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3.1.18 요5:12 서로 사랑은 먼저 자기 계명, 요1-8장 연결 주해, 자기 할일 자기 자세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수밤23.1.18 요5:12 서로 사랑은 먼저 자기 계명, 요1-8장 연결 주해, 자기 할일 자기 자세

관리1 0 74 2023.01.18 22:09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30118 수밤

제목 : 서로 사랑은 먼저 자기 계명, 요1-8장 연결 주해, 자기 할일 자기 자세

찬송 : 18장(내 진정 사모하는)

본문 : 요한복음 5장 12절 -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가 믿고 우리가 따라가는 이 밤의 예배와 우리의 영원한 소망인 영생을 위해, 하나님 사람 되어 사활의 대속으로 다 희생하시고 이미 지은 죄 죄로 인하여 한 번은 죽어야 되는데, 죽어도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이 부활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 또 중생 후 평생 믿는 모든 순종은 그 행위 그 요소 그 준비는 우리가 죽을 때 죽지 않고 그대로 영생으로 이어지는 이 사실, 이것이 매 현실 매 순간에 우리의 복이며 우리의 사명이오니. 삼일 예배로 불러주신 주님 안팎의 사방을 뒤흔들며 우리가 배운 말씀이 우리 속에 바로 심겨져 있는지 자라고 있는지, 시험하시며 뿌리를 굳게 내리도록 도와주시는 은혜인 줄 깨달아, 말씀으로 살면 어려움이란 당연히 다가오는 것이고, 그 어려움 뒤에 오는 부활과 영생의 영광을 소망함으로 이 밤도 오고 가는 발길 마음속에 집중도 소망도, 하늘을 향한 모든 은혜를 구하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진행 중인 모든 건축에 일일이 주님이 안보하셔 사고 없게 하시고 주님 오실 때까지 단단하게 잘 사용하도록, 지혜와 충성과 관리를 허락하시고 하늘도 땅도 공기도 모든 물리도 자연도 주변의 관민 심리까지, 우리의 노후 또 신앙으로 노년을 맞는 모든 이들이 예배당과 예배당 별관으로 이어가며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복이 되는 시설 되도록 복을 내려주옵소서. 이 밤도 함께 하시고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한 주간에 본문 하나씩 오래 계속 이어간다. 말씀드렸습니다. 1월 첫 주 다 같이 요한복음 6장 55절이었습니다. 다 같이 시작 “내 몸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첫 번째였습니다. 두 번째 주간은 요한복음 15장 7절이었습니다. 보지 말고 너희가 시작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고 지난 세 번째 주일은 요한복음 15장 12절 오늘 겁니다. 내 계명은 시작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것 이니라” 한 주 간에 하나씩 쭉 이어가겠습니다. 오늘 본문 “내 계명은” 주님의 부탁입니다. 부탁을 계명이라 할 때는 이대로 안 하면 안 된다 명령입니다. 부탁보다 강하면 명령이고 명령보다 안 하면 혼난다. 이렇게 벌이 들어갈 때 계명이라 그럽니다.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게 아닙니다. 안 하면 큰 손해 봅니다. 그래서 내 계명은 안 하면 주님한테 혼난다. 뭘 혼날까요. 계산도 못하는 손해가 옵니다. 무조건 해놓고 보면 좋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죄로 지옥 갈 우리를 해결하시려고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십자가 사활의 대속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그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겁니다. “그렇게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수고하면 내가 좀 더 참는다면 내가 좀 더 노력한다면, 내 주변의 신앙에 도움 되는 사람이 누굴까 이게 사랑하는 겁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을 들을 때 서로 사랑하라 했으니 네가 나를 먼저 사랑해 보거라. 이래 말하면 나쁜 놈입니다. 남자가 그런 말하면 나쁜 놈이고 여반들 자기 입으로 그리 말하면 뭐가 되지요? 제가 나쁜 놈 하면 안 잡아가는데 그 년 자를 붙이면 잡아간다. 그래서 지금 부탁하는 겁니다. 서로 사랑하라 했는데 네가 먼저 나를 사랑해라 이렇게 남자가 말하면 그 인간 도둑놈입니다. 예수님의 원수입니다. 여자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읽으며 그래 네가 나를 먼저 수고하고 사랑해보라 그러면 어떤 사람이 된다고요? 나쁜 사람 되는 겁니다.

서로 사랑하라 나보고 먼저 수고하라고 그러시는구나. 이걸 읽은 사람은 내가 먼저 주님처럼 다른 사람 신앙 위해서 수고하라고 그러시는구나. 요래 읽으면 복음으로 읽는 복된 사람이 있고 서로 사랑하라 했으니 네가 먼저 나한테 수고해봐라 그러면, 그 인간을 가룟 유다라 또는 그 인간을 거짓 선지자라. 그런 마음심한 촐촐 추려 내버리는 데가 지옥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이래라 저래라 그러는 거 아닙니다. 내가 그러는 겁니다. 내가 먼저. 나만 열심히 계속하면 그러면 한 사람 두 사람 따라 붙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참 방법은 느린데 막 끌고 그냥 이래라 저래라 그러면 빠른 것 같은데 공사를 빨리 하면 무슨 공사라 그러나요. 박현병 선생님? 부실공사라 그럽니다. 광주에 부실공사 하다가 아파트 하나 다 내려앉은 거 아십니까? 회사는 현대건설이라 굉장한데 현대건설이라는 최고의 회사가 짓는 아파트가 그냥 한 25층 30층이 다 내려앉았습니다. 그 일하는 놈들이 경상도 놈들이 일을 했을 겁니다. 광주 사람들이 그럴 리가 있나요. 얼마나 착한데. 광주 사람들은 흠도 점도 없는데 그럴 리가 있나? 경상도 놈들을 데리고 하다가 그냥 노가다를 시켜놓으니까 그랬겠지. 여수서 설교하려면 이래 설교해야 제가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도 바보처럼 개죽음당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뭔 말인지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녹음해서 나중에 법원에 가져가도 아마 처벌 못할 겁니다.

빠르게 좋으면 제일 좋은데 빠르면 반드시 부실공사가 됩니다. 인생이 부부 만나며 눈에 좀 좋다 싶으면 속도위반하고 그냥 탈을 내버립니다. 부실사랑을 해가지고 시작부터 엉망을 만들어 버립니다. 참 뭐 말려도 안 되고 말리는 길도 없고 결혼의 시작이 딱 부실공사로 시작을 하니 그거 뒤에 뭐 보나 안보나 다 엉망이지. 그다음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자기의 정욕을 잘 눌러서 말씀으로 가정생활 교회가 잘 돼야 되겠다. 이렇게 출발하는 경우도 우리 교회 안에는 많지요? 근데 결혼하는 데까지는 부실공사가 아니라 연애 오래 한다고 그거 상대방 파악하는 거 아닙니다. 연애는 10년 해도 그거는 모르는 겁니다. 살아봐야 알지. 결혼 전에 아무리 점을 치고 연구를 하고 각서 받아놓고 어떤 사람은 영수증 떼다가 다 전부 뒷조사 해봐야 아예 소용없는 겁니다. 해봐야 알지. 조심스럽게 결혼하고 그 말은 내 소망 내 계획 다 없애면 그게 조심스러운 결혼이 되는 겁니다. 근데 막상 이제 결혼이 시작되고 나면 서로 상대방에게 요한복음 15장 12절.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해라. 그 여자는 남자한테 나를 한 번 사랑해 보거라 참 쉽게 하는 말이 아닌 겁니다. 그런 거. 너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한번 두고 볼게 점수를 매겨 쌓는 건 나쁜 겁니다. 참 좋지 않은 건데. 예전에는 남자 쪽에서 그랬습니다. 보자 가정교육이 어떤지 족보가 어떤지. 일단 데려왔으면 내 사람이라고 있는 힘껏 도와줘야 될 건데 점수를 딱딱 매기면서 이러는구나. 저러는구나. 시작부터 이거 뭐 부실공사 되는 겁니다.

예전에는 남자와 남자 집이 여자 데려다 놓고 막 점수를 매겨 샀고, 에이 나쁜 인간들 집에 기침 소리만 나오다 전부 새로 시집 온 여자가 재수 없다고 거기다 대고 다 뒤집어씌우고. 그런 짓 하는 거 아닙니다. 요즘은 이제 반대가 돼가지고 또 여자들이 그러지요 남자 점수를 딱 매겨서. 결혼해 보니까 빵점이네 너 너희 집에 가. 이것도 참 문제입니다. 자기의 정욕 자기의 야망 자기의 잘못된 지식 다 딱 눌러버리고 일단 결혼이 되면, 서로 사랑하라고 했으니 내가 먼저 수고를 하라 하시니, 아무 소리 말고 나 할일을 또박또박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복되게 복음으로 이 말씀을 읽는 것이 되어 집니다. 주님 날 위해서 이만큼 하셨으니 나도 내 사람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우리 교인 위해서, 내 주변에 이런 이 런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맡긴 사람이니 잘 해봐야 되겠다. 이 말 딱 떨어지면 학교 교사 하라 해도 참 하는 게 아닙니다. 남의 집에 귀한 아들을 갖다가 옛날에는 60명 요즘도 한 10명씩 맡아서 그걸 책임을 진다면 그거 참 죽어 나는 겁니다. 교사. 그다음 우리 교인들 아동센터 하는 분들 많지요. 학교에서 이제 몇 시간 하고 그다음 아동센터 오면 나 돈만 벌면 되고 나 체크만 안 당하면 되지. 그래도 그게 생존의 방법입니다마는 너를 거친 아이가 너와 한 시간이든 3시간이든 너와 몇 시간이든, 매일 너를 거친 아이가 5년 뒤 10년 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무엇을 머릿속에 기억할까. 초등학교 2학년 선생님 영 못됐다. 초등학교 4학년 선생님 기억만 해도 참 감사하다. 야단은 치고 숙제는 많이 내줘도 참 그분은 진정이었던 것 같다. 6학년 선생님 아이 도둑 같은 인간. 아무리 어려도 이거 머릿속에 평생을 다 기억합니다. 1년이 지나고 담임이 바뀔 때 이 아이들이 죽는 날까지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1964년 1학년 선생님 지금도 다 기억합니다. 제가. 2학년 기억합니다. 3학년 다 기억합니다. 이 피부가 건성이 돼서 저는 아무리 씻어도 이게 손이 틉니다. 근데 맨날 자루 가지고 손을 뚜드려 패는데 그 맞기 싫어서 밤새도록 뜨신 물에 담가도 안 되는데 어떡합니까. 아이들마다 좀 피부가 다를 수도 있다. 이런 것도 좀 조사를 해야 되는데. 그러면 너희들이 그냥 떠들고 너희들이 맞으니 맞으면서 타고난 게 그런데 어떡해? 하고 안에서 반발심이 나오면서 3학년 선생님 지금까지 저주를 하고 있는 거지요. 철들고야 뭐 저주 같은 저주를 했겠습니까. 그렇게까지 살피지를 못했을까. 선생님들 아동센터 일하시는 분들 나를 겪고 거쳐 간 사람이 5년 뒤에 10년 뒤에 20년 뒤에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까. 훌륭하게 기억은 하지 못하더라도 아이 그놈의 인간 뺀 돌 뺀 돌 저런 것도 밥 먹고 사나 철이 들고 보니까 더 괘씸하네. 이렇게 만들어가지고는 곤란한 겁니다. 믿는 사람이면 1등은 못 가도 그분을 겪고 다시 생각해 보니 그래도 믿는 사람이라 다른 분들하고는 좀 달랐구나. 이거 남겨야 됩니다. 근데 뭐 요즘 교회 안 다니는 분이 있나요? 특히 여수 순천은 거의 다 교회 다니는데. 신풍교회 교인이기 때문에 하나가 더 달랐구나. 이거 마음속에 두고 근무하는 것과 이거 마음속에 빼고 근무하는 것과, 겉으로는 별 차이 나지 않아도 굉장히 차이가 많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라도 안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억울합니다. 소리를 계속 하늘에 올리면 그 민원을 하나님이 무조건 마다 그러지 않고 챙겨 본다고 그랬습니다. 챙겨 봐가지고 억지  소리는 눌러버리는데 네가 안 믿는 사람이지만 너의 호소를 들어보니 억울하게 됐다. 하나님의 판단이 이래 나오면 믿는 사람에게는 그거 배로 갚고 10배로 갚아버립니다. 믿는 사람은 날 위해서 내 앞날을 위해서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하루 지나가면 그만이지 뭐 체크 당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면 그만이지 뭐 거기서 그치면 곤란합니다.

내가 운전을 한다면 내 차를 탄 사람은 뭔가 믿는 사람이라 좀 다른 것 같다. 1등은 못가도 2등은 해야 됩니다. 평균보다는 좀 나아야 됩니다. 직장에 다녀도 안 믿는 사람이 보고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봐도 그렇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많아도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이 사람이 그래도 좀 낫다 적어도 믿는 사람은 여기서 출발해야 됩니다. 그리고 신풍교인은 교회 중에서도 신풍 교회기 때문에 좀 더 다르다 말은 반드시 들어야 됩니다. 신풍교인 표 안 내면 모를 건데? 5월 8월 집회 때문에 뭔가 표 나지 않습니까? 또 수요일 금요일 저녁 예배 일정 때문에 뭔가 표 나지 않습니까? 또 주소와 초중 고등학교 교육 경력 딱 보면 뭔가 여수 순천 안에서는 우리를 대부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몰라도 뒤에 알게 됩니다. 그래도 밤 예배까지 노력하는 사람, 집회까지 더하는 사람. 본인은 그 신앙이 되지 않아도 그런 동네 그런 교회 그런 가정 분위기기 때문에 그래도 좀 낫구나. 여기까지는 가야 됩니다. 온 참샘이 사람들이 참샘이 안에 신풍교인은 그래도 하나 더 낫구나. 그건 무조건 받아야 됩니다. 신풍교회 찍는 거 보니까 독하고 악하게 이를 갖다가 상종도 못할 인간이다. 그리 되면 변명할 것 없이 무조건 잘못된 겁니다. 신풍 삼거리에 제 욕이야 더 많았지. 우선은 억지를 부려도 5년 뒤 10년 뒤 세월을 지나보면 아는 겁니다. 지금은 아마 신풍 삼거리 깍듯할걸요. 저한테. 지금은 온 참샘이에서 참샘이 교회 참샘이에서 우리 교회에 나오는 분들을 수십 년 세월을 지켜보니까, 그분이 20대 옳고 30대 옳고 50대 옳고 10년 전이 옳고 20년 전에 옳다는 말을 지금 다 그렇게 듣고 계시지요. 안 그러면 통회자복 해야 됩니다. 통회자복은 예배당 앞에 와서 엎드려서 눈물로 침상을 띄우고 한 달 1년 여기서 기도하셔야 됩니다. 덕산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운 순서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신풍의 아동센터는 사람이 운영하다 보면, 다 그만 그만하지만은 그래도 신풍 주소지를 가졌기 때문에 다른 데보다는 내실이 좀 더 있구나. 그리고 관계되는 분들이 신풍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뭔가 좀 더 다르구나. 다른 데와 비교할 때 반드시 그렇게 나와야 됩니다. 독하고 짜고 뭐 그냥 아주 말도 못하겠더라 그런 소리 나오면 곤란합니다. 아동 학교 직업으로 두 개 살폈습니다. 직업으로 이제 두 개 살폈으니까 남은 거는 뭐가 되는 거죠? 요즘은 피할 수 없는 노인센터 노인 돌보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내 부모라도 부부끼리라도 하루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그거 인간이 계속 천사처럼 하지는 못하는 겁니다. 연세 많고 불편한 분들을 살펴보면 살펴본 사람만 아는 기막힌 사연은 다 있습니다. 개나대나 욕하는 사람들은 철대기가 없어 그러니까 그런 거는 놔두고 겪어본 사람들이, 그래도 여기보다 저기보다 그래도 교회 옆이 그래도 좀 더 낫다 그 말은 들어야 됩니다. 교회가 관련되고 교인들이 계시는 데기 때문에 뭐 두말하지 않아도 낫기는 낫다. 억지를 받아주라는 말 아닙니다. 불법을 받아주라는 말도 아닙니다. 교회를 슬그머니 쳐버리면 돈 나오더라. 이런 데 휘둘리는 것은 그 사람 나쁜 사람 만드는 겁니다. 근데 모든 걸 다 감안해도 다른 데보다는 그래도 낫더라 그 말은 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걸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이제 신앙의 기본과 시작이 되어지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얼마까지 자라느냐 그거는 천사가 되고 그건 사도 바울이 돼도 됩니다. 그는 오신 주님과 같다. 그러면 더 좋습니다. 그건 다음이고 기본은 여깁니다.

결혼의 상대방 결정도 그렇습니다. 그 다음 처음 살아가는 신혼도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아이를 낳아 놓으면 이 아이한테 그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립니다. 정신없이 모성애로 그냥 쏟아 부어버립니다. 그러면 아이가 우상이 됩니다. 아이가 우상 되면 아이는 우상이 아닌데 내가 아이를 우상으로 상대를 하면 내가 먼저 손해를 봅니다. 내가 망하면서 상대방과 같이 주저앉아버립니다. 뜨거운 사랑은 아무리 가져도 조처는 상대는 처리는 생활은 좀 냉정해야 됩니다. 오늘 생활 속에 드리는 말씀 마음은 콩쥐 엄마의 마음이 맞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교육과 조처는 팥쥐 엄마가 딱 100점입니다. 팥쥐 엄마가 콩쥐를 팥쥐 엄마 식으로 하니까 이게 혹독하고 학대가 된 거지. 콩쥐 엄마가 자기 친 자녀를 팥쥐 엄마처럼 족치면 그건 무조건 그냥 그건 좋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이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주님은 하나님이라 착오가 없습니다. 근데 인간은 인간이 인간 가족끼리 부부끼리 아이를 또 직업 업무 때문에 다른 사람을 서로 서로 돌보다 보면 잘한다는 것이 넘쳐서 탈. 대개는 자기 주관으로는 남들한테 잘한다고 그러는데 자기가 잘하는지 못 하는지 남한테 물어봐야 됩니다. 남한테. 그래서 평생 수도 없이 말씀을 드리지만 공회는 목회자부터 교인들에게 평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52년 됐습니다.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목사야 의당 교인들한테 천사며 하나님의 사자로 잘한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강단에 서지. 근데 앉아서 회비 내고 듣고 있는 교인 마음이 어떠한가라는 겁니다. 저만하면 좋은 분이 다 저만하면 뭐 보내기도 아쉽고 그냥 새로 구하기도 아쉬우니 있는 거 데리고 쓰자 그런 건가? 딱 쫓아냈으면 좋겠는데 길이 없어 쳐다보고 있으니 속에 울화통이 터진다. 상이냐 중이냐 하냐. 교인들의 평가를 받아봐야 아는 겁니다. 교인들 중에 이런 교인도 있고 저런 교인도 있는데 어떻게 교인의 심리와 교인의 여론을 보고 판단하는 거냐? 한 2년마다 한 번씩 해 봐 보면 거의 다 나오게 돼 있는 겁니다. 그게 진리는 아닐지라도 흐름은 맞는 겁니다. 목회자가 먼저 교인들에게 마음 들지 않으면 사정없이 보내버리십시오. 2년마다 이렇게 부탁을 하면 가정에 가서 남자도 여자도 서로서로 상대방에게 양심껏 어떤지를 물어봐야 되는데, 이 거짓말쟁이들이 양심껏 말합니까? 또 양심껏 말하면 길길이 뛰고 난리가 날 테니 누구한테 물어봐야 내 점수가 공정하게 나오겠는가. 누구한테 물어봐야. 10년 전에 주일 학교 부장이 참 잘했는데 이 시골에 주일학생이 100명 이상 출석하도록 잘했는데, 선생님들에게 아무에게도 말 안하고 선생님들 오후예배 참석하는 한 40~50명 학생들에게 예고 없이 한번 점수를 받아봤습니다. 점수를 받아보니까 좋은 점수 나온 분이 계셔서 부장을 바꿨습니다. 부장을 바꾸니까 앞에 부장님 하시는 말씀이 성령으로 딱 보니까 목사가 틀렸답니다. 목사 속에는 성령이 없겠습니까. 목사는 성령 팔아먹을 줄 몰라서 그 말 안하고 여론조사 했겠습니까.

오전만 왔다가는 학생들은 안 믿는 가정의 아이들이라 묻지 않았습니다. 오후 오는 아이들은 오전도 오고 오후도 오고 수요일도 오고 새벽 예배도 옵니다. 부모도 다 교회를 다닙니다. 근데 투표한다고 미리 말하면 선거 운동을 할까봐 아무 말도 안하고, 선생님들하고 학생들한테 바로 선생님 한 열 명 이름을 적어서 점수를 내보니까 성적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앞에 분은 중간 반을 맞는 것이 더 중요해서 바꿨습니다. 이거 결국 시비 때문에 떠났고 그거 떠나면서 장년 반 한 20~30명 주일학교 한 30~40명 교회가 한 50명 손해 봤습니다. 달래서 붙들지. 달래서 붙들면 그다음 50명이 아니라 교회 뿌리 뽑을걸요. 이거는 인간 감정 아니고 이거는 보복이 아니고 이거는 행정이 아니고, 이거는 주일 학생들이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어느 분의 주일 학교 인도가 은혜로운가. 장년 반에 목사도 투표하는데 주일 학생은 왜 투표 못합니까. 어리니까 투표를 할 줄 아느냐? 유치원 애들도 선생님이 누가 좋은지 안 좋은지 다 알걸요.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선생님 우선은 섭섭해도 뒤에 다 기억할 겁니다. 우선은 좋게 좋게 해주지만은 어떤 선생님 안 좋은 선생님인지 다 기억할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1 대 1로 돈 놓고 돈 먹는 것처럼 나 하나 너 하나 주고  받으라는 말 아닙니다. 나만 나 할일 하면 됩니다. 상대방은? 맡겨놓고. 나는 이렇게 애를 썼고 이런 마음으로 착했는데 저 인간이 이랬습니다. 저랬습니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일절 그런 말을 하는 거 아닙니다. 2년마다 시무투표를 받기 때문에 저는 지금 이 말씀드리는 겁니다. 2년마다 교인들이 저를 점수를 다 매기고 있습니다. 그 점수를 먼저 받으면서 먼저 받았으니까 이제 하는 겁니다.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주님은 어떻게 하시더냐. 그리고 너만 주변에 그리해라. 이게 복음인데 이게 성경인데 이 귀신들은 주님이 너한테 어떻게 했지? 네가 나한테 그리 하거라. 이게 못된 겁니다. 나라도 이런 인간들이 나라를 갖다가 세계 최고의 나라 될 걸 망하게 하느라고 정신도 없는데, 누가 잘하는지 누가 못하는지 평가는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리 밑에 거지 집안에 누가 와서 그 가정을 일으켜 세웠는지 일으켜 세운 가정을 누가 기둥뿌리까지 뽑았는지 동네는 알 겁니다. 본인은 아니라 해도. 주님 나를 사랑한 것처럼 나는 나 일만 하는 겁니다. 상대방은? 그 사람은 하든지 말든지 그건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주님이 그 가운데는 신경이 지나가니까 아프다 또 옆에 좀 빗겨서 못을 박아라. 주님이 그러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 못 안 박히는 재주도 있고 고통을 피하는 방법도 있고 별별 방법이 다 있지만, 날 구원하기 위해서 그들이 십자가에 매면 매였고 치면 당했지 이래 달라 저래 달라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게 주님 걸어가신 길입니다. 나만 나 할일을 하는 겁니다. 나만 나 할일을 하는데 이걸 1년 할 수 있으면 1학년 10년 할 수 있으면 10학년. 10학년이면 고등학교 몇 학년이지요?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겁니다. 13학년이 되면 대학생이 되는 겁니다. 난 나 할 일 끝까지 한다. 끝까지 하는 건 무조건 상대방 쥐 박게 하고 나는 맞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이렇게 찾고 저렇게 찾아보는 겁니다.

주님이 어떨 때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성전에 돈 버는 상을 둘러엎은 적도 있습니다. 야단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하신 일 전부를 보면 주님은 먼저 자기 할 일만 하고 가셨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은 내용이 비슷합니다. 근데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거의 같다 할 만큼 그렇고 요한복음은 같아 보이는데 완전히 다릅니다. 요한복음 한번 1장 앞에 가볼까요. 142페이지입니다. 태초에 세상이 시작되는 가장 앞에 순간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주님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자기 이름을 말씀이라 했습니다. 왜 이름을 말씀이라 했을까? 볼 수 없는 걸 보여준다고 모르는 걸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님은 이름을 말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가 모릅니다. 근데 주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세계는 이렇다 보여주셨습니다. 그게 요한복음 1장입니다. 14절 밑에 보십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말씀의 이름을 가진 주님이 하나님인데 사람이 되어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다음 18절에 볼까요. 하나님은 본래 본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못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독생 하신 하나님 예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게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게 구원이다. 이렇게 눈에다 대고 보여주셨습니다. 그다음 20절 볼까요. 1장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온 세례요한이 마구 드러내놓고 숨기지 아니하고, 드러내놓고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다 이렇게 온 이스라엘에 광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보여주셨고 세례요한이 떠들고 온 나라에 보여 주셨습니다.

그다음 35절에 보면 예수님이 활동을 시작하는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요한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이 다니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저분이 예수님이라. 예수님이 오셨고 요한이 선전했고 요한이 직접 저분이 예수님이다 지목을 해서 모두들 알려주셨습니다. 그다음 넘겨서 48절입니다. 그런데도 모르니까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을 주님이 불렀는데 나다나엘이,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이라는데 나사의 그 동네에서는 뭐 좋은 게 나올 수가 없는데 그럴 때, 47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에게 그 다음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간사한 것이 없도다. 진실하구나. 그러니까 48절 나다나엘이 어떻게 주님이 나를 압니까. 어찌 아십니까.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 있을 때 기도할 때 네가 찾아온 구약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나다. 딱 알아차렸습니다. 결론은 나다나엘 한 사람은 주님을 알아봤고 나머지는 주님을 몰라봤습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사람 몸을 입고 오셨는데 세례요한이 기적과 표적을 보이며 광고를 했는데 저분이 주님이라고 가르쳐줬는데, 주님을 신앙으로 기도하며 성령으로 딱 알아본 사람은 나다나엘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나다나엘에게 소개한 빌립 이 사람도 맨날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다음 2장입니다.

요한복음 2장 1절. 3일이 지나는 날 갈릴리 가나 동네에 결혼잔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11절에 예수님이 이 표적을 처음 보여줬는데 이 첫 표적을 보이므로, 제자들이 와 물을 포도주로 만드니 주님은 진짜구나 진짜 하나님이구나.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23절을 볼까요.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제자들은 11절에 믿었고 23절에 많은 사람이 주님의 표적을 보고 믿었더라. 믿었으나 24절 예수는 그 몸을 자기를 믿는다고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 인간들 믿는다. 믿는다 해도 전부 가짜배기니까 주님이 표적 기적을 보여주는데 믿었다 했는데도 전부 가짜배기인데, 오늘 1월 18일 수요일 밤 예배에 참석한 이 많은 분들이 제 말을 믿을 리가 있습니까? 주님도 안 믿었는데. 제가 수십 년 이야기한다고 제 말 여기 믿고 따르는 분들 계십니까? 그냥 제 눈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믿을 만하면 예하고 안 믿을 만하면 집어 던져 버리지. 주님의 제자들 그 당시에 주님의 표적을 보고도 그랬는데 골라 먹는 겁니다. 나 좋은 거는 골라 먹고 나 싫은 거 말고 그건 안 믿는 겁니다. 믿는 것은 다 믿어야 믿는 겁니다. 다 믿으면 믿는 거고 다 못 믿으면 안 믿는 겁니다.

주님이 오셨는데 주님을 1장에 보니까 나다나엘 하나 외에 믿는 사람 없고 2장에 보니까 믿는다. 믿는다 하는데 주님이 당신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 예수님 팔아먹을 사람들이니까. 제 앞에 와가지고 아무리 믿는다 해도 제가 앞에서 예 감사합니다. 말만 하지 속으로 정말 믿습니까? 라고는 그렇게 잘 믿지 않습니다. 저도 저를 안 믿습니다. 제 마음이 어떻게 바뀔는지 3장입니다. 1장과 2장의 그런 분위기 1장과 2장의 분위기를 지금 이어가고 있나요? 요한복음 1장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보이는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근데 나다나엘 하나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고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2장에 혼인잔치 결혼잔치에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 보여주는데, 제자들도 믿고 뒤에 보니까 많은 사람이 믿었더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믿었더라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말로야 잘 믿지 뭐. 부부끼리 좋을 때는 뭐라더라 뭐 사랑을 한다나? 연세 좀 되는 분들은 사랑한다. 그런 말 창피해서 아마 안 해봤을 것 같은데. 한순희 집사님 혹시 그런 말씀 써보셨습니까? 한 집사님은 신세대 연세는 할머니라도 신세대인데. 부부끼리 사랑한다? 아이고 낯 뜨거워서 그 뭔 그 말을 안 해도 사랑하는데 그 말을 어떻게 입으로? 요새 것들은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 짓을 합니다. 그 속으로 더한 것들이. 다 그 사랑이란 말은 미제 말이라 그거는 다 가짜배기들 말입니다. 진짜 좋으면 좋다는 말을 못하는 겁니다. 숨이 막혀서.

예수님이 기적 표적을 보여주니까 제자들도 믿더라. 많은 사람들도 믿더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보니까 주님이 자기를 맡기지 않더라. 우선 좋으니까 전부 다 믿는다고 말만 하지 속으로 믿나? 안 믿지. 그러고 나서 3장에 바리새인 중 니고데모라 하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이 하도 굉장한 분이니까 2절에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오는데 왜 밤에 오나요? 남들 볼까봐. 니고데모는 고관대작입니다. 잘난 사람인데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찾아왔는데 밤에 찾아오는 걸 보니까 이 인간 예수님 안 믿는 사람입니다. 시내 다니면서 믿는다고 떳떳하게 자기를 밝히는 분계십니까? 제가 이래 봐도 신풍교인입니다. 총공회 목사 치고 그 말 자신 있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기 교인들 앞에서는 세계제일이라고 악을 악을 다 써놓고 밖에 나가면, 어딥니까? 뭐 저 고신 측입니다. 슬금슬금 다 그냥/ 총공회 옛날부터 그렇습니다. 예전 우리교회 입구에다 대고 총공회 간판 큼직하게 붙여놓고 악 쓰던 목사님 시내 가가지고는 간판 다 떼 버렸던데? 찬송가 다 없애버렸던데? 신풍 시골에서 한 번 큰 소리 치고 객기로 한번 내친 바람에 고함지르니까 은혜 받은 분들도 많았다고 그러는데, 은혜 받은 거는 좋습니다. 근데 그분 어디 가서 공회 말 안합니다. 우리교회 사이트에 저 인터넷에다 대고 총공회 간판 했다고 대구공회 다른 공회에서, 죽이니 살리니 너 때문에 이제 공회가 막 백 목사님 가시고 뽀듯이 자리를 잡는데, 총공회 간판을 갖다가 인터넷에 밝혀서 우리 다 죽는다고 얼마나 생 난리했는지 지금도 그러고 앉아있습니다. 도둑놈도 비겁하면 큰 도둑을 못 합니다. 역적도 커야 혁명에 성공하고 왕 자리를 한번 하든지 말든지 그러지. 여기 니고데모는 예수님한테 물어보면서 밤에 몰래 왔습니다. 왜? 창피하니까 그렇지. 뭔가 궁금해서 알고는 싶은데 남들이 쳐다보니까 3장 23절 넘깁니다.

3장 23절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고 요한이 아직도 옥에 갇히지 않았을 때입니다. 이때도 세례요한이 아직까지 주님을 광고할 때입니다. 근데도 아직도 요한이 그 잡혀 죽게 돼 있는데도 아직까지 요한의 말을 듣고도 긴가 민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다음 4장입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사마리아 동네를 거쳐 가다가, 사마리아 수가 동네에 물 뜨러온 우물에 물 뜨러온 여인을 만나 주님이 몇 말씀 하시는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원래 믿던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가가지고 나쁜 사람이 되었는데, 이스라엘에서 볼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아주 그냥 잡종들 몹쓸 인간들인데, 이 동네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면서 이 동네 사람들은 주님을 믿고 따랐더라. 참 알다가도 모릅니다. 잘 믿는다는데 잘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 믿는다는데 택도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주 못 믿는 사람 못 믿는다고 소문이 났는데 과연 못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 참 더럽게 믿는다. 욕은 얻어먹어도 그 속에 숨은 보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함부로 쉽게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4장 그리고 이제 5장으로 넘어갑니다. 요한복음 5장 유대인의 명절. 유대인의 큰 명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그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견 성전 다 그 주변입니다. 베데스다라는 못에 넘겨서 5절 38년간 일어서 보지 못하고 누워만 살던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일어나 버렸습니다. 근데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병신이 병 나은 것은 좋은데 왜 하필 안식일에 병을 고쳤냐. 이래가지고 또 예수님 죽인다고 생난리입니다. 이게 믿는 겁니까? 아무리 예수님이 좋아도 내 비유에 맞고 내 체면에 맞고 나를 건드리지 않아야 예수님이지, 내 밥그릇 건들면 그때는 예수고 하나님이고 있는 대로 다 처형해버린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딱 계산해봐가지고 요면 조면으로 나한테 좋게 좋게 좋게 하면 좋은 교회고, 티끌 하나라도 건드는 날에는 뭐 그냥 떼거리로 와가지고 그냥 요절을 내버리지. 어느 목사가 간 크게 고함지르겠습니까. 떼거리로 몰려 올 사람보다 더 독한 목사면, 아니 늑대가 뭐 호랑이한테 분풀이하러 가겠습니까? 광화문에 전 뭐시기 목사님은 육두문자 해 버리니까 다른 사람 근처도 못 간다고 깡패보다 더 깡패니까. 악을 악으로 이기는 것은 교회가 쓸 수 있는 칼은 아닙니다. 금으로 서면 금으로 망한다. 악으로 깡으로 이기면 악으로 깡에게 나중에 망해야 됩니다. 그래서 악과 깡과 힘이 있어도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뒤에 보면 더 났습니다.

그 다음 6장입니다. 지금 요한복음 1장에서 6장까지 처음으로 한 번씩 훑고 있는데 다 흐름을 보고 계십니까?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습니다. 1장. 그 다음 2장에서는 세례요한이 먼저 와가지고 예수님을 다 알려주셨습니다. 저분이다. 그런데도 믿는 것 같으나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다음 3장에서는 니고데모가 밤에 와가지고 살며시 물어봅니다. 그 믿는다는 사람도 알고 보면 다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 다음 4장에서는 사마리아라는 안 믿는 나쁜 동네를 갔는데 이 동네 사람들은 대거 믿었습니다. 참 누가 신앙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쉽게 말하는 게 아닌 겁니다. 평생에 중매 서면서 늘 속으로 가지는 겁니다. 참 보배롭다 싶으면 전부 다 쏙쏙 빠져나갑니다. 저쪽은 참 지뢰밭인데 싶으면 모두 거기에는 못 가서 생난리입니다. 그러니 가서 당해야 싸고 황금 밭에 황금을 캐면 먹으면 복이 있는 거고 그런데, 또 금 밭에 가서 금 캐는 사람은 그게 금인지도 몰라서 그것도 문제입니다. 금이 이렇게 금반지금처럼 그렇게 나오는 줄 알지요? 금은 그렇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금광석으로 나오는 거지. 금을 알아보는 사람은 금을 알아봅니다. 어쨌든 금광에 가서 금을 캐야 쉽습니다. 파쇠 석 저 돌 깨는데 가가지고 금반지 찾는다고 생 온 산을 다 무느고 그 무슨 꼴인지. 개인적으로 모두들 우리 교회 안에 저 가정이 제일 그림같이 부럽다 싶은 거 하나만 찍어 저한테 한번 가져와 보십시오. 그 가정의 내력과 비밀을 다 말씀드려 볼게. 아이쿠 거기가 생지옥이구나. 다 그럴 겁니다. 정말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배와 같아서 그 일반 사람들이 잘못 알아봅니다.

이건 중매 서는 자리가 아니니까 이렇게 1장에서 5장까지 오고 그다음 6장에 드디어 주님이 오병이어로 수만 명을 먹였습니다. 이제 이 정도면 모두가 알아차려야 될 건데 15절. 주님을 임금 삼아 놓으면 먹고 사는 데는 좋겠구나. 세상에 주님을 보건복지부 급식소 인줄 알았습니다. 이걸 주님을 안다 했으니 아는 겁니까? 모르는 거지. 그래서 주님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아라 인간들아. 그게 요한복음 6장입니다. 그리고 7장으로 넘어가면 초막절이라는 중요한 명절이 있었습니다. 그 초막절에 주님이 올라가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형제들이 친 형제들이 형님은 좀 남들한테 자랑하고 선전하는 게 평소던데, 이 초막절에 다 모이는 성전에 안 가시냐고 말도 딱 그렇습니다. 주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 소리 하는 겁니다. 이게 요한복음 7장이고 그다음 요한복음 8장으로 넘어가면, 어느 여인이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적발이 됐는데 현장에서 적발 된 이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됩니다. 돌로 때려죽이려고 그럴 때 주님이 돌든 사람들에게 죄 없는 놈들부터 한번 던져봐라. 하니까 모두들 그냥 슬금슬금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 요한복음 8장을 가지고 죄를 지어놓고 요한복음 8장에 보니 주님은 책망하지 않더라. 그 소리 하는데 주님이 그 여자를 살려놓고 11절에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앞으로 죄 짓지 말라고 살려줬지 이제 죽을 걸 살렸으니까 또 죄를 지어라. 이게 성경 반대로 가르치는 나쁜 교훈입니다.

텔레비에 나오고 광고에 나오고 잘난 이 사람 저 사람 떠드는 소리 거의 전부 다 이 소리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고 사랑의 종교고 순 거짓말쟁이들. 죄인에게 죄짓지 않는 길을 열어줬지 죄인한테 구사일생 살려서 또 죄를 지으라고 기회 주는 거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나쁜 놈들입니다. 자기도 자기를 향하여 자기 주변도 그렇게 보셔야 됩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이 쭉 흘러갑니다. 오늘 저녁 아무리 들어도 아무리 배워도 아무리 읽어도 내 속에 자세와 생각이 빼딱하면, 말씀을 들을수록 점점 더 악한 인간이 돼버립니다. 자기 자세를 모두 좀 살펴보셔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 중심 내 자세 방향이 잘못되면 믿을수록 말씀을 알아갈수록, 더 나쁜 사람 되고 마지막 십자가에 예수님을 죽여 버리는 이런 데까지 가게 돼 있다. 자기 속에 자기를 먼저 못 박는 사람 되자 하는 겁니다.



1차: K.Y.Y

Comments

Category
State
434,162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