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2.12.10 창25:28 에서의 직업, 피동의 주격 문제, 정말 무엇 때문인가? 믿는 자세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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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2.12.10 창25:28 에서의 직업, 피동의 주격 문제, 정말 무엇 때문인가? 믿는 자세와 방향

관리1 0 51 2022.12.10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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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0토새

제목: 에서의 직업, 피동의 주격 문제, 정말 무엇 때문인가? 믿는 자세와 방향

찬송: 36장(낮에나 밤에나)

본문: 창세기 25장 28절 -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함으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기도드리겠습니다.
좋아진 세상 속에 에서의 길을 따라 자기를 포기하고 던지는 여기 우리들 없고 우리 교회 우리 공회 모든 교인들 늘 조심하며 세상 생활에 불리하고 세상 생활에 늦어져도 하나님의 약속 영생의 그 나라만 바라보는 오늘의 매일의 마음되고 긴장되고 충성할 수 있도록 주일을 준비하는 오늘 되게 하시고 이 마음 이 일정 이런 저희를 위에서 굽어 보사 이 땅 위에 필요한 것 조절하시고 주님의 인도로 우리는 따라만 가도록 만사 모든 것 살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아브라함이 신앙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백세에 낳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할 때 모리아 산까지 3일 길입니다. 그곳은 산이라 얼마든지 거기에서 화목을 준비해도 되지만은 집에서부터 준비해서 갔습니다. 당연히 그리 되면 더 정성이 되어 집니다. 이런 아브라함입니다. 4국, 5국, 9개국의 전쟁에 모든 포로 모든 재산을 다 한 손에 쥐고도 손 하나 대지 않고 내던질 때 주의 이름 흠이 될까 봐 이런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조상 이게 믿음이다, 이렇게 표시를 했습니다.

또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신앙을 물려받았고 또 이삭의 걸어간 그런 걸음 얼마 되지 않으나 그 기록을 살펴보면 아브라함 그대로입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 하사 하나님께서 100배의 추수를 하게 했더라“ 추수의 양이 100배라 문제가 아니라 구약의 추수 구약에 보이는 복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신앙을 살펴주는 말씀입니다. 이런 아브라함 이삭입니다. 또 그렇다 해도 결국은 야곱으로 내려가는데 왜 이삭이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첫째가 아니라 둘째다, 강한 첫째보다 약한 둘째를 붙들고 구원의 역사가 내려갈 거라, 그 예언을 듣고도 에서를 더 사랑했는가? 하나님께서 바꿔주시면 그때는 순종할지라도 맏이들로 내려오는 이 구원의 게통을 지켜야 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첫째 에서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에서에게는 다 잘못만 있는가? 아브라함 이삭을 이어오는 에서입니다. 또 에서가 뭔 특별히 죄짓는 것도 아닙니다. 사냥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들판 얼마든지 누빌 수 있습니다. 다윗도 아내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내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야곱도 그렇습니다.

창조의 아담 하와는 남녀 하나씩으로 출발을 시켰으나 교회가 역사를 통해 자라가기 때문에 자라가는 과정에 첫날부터 모든 걸 다 요구하지 아니합니다. 구약은 신약보다 어립니다. 또 구약의 시작은 더 어린 때입니다. 점점 자라갑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성전도 주지 않았습니다. 또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섬기는데 불편하지도 않았습니다. 옛날은 옛날에 맞게끔 그 시대에 필요한 환경을 주시고 그 환경 속에 인도하시고 또 자란 만큼 그 다음에는 하나 더 요구하시고 그렇게 구약을 이끌어 오시고 신약도 지금은 주일학교 학생들도 삼위일체를 입에 달고 있지만 그 주님의 제자들로부터 300여년 그 말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렇게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역사 전체에 하나의 교회가 자라갑니다. 시대를 구분하면 시대 시대에 자라서 올라갑니다. 한 사람의 신앙도 출발과 뒤가 다릅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그 키가 더하여 가며 그 지혜가 더하더라” 그런데 어느 인간이 태어나면서 완제품으로 태어나고 딱 그대로만 계속 하겠습니까?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의 점입니다. 이게 시간을 통해 사건을 통해 순종을 통해 덩치도 자라가고 그 속의 지혜도 자라가고 경험도 쌓이며 점점 하나님을 향하여 무한한 하나님, 하나님 끝없는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무궁토록 자라갈 겁니다. 세상에서는 준비로 자라가고 천국에 가면 그때부터 이제 무한한 하나님을 향하여 끝없이 자라갈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솔로몬이 아내를 많이 취한 그 자체가 죄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 인도를 순종하는 이 일에 필요해서 가지는 아내 그 왜 거기에 그런 게 필요하지요? 천하 만방을 다스리고 하나님 앞에 가져오는 이 솔로몬, 전쟁을 통해서 가져와도 되지만은 결혼을 통해 그 나라 전부를 다 잡아버리고 다 잡아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 뿐이나 이스라엘 밖에 있는 많은 부족 여러 나라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담으로 주변으로 둘러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일에 그 모든 주변이 환영하고 부러워하고 또 여기다 대고 조공을 바쳐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걸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은 겁니다.

솔로몬 성전의 재료가 대부분 이스라엘 안에서 난 것이 아니라 전부 북쪽 두로에서 두로 시돈 지방 북쪽에서 가져온 겁니다. 성전에 쓰는 백향목은 이스라엘 안의 나무가 아닙니다. 성전의 재료까지도 가나안 안에서 써야 되느냐, 성전의 재료 중에 안에서 쓸 것은 안에서 쓰고 이방인 이스라엘 밖에서 가져와서 더 좋은 것은 그쪽에서 가져온 겁니다. 예배드리는데 피아노는 교인이 만든 것만 써야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이 강단 이런 거 만드는 목재상들은 믿는 사람이 믿는 기업으로 운영하니 믿는 업체에서 예배당 의자나 강단을 쓰시라 또 장로님이 사업체를 가진 건설회사가 교회를, 예배당을 건축해야 그게 신앙에 맞지 않냐, 이렇게 장사를 많이 하는데 그건 장사고 그러면 성전을 지을 때는 솔로몬 성전은 구약인데 구약의 성전을 짓고 그 재료를 쓸 때에 이방과 상관없이 잘 해줬던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에덴동산이 전부가 아니라 아담의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아담을 통해 다스리는 범위고 여기에서 흘러나간 네 강이 천하를 적시며 에덴동산 밖 모든 세상이 다 에덴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위에 하나님이 제일 중심에 서고 아담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와가 옆에서 도와주고 하나님을 모신 부부가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이게 바로 되어 지면 에덴 밖에 천하는 저절로 에덴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은혜의 부스러기 그 결과에 감사하고 찬송을 하는 겁니다.
이게 구약입니다.

얼마든지 들사람 될 수 있고 들판을 누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모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의 사람들이 불신 나라 총리를 할 수도 있고 방백을 할 수가 있고 이행도 할 수가 있고 문제는 하나님을 모신 신앙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며 순종을 하며 그 은혜가 이렇게 번져나가는 그게 되어야 되는데 들판을 돌아다니다가 들사람이 돼버리고 하나님과 멀어져 버린다면 이거는 이제 뒤바꿔지는 겁니다. 공부를 하다가 피곤하니까 휴식을 통해 더 공부를 잘하려고 쉬는 시간이 있는데 쉬는 시간에 노는 것이 얼마나 극심한지 그 시간도 그 땀도 너무 많이 들어가서 공부 시간에는 졸고 자고 쉬는 시간에는 펄펄 뛰면 이건 놀이터지 학교가 아닙니다. 학교가 공부만 합니까? 쉬는 시간도 있지. 왜 쉽니까? 왜 점심시간이 있습니까? 공부에 필요해서 이게 있어 이게 학교입니다.

에서의 직업이 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에서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손이며 구원의 계통으로서 사방 들판을 하나님의 사람이 거머쥐고 활용하고 잡아와서 하나님 섬기는 데 유익하게 쓰면 되기 때문에 직업 자체가 예배당 안이라야 좋고 예배당 밖의 직업은 나쁘고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당 주변의 직업이 더 유리하지마는 예배당 주변의 직업은 신앙의 직업이고 시내까지 가는 것은 죄 되고 그렇지 않습니다. 생활 거리에만 살고 생활 거리에만 직업이 있어야 의가 되고 생활 거리를 벗어나는 출장 벗어나는 직장은 그거는 금지냐? 얼마든지 멀리에서 실시간으로도 마음을 모을 수 있고 또 그곳에서 직접 예배드려 그곳이 우리 교회에 분교 될 수도 있고 또 우리 교회보다 나은 교회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을 모신 순종으로 가다 보니 이렇게 점점 많은 것을 주셔서 다스려 나가는가, 다윗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전부가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께 틀어쥐는데 넓어졌는데 솔로몬은 성전 짓고 스바 여왕이 다녀갈 때까지는 그러 했는데 그 다음을 보니까 주님 모신 솔로몬, 주님 모신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더 하나님 앞에 끌어 모으기 위해서 가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과는 끊어져 버리고 끈 떨어진 연처럼 여자들 때문에 그냥 다른 신을 섬기는 데까지 나가버렸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잘못된 겁니다. 그렇게 잘못되기까지 하나 둘, 하나 둘 늘려 나가다가 마음이 점점 분산되며 결국은 하나님과의 거리보다 밖과 거리가 가까워지고 강해짐으로 그리 되었습니다.

에서의 직업 에서의 활동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또 그 에서가 잡아온 사냥물을 아버지가 특별히 좋아한 것도 문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천하를 하나님의 사랑이 틀어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이게 도움이 되고 협조가 되고 갖다 바치는 것이 되면 이거는 복입니다.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관계가 옅어지며 멀어지며 세상과 가까워지면 믿는 사람이 가진 것도 전부 다 우상이 되고 전부 미혹이 되어 집니다. 그걸 남녀 관계에서는 하나님이 음행의 죄로 괘씸하게 봅니다.

어쨌든 이삭은 에서에게 복을 내려줄 수 있는 지금 상황입니다. 아직까지 이삭이 밖으로 튀어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주력, 에서의 반복, 에서의 활동이 믿는 사람이 세상을 가짐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느냐 하나님 섬기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느냐 그건지, 이미 에서의 마음은 하나님을 섬기는 아브라함 이삭의 생활은 시시하고 이건 비좁고 활개를 치고 죄악의 세상 속에 마음이 기울어졌는지 리브가는 어머니니까 모성애가 더 강하니까 아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그 말씀에 대한 집착이 더 강했고 그 말씀에 붙들려 계속 아이들이 자라가는 데도 둘째를 통해 아브라함 이삭을 이어 간단다 아무리 봐도 첫째인데 하나님이 둘째로 찍었습니다. 그러면 둘째를 붙들고 나간 겁니다.

보통 주 5일 근무를 하고 토요일까지 휴일이 되어 주일을 준비하려면 토요일 날 가족의 신앙과 여러 형편 살펴 쉬기도 하고 외식도 하고 또 얼마든지 가족적인 그런 하루를 지내고 그리고 주일을 주일답게 주력을 해도 되는 토요일입니다. 주일은 주일이니 주일은 손 못 대지만 토요일 밤 12시까지는 놀아도 된다, 서울까지 몇 시간 토요일 12시에 서울까지 가서 몇 시간 놀다가 서울에서 8시에 출발해도 12시까지는 들어오면 주일에는 문제가 없다, 이렇게까지 턱 밑에까지 치고 올라가면 네 속이 주일이냐? 너 속이 세상인데 주일을 차마 손대지 못하여 지금 아슬아슬하게 세상으로 나갈 때까지 나가느냐, 12시까지 들어왔으면 되지 않았느냐? 지금이 구약의 율법이냐? 주일이 주일다우려면 토요일이 주일을 마음에 두고 움직여야 주일이 주일답게 되지 아예 월요일부터 한 주간의 모든 일정을 또 오는 주일이 은혜롭게 되어 된다면 월요일에 미리 할 것은 뭔가? 마음은 콩밭이라고 월요일부터 주일이 먼저 전제가 되고 언제든지 주일이 중심에 있고 평일조차도 주일이 눈앞에 있고 뭐 주일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거냐 저거냐?

리브가가 야곱을 붙들고 가정 안에서 신앙의 양식 매 끼니 끼니 새벽마다 말씀의 양식, 수요일 금요일 신앙의 양식, 평일에도 아침에도 시간이 있으면 말씀 묵상, 일하면서도 마음속에 요 근래 배우는 말씀 마음속에 가지고 일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늘 신앙의 양식을 준비하는 신약의 우리들이고 구약은 아예 그냥 이렇게 늘 밥이나 하고 앉았는데 사나이 대장부가 보면 참 이거 우습지만은 그런데 훗날 성막 성전이 마련될 때 보면 성전 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기 전에 첫 번째 공간이 성소입니다. 성소의 우측에 첫 번째 펼쳐놓는 게 떡상 입니다. 그 떡을 진설병이라 이건 항상 놓여 있어야 됩니다. 뭐 여호와 하나님은 배가 그리 고픈지 가끔 번제 드리고 하면 되지 늘 떡을 갖다가 그렇게 펼쳐 놓으라 그러냐? 하나님이 드시기 위해서 그럽니까? 네놈들 신앙의 양식 잊지 말라는 그 말씀입니까? 그 떡상 맞은편 남쪽에는 등대가 있는데 아, 하나님이 눈이 어두워 밤이 되면 못 봐서 그 불을 켜라 했겠습니까? 늘 하나님의 뜻을 찾는 진리의 밝음을 가지고 살아라, 우리한테 하시는 말씀입니까? 성전에도 항상 떡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성경이 있기 전 성전이 있기 전 신앙의 출발의 시대입니다. 야곱이 늘 밥하는 사람이었더라, 식구들을 위해 종업원을 위해 뭐 밥을 했겠지 뭐 그렇게 읽어도 괜찮습니다. 그게 전부면 천하에 쌓아두어도 쌓아둘 수 없는 진리의 양, 말씀의 분량을 줄이고 줄여 일점일획도 더 줄이지 못하는 말씀으로 적었는데 뭔 죽 얘기를, 뭔 밥 얘기를, 뭔 배고파 밥 한 그릇 먹는 이야기를 재미로 적었습니까? 이야기 거리로 적었습니까? 안 적어도 되는데 적었습니까?

이 한 말씀, 말씀 적지 않으면 아니 되는 말씀으로 적었을 때는 왜 늘 밥이나 하고 있었을까? 기회로 보면 지나가는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이며 늘 준비며 그것이 전부였을까? 에서 속에 있는 장자의 명분 낚아오는 그것만이 전부였으면 그 순간의 밥은 귀하고 평소에 죽과 밥은 헛일이지 않습니까? 주님 오시는 밤중에 등을 켜기 위하여 대낮에 기름을 계속 사 모으는데 주님 오실 때 켜진 그 기름에 불은 필요하고 나머지 기름은 필요가 없습니까? 평소 준비 전부가 다 필요합니다.

늘 신앙의 양식으로 구약이니까 입으로 들어가는 양식이고 신약은 신령한 양식입니다. 40년 만나는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입니다. 먹고 죽었습니다. 먹고 죽은 사람도 있고 그걸 먹고 가나안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도 있습니다. 겉보기는 물질의 양식이나 물질의 양식 육체의 것을 먼저 주시고 이게 뭘까? 이게 오늘 나에게는 어떤 생활을 말할까? 공부를 해도 가정생활을 해도 돈을 벌러 나가도 내 마음속에는 항상 신앙의 양식이 가득 차고 마련되고 이 힘이 가운데 있고 속에 있고 그다음 활동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렇게 줄여가고 한 걸음씩 걸어가는 야곱을 보며 아, 여기다 대고 복을 주지 누구한테 복을 줄 겁니까? 기본적으로 믿어가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아이만 그렇게 기를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먼저 그리 되어야 교인도 뒤따라 갈 것이고 가정의 부부가 거기에다 대고 이렇게 주력을 해도 따라갈까 말까 한데 신앙에 앞선 부부가 세상 유불리를 향해서 휘청하는데 그 밑에 자란 아들이 뭘 보며 어디를 따라갈 겁니까? 부모가 신앙으로 이걸 이걸 끌어도 밑에 될까 말까 한데 그 조용한 리브가와 또 순종하는 야곱 겉으로는 별 것 없는데 속으로는 알알이 가득 찬 이런 주님과 주님의 복에 진심을 기울이는 신앙 없는 늦게 출발한 리브가 또 그거 순종하는 야곱 이게 알짜배기고 이것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오늘까지 내려오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이런 신앙입니다.

오늘 하루 가족 입장에 따라 자유롭게 뭐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죄 되지 않으면 다 할 수 있습니다마는 죄 되지 않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하나님을 향한 것일까 마음속에 두고 토요일 일정 과정을 다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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