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3.1.16 요15:11 성부의 뜻 성자의 사랑의 계명, 돕고 동참하는 우리 수고 위에 삼위의 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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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3.1.16 요15:11 성부의 뜻 성자의 사랑의 계명, 돕고 동참하는 우리 수고 위에 삼위의 견인

서기 0 56 01.1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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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6 월새

제목 : 성부의 뜻이 성자의 사랑의 계명, 돕고 동참하는 우리 수고 위에 삼위의 견인

찬송 : 28장(갈보리산 위에)

본문 : 요한복음 15장 11절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개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기도드리겠습니다.
세상도 땀 흘려 수고하며 이루는 것이므로 영생 나라를 순종 하나로 이룰 수 있도록 중생과 모든 은혜의 세계를 우리 앞에 주신 주님 믿음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이런 은혜 이런 쉬운 것을 고난이라 어렵다 라고 생각하는 우리 속에 깔린 마음을 씻어버리고 기회 주신 오늘의 충성 오늘의 하루를 감사함으로 있는 힘 다하는 이 아침 저들의 출발되게 해 주옵소서. 진행되는 건축에도 또 5월과 8월을 준비하는 모든 집회와 공회사 모든 것을 담당하고 활동하는 모든 종들과 오늘 하루의 우리 교회 교인들 결혼과 출산으로 시대를 맞설 우리 청년들 두루 살펴 주의 은혜 가운데 하루가 복되게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나를 구원하기 위해 고난당하신 주의 그 희생이 구원의 사랑 성경의 사랑이라 합니다. 성부 하나님 이 땅위에 성자 예수님을 보내시고 성자 예수님이 부탁한 것 필요한 전부를 다 주셨으니 성자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오셨지만 성자 하나님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출발도 목적도 전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 성자 예수님의 이 땅 위에 모든 것 성부 하나님이 늘 동행했고 필요한 전부를 다 쏟았으니 이게 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입니다. 그대로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에게 쏟아 부은 사랑은 우리가 알지를 못합니다.

발전소 안에 돌아가는 전기의 양과 내용을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큰 공장이 돌아가고 지하철이 움직이고 전철이 ktx로 날아다니는 걸 볼 때 그게 발전소에서 온 전기지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불이 아닙니다. 또 전국이 전부 한 겨울을 히터로 이렇게 떼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발전소 안은 들여다볼 수 없으나 발전소에서 공급되는 전국과 공장과 모든 움직이는 걸 볼 때 그 발전소를 짐작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에게 쏟아 부은 사랑은 삼위일체 내부에서 오간 것이라 우리가 알 도리는 없지만 오신 주님을 보면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그다음, 성부 성자의 사랑이 우리에게 중생으로 영생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향하는 이 면을 보고 우리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성자 예수님에게 있었더라 10절. 그렇게 된 이유가 아버지의 계명을 성자 예수님이 지켜 성부 하나님 사랑 안에 거했다, 발전소의 전기가 아무리 넘쳐나도 송전되는 전선이 끊어져 버리면 발전소 전기가 있고 말고 필요 없이 전달은 되지를 않습니다. 성자 예수님에게 쏟아진 모든 성부 하나님의 사랑 모든 은혜는 성부 하나님의 뜻 그게 계명인데 하늘의 하나님이 그냥 계셔도 되는데 아들이 죄를 지어 지옥 갈 죄를 지은 이 상태를 성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죄 지은 택자를 지옥 보내지 않을 수는 없고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이 지옥 갈 우리를 보며 가슴 아파하시고 이걸 구원해야 되겠는데 성부 하나님은 죄 짓는 죄는 전부 지옥에 쓸어 넣어버려야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냥 볼 수 없고 아버지의 공의는 죄인을 지옥 보내지 않을 수 없고 이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저 죄를 누가 가서 해결하고 구원을 해야 될 터인데 이게 성부 하나님 속에 들어있는 고민입니다. 이게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 아버지의 과제가 성자 예수님에게 그게 계명이 되어 진 겁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일계명이 있고 오계명이 있고 십계명이 있고 구약이 있고 신약이 있고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고 이럴래? 저럴래? 이런 게 있지만은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는 계명을 지키라 말라 벌을 준다 안 준다 이런 계명이 있겠습니까? 성부 하나님의 마음 택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 지옥 가는 거는 두고 볼 수 없고 아무리 자녀라도 지은 죄는 명확하게 지옥을 보내야 되겠고 이게 아버지 하나님 마음속의 갈등입니다 고민입니다.

이 마음 이 고민 이 뜻을 성자 예수님이 가야 할 길이었고 자원함으로 나서야 되는 그런 의무였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밀어내고 눈치를 줘서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 마음속에 혼자 가신 이 고민이 성자 예수님의 계명이 된 겁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고 그 마음에 맺힌 것을 풀려고 원하고 원함으로 오신 겁니다. 원함으로 오는 것은 아버지가 막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뜻 이게 예수님에게는 계명이 되었고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러 나선 그 길에 성부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10절에 오신 주님은 아버지 사랑 안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 관계처럼 오신 주님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살펴 오신 주님 그 주님의 마음은 나만 구원받았으니 나만 천국 가면 되는 것일까? 내가 천국 가므로 다른 거는 다 지옥을 가도 나하고 상관이 없는 일일까? 먼저 구원받은 우리가 성자 하나님이 땅위에 오셔서 고난당하신 그 과정 그 고통과 그 아픔을 전부 헤아려 먼저 믿은 내가 아직도 신앙 밖에 있는 이들을 나보다 신앙에 뒤처진 이들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있는 힘 다하되 주님처럼 하는 것을 원할까? 주님의 소원 주님 마음에 맺힌 과제 그게 우리에게는 계명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면 계명은 뭔가? 12절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이 아버지 뜻 아버지 계명 아버지 소원을 헤아려 자원함으로 오셔서 고난을 기쁨으로 당한 것처럼 너희도 주님의 소원 주님의 뜻을 스스로 헤아려 먼저 믿은 내가 안 믿는 주변을 전도하는 것이 옳겠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원하고 원함으로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나의 복이고 나의 사명이고 이게 주님의 뜻이겠다, 아버지 계명을 지키니 아버지의 모든 능력과 사랑이 주님에게 온 것처럼 주의 뜻을 헤아려 걸어가는 나의 걸음에는 성부의 모든 것이 성자에게 왔고 성부와 성자의 모든 것이 이번에는 우리에게 쏟아지는 겁니다.

이거는 영광의 길이고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택한, 그리고 중생된 우리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이니 이거는 우리의 자랑이요 영광이요 명예요 영생이며 이 일하는데 세상 어떤 불편한 것도 치워버리고 이 일에 내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거부도 저항도 나 스스로 꺾어버리고 그리고 걸어가는 걸음이 우리의 걸음입니다. 그렇다면 말로는 좋은 길이고 이치적으로는 합당하나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가 너무 고난이지 않는가, 천국 가게 된 우리가 나만 천국 가면 되지 주변의 신앙을 위해 애쓴다는 것이 이 바쁜 세상에 가야 할 길도 많은데 내게는 너무 큰 희생이 아니겠는가, 이런 자문자답 또는 악령이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는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오니 주님에게 기쁨이 넘쳤더라, 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성부 하나님 원하는 길을 걷게 되는 순간 성부 하나님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성자 예수님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발전소 안에 있는 모든 전력이 전부 다 전선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성자 예수님의 뜻을 헤아려 오늘 하루도 내가 먼저 말씀으로 살고 내 주변에 내가 노력함으로 말씀으로 사는 데 도움 되는 일을 위하여 도움 되는 이들을 위하여 나 할 일을 당연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움직이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그리 될 때 성부의 은혜가 성자에게로 성부와 성자의 은혜가 그 다음 우리에게로 들어오게 되어 지는데 이게 발전소의 전기가 모든 전선을 향하고 그 모든 전기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겨울이 이렇게 여름처럼 여름이 겨울처럼 임금님도 서울에서 부산 여수 오려면 열흘 아니고는 못 오는 건데 업혀 와도 들려와도 열흘 걸리는데 신풍 바닷가 빈손 든 우리가 눈 깜빡하면 서울까지 날아갑니다. 호텔처럼 드러누워서라도. 이게 성부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성자에게로 성부와 성자의 은혜와 능력이 다른 사람의 신앙을 살피는 우리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살아가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나 할 일인가? 나의 수고 나의 관심 나의 행동 속에 천지를 만들고 운영하는 이 은혜가 그다음, 중생과 중생자에게만 쏟아지는 특별 은혜가 이 두 가지가 우리에게 물밀듯이 들어오게 됩니다.

받고 보면 넘치는구나, 나의 수고는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직였고 입 한번 움직였는데 삼위일체하나님이 통째로 나를 통해 역사를 하시는구나, 이걸 보여주기 위해 노와 홍수의 노아의 순종의 끝도 보여주셨고 모세의 지팡이 한 번 움직일 때 천지가 진동하는 역사도 보여주셨고 그 못난 어린 다윗 하나 가는 길에 승리와 영광과 능력을 펼치며 믿는 사람의 말씀 순종의 한 길이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그 수고 하나 끝에 맺어지는 게 이런 거다 라고 이렇게 보여주신 하나의 본보기입니다. 그들을 통해 역사한 모든 역사가 성부 성자의 역사였듯이 오늘도 말씀 생활하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말씀 생활로 돕고 수고하는 우리의 수고 하나하나에 하늘과 땅과 일반 은혜 특별은혜 전부는 우리 속을 먼저 채우고 나가지 우리를 비껴 우회하고 건너가지는 않습니다. 그 사랑을 받고 보면 참 넘친다, 감당치 못하겠구나.

그래서 이 은혜에 감동하여 넘쳐 걸어가는 길 주님이 마지막 십자가 못 박히려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 아직까지 한 번도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얹어보지 않은 일하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탔습니다. 나귀나 말이나 소가 사람이나 짐을 싣기 위해 안장 멍에를 등에 얹으면 그 여린 등에 안장이 굳은살이 박히고 이렇게 자리를 잡기까지 그렇게 견디기가 어려워 이걸 길들이는 데 어렵답니다. 한 번도 등짐을 지어보지 않은 나귀 위에 어린 나귀 위에 주님이 올라앉았습니다. 무거울 터이고 등에 처음으로 성인 하나를 태우니 짐이 되어 그냥 불편했을 것이고 그런 또 가는 길은 그렇게 먼지 이 나이가 그냥 이 짐을 벗어버리고 싶을 것이고 갑갑할 것이고 무거울 것이고 힘들 것인데 이걸 오늘의 동물 애호가들 저 왼쪽에 있는 것들이 보면 어떻게 만유주 하나님이 저렇게 어린 나귀 새끼 위에 홀짝 올라 타가지고 그 어린 아기를 못살게 굴고 저렇게 괴롭힐까 그건 동물학대죄에 해당 된다 그럴 겁니다.

인간 보기에는 동물학대로 보였지만 어린 나귀가 주님을 등짝에 모시고 갑니까? 그 등짝에 올라앉은 주님이 만유주 하나님이라 어린 아기를 보듬고 가겠습니까? 내가 주일을 지키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돈을 손해 봤는데 내가 말씀 때문에 내속에 일어나는 화딱지를 누르느라고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내가 저 사람 말씀 생활하도록 밀어 준 게 얼마고 손해 본 게 얼만데 우리는 주님 앞에 펼쳐놓고 이렇게 손해를 봤고 희생을 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고 울어대지만 뭘 몰라 그런 겁니다.

그런 길을 알도록 깨달음 주신 분이 성부와 성자의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성령이었고 그 길을 걸어가는데 하늘도 땅도 천지를 진동시켜 밀어준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는 공짜로 간 겁니다. ktx 아마 차 한 칸의 무게가 50톤이 넘을 겁니다. 그게 열 개를 달면 500톤이 넘을 겁니다. 그 500톤 기차를 내가 당긴다고 그게 가고 말고 아닌데 모르는 사람이 ktx 의자에 앉아가지고 앞에 발받침을 열심히 밀면서 내가 밀어야 ktx가 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좌석 앞에 있는 발받이를 열심히 밀면서 오 기차가 간다, 간다 자기 혼자 난리입니다. 기차 안에서 민다고 기차가 갑니까? 밖에서 끈다고 갑니까? 기차가 모시고 가는데 물리를 모르고 물질의 이동에 역학을 모르니까 500톤짜리 기차가 마구 시속 300km로 달리는데 그 안에서 자기가 차를 민다, 끈다 막 그냥 열심히 한다 무식해가지고 하는 혼자의 요동입니다. 이게 말씀 생활 하면서 어렵습니다, 뭐 힘이 들었습니다, 저도 애를 썼습니다. 저도 십자가의 길에 이렇게 동참했습니다. 그 소리가 다 무식한 소리입니다.

어떻게 이런 길을 내게 보여주셨을까? 이 길을 어떻게 가게 해주셨을까? 나는 순종한다고 했지만 내 순종의 풍선 껍데기 속에 알맹이는 전부 주님이 다 하셨는데 사도 바울같이 깨달은 사람은 주님이 다 하셨지 저는 한 적이 없습니다. 짐만 되었지. 이게 정답입니다. 이렇게 또 적어 놓으니까 예배당 운영을 제 멋대로 다 휘저어 놓고 마지막에 또 이제 발표할 때는 겸손한 척 하느라고 예배당 건축 이렇게 한 거 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은 네놈들 마음대로 했지 내가 이렇게 돈 들여서 이런 미친 짓을 하라 그랬어? 그런데 여기다 대고 또 주의 이름을 갖다 얹어버립니다. 이건 뭐 하늘과 땅 차이에 모든 모순을 잠깐 말씀드리는 겁니다. 똑같은 하루를 복되게 감사히 죄송한 마음으로 읽는 힘 다하도록 충성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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