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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7 화새
제목 : 구원의 손해 안에 넘치는 감사와 기쁨, 그런 복된 사람이 하나님 사랑 목적
찬송 : 89장(주의 말씀 듣고서)
본문 : 요한복음 15장 10절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사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보니 기쁨이 넘치게 되었다, 이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님의 계명을 지키라,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 충만한 주님 그 주님의 기쁨으로 우리도 충만케 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이렇게 순서를 세 가지로 잡았습니다. 계명을 지키면 사랑이 온다, 사랑이 오면 그 사람이 기쁨을 넘치게 한다.
발전소에 넘치는 전기가 전선을 따라오지 전선 끊고는 우회하지를 못합니다. 발전소에 넘치는 전기가 전선만 이어 놓으면 무한정으로 가정에 전기가 들어오고 이 전기로 난방도 냉방도 요리도 세탁도 진공청소기도 뭐 요술도 이런 요술이 없고 이거 100년 전에 이 나라 고종 황제가 세계 어느 나라 임금이라도 이 전기가 들어와서 한 시골의 가정을 지상낙원으로 만드는 것을 꿈이나 꿨겠습니까? 냉난방 저절로 돌아갑니다. 또 부엌에 요리도 냉장고도 전기 오븐도 연기 하나 없이 돌아갑니다. 진공청소기에 전기장판에 또 밤새도록 켜놔도 되는 전기 불에 이게 하나입니까 열 개입니까, 뭐 밥도 전기밥솥이 저절로 알아서 다 해버립니다. 발전소의 무한한 전기가 전선으로 연결만 해놓으면 이렇게 되어 집니다.
저수지에 넘치는 물이 수도관 연결만 해놓으면 마구 틀어 써도 되는 이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발전소만 못 하겠습니까? 저수지 물만 못 하겠습니까? 이번에 몇 십 년 만에 주암댐 바닥까지 내려가 물이 어렵게 됐다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주암댐 한번 물 구경해봐 보셨습니까? 끝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많은 물도 결국은 몇 년 가물어 버리니까 바닥이 드러나더라, 저수지 물은 바닥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발전소는 사고가 나든 무슨 일이 날 수라도 있습니다. 저거 백 년 이백 년 가는 건 아닙니다. 한 삼 사십 년 그리 간다고 그러지요.
하나님은 영원불변입니다. 그리고 무한입니다. 그리고 절대 완전입니다. 이 무한한 은혜가 이 무한한 능력이 발전소처럼 전기는 와도 발전소에서 수도까지 주는 것은 아닙니다. 주암댐에 물이 들어오는 거지 주암댐이 아무리 크다고 우리에게 전기 주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은혜만 주실까? 구원의 사랑만 주실까? 낮에 하늘에 태양만 조절하는 분일까? 내 건강만 관리하는 분일까? 악령만 막아주는 분일까? 하나님의 은혜는 종류가 없이 전부입니다. 분량이 한없는 무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오기만 오면 이거는 뭐 만병통치고 이거는 저절로 끝없는 해결이 되어 집니다. 어느 정도인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던 마지막 순간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어서 천주교처럼 오래된 교회들은 주님이 우주적인 고난으로 말도 못하게 괴로워 그냥 막 온갖 만상을 다 찌푸렸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냥 못 견디는 고문의 끝에 절규가 나온 거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세월이 지나가며 신앙이 좀 밝아지고 나니까 주님이 자기 몸을 십자가에 버려야 택한 백성 전부를 영원한 천국으로 옮길 수가 있고 오신주님이 자기 몸을 십자가에 버려야 지켜보는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 성부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100%로 만족할 수가 있고 그리고 주님이 당신의 몸을 던져야 그 몸이 고통을 받는 만큼 우리는 그 고통이 없어지고 천국의 영원한 기쁨이 생겨지니 주님은 감당할 수 없는 감격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감탄으로 내 몸을 버려 하나님 아버지 기뻐하시고 택한 모든 백성이 끝없는 기쁨을 가지게 되어 이 감사 견딜 수가 없나이다, 이렇게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들이 서울대 의대 합격해서 등록금을 달라는데 그 돈을 송금하면서 어떻게 번 돈인데 이런 팔자를 봤냐, 하고 엎어져 땅을 치고 통곡하는 부모 혹시 보셨습니까? 아마 서 시장에 그 추운데 찬바람 맞으며 촘촘히 앉아 생선 하나 나물 하나 팔며 하나 팔아 천원, 몇 천원 이렇게 벌면서 쭉 앉아 있는 분 노름해서 빚 갚는 할머니들은 팔자타령 할 겁니다. 그런데 그 돈 모아 서울대 의대 등록금 송금하는 엄마는 뭐 자부심이 그 얼굴의 기쁨이 넘칠 겁니다. 그런데 말은 좋다, 그리 말하십니까? 아이고 죽겠네 그 말하십니까? 예쁘면 예쁘다 그러는데 너무 예쁘면 예쁘다 그러지 않고 밉다고 그럽니다. 그 다음 그보다 더 예뻐 버리면 그냥 밉다고 그러지 않고 미워 죽겠네 라고 그럽니다. 미워 죽겠다 라는 그 말을 옆에서 녹음해서 증거로 남겨 놓고 그래 죽고 싶으니 죽여 주마 그러고 죽인다면 그거 정신병 환자 아니겠습니까? 미워 죽겠다는 말을 저 놈이 미워 죽여 버리고 싶다는 살인의 의사로 읽느냐? 국어학자들은 아마 그렇게 해석할 겁니다. 등신 같은 국어학자들.
컴퓨터 요즘 자동 번역기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말을 하면 영어로 바로 번역을 해 주는 그런 기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지고 계시는 휴대폰에 그런 기능이 있어요. 아마 그 휴대폰 기능에도 미워 죽겠네, 그러면 미워서 나는 곧 죽게 돼 있다, 그렇게 번역 할까 싶습니다. 그런 번역도 있을 것이고 좋아 죽겠다, 그렇게 번역하면 그거 좋은 기계일 겁니다. 기계도 앞으로 아마 이렇게 바뀔 겁니다. 미워 죽겠네.
새벽에 안 나오셨으니까 또 한 마디 하지요. 한 25년, 25년, 26년 됐을까? 시내에서 12인승우리 교회 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군대 가기 전이었고 너덧 살짜리 남자 아이 탔는데 엄마가 보는 데서 운전하는 청년이 남자에게 그 녀석 미워 죽겠네, 이랬답니다. 엄마가 펑펑 울어요. 교회 와가지고. 운전하는 남자애가 우리 애를 미워서 죽겠다 그랬다고. 제가 그 말을 어떻게 번역해서 들었냐면 우리 애가 얼마나 예쁜지 자랑하러 왔다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예, 걔가 예쁘긴 예쁩니다. 전부가 예뻐서 죽을 정도인데 운전하는 청년이 너무 예쁘니까 그건 네댓 살짜리면 나이보다 더 예쁜 거 혹시 보셨습니까?
20대에 전국이 다 쳐다보던 사람 80 할머니 되고 90 할머니 된 사진 한 번씩 혹시 보셨습니까? 나이보다 더 예쁜 것은 없습니다. 엄마가 그냥 네 댓 살짜리 애를 예뻐서 죽어버리겠지. 그 운전하는 남의 집 청년이 봐도 그렇게 예뻤으니까.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이걸 자랑을 해야 되는데 우리 애가 예뻐서 그냥 막 그러더라, 그 자랑을 반대로 말한 거겠지. 뭐 그냥 저는 그래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애 자랑도 가지가지 갑도 한다.
주님이 우리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내가 이걸 갖다가 왜 이런다고 왔겠는가? 그러면 주님도 죄인 됩니다. 후회가 죄가 됩니다. 후회라는 것은 말씀을 어긴 죄 위에 내 멋대로 산 불의의 죄 그 위에 하나님과 원수 된 죄가 있고 그 제일 꼭대기 위에 죄가 절망의 죄입니다. 절망의 죄 안에 후회라는 것이 들어있습니다.
후회하시는 분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 해석이 바로 죽기 전날 게시마네 동산에 기도할 때 그 해석이 들어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옵소서” 성부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모든 소망 소원이 우리를 천사 정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지었는데 구원이 되어 하나님 없는 세계를 겪어보고 그리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 아들 이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나가서 세상 생고생 다 하고 돼지 먹는 쥐엄 열매 훔쳐 먹고 돼지 먹는 사료조차 배를 채울 수 없게 되자 아버지 집에는 먹는 것만큼은 넘치는 품꾼들이 있지 않냐, 먹는 것은 풍족한 품꾼이 있지 않냐, 이 먼 나라에서 돼지 사료로도 배를 채우지 못하는 이신세로 사니 아버지 집에 아들이라는 이름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겠고 그냥 품꾼 하나로 써주시라 그리고 돌아가겠다, 하고 들어왔습니다. 돌아온 아들이 아들이 아니라 부려 먹는 종으로 그냥 하나 봐주시라 그러고 돌아왔습니다. 그 자세 이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아버지가 좋은 분이었구나, 아버지 품 안에 있을 때가 엄청 좋았구나, 아버지 떠나고 나니까 좋은 것이 아니라 망할 기쁨 망할 쾌락에 돼지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구나, 그리고 돌아오면서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품꾼 중 하나로 봐 달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사랑을 못 느끼는 아들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못 견디는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다른 것은 하나님이 전능으로 다 챙겨줄 수가 있는데 감사라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챙겨줄 수가 없습니다. 온갖 것을 은혜로 선물로 다 줄 수 있는데 감사의 느낌만은 본인이 느껴봐야 알지 그 느낌을 대신 밀어 넣어줄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느껴보지 못한 감사를 밀어 넣어버린다면 그건 기계입니다. 그건 노예입니다. 그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자유성을 가진 인격자가 아닙니다.
이게 하나님의 목적이다 보니 우리가 죄를 지어야 되고 죄를 지었는데 구원을 받아야 되고 죄를 지어 지옥 갈 것이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직접 와서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당해야 됩니다. 그러시려면 성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그 몸을 십자가에 던져야 되고 모든 고통을 다 당해야 되고 그 고통을 당하면서 억울한 것이 아니라 후회가 아니라 괜히 내킨 걸음에 왔다가 이게 뭔 팔자냐, 그런 팔자타령이 아니라 이 피조물 인성을 제단 위에 재물로 바쳐 아버지 좋아하도록 아버지가 그렇게 바라보시는 자녀들이 전부 구원 얻게 되었으니 참 감사하다, 굳이 이걸 우리 생활로 바꾸어 말한다면 엄마가 실컷 먹고 아이가 그 엄마의 젖을 잘 먹으면 그게 엄마가 억울한 거겠습니까, 기쁜 것이겠습니까? 엄마가 먹을 것이 있고 엄마의 젖이 넘치고 아이가 젖을 쪽쪽 빨아 먹으면서 토실토실 잘 자라게 되면 이 놈이 나를 착취하는구나, 억울하다 그럽니까? 그 기쁨 그 만족 그 모습에 모든 고생을 다 잊어버립니까? 어머니의 사랑을 안다면 세무서 돈 내는 것은 아까울지라도 노름한 돈 빚 갚는 돈은 억울할지라도 내가 먹고 내 피가 되고 내 살이 된 나를 젖으로 빨아먹고 토실토실한 아이에 대한 그 모습에 목숨을 걸 모정이 생길 겁니다. 그건 기쁨이 아마 넘칠 겁니다.
서울대 의대 수석 합격하는 아이의 생활비를 보내는 부모의 돈은 고생한 보람의 10배 100배가 넘칠 겁니다. 그 자랑을 못해서 그냥 죽어버릴 겁니다. 그런데 그냥 자랑하면 제 자랑한다, 옆에서 눈치 할까 봐 아, 또 등록금 보내게 됐네, 또 생활비 보내게 됐네, 입에서는 투덜거리는데 그 얼굴의 만족과 긍지가 막 넘쳐날 듯합니다.
주님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말은 아버지의 소원이 우리 구원이니 우리 구원의 길을 걸어간 것이 주님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 겁니다. 그 다음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이번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주님에게 온 것처럼 그 십자가의 그 모든 고난이 다 기쁨이 된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주님의 계명은 내가 널 구원했으니 너도 주변의 식구들 신앙에 도움이 되도록 애 좀 써 보거라, 좀 수고해 보거라, 그리고 다른 사람 신앙 도움 되도록 내가 손해 볼 그런 기회에 희생이 되고 손해가 되었다면 주님의 넘치는 사랑이 우리 속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그 세계를 눈치를 채고 나면 남들이 못 간다는 선교를 가는 선교가 해외 관광이 아니고 진정한 선교가 되듯이 지금은 뭐 멀리 선교 갈 것 없이 세계 모든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나라 돈 번다고 결혼 때문에 와 있으니 주변에 그 어려운 분들 마음껏 챙기시면 가는 선교 100분의 1의 노력으로도 성자 성녀 소리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럴 때 미쳤어? 내가 그들을 위해서 왜?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고 가는 선교는 못해도 주님이 내 주변에까지 업어다 놓고 부탁했으니 이 정도를 못 해서야 되겠나? 정신머리가 이쪽으로 방향을 딱 틀면 모든 것은 저절로 해결이 되게 돼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분량으로 많다 적다 그러지 마시고 근본 자세 방향이 바로 잡히면 그 즉시 바로 천국에 누리는 감사와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이 새벽에 나온 것도 가족과 주변에 기도해야 될 사람 위해서 이 아침에 어려운데 일어나셔서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기도 하나와 따뜻한 이불에 누워서 옹알거리다가 기도하는 것과 아마 다를 겁니다. 주님이 볼 때 맞다 옳다 참 그 중심 사상이 복이 있다, 그러도록 애타는 마음으로 가정가정 두루두루 마음속에 넣고 기도 하십시다.
1차-k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