤셔 넣고 들고 다니면 머리도 복잡하고 생각도 복잡하고 자기 죽을 짓만 합니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습니다. 적당히 라는 것은 하나님이 배정해 놓은 만큼 자연스럽게 가면 그게 좋습니다. 손가락 봐 보시지요. 네 개는 비슷하지요. 엄지손가락은 요즘 사람들 말로 말하면 아마 엄지손가락 전부 다 가운데 손가락처럼 쭉쭉 뻗으면 좋다고 볼 걸요. 그래놓고 다시 보면 징그러울 겁니다. 근데 이게 일을 할 때 네 손가락이 움직여도 엄지손가락 하나가 받쳐주지 않으면 일을 못합니다. 그래서 정형외과에서, 정형외과에서 손가락 세 개 다 잘라진 것과 엄지손가락 고장 난 걸 같이 칩니다. 엄지는 다른 손가락 세 개를 감당한다고 이렇게 봅니다. 엄지손가락이 끝이 조금 아프다고 엄살 부리면 장애 나옵니다. 우리 생각과 하나님이 만들 때 인간이 별의 별 생각 하든지 말든지 하나님은 다 필요해서 좋게좋게 만들어 놨으니까, 작은 것은 작아서 보배고 큰 것은 또 그리그리 큰 것은 좀 못 났지만은 또 그것도 나중에 어떻게 쓸란가 그리 생각하는 게 복이고, 머릿속에 별로 든 게 없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귀한 건데, 복을 더럽게 받아 놓으면 눈으로 보면 외워지고 시험을 치면 공부를 안 해도 성적이 잘 나오는 거, 그 참 저주 받은 사람입니다. 근데 보통 그런 사람들이 자랑을 하고 댕깁니다. 참 꼴값인데. 그 진시황이 아마 2천 년 전 더 된 사람이지요? 그 넓은 중국 나라에 글공부한 것들은 전부 포클레인에 다 묻어버렸습니다. 이놈들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다고. 중국 최초의 통일왕국을 만든 진시황이 오늘의 저 중국의 기틀을 만든 사람입니다. 세계사에서 배운 거 기억 좀 하나요? 진시황 때 길이 도량형 길이 대 이런 걸 다 도량형 통일을 시켰습니다. 굉장한 겁니다. 중국의 오늘을 만든 기틀을 만든 눈치 있는 진시황이 글 읽고 글 짓고 책 읽고 똑똑한 것들, 이건 정권을 잡을 때까지만 사냥개로 써먹지 정권 잡고 나서 이놈들을 다 죽여 버려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이렇게 눈치를 채버렸습니다. 그걸 세계사에서 네 글자로 뭐라고 그러나요? 남반들. 김준수 선생님 혹시 기억하시나요? 우리 교회는 검정고시밖에 안 해가지고 잘 모르는데 붕서 갱유라 그럽니다. 붕서 갱유. 모조리 파가지고 전부 불 다 질러버리고 묻어버렸습니다. 붕서 갱유.
오늘도 좀 떠드는 것들 한 95%만 갖다 묻어버리면 나라가 조용해지고 굉장히 발전할 겁니다. 여당한테 물어봐도 그럴 거고 야당한테 물어봐도 그럴 거고 다 그럴 겁니다. 서로 상대방 묻으라고 그래서 탈이지. 어쨌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먼저 우리 구원 위하여 고생하시면서 네가 수고하면 주변에 좀 도움 받을 사람을 찾아 보거라 그리고 좀 도와주거라. 이것 때문에 결혼할 때는 자기보다 약간 좀 낮은 쪽을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감당 못할 만큼 너무 낮게 결혼했다가, 이렇게까지 숨 막히고 나 죽을지 몰랐다 그러면 큰일 납니다. 자기가 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계산한 다음 낮추면 주님의 제자입니다. 만약에 부부가 둘 다 훌륭하면 그때는 이 부부에게 둘이 힘을 합해서 다른 가정을 살피라는 뜻이 되어 집니다. 부부끼리 서로 복잡하지 않은 가정은 주변을 위하여, 부부끼리 서로 복잡한 가정은 집 밖을 다 내놓고 너희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라. 그리고 보면 서로 도울 일은 반드시 있습니다. 신앙으로 도울 일은 주님 제자입니다. 제자란 말이 그냥 제자 말 아닙니다. 하늘에서 모든 복이 뒤를 따라가며 챙겨줍니다. 하늘에서 챙겨주는 복을 눈치를 채면 난리가 날 건데 모르니까 전부 다 던져버리는 겁니다. 신풍교회 아마 유가정권 주식 풀면 연세 많은 분들은 코도 못 푸는 이런 거가 어디 쓰냐. 아마 그럴걸요. 정권 주식 보기나 혹시 하셨습니까? 그럴 겁니다. 또 아이들한테 다이아몬드를 주면 이거는 구슬만큼 굴러가지도 않는다고 또 던져버릴 겁니다. 가치를 몰라서 이런 겁니다.
주님 날 구원하느라고 그 고생 다 했는데 내가 우리 식구 신앙을 위해서 이 정도야 내가 뭐, 그러면 딱 그 부분이 주님이 여기 부탁한 대로 내가 너 사랑한 것처럼 네가 너의 식구 위해서 수고하니, 그 수고에 대해서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삼위일체가 책임지마.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움직이면 하늘과 땅이 다 진동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굉장한 겁니다. 이거 금수주보다 낫고 재벌 집 막내아들보다 낫고 이거 대통령 측근보다 나은 건데, 못 알아보니까 그런 건 너나 해라 난 중소기업 사장 조카라도 하련다. 난 대학교수 5촌 조카라도 해서 시험 문제나 한 번 빼서 장학금 한번 받겠다. 전부 그 싸움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걸 요한복음 1장에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비슷합니다. 근데 요한복음은 엄지손가락처럼 분위기 다르게 딱 적었는데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이래서 이 말씀이 귀하고 세 번이나 적고 네 번째 적었구나. 다 알게 돼 있는데 오늘은 그냥 바쁘게 요한복음만 먼저 살핍니다. 요한복음 1장 하나님 홀로 계시다가 하나님 닮은 우리를 만들어 놓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놓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못 알아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놓고 보이는 예수님으로 오면 알아봐야 되는데 십자가에 갖다 못을 박아 버렸습니다. 몹쓸 거라고. 그리고 가룟 유다는 은30을 그 속에서 챙겼습니다. 2천 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오늘도 교회라는 걸 대개 세상 살아가는 돈벌이에 팔아먹던지, 신앙이라는 것을 뭔 세상 살아가는 그런 이런 기회로 슬쩍슬쩍 다 써먹지. 세상은 세상이고 교회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이 참 오시는 주님을 뵙는 곳이라 소중한 곳이라 이렇게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보면 됩니다.
이 말씀이 오늘 귀에 들어온다면 0.1프로가 아니라 0.001프로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전 들 알았겠습니까. 배워서 알았지. 전들 배운다고 그냥 다 알았겠습니까. 어느 날 마음이 열려버리는 바람에 횡재를 한 것이지. 어느 날 제 마음이 열릴 때 평생에 한 번 등을 따뜻한 방에 붙여보지 못하고 저 위에서 기도한분의 기도 때문에, 주님이 제 마음을 열어서 횡재한 겁니다. 이걸 횡재하고 보니까 너무 좋아서 애 터지게 맨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뭐 얼른 한눈에 봐도 별로 이 그리 다 돈 될 걸로 보이지는 않는 가 봅니다. 내년 9급 시험 문제 어디서 난다고 그러면 뭐 난리 날걸요. 내년 행정고시 시험문제 이거 이거난다 그러면 온 나라 난리 날걸요. 그건 가져봐야 위험한 시한폭탄인데 어떡합니까. 시한폭탄 줬다고 전부 긁어 모으고 그 위에 올라앉아서 웃고 앉았는데.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날 만들어 놓으시고 그냥 두면 볼 수 없는 하나님과 나 사이는 연결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셔서 날 보면 볼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이 된다. 이게 요한복음 1장입니다. 근데 알아본 사람이 없고 알아먹은 인간이 없었습니다. 이거 참 슬픈 일이지요. 우리나라를 잘 아는 굉장히 해외 나가면 알아주는 그런 유명한 분들이 와서 꼭 한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자기들이 세계 최고가 된 줄을 너무 모르더라. 너무 모르더라. 참
기가 막힌다. 모르면 남한테 주게 돼 있는 겁니다.
100년 전에 일본에게 먹히기 전 고종 황제는 세계의 바보였습니다. 일본 사람이 인간 취급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해의 10분의 1 예산으로 먹고 놀고 지 잔치하고 여자를 찾아다닐 때,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은 목숨 걸고 나가 죽고 일본은 공짜로 와서 먹어간 겁니다. 그래놓고는 온 백성들이 일어나서 나라 찾자 그럽니다. 네놈 좋으라고? 고종 네 놈 혼자 좋으라고? 수천 년 고생한 우리는 일본 놈들한테 싸워서 또 독립운동하고 너는 놀고먹고 여자나 밝히고, 네 놈 혼자 좋으라고? 네놈의 나라니까 고종 너부터 목숨 걸고 전쟁을 하고 싸우지. 이런 게 참 슬픈 일입니다. 이런 게. 조선이야 고종의 나라 아닙니까? 제 나라 뺏겼지 내 나라 뺏겼습니까? 조선 때 제가 조선은 내 나라다 그러면 역적이라고 당장 삼족을 멸합니다. 전주이씨 고종의 나라지. 그걸 뺏겼으면 지가 싸우지 왜 내가 싸웁니까? 지가 먼저 싸우면 말이 통하고 얼굴이 비슷하니 이왕이면 왜놈 종 되니 고종 데리고 있는 게 낫지. 주인이 먼저 싸워야 종이 뒤를 따르는데 이런 게 슬픈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한국은 어떤 면으로 봐도 이건 세계 최고인데 세계 최고의 나라에 살면서 세계 최고를 느끼지를 못하니 이게 참 얼마나 슬픈 일인지. 40년 전에 제가 미국 살 때 그때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가 지금 우리나라와 아프리카 차이로 이렇게 났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때 미국보다 좋았었습니다. 미국은 그때보다 후퇴를 했습니다. 그래서 안 봐도 우리가 미국보다 좋은 겁니다. 하나하나 따지려면 한도 없습니다. 좋은 복을 받아놓고 좋은 복 받았는지를 모르는 게 슬픈 겁니다. 아이들에게 제 부모란 천하 없이 제일 귀한 분인데 옆집 가가지고는 설설 기고 오만 아양 다 부리고, 자기 집에 와서 제 부모한테는 다 이기거든요. 이게 그 가정의 슬픈 겁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지한테는 최고의 부모를 만났는데 그게 귀한 줄 모르니까 이거는 일이 나게 돼 있는 겁니다.
부부끼리도 그런 겁니다. 뭐 여러 가지 흠도 많고 마음에 안 드는 거는 많아도 제 남자는 천하에 제일 좋은 남자입니다. 저한테는. 제 여자는 저한테는 제일 좋은 여자입니다. 이게 개념이 안서니까 참 문제가 많이 생기는 겁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를 볼 수 없는 우리로 만들지 않고 보이는 우리로 만들어놨습니다. 아예 보이지 않는 천사처럼 좋게 만들지 왜 보이는 우리로 만들었을까요? 아이가 생길 때부터 점 하나로 시작을 하니 그걸 길러서 키우지, 처음부터 주먹만 한 게 생기면 몸이 불편해 되겠습니까? 처음부터 어른을 만들어 놓으면 처음부터 부모한테 대들 건데. 우리를 아주 못나게 만든 것은 천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것이 지극히 좋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래 만들어 놓은 겁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이는 흙 한 주먹으로 만들어 놓은 이유는 한없이 좋아지도록 그 출발로 쉬운 길을 준 겁니다. 그리고 못 보기 때문에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오셔서 날 보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다 본 게 된다. 이게 예수님입니다. 이런 복을 이런 보배를 이런 하나님 자체를 받아놓고, 도시락 한 그릇 정도로 알다가 팔아먹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건 뭐 시험 치는데도 별로 못쓰는데 취업하는데도 별로 못쓰는데 그러고 앉아서. 천하에 좋은 것이 많아도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보이는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만 전부 다 아는 순간 횡재한 겁니다. 나머지는 저절로 다 되게 돼 있습니다. 1장입니다. 주님이 오셨는데 아무도 몰라 보더라 그게 1장입니다. 2장으로 넘깁니다.
한 장을 넘기면 2장입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왔으면 알아봐야 되는데, 세례요한을 통해서 등등 이렇게 다 지목을 했습니다. 이분이 그분이라고. 그래도 모르니까 주님이 갈릴리 가나라는 동네에 가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며, 직접 백성들에게 주님은 종이호랑이 아니다. 말만 하는 이런 거 아니다. 기적을 베풀어 똑똑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걸 보고도 또 다 잊어버렸습니다. 참 애가 터지는 거지요. 그 다음 3장 밤중에 니고데모라는 똑똑한 사람이 밤중에 왔습니다. 1장에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다 그러지. 2장에서 가나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지. 뭔가 딱 조짐을 보니까 똑똑한 사람이라 이분 예사가 아니구나. 예사가 아니면 예사가 아니게 떳떳하게 와서 주여 배우겠습니다. 이러면 당장 함께 갈 건데, 밤에 몰래 와서 뒤로 구시렁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말 못하는 사람들. 주먹 약한 게 주먹 센 거한테 까불면 맞으니까 그런 거야 당연히 그래야 되겠지만 주님이 주먹질합니까? 세금 거둡니까? 그리고 이분이 2등입니까 3등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인데. 떳떳하게 오면 1등할 건데 밤에 몰래 와가지고 그다음 하나님께서 오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네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이 인간 가지고는 그건 지옥밖에 안 된다. 거듭나야 중생이 되어야 하나님 나라를 본다. 죄인은 지옥인데 이 죄인 속에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 갈 새 생명을 출발시키는 도를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게 3장입니다. 그런데도 결국 못 알아듣고 가버렸습니다.
그 다음 4장입니다. 4장에 오면 예수님께서 4절에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통해서 길을 가게 되었는데, 사마리아라는 곳은 안 믿는 세상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왔다 1장. 그 다음 2장에 직접 기적을 보이며 그냥 선지자 정도가 아니다. 만유 주 하나님이다. 보여주셨습니다. 3장 니고데모처럼 아직도 뭔지 몰라 애매한 사람들에게 밝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중생의 새 생명을 3장. 하나님 나라에 이렇게 대놓고 가르치고 특별히 가르치고 1대 1로까지 가르친 다음 4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다버린 아주 우습게 여기는 사마리아 동네로 들어가셔서 주님이 물을 떠드시며, 물 이야기로 가지고 하나 둘 가르치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고 배운 다음 알아차려버렸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은 모르고 하나님의 백성 아닌 인간들은 알아봤을까? 복을 받기로 돼 있는 사람들은 대개 복을 차버리고. 복도 못 받을 사람들에게 복이 가는 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는 하나의 자연의 흐름입니다. 참 요상하지요. 그리고 세상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면 흔히들 보일 겁니다. 복 있는 사람이 복을 아끼고 챙기면, 가난한 사람들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다 내려 앉을 겁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교만하다가 망하는 바람에 못난 사람들이 하나씩 주워서 또 일어나고 그러는 겁니다. 이거는 자기도 주변도 다 그렇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 괜찮다 싶은 사람들은 겸손해야 됩니다. 스스로 내가 좀 못났다 싶은 사람은 소망을 찾아보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절망의 사람들이고 희망이 없는 사람들인데 주님을 대거 먼저 모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그다음 요한복음 5장입니다. 149페이지.
예루살렘으로 오신 주님이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오신 주님이 예루살렘 안에 들어가, 베데스다라 하는 베데스다라 하는 베데스다 미국의 아마 육군 병원 이름이 베데스다인가 그럴 겁니다. 미국의 군 병원 중에 제일 크고 오래된 병원 이름이 베데스다라 요한복음 5장에 베데스다입니다. 38년 동안 일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 나야 희망이 있겠냐 하나님이 있고 천사가 있고 하나님 나라에 하나님의 기적이 있어도, 38년 드러누워 있는 나에게 설마 하나님의 복이 오겠느냐. 그 사람을 딱 찾아가가지고 그날 낫게 해버렸습니다. 믿는 사람의 특권 중에 하나는 믿는 사람은 그 어떤 인간이든지 소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입니다. 내가 가진 희망사항이 아닙니다. 그게 뭔지 알기가 어려워 기도하는 거고 그게 언제 올지 모르니까 매일매일 또박또박 신앙생활을 복되게 하면 좋습니다. 설마 나한테도 올까? 그 사람한테는 가도 내버리게 돼 있습니다. 아 나에게도 가능하겠구나. 태어나서 38년 누워만 있던 그 사람을 딱 찾아가서 낫게 하셨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낫게 하셨다는 이런 말씀을 읽을 때 그 사람을 낫게 하면서, 38년 소망 없는 나에게 주님은 기회를 들고 소망 중에 인도하시는구나. 그리고 현실을 찾아보면 길이 열릴 겁니다. 38년 된 가장 희망 없는 사람을 딱 치료시키고 나니까 안식일 날 사람 고쳤다고 죽일 죄를 지었다고 생난리입니다. 아예 주님이 올 때부터 이건 뭐 그냥 못 잡아먹어 난리로 그러다가 결국 십자가에 처형한 게 주님이 처음 오셨을 때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매 순간 주님이 부활의 주님으로 두 번째 오고 계시는데, 지금도 우리는 주님을 슬금슬금 밀어내고 있는 겁니다. 이 연휴 바쁜데 주님이 또 주일을 가운데 끼워서 오시면 이거 어떡하나? 이게 주님 옆구리 치면서 옆집가라고 그러는 겁니다. 주일이 가운데 걸린 이런 연휴에는 주여 이런 것은 저 총 공회 교단이나 가시고, 우리 같이 큰 교단 잘난 인물이 많은 교단은 이 때 주일날 문 닫습니다.
30년이 정확하게 넘었는데 아마 33~34년, 부산의 해운대 달맞이고개라고 서울의 연예인들 재벌들 제일 똑똑한 사람들 부자들, 여름 되면 해운대 그 해수욕장 내려다보이는 달맞이고개 거기다 대고 여름 별장 하나씩 구해서 놀러 오는 데가 있습니다. 여름 한 철 외에는 1년 열두 달 텅텅 비어 있습니다. 거기에 교회 하나가 있는데 명절 되면 벌써 그때부터 명절 되면 교회 문을 닫습니다. 이번 명절입니다 한 주간 교회 휴가 들어갑니다. 다 고향 가셔서 가족들과 하나님 주신 복을 나누십시오. 교회 일주일 문 닫아버립니다. 미국은 옛날부터 그랬을 것이고 서울은 더 먼저 그랬을 것이고, 부산이 그때 이제 그랬으니까 이게 이제 세월이 솔솔 흘러가며 지금은 이제 다 전국적으로 이미 짙어져 있을 겁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 밀어내면서까지 사람이 자기 살길 바쁘다 그러면, 하나님이 좀 괘씸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난 너한테 1등이냐 10등이냐 아니면 100등이냐. 난 너한테 걸레냐 행주냐 난 너한테 너의 소중한 손수건 정도 되냐. 아이 주님을 손수건 정도로 닦고 버려도 섭섭할 건데 주님은 아예 집집마다 걸레짝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좀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말이라도 주님은 높으신데 제 형편이 그러니 또 제가 신앙이 아직 덜 들어 잘 모르니 아직까지는 주님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하면 주님도 기회 주시고 밝혀 주시고 그럴 건데, 요한복음 5장 38년 된 병자를 낫게 해놓으니까 그런다고 죽인다고 난리가 나버렸습니다. 이게 요한복음 5장입니다. 이런 성경 말씀 때문에 예수님이 기적을 많이 베풀어야 믿지 않겠냐. 기적을 많이 베풀다가 죽은 겁니다.
오늘도 한국의 교회가 불신자들한테 돈을 많이 주고 먹을 걸 많이 주고 모범이 되면, 집을 사주고 이렇게 모범이 되면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겠냐. 반대로 나옵니다. 부모가 애들을 좀 혹독하게 길러야 그게 효자가 되지, 오냐 오냐 길러놓으면 얼러 기른 뭐가 됩니다. 그 자라는 과정에서는 좀 다릅니다. 혹독하게 길러 놓으면 이게 10대 20대 철 없을 때는 불만이 돼서 집도 나가고 분쟁이 생깁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면 혹독하게 기른 부모의 사랑을 대충대충 푹푹 밀어준 부모보다 더 귀한 줄 압니다. 근데 성깔이 못 돼가지고 화풀이 한 부모는 거기서 빠지는 겁니다. 안응규 선생님. 성질이 더러워서 애들을 패면서 난 널 사랑한다. 그건 거기서 빠지는 겁니다. 그건 더 나쁜 거고. 사랑은 뜨거운데 얼러 길러 놓으면 아이가 붕괴가 될까봐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끼를 덜 먹이고, 식는다고 이러면 이게 진실 되게 있으면 아무리 반발해도 나중에는 다 10배 20배로 더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그 학교에서 선생들이 애들을 막 마음대로 뚜드려 패던 시절에, 애들을 많이 팬 학교는 졸업식 때 고등학교 졸업식 되면 덩치가 커 놓으니까 졸업식 때 선생을 패버리고 졸업식을 합니다. 중학생까지는 선생이 애들을 졸업 때까지 패도 못 달려드는데 고3들은 다르거든요. 근데 이것들이 나이가 이제 40이 되고 50이 되고 많이 들고 나면, 매든 학교의 매든 선생님을 정말 스승이라고 더 존경합니다. 그냥 숙제도 안 내주고 오냐 오냐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는 그 선생들, 속으로 그놈들 남의 자식 못되게 기른 것들 욕을 합니다. 요즘이야 뭐 그냥 다 풀어졌으니 비교할 것도 없고, 속에 나쁜 마음 말고 속사랑을 가졌는데 엄하게 기르면 제일 좋은 겁니다. 주님이 38년 된 병자를 치료시켜놓으니까 또 주님 죽일 죄가 하나 더해진 겁니다. 이렇게 못 알아본 겁니다. 요한복음 6장
38년 된 병자 하나가 아니라 요한복음 6장에 오니까, 수만 명을 먹이고 모두가 알도록 해놓으니 예수 잡아다가 임금 시켜놓으면 놀고먹겠네. 머리가 이쪽으로 돌아갑니다. 이게 타락한 인간의 본능입니다. 먹고 죽는 양식을 딱 보면서 아 저분에게서 안 죽는 영생을 받아 챙겨야 되겠구나. 이걸 봐야 될 건데 이걸. 그다음 요한복음 7장입니다. 초막절이 되어 주님이 또 갈릴리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갔더니 모두들 주님 때문에 생난리가 난 기록이 돼 있습니다. 그 다음 8장으로 가면 간음하다가 잡혀 죽을 여자가 있었습니다. 예주님이 몸을 구푸려 땅에 몸을 쓰셨습니다. 모두들 이 여자 죽여야 되지 않냐고 계속 예수님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죄 없는 놈들이 돌로 치거라. 창피해서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것들은 그래도 양심이라도 있었습니다. 오늘 아마 서울 바닥에서 그러면 돌로 다 쳐버릴 걸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쳐봐라. 양심이 부끄러워 다 도망갔습니다. 그래야 희망이라도 있는 겁니다. 이 8장에서는 그걸 가르친 게 아니고 죽을죄인 여자에게, 살려주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요게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죄를 줄이고 죄를 짓지 않도록 도운 것이 주님의 사랑이지. 교도소 들어간 사람 다 풀어주라 사형선고 받을 사람 사형제도 없애라 예수가 아닙니다. 그거. 전부 기독교 특히 천주교 천주교는 1천 년간 수도 없는 사람을 불 질러 죽인 것들인데, 그 역사를 자랑하는 천주교가 세계 어디를 가든지 사형제 반대 운동을 하고 앉았으니 이것도 코미디 중에 생 코미디고, 저 북한의 김정은이 같은 사람이 사람 죽이지 말자 운동하는 꼴하고 똑같은 겁니다. 근데 학교 교과서에서 다 배운 일을 까먹고 천주교는 사람을 쥐어박으면 되냐 이러니까 천주교는 사람과 평화의 동산이구나. 그래서 전도가 된답니다. 이게 인간의 수준입니다. 이게 인간의 수준들
요한복음 8장 죄 짓다가 죽게 된 죄인을 불러내서 죄 짓지 말아라. 이쪽으로 도와줬지 죽을 거 살려놨으니까 또 한 번 죄 지어라. 다음에 또 죽을 때 되면 내가 가서 구해주마. 그건 죄의 동참자고 죄의 조력자고 그거는 죄의 공범이 되는 겁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다음 9장입니다. 주님이 길 가실 때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 나면서부터 소경인데 실로암에 가서 씻고 나니까 눈이 떨어졌습니다. 근데 이 눈을 띄운 날이 또 안식일입니다. 주일날 예배의 말씀이 인간을 눈 띄우고 인간답게 살아가고 신앙을 가르치는 건데, 사람을 진리로 보고 하나님을 알겠다고 또 잡아 죽인다고 난리입니다. 바로 된 교회가 복음을 바르게 전하면 당연히 그거는 고생할 각오해야 되는 겁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근데 그들에게 9장. 제일 끝입니다. 39절, 주님이 오셔서 보지 못하는 자들은 포기하고 소경 눈을 띄웠지 않습니까.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이러니까 바리새인들이 그 말을 듣고 우리가 소경인가? 4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놈들이 소경이었다면 죄는 없었을 뻔했는데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거저 있느니라. 소경인 줄 알면 복 있는 겁니다. 세상에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없으면 세상은 소망이 없는 거구나. 예수 없으면 죽음밖에 없구나. 이러면 살 수 있는 소망이 있는데 예수 없어도 나는 모든 걸 보고 예수 없어도 백 살 사는데? 그 자세 그 인격에는 주님이 구원을 주지를 않습니다. 본다고 하니 죄가 서서 있느니라. 오늘 저녁에 쭉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기적을 베푸시고 이러고저러고 소경을 낳게 하고 38년 된 병자를 낫게 하고, 어떤 기적과 어떤 일을 다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더라. 복을 복인 줄 아는 사람들이 그때는 없었더라. 그럼 지금은 있겠는가. 지금도 없다 그리 보는 게 맞습니다.
오늘 밤 복을 복인 줄 아는가 뭐가 복이며 뭐가 화인지 구별은 하고 있는가. 숙제를 많이 내주던 시절에 교사가 오늘 숙제 없다고 그러면 아이들이 막 환호를 하고 좋아했습니다. 한 번쯤 쉴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원리적으로 말하면 학생에게 숙제가 없는 것이 아동을 위한 것일까. 초등학생한테 숙제 내주고 시험 치고 점수 올리면 막 잡아간다고 생난리지요? 한 20년 그랬던가요? 자기들은 공부 많이 해서 시험 쳐서 교사 되놓고 자기애들은 해외까지 보내서 1등하라고 다 밀어주고, 남의 자식들한테는 숙제 없다 놀아라. 시험을 치다니 시험 치면 1등 2등이 있는데 그렇게 비교를 하면 안 되지. 비교하면 안 되면 왜 선생만 선생 합니까? 우리는 선생 못합니까? 자기들만 가르쳐야 된답니다. 절대로 밥그릇은 지키고. 어떤 학교든지 그 학교 안에 있는 교사보다는 그 학교 대문 앞에 있는 학원이 더 잘 가르칩니다. 안 봐도 뻔히 알지 않습니다. 안에는 죽을 때까지 월급을 주고 밖에는 손님이 와야 돈을 버니까, 교사가 안 돼가지고 학교 앞에 학원 강사를 하는데 학원에 가면 몇 배를 잘 배우고 학교 가면 몇 배를 못 배웁니다. 이게 죄악세상 돌아가는 꼴입니다. 남을 욕하고 세상을 욕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나를 보는 겁니다. 하나님은 복의 복을 촐촐 추려 여기 엄청난 복이 있으니 바꾸라 그러는데, 이거 말고 저거 말고 이거 말고 저거 말고 그럼 뭘 원하냐? 돈 안 될 거 망할 거 후회할 거 뒤에 땅을 칠 거 뒤에 눈물 바닥이 될 것만 어쨌든 원하는 것이. 아이도 그렇고 아이만 그렇습니까? 하나님 앞에는 모든 인간의 본능이 다 그렇습니다. 모두 각자 자기를 돌아보며 하나님은 내게 복을 얼마나 주셨는지 좀 챙겨보셔서, 이런 구정연휴에는 특별히 위에 적어도 할아버지 위에는 몰라도, 할아버지와 부모까지 사촌까지는 좀 두루두루 연구를 해 봐보십시오. 그러면 겸손해질 겁니다. 그러면 겸손해지면서 소망이 생길 겁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저절로 기도가 나올 겁니다. 그러면 저절로 복이 갈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고. 할머니가 어떤 분인고. 부모와 부모의 형제가 어떤 분인고. 자기 집안 족보를 연구해 보면 자기가 보입니다. 참 못났구나. 주의 은혜라야 되겠구나. 그 어느 가정이든지 그건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소망이 있구나. 그 소망 중에 내게 신앙과 이 노선을 알게 한 것은 이건 오시는 주님을 붙든 복이구나. 그럴 때 참된 기쁨으로 참된 소망으로 복만 되게 되어 있습니다.
1차: K.Y.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