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3.1.4 요14:8 미리 예비하신 천국소망, 피 흘린 그 길 따르는데 필요한 양식, 대속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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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23.1.4 요14:8 미리 예비하신 천국소망, 피 흘린 그 길 따르는데 필요한 양식, 대속의 희생

관리1 0 83 2023.01.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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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요약
2. 설교 타이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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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khr)

■ 요한복음 14장
예수님의 출생부터 한 걸음씩 기록하며 가르친 다른 3복음서와 다르게 요한복음은 13장부터 끝까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요13은 마지막 유월절 성찬의 떡과 잔의 기록이며, 요14은 성찬 이후 주님이 곧 떠나시고 제자들만 남게된다는 말씀과 제자들의 걱정이 있다. 십자가의 처형의 예고, 이후 처량한 제자들의 신세, 그럼에도 죽고 부활하신다는 실제인지 비유인지 애매한 말씀 등, 깊은 근심을 하고 있다. 

■ 오늘 주님을 따르는 길, 사죄의 결단
오늘의 우리도 죄와 싸워 죄 짓지 않는 길,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 길, 그 말과 행동, 그것이 예수의 길이다. 이 사상으로 살아야 주님을 따른 것이지, 기적으로 얻어 먹기 위해서나 많은 사람이 따르는 모습을 보고 따른 사람들은 훗날 예수를 못 박게 된다. 제자들조차 처음에는 장관 자리 얻으려 따랐다. (가룟유다) 주님 가셨던 골고다를 찾아 성지 순례하러 갈 것이 아니라, 오늘의 내 현실 속에서 나를 죄 짓게 하는 원동을 깨버리는 것이 예수의 길이다.

■ 바로 이 길에 필요한 양식, 대속의 희생
억울하고 원통해야 학생이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처럼, 바로 이 죄를 이기고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을 모시고 영생 소망의 노력에 말과 행동과 수고를 할 때에 필요한 힘과 능력의 양식은 주님 날 위해서 십자가 고생과 고난의 죄송함과 감사함이다. 그 고난을 생각하니, 내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작용의 힘, 생명은 자극이 있어야 움직이듯, 이 자극이 강할수록 살아있는 것이다. 죽은 신앙 살리기 위해 처참한 전쟁과 같은 큰 자극 전에 좋을 때 미리 자기 마음을 연구 비교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하나를 붙들고 고쳐 가는 것. 이것이 성찬이다. 매 주일이 성찬을 먹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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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30104 수밤

제목 : 미리 예비하신 천국소망, 피 흘린 그 길 따르는데 필요한 양식, 대속의 희생

찬송 : 151장(주님 찾아 오셨네)

본문 : 요한복음 14장 8절 -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다 같이 묵도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늘을 향한 길이 되시고 영원토록 변치 않는 진리가 되시며, 영원히 주님과 하나 되어 영생을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이 소망 이 영광, 이 앞날을 우리에게 복으로 주시고 신앙의 실상으로 주시는 주님 한해를 주셨으니, 이 한 해 속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는 주님을 알고 동행하고 닮아가며, 주님과 매일 생활이 하나 되도록 올해의 기회와 모든 노력이 집중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1월의 첫 주를 첫날로 주시고 또 이번 한 주간 성찬의 기념으로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 주셨으니, 입으로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며 마음으로는 주의 대속을 생각함으로, 내 인격과 행위가 주의 고난을 그대로 닮아가며 그대로 가져가는 저희들 되도록 늘 함께해 주옵소서. 고르지 못한 일기 가운데 오고 가는 모든 발걸음 늘 지켜주시고, 여러 일정 때문에 오가는 우리 교인들 또는 군무에 있는 아들들 해외까지 두신 주의 자녀들, 입원과 수술과 요양과 기쁜 일 슬픈 일 섞여가며 세상에 휘둘리기 쉬운 모든 현실 속에, 주의 고난만 마음속에 두고 감사히 걸어가는 저들 되게 해 주옵소서. 건축 중인 모든 일정 가운데 경제도 안전도 또 훗날의 모든 복음운동에도 복이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하시고 장례 가족들 마음속에 하늘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의 슬픔과 놀람을 복으로 바꾸는 은혜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요한복음 14장을 살펴봅니다. 사복음서 중에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출생으로부터 한 걸음 걸음을 기록하며 우리를 가르쳤고, 요한복음은 오시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 초두에 많이 말씀하시고, 그리고 13장부터 21장까지가 전부 주님의 십자가를 두고 앞뒤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13장에서는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성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그리고 성찬을 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떡과 잔을 준비하셨고 그리고 14장 오늘 본문에는 주님이 마지막 식사로 성찬을 베풀고, 주님은 가시고 제자들만 남게 된다는 이런 부탁 이런 말씀을 하니까 제자들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때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기에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성부 하나님을 말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성경에 믿음은 마음으로 인정하고 행동으로 따라가는 걸 믿음이라 그럽니다. 한번 기억하시지요. 마음으로 인정(마음으로 인정), 행동으로 순종(행동으로 순종). 이걸 합하면 믿음이라고 그럽니다. 뭐든지 마음이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인정이 되면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으로 실행하면 그 순종이 바로 믿음입니다. 인정, 순종 모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 그렇구나. 그러면 마음이 믿는 겁니다. 그리고 몸이 행동을 하면 그 순종으로 믿음이 완성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예수님을 믿으라. 하나님이 보내신 주님 하나님을 인정하고 따른다면 하나님이 보낸 주님을 주님으로 알고, 무슨 말씀을 하든지 따라 순종 하거라. 그리고 2절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주님이 아버지의 집 천국에는 너희들이 오면 있을 집들이 있다. 살 곳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다 그렇게 읽습니다. 그렇게 적었으니까. 주님이 주님의 아버지 1절과 2절을 합하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됩니다. 또 한 번 기억하시지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하나님 우리 아버지). 저 최명 명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명이만 크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 마음속에 기억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늘나라 천국은 하나님의 집, 거기를 떠나 우리를 구원하러 여기 오셨으니 여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우리가 이 땅 위에 살다가 그다음 주님을 따라 천국 하나님의 집에 가면 우리 살 곳을 주님이 먼저 마련해야 되지 않느냐. 이게 14장입니다.

신풍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가려면 아빠가 먼저 서울에 가서 집을 구하고 방을 얻고 준비를 해놨다가, 이제 전부 집 마련이 끝나고 나면 계약도 하고 집도 다 치우고 나면, 그 다음에 이제 이삿짐센터를 불러서 이삿짐과 식구들을 데리고 이사를 갑니다. 여기 주님이 지금 주님이 이 땅위에 오셨다가 아버지께로 돌아간답니다. 제자들을 두고 혼자 간다니 섭섭합니다. 무섭습니다. 가는 것도 좋게 가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에게 십자가의 처형을 받아 죽어버린답니다. 죽으면 끝나는 거 아닌가. 대장주님이 죽으면 따라가는 제자 우리는 어떻게 살 건가. 또 죽으면 그것으로 끝났는데 끝날 건데 평소에 죽었다가 부활하신다고 했고 그리고 아버지께로 간다 하니까, 그게 말이 그런지 안 그런지 모두가 애매하고 일단 주님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죽는다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때 하신 말씀이 14장입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는 전능이다. 변치 않으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구원하러 너희에게 나를 보냈으니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변하는 것이 없고,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은 늘 너희를 향하니 염려 말아라.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인도를 따라왔고 또 이제 가는 거다. 근데 내가 가면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 집 천국에 너희들 살 곳이 많으니, 가게 되면 너희들이 천국에 올 때 너희들이 써야 될 집 너희들이 살 곳을 마련하러 갔다가 오마. 말도 믿기도 좀 애매하고 근데 또 오늘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 집 천국에도 주님이 먼저 가셔서, 우리 가야 할 곳 우리 살아야 될 집을 마련하고 그래야 되나? 신시가지가 있나? 전기 수도가 필요하나? 또는 살던 사람 정리를 하고 자리를 비워놔야 나 들어갈 곳이 있고 천국도 이 세상에 이사처럼 그런 것인가? 꼭 그리 보이도록 적어 놓으셨습니다.

2절 다시 봅니다. 내 아버지 집 천국에 너희들이 살 곳이 많도다. 그 너희들이 있을 곳이 있으니 그렇지 만약에 천국에 너희 있을 곳이 없더라면 너희에게 미리 말을 했을 거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아라 천국에 올 자리는 없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리 말을 했겠지만 세상은 하룻밤이고 세상에서 준비하여 가는 천국이 영원한 살 곳이고, 그곳에 내가 너희들과 함께 영원히 살 곳이 있으니 그래서 세상에 살 곳을 너희들에게 마련해 주지 않은 것이라. 먹고 사는 것은 각자 알아서 하고 주님은 천국 준비만을 위해서 왔고 먼저 천국에 우리 갈 곳을 준비하러 먼저 가신다. 미리 가신다. 2절 뒤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우리 살 곳 천국에 우리 갈 곳을 준비하러 간답니다. 또 한 번 기억해 보십시다. 준비 예비(준비 예비) 같은 말입니다. 미리 준비하면 예비입니다. 너희들이 천국에 왔다가 살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 주님이 먼저 가서 살 곳을 마련해야지. 그러면 먼저 간 다윗과 아브라함과 먼저 간 에녹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주님 아직까지도 안 왔는데. 주님이 오기 전에 구약의 성도들은 먼저 받아 살 곳을 마련하셨고, 또 주님이 왔으니까 신약의 교인들은 주님이 먼저 가서 살 곳을 예비한다는 말인가. 주님이 가지 않으면 천국에 우리 갈 곳이 없다는 말인가.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주님이 천국을 떠나 이 땅위에 와버렸는데 이 땅 위에 33년 사는 동안에 세례요한은 먼저 죽어 천국 갔는데 주님 올 때까지 거기서 서성거리며 기다리고 있다는 말인가. 성경은 좀 조심스럽게 읽어보면 세상에 먹는 것 세상에 사는 것 세상에 입고 사는 문제를 가지고 가르친 것이지, 세상과 같다고 그렇게 기록해 준 것이 아니구나. 이렇게 좀 살필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나라 아버지 나라에 우리 있을 곳을 예비하러 주님이 먼저 가노니, 성찬 때 하신 말씀입니다. 하룻밤 지나면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데 죽기 전날 밤 마지막 식사가 성찬이었습니다. 성찬을 먹고 마시고 너희를 위하여 내가 살 찢고 피 흘려 죽을 거다. 너희를 구원하기 위하여 내가 죽고 나면, 너희들 사는 내내 늘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한 나의 걸음을 기억하여 너희들도 늘 그렇게 살아라. 그리고 나는 죽으면 먼저 하늘 나라가서 따라오는 너희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너희들 있을 집을 마련하러 가니 기다리고 있거라. 3절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어 먼저 천국에 가면 뒤에 따라 올 너희를 위하여 살 곳을 예비해서, 다시 와가지고 너희를 내가 있는 천국으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아버지의 나라 천국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해주겠다. 이사 가는 우리를 그려놓은 겁니다. 주님이 먼저 가서 마련하고 우리를 데리고 오겠다. 그러면 따라 오너라. 그러기 위해서 앞서가는 주님이 살 찢고 피 흘려 죄 문제를 해결할 테니까, 너희들은 잔과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며 늘 주일마다 늘 성찬 때마다, 이 땅 위에 사는 날 동안 늘 앞서가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대로 따라 가거라. 이렇게 따라가면 주님이 먼저 준비하고 와서 주님을 따르는 너희들도 주님이 준비한 천국을 천국에 살 곳을 주리라. 4절 내가 지금 가는데 내가 가는데 그 길을 너희에게 알려주리라. 주님이 동쪽으로 가는지 서쪽으로 가는지 미국으로 가는지 달나라로 가는지 천국으로 가는지, 주님이 먼저 가서 마련하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건데 내가 먼저 가는데 내가 가는 곳 그 길을 너희가 알게 되리라. 모두 다 이사처럼 그렇게 적어 놓으셨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 도마가 가로되 주여 지금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로마로 가는가. 헬라나라로 가는가. 앞쪽인가 뒤쪽인가 간다는 말씀은 하시는데 죽는다는 말씀도 하시는데, 아버지의 나라로 간다고 하시는데 가는 곳을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으니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길을 어떻게 알겠삽나이까. 신풍에서 출발해가지고 부산을 간다. 그러면 남해안고속도로겠지 목포를 간다고 그러면 3번 고속도로겠지. 서울을 간다면 1번 고속도로겠지. 또 일본을 간다면 여수공항에 전세 비행기 타고 일본 공항으로 가면 되겠지. 주님이 가는 곳을 정확히 말씀하지 않고 그냥 아버지 집이라고 애매하게 그러시니, 가는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성경을 읽을 때 예수라는 표현이 나오면 어떤 단어로 읽으라고 그랬던가요? 추이솔. 제일 앞에 예수가 나오면 뭐라고 읽으라고요? 구원.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원의 주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구원의 주님 주님이 곧 길이요 주님이 진리요 주님이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 예수님의 구원이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구나. 동쪽이 아니고 서쪽이 아니고 또 무조건 지구에서 우주로 위로만 올라가서 되는 것은 아니고, 로켓으로 가지고 요즘은 우주를 다 보냅니다. 그런 길 말고 주님 걸어가신 길 죄를 짓지 않는 길이 주님이 걸어가신 길입니다. 주님이 여리고로 갔냐. 갈릴리로 갔냐. 예루살렘으로 갔냐. 그 길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로 가든지 주님의 걸어가신 길은 죄 짓지 않는 길, 죄와 싸워 이기는 길 이게 예수의 길입니다. 이걸 한 단어로 다 같이 뭐라고 그러나요? 사죄라 그럽니다. 사죄의 길.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 죄 짓지 아니하고 죄를 싸워 이기는 길. 사죄의 길.

주님은 식사를 하시든 금식을 하시든 쥐어 박히시든 혼을 내서 이기시든, 주님의 걸어가신 평생의 길과 마지막 길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뜻을 찾아 뜻대로 걸어가는 길이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는 이걸 꺾어버리는 길, 아버지의 뜻이 뭔지 알게 되면 아버지의 뜻으로 살아가는 길 그걸 칭의의 길이라 그럽니다. 사죄의 길 칭의의 길. 우리 성환이 잘 적고 있나요? 사죄 칭의라고 적으셨어요? 사죄 칭의. 수요일 밤 예배인데 친구가 저 술집에 가자고 슬쩍 끌면 죄 짓는 길 안 가! 이게 주님이 걸어가신 길입니다. 주님이 여수 뒷골목 술집 다니셨나요? 또 그때 안 간다고 뭐 맞고 그러셨나요? 주님이 나서 죽을 때까지의 평생은 이스라엘 땅의 동쪽 서쪽 그렇게 보지 마시고, 언제 어디를 움직여도 주님은 죄 짓지 않는 길로만 다니셨습니다. 죄를 싸워 이기는 길로만 가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죄 해결을 위해서만 사셨습니다. 죄를 해결하는 길 두 글자로 뭐라고 했지요? 사죄. 그리고 두 번째는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내 마음대로는 안 살겠다. 그다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있을 때는 그 뜻대로 살겠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길을 칭의라고 그럽니다. 사죄와 칭의의 길이 주님이 걸어가신 생애입니다. 그게 주님이 걸어가신 전부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해도 또 열 처녀 비유를 가르쳐도 오병이어로 많은 사람을 먹여도, 또 사십일 금식을 하셔도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어도 부활을 하셔도, 그 모습 그 가는 길 그 행동 그 마음 전부를 딱 줄이면 죄를 지을 기회는 꺾어버리고, 죄를 이길 길로만 걸어갔으니 죄 문제를 해결하신 길이 주님에 걸어가신 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걸어가신 길만 주님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그때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죄와 싸워 이기고 죄짓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예수의 길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길 그 말 행동 그 나날이 바로 예수로 걸어가는 길이다.

학생이 국어 책을 들면 학교 가는 거고 수학 책을 들면 학교 안 가는 거고 그렇습니까? 국어 선생님은 국어 책이 중요하다고 그러겠지. 영어 선생님은 영어 책이 중요하다고 그러겠지. 수학 선생님은 수학 책이 중요하다고 막 그냥 열변을 토하겠지. 자기 먹고 살려고. 부모 입장에서는 한 자라도 배워야 된다. 그래서 국어가 있고 그래서 수학이 있고 그래서 학교를 가라 그러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 아이는 학교 안 가는 것이 배우는데 더 나으면 갈 거 없다. 배우는 게 목적인데 학교를 가는 게 더 나아서 가라 그러는 거지, 요즘처럼 학교에서 나쁜 것만 가르치면 안 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으면 안 갈 수도 있지. 배우는 게 문제냐 학교 가는 게 문제냐. 뭐든지 가서 쓰면 되느냐 쓸 걸 써야 되느냐. 딱 그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직장만 가면 됩니까? 돈 벌려고 가는 거지. 돈이 되는 직장을 가야지 돈 안 되는 직장 가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런 직장 아십니까? 1년 다니고 월급 못 받아서 빈손 털고 오는 직장, 부도난 회사 1년 열두 달 다녀봐야 그거 헛일입니다. 어디 가지? 직장 갑니다. 왜 가지? 돈 벌러 갑니다. 돈벌이 때문에 직장을 가는 거지 직장을 가기 위해서 직장 가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도 그렇습니다. 주님만 따라다니면 되지 주님만 따라다니면 되지. 오병이어 요한복음 6장에 보니까 수만 명이 따라다녔습니다. 근데 그 수만 명이 나중에 예수님 또 십자가 못 박을 때는 고함지르며 십자가 못 박으라고 그런 그들입니다. 주님 뒤 꼭지만 보고 따라다니는 사람들 얻어먹을 것이 있어 다니는 사람들, 방앗간 옆에 참새가 모이듯이 또 고기 잡는 배가 가면 갈매기들이 어떻게 알고 다 따라 댕깁니다. 고기 잡는 배에는 왜 갈매기들이 다 따라다니지요? 배에서 고기를 잡다 보면 얻어먹는 것이 있으니까. 주님 가는데 가면 병도 낫는다더라. 얻어먹는다더라. 좋다 여기까지만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왕이 된다. 왕이 된다니까 어느 날 혁명을 해서 주님이 왕이 되는 날 나도 장관 자리 하나는 생기지 않을까. 이런 야욕을 가지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데 2천 년 전 기독교 교회의 역사에 보면 가룟 유다가, 주님이 하매나 왕이 되나? 왕이 되어야 나도 한 자리 할 건데 아무리 기다려도 주님이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지켜보니 실력은 있는데 혁명을 해서 왕이 될 일을 도모하지 않으니, 돈 받고 팔아버리면 막판에 몰리면 그냥 확 뒤집어 엎고 왕이 되지 않겠냐. 이래서 돈을 받고 팔아 넘겼는데 죽을 판이 되면 주님이 그냥 왕이 될 줄 알았는데 정말 죽어버렸더라. 그래서 자살을 했더라.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기독교 역사책에는 나오는 내용입니다. 성경에 안 나오는 것은 그냥 들어두는 정도고 성경에 나오는 것은 변치 않는 진리고 구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주님이 마지막 성찬을 드시며 성찬 드신 자리에서, 이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죽으러 간다. 아니 주님이 죽으러 가면 어떡합니까? 우리는 어떡하라고?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집에 가야 너희들 올 때를 마련하지 않겠냐. 죽으러 간다 해놓고 뭔 또 아버지 집에 또 갔다가 뭐 안 죽고 가는 거지 죽으면 갈 수 있나? 맨날 배워봐야 헷갈립니다. 안 죽고 그대로 눈으로 보이는데 승천에서 자리 마련했다. 요래야 알아듣지. 너희들이 죄를 지어 너희의 죄 때문에 너희는 죽으면 영원한 지옥인데, 이걸 해결하려고 주님이 오셨으니 너희 죄를 없애려면 내가 대신 죽어야 너희가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지고, 내가 너희처럼 부활을 해야 너희들의 천국의 영생이 제대로 준비가 되어 지니, 이게 너희들을 아버지의 나라로 데려가는 길이다. 너희 속에 있는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너희는 이 땅 위에 살다가 전부 지옥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너희들을 인도하려면 너희 속에 죄를 해결해야 되는데 그 죄를 해결하는 것은, 주님의 생애를 찢고 주님의 생명을 다 쏟고 너희 죄 때문에 죽고 부활을 해야만 되니, 십자가에 죽으러 가고 삼일 후에 부활하는 그 길이 그 과정이 그 내용이 바로 너희들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이 되는 거다. 그게 바로 예수다.

예수 이름이야 뭐 구약에 여호수아나 이런 사람들의 이름이 다 예수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우리나라의 영수니 철이니 순이니 처럼 그렇게 흔하답니다. 좋은 이름이니까 많이 쓰겠지. 자기 이름을 성령으로 바꾸고 자기 이름을 예수로 바꾸고 자기 이름을 성경으로 바꾼다고 자기가 성경 됩니까. 성령 됩니까. 그렇다고 주님이 될 겁니까. 근데 주님은 그 이름을 예수라고 붙이지 아니해도 주님의 존재가 예수고, 주님의 걸어가신 길이 예수고 주님이 이뤄놓은 대속이 구원이었습니다. 나의 죄를 해결하신 그 걸음 그 걸음이 바로 길입니다. 아버지께 붙들려 어떤 죄든 씻어버리고 어떤 죄든 이겨버리고 아무리 어려워도 아버지의 뜻으로 걸어가고, 그리고 마음속에 아버지와 동행하며 그대로 영원한 소망의 길을 열어버렸으니, 죄 문제 해결 사죄, 아버지 뜻대로 사는 칭의의 생활, 아버지와의 동행, 영생 이 네 가지 마련의 수고, 네 가지 마련에 노력, 네 가지 마련에 걸음걸음, 네 가지 마련을 위한 고난, 네 가지 만을 위한 생각, 그 자체가 바로 주님이며 그게 주님이 걸어가신 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걸어가신 골고다 갈보리 산을 갈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까지 비행기 타고 성지 순례를 가서 예수님 걸어가셨다는 골목을 따라 올라갈 것이 아니라, 신풍에 살며 신풍 주변에 죄 짓자고 옆에서 뒤흔들 때 그걸 거절해 버리는 것이 예수의 걸어간 길입니다.

저 여수 뒷골목에서 포도주 한 잔 하자고 찝쩍찝쩍할 때 그놈의 술잔을 갖다 탁 깨 버리는 것이 예수입니다. 앞에 여학생들 술 한 잔씩 하고 그러나요? 유리는 언니들 중에 어느 언니들이 그런지 사진 찍어놓고 다 일러주고 그래야 돼요. 그런 거는 고발정신이 있어야 세상이 좋아져요. 10년 전에 우리 교회 와서 5년 전에까지 한 5~6년 다니신 분이 귀띔을 그때 해 주시더라고요. 그분은 시내를 잘 아는데 신풍교인 목사는 시골서 예배당에만 있으니까 무식해서 영 모르는 줄 알고, 시내에 중고등학교 여자애들 한 잔씩 다 합니다. 모르시지요? 그래요. 모르기는 왜 몰라요 그거 인간이 본능으로 사는 건데. 인천에 콜라텍 화재 사건에 애들이 한 몇 십 명 죽었는데 그게 한 20년이 더 됐지요? 아마? 인천 콜라텍 사건 기억나시는 분들 계시나요? 인천의 지하실에 콜라 먹는 데라고 콜라텍 하니까 어른들은 콜라 마시는 줄 알았습니다. 거기에 들어 가가지고 중고등학교 남녀 애들이 술 쳐 먹고 발광을 하다가 화재가 나가지고, 30~40 명이 굽혀 죽었는가, 20~30명이 굽혀 죽었는가 모르겠는데 100명은 안 넘고 한 몇 십 명 그때 타 죽은 게 그게, 그게 1년이 아니고 10년이 아니고 몇 십 년 전입니다. 아니 몇 십 년 전에 그랬는데 지금은 죄악이 더 발달했으니 뭐 신풍교회도 여기저기 다 뒤로 그 짓 하고 댕기겠지. 그래서 아예 집사를 안 줘버리는 겁니다. 음주 측정할 수도 없는 거고. 교회는 말하면 믿어주지 음주 측정하고 저 거짓말 탐지기 갖다 대고 못 그럽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이 정도가 되어 놨으니 찝쩍찝쩍 그냥 한 잔씩 슬금슬금 뒤로 하고 다닐 건데, 신풍 교회라는 시골의 이 아무것도 아닌 교회 이름 하나라도 쓸고 닦고 깨끗하게 잘 청소해서 주님 오실 때, 그 신풍교회는 시골에 적기는 적어도 깨끗해서 잘 닦아놨구나 그 소리라도 들어야 되지, 이게 사람이 많아서 주님이 눈에 볼 겁니까. 뭘 볼 겁니까. 그런 거 하나라도 봐야지.

지금 우리 교회에서 임명 안 하고 그냥 집사님이라도 뒤로 한 잔씩 하시고 그러면 큰일 납니다. 어느 날 자다가 급사하고 그럽니다. 이런 말씀은 드리고 나면 일이 생겨서 잘 안하려고 그러는데, 제가 그 말했다고 주님이 그래 되는 게 아니라 참고, 참고 참으시다가 어느 날 한잔 하는 그 그냥 안에다 대고 하나님께서 불러가 버리면 젊은 사람 그런 경우들이 더러 많습니다. 많이 제가 겪어봐서 말도 조심하는 겁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그걸 딱 잘라버리는 게 바로 예수의 길입니다. 그런데 밀려가지고 슬금슬금 그냥 뭐 친구들 입장도 그런데 교회 다닌다. 술 안 먹는다. 그러면 쭈글스러우니까 요즘은 쪽 팔린다 그럽니까? 뭐라 그럽니까? 분위기를 못 이겨 가지고 그냥 잔만 받지 안마시면 되지. 그러면 또 옆에서는 잔만 받은 놈을 딱 찍어보고 조금 마시겠다 싶어가지고 입에 넣고 삼키지만 않고 먹는 척만 하거라 또 그럽니다. 그게 또 이제 입에 넣고 먹는 척만 하면 옆구리를 쑤시면 켈록 하다가 입에 쏙 들어가 버립니다. 그럼 실수로 먹었지 뭐 내가 뭐 마시고 싶어 마셨나. 이렇게 이제 한 번 길을 들여놓으면 길이라는 것은 한 번 두 번 하면 질이 납니다. 손질 입질 질이 나면 그걸 길이라 그럽니다. 제가 괜히 남의 말 듣고 하는 얘기 같지는 않지요. 군대 3년간 세상 뭐 같은 꼴을 24시간 구경을 잘 해봐서 그런 겁니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뭐 죄 지으려고 작정하고 그런 사람 없습니다. 그냥 옆에 한번 구경했고 구경하다가 있는 척 했고 그러다가 이제 손끝 만졌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낚시 바늘에 탁 걸려 인생 끝장나는 거지. 이제 이 정도 말씀해 놨으니까 나머지는 이제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고, 제가 심방 갈 일이 있을 때는 그냥 뭐 안 마시는 사람 있나요. 성찬도 다 술이고 목사들 다 마시는데 괜찮습니다. 드십시오. 그럽니다. 심방 가서는 죄 많이 지으시라고 제가 팍팍 밀어드립니다. 일 대 일로 만났을 때는. 전체를 향하여 강단에서는 불처럼 죄는 죄 의는 의 똑 부러지게 그거는 말해놓고, 그다음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각자 알아서 걸어가는 거지 남의 신앙의 가정 속에 들어가, 골목까지 따라가서 수갑 채우고 끌고 댕기고 그러지는 못합니다. 천주교가 그러다가 천주교 돼버린 겁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로 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돌부처 아니고 하나님은 종이호랑이가 아닙니다. 하도 그런 경험을 많이 해서 이 밤에 요한복음 14장에 또 한 말씀 드리는 겁니다.

내가 가는 그곳의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주님 가시는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따라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내가 곧 길이요) 예수님이 바로 길입니다. 예수님이 길이라니 예수님을 눕혀놓고 밟으라는 말인가?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까지 바로바로 다 일지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 보거라. 아 거기 보니까 여리고로 가시 대? 베들레헴으로 가시 대? 뭐 우리도 베들레헴으로 여리고로 그러면 성지 순례를 가야 되는가? 주님이 가신 길은 눈으로 보이는 공간과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죄 피하는 길, 주의 뜻으로 사는 길, 아버지의 동행하는 길, 천국의 영생의 소망의 길을 여는 그 길을 가신 이름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신풍삼거리 오늘 여기 살며 신풍 삼거리에는 뭔 죄가 제일 많을까. 공항이 앞에 있으니 시도 때도 없이 뜨는 비행기를 보며 나도 저기 몸을 싣고 그냥 한 번 밖을 돌아. 얼마든지 여행할 수 있습니다. 근데 왜 하필 또 주일날 비행기 탈겁니까. 그건 안 되고 그리 되면 그게 사죄의 길입니다. 칭의의 길이라니, 아버지의 뜻은 뭘까 부모님이 아프신데 내가 어디를 가? 부모님 수발해야지. 그게 아버지의 뜻입니다. 고려장 해버리면 얼마든지 다닐 수 있지. 글쎄 부모 고려장 하고 놀러 다니면 귀신은 좋아하고 자기는 좋아해도 그거 하나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걸요. 예를 들면 그런 겁니다. 명절에 돈벌이가 잘 돼가지고 정신도 없는데 뭔 주님을 생각하고 장사를 할 겁니까. 그럴 때도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장사 하거라. 돈을 차라리 절반을 벌어도 주님은 잊지 말아라. 마음속에 주님을 잊어버리는 순간 그 뜻을 잊어버리고 죄의 길로 떨어져버린다는 겁니다.

이런 걸 비유로 학교 공부로 예를 들면 부모는 잘 아실 거고 아이들도 알려면 알 수 있는 거지. 학교만 가면 학생입니까 공부하러 가야지. 학교 가서 공부를 한다고 공부가 되어 집니까? 집에 부모가 생고생하는 게 눈에 밟혀 억울해서 이를 갈고 공부를 해야 공부가 되지. 좋은 부모가 못 배워가지고 말이지. 옛날이면 순서한테 쥐 박혀서 그냥 억울한 걸 보고 난 공부해서 저 꼴 보지 않겠다. 그리고 나 때문에 우리 부모가 대우받게 하겠다. 부모가 당하는 걸 봐야 이를 깨물고 공부를 할 건데, 고생하는 걸 갖다가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 돈벌이 알기를 갖다가 뭔 장난삼아 모두 다 그럽니다. 영어로 뭐라더라? 웰빙? 웰빙 위에 놀고먹는 걸 요즘 그걸 뭐 워라 밸? 무슨 밸? 왜 놀고 먹고 좋은 걸 뭐라 그러나요. 워라 밸이 그런 뜻인가요? 일을 하는데 그냥 놀고 먹고 기분 좋은 그런 일을 해라. 그거는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라는 망할 놈의 나라의 망할 놈의 그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일본 중국 강대국 사이에 나라는 망해 가는데 고종 황제가 마지막 무슨 잔치를 했더라? 50살 잔치를 했는가? 나라 국고의 10%를 임금 잔치 상 하루에 다 풀었습니다. 국고의 10%를. 일본과 중국이 양쪽에서 조선 먹겠다고 달려드는 그 찰나에 1902년이니까. 나라 망해 먹기 직전에 나라 살림 10%를 가지고 임금 제 생일잔치 한 번에 다 해치웠습니다. 그래놓고는 일본 욕을 해요? 일만 생기면 남 핑계 남 핑계 되는 거고 그 안 바꾸면 인간 안 됩니다. 일만 생기면 막 엄마가 이런 나쁜 사람이고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고 형이 나쁜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이고 그 인간 안 봐도 천하의 제일 나쁜 인간입니다. 자기 고치면 다 좋지

부모가 고생하는 게 억울하면 그러면 공부는 저절로 되게 돼있습니다. 이게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면 당연히 안하는 거고 하나님이 원하면 당연히 하는 건데, 하고 안 하고의 힘이 가고 노력이 가는 것은 주님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이렇게 고난을 당하셨는데, 이걸 생각하니까 이 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시고 모든 고난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하는 건데. 그걸 마음 아파 그걸 근심하고 있으니 성부 하나님의 근심이 이렇다면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내려온 게 성자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고 영원한 희생의 길입니다. 자극이 있어야 생명체는 움직입니다. 돌은 뭐 창피하거나 말거나 내나 그 돌입니다. 생명체는 자극이 있으면 반응이 본능적으로 있습니다. 배고프면 먹으려고 발버둥치는 거고 창피하면 두 번 그 꼴 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고. 뭔가 자극이라는 것은 바늘로 찌르든지 대패 침으로 찌르든지, 아니면 세상 전쟁이 나거나 재난이 나서 뒤집어 버리면 모두들 다 정신은 차리나. 그 정신 차리라고 또 지진이 나고 화산이 나고 전쟁이 나서야 될 일입니까 너무 처참한데. 좋을 때 자기가 자기 마음을 잘 공부하고 연구하고 느껴보고 비교해봐서, 하려면 제대로 해봐야 되겠다. 이게 성찬입니다. 오늘 14장이었습니다.

주님이 성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고 천국의 영생의 구원을 마련하겠다. 이걸 알기 쉽게 내가 간다. 있을 곳을 마련한다. 이렇게 이사 가는 것처럼 설교를 하니까 그 못 알아듣고, 어느 길 가지? 몇 번 도로 가지? 또 어디 메쯤 가지? 예수가 길이다 인간들아. 하나님인데 너희 지은 죄 해결한 것이 예수님이다. 그 생활 그 노력 그 결심 그 걸음걸음이 바로 영원한 영생을 마련하는 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길이요 두 번째는 뭐지요. 진리요 영원불변이 이 길밖에는 없다. 그 길 외에 더 쉬운 길이 있으면 왜 주님이 아시는데 더 고생할 겁니까. 이 길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는 주님은 생명이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는 아버지 자녀 사이였는데,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이게 끊어져 버렸습니다. 끊어진 게 사망 죽음인데 예수님이 가운데 들어가서 다시 이어 붙여버렸습니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다. 변치 않는 한 길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죄로 인하여 끊어진 관계를 이어버리는 게 예수님이다. 죄가 들어가면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능력 아버지의 복이 끊어져 버린다. 믿는 우리의 생활도. 죄를 이기고 주의 뜻으로 주님 동행하고 영생의 소망의 노력과 말과 행동과 수고를 할 때, 이게 바로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의 복 아버지의 생애 아버지의 영광 아버지 영생 속으로 가는 길이며 진리며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4장 계속 공부할 겁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예수님으로 오신 주님, 오늘 우리는 죄 문제 의 문제 하나님과 동행문제 영생의 소망문제 네 가지로, 구구절절이 차원 다르게 여러 방향으로 잘 적어주셨고 우리는 함께 배웠으니, 주변의 생활 속에 접촉 속에 죄 문제가 보일 때마다 이건 내가 마음먹으면 이 정도는 한번 해볼 수 있고 이건 날 위해서라도 해야 되겠다. 그 죄 문제는 무조건 싸워 이겨버리십시오. 피를 흘려도 어떤 손실이 있어도 한 번만 잡아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쫙 잡혀버립니다. 어쨌든 주의 뜻 주님 동행 영생의 소망 네 가지 기억하십시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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