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3.1.14 요15:5 말씀과 주의 뜻 안에 포함 유무, 대립의 현실 비교 판단, 본질에만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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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3.1.14 요15:5 말씀과 주의 뜻 안에 포함 유무, 대립의 현실 비교 판단, 본질에만 동행

관리1 0 41 2023.01.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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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4 토새

제목 : 말씀과 주의 뜻 안에 포함 유무, 대립의 현실 비교 판단, 본질에만 동행

찬송 : 18장(내 진정 사모하는)

본문 : 요한복음 15장 5절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죄인이 죄 짓는 데는 상관이 없습니다. 두고 갈 세상 건설에는 주님 없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이 없어야 더 나을 겁니다. 말씀 생활에는 사죄, 주의 뜻으로 사는 칭의의 생활에는, 주님과의 동행의 생활에는 하늘을 준비하는 영생의 소망의 생활에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할 수도 없고 해봐야 헛일이 되어 집니다.

안 믿는 사람이 주일을 휴일로 보내는 것 그거는 4계명 지키는 게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 사회에 기부하듯이 교회를 출석하니까 회원이 회비로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는 것 그것도 연보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얼마든지 기사 있고 기부 있고 자기 단체를 위한 헌신도 있고 의무도 있고 봉사도 있습니다. 남자의 군 생활을 봉사라 그럽니다. 국가를 위한. 국가를 위한 세금 납부도 있습니다. 복음운동에 쓰는 연보와는 다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가지가 둥치에 속해야 가지가 둥치에 소속을 하고 가지가 둥치에 포함이 되고 가지가 둥치주는 것만 받아야 그게 가지입니다. “저가 내 안에” 그 다음 내가 “저 안에”서로서로 상호 내주를 말합니다. 그리 될 때 “과실을 많이 맺나니” 무엇이 과실인가 ?잘 믿는다는 칭찬이 과실입니다. 뭐가 잘 믿는 건가? 불신자가 죄악 세상 살아가는데 밀어주고 도와주니 잘 믿는 건가? 그거 아닐 겁니다.

애국자를 뽑을 때는 북한에서 욕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남한의 애국자입니다. 남한에서 제일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이 북한의 애국자입니다. 경찰이 못 잡아들어 환장을 한 도둑놈이 여수의 제일 큰 도둑일 겁니다. 여수의 도둑들과 깡패들이 제일 미워하는 경찰 뇌물도 안 받지 연락도 안 해주지 잡았다면 바로 처벌해버리지 도둑과 경찰들이 제일 지탄하고 지탄하고 제일 욕하는 경찰 안 봐도 최고의 경찰입니다. 온 나라의 도둑들이 욕하니니까 그 경찰이 나쁜 사람이라, 거꾸로 가는 겁니다.

안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세상 사는데 도무지 못 견디겠다, 그 좋은 교회입니다.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려니까 어려운 교회다, 그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세상에 안 믿고 살려니까 도와주는 교회? 나쁜 교회입니다. 그 영광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그냥 교회를 팔아 세상을 사고 세상을 천국을 팔아 세상을 사는 적기독입니다.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팔겠다고 유다가 제안을 하니까 대제사장들이 기뻐하며 돈을 줬더라, 기뻐하며, 그렇게 적혔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제자 가룟 유다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안 믿는 세상이 한국의 교회 중에 어느 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인가, 안 봐도 그 교회가 제일 나쁜 교회입니다. 불신자도 인정하는 교회, 불신자도 좋아하는 교회, 불신자도 박수치는 교회, 불신자들이 저 교회에 다니면 세상 죄 짓는데 별로 불편이 없더라, 오히려 도와주더라, 그건 복음 운동이 아니라 멸망 사망의 운동이 되어 집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세상 도둑들처럼 그러는 것은 아니고 말씀으로 바로 살 때 나는 교회와 체질이 맞지 않으나 교회가 좋은 교회라면 꼭 그렇게 하는 것이 맞겠다. 그게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불교를 믿지 않지만 고기 안 먹는 중이 있다더라, 그러면 중이 중답네, 고기 못 먹게 하는 절이 있다더라, 절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왜적이 쳐들어와도 중들은 절에서 손 놓고 있다가 죽지 칼 들고 마주 싸워 적을 죽이고 말고 그러지 않더라, 그럴 때 우리가 나는 안 믿으나 그게 절이지, 그게 중이지 그 불교를 믿으려면 그렇게 믿어야 되지 이리 되어 집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중들이 칼 들고 나가서 싸운 일들이 많습니다. 절의 중들이 칼을 들고 왜적들과 싸워서 목숨 바쳐 승병, 중들이 칼 들고 싸웠더라,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잘했다고 자꾸 적어 쌓는데 불교에서는 참 창피한 일이다, 불교는 내가 죽지 살생을 금하는 것이 불교의 기본 계율인데 불교의 계율은 생쥐도 못 잡게 돼 있고 벽에 벼룩도 못 잡는 게 절입니다. 일본군을 죽인 거는 잘했다, 우리나라로서야 좋은 거지. 불교로서는 그건 살인마가 되는 겁니다. 불교가 불교다워야 그게 좋은 불교인 거고 불교 싫어하는 사람이 불교를 칭찬하면 그 불교는 이미 타락한 불교입니다.

하물며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신 것은 주님 없는 세상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세상에게 주님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러 오셨는데 그걸 제대로 가르친다면 세상이 싫어하는 법입니다. 세상이 싫어하는 교회냐? 세상이 불편하다는 교회냐? 세상이 뭔 저런 교회가 있느냐고 궁시렁 거리느냐? 그 교회가 이단 짓을 하고 죄를 지어 그럴 수도 있고 그 교회가 참 교회 좋은 교회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걸 판단하는 데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시켜서 학생들이 학교를 가기 싫어 한다, 좋은 학교입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돈을 착취해서 학생들이 싫어 한다 그건 나쁜 학교입니다. 공부를 안 하도록 밀어주니 학생들이 좋아 한다 그건 나쁜 학교입니다. 그건 학교도 아닙니다.

항상 판단을 두 가지로 가지고 요한복음 15장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니” 믿는 우리들이 주님 안에 주님 안이라니? 말씀 안에 주의 뜻 안에 주님과 동행하며 천국의 소망으로 사는 그것이 우리가 주님 안에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말씀으로 살도록 열매를 맺게 해주고 주님이 주의 뜻으로 살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에게 능력으로 감동으로 주님이 빛으로 끌어주고 도와주고 인도를 하게 될 것이라 오늘 새벽 한 말씀 잘 기억 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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