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3.1.6 요14:20 대속으로 열어놓은 구원의 길, 하나님 아버지 똑같도록 영원히 자라갈 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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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3.1.6 요14:20 대속으로 열어놓은 구원의 길, 하나님 아버지 똑같도록 영원히 자라갈 영생

관리1 0 44 2023.01.0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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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k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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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30106 금새

제목 : 대속으로 열어놓은 구원의 길, 하나님 아버지 똑같도록 영원히 자라갈 영생

찬송 : 148장(이 죄인을 완전케 하옵시고)

본문 : 요한복음 14장 20절 -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오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여반들만 앉은 자리에서 두 자리씩 모두 좀 앞으로 당겨 주십시오. 문 집사님 두 자리 좀 당겨 주십시오. 앉은 자리에서 두 자리 앞으로)

요한복음 14장 1절로부터 하나님이 사람 되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오셨는데 눈으로 보기에 첫 번째 구원은 죄로 지옥 갈 우리의 죄를 해결하여 지옥을 가지 아니하도록 수고하는 것입니다. 오셔서 평생 마지막 죽는 그 순간까지 죄를 이겨야 되고 우리 위하여 모든 실행을 다 대신해야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지옥 갈 우리를 천국 가도록 돌려놓는 것이 주님의 첫 번째 구원이었습니다.

두 번째 구원은 말씀을(으로) 이기고 말씀으로 살고 아버지의 뜻으로 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아버지와 동행하며 그대로 영생으로 이어지는 걸음을 주님이 그렇게 걸어가셨고 또 부활까지 인성을 되찾으므로 신인 양성일위로 오신 주님이 부활로 다시 신인양성일위가 되어 영원히 사람의 몸을 벗지 않으므로 인간인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주님 안에 살도록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천국을 들어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국 안에 주신 기회 천국 안에 영원히 사는 영생의 내용 영생의 소망을 우리에게 열어 놓은 것이 부활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십자가 그러는 것은 십자가 말고는 십자가 전에는 고난과 고생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는 순간 고난은 시작이었고 중간도 그랬고 죽기 전까지 늘 고난이었으나 십자가에 죽는 그 순간 그 마지막 최후가 가장 마지막이고 절정이고 중요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그러는 거지 십자가 죽는 그 순간만 고난이고 그 전은 별로 고난이겠는가? 그리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십자가의 고난도 고난이나 어릴 때도 자랄 때도 중간에도 어느 순간이라도 단 한번만 죄를 지으면 단 한 번만 아버지 뜻을 잊어버리고 살면 단 한순간도 아버지와의 동행이 빈틈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죄인 되고 십자가는 질 것 없이 끝납니다. 십자가의 죽음이란 주님의 고난이 전부가 아니라 주님의 고생 고난의 한순간이고 일부지만은 주님 고난의 평생의 가장 대표적인 순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십자가의 죽음을 그렇게 말씀해 놓은 겁니다.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까지 주님이 우리를 위한 수고였다면 그건 지옥에서 빼내는 수고고 그 다음, 천국 문을 열고 천국문 안에 들여놓는 수고고 그다음, 부활하는 순간 천국 들어간 우리의 영원한 위치 영원한 영광 영원한 우리의 영생의 내용이 영계의 모든 걸 다 맡아도 전부를 빠르게 인도하고 지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고 자본을 마련해 놓은 겁니다. 지옥에서 빼내는 것도 구원이고 천국 들어가게 한 것도 구원이고 천국 안에 들어간 우리에게 영계와 천사의 영물의 만물을 이면으로 다스리고 저면으로 위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그 하나하나 전부가 또
구원입니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가지 않고 천국을 가게 된 것으로 끝나는가 여기 20절에 보니까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주님은 아버지 안에 성부와 성자는 하나입니다. 성부와 성자가 하나인 바로 그 길 바로 그 위치가 우리가 가야 되는 길이며 우리가 안고 살아야 될 우리의 거처입니다.

2절에 주님이 먼저 가셔서 주님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 집에 우리가 들어가면 우리가 있을 곳을 마련하겠다, 눈으로 보이는 길이 아니고 눈으로 보이는 천국의 이곳저곳 우리 앉힐 공간적인 그런 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 말씀으로 산 사람 천국에서 영원히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 될 것이고 이 땅 위에서 남의 신세 지고 남에게 업혀 신앙생활 한 분들 천국에서 영원토록 앉아만 있고 누워만 있으면 다른 사람이 와서 봉사할 겁니다. 천국은 들어갔으나 천국에 할 일이 없을 겁니다. 할 일이 없으면 좋은가 나쁜가? 고생만 하던 옛날에는 일 안 하는 것이 복이라 했으나 세상이 좋아지고 보니까 지상 낙원이 되고 보니까 일 안 하는 것처럼 어렵고 고통이 없더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남들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 내가 가야 일이 되고 내가 가야 건설이 되고 내가 가야 모두가 환호하고 기다리는 그런 사람 되고 그런 실력을 가지는 것이 그게 진정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더라.

생고생해봐야 헛일 길이 없던 헛수고가 미개했던 옛날이라면 놀고먹어도 국가에서 저절로 치료시켜주고 구경시켜주고 먹여주는 세상이 되었는데 그런 세상을 살고 보니까 내가 해야 될 일이 있다는 거 나 아니면 안 돌아가는 그런 분야가 있다는 거 그래서 나를 기다리고 나를 모시고 내게 좀 일 좀 해주고 가르쳐 달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은퇴를 했는데도 다시 좀 나와서 지도를 해달라는 사람 그런 분들 그런 위치 그런 자리 그런 실력 이것이 영원한 천국의 우리를 위하여 우리 살 곳 우리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가는 주님의 가는 길이며 마련하는 그런 위치입니다.

은퇴까지 확보된 직장을 다니는 분들 퇴직하는 그날부터 연금 받아 1년 놀아보고 3년 놀아봐 보지요, 폭삭 늙어버립니다. 일을 해야 사람이 사람다워집니다. 헛고생 생고생 죽을 고생 해봐야 길이 없는 예전에 고대사회 미래 사회의 노예의 생활이란 일하는 것보다는 노는 것이 더 낫는데 자유인 내가 인간답게 개성을 가지고 자율성을 가지고 실력을 가지고 내가 살아가는 인간 내가 노력해서 나를 건설하는 이런 인간이 되고 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사람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나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사람 그런데 나 하고 싶은 걸 했는데 남들이 그 일이 좋다고 모두 기다리고 박수 치고 감사하다 그러고 서로 와서 가르쳐 달라고 서로 끌어가려는 사람 이런 사람을 필요한 사람이라 그럽니다. 나를 필요로는 하는데 내가 하기 싫은 일은 고역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데 남들이 다 반대하고 싫어하면 이것도 고역입니다. 나는 하고 싶은데 남들은 나 하고 싶은 그 일을 나를 원하게 되는 사람 나는 아이를 보고 싶고 아이는 나를 필요로 하고 이게 아이와 엄마 사이의 천국입니다. 나는 돌봐주고 싶은데 나를 보면 애들이 울어버리는데 이거 참 곤란합니다. 또 아이는 나를 좋아하는데 나는 허리가 휘어져 그 아이를 돌보다가 내가 죽게 되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나는 건강하고 나는 돌보고 싶고 나는 돈을 내서라도 업고 싶고 아이는 나 아니면 안 되겠다고 울어버리고 이런 아이와 이런 엄마의 사이 이런 관계가 되어 지는 것이 이게 성공이고 행복이고 이게 일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그러한 천국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이 땅 위에 오신 주님은 우리가 알아보지 못해서 뭐 오셨냐고, 안 오셔도 되는데 이것도 탈이고 주님은 우리를 그냥 둘 수 없어 사람 되어 우리가 알도록 우리가 손잡을 수 있도록 까지 오셨고 이런 주님을 구원하러 오신 구주인 줄 알아본 세례 요한은 또 안나와 시므온 같은 사람들은 동방의 박사들은 주님 오시기를 고대하고 손꼽아 기다렸는데 오셨고 만났으니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드리며 좋아 어쩔 줄 모르고 안나와 시므온은 주님을 안고 찬송을 하고 감사를 하고 주님은 이들을 위하여 고난 받으시러 오셨으니 서로 짝이 맞는 겁니다. 왼손 오른손 짝이 맞으면 박수 소리가 나옵니다. 이게 환영이며 이게 영광이며 이게 영원한 천국의 모습입니다.

우리 세상 모습을 잘 보지 않습니까? 대통령 된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서 좋아 죽어버리는데 반대하는 절반의 야당과 절반의 국민은 저 인간 호랑이가 잡아가지 않냐고 매일 생 죽겠다고 난리입니다. 절반은 저 인간이 싫다고 난리입니다. 절반은 좋아하는데 절반은 싫어하니 둘이 맨 날 싸움박제기 맨 날 화딱지의 전쟁입니다. 주인은 노예가 많으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노예들은 저놈의 주인 죽지 않냐 이럽니다.

시어머니 된 사람은 우리 며느리들 또 한 번 모이자고 또 부르고 또 부르고 며느리들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또 부르냐고 그러고 이래 놓으면 이게 바로 생지옥입니다. 천국은 서로가 보고 싶고 서로가 필요하고 만나면 좋고 만나면 건설이고 전부가 좋고 하나님이 사람 되어 마련을 해놓으니 무한적으로 무한의 사랑으로 조건 없이 부어 놓았습니다. 이걸 가지고 혼자 먹기 아깝고 혼자 먹기 너무 원통하여 이 좋은 걸 복음으로 주변에 나누어 기도의 길이 있고 성경을 읽는 연경의 재미가 있고 다른 사람 신앙으로 돕는 이런 영광의 길이 있고 주님을 흉내 내고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을 따라가고 주님의 손발이 되는 이런 길이 있다고 알려주고 자기가 먼저 그렇게 희생을 하고 그러는 분에게 이면저면으로 혜택을 봐서 참 나도 저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이런 소원이 화합이 되며 이게 서로 창화가 되는 게 하늘의 영원한 찬송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오셔서 성부 하나님의 모든 소원 모든 앞날을 열어놓았고 열어 놓아봐야 주님 없이는 우리 홀로 걸어갈 수 없는 길인데 길을 열어놓으시고 주님이 우리를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아듬고 오는 것처럼 안아버렸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 안에 들어가 주님 걸어가시는 길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주님 걸어가신 길 어디까지인가? 인성 사람으로 오신 주님의 인간 부분이 신성 하나님까지 되어져 버리고 나아가는 그 모든 길에 주님이 우리를 안고 걸어가십니다. 그게 주님 가신 길이고 우리가 걸어갈 길이고 주님이 가서 앉는 자리가 하나님 아버지 안의 자리고 주님을 따라 주님에게 안겨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공로로 우리가 주님의 품 안에 주님이 앉는 그 자리까지 갈 겁니다.

아이는 아무리 작아도 크면 아버지 정도는 돼야 됩니다. 왕궁에 태어난 아이도 어릴 때는 아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얻어먹을 아이가 아니고 노예가 될 아이가 아니고 신하가 될 아이가 아니라 왕궁의 아이는 자라면 아버지 대신 왕 자리에 앉을 아이입니다. 소망이 다르고 알아야 되는 게 다릅니다. 이 아이 하나가 반푼이가 돼 놓으면 나라가 절단 납니다. 이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우리는 아들이라 부르게 된 이런 소망이며 길입니다.

오늘은 만물 중에 찍히고 만물이 골치가 아파 저건 뭐 강아지만 또 못하다고 쥐어박으나 주님의 구원과 주님이 열어놓은 길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와 똑같은 마음 똑같은 생각 똑같은 기쁨 그 은혜를 받아 행사하니 똑같은 실력까지 가지게 되는 우리가 되고 우리가 변화된 모습이 만물이 봐도 천군 천사가 봐도 우리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똑같다는 말이 영원토록 자라갈 우리의 훗날입니다.

이걸 딱 줄여서 오늘 하루를 살 때 그 믿는 사람 다르다, 어떻게 다른고?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는 자기중심을 벗어나는 그 모습이 다르다, 이게 바로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뭘 생각해도 다른 사람의 신앙과 영생을 두고 계산하는구나, 희생하는구나, 자기 마음을 가지는구나, 이 자세 이 행동 노력 열심 중심 이곳으로 뭉쳐지고 이것으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 걸어가신 길 오늘 우리가 걸어갈 길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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