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새22.12.22 눅2:7 한번의 실수가 아니라 근본 자세 문제, 주님부터 모시고 나머지 모든 일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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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새22.12.22 눅2:7 한번의 실수가 아니라 근본 자세 문제, 주님부터 모시고 나머지 모든 일인 것

관리1 0 98 2022.12.22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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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2 목새

제목 :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근본 자세 문제, 주님부터 모시고 나머지 모든 일인 것

찬송 : 50장(내 너를 위하여)

본문 : 누가복음 2장 7절 -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기도드리겠습니다.
마음 다하며 힘 다하며 뜻 다하여 역사 이후 가장 좋은 세상을 사는 저들이 세상에 완전 매몰될 수 있으나 하늘을 향한 소망 변치 않는 이 아침 저들이 되어 연말도 또 연초도 지난날이 부족하므로 생존의 은혜를 구하여 주님만을 바라보는 저들 되게 하시고 늘 저희 마음속에 볼 수 없는 주님으로 순간순간 현실마다 오시는 주님 잘 맞아 우리의 마음 우리의 행위 변화되며 준비하는 저들 되도록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초림으로 오신 주님도 알아보는 사람 없었고 알아보는 사람 없었고 기대가 없었더라 그 말입니다. 바라보다 기대하는 사람 없었고 오기 전에 기대하는 걸 바라본다, 소망이라 그럽니다. 동방의 박사들 불신자인데 당대의 지성인이며 잘 살던 사람들인데 세상이 넉넉하고 세상에 할 일 많아 죽는 날까지 연구하던, 가르치던 남들이 배우러 오는 명예가 있던 그들도 복잡했을 건데 요즘 여행이 아니라 그 고대 사회의 여행이란 살던 곳을 벗어나면 불편 정도가 아니라 생존 문제가 따릅니다. 그러나 살고 있는 땅에, 밟고 있는 땅에 부딪히는 주변에 만족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보면 만족할 만한데 자기들은 만족 할 수가 없어 사람이 사는 우선의 땅에서 위를 바라보며 저건 뭘까 저 세계는 뭘까? 하늘을 연구하는 사람 되었고 그 말은 천문학자라 말이 아니라 동방박사는 전부 다 천문학자로 적고 있지만 천문학자라도 상관없고 이 ㄲ땅위에 부족함이 없어야 되는 사람이 밟고 있는 세상 주변에서 전부를 찾지 아니하고 하늘을 바라보다, 하늘을 바라보다, 바라봤다, 소망했다, 현실에 만족 없이 세상이 아무리 가득 차도 이거는 하룻밤인데 생각해보면 다 알거 아닙니까?

그에게 하나님이 하늘에 다른 별을 보여 천문학의 별이 아니라 위를 보라 골로새서 2장 위를 보라 “땅의 것을 보지 말라 위에 것을 보라” 그에게 보여준 소망이 천문학의 별이 아니라 세상의 인간이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없는 그런 별이었습니다. 저게 뭘까? 불신자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고 하나님의 나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담이 범죄 한 후 가죽옷을 입혀 너의 죄를 다른 생명이 대신하고 너를 보호 한다, 창세기 3장에 타락 순간 구원의 약속하셨고 여인의 후손으로 낳을 남자가 죄를 짓게 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마귀를 이기고 죄로부터 구원의 소망을 주셨고 첫 순교의 아벨이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으니 죄 없는 양이 대신 죽어 죄 지은 내가 용서를 받는다, 이게 뭘까? 이게 이어지며 모세 때 율법의 구원의 약속을 적고 모든 선지서로 오실 주님의 위치 지파 동네 이사야 53장 그 모습까지 세세히 적어 놓았으니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 사람들은 특별히 오실 주님을 직접 맞을 가정이 될 것이며 모든 11
지파는 유다 지파 베들레헴으로 오실 구주 메시아를 협조하고 보호하고 가까이 멀리 여러 역할로 함께 바라보고 있었어야 되니 동방의 박사들은 세상을 헤매다가 세상에 목표를 두면 아니 되겠다 하고 바라보는 그 소망 속에 주님이 인도를 주셨다면 이 나라 이백성은 나면서부터 글에 적은 오실 주님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부 잊어버렸습니다.

오늘도 내 마음이 연말이라 대학 입학에 바쁜 학생 얼마나 그 마음이 바쁘겠습니까? 온 가족이 다 역할 분담하고 바쁘겠지. 다리 밑에 얻어먹고 배 깔고 눕는 거지도 마음은 바쁩니다. 아침은 먹었는데 점심은 또 어디로 갈까, 어느 거지가 먼저 좋은 집을 가면 밥 얻어먹는 거지 한 발 늦으면 얻어먹어도 멀리 가야 됩니다. 또 언 밥 먹어야 됩니다. 그마저 못 먹을 수 있습니다. 얻어먹는 거지 아침에 저녁에 문 두드리고 들어오는 거 보신 적 있습니까? 게으른 거지는 겨울 추우면 얼어 죽습니다. 나뭇가지 미리 몇 개 모아 불을 떼야지 거지도 생존을 위해서 바쁩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기 시작하면 한량도 없습니다. 이게 귀신이 천하를 바쁘게 내 마음을 바쁘게 흔들어대는 안팎의 미혹인 줄 알고 돈이 아무리 쌓이고 벌리고 밀려 들어와도 주일과 예배와 신앙의 기본과 내 양심의 귀를 기울여 이건 주님이 훗날을 위해 마련하라고 맡기시는 것이니 잘 잡아줘야 되겠다 싶은 돈 벌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주님 모시고 동행해야 됩니다. 만사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동방의 박사는 멀리서부터 미리 준비하고 왔는데 아니 이스라엘 나라 안에 사람 중생된 믿는 사람이 중생은 이 땅 위에 살라고 주신 생명이 아닙니다. 그건 육체의 생명 똑같이 주셨습니다. 육체의 생명의 수완에 성공 있는 거 아닙니다.

돌아 다시 비교해 보면 천 년이 하루 같다 하셨는데 모세가 되돌아보니 시편 90편 인생 칠십 건강하여 팔십이라도 그냥 밤에 한 경점과 같다, 눈 깜빡할 사이라는 말입니다. 주신 생명 쉽게 생각할 수 없고 또 지난 날 잘 믿지 못했으니 뭐 일찍 불러 가셔도 됩니다, 우리의 그럴 만한 신앙은 되지 않습니다. 똑같이 살아도 지난날이 아쉬우니 생존의 기회를 더 주시면 열심히 믿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해도 좋은 기도 될 터인데 이 좋은 세상 조금이라도 더 살다 가겠다고 버티겠습니다, 이래서 낫게 해주시고 오래 살게 해주시고, 주저리 주저리 갖다 대면 주님의 마음은 그 놈 믿은 세월이 언젠데 아직도 세상에 마음이 붙어 있으니 죽을병을 줘서라도 세상에 정을 떼버리든지 아니면 진짜 일찍 불러가는 수가 있습니다. 신앙 어린 사람의 기도는 덮어놓고 들어주고 보지만은 알만하고 신앙 있는 사람이 두고 갈 세상만을 향하여 집중 기도하면 주님 마음 달라집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 기억하고 여기 오신 주님, 주님을 맞으러 온 사람 8절에 보니까 “그 지경 그 주변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양떼를 지키더라” 밤에 따뜻한 자기 집 안방에 드러눕지 못하고 주님이 맡긴 자기 양떼 자기 신앙의 사람 자기 어린 아이 당연히 주님이 맡긴 자기 양떼입니다. 구역장으로 주일학교 반사로 교회 아무 직책 없어도 믿는 사람은 믿는 순간 자기 주변에 주님이 맡긴 사람 있습니다.

내 몸 밖의 양 떼도 급하지만은 내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어떤 때는 열심히 믿고자 하고 지금도 열심히 있으니 새벽까지 나왔지만은 그러나 한편 내 마음속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내 마음속에 같은 마음인데 욕심 다르고 사상 다르고 내 마음속에 야욕 다르고 내 마음 속에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는 별의별 것 다 섞여 있습니다. 로마서 7장 사도바울도 늘 자기 내면을 봤고 자기 내면에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늘 보고 살았습니다. 이거 세상과 죄를 쥐어박아야 되는데 이거 죽는 날까지 버티고 내 속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건 남이 도와주지를 못합니다. 이건 내 양 때 아닙니까? 책 보기를 좋아한다, 독서력이 특별하다 뭐 부모 입장으로는 전부들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느 책을 좋아하느냐, 아무 책이나 읽으면 다 됩니까? 진리의 말씀에 남다른 소망을 가지고 또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일반 상식도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이니 이것도 또 필요하면 알아야 되는데 진리의 말씀을 추구하는 그 마음이 중앙에 서고 그리고 주님이 만든 세상과 주님이 운영하는 오늘과 지난날을 돌아보며 신앙에 이것도 필요하구나, 이렇게 읽으면 성경도 성경되고 세상 책도 성경을 읽는 데 참고 되는 여러 가지 도움 되는 자연의 선물입니다. 이게 지식의 마음을 안방에 모시는 겁니다.

어제저녁 성경 읽기 때문에 여러 번 이렇게 언급을 해 놓으면 양심에 찔려 또 오늘은 한 두 페이지 보고 또 3일, 4일 지나다 보면 작심삼일 오래나 갑니까? 깊은 마음이 세상인데 신앙의 양심 때문에 완전히 세상으로 나갈 수는 없고 또 짜여 지고 매여져 바쁘게 세상을 살아 나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리저리 그냥 내 마음의 중심과 전력이 세상에 가 있고 이 양쪽에 끼어 사는 것이 우리들인데 불신자는 이거나 저거나 다 믿음 밖이라 크게 보면 하나입니다. 믿는 사람은 양면을 늘 가지고 다투고 싸우고 있습니다. 리브가 배 속의 야곱과 에서가 피할 수 없이 붙어 힘든 것처럼. 내 마음 속에 남달리 타고난 독서력이 있다 해도 그 독서력 제일 중앙에 주님 모시고 주님 날 위한 고난의 길 생각하고 나의 갈 길은 주님 따라가는 건데 그길 따라가면 세상이 들볶아 어려울 줄 각오 하고 가야 되는 것이고 독서력도 독서력 속에 주님 모시고 지금까지 공부하며 살아왔던 모든 사고방식 재편을 시켜서 생각을 바꾸고 자세를 바꾸고 경제활동도 연말 연초에 모든 일정을 상대하는 근본 지식도 국가가 국가란 일단 왜적을 막고 시작을 합니다. 이건 뭐 국가라면 기본입니다.

국가 발전을 위하여 60만 대군을 산업 현장에 투입하면 얼마나 돈벌이에 좋을까? 옆에 있는 적국이 얼마나 좋아할까? 양떼들이 그냥 우리까지 걷어치우고 풀 뜯어 먹느라고 정신없으면 배고픈 이리가 감사할 뿐이죠. 국가란 국방이 제1이고 국방 전제 하에 그다음 가정도 있고 경제도 있고 이렇습니다. 근본의 사고방식이 그리 돼야 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은 주님 마음속 깊이 모시고 이게 가능하고 이 노력과 이 투쟁이 앞서가고 이게 근본에 깔린 다음, 그다음 뭘 해도 하는 겁니다.

저처럼 늘 설교가 생활화되고 하루 종일 성경 보는 사람들은 설교와 성경이 하나의 종교행위 습관이 되어 반복이 되다 보니까 습관이 되고 익어져 그냥 마음속에 주님 생각하지 않아도 약장사 약 팔 듯이 교사 아이들 또 학기 초에 그 과목 나이 50살 30년 경력의 교사는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 그거 외우겠습니까? 못 외우겠습니까? 뭐 그냥 졸면서 마음 없으면 입에서 줄줄 나가겠지. 교사는 습관적이 되고 운전은 습관이 되었고 약장수 약 파는 거는 습관이 되고 목사 설교하는 것은 마음속에 주님 없이 자기 철학을 시도 때도 없이 고장 난 레코드처럼 틀지 않을까? 이것도 잘못되면 종교행위 반복됩니다. 구약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1장에 재물을 내게 가져오지 마라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겁니다. 구약의 제사는 습관이 되나 신약의 예배는 습관 되지 않는다 단정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누구든지 예외 없습니다.

교회 출근하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가장 교회를 무시한다, 이게 사무엘의 두 아들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이 죄 짓는 것은 전부 성전을 향해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 모시고 다니다가 주님 팔아버린 것이 가룟 유다입니다. 잘 믿고 잘 믿는 입장에 있을수록 더 조심해야 되고 또 세상을 오가는 사람들이야 원래 그거는 남의 동네니 더 조심해야 되고 동방의 박사들 그 밤에 하룻밤 나그네 그 인생 어둠 속에 자기 내면까지를 잘 챙겨 주님의 고난 마음속에 생각하고 살아가는 하루 되도록 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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