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2.12.14 창29:30 라헬과 레아 역사 비교, 세상 장점 집중만큼 하나님 은혜 받기에 불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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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22.12.14 창29:30 라헬과 레아 역사 비교, 세상 장점 집중만큼 하나님 은혜 받기에 불리함

관리1 0 117 2022.12.1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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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4 수밤

.수밤22.12.14 창29:30 라헬과 레아 역사 비교, 세상 장점 집중만큼 하나님 은혜 받기에 불리함

찬송 : 157장(고요한 바다로)

본문 : 창세기 29장 30절-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 하였더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완전자 영원불변의 사랑에 지극함을 우리에게 다 주시려고, 목적의 대상으로 삼고 천지를 창조하며 우리 각자를 위하여 오늘까지 예비하셨다가, 매 현실을 새로 조성하시고 운영해 나가시는 주님. 좋은 것도 좋고 좋지 않은 것도 알고 보면 더 좋게 만들어 가시는데, 보이는 것으로 보고 볼 수 없는 걸 보지 못하면, 보이는 현실에 휩쓸려 세상에 자기 기회를 다 버릴 수밖에 없사오니, 이 밤도 모아주신 주님 시공을 초월하여 이 한 노선 이 한길 끝까지 걸어가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신앙 위해,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인간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어려움 난제 불행을 복되게 받아가지고, 부활의 새 생명을 만들어가는 이런 예배 예배의 은혜와 이어지는 생활 되도록 불러주시고 오가는 길 지켜주시고 늘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야곱의 아버지가 이삭입니다. 이삭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 닮은 이삭, 이삭 닮은 야곱이지 딴 데서 나온 게 아닙니다. 근데 미묘하게 좀 다른 점은 아브라함도 급하니까 아내를 동생이라 이렇게 해가지고 애굽에 갔다가, 왕에게 선물은 받고 그 아내를 위험에 빠뜨렸다가 하나님이 살려낸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에 있으라 했으면 그냥 있을 터인데, 계산을 하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게 아브라함의 첫 기록이고 또 신앙 출발의 실수입니다. 하나님 가자는 대로 가고 있으라면 있을 터인데 인간 계산으로 내려갔고, 내려가면서 불안하니까 그렇게 자기 살려고 그 아내를 동생이라 했으니, 왕이 쉽게 데려갈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살아가는 처세술로 뭐 거짓말은 안했다고 쳐도 인간의 꾀 인간의 방법을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신앙 출발에는 한번 그리 했고 그리고는 거의 바른 길 걸어갔고 중간에도 한두 번 좀 그랬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자라갔고 문안하게 순종으로 갔고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도 비슷했지만은 이삭은 아브라함보다 더 순종 하나로 걸어갔고, 또 복된 길 받고 그렇게 되어졌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러면 야곱은 더욱 하나님만 바라봐야 될 야곱이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초기에 그 실수 애매한 것을 고쳤으면 좋았을 터인데, 야곱은 시작부터 끝까지 재주고 끝까지 인간적으로만 대처를 합니다. 외삼촌 집에 오기까지도 그러했고 외삼촌 집에서 한 달 양치는 걸 딱 보니까 외삼촌이 알아봤습니다. 이거 큰 인물이라고. 그리고 야곱의 시선을 보니 라헬을 가지고 쥐면 이건 큰돈이 되겠다고 해서 라헬을 조건으로 7년 일을 시켰고, 야곱은 주력을 하는 걸 보니까 주님이 주시는 기회보다 제 눈에 좋아서 세상 때문에 주력을 했습니다. 이제 그렇게 7년 보내고 이 좋은 일꾼을 7년을 더 잡아두려고 하니, 꾀쟁이 야곱 그 어머니가 리브가입니다. 그 혈통이 그런데 리브가의 오빠가 라반입니다. 족보가 이렇게 되니까 외가댁은 또 야곱의 꾀 야곱의 수단을 가지고 라헬을 잡아놓고 7년 라헬을 준다고 해놓고 레아를 돌려 넣어 또 7년을 뽑아냅니다. 틀림없이 따라올 테니까. 야곱 하나를 가지고 똑같은 일로 두 배를 뽑아냅니다. 이 꾀쟁이 이 약은 계산적인 야곱에게서 14년을 훑어내니 또 야곱은 등신입니까. 나머지 6년을 통해 지난날 14년 당한 걸 전부 다 돌려나옵니다. 야곱 속에 아브라함 이삭적인 복의 성향도 있지만은, 아브라함 이삭의 복의 성향 아닌 인간적인 계산은 어머니 쪽인데, 어머니 쪽에 외삼촌이고 또 라반이고 다 그만, 그만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 속에서 라반은 또 야곱을 14년 뽑아 먹고 당하는 척 하면서 아내 둘 얻고 또 6년을 통해 지나간 날 다 뽑아내고, 서로 앞에서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하고 뒤로는 이속을 다 챙기는데, 지켜보는 하나님의 시선은 관심이 없고 인간 대 인간에 주고받는 거래에 계산만 있고 이거는 뭐 총성 없는 전쟁입니다. 이렇게 오고 가는 가운데 이제 드디어 아내를 통해 아이를 가지게 되어 집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 어떤 신앙의 계통을 이어 갈런가. 야곱은 이 하나님의 인도를 봐야 되는데 이건 제쳐놓고 내 눈에 좋은 내 진로 내 사업 나 살기에 좋은 이게 라헬입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레아는 공연히 치었고 라엘 때문에 덤으로 가는 인생이고, 이거는 마음이 없는데 보태졌으니 밀려고 치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지켜보는 하나님이 31절 레아는 총이 없어 야곱의 눈에 벗어났고, 라헬은 야곱의 시선을 다 끌어 다니고 있으니, 지켜보는 하나님은 레아에 총이 없으므로 아들을 주어 보충을 하고, 라헬은 야곱의 사랑이 넘치니 뭐 따로 더해 줄 것 없고 인간적으로 보면 공평 같은데, 예정 가운데 미리 아시는 하나님은 레아를 통해 복된 구원의 계통 하늘의 선물을 주기 위하여, 일부러 레아를 세상에 불편하도록 어렵도록 만들어 놓고 야곱과 만나게 한 겁니다. 예정입니다. 살다보니 하나는 예쁘게 생기고 하나는 더 예쁘게 생겨 치어서 왔다 갔다 한 것이 아니라, 예정 가운데 하나님이 더 귀하게 만들 레아에게는 먼저 고난을 주셨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오는 고난은 하나님의 큰 선물의 전조 현상입니다. 구름이 끼면 비가 오듯이 저녁에 노을이 지면 다음 날이 맑는 것처럼, 성경에 기록한 천체 현상을 이렇게 미리 조짐으로 주셨습니다.

게을러 그런 것이 아니라 죄 짓다가 쥐 박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옳고 바른 길인데 내 잘못이 아니라 레아가 야곱 눈에 벗어난 것은, 야곱을 그렇게 만들었고 레아를 그렇게 만든 하나님 덕분이지. 레아가 게을러 세수를 안 해서 그렇고 게을러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그런 사람이고 레아를 만들어 놓은 게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세상이 좋고 인간에게 좋으면 그 속에 천국의 소망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소망을 빼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영생의 구원을 위해 미리 사전 작업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불편을 주시고 못남을 주셨습니다. 야곱에게 그랬듯이 이삭에게 그랬듯이 아브라함에게 그랬듯이. 하나님이 주는 걸 내가 방심을 했거나 하나님이 주는데 내가 죄를 지어 버린 거 말고, 하나님이 주신 환경 주신 선천 내 능력 범위 안에서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불리한 것은, 그런데 내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이 믿음 순종이 있으면, 순종은 있는데 내 환경이 불리하다면 이건 이제 하나님께서 뭔가 크게 만드시려는 사전작업입니다. 큰 복을 주시려고 시작을 하면 이거 못 쓴다고 남 주라고 모두들 그러니, 하나님의 고민은 큰 복을 주고 싶은데 거부를 하니 탈이고 자유성 있는 아들을 만들었으니 강제는 못하고, 큰 은혜를 주려니까 모두 싫다 그러고. 야곱은 라헬인데 하나님은 레아를 통해 준비했고 레아를 통해 준비했기 때문에 야곱의 눈에도 라헬의 눈에도 레아의 눈에도 못난 사람입니다. 레아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서 31절에 레아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세상에 바라볼 것 없고 세상에 기댈 것 없으니,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를 주면 그건 집중할 거니까, 원래 아예 신앙이 그런 것보다 그렇게 되게 돼 있으니까. 가난하면 잘 믿는 사람들이 더러 나옵니다. 부자가 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믿는 사람들의 출신을 봐라 잘난 사람 머리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이 귀한 복음을 주려면 못난 사람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먼저 만들고 복음을 줍니다. 내 잘못이 아닌 환경의 불리함은 하나님의 큰 선물을 줄 조짐입니다. 환경만 어려우면 무조건 잘 되느냐 아닙니다. 나는 믿음으로 순종하고 환경은 어렵고 여건은 불리하면, 이 둘이 더해지면 하나님이 큰 걸 예비하고 있습니다. 귀한 걸 예비하여 레아에게 먼저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맡겼습니다. 남편 사랑 있는데다 대고 레위와 유다를 맡겨 놨다가는 이거 제대로 길렀겠습니까. 그 다음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예쁘니까 잘 났으니까 잘 나가니까 뭐가 아쉬워서 하나님 아니면 안 된다고 바짝 떨고 긴장하고 그럴 겁니까. 못난 것들이나 그러지. 참 인생의 결론이고 지혜인데 연세가 아주 많아지면 대충 눈치를 챕니다. 그때는 기회가 없고 기회를 딱 가질 좋은 때는, 우선 좋은 게 좋고 나중에 좋은 거는 남 하라고 밀어냅니다.

31절 그다음 32절입니다. 레아가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구약의 아들은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을 거치며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계통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냥 아들이 아니라 이거는 구원의 계통이 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중에서도 중심이 될 수가 있습니다. 르우벤을 주셨더라. 르우벤을 줘 놓으니까 이 레아가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먹을 거 없어 고생하는 레아가 아닙니다. 자기 마음이 괴롭습니다. 공연히 그러고 앉았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라헬보다 못생겨 혼자 고생하고 앉았습니다. 거울 볼 때마다. 좀 더 넓혀보면 야곱의 관심을 받지 못하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시는데 하나님의 시선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복에 훗날은 제쳐 놓고 눈앞에 것만 바라보니까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받은 아들에게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도다. 어지간히 어려웠던가봅니다. 33절입니다. 아들을 다시 낳고 레아 말입니다. 앞에는 하나님이 레아의 총이 없음을 보시고 3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못 났으니 시몬도 주셨다. 그리고 이름을 시몬이라고 붙였습니다. 못났고 못나니 기도했고 기도하니 들어주시더라. 괴로우니 돌아보셨고 괴로우니 돌아보셨고 고통스러우니 기도했고 더 간구하니 또 주신 시므온이 들으심이니이다. 이게 하나 그다음 둘 이렇게 쌓여갑니다. 그다음 34절입니다.

하나 놓고 둘 낳고 34절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세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야곱이 셋이나 낳아 놨으니 이제 나하고 좀 가까워지지 않겠느냐. 야곱 죽는 날까지 끄떡도 없습니다. 말로 하나님이지 돈 안 되는 하나님이 눈에 보입니까? 돈, 직장, 건강 오늘 즐겁게 사는 게 눈에 보이지 천국을 보여준다고 보입니까? 하나님이 보입니까? 하나님의 복 다 남 하라고 다 집어 던지고 당장의 돈 당장의 직장 당장에 좋은 것만 전부 나가는데, 이 야곱은 130살까지 변치 않을 사람입니다. 괜히 레아 혼자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 놓고 애 터지고 둘 놓고 애 터지고 셋 놓고 애 터지고, 내가 이렇게 총이 없어 쥐 박히니 하나님이 내게 기회를 주셨다. 하나 가지고 안 되니 애 터지게 기도하니 하나님이 들어주셨다. 혼자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까지 주셨으니 이제 아들 셋 때문에 나를 보러 오지 않겠느냐. 야곱은 끄덕도 없는데. 그다음 네 번째를 낳아 그 이름을 여호와 찬송, 넷째를 주셨으니 이제는 하나님 찬송합니다. 넷이면 야곱 제까짓 게 도망가 봐야 어디 가겠습니까. 아들한테 묶이겠지. 라헬은 아들도 못 낳는데. 레아는 신앙이 어린 육체의 이스라엘의 일반 사람이나 복을 복되게 하시려고 복을 주시려고 일부러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을 주시니까 애 터지지. 애 터지니까 하나님만 바라보지. 그래서 첫 번째 받은 아들이 아들이라, 두 번째 받은 아들이하나 가지고 안 되니 계속 간구했고 열심히 간구하니 들어주셔서 시므온이고, 그러고 나서 셋째를 주셨으니 이제는 셋이나 되니 나하고 가까워지고 하나 되지 않겠느냐.

레아는 이것만 봤는데 하나님은 세 번째 남편이 나를 쳐다보지 않겠느냐. 남편과 이제 가까워지지 않겠느냐 멀어지고 불모지고 원수가 아니라 화친 화목이 되지 않겠느냐 하고 레위라고 지었는데, 하나님은 그 레위를 통해 원수 된 하나님과 인간 전부를 하나 만드는 대제사장 성전의 제사를 다 맡기는 레위지파를 주셨습니다. 레위지파의 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하나님과 죄지어 하나님과 원수 되고 멀어지고 끊어진 이 두 사이를 갖다가 붙이는 겁니다. 성전을 통해 제단을 통해 제사를 통해. 셋째 아들 레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죄로 원수가 되었는데 멀어졌는데 사이가 좋지를 못하는데, 죄 때문에 밀쳐놓은 걸 레위지파가 성전의 제단의 제사를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하고 뽑아버리면, 하나님과 우리가 연합이 되어 집니다. 레아를 통해 준비했고 레아를 이 큰 구원의 해결에 사명의 아들을 주기 위해, 귀한 걸 만들기 위해 레아를 준비시켜야 됐고 신앙 없는 레아를 교육 준비를 시키려니, 인간적으로 어렵고 고난과 괴로움을 주셨던 겁니다. 레아에게 간 괴로움은 알고 보니까 레위를 받아 하나님과 하나 되는, 육체의 남편 우선의 남자 우선에 애 터지는 이 남자가 문제가 아니라 영원히 바라보고 하나 되어야 될 주님을 주시는 레위, 레위지파의 제사는 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준비한 이 사명입니다.

오늘도 나라는 한 사람 속에 레아적인 기회도 주시고 라헬적인 기회도 주십니다. 믿어가려면 이 땅위에서 살아야 되고 건강도 있어야 되고 경제도 있어야 되고, 가정도 안정적이라야 이 밤에 교회도 나오고 그러기 때문에 이 땅의 기준으로 보면, 벌이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가정도 주시고 예배당 옆에 오갈 수 있는 주택도 주시고, 세상도 안전하게 이만하면 좋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전부 라헬입니다. 돈벌이하기 좋은 세상, 건강한 세상, 공부하기 좋은 세상, 마음껏 놀고 마음껏 행복할 수 있는 세상, 이게 야곱 눈에 좋았던 것처럼 이거 오늘도 우리 눈에 라헬 적으로 펼쳐준 겁니다. 이거 데리고 놀면 이거 데리고 계속 놀면 하나님께서, 라헬을 통해서는 생명의 역사는 없다. 하나님은 이렇게 나오십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 이렇게 공짜로 돈을 주는데 이 밤에 놀러 갈 때가 얼마나 좋은데, 뭔 하나님 뭔 친국. 두고 갈 세상을 주심은 천국이 아니라 세상을 주시고 세상에 안정을 주시고 세상에 평안함을 주시고 세상에 넉넉함을 주심은, 이걸 데리고 놀고 내 마음을 쏟으라고 준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복되게 살고 순종하라는 그런 연약함으로 주신 배려입니다. 감사하고. 아무리 좋아도 좋은 거는 그냥 겉으로 좋을 뿐이고 날 지켜보는 주님이 저 인간 마음의 시선이 오로지 예쁜 지금 라헬한테 다 가있다. 이리 되면 주님은 무척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아주 괘씸하게 생각합니다. 야고보서 4장 시기하기까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돈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야곱의 라헬이 구약의 라헬은 그냥 사람입니다. 신약 우리에게 이 말씀은 내 눈에 지금 좋은 게 뭔고 라헬입니다. 빠져서 많이 따라가면 많이 따라가는 만큼 자살골입니다. 아무리 말씀으로 충성하고 살아도 왠지 경제면은 왠지 자녀 교육면은 왠지 진로 면은, 자꾸 이렇게 뭐가 막힐 때 내 능력이 받은 게 이거고 나로서는 말씀으로 살려고 노력하는데도, 내가 부족하여 아무래도 어려워지고 환경도 어렵고 나도 어렵고 이게 뭐가 풀리지 않을 때, 주님이 귀한 걸 주려고 지금 연단을 시키는구나. 세상에 소망 두지 말라고 세상에 관심 갖지 말라고 주신 현실에 충실하게 하기는 하지만은,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주지는 말라고 라헬이라는 것은 내 눈에 좋은 세상입니다. 그냥 붙여주니까 내가 어려서 주는 배려인 가보다. 이거 잘 써서 믿음 생활 잘해야 되겠다. 이래야 되는데 뭐 라헬을 데리고 130년 사는데 세월이 그냥 휙 날아갑니다. 어찌나 좋은지. 좋은 네 직장 가지고 즐겨봐라. 모두가 부러워서 찾아오는 네 인물 가지고 설치고 돌아 댕겨봐라. 하나님 딱딱 계산해서 후회, 후회, 후회, 후회. 마지막에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며 절며 죽는 날까지 절며 살았습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쩔뚝거리고 살았습니다. 미리 고칠 걸 가정마다 다 있습니다. 좋은 걸 주실 때는 마치 그냥 관심 없는 듯 주시니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 들여다보고 빠질 수도 없고 대충 그냥 관리하고 계셔야 좋습니다. 자기에게 주신 장점 자기에게 준 세상 좋은 꼴은 관리는 하고 아끼긴 아껴도 그건 여기까지 해야 하고, 여기다 대고 발을 들여다 놓고 관심을 기울이고 머리 들어 박아 앉아가지고 즐기고 헤아리고 관심과 인격을 쏟아 부으면, 주님은 너 네 마음 네 인격의 나라는 건 없구나. 이리 됩니다.

부자 남자가 예쁜 여자한테 세계에서 제일 비싼 다이아 반지를 딱 선물하니까, 그날부터 이거 들고 자랑하고 이거 들고 돌아 댕기느라고 남자 쳐다도 안보면, 이거 한 개 더 줬다거나 아주 그냥 나 내버리고 도망가겠구나. 아니면 나 늙으면 나중에 유산 상속이라도 돌아올 성 싶으면 나 쳐다도 안 보겠구나. 더 큰 걸 잃어버리는 겁니다. 크고 귀한 걸 줄 때 준 남자에 대한 사랑에 감사를 해야지. 선물은 좋기는 좋아도 그냥 일반적으로 주시니 감사하니 주시니 감사하나 주신 당신이 더 좋지. 사랑하니 줬으니 사랑이 더 크지 말로라도 노력이라도 자꾸 이렇게 하는 것이 이게 복이 점점 커지는 겁니다. 혹시 파악은 되셨습니까? 이걸 지문으로 삼고 이걸 읽어보고 이 핵심이 나와야 이게 수능 시험의 국어시험입니다. 뭔 말하는지 파악이 돼야 문제를 풀고 그래야 대학 와서 강의 들을 거고, 그래야 이런 걸 회사에서 뭘 맡겨야 파악을 하지. 뭐 맨날 읽어봐야 뭐하는고. 흰 거는 종이고 검은 거는 글이고 이거 뭐 아무리 금 방석에 올려놔도 해결이 없습니다.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더라. 그게 아이입니다. 아들입니다. 생명 역사를 주셨더라. 생명도 하나님과의 연결인데 일반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 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하나님과 하나 만드는 이 일에 사명을 주는 레위의 생명. 괴로울 때 간구하여 들어오실 때 두 개가 앞서가고 세 번째 주신 겁니다. 그리고 아예 네 번째는 오늘 저녁 설교 아마 40분 전에 마칠 겁니다. 아주 짧게. 밤 예배는 오시면 곤란한 분을 갖다가 억지로 앉혀 놓으면 이렇게 설교를 많이 못합니다. 주일 오전만 나와도 그냥 얼마나 귀할 건데 밤 예배부터 앉혀 놓으면, 다른 분들이야 많이 들어서 안 들어도 다 알지 않습니까. 설교 아주 짧을 테니까 귀를 잘 기울이십시오.

정말로 귀한 생명에 정말 하나님이 볼 때 귀한 것은 어려움을 먼저 주고 시작을 하신다. 르우벤을 주셨는데 이거 가지고도 안 돼서 계속 간구하게 만들었습니다. 괴로움이 계속됩니다. 그게 시므온입니다. 하나 주고 둘 주고 세 번째는 뭔가 큰 거 나오겠는데, 드디어 하나님과 연결을 주셨습니다. 이제 다 됐습니다. 연결이 되니 네 번째 주신 게 유다입니다. 유다는 찬송입니다. 감사합니다. 전부입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이게 유다입니다. 유다의 이름은 찬송입니다. 찬양입니다. 35절이지요. 네 번째 아들을 놓고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처음에는 남편을 향해 가다가 그 남편 속에 주님을 만났고, 남편의 관심을 받았으면 남편하고 한 팀이 되었으면 그러다가, 남자보다 더 좋은 교회의 신랑 교회가 영원히 바라보고 살아야 될 주님까지 들어간 게 유다고, 그 유다를 통해 나중에 주님이 오십니다. 모두들 가정적으로 자기를 돌아보며 남달리 유리한 게 있으면 참 감사하다 그 정도 하고 마십시오. 여기에 붙들려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께 관심을 덜 써버리면 하나님께서 이거 쳐버립니다. 결국 라헬의 고통은 마지막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야곱 때문입니다. 사업 잘 된다고 사업만 들여다보고 앉아가지고 이것만 좋으면 된다. 이게 좋으니 나는 됐다. 자꾸 그러니 그놈의 사업을 주님이 놔두겠습니까? 뚜드려 깨버리겠습니까? 얼굴 예뻐 가지고 여자가 그냥 자꾸 시내 돌아 댕기면 남자가 그놈의 얼굴 갖다가 그냥 화장품 더 비싼 거 사주겠습니까? 그냥 난리가 나는 거지. 뭐든지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 필요해서 이것도 주고 세상에 위로도 주고 배려도 주고 좋은 것도 주고 고루고루 주는데, 좋은 것 주면 주님만 바라보는데 달래고 배려하느라고 주셨다. 이 정도 하고 마셔도 아무리 줘도 여기에 흔들리지 않는구나.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구나. 그러면 더 줄 수 있는 겁니다. 공부하는 애들이 게임기 비싼 걸 사줘도 놀 때 놀고 열심히 공부하면, 돈 있으면 백만 원짜리 아니면 무슨 헬기 같은 거는 25년 전에 200만 원 했는데 요즘 천만 원짜리도 있겠지 돈만 있으면. 공부 열심히 하고 쉬는 시간에 잠깐 잠깐 그렇게 쓰면 부자 아버지 같으면 천만 원짜리 헬기라도 사주지. 근데 조그마한 거 사주니까 이거 쳐다보고 학교도 안 가고 이것만 밤새도록 하고 앉았으면, 이놈의 장난감을 가서 두드려 부수지 얼마나 밉겠습니까? 장난감이 죄입니까? 공부하는 데 좋게, 좋게 사용하면 이것도 저것도 챙겨주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건강도 인물도 경제도 진로도 가정도 좋은 걸 챙겨줄 때, 잘 믿으라고 주셨으니 이걸 가지고 더 잘 믿겠습니다. 여기에 빠져 여기에 환장하고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마음의 시선이 주신 선물인가 아니면 주님인가. 주님은 그것만 딱 쳐다보고 계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나올 때는 그냥 주일 오전이 제일 좋은 겁니다. 주일 오전만 나오는 분들은 주일 오전이면 넘치고 또 좋아서 이제 한 번 더 더하면 2학년 되는 거고, 더 좋아서 세 번 나오면 막 고등학생 되는 거고 네 번 나오면 대학생 되는 거고 이런 겁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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