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23.1.1 요6:55 먹는대로 한 몸, 주의 고난 인하여 말씀대로 고치려는 어려움, 주님을 닮는 것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주후23.1.1 요6:55 먹는대로 한 몸, 주의 고난 인하여 말씀대로 고치려는 어려움, 주님을 닮는 것

관리1 0 63 01.01 16:53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자료 배치)

1. 설교 타이핑
2. 설교 교안




------------------------------------------
(설교 타이핑)


230101 주후

제목 : 먹는 대로 한 몸, 주의 고난 인하여 말씀대로 고치려는 어려움, 주님을 닮는 것

찬송 : 28장(갈보리 산위에 십자가 섰으니), 82장(못 박혀 죽으신) / 158장(내 주의 지신 십자가)

본문 : 요한복음 6장 55절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 하니라 무익한 세상을 우리에게 먼저 주신 주님, 세상을 주려 하심이 아니라 세상은 무익하니 세상 속에 영생의 천국만을 마련하라 하심인 줄 알고, 1월 첫날 첫 주일 새로 한 해를 주신 주님, 앞에 이 안에 전부를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인하여 앞서가신 주님 살 찢고 피 흘려 구원하시고, 부활로 우리의 영원을 열어놓은 모든 감사 모든 각오 모든 감격을 순간마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날을 생각하며, 말씀으로 살고 성령으로 살며 주님 동행에, 이 시간 되고 오늘 되고 또 한 해 되도록 특별하신 은혜로 함께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식물은 뿌리를 땅에 박고 물을 마시고 자랍니다. 물만 계속 공급이 되면 키도 커지고 이파리도 풀어지고 열매도 맺고 그럽니다. 그래서 풀 하나가 나무 하나가 열도 되고 백도 되고 자꾸 번져나갑니다. 물을 먹고 자란 엄마 나무가 씨앗을 퍼트려 놓았기 때문에, 물만 들어가면 또 엄마나무처럼 계속 그렇게 커집니다. 이걸 음식이라 그럽니다. 풀을 뜯어먹고 산 토끼는 풀만 계속 갖다 주면 이게 덩치도 커지지만은, 새끼를 쳐서 열 마리가 되고 100마리가 되고 자꾸만 많아지고 좋아집니다. 맹수는 토끼를 잡아먹어야 행복해지고 자라지고 활동하고 또 새끼를 치고 많아집니다. 이런 걸 음식이라 그럽니다. 부모가 밥을 먹고 아이를 낳아 길러 놓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입에다 대고 젖 주고 밥 주고 먹을 것만 계속 주면, 덩치도 커지고 돌아다니고 또 그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또 자기 같은 걸 낳아서 이래 자꾸 퍼집니다. 그건 아무리 많아도 전부 다 지옥 갈 인간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여기 주님이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라.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동물도 불신자도 다 먹기도 하고 자라기도 하고 그럽니다마는 주님이 참된 양식이라. 주님은 어떤 분인 고 하나님이신데 이걸 한번 생각하면 내 신앙이 생명 있는 신앙이 되어 집니다. 두 번 생각하고 한 주 간 생각하고 1년 2년 3년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날 위해 이 땅 위에 오셨구나. 날 위해 죽으셨구나. 그리고 날 위하여 부활하셨구나. 그 고난 그 감사 이걸 생각하는 것이 신앙의 양식입니다.

토끼가 풀을 계속 뜯어 먹으면 덩치도 커지고 윤기도 나고 활발하게 뛰어 돌아다니는 것처럼, 제 아무리 뛰 돌아 댕기는 토끼도 풀 금지시켜 놓으면 그 비실비실하다가 가버립니다. 사회봉사 아무리 많이 해도 또 주변에 남들 볼 때 좋아 보여도 뭘 해도 하나님이 사람 되어, 이걸 잊어버리면 그 생각과 멀어져 버리면 사료 먹지 않는 짐승처럼 시들어지게 됩니다. 이걸 끊어버리면 나중에 신앙이 죽어버립니다. 여기 요한복음 6장은 한 장 앞에 1절에서부터 배고픈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어린아이 도시락 하나로 한 2만여 명쯤 되는 사람들을 먹였습니다. 아이 도시락 하나로 기도하고 나니까 2만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에 남았으니, 아이 도시락보다 말하자면 12배 이상 더 많이 남았습니다. 한 번 더 기도하면 이스라엘 전 국민이 다 먹고 남을 정도였습니다. 계산이 이렇게 딱 돌아가니까 6장 15절 봐보실까요.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다가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혼자 산으로 가버렸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떡 먹여서 일 안 해도 먹고 일 안 해도 먹을 거 같으면 뭐 하려고 공부하고 뭐 하려고 돌아 댕길 겁니까. 놀고먹지. 그건 주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명확하게 기록을 해놨는데, 오병이어의 도시락 하나로 먹인 6장 1절 이하를 기록해 놓고 15절에 결론을, 떡을 먹고 나니까 백성들은 임금을 억지로 만들려고 했고 주님은 자리를 피해버렸더라 이게 기독교입니다.

떡 먹이는 것이 기독교면 예수님이 이때 임금이 되셔서, 온 이스라엘 백성 공부할 것도 없고 일할 것도 없고 전쟁할 것도 없고, 주님이 기도 한 번 하면 다 이길 거고 배부를 거고 주님이 원하면 죽지 않게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도 살리는 거 봐 보십시오. 주님이 죽을 사람을 살려놓고 천 년 살게 해놨으면 모두들 난리 날걸요. 100년만 살아도 안 죽어서 지금 모두들 난리인데 2백 년 천 년 살라면 어찌 되겠습니까. 원래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는 천년만년 살아도 갈수록 더 건강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근데 100년만 돼도 내가 나를 봐도 보기 싫도록 이렇게까지 되어졌습니다. 다 같이 그 이유가 뭔가요? 죄가 들어가서 그리 되었습니다. 죄만 아니었더라면 100년이 아니라 천년 만 년 영원토록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우리들인데, 죄 하나 딱 들어가니까 암세포 들어가 쓰러지는 젊은 사람처럼 이리 되었습니다. 이미 죄를 지었으면 한 번은 죽어야 됩니다. 한 번 죽고 부활을 시켜야 이제 죄 없는 우리가 되어 영원토록 좋아집니다. 이미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주님은 죄를 지었는데 안 죽고 오래 사는 우리를 만들러 오지 않으셨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어야 되고 죽을 이 몸에 죄를 빼버리면 그러면 죽어도 살아나니 영생의 부활에 우리를 만들고, 그리고 이 몸은 한 번 죽고 부활하지만은 이 몸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과 행위가 말씀으로 살면, 몸속에 있는 행위와 생각은 믿는 순간부터는 다시는 죽지를 않습니다.

믿는 사람 믿다가 돌아가시면 초상을 치는데 요 몸만 초상을 칩니다. 이 몸으로 움직인 행동과 이 몸을 움직이고 산 우리의 생각 중에, 말씀으로 살고 주님의 대속으로 감사해서 산 부부는 그 초상 친다고 그거는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몸은 한 번 죄를 지어 이것은 땅에다 대고 묻었다가 세탁을 해서 새로 부활을 시켜야 영원무궁토록 삽니다. 죄 지은 이 몸은 천국에 갖다 놓아도 백 년 되면 쪼그라들고 천년 되면 서있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이미 되어져 버렸으니, 아니 불이 나서 그냥 재가 된 나무를 목공을 해서 탁자를 만들어야 되겠습니까? 재가 된 것은 버리고 새 걸 가지고 새로 만들어야지. 죄는 한 번 들어가면 그 죄의 저주 때문에 이 몸은 그냥 가만히 둬도 썼고 움직여도 썼고 먹여도 썼고, 이거는 흙에서 나온 것이라 흙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흙으로 흩어져 들어간 것을 주님이 오시면 전부 죄 없는 좋은 몸으로, 영원히 살아도 영원토록 점점 좋아지는 몸으로 이 몸은 다시 살릴 겁니다. 이것 때문에 오신 주님에게 죄를 지어 먹어도 썩어지고 늙어지고 죽어지는 이 몸,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공짜로 준다고 주님을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는 줄 아시고, 너희들이 원하는 예수는 예수가 아니다. 먹어도 죽는 양식 썩은 양식. 앞에 요한복음 6장 27절입니다. 27절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아라.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백성들에게 주님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리고 27절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아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입으로 들어가는 떡은 기독교가 아니라고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왜 주님이 떡을 먹였는가. 떡을 먹여야 말이 되니까 떡을 먹어야 말씀을 배우니까. 무슨 말씀? 이런 거 먹어서 안 된다 안 먹으면 죽는데 왜 먹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걸 먹고 돈을 벌고 가정을 가져야 되는 것은, 먹고 입고 벌고 가정을 가지는 환경 속에 썩지 않는 영생의 말씀 영생의 양식,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날 대신 죽었으니 참 감사하다. 나도 주님처럼 말씀으로 살고 이제는 주의 뜻대로만 살아야 되겠구나. 그래서 말씀으로 산 것만 이것만 영생입니다. 이건 몸이 죽어도 그 속에 있는 것은 죽지 않습니다. 몸이 죽는다고 생각 마음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 이건 쉽게 다 알 수가 있지요? 이래서 요한복음 6장 55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주님의 몸이 참된 양식이다. 그건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은 주님의 고난은 주님의 희생은 마음이 생각으로 먹는 겁니다. 학교 교과서를 염소한테 주면 그 염소가 먹는 데 해 보셨습니까? 혹시? 책은 나무를 갈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거 주면 염소가 먹습니다. 풀이라고. 사람이 종이 뜯어 먹는다고 죽지 않습니다. 풀 뜯어 먹는 것처럼 먹으면 먹습니다. 교과서 한 권을 다 뜯어 먹는다고 교과서 안에 있는 단어와 지식이 내 지성을 만족시키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책에 지식이 내 머릿속에 들어오면, 지식이 내 마음속에 내 속에 들어오면 내가 지성인이 됩니다.

신문을 읽고 방송을 듣고 이런저런 말을 듣고 읽고 접하면, 지식이 우리 귀로 눈으로 들어오면 나라는 사람이 미개 했는데 유식한 사람이 되고, 유식한 사람이 자꾸 지식을 받아들이면 지성인이 됩니다. 풀이 들어가면 토끼가 자라는 것처럼 토끼가 들어가면 사자새끼가 사자 어미로 자라는 것처럼, 밥과 고기를 먹으면 죽어야 되는 우리 몸만 자랍니다. 이 몸속에 공부를 하고 세상에 지식을 많이 집어넣으면 똑같은 세상을 살아도 지성인이 됩니다. 지식인이 됩니다. 근데 이건 죽으면 다 땅에 두고 가야 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셨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주님의 고난으로 나는 죄 없는 사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주님의 고난으로 나는 천국 가는 사람이 되었다. 이 걸 들으면 이 걸 익히면 이걸 내 마음속에 자꾸 넣고 두 번 세 번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하면, 내가 믿는 사람이 더욱 믿는 사람으로 자라게 되고 힘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 집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너희를 구원하느라고 오신 주님의 몸, 이걸 생각하고 비교하고 연구하고 깨달아보고 느껴보고 만져보고, 이리 살펴보고 저리 살펴보고 얼마나 어려우셨을까. 주님의 고난에 주님의 희생에 주님의 생애를 가지고 내 마음을 흔들어보고 연구를 해보고, 기억해 보고 따져보고 비교를 해보고 자꾸 이러면 이게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것과 같습니다. 떡을 입에 넣고 씹고 또 씹고 또 씹고 계속 씹으면, 떡이 물처럼 되고 이게 몸속에 들어가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집니다.

먹기는 밥을 먹었는데 그 밥이 임금님 입에 들어가면 밥이 임금님 팔다리가 됩니다. 이건 다 아시지요? 임금님 입에 들어갈 그 밥을 머슴이 먹으면 그 밥이 머슴의 입으로 들어가면 머슴에 일하는 손발이 됩니다. 필요 없는 것은 대소변으로 빼내는데 머슴에 종에 노예의 입속으로 들어간 음식이, 찌꺼기는 화장실에 가서 비워버리는데 음식 중에 영양분이 노예에게 들어가면 노예가 되고, 그 음식이 임금님에게 들어가면 임금님이 됩니다. 임금님은 우리 먹는 거 말고 다른 거 먹습니까? 똑같은 거 먹습니다. 고급 음식은 음식이고 고급이 아니면 사료가 됩니까? 임금님이라는 종자, 임금님이라는 인간, 임금이라는 이 생명에게 물과 밥을 계속 집어넣으면 나무가 됩니까? 토끼가 됩니까? 사자가 됩니까? 종놈이 됩니까? 임금이 됩니까? 임금이 됩니다. 임금이 먹는 밥상에다 되고 우리는 절하면 우상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안 합니다. 근데 임금님이 밥상에 밥을 먹고 임금님이 세 살짜리가 10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된 그 임금님의 몸은, 우리가 그 앞에 가서 절도 합니다. 나라 잘 다스려 달라고. 아니 밥을 먹었는데 왜 밥이 임금님이 됩니까? 이걸 음식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 위하여 죽으시던 하루 전 마지막 저녁 식사를 열두 제자 앉혀 놓고, 떡을 떼어 주시고 잔을 나누시며 먹고 마셔라 이것이 참된 음식이다. 이게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다. 신앙의 식사를 하거라 무슨 뜻일까?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면 떡과 잔이 내 몸 속에 들어와 내 몸이 됩니다.

내 몸이. 아이가 엄마 뱃속에 처음 생길 때는 말하자면 점 하나였습니다. 근데 이게 한 달이 되니까 손가락 정도로 커져버렸습니다. 10달이 되니까 제법 한 3kg나 되어 버렸습니다. 이걸 젖을 먹이고 이유식을 먹이고 10년을 계속 먹여 놓으면, 10년 뒤에는 초등학생 덩치 큰 아이가 됩니다. 점 하나가 큰 덩치가 된 것은 부모 살을 먹어 그렇습니까? 부모의 피를 마셔 그렇습니까? 음식을 먹었는데 점 하나가 덩치가 된 겁니다. 이게 20년 먹으면 아주 송아지만큼 커져버립니다. 이런 걸 음식이라 그럽니다. 아주 알기 쉽게 세상을 만들면서 세상을 만들면서 왜 먹고 자라도록 만들어 놨느냐. 음식 맛보라고. 음식을 먹어서 덩치가 좋으면 몸 자랑하러 다니라고 그렇게 하나님이 음식을 먹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먹으면 먹은 것이 사람이 된다. 먹으면 먹은 것이 존재가 된다. 주님의 고난을 마음속에 감사하고 주님의 대속을 머릿속에 연구를 하고, 주님이 이 길을 걸어가셨으니 나도 이 길을 걸어가겠다. 이래서 하루 이틀 노력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애를 쓰다보면, 나는 인간인데 나라는 이 인간이 주님의 생애와 고난을 먹으면 내가 점점 자라는데 내가 점점 자라면서 뭐가 되느냐. 주님의 고난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고 주님의 고난을 감사히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지고, 머릿속에 들어간 지식도 감정도 욕심도 사상도 취미도 소질도 기술도 말하는 것도 걸음걸이도, 사람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걸어가고 말하고 생각하는 걸 보니 이것은 주님이 오셨으면 이렇게 생각하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면 이렇게 말씀을 하셨겠구나. 분명히 사람인데 이 사람의 말과 행동은 틀림없이 주님입니다.

풀 먹어서 자라는 것은 토끼도 됩니다. 소고기 먹고 자라면 사자새끼도 사자가 됩니다. 이런 사료 이런 음식은 아무리 먹어봐야 불신자도 믿는 사람도, 그건 먹어봐야 죄로 인하여 죽고 다 지옥에 태워야 됩니다. 주님이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올해 한 해는 올해 한 해의 첫 주일 오늘은 특히 오늘 오전 오후에 성찬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는 것이 신앙의 양식이다. 신앙의 양식이라니? 고난을 입으로 먹고 고난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고난으로 생활을 하다보면, 겉은 나인데 속에는 주님의 고난이 들어와서 잘한다. 어려워도 이 길을 가자. 다른 때는 그런 말 들으면 부에서 주먹이 나왔겠지마는 이번에는 주먹 내둘 그 성격을 꺾어버리고 왜 이런 말을 듣게 되었나 생각을 해보고 나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졌고, 예전 같으면 보는 것도 말하는 것도 행동도 전부 이러고 저러고 이러고 저랬는데, 주님을 연구하고 주의 고난을 생각하고 주님 부활을 생각하고, 주님이 걸어가시고 그 당한 모든 걸 자꾸 자꾸 쌓아두고 생각하고 흉내를 내다보니, 주님을 10% 닮고 주님을 50% 닮고 주님을 70% 80%까지 닮고, 그렇게 자꾸 자꾸 자꾸 닮다 보면 나중에는 참 그게 그리 되겠나 싶은 데까지 갑니다.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이야 사랑하지 미운 걸 사랑할 수가 있겠느냐. 미운 거는 미운 거지. 이게 인간입니다. 미운 거는 미운 거고 예쁜 거는 예쁜 거고 내 자식은 예쁘고 남의 자식은 안 예쁘고 원수는 쥐 박았으면 싶고. 이게 죄지은 인간의 자연입니다. 당연한 건데 앞서 가신 주님이 네 놈들 다 죄인 아니냐. 죄 지은 죄인은 주님과 원수 아니냐. 죄 지은 너희는 하나님과 원수 예수님과 원수지만은 너희 죄를 없애려면 주님이 대신 죽어야 되고, 주님이 대신 죽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이제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 이번에는 죄 안 짓기 위해 죄와 싸워 이기기 위해, 말씀으로 살기 위해 목숨도 아낌없이 던지고 살아갈 결심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되거라. 주님이 사활의 대속을 주시며 우리에게 그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이 부탁을 한 번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하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예전에는 미운 녀석은 그냥 뒷발을 딱 걸어버리고 뒤 꼭지를 한개 후려갈기고 싶었는데, 주님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주님은 그러면 내 뒷발을 걸고 내 뒤통수를 탁 밟고 가셨던가. 백 번이라도 그러고 마땅할 나를 내속에 죄를 뽑아버리느라고 대신 죽고 죄 없는 나를 만들어 놓고, 앞으로는 죄 짓고 미워하고 살인하고 그러지 말아라 그러셨으니 주님의 고난, 주님의 수고 주님의 부탁 때문에 주님의 고난, 주님의 부탁 때문에 저놈이 밉기는 딱 밉지만은 저 인간도 나처럼 죄만 없애면 사람이 바뀔 터이니, 저 미운 인간 속에 죄를 뽑아버리려면 회초리로 한 개 때려야 죄가 없어질까. 그러면 회초리 때려서라도 죄 없애면 됩니다.

이 회초리는 들고 싶어도 죄를 회초리를 못 들게 하니 어떻게 해야 이 인간 속의 죄를 줄여보고 없애볼까. 거기에 밥 안 끼 선물함으로 달래는 게 좋으면 밥 한 끼도 줄 수 있는 거고, 회초리가 좋으면 옛날처럼 회초리 줄 수도 있는 거고, 이건 좀 무시해 버리고 못 본 척하는 것이 이 사람 죄 짓는 걸 고칠 수 있다면 그리도 하고. 업어주면 이 사람이 회개하고 이제 사람이 될 것 같으면 업어줄 수도 있고, 하여튼 어떻게 해야 죄인이 죄에서 돌아서서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 질까. 정말로 그 일에 필요하면 내가 낮아질 수 있고 내가 어려워질 수 있고 내가 힘들 수 있고 내가 고난을 당할 수 있다. 이걸 생각하고 이 걸음을 걸어가려고 할 때 그때 이제 나는 난데 내가 자꾸 주님의 고난을 먹었기 때문에, 주님의 고난을 양식으로 자꾸 먹었기 때문에 행동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고 성깔도 달라지고, 과거는 뭐 한마디 들으면 그냥 입이 두 마디 나가고 주먹은 세 번 나가고 그러던 사람이,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주님이 주신 말씀이니, 10번을 들어도 이제는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이리 되고, 백번을 들어도 또 한 번 더 생각해보자 그리 되어 내속에 나를 자꾸 꺾어 달래고, 말씀으로 살고 말씀 어기는 죄는 꺾어버리고 이게 주의 피와 살을 떡과 잔으로 먹는 사람입니다.

생각 없이 성찬을 먹는다고 그리 되는 것이 아니라 떡을 입에 넣으며, 주님은 날 위해서 자기 몸을 찢었는데 아니 뭐 부부 살며 이 정도는 참아야지. 아무리 그렇다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생각 나오는 대로 다 퍼붓고 둘이 평생의 원수처럼 이래 살아서 되겠는가. 나부터 바뀌어 보자. 자식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 아니라 건강 때문이 아니라 남들이 볼까봐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주님 때문에 말씀으로 살기 위해서 나를 한번 꺾었으면, 이게 이제 주님의 고난을 생각으로 먹은 사람이고 소화까지 시킨 사람이고, 그래서 이제는 주님을 조금씩 조금 씩 닮고, 닮고, 닮고 나가다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제일 어려운 여기까지도 갈 수가 있는 겁니다. 사람이 결심한다고 되겠습니까. 미운 놈은 미운 거지. 남들이 쳐다보니까 연극은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쳐다보니까 연극으로 용서한다. 저 천주교 교황도 한 30년 전인가 교황한테 암살한다고 총 쏘는 인간이 있는데 총을 탁 쏘았는데 안 죽었습니다. 그 교황이 원수를 사랑하노라. 아주 참 세계 텔레비가 다 보고 앉았으니까 이미 죽지 않았으니까 원수를 사랑하노라 탁 이러니까 멋있게 보이지. 그 인간 멋있게 보이느라고 천주교 교황도 그 말하고 절의 중들도 그 말 다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는 그 말 못 할 줄 아십니까? 남한 놈들이 밉지만은 내가 사랑하고 내 백성 만들어 주마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 거 말고. 정말로 마음속 깊이로 원수는 미운 건데 주님을 생각하니 주님 때문에 바꾸려고 노력하는 거고, 주님 때문에 바꾸려고 노력한다고 그게 노력이 되어 집니까 그게? 미운 녀석인데. 주님 때문에 노력을 하려고 애를 쓸 때 주님이 내 마음 안에 미움의 마음을 없애버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바꿔주면 그때는 진정 깊은 속에서 원수는 원수지만은, 죄를 지어노니 몰라 놓으니 죄 아래 인간이니 안 그런 인간이 있겠는가. 주님이 대신 죽어 죄지은 원수 나도 살려서 이제 주님을 좋아서 이렇게 따르는 것처럼, 나도 저 사람 믿는 사람 만들고 그냥 교회만 오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으로 실제 살아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나부터 내 속에 있는 미움을 내가 꺾어버리고 내 성격 내 체질 내 고집 나 살아온 악습 내속에 들어있는 악성. 이런 걸 꺾고 죽이고 꺾고 죽이고 많이 꺾고 많이 죽여 놓으면, 새파란 배추를 소금물에 하루 절여 놓으면 숨이 팍 죽어버리듯이, 눈빛만 마주쳐도 뭐 주먹 들고 죽이니 살리니 펄펄 뛰던 날카로운 유리조각 같고 사기조각 같은 그런 인간들이, 이제는 숨죽은 배추처럼 옆에 와서 누가 옆구리를 콱 쥐 박아도 아이 제가 실수를 했는지요.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물어보고 자기를 살피는 사람 되고, 이게 바보라 그런 것이 아니라 멍청해 그런 것이 아니라 절의 중들 말마따나 보살이 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신경 안정제를 먹여서 사람이 다운이 돼 그런 것이 아니라, 천주교 교황처럼 세계 텔레비가 쳐다보고 앉았으니까 속으로는 미워도 겉으로는 뭐 사랑합니다. 라고 이렇게 한마디 연기를 하고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날 위해 죽었는데 내가 내 마음속에 미움 하나 못 박아 죽여야지 이거 하나 못 이겨 되겠는가.

자기 속에 옛 사람을 하나 둘 하나 둘 꺾고 죽이고 꺾고 죽이다가 10년 20년 지나다 보니까 저거 10대는 굉장한 녀석인데, 아이 서른이 됐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까 철이 들었나. 아니 저건 나이 든다고 철들 것이 아닌데 저 녀석은 어떤 일인고. 그 사람을 뒷조사해 보고 속을 해부해보고 MRI CT 촬영을 해보니까 그 예수의 구원이 들어가서 사람을 바꿔버렸구나. 그러면 이거는 복음입니다. 유교 공자 밑에 돌을 많이 닦아서 착해진 사람은, 그건 아무리 연구해도 그 마음은 천국 가지는 못합니다. 그건 지옥 가야지. 절에서 돌을 많이 닦아서 이제 화를 안 내는 사람이 됐으면 그건 석가하고 같이 지옥가지 천국 못 갑니다. 주님 때문에 주의 고난 때문에 주님 걸어가신 그 걸음걸음 때문에 내가 내 속에 이 죄는 내가 이겨야지. 나만 내 속에 나를 고칠 것이 아니라 내게 맡긴 내 주변의 식구도 나 때문에 말씀으로 자기를 꺾는 사람 만들어야지. 나는 안 고치고 남만 고치려고 들면 이게 싸움만 되지 고쳐지지를 않습니다. 내가 나를 많이 고쳐보고 나를 고친 경험으로 상대방에게 부탁을 하면, 이거는 감화가 되고 이거는 감동이 되어 이거는 넘어갑니다.

채소밭에 새파란 상추를 따와서 엄마도 먹고 석 달자리 아이 입에 같이 밀어 넣으면 석 달자리 아이는 상추 생 거 그대로 먹으면 설사하고 큰일 납니다. 근데 상추를 엄마가 다 먹고 엄마가 피가 되고 살이 된 것이 젖으로 통해 아이 입에 물리면, 상추밭에 생 상추를 엄마가 다 먹고 젖으로 주면 아이는 탈이 나지 않는데, 엄마처럼 아이 입에다 대고 직접 밀어 넣으면 이건 독약이 됩니다. 주님의 대속 때문에 우리 성깔 좀 꺾어보자 그 말을, 나는 아무리 그 말씀으로 내 성깔을 꺾어도 이거는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주님을 닮는 신앙의 인격이 됩니다. 이게 많이 되어 진 사람이 그리고 옆에 다른 사람에게도, 나도 성질이 좀 그랬는데 말씀으로 자꾸 나를 꺾어 보니 내 마음에 좋고 내 신앙에 좋고 주님 앞에 덜 죄송하고, 당신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젖으로 먹이는 겁니다. 너는 원수를 사랑하는 말 모르냐? 넌 모르냐? 너도 모르냐? 너도 모르냐? 자기는 독기가 새파랗게 올라와서 건드려 놓으면 뭐 하나 건들면 열을 펄펄 뛰면서, 남들한테는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그러면, 그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을 전하고 신앙의 양식을 전해주고 성찬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에게 생풀을 뜯어 먹여 아이를 죽여 버리는 일입니다 그 풀이 그 풀인데 왜 내가 먹으면 되고 남이 먹으면 안 되느냐. 말씀이란 내가 먹고 나를 고쳐야지. 말씀으로 남을 고치려 들면 그 사람이 죽기 싫다고 펄펄 뛰며 싸움이 생겨버립니다. 말씀과 다른 걸 십자가에 못 박고, 말씀과 다른 자기를 죽이는 것은 말씀으로 자기를 죽여야 되지 남 죽이려고 망치 들고 나서면 큰일 납니다.

주님이 오셔서 베드로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베드로 이놈아 너는 배신이 있고 너는 변덕이 많고 넌 큰 소리만 치고 도무지 뒤에 보니까 영 엉망이더라. 베드로 너 속에 들어 있는 변덕 배신 너 속에 있는 아주 더러운 악성과 악습을 좀 항암 치료를 해야 되겠다. 수술을 해야 되겠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여 버려야 되겠다. 예수님이 망치 들고 베드로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바리새인 십자가 못 박았습니까? 죄 없는 주님이 자기는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죄인 중에 고수 죄인 괴수 죄인 한 명도 주님이 십자가 못 박지를 않았습니다. 죄 없는 주님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오늘 우리들에게, 2023년도 주님을 생각함으로 너 속에 너를 먼저 꺾어 보고 너 속에 너를 먼저 십자가에 못 박으라. 개나대나 십자가 못 박으면 그건 학대고 그거는 자살이고 자해라 그럽니다. 그건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은 누가 와서 부추겨도 아무 데나 대고 돈을 갖다 함부로 주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봉사하고 그런 거 아닙니다. 정말로 낼 돈인가 정말로 봉사할 봉사인가. 정말로 이거는 희생을 하면 주님이 기뻐하고 죄를 이기고 영생의 하늘로 가는 바른 것인가. 그때만 낮아지고 그때만 희생할 수 있습니다. 개나대나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주라 그거는 도덕주의입니다. 그런 것은 저 인도의 간디라는 사람이 원수를 그렇게 사랑했답니다. 원수의 나라 영국하고도 싸움을 안했답니다. 얼마나 성자인지. 그 간디와 간디의 사상은 지옥가지 천국 못 갑니다. 말씀과 다른 것 말씀으로 사는 것 주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을 꺾고 주의 뜻대로 사는 것, 이건 자기에게 먼저 해당이 돼야 됩니다. 이게 자기가 먹고 자라는 겁니다. 자기의 신앙이 자라면 자기가 어른이 되고 자기가 이제 어머니가 되어 지면, 그러면 내가 챙길 주변의 식구들에게 나는 젖으로 먹이는 겁니다.

고난 없는 목회자의 설교는 그거는 입으로 말로 가지고 남 싸우는 일입니다. 제 설교를 들으며 참 맞다 감동이 되는 부분은 제가 먼저 저를 고쳤기 때문에 그만큼 될 겁니다. 제 설교를 들을 때 참 값하고 앉았다. 말은 잘한다. 참 말은 멋들어지게 잘한다. 말이 사 나도 그만큼 하겠다. 너는 그리 했냐? 지는 화딱지나면 남보다 그냥 10배는 더 펄펄 뛰면서, 설교하는 사람은 말씀으로 자기를 고쳐보지 않고 교인들에게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이러면 귀신이 속으로 배를 잡고 웃습니다. 저기 나 같은 귀신 또 하나 있다. 잘한다. 마음껏 설교해라 귀신 운동만 퍼져나간다. 성찬의 떡과 잔은 먹고 마셔도 성찬 속에 있는 주의 고난은 먹어본 흔적도 없구나. 이리되어집니다. 목회자가 그렇다면 집집마다 호주되는 분들 자기 집에 두목 되는 분들, 자기 집에 어른인 분들 자기 집에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분들 나머지 식구들이 자기 눈치를 보는 분들, 자기는 자기 꺾지 않고 자기는 말씀으로 안 살고 식구들한테, 잘 믿어라 착해져라 또 뭐 설교시간 잘 들어라 누구한테든지 욕 얻어먹지 말아라. 자랑스러운 인생을 살아라 녹음기가 말은 더 잘할 겁니다. 유치원 애들도 요새는 그 말 잘 할 겁니다. 교회는 제가 먼저 말씀으로 저를 꺾어보고, 여러분들께는 이리 말하나 저리 말하나 호소가 되어 지면 그게 맞는 것이고, 가정마다 신앙으로 앞서가는 분들은 자기를 먼저 십자가에 못 박고 다른 가족에게, 이래 말하나 저래 말하나 내용적으로 주님이 볼 때는 참 애절하게 호소하는구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만은 말의 속은 주님이 볼 때 그리 되어야 됩니다.

두 여자가 아이를 낳아 한 방에 누워 자다가 한 엄마가 자기 아이를 그냥 낳자말자 깔아 죽여 버렸습니다. 옆에 있는 다른 엄마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빼돌리고 죽은 아이를 그 엄마 품에 밀어 넣었습니다. 이게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니까 누구 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솔로몬이 어떻게 했지요? 칼 가져 오너라 산 것도 두 토막 죽은 것도 두 토막 하나씩 나눠 줘 버리거라. 아이고 솔로몬의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하며 말이 말이라도 표현이 그렇게 혹독하면 얼마나 상처를 입겠습니까. 그렇습니까? 그 말 아니고는 살아있는 아이를 살아있는 아이의 엄마에게 찾아주지를 못하니, 아이를 살리고 생명운동을 위해서 다른 방법이 없어서 칼 가지고 오느라 쪼가리를 내 버리거라. 그런 겁니다. 솔로몬의 마음은 죽은 거는 죽었고 산 아이를 살려야 되는데 어떻게 해서 살릴까? 울어야 될까 돈을 줘야 될까 이래야 될까 저래야 될까. 두 토막을 내버리라 칼 가지고 오너라 이 말 외에는 죽어가는 아이 남의 집으로 갈 수 있는 아이를, 살릴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혹독한 말을 했지만 그게 잔인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었고 애정이었고 긍휼이었고 생명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한 노력이었습니다. 말은 좀 험하게 나갈 수도 있고 곱게 나갈 수도 있고 이렇고 저럴 수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 그렇게 말 했어야만 하느냐 이렇게 돌아보면 우리는 다 부족이 많은 사람입니다. 남쪽바다 쪽에 사는 사람들은 괜히 공연히 말이 좀 억하고 셉니다. 정말로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주님 앞에 생각하고 좀 서로 조심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고난 생각할 때 나도 앞서가신 주님 따라 주님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면서, 그 떡과 잔이 고난이니 아파도 힘이 들어도 내 속에 못 박을 것은 내 손으로 내가 못 박는다. 내 속에 꺾을 것은 내 손으로 꺾는다. 내 속에 죽일 것은 내가 항암 치료를 하던 내가 끝장을 낸다. 이때는 혹독하게 단호하게 나가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나를 향해서는 한 걸음 더 혹독하게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한 걸음 더 조심스럽게 주의고난으로 살펴보십시다.

(기도)
주님 고난 기억함으로, 한 해가 주님을 따라가는 말씀생활 칭의의 생활 하나님 모신 영생의 소망의 생활이 되어 지도록, 마음 마음속에 주의고난 주의사랑 깊이 느끼고, 어떤 안팎의 현실 속에서도 잊지 아니하는 저희들이 되므로 올해 한 해가 있어, 우리의 평생에 귀한 보배가 되고 주님이 앞날의 생존과 등 필요한 은혜를 더해줄 수 있도록, 남녀노소 우리 모든 교인들 가정과 개인에게 넘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
(설교 교안)


23.1.1주전      요6:55            주님을 기념          예장총공 신풍교회


□ 신년행사
  1. (성찬)식
  2. 작년 : (결산) 보고
  3. 새해 : (분담)과 (의논)


■ 성찬식
 1. “참된 양식” > 신앙의 (식사),
  ① (생명)
  ② (성장)
  ③ (활동)

 2. “살과 피” > 주님의 (대속)
  ① 성찬의 떡 : 주님의 (고난)
  ② 성찬의 잔 : 주님의 (생명)

 3. “내 안에, 그 안에” 상호 (내주)
  ① 세례 교인 > (작정)한 사람
  ② 평생 약속 > (매일)의 생활

■ 참된 양식
 1. 존재마다 다른 양식
  ① 자연 : 구름, (습기) *태풍 : 온도 + 습도
  ② 동물 : 맹수, (육식) *식물 : 수분 > 흙 > 초식
  ③ 인간 : 지성, (지식)
            이성, (계산)
            인격, (양심) *부모의 고난 > 세상 성공

 2. 참된 양식
  ① 주님 고난 : (신앙)
  ② 주님 생명 : (연결)

 3. 성찬식
  ① 역사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 (성찬)식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 주님의 (부탁)

  ② 기념
  - 주님의 고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 성찬의 (떡)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 주님의 (고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신앙) 생활
 
  - 주님의 생명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 성찬의 (잔)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 주님의 (생명)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 (신앙) 생활

  - 평생의 약속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 성찬은 (평생)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 항상 (성찬) 생활

  ③ 참된 양식
  -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의 생활을 위해
  - (비천) (가난) (고난) (수치)로 먹고 마시며 살아 갈 것

Comments

Category
State
389,265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