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3.1.20 요15:10 성부의 뜻 성자의 계명, 위에 쏟아진 전부. 주의 뜻 오늘 나의 계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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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3.1.20 요15:10 성부의 뜻 성자의 계명, 위에 쏟아진 전부. 주의 뜻 오늘 나의 계명으로

서기 0 47 2023.01.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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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0 금새

제목 : 성부의 뜻 성자의 계명, 그 위에 쏟아진 전부. 주의 뜻 오늘 나의 계명으로

찬송 : 43장(달고 오묘한 그 말씀)

본문 : 요한복음 15장 10절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계명을 지키면 사랑을 받는다. 필연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 주님이 그대로 지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고 또 이번에는 주님의 계명,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주님이 주님의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계명이란 이 면으로 보면 반드시 지켜야 되는 겁니다. 저면으로 보면 아버지의 생각입니다. 주님의 계명은 주님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 안을 들여다보면 뜻이라고 그럽니다. 이런 뜻이었구나, 저런 뜻이었구나. 그 뜻이라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 가장 깊은 마음 속에 있는 겁니다. 공부를 해야 되겠는데 그러면 이것이 뜻이 됩니다. 학교는 어디를 갈까 책은 무엇을 살까 돈은 어디서 확보를 할까 이게 생각입니다. 뜻이란 목적과 같은 겁니다. 무슨 뜻일까? 제일 깊은 속에 공부 좀 해봐야 되겠다. 모르고 사니 참 답답하다. 아는 게 힘이구나. 공부를 해봐야 되겠구나. 이게 제일 깊은 속의 시작 목적입니다. 이걸 위해 그 다음 이럴까 저럴까 이것은 설계입니다. 계획이라고 그럽니다. 건축으로 가면 설계가 되고 경영으로 가면 계획이 되고 이것을 일반적으로 말할 때 생각이라 그럽니다. 뜻을 품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리고 이제 학교를 간다고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공부의 뜻을 가지지 않고 남의 것을 좀 훔쳐야 되겠는데 학교를 가는 것이 훔칠 기회가 가장 많지 않겠는가?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이 집집마다 털고 시장에 가서 터는 것보다 또래가 수도 없이 모여 있는 학교를 가야 남의 돈 털기가 쉽지 않겠는가? 훔치는 것이 뜻이면 그러면 표시를 내지 않아야 되니 교복을 입고 시간 맞춰 가방을 들고 공부하는 척 해야 되겠구나. 생각이 이렇게 갑니다. 학교를 훔치러 오는 학생이나 공부하러 오는 학생이나 뜻은 깊은 속에 있어 알 수가 없으나,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하는 것도 알 수가 없으나 딱 보니 저건 공부하려고 작정한 학생이구나. 행동부터는 표시가 나오는 겁니다. 저건 학교를 오긴 오는데 공부에 관심이 없구나. 왜 자꾸 좌우로 눈을 돌릴까? 저 속에 들어있는 뜻이 뭔가? 이게 문제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 제일 속에 들어 있는 것은, 택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지어 지옥 가는 것이 필연인데 이걸 해결을 해야 되겠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완전성 절대성을 가진 공평의 하나님이라 죄를 그냥 봐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또 지옥 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도 없습니다. 지옥 갈 죄인을 그냥 모른 척 할 수는 없고 또 이것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계산을 해야 되겠고. 이게 성부 하나님의 깊은 시름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그 뜻을 아는 분입니다. 해결은 성자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깊은 뜻, 그 말하지 않아도 그게 아버지의 부탁입니다. 그런데 그 부탁은 먼저 하지는 못합니다. 네가 가서 고생해라. 그 고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저것을 구해야 되겠는데, 길은 성자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는 수밖에 없는데. 여기까지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 뜻을 주님은 피할 수 없는 계명으로 받아들여 그 길로 내려온 것이 도성인신과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계명으로 알고 출발하는 주님, 하나님과 근본 본체시며 동등이었는데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자신을 낮춰 종의 형상으로 오셨으니 그 순간부터 성부 하나님의 모든 것은 성자 예수님을 향하고 다 부어버립니다. 이 주는 것 부어버리는 것을 사랑이라고 그럽니다. 성부의 모든 것이 성자에게로 왔으니 성자 속에는 성부의 전부와 성자의 전부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부활하셨고. 그리고 주님 속에 든 것은 죽었으니 영은 살려놓지만 영이 살아난 인간은 자유성을 가진 인격의 존재라 살아난 영이 자기의 심신을 살려가는 것은 심신에게 맡겨진 자유지 그 자유를 줘놓고 꺾지를 못합니다. 이게 주님의 뜻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알아 오신 분이 주님이고 오시니 아버지의 모든 사랑이 다 주님에게 쏟아졌고, 성부와 성자의 모든 것을 가진 주님이 우리의 영은 살려놓고 살아난 영이 그다음 자기의 마음과 자기의 몸을 살려가는 과정, 살리느라고 애를 쓰는 이게 주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 뜻을 성경에 기록을 해놓지 않으면 성자 하나님은 완전자라 성부 하나님의 뜻을 계명으로 알고 그대로 이행했으나 성자 하나님 예수님의 뜻은 이 미개한 우리가 성경을 글로 읽지 않고는 헷갈려 잘 모릅니다. 대충 감은 있습니다. 자연의 빛이 있어 무엇이 밝다 무엇이 어둡다 그 정도는 압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입니다. 구원의 구체적인 것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의 구약으로 기록하여 미리 알려주셨고 성경의 신약을 통해 명확하게 하나하나 적어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아는 2위 성자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만족되도록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여시고 당신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것을 구약에 미리 적어놓고 오셔서 입으로 가르쳤고 그리고 신약으로 마지막 기록을 하여 계시록까지의 모든 말씀이 이 모든 것을 일일이 다 적어 놓으셨는데, 이 설계도 고속도로 지도를 완성하여 우리에게 주셨으나 또 이것을 읽는 이 인간이 미련하여, 그냥 미련해서가 아니라 속에 욕심이 가뜩 들어앉았지, 그 욕심으로 평생 살았지, 또 악령은 그 욕심을 뒤흔들어 자꾸 흐리지. 이러니까 우리가 걸어가야 되는 설계도 우리가 걸어가야 되는 길을 자세히 성경에 기록을 해놓고. 성령 하나님이 우리 영에게 오셔서 성령과 우리의 중생된 영이 서로 합하여 우리의 마음을 달래고 계십니다. 성경 좀 읽어 보거라. 썩을 세상 일도 글 좀 알면 도움이 되지 않더냐? 빠르지 않더냐? 좋지 않더냐? 하물며 하나님이 선지사도를 통해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기록해 주셨으니 하나님이 성경을 주셨을 때는 오죽 필요하면 주셨겠느냐? 성경 좀 읽어봐라. 성경을 읽을 때는 내 생각으로 읽고 내 취미를 읽고 나대로 내 방식으로 읽지 말고, 성경을 읽을 때만은 내 속에 힘을 빼고 의지 욕심도 빼버리고 선입관도 빼버리고 밖에서 들은 모든 인간의 지식 기존 상식 전부를 싹 빼버리고, 성경은 성경으로 읽으면서 너의 양심에 이게 뭔 뜻입니까?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이게 뭔 뜻입니까? 이걸로만 성경을 읽어 보거라. 이렇게 읽으면 내 속의 성경에 말씀과 말씀 속에 있는 뜻을 알아야 되는데 알지 못하게 내 눈에 색안경을 씌우고 내 눈앞에 많은 수풀을 두어 앞을 못 보게 하는 잡초를 뽑아버리고 안경에 묻은 색을 깨끗하게 씻는 것이 됩니다. 내 색안경을 깨끗하게 씻어 투명하게 만들고 내 시야를 가리는 내 속에 돋아난 별의별 잡초를 다 뽑아버리고. 이게 양심을 쓰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적어주신 말씀으로 그대로 읽으면서 이게 뭔 뜻일까? 이게 왜 이렇게 적혔을까? 그러면서 이거는 하나님의 작품이니 하나님의 글이니, 인간이 인간의 학습력으로 읽으려 드는 순간 큰일 나니, 왜 이렇게 적어 이렇게 펼쳐 놓았을까? 양심의 귀를 가지고 알려주시라는 자세 나는 모른다는 자세, 이게 뭘까? 궁금한 소망으로 귀를 기울이면 그러면 내가 내 속에 있는 내 힘을 내 요소를 다 빼버리면, 맑아지고 투명한 상태의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양심에게 주님은 포도나무다. 우리는 가지다. 그러면 둥치에서 주는 걸 받아 돋아난 것이 가지지. 둥치 아닌 친구에게 가져온 것 교과서에서 가져온 것, 믿기 전 내 사고방식에서 돋아 나온 것은 그것은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하나씩 둘씩 깨닫게 하면서 그런데 넌 타고난 고집이 너무 강하고 넌 믿기 전부터 선천적으로 가진 그 성향이 너무 억세니 그런 것 다 잘라버려라. 내가 먼저 내가 내 속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들으려고 하고 배우려고 할 때에, 성령이 중생된 영께서 내 마음에 하나씩 둘씩 알려주고 가르치며 인도해 가십니다.

내가 이거다 저거다 깨닫는 것과 그렇게 양심을 통해 뭐 아는 것과, 이것도 지식이고 저것도 지식이 아닌가? 인간 생각에는 이것도 저것도 둘 다 지식으로 보이지만은 이건지 저건지 콩씨인지 팥씨인지, 씨는 다 같은 씨가 아니냐? 뿌려봐라. 콩 심은 데는 콩 나고 팥 심은 데는 팥 난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뿌려보면 그 뒤에 자라는 게 다르고 맺히는 게 다르게 되어 있다. 어떤 인간의 어떤 아이디어라도 그건 죽음 이편 것이고 살아 생명 것이고 땅의 것이고 물질의 것이고 그건 시간 가면 다 모순되고 주저앉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죄 되는 것 밖에 없다. 이런 심리의 과정을 통해 주님은 이게 뜻이겠구나. 그리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이 계명을 지킬 때 성부의 사랑이 성자에게 와 있고 성부와 성자의 모든 능력과 사랑이 이 말씀을 지키려고 성경을 읽고 뜻을 생각하는 우리 속에 밀고 들어옵니다. 그러면 삼위일체의 능력과 역할과 모든 것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그 참 굉장한 것이 되어집니다. 아침은 여기까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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