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12.9 창25:27 태중에서부터 미리 리브가와 야곱의 하나님 복에 대한 일편단심 *여반의 역할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금밤22.12.9 창25:27 태중에서부터 미리 리브가와 야곱의 하나님 복에 대한 일편단심 *여반의 역할

관리1 0 67 2022.12.09 20:16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21209 금밤

제목 : 태중에서부터 미리 리브가와 야곱의 하나님 복에 대한 일편단심 *여반의 역할

찬송 : 126장(주를 앙모하는 자)

본문 : 창세기 25장 27절 -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두고 갈 땅의 것이 좋아지면 가야 할 하늘을 준비하는 것이 소홀해지겠으므로, 세상을 많이 주나 적게 주나 세상 살아가는 것이 유리하거나 불리하거나, 하나님의 약속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며 훗날이며 영생에 속한 약속을, 오늘의 실상으로 마음에 그려보고 따져보고 오늘을 다 기울여 전력하는 이 밤에 저희들이 되어, 이 밤도 세상의 일정이 바쁜데 한 번 더 오일 예배로 모이게 하심은, 부족한 줄 알고 또 강한 세상에 연약한 저들이 살기가 어려워, 주의 약속 주인도 주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한 번 더 모였사오니, 어려도 노년의 종이라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 마음에 들것처럼 보일 때나 또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는 때라도, 일편단심 주님과 주의 주시는 복만 바라보고 한 걸음걸음 변치 않고 걸어가는 말세의 인내에 교인들 되도록, 피 흘려 구원하신 은혜로 이 밤도 밝혀주시고 바른 길 옳은 길 그대로 붙들고 진행하되,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감화 감동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이 밤도 죄와 사망과 마귀가 쥐고 있는 모든 사설을 풀어버리고, 말씀을 따라 주의 인도를 따르는 우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연말이 될 때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소망 가운데 새로 주는 새 날을 소망하며 더욱 힘 있게 나가기를 소망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곳곳에 세우신 강단 위에 함께하시되 부족하여 이 길에서 주님을 뵙기까지, 마음을 모으는 우리공회 강단 위에 말씀의 은혜와 세운 남녀종들을 붙들어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한 첫 시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방주로 구원을 받은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는 신앙의 계통은 이어지지만은, 아직까지는 이게 신앙의 모범이다 전부라고 이렇게 정해준 적은 없습니다. 근데 아브라함부터는 이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이렇게 민족적으로 혈통적으로 꼭 찍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란 신앙의 많은 계통 중에 한 명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모든 신앙의 전부를 가진 사람, 무슨 신앙이든지 아브라함을 조사하면 전부 다 들어있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어간 그 다음이 이삭입니다. 아브라함부터는 네 씨로 네 아들로 이 땅위의 모든 천국준비가 다 될 것이며, 이 땅 위의 천국 준비가 영생으로 이어진 이런 아브라함으로 특정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부터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전에는 가나안을 주지를 않았습니다. 가나안은 오늘 우리에게 영생의 천국을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 이어지는 이삭.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어 고생을 했습니다. 또 이삭도 내려오는 자손이 적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3대 야곱 때 내려 와가지고 12지파가 되며 12지파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포함하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 전부의 뜻을 가진 게 야곱인데, 이 야곱이 어느 날 자기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복을 고스란히 받아 뻗어 나갔기 때문에 야곱이 야곱 되어졌습니다. 복된 야곱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야곱 12지파로, 하늘의 전부를 포함하는 이 야곱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아브라함 이삭을 이어 나오는 겁니다.

야곱이 열매라면 무성한 열매라면 그 열매를 위하여 뿌리가 있었고 둥치가 있었던 것처럼, 뿌리가 있고 둥치가 있고 그다음 야곱이라는 가지에 풍성하게 열린 것처럼, 뿌리 있고 둥치 있고 뿌리 둥치 이어지며 그다음 열매를 가지는 가지가 있는데 땅 밑에 뿌리는 잘라버리고 잊어버리고, 나무가 돌아 댕기면 그거는 빠른 것이 아니고 좋은 것이 아니고 죽는 겁니다. 뿌리는 한 자리에 버텨야 됩니다. 그리고 둥치는 이 뿌리에서 뻗어 나오며 연결이 이어져야 그게 뿌리의 둥치가 되어 집니다. 아브라함 이삭으로 이렇게 내려오다가 이제는 하나님께서 마음껏 펼쳐주실 삼대가 되었을 때,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오랜 기간 기도하고 준비하여 아이를 가졌는데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습니다. 하나면 뭐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가는데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가다가, 한 어머니 속에 동시에 두 아들이 생겼습니다. 먼저 나오면 맏아들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큰 아들로 내려가야 되는데 이게 두 아들이 뱃속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먼저 나오면 아브라함 이삭을 이어가는 구원의 계통에 섭니다. 뱃속의 아이가 뭘 알아서 그렇겠는가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시면 알 수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어머니 뱃속에 6개월째에 벌써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고 뛰어놀았습니다. 이게 늦을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는 겁니다. 뱃속에서 두 아들이 이게 벌써부터 난리가 나니까 오늘도 믿는 사람 내 마음속에 두 사람이 늘 싸우고 있는 겁니다. 성령의 붙들린 마음과 아무래도 악령에 미혹이 좋아 그쪽으로 움직이는 마음, 욕심도 2개 양심도 2개 지식도 2개 일정도 2개 취미도 2개. 누가 뭐라든지 말든지 중생된 믿는 사람 속에는 늘 이 갈등을 피하지 못합니다. 안 믿는 사람 두 싸움은 둘 다 사망 아래 땅위에 밥그릇 싸움이라 그건 크게 보면 한 통 속이고, 믿는 사람 속에만 천국과 세상 악령과 성령 새사람과의 옛사람의 이 투쟁이 죽는 날까지 서로 분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교회도 생명의 교회는 내적으로 분쟁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도 정말 안팎으로 다 화평스러워 100% 단결이 되면 죽은 교회입니다. 생명의 교회는 악령이 계속 가라지를 보내고 밀정을 보내 흔들어댑니다. 분쟁은 좋지 않으나 믿음의 생명을 가지고 나아가려 하면, 죄악세상에서는 그냥 두지 않는다. 교회도 그렇고 한 사람 마음속에도 그렇고. 그래서 늘 긴장하면 감당할 시험만 주시기 때문에 늘 이기고 나가는데 이제 뭐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느냐. 부부 둘이 합해서 신앙생활로 열심이니 이제 가정 문제는 없지 않느냐. 벌써 그 가정에 문제가 들어가 버렸습니다. 방심하면 당합니다.

어머니 뱃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강하고 하나는 약합니다. 하나는 죄악세상을 살 때 강하고 억셉니다. 유리합니다. 하나는 불리합니다. 근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세상으로 유리하고 세상으로 억세면 천국의 영생을 준비하는 일에는 반드시 건 손해 보게 돼 있다. 믿는 사람은 잊지 마셔야 됩니다. 저 교단이 세상으로 훨씬 잘나간다. 안 봐도 그 교단 문제가 있습니다. 저 교회가 세상 먹고 사는 데는 훨씬 유리하다 그 문제가 분명히 있게 돼 있습니다. 죄악 세상에 공중에 권세 잡은 임금 악령이 자기세상을 잘 믿는다고 푹푹 주고 계속 주고 끝까지 밀어줄 리는 없습니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보이는 면으로 잘 믿는 쪽에 하나님께서 복된 걸 믿어주시나 신약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에서는 강하고 그래서 먼저 나옵니다. 먼저 나와야 되는데 야곱은 밀려서 발목이라도 잡고 뒤따라 나왔습니다. 순간도 분쟁과 순간도 싸움은 피하지를 못합니다. 믿는 사람은 바로 믿으려고 생각하는 순간 안팎의 시험도 미혹도 늘 있는 법입니다. 태어나고 보니까 25절입니다. 먼저 나온 자가 맏아들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이어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받아놨고 먼저 태어남으로. 근데 태어난 아이가 붉고 전신이 가죽 옷 같아서. 뭐 태어나는데 보니까 이거는 맹수 같이 그냥 아주 털 사람입니다. 억셉니다.

피부라는 것은 옷이라는 것은 환경 접촉의 보호를 말합니다. 어디 던져놔도 이거는 다 견디겠고 다 이기겠습니다. 근데 실제 자라는 모습을 보니까 본문 27절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라” 아무리 빠르고 아무리 억세도 다 잡아들입니다. 다 죽여 버리고 다 잡아버리고 다 들고 들어옵니다. 천하 어떤 것과 부딪혀도 빠르고 죽이고 가지고 옵니다. 이게 전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장막에 거하니” 어머니와 함께 그냥 살림 살고 밥이나 하는 정도입니다. 남자가. 이미 둘째입니다. 하나님의 아브라함 이삭 장남으로 내려오는 복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세상도 불리합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로 불리하다 이때는 사냥이고 무기지만은, 오늘은 머리 좋은 학습력이 무기일 것이고 돈벌이 잘하는 영업력 돈 잘 버는 사업력이 들사람일 것이고, 세계 어디 던져놔도 이 사람은 사업에서 성공한다. 그런 외교력이 있고 사회력 있다. 그런 언변이 있다. 학벌이 좋다. 뭐 어떤 거든 좋습니다. 타고 나기를 에서는 유리합니다. 그 세상을 살기에. 그때는 주먹이고 오늘은 또 오늘에 맞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는 데는 불리한 직장이나 돈 벌이하는 데는 유리한 직장이다. 에서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기에는 참 좋은 직장이다. 그런데 돈 벌고 세상 자유롭게 사는 데는 참 어렵다. 그 야곱입니다. 에서하려면 에서 하시고 야곱하려면 야곱 하십시오. 말릴 수도 없고 어떡하겠습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은 여행 유통 관광 쪽은 전부 주일날이 성업입니다. 그날 돈 법니다. 또 스포츠 예술 남들이 전부 쳐다보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난리가 나는, 그런 연예인 스포츠의 스타들은 전부 다 휴일 날 중심으로 돈 법니다. 평일은 휴일입니다. 타고난 인물이 있는데 노래를 잘 부르는데 연줄이 좋은데, 뭐 얼굴만 들고 나가면 뭐 돈이 따라오고 인기가 오고 모든 것이 다 보장이 되는데, 신앙생활 하려니까 이게 참 뭐 참 보통 문제가 아니면 이 사람 에서입니다. 신앙생활에 유리한 선천이냐 신앙생활에 불리한 선천이냐 타고난 거. 에서는 타고나기를 세상 살아가는데 유리한 것은 다 가졌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휘잡고 세상을 평정하고 내 마음대로 살고 쭉 나가다 보니까 27절입니다. 사냥꾼은 사냥꾼인데 우리 학생들만 무슨 사냥꾼이라고요? 27절 보고 다 같이 무슨 사냥꾼이요? “익숙한 사냥꾼이라”

활도 한 번 쏘고 두 번 쏘고 10번 쏘고 1년 쏘고 10년 쏘면 점점 더 익숙해집니다. 칼도 창도 돌도 활도 그리고 똑같은 무력이라도 계속 사냥을 하다보면 어디 가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게 점점 반복이 되면서 나아지면 익숙하다 그럽니다. 이걸 신약으로 오면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고 이 땅에 살아가는데 어떤 것이든지 계속 반복하면 연습이고, 연습을 하면 이 땅위에서는 이게 먹힙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리한데 이걸 계속 반복하고 계속 연습하고 갈고 닦고 갈고 닦다보니까 익숙한 사냥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온 들판 야생은 전부 다 에서 겁니다. 에서 가는 데는 뭐 그냥 다 에서 겁니다. 제주도를 보내도 서울을 보내도 일본 미국을 보내도 이건 던져 놓으면 뭐, 어디 가든지 실력 있고 자기 자리 딱딱 잡아서 그냥 머리 돼지 꼬리 되지 않는데, 이렇게 사방천지를 돌아다니면 세상 구경을 하고 많은 걸 가지는 데는 분명히 유리한데, 자기 모 교회 자기 본 교회 자기 집 교회에 다니는 데는 불리할 겁니다.

돌아가신 우리 집사님 자녀 중에 한 분은 칼텍스 최고 책임자인데 1년에 절반을 미국을 출장을 가야 됩니다. 그분 서울의 자기 교회 아마 출석 자주 못 할 겁니다. 천하가 볼 때는 부러워하고 자기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은 너 들사람이고 익숙한 사냥꾼이나 넌 야곱은 안 되겠다. 그럴 겁니다. 야곱 그거 어느 짝에 쓰게 여자 같이 밥이나 하는 거. 너나 해라 목사 아들이나 시켜라 그런 거 신풍교회나 다 몰려가서 소복하게 쌓여라. 이래서 만약에 우리 신풍교회에 에서 같은 이 시대를 휘잡을 인물은 하나도 없어도, 야곱 같은 사람이 소복하면 야곱 하나라도 이스라엘 12지파인데 이게 많으면 뭐 얼마나 이게 복일까. 어떤 사람은 복을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고, 돈을 벌어야지. 세상을 갖다가 휘잡아야지. 교회는? 아니 뭐 일 년에 한 번씩 나와 가지고 호적 올려주고 뭐 그냥 연보 한 번 해주면 되지. 이게 에섭니다. 내 마음에 에서 되기를 원하는 분들 여기도 대부분 다 그럴걸요. 진출의 기회가 없어 여기 있지, 저 광주시청에서 그냥 사무관으로 턱 취한다면 오시라고 섭외 들어가면, 장로님하고 저하고 아마 둘 빼고는 거의 다 가지 않을까. 보건복지부에서 K 문화세계 대사로 나가야 되는데 당신 나가 주시면 뭐 억대 연봉 주고 그냥 비행기 좋은 좌석을 비즈니스 클래스라 그러던가요? 1등석 같은 건 우리하고 상관없고. 좋아서 그냥 세계를 돌아다닐 겁니다. 그러려면 영어 배워야 되고 그러려면 인물이 좋아야 되니까 결혼할 때 예쁜 여자 데고 와야 애들도 예쁘게 나올 겁니다. 오만 걸 연구해서 그냥 있는 힘을 다해서 들판으로 세상을 향하여. 타고 나기를 세상 휩쓸고 돌아다니기 좋은 몸을 들고 나왔는데, 연습을 계속 하니까 익숙한 사냥꾼이 되고 이건 뭐 그냥 어디 풀어놔도 맹수 있으면 맹수 때려잡지, 날랜 사슴은 화살로 잡아오지. 뒤에 이삭이 죽기 전에 축복한다고 짐승 잡아오라 할 때 활과 전통을 들고 나갔더라. 화살로 가지고 잡아왔습니다. 이게 에서입니다. 어려서부터 쭉 이렇게 올라갑니다.

부산 있을 때 부산에서 제일 좋은 천주교 유치원은 한 3년 4년 손을 대어야 겨우 들어간다는 그런 유치원도 있습니다. 그 유치원에 들어가면 부산에서 제일 고급들만 오니까 유치원에서 벌써부터 친구가 되면 그때부터 이제, 사회생활에 재벌 집 아들 법원 쪽 아들 또 어디 아들 유치부터 딱 짜 매서 동기 되면서 이렇게 딱 고급들만 쭉 뽑아 올리는 겁니다. 교회 다니기는 아마 어려울 겁니다. 천주교 성당이 운영하는데 그 줄 넣고 들어가려면 천주교 성당에서 기독교 독실한 집을 뽑아주겠습니까? 천주교회 나오도록 설정 밀든지 뭐 어떻게 하든지 다 그런 게 있겠지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회사도 회사를 위하여 들어가는 대학도 대학을 위한 고등학교도 고등학교를 위한 층층이, 이런 사회 구조가 꽉 차 있는데 타고나기를 좋은 집안의 머리도 좋은데, 또 어릴 때부터 그냥 영재교육으로 쫙 길러놓으면 익숙한 사냥꾼이라. 오늘의 익숙한 사냥꾼은 별의별 시험만 보면 점수가 다 잘 나오는 거 토폴 토익 뭔 시험 뭔 시험 뭔 시험, 수시 전기 대입 뭔 시험 할 거 없이 그냥 치면 다 끌어오는 것이 익숙한 사냥꾼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온 들판 온 천하를 내 것으로 삼는데, 이걸 휘젓고 돌아다니면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이 아니라 오늘이 아니라 이 땅위에서는 별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도 이삭도 부자는 부자라도 가나안을 받지를 못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이 가나안 이 땅위의 것이 아니라 죽고 나서 가는 천국의 영원한 안식을 말했구나. 죽고 나서 가는 천국이 좋으니까 잘 되니까 오늘 세상을 포기 하거라. 이게 먹히겠습니까? 그건 너나 해라 그러지. 천국은 너하고 세상은 나 하련다. 이게 에섭니다. 연습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야곱은 세상에서도 밀립니다. 세상에서도 밀리지만은 그렇다고 또 야곱이 세상으로 나가면 에서만은 못해도, 목축은 잘하는 사람인데 할 수 있는 목축까지도 접어두고 어머니 옆에서 늘 부엌일 하면서, 언젠가 에서 이 인간이 배가 고파 급할 때 밥 한 그릇이면 저 손에 있는 장자의 명분, 아브라함 이사 천국을 향한 이 약속은 저건 세상 돌아다니느라고 이 약속은 쉽게 생각하니까, 배고플 때 그거 달라 그러면 바꾸겠지 이거 준비하고 계속 준비하다 보니까, 배고플 때 음식 찾았고 장자명분 달라니까 줬고 맹세하고 해치워버렸습니다. 수십 년을 기다림 끝에 잡았습니다.

오늘 저녁은 이 모든 일에 18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함으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아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아꼈는데 하나님은 이스마엘은 아니라고 제쳐놓고 사라를 통해 나오는 것이라야 되겠다. 이렇게 약속을 찍어놨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좋아서 에서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서의 아내 리브가가 좋아하는 야곱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나중에 야곱은 이런 할아버지 이런 아버지 아브라함 이삭과의 관계를 알면서 또 야곱은 눈이 예쁜 라헬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눈이 예뻐야 예쁘답니다. 라헬은 눈이 예뻤더라. 레아는 눈이 못생겨서 이거는 뭐 줘도 그냥 밀어내버렸습니다. 근데 레아를 통해 유다 지파 예수님의 구원의 계통이 내려옵니다. 또 레아의 둘째 아들 셋째 아들 레위를 통해 이스라엘의 모세와 제사장 계통이 내려옵니다. 구약의 모든 복은 레아를 통해 주시는데 야곱은 엉뚱한데 요셉한테 가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낀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제쳐버렸습니다. 이삭이 아낀 이삭도 하나님이 제쳐버렸습니다. 야곱이 아낀 요셉과 베냐민이 아니라 야곱이 밀쳐버린 레아를 통해 유다지파와 레위지파가 내려옵니다. 오늘 저녁 간단하게 남반들 이 눈을 좀 고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브라함의 눈도 그렇고 이삭의 눈도 그렇고 야곱의 눈도 그런데 이분들이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이분들도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거 하나님이 아니라 했는데, 오늘 여기에 남반들이 자기 눈 가지고 요즘은 이런 여자라야 되고 저런 여자야 되고, 가정은 이래야 되고 그러면 하나님은 그것도 틀렸고 그것도 틀렸고 그것도 헛일이고, 그것도 망하는 것이고 그것도 영 아주 못 쓰는 거다. 하나님이 좋다는 거 예 하거라 하나님이 주는 거 은혜로 받거라 그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보다 신앙이 없어 헛일라고 그랬더라. 그걸 위해서 기록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그런데 오늘의 아브라함이 너는 신앙에 너희 가정의 출발과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 너는 아브라함의 은혜를 받아 내려오는 이삭이라 할지라도 넌 에서냐 아니면 야곱이냐. 여기 보니까 믿음의 조상 이삭이 18절에 에서를 사랑하더라. 근데 에서는 하나님께서 이거는 뱃속에서부터 이건 치워버리고, 이건 세상을 휘잡을 건데 이거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가는 데는 필요가 없다. 천국에는 에서는 없애버렸습니다. 근데 이삭조차 에서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아내 리브가는 아브라함 이삭 계통이 아닙니다. 밧단 아람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데리고 온 리브가는 신앙의 출발이 늦었는데도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이삭만큼 신앙이 되지 않고 뒤에 출발했는데 어떻게 리브가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야곱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어머니니까 자기 뱃속에서 어려웠고 기도했고 뱃속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큰 거 억센 거 강한 건 아니다. 작은 것 약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간다. 모성애라는 것이 들어 모성애가 들어 리브가의 신앙이 아니라, 모성애라는 것이 들어서 이 아이에게 어떤 게 좋을까. 그런데 이 아이에게 좋은 게 엄마에게 좋고 아빠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둘째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붙들고 어릴 때부터 둘째를 지켜보고 기르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밖을 나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목자 이삭도 목자입니다. 야곱도 뒤에 보면 목축으로는 출중한 사람입니다. 목축으로 밖을 돌아다니면 에서만은 못해도 그래도 괜찮은데 에서 정도는 되지 않아도, 목축은 할 수 있는 야곱을 그것조차 치워버리고 갈 수 있는 직장 가질 수 있는 진로 이 정도는 신앙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조차도 다 치워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복을 기다리는 이 일에는 에서가 가진 주머니 속에 장자의 명분이 넘어와야 되는데, 이건 주먹으로 뺏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다렸고 기다리는 데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들사람이라. 천지를 돌아다니는 그 에서의 강함의 약점 빈틈 기회를 볼 수 있어 그래서 어머니하고 야곱하고 둘이 짝짝이 돼가지고, 어머니는 뱃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야곱을 하나님의 약속의 사람이니 여기에 다 주력했고 집에 호주 위대한 이삭은 가나안의 이런 저런 왕들하고도 견주는 사람인데, 훌륭한 아버지는 들 사람 에서를 좋아하였더라.

그 다음 29절이었습니다. 아까 27절 28절 29절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뭐 언제든지 장막 안에 어머니와 하던 일입니다. 에서가 들에서 돌아왔는데 하필 이때는 심히 곤비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밥 좀 주라 공짜로? 훌륭한데? 천하가 네 건데? 공짜로? 뭘 주지? 31절입니다. 야곱이 가로되 형에게는 장자명분이 있지 않냐. 장자명분이라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 근데 아브라함이 죽을 때까지 그 약속은 약속으로 끝났지 실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이게 이삭으로 내려왔는데 이삭의 나이 많은데도 약속이 실현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아브라함의 약속 이삭의 약속 약속으로만 쭉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약속? 아버지의 약속? 이게 에서까지 내려왔는데 이 약속 가지고 세상사는 데는 불편하지 이거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약속은 아홉 나라의 전쟁이 벌어져서 그 아홉 나라를 다 이기고 내 것이 되어져도, 하나님 앞에 누가 될까봐 다 모은 재산 다 나눠줘야 되는 게 이런 약속입니다. 돈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있던 가나안에 5개국 4개국의 전쟁이 벌어졌는데, 아브라함이 전쟁 끝에 아홉 나라를 다 휘잡고 모든 사람을 포로로 모든 재산을 내 것으로 딱 잡았는데, 이걸 다 잡고 보니 횡재는 했지만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복을 주셨느냐. 전쟁을 해서 남의 나라 사람과 재산을 모두 다 노략을 해가지고 부자가 됐냐. 아 아무래도 전쟁을 해서 남의 피눈물을 가지고 부자 됐다 그러지 않겠느냐. 그러면 하나님이 복을 주셔도 하나님은 빛이 나지 않고 그 잔인하여 남의 피눈물로 부자 됐다 그 소리를 들을 거니. 인간 대 인간으로는 정정당당하게 싸워 가진 포로고 재산이나, 하나님의 능력에 조금이라도 누가될까봐 다 틀어 버렸습니다.

다 가지고 가라 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티끌 하나 묻는 거 싫다. 다 가져가라 이게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계약서고 이게 장자의 명분입니다. 딱 봐도 이건 돈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삭은 내가 판 내 우물이고 우물은 목축 업자에게 굉장히 소중한 기본 자본인데, 공연히 옆에서 시비를 하니까 줘 버리고 또 옮겼습니다. 또 팠는데 또 시비하니까 또 줘 버렸습니다. 또 주고 또 주고 또 주고 하늘의 소망과 하나님의 은혜가 올 때까지는, 내 노력으로 내가 가진 것도 넘겨주고, 넘겨주고 넘겨주니 할아버지를 봐도 아버지를 봐도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는 것은 이 땅위에 먹고 사는 데는 영 불편합니다. 주일이 다 불편하지 않습니까? 새벽예배 다 불편하지 않습니까? 철야기도하고 언제 시험 공부할 겁니까? 5월 집회까지 가고 그냥 학기 중에 한 주간 접어버리면 공부 어떻게 따라 갈 겁니까. 하늘의 약속에는 유리할지라도 당장에 먹고 살아야 되는 하루가 아니라 이 땅위의 생활에는 영 불리하기 때문에, 에서에게 아브라함 이삭의 하늘의 약속을 에서에게 쥐어줬더니만 이걸 붙들고 에서는 이게 불편합니다. 이걸 들고는 세상을 마음대로 휘저을 수가 없으니 이러던 판에 세상을 살다가 피곤했는데, 한 그릇 밥이 필요한데 야곱이 그 장자의 명분을 달라니까 안 그래도 주고 싶은데 에이 너나 해라. 넌 너 좋아하는 것 하고 난 또 오늘 배가 부르면 또 오늘 먹고 앞으로 또 넉넉하게 세상을 살아갈 거다. 이게 야곱의 신앙이며 야곱을 이렇게 기른 것이 리브가입니다.

28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 하였더라” 태어날 때부터 밀리는데 이건 둘째인데 이거는 불리한데 하나님의 약속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이거는 계속 투자하는 겁니다.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사랑과 배려가 에서에게 쏟아지고, 뒤에 갖다 붙은 리브가는 못난 야곱을 쏟아 붓는데, 이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돈도 안 되는 에서의 장자명분을 31절에 달라니까 32절에 에서가 “내가 죽게 되었으니” 아니 죽으면 천국 가고 영원한 아브라함 이삭에 천국이 다 제건데 거기가 자기 고향인데, 세상밖에 없는 사람이 당장에 세상에서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다 없어지니, 이 땅위에 살아가는 데 유리하다면 천국은 너 하거라. 얼른 던져줘 버렸습니다. 에서가 한 잔 먹고 취해서 도장 잘못 찍은 거 아닙니다. 정정당당하게 할 말 했고 서로 계산했습니다. 당장 죽게 되었는데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한고. 세상만 살 사람이니 세상 죽을 판이면 천국의 약속은 필요가 없고 야곱은 이 땅위에서 죽어도 천국의 약속이 소중하니까, 서로 좋아서 거래를 하고 34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 팔았는데,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고, 에서는 배불리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갔는데 34절제일 끝에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쉽게 생각했더라. 가볍게 생각했더라. 경홀히 생각했더라. 이거 어느 짝에 쓰는데? 그게 뭔지를 몰랐던 겁니다. 그게 뭔지.

그다음 26장을 넘겨서 27장으로 갑니다. 세월이 더 많이 지났고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가 아브라함 이삭 에서로 내려가는데 내 아들아 2절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3절 너 가진 기구 너 가진 기술 너 가진 실력 너 가진 수단 너 가진 졸업장, 네가 가진 이 땅위에 있는 걸 가지고 올 수 있는 화살을 넣는 곳이 전통입니다. 화살과 활을 가지고 들에 나가 세상에 나가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가져다가 먹고, 죽기 전에 아브라함으로 받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복을 마음껏 너한테 물려주도록 축복하게 하라. 5절 이삭이 에서를 불러 말할 때 리브가가 엿들었습니다. 우연히 엿들어 버렸는가. 이삭이 언젠가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의 복을 빌어줄 건데 그게 언제 될지 모르니 늘 기다리고 있었던가. 야곱이 그냥 바깥 가기 싫어서 밥하다가 어느 날 턱 들어왔는가. 늘 기다리고 있었던가. 리브가가 어느 날 우연히 들었는가. 이삭으로 그 다음 에서로 내려갈 거니 늘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가. 준비의 신앙 다른 말씀들로 다른 말씀으로 살펴보면 늘 준비하고 기다리는 신앙이 신앙입니다. 그냥 우연히 툭 떨어지는 것은 처음에 한 번은 주셔도 그다음에는 안 주십니다.

5절에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에서는 사냥하러 나가고 리브가는 얼른 아들 야곱을 불렀습니다. 항상 집에 있으니까 항상 부엌에 있으니까 하나는 들로 나가고 들판이 자기의 세계입니다. 들판이 뭐 교회 안에 맨날 예배에 기도에 그거 가지고 뭐 크게 되겠냐. 막 대학병원의 의사가 되고 대학병원에 이사장이 되어 복음 운동을 이 땅위에 마구 확 펼쳐버려야지. 이것도 복음운동입니다. 그럴 분들은 그리하고. 똑같은 신풍에서 애양원병원은 대학병원 급이고 전국 단위입니다. 전국을 향하여 복음의 의술을 밝히고 수십만 명이 오고 가고, 또 같은 신풍 안에 한 쪽에서는 예배당에서 고개 쳐 박고 늘 주님 앞에 기도하고, 이쪽은 이쪽 일 하고 저쪽은 저쪽 일 합니다. 이삭이 사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복음운동을 크게 하기 위하여,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갖다가 요즘 말로 확장하기 위하여, 그렇게 거창하게 선교도 하고 교계 연합운동도 하고 뭐 청와대도 가고 뭐 광화문에도 가고 뭐 할 대로 다 하고. 리브가는 아들 야곱을 얼른 불러 지금 부친에 하나님의 약속이 에서에게 간다. 장자명분은 이미 받아 놨습니다. 복을 주면 받을 그릇을 먼저 챙겨놨습니다. 이제 뜨면 됩니다. 그릇도 없는 데 부으며 그릇도 없는 데 들이 밀면 어디에 담기겠습니까. 장자의 명분 그릇 미리 받아놨고 복을 붓는데 이제 들이밀면 됩니다.

에서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에서가 사냥하러 나갔다. 8절 야곱아 9절입니다. 내게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해라. 염소 떼에 가서 얼른 한 마리 새끼 잡아 오너라 뚝딱 만들어 아버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까 또 들짐승 쪽을 아니까, 아직도 별미를 알아버리니까 아버지한테 맞추는 거는 어머니가 하면 하는 겁니다. 이거 어머니하고 지금 야곱하고 둘이 하나입니다. 죽으시기 전에 아버지의 축복을 야곱 네가 받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다. 약속이다. 얼른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11절 봐보십시오 야곱이 어머니에게 에서는 털 사람입니다. 25절에 앞에 태어날 때 “야곱은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가죽옷 같아서 그냥 가죽이 아니라 털  가죽을 말합니다. 27장 11절 야곱이 어머니에게 형 에서는 탈 사람이요. 나는 살이 매끈매끈한 털이 없는 사람이라. 만약에 아버지가 날 잡다가 잘못되면 복은커녕 저주를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으로 내려오는 저주는 아브라함이 저주하는 자 하나님이 저주를 해버립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을 저주만 해도 하나님이 저주를 해버립니다. 복과 저주가 하나님과 아브라함 하나님과 이삭은 붙어 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13절 리브가 어머니가 아들아 위험하다. 그러나 그 저주는 내가 시켰으니 내가 책임지겠다.
너는 내 말만 듣고 가서 가져오너라. 이게 어머니의 가정교육입니다. 다 가정에서 자녀들 그렇게 길렀습니까. 아버지는 등신 같아도 아버지가 신앙이 있는데도 헛짚어도, 신앙 없는 어머니가 모성애만이 아니라 그 모성애 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면, 야곱 같은 2등 낙제 야곱 같은 이런 사람도 하나님의 복을 다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아들이 많은데 사라의 아들로 내려왔습니다. 이삭의 아들이 둘인데 이삭이 좋아하는 아들이 아니라 리브가가 좋아하는 아들로 내려갔습니다. 야곱으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야곱이 좋아하는 요셉이 아니라 레아를 통해 내려갔습니다. 머리는 남자고 하나님 앞에는 남자가 대표지만은 이새로 내려가는 신앙의 계대는 하나님께서 어머니에게 맡겨놨는데, 엄마 머릿속에 하나님의 복이 있어야 된다. 이게 들어 있는지, 세상이 어떤데 하나님의 복 가지고 되냐 이러고저러고 그냥 아파트 단지에서 정보 교환해 가면서, 재빠르게 좋은 정보를 빼서 학원으로부터 학교까지 이렇게 저렇게 해가지고, 신앙은 놔두고 이렇게 달려가야 되는데, 어머니는 밀어주고 딸은 앞서 가고 뭐 아들은 앞에 가고 어머니는 더 앞에서 끌어주고, 밀고 끌고 세상을 향해서 달려가면, 낭떠러지 폭주하는 기관차 되어 집니다. 그렇게까지 달려가면 하나님도 떨어져 죽으라고 내 두지 끝까지 막지를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주는 복 인간 거 세상 것 말고. 이 마음이 부부가 합하면 더 좋고 부부가 합하지를 못하면 어머니 한 사람의 집중과 애착만 있어도 하나님은 이걸 보고 길러 갑니다. 그러려고 하나님께서 일부러 남녀를 만들며 여자는 남자가 만들었고 아담으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이새부터는 아내를 통해 엄마를 통해 만들어 가십니다. 모두 가정마다 이제 막판에 일 생기면 그날 막 난리 난리하지 마시고, 어릴 때부터 뱃속에서부터 뱃속에서부터가 아니라 결혼 전부터, 야곱이 늘 몇 십 년 밥하며 밖에 나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보니까 기회가 어느 날 굴러 왔습니다. 어머니가 늘 아버지와 큰아들 사이를 지켜보다 보니까 어느 날 들었고 바로 받아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끝나버렸습니다. 그게 요즘 말로 말하면 비겁하게 새치기 한 거 아니냐. 커닝 아니냐. 하나님은 그래 보지 않고 너는 하나님 아니면 안 되겠더냐. 너는 일편단심 하나님의 복이 전부더냐. 그래서 오로지 그것만 쳐다보고 있었느냐. 그렇게까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복이 아니면 안 된다고 일편단심이면, 내가 너를 줘야지 누굴 줘야 되겠느냐. 하나님 복이 이거는 줘도 되고 말아도 되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다가 남이 달라면 휙 집어던지는, 그 인간한테 하나님이 전부를 줘서 되겠습니까. 일 생길 때 호닥호닥 난리하지 마시고 좀 미리 좀 전에 차분하게 기다리면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세계 모든 민족위에 가장 큰 복이라고 확실하게 단정할 수 있는 복을 딱딱 떼 주십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의 다섯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하나는 같습니다. 세상은 몰라도 하나님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 그럽니다. 내게 맞는 이 땅위에 가장 좋은 복,  거지 나사로는 뭐 생 거지로 살아 개들이 핥았는데 어떻게 거지 나사로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났습니까. 천국 가서보니까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났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 꼭대기에 올라앉았습니다. 아브라함하고 동급이었습니다. 이걸 믿으면 믿는 사람이고 그런 말도 있다더라. 이건 말씀을 전설처럼 신하처럼 허탄한 이야기처럼 듣는 사람입니다. 이걸 성경은 참 못 됐다. 못 됐다. 라는 말을 참람하다 가증스럽다. 이렇게까지 적어놨는데도 계속 하나님의 복을 앞발로 차고 뒷발로 차고 옆구리 쑤셔서 굴러 떨어지고 그러면, 바울이 믿기 전에 이름이 사울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뒷발로 부지런히 예수복음을 주워 차 대는데 그 가시 채를 차느라고 네 발이 다 피투성이가 됐다. 인간아. 네가 예수교를 짓밟으니까 예수교가 짓밟히는 것이 아니라 네 발모가지가 전부 다 너덜너덜 비참하게 됐다. 바울은 신나게 스데반부터 전부 죽이러 다니고 하나님은 그놈 죽을 짓 잘한다. 순교를 한 스데반이야 하늘을 다 가졌고, 가치와 지식이 다르면 결국 서로 지식대로 가치관대로 가는 겁니다. 어머니의 중요성입니다. 자녀 잘못되면 어머니는 그 어릴 때 내가 어떻게 길렀나. 무엇이 소원이었나. 그때그때 어떻게 했나 안심하고 방심하고 걱정 없다. 그때 다 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급하면 그때는 뒤에 에서가 복을 빼앗기고 울며 땅을 치고 후회해도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 안 줘야 그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한 가정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은 참 귀하고 귀한 복을 밀어 넣어주십니다. 굳이 외면하시고 굳이 배제하지 마시고 기다리고 복되게 받는 우리 되도록 하십시다.



1차: K.Y.Y

Comments

Category
State
430,719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