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22.12.4 창25:19 우리 안에 주신 두 길, 준비의 기회는 항상 있으나 선택의 때는 단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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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2.12.4 창25:19 우리 안에 주신 두 길, 준비의 기회는 항상 있으나 선택의 때는 단번

서기 0 139 2022.12.0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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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1204 주전

제목 : 우리 안에 주신 두 길, 준비의 기회는 항상 있으나 선택의 때는 단번

찬송 : 74장(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79장(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 122장(여호와는 나의 목자)

본문 : 창세기 25장 31절 -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 이었더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영생의 복을 두고 갈 땅에 한 번의 기회로 포기하는 일 없도록, 날 중에 귀한 주일을 주시고 시간 중에 귀한 예배 시간으로 모여, 영생의 복을 두고 갈 땅에 버리고 잊어버리고 바꾸지 않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복된 날 귀한 시간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한 줌의 흙으로 만들어 만물 중에 찌끼와 같고 보잘 것 없는 저희들인데, 한 분 하나님 영원 전 목적을 정하시고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깨끗하여, 영원토록 하나님 역할로 영계와 우주를 다스릴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시고 오늘도 빠짐없이 기회를 주시오니, 너무 귀한 기회를 쉽게 생각하지 않도록 미혹의 세상 속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받아 가진 생명으로 복된 길만 걸어가도록 이아침도 불러주시고, 흐트러진 마음 모아주시고 닫혀 있는 마음 열어 말씀이 인도하면 어디까지든지 따라가는 주일학생 노년의 종들, 여러 형편에 있는 모든 우리 교인들 다되어지도록, 해외도 군무에 있는 아들들에게도 기뻐 즐거운 이들에게도 어려워 슬픔 가진 가정, 가정 일일이 살펴 하나님은 아버지 되시고 우리는 말씀을 따라 주의인도 따르는 이아침 되게 해 주옵소서. 이길 이 형편 이 복된 길을 위하여 오랜 세월 작정하고 운영하신 주님, 복된 곳에 복된 강단 세워주시고 전하고 듣는 부족한 저들을 모아주셨으니, 천하와 주변에 상관없이 가야 할 길 복된 길 이 아침도 한 걸음씩 걸어가도록, 세워주신 모든 종들 일일이 붙들어 주시되 전국을 상대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말세의 빛과 바른 길을 매일 매 시간 전하는 귀한 종에게도 건강 주시고, 또 우리 모두에게 자기를 살펴보면 각자 주님 원하는 사명이 있는 줄 깨달아, 귀한 사명 귀하게 복되게 사용하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창세기는 세상을 만들고 세상이 돌아가는 첫 기록입니다. 근데 이게 한 번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오늘까지 지금 우리 가정에도, 창세기의 이 원리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와 내 가정을 읽어보는 겁니다. 우리교회와 오늘 우리의 환경 시대를 정답을 들여다보고 있는 겁니다. 여기 본문에 야곱과 에서가 나옵니다. 한번 기억해 보시지요. 야곱과 에서(야곱과 에서). 둘은 쌍둥이입니다. 에서가 형이고 야곱이 동생입니다. 오른쪽에 19절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19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이삭이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낳게 되어지는 첫 기록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그다음 이삭의 결혼이 40세였습니다. 40 결혼 요즘은 흔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이삭이 180년을 삽니다. 180년을 사는 이삭의 40살 결혼이면 90살 안팎 사는 오늘의 결혼으로 보면, 나이가 어찌 될까. 20대 초반일 겁니다. “이삭이 사십 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이삭의 아내의 이름이 리브가입니다. 리브가로 아내를 삼았더라. 리브가라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먼 북쪽에 있는 사람입니다. 밧단 아람 사람인데 리브가라는 아내를 데려오려면 주변이 아니라 멀고 먼 곳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이삭의 결혼, 아내 리브가를 데리고 오는데 주변에도 많은 사람이 있는데, 에서는 주변에 있는 사람과 결혼합니다. 나중에. 근데 이삭은 데려오기가 어려운데도 그런데도 환경이 불리하나 멀리서 데리고 왔습니다.

구약에 멀다는 말은 구약에 어렵다는 말인데 신약은 신령한 시대니까, 멀리서만 데리고 오면 이삭처럼 된다. 라는 말이 아니라 환경은 어려우나 환경은 불리하나. 이게 이삭의 아내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형편 주변 여러 가지 환경을 볼 때는 불리해도. 리브가입니다. 근데 리브가는 아버지가 브두엘입니다. 아버지 브두엘, 사는 곳은 밧단 아람. 이런 말은 이삭과 신앙이 가까운 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이 가까운. 세상의 기준 세상의 환경 세상의 형편을 보면 어려운데 불리한데, 신앙 면으로 볼 때는 유리하고 신앙 면으로는 가까운 사람이 바로 리브가입니다. 가정을 가지고 복된 앞날을 열어 가고 싶으면, 사람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죄송하지만은 아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둘을 하나로 짝으로 주셨는데 절반이면 아무리 훌륭해도 아이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짝이 있어 결혼이 되어 지면 그때부터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답다 할 때 성인이라 그럽니다. 한글로 말하면 어른이라 그럽니다. 어른 성인 또는 사람 같은 말입니다. 아이다 부족하다 아직은 혼자는 아니 된다. 혼자 아니 되면 부모한테 덕을 봐야 됩니다. 대통령이 되어도 독신이면 5천만의 어른이라도 하나님이 볼 때는 아직 젖먹이로 봅니다. 그러다보니까 큰 탈이 났던 모양이지요.

세상이 볼 때는 그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세상이 볼 때는. 그러니 제일 위에 올라갔겠지. 또 뒤에 따져 봐도 제일 낫다 싶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과 하나님이 볼 때는 둘이라야 사람인데 절반을 잘라 놓으면, 이건 젖먹이든지 이거는 신세지고 살아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삭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아브라함 이삭 둘이 준비가 되면, 그다음 3대로 야곱이 나오는데 야곱을 거치면서 자손이 열둘이 되어 집니다. 그냥 많아서 열둘이 아니라 이 열둘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어 지고, 이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오늘을 거쳐 영원한 천국을 들여다봐도 전부 열둘로 하나님이 만수전부를 삼습니다.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아 그 열두 아들이 12지파가 되고 이 열둘의 종류가 영원한 천국의 전부인데, 이런 복된 열두 아들을 낳은 야곱은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날 하룻밤에 뚝딱 만든 것이 아니라 야곱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먼저 걸어갔습니다. 씨를 뿌리고 곡식을 기르고 나서 추수를 하는 거지 씨도 뿌리지 않고 추수부터 합니까? 씨를 이제 뿌려 아직도 몬데 모판인데 열매도 맺지 않았는데 낫으로 베 버리면 잔디 깎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뿌리고 자라고 그리고 열매가 맺어졌을 때 거두는 겁니다.

말하자면 학교를 가고 그다음 배우고 그 다음 익히고 나서 시험을 봐야, 이게 실력이 되고 이게 점수가 되고 합격이 되어지는 겁니다. 당연하지요? 학교도 안가고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디를 들어갔다. 백으로 들어간 모양입니다. 백으로 들어가는 것도 죄는 아닙니다. 백으로 들어가면 난리가 나는데 백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 못 피합니다. 근데 실력 없는 게 들어가면 들어가도 떨어져 버립니다. 실력 있는 것은 아무리 눌러놓고 아무리 배제를 시켜도 내나 나중에 제자리에 가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뭐 별로 백으로 갔다고 자랑할 것도 아니고 욕할 것도 아니고 마지막에 보면 됩니다. 씨를 뿌리고 씨가 자라고 자라면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가 맺혀지면 저절로 이건 추수가 되어 집니다. 열매가 맺혀졌는데 추수를 안 하면 저절로 떨어져 버립니다. 공부도 그렇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오늘 하룻밤 세상인데, 이 세상이 전부면 살아도 그만 안 살아도 그만 사나마나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잘 계산해보면 안사는 게 더 낫다고 그럽니다. 죽 써서 죽 써서 강아지 줄 바에는 뭐 하려고 수고하고 노력을 했습니까? 그 말입니다.

오늘 세상은 천국을 준비하는 기회인데 오늘의 세상이 귀한 것은, 천국을 준비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입니다. 세상 속에 두신 천국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하나입니다. 그 아브라함 아들이 이삭입니다. 둘. 아브라함 이삭은 혼자 걸어가는 걸음이라 외롭고 별 것 없어 보였습니다. 근데 아브라함으로 심고 이삭으로 길러놓으니까 야곱으로 열매가 맺어지며, 야곱의 열매가 열두 아들이 되고 열두지파가 되고 이 열두 아들의 열두지파가, 주님 오실 때까지 믿는 사람 전부가 되었고 이걸 그대로 천국으로 가져간 모습이, 성경의 제일 마지막이 계시록이고 계시록에 20장 21장 읽어보시면, 12지파라는 것이 얼마나 귀하다는 걸 소상하게 적어놨습니다. 지금은 창세기를 읽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가는 한 집안의 이야기 이게 성경의 시작 창세기입니다. 근데 이것이 자라서 마지막에 천국이 되어지는 이 시작을 우리는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주일날 오전에 그래도 함께 이 자리에 모였으면, 우리는 자기 가정에 아브라함이 되던 이삭이 되던 아니면 자기 가정에 야곱이 되던 그렇습니다. 자기는 어디쯤 해당되는지 자기를 한번 살펴봐 보십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가며 대박을 친 겁니다. 이런 횡재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가다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다음 에서가 되어지면 이거는 역사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어 집니다.

다시 19절부터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 출발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이삭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아브라함의 아들이삭” “이삭의 후예는 이러 하니라” 아브라함과 이삭이 준비하고 길러 놓았는데 추수를 어떻게 했는가. 알곡 추수를 했는가. 빈껍데기 추수를 하여 망하게 되었는가. 잘 읽어보라 그 말입니다. 20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그러니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이겠지. 뭐 아는데 왜 19절에 적은 말씀을 20절에 또 적었을까요. 성경에 반복이 될 때는 중요하니 정신 차리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는데 야곱을 낳기 전에 결혼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아내로 데려왔습니다. 아내를 선발했습니다.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를 구했는데 어디서 구했는가. 밧단 아람에서. 밧단 아람은 환경이 불리한 곳입니다. 아브라함 이삭이 살고 있는 가나안에서 밧단 아람까지 사람을 보내려면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는가. 주변에도 사람이 많은데. 환경은 곤란하나 환경은 불리하나 신앙으로 가까운 곳이 밧단 아람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브라함은 원래 저 멀고 먼 갈대아 우르 쪽에 살던 사람입니다. 갈대아 우르 쪽에 아버지 조상이 살았는데 아브라함의 아버지를 하나님이 불러 가나안으로 쭉 데리고 오시다가, 가나안에 들어오기 직전 하란이라는 곳에 그만 아버지가 거기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모든 가족들이 다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여수에서 서울을 간다고 여기서 전부 출발을 했다가 수원까지 갔다가 수원 아십니까? 서울 밑에 수원까지 갔다가 그만 수원에 다 눌러 앉아 버렸습니다. 온 집안이. 근데 아브라함 하나만 끝까지 간다그러고 서울까지 간 그런 셈입니다. 서울에 좋은 사람 많은데 거기에서 결혼하지. 사는 곳에 좋은 사람은 많지만은 하나님을 따라 원래 출발했고 가다가 주저앉았지만은, 그래도 수원 쪽에 그래도 하란 쪽에 식구들이 있는데 이 식구들이 함께 출발한 신앙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이왕 가정을 만들려면 돈을 얼마 버냐? 직장이 어디냐? 인물이 어떠냐? 건강이 어떠냐? 눈이 크냐. 작으냐. 뭐 이런 것도 다 보던데. 눈이 크면 겁이 많다고 그럽니다. 예쁘기는 예뻐 보일지 몰라도 겁이 많으면 험악한 세상 살 때는 각오를 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양쪽을 주는 겁니다. 눈이 단춧구멍처럼 작으면 보기는 별로 좋지를 않다 그럽니다. 근데 눈이 작으면 겁이 없다고 그럽니다. 세상이 좋게좋게 아름다우면 눈 큰 사람이 나을 거고, 세상이 험하고 앞으로 험한 꼴이 올지 모른다 싶으면 눈 적은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고 있는 가나안 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여기서 사람을 구해도 되는데도 갈대아 우르에서 출발하여 가난까지 오려고 함께 출발하다가,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에 그만 거기서 중단한 사람. 그래도 이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이삭을 기준으로 보면 출발한 신앙도 있고, 끝까지 오지 않았지만은 그래도 비교적 신앙으로 통하는 사람들이고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환경에는 불리해도 신앙으로는 유리한 사람. 환경으로는 가깝지 않아도 신앙으로 가까운 사람을 구했다. 이게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게 된 배경입니다. 오늘 직장도 가정도 부부도 오늘도 살아가는 모든 생활에서, 우선 좋은 것 취해도 자유입니다. 현재 우선 불리해도 신앙으로 가깝고 신앙으로 하나 되는 걸 찾아도 자유입니다. 두 가지는 자유인데 선택은 마음대로 하고 결과는 본인이 책임져야 됩니다. 그래서 20절에 이삭은 사십세에 리브가를 아내로 모시고 오는데,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에서도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족속 중 라반의 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당시로 보면 이 사람들이 신앙으로는 가장 가깝습니다. 어쨌든 신앙으로 가깝고 신앙으로 하나 되는 쪽이 좋지 않겠느냐. 공부는 좀 떨어져도 그 말입니다. 내가 대학 나왔으니 상대방도 대학 나오고 대학끼리 만나야 말이 통하지. 내가 음악가인데 상대방도 예술가라야 예술가들끼리 통해야 살기 좋지. 다 좋습니다. 말도 통하고 예술도 통하고 입는 것도 같고 음식도 같고, 같아야 끼리끼리 좋지만은 신앙을 쏙 빼버리면 하나님의 복을 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심장은 들고 다녀야 되지 않겠습니까?

머리는 파마로 볶든 대머리로 밀어버리든 그건 뭐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가방은 들고 가도 되고 놓고 가도 되는데, 심장 이건 떼놓고 다니면 곤란할 겁니다. 이삭의 결혼을 보니까 불편해도 힘들어도 신앙을 챙겼습니다. 이삭과 같은 신앙이면 더 좋겠지마는 이삭과 같은 신앙이 없으니까, 그래도 이삭과 비교적 가까운 신앙을 찾다보니까 데리고 오는데 멀어 거리가 멀어서 애를 먹었습니다. 환경은 어렵고 불리해도 신앙에 유리한 것 신앙에 가까운 것을 잊지 말아라. 이게 이삭의 결혼입니다. 아브라함 이삭이 이렇게, 이렇게 내려오다 보니까 생긴 게 야곱이고, 야곱을 가지다 보니까 이 야곱으로부터 열두 아들이 생기며 그다음,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처럼 영원한 영생을 향하여 이렇게 뻗어나게 되었습니다. 원래 아브라함 집안은 자손이 적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냥 자녀 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하다 하나님이 하나 주셔서 그래서 이삭을 받아 가졌습니다. 이삭도 아이를 못 가져 애를 먹다가 결혼하고 20년 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40에 결혼하고 20년이 지나서 아이를 가진 걸 보니 참 손이 귀합니다. 근데 야곱 때는 그냥 열두 아들입니다. 애굽에 들어갈 때 70명이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한 200여만 명이 나옵니다. 뒤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왕성하고 자자손손 뻗어 나가는 것 같은데, 원래 시작은 보면 대가 끊길라 말라 이렇게 애매했습니다. 이런 기록을 주시는 이유가 아무리 적어도 뿌리가 바로 되고 아무리 못나도 바로 길러 세월을 기다린 아브라함 이삭 이야기를 적어주고 있습니다.

21절입니다.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결혼을 했는데 3년 5년 때가 되면 아이가 생겨야 되는데, 아브라함 이삭은 부자라 건강 때문에 아이를 못 가지는 게 아닙니다. 아이를 가지지 못하므로 “여호와께 간구하매” 사람이 잘 먹고 건강하면 그러면 결혼하면 아이가 생기는 게 정상입니다. 아브라함도 부자 이삭도 부자인데 아이가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아이가 없어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이를 그냥 주시지 왜 주지 않았을까 이왕 가지는 아이 기도해서 가지라고. 기도 안하고 신앙이 없어도 턱턱 뭐가 잘 되는 집이 있습니다. 그런 집을 보통 복 받았다 그럽니다. 근데 아는 사람들은 참 지질하게도 복이 없다. 이렇게 봅니다.
그런 걸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타고난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안 해도 100점 맞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를 가져 놓으면 주변에 뭐라고 광고를 하느냐. 뭐 우리 애는 공부 안 해도 100점입니다. 1등입니다. 자랑을 하고 있는데 그 가정은 무식해 그렇습니다. 경험이 없어 그렇습니다. 세상을 운영해보고 역사를 알고 천하를 쥐고 흔드는 사람들은, 타고난 걸 딱 봐가지고 못나도 머리가 나빠도, 해보려고 애를 쓰고 진실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또박또박 걸어가는 인내가 있으면, 이거 알짜배기 이거 완전 보배를 잡았다고 좋아하는 겁니다. 그 사람 자기 된 대로 가는 겁니다.

강아지를 낳아 기를 때는 온 천지 돌아다니면서, 그냥 사람이 배설해 놓은 것만 이건 주워 먹습니다. 맛있다고. 개니까 어떡하겠습니까. 그거 좋아하지. 근데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뭐 그런 게 있으면 그냥 냄새 나고 보기가 흉해서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사람마다 다른 겁니다. 뭐 좋아하면 강아지고 그게 싫으면 사람 되는 거고. 공부를 잘 안하는데도 성적이 좋고 인물이 좋고 1등을 한다. 참 위험하고 복이라고는 지질하게 없는 건데, 자기도 그걸 자랑하지 부모도 그걸 자랑하지, 또 사방에서 그걸 또 부러워하지. 세상이 이러니까 세상이 복잡한데 복 있는 사람은 보자. 못나도 한 걸음 두 걸음 또박 또박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걸어가는 것이 어디 있냐. 이걸 보배인 줄 알고 이런 게 내 속에 있으면 복 받았다고 자랑을 하고,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어떻게 저런 사람을 어떻게 선을 나볼 수 없나. 복 있는 사람은 복을 찾아가는데 이걸 부러워하고 이걸 서로 가진다고 싸우는 사람이 없으니, 알고 보면 세상 복되게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를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귀한 의인이고 하나님의 선지자인데, 약속을 하고 주신 이 이삭을 결혼을 시켰으면 부잣집이고 모든 것을 다 갖췄으니 그냥 아들을 주면 될 건데, 아이를 갖지 못함으로 20년간 하나님 앞에 아이를 달라고 기도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복도 지질하게도 없다. 복 없는 사람은 그렇게 보고 복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든다고 했으니, 귀하고 귀한 아이를 주시려고 너무 귀하니까 쉽게 주지 않고, 너무 귀하니 어릴 때 죽을병에 걸려 애간장 녹고 기도도 하고, 또 아예 생기지 않으니 달라고 기도도 하고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해서 가지게 된 겁니다.

이삭이 아내의 아이를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드디어 아내 리브가가 아이를 가지면 잉태입니다. 잉태다 참 좋은 말인데 복 된 말인데, 요즘은 이거 다 쓰레기장에 갔다가 버려서 없지요. 이 보배를 쓰레기인 줄 알고 전부 쓰레기장에 버리는 사람은 버리고, 이게 보배인데 왜 버릴까 아끼는 사람은 딱 틀어쥐면 보배인지 아닌지 나중에 보면 압니다.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아이를 가지면 뭐라고 한다고요? 잉태라 그럽니다. 그거 참 엄청 보배입니다. 현재 우리가 알기로 여기에 지금 아이를 가진 분이 세 분인가요? 아 시골에 그냥 아이 셋이면 뉴스 날만 할 겁니다. 우리공회가 시작한 게 덕유산 거창에 고제면인데, 고제면에 10년 동안 아이가 한 번도 태어나지 않았다가 10년 만에 아이 태어났다고 중앙에 뉴스까지 나왔습니다. 그 공회교회는 아무리 시골이라도 아이들이 줄줄이 태어나야 그게 공회인데, 공회본부교회에 10년간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복되게 시작했다가 그렇게 망해버렸을까. 우리한테 주시려고 그랬는가봅니다.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구약은 내 뱃속에 아이가 있어야 복입니다. 신약은 날 통해 줘도 복이고 내게 아이를 주지 않으면 어떡하면 되지요? 신앙의 아이를 만드시면 됩니다. 구약은 반드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서 태어나야 되던 안 되던 보배입니다. 신약은 날 통해 주셔도 복이고 날 통해 아이를 주지 않아도, 내 신앙 나를 따라 나와 함께 신앙의 걸음을 걷겠다고 따라 나서면 이게 신앙의 자녀입니다. 똑같습니다.

22절입니다. 근데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들이 리브가 뱃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아이를 주셨는데 둘을 함께 주셨습니다. 쌍둥입니다. 아이들이 태속에서 엄마 뱃속에서부터 싸우는지라. 이걸 신앙의 세계라고 그럽니다. 공동묘지의 송장들끼리 싸운단 말 들어보셨습니까? 여수 공원묘지 묻어 놓은 사람이 몇 만 명일 건데, 공원묘지 몇 만 명을 묻어놔도 찍소리 나지 않고 뭐 싸우는 숨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조용합니다. 죽으면 조용합니다. 근데 생명이 있고 살아 있으면 병균이 들어와서 그냥 두지를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게 몸 안에서 전쟁이 벌어진답니다. 우리는 그냥 병원 안 가고 안 아프면 멀쩡한 줄 아는데 의사들은, 건강한 몸속에서 하루에 뭐 몇 천 몇 만 개의 암 세포가 들어오려고 그러고 막고 그냥 생난리가 난답니다. 죽으면 어떤 병균도 어떤 암세포도 아예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조용합니다. 어느 가정이 찍소리도 나지 않고 그림처럼 조용하다. 어느 교회가 그냥 목사 말 한마디에 온 교인이 다 순종하고 전부 그림처럼 다 조용하더라. 그러면 그 가정 복 받았고 그 교회 참 좋다 싶은데 성경을 모르면 거꾸로 아는 겁니다. 어느 시골에 어느 아파트에 어느 집 안에, 집이 깨끗하고 5년 10년 전에도 쓰레기 하나 버리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면 그 가정에 아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좋은데 앞으로 그 가정 없어집니다. 부부는 열심히 벌고 행복하고 둘이 씻고 닦고 아무히 해도 자고 나면 아무리 해도 다시 들여다보면, 또 쓰레기가 있고 또 별의별 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말이고 새 생명이 자란다는 말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음식을 먹고 그냥 대소변을 보게 돼 있습니다. 그걸 치우는 데 냄새가 나게 돼 있습니다. 또 가만이나 있습니까? 돌아다니면서 어질지. 어질고 찢고 삣고 꺾고 싸우고 그러면서 배우고 그러면서 자라고, 그러면서 이제 좋은 사람이 되어지는 겁니다.

에덴동산에서 죄만 짓지 아니했더라면 처음도 좋고 나중도 좋고 항상 평화로울 뻔 했는데,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딱 한 번 먹고 죄를 짓고 나니까 그 이후로 세상은 주님 오실 때까지, 생명이 있고 복이 있는 교회와 그런 가정은 조용할 수는 없는 겁니다. 평양은 대통령 욕하는 사람 한 명도 없지 않냐. 한 명도 없으니까 저 모양입니다. 남한은 이쪽에서 정권 잡으면 저쪽에서 죽는다고 난리, 또 저쪽에 잡아놓으면 이쪽에 또 그냥 둡니까. 이게 그래도 경제적으로 발전을 하려니까 온갖 소리 다 나는 겁니다. 미국은 더 시끄럽습니다. 전부가 다 조용하면 그다음 송장입니다. 우리는 신앙 이야기만 합니다. 믿는 가정은 줄여서 믿는 부부란 그다음 믿는 사람이 모이는 교회란, 조용하게 발전하면 좋겠는데 이게 조용할 수는 없는 겁니다. 아예 조용한 교회 찾아갈란다 그 사람 지옥을 향해 지금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곳이 첫째는 없습니다. 정말 조용한 교회가 있으면 이단이든지 아니면 죽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려고 시작을 하면 귀신이 보이지 않게 그냥 두지를 아니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다 부족하기 때문에 나든 너든 별의별 게 있기 때문에, 다치기도 하고 병도 걸리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치료를 하고 고치는 거고 다시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해서 넘어가려고 그러는 거지.

리브가가 복되게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는데 드디어 20년 만에 가진 아이가 쌍둥이입니다. 아니 천하에 제일 가까운 쌍둥이 한 엄마 한 뱃속인데 이 둘이 싸움이 붙었습니다. 쌍둥이라고 다 싸우는 건 아닐 겁니다. 왜 싸울까? 한 사람 안에 두 사람이 있으니 그런 겁니다. 한 사람 안에 두 사람이 가깝기는 제일 가까운데 사상이 다르고 살아가는 게 다르고, 내가 먼저 먹으면 저쪽이 덜 먹고 그러니 더 먹겠다고 더 편하겠다고 쥐 박는 겁니다. 왜 리브가가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를 못 가져서 애를 먹다가 하나님께 간구 간구하고 드디어 받았느냐. 받아야 될 것이 늦어질 때는 기도하라는 말이고 애가 터진단 말이고, 애가 많이 터지고 받을 때는 나도 고치고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시려고 하는 거다. 믿는 사람에게는 늦어지는 것도 또 하나의 복입니다. 잊지 마셔야 됩니다. 일찍 주시지 쉽게 주시지 좋은 것만 주시지. 어떻게 복 없는 것만 머릿속에 가뜩 있으니 그 사람은 자기 뇌를 씻어서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더 급합니다. 나는 가지려고 했고 나는 주면 받겠다고 했는데 늦어질 때는, 좋은 걸 줄 테니 기다려라 더 기도해라 더 애 터지게 기도해서 받아라. 그래가지고 받았는데 쌍둥이고 쌍둥이는 뱃속에서부터 싸움이 붙었습니다. 이게 복입니까? 싸우는데 이게 복입니까? 하나가 옳은 길 복된 길을 걸어가려고 하고 하나는 복된 길을 가지 말자고 그러니, 그때부터 싸움이 생기는 겁니다.

에덴동산에서 나온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을 낳아놨더니만 가인과 아벨이 한 지역에서 살면서 형 가인이 아벨을 때려 죽여 버렸습니다. 이유는? 이래 살던 저래 살든 좋게 좋게 살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데 아벨은, 직업과 세상 살아가는 것은 양보할 수 있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절대 양보 못한다. 이걸 양보하지 않으니까 가인이 달래다 달래다가 때려 죽여 버렸습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교회 출발이 그렇습니다. 오전 예배 마치고 점심시간에 누가 맛있는 거 뭐 많이 먹나 누가 덜 먹나 누가 청소하냐? 이걸로 싸우는 것은 안 믿는 세상도 있습니다. 그건 필요가 없습니다. 꼭 말씀으로 걸어가려고 했는데 말씀으로 걸어가는 이 길 때문에 불가피하게 문제가 생길 때는 이거는 피하지를 못합니다. 싸움이 좋아 싸운다는 말이 아니라 내 줄 수가 없으니 이거는 전쟁이 벌어지고, 전쟁이 벌어져도 이건 붙드는 겁니다. 가인과 아벨의 출발도 그랬고 여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이삭 하나 가지는데 평생을 다 바쳤고, 그 이삭은 이번엔 야곱을 가지고 야곱을 통해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는데, 이 야곱이 뱃속에 들어설 때부터 에서가 하나 옆에 들어붙었습니다. 아니 뭔 팔자가 뱃속에서부터 저 원수가 떼 내지도 못하고 도망도 못가고 피할 수도 없는. 엄마 좁은 뱃속에 둘이 생겼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길러갈 생명의 운동이고, 생명의 이 운동이 피하지도 못하게 턱 들어붙었는데 이게 외목의 혹이라. 에서라는 불행이 갖다 붙었습니다.

우선 보면 불편한데 이게 불편이고 이게 불행이냐? 뒤에 알고 보니 야곱을 특별히 귀하게 만드시려고 뱃속에서부터 미리 연습을 시키고 훈련을 시키고, 강하게 만들고 복된 앞날을 펼쳐주는 그 시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리브가 엄마가 하는 말입니다. 뱃속에서부터 이렇게 싸우고 앉았으니 이 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아이 뭔 팔자가 20년 기다려 하나를 가졌는데, 둘이라 좋은 줄 알았는데 둘이 싸우고 앉았으니 이걸 어떻게 할까? 뱃속에서부터 이러니 나와 놓으면 이제 칼 들고 싸우지 않겠습니까? 실제 그랬습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는 정치로 가야 되겠습니까 교과서를 보고 해결을 해야 되겠습니까. 유튜브를 보고 해결을 해야 되겠습니까. 여기 어떻게 해결했지요? “여호와께 묻자온대” 아니 그때는 인터넷이 없는데 어떻게 유튜브에 물어볼 거냐? 유튜브는 없어도 이때도 주변 사방에 별의별 인간들 다 있습니다. 물어볼 데가 많지만은 “여호와께 묻자 온데” 주여 왜 뱃속에 둘이 싸웁니까? 못 견디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23절에 말씀을 해주십니다. “두 국민이 너 태중에 있구나.” 지금은 아이 둘이지 두 민족이 들어있구나. 태어나면 앞으로 큰 민족 두 민족이 되어 진다. 그런데 그 두 민족은 한 길을 갈 두 민족이 아니라, 하나는 이쪽 하나는 저쪽 완전히 둘이 나뉘게 되어 진다.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묘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두 민족이 들어 있는데 하나는 크고 강하고 억세고 하나는 못났고 약한데, 억세고 강한 것이 평생 약한 걸 섬기게 되리라. 그 약한 것이 야곱이고 오늘의 믿음의 조상 우리의 길이고, 우리보다 크고 강하여 우리를 쥐어박고 우리보다 많은 세상이 에서가 되어 집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들 때 아예 이렇게 만들어 놨고 뱃속에서부터 이렇게 만들어 놨으면, 피하려고 생각을 안 해야 복이 시작이 되어 집니다. 태어나고 보니 공부 안하고는 못 사는 세상이면 이왕 할 공부 해버리는 게 낫지, 공부를 안 하려고 빼고 나리를 치고 연구를 하면 그때부터는 불행해지는 겁니다. 숨을 안 쉬고는 못 사는 건데 숨 안 쉬고 살 재주와 기술을 발명한다고 난리를 부리면, 제주가 아니라 불행해지는 겁니다. 안 되는 건 아예 말아야지. 뭐 지금은 여자 남자를 서로 바꾸기도 하고 그러지만은 돈도 많이 들고 그거 뒤에 좋지 않은 일이 많을 겁니다. 그만 여자로 태어났으면 여자 속에서 제 행복을 찾아도 복이 넘치는 일이 많은데, 기어코 여자가 남자로 자기를 바꿔가지고 그 속에서 성공을 하려고, 그렇게까지 짧은 인생에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은 여자 살기 좋은 세상인데 그렇다고 남자가 여자 된다고 여자 되려고 노력해서, 얼마나 성공이 되고 얼마나 좋을까 한번 봐보십시오. 뒤끝이 좋은가.

하나님께서 야곱과 에서를 주시며 오늘 우리에게 내 속에는 두 사람이 있다. 리브가 속에는 야곱과 에서가 있었지만은, 오늘 내 마음 내 지식 오늘 내 신앙 안을 들여다보면, 억세면 됐지 뭐 내가 말 잘하면 됐지 뭐 난 내 주변에 있는 거 전부 다 꺾고 항상 이기고 살지 난 지고 살지 않아. 이런 사람도 내 속에는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는 믿는 사람 속에는, 세상 살아가는 데는 불리하고 세상 살아가는 데는 답답하고 어렵고 못났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결국은 억센 세상이 머리를 숙이고 당신의 길이 맞습니다. 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느 쪽을 기를지 어느 쪽을 밀어줄지 어느 쪽 편이 될지는 알아서 하십시오.“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믿는 사람은 중생 되고 믿는 순간, 자기의 걸음은 죽는 날까지 항상 넓은 길 좁은 길 쉬운 길 어려운 길 세상이 볼 때 좋아하는 길. 세상이 볼 때 저렇게까지 살아야 되느냐. 항상 두 인격 두 신앙 두 길을 우리에게 주신다. 라는 것을 리브가를 통해 이렇게 간단하게 주셨습니다. 형으로 태어난 에서는 27절을 볼까요. 태어났는데 자라고 보니 형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므로, 옛날 능숙하고 탁월한 사냥꾼이란 달리기 잘한단 말이고 싸움 잘한단 말이고, 칼 잘 쓴다는 말이고 활 잘 쏜단 말이고 마구 죽일 수 있는 억세고 강한 사람이라 그 말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뭐 고시 합격을 했고 의사고 박사고 뭐 돈 많고 그냥, 스포츠 잘하고 인물 좋고 세상 좋은 걸 다 가진 것이 에서입니다. 이렇게 실력이 출중하니 들사람이 되었더라. 천하 들판을 휘젓고 다닙니다. 미국? 소련? 중국? 어디를 가도 나는 그냥 1등하고 다 휘잡을 자신이 있다. 이게 에서입니다.

둘째 아이는 야곱인데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므로 장막에 거하고” 집에서 살림이나 살고 있습니다. 엄마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밥이나 하고 남잔데, 남잔데 하나는 엄마 옆에 살림 살고 앉았고 밥이나 하고 하나는 사냥꾼이라 온 들판을 누비며, 뭐든지 다 이겨버립니다. 어느 것이 좋은지 선택입니다. 근데 오늘 본문 31절에 어느 날 에서가 배가 고파 밥 얻어먹으러 야곱에게 딱 들어오니까 야곱이 밥을 주며 조건을 걸었습니다. 형은 장자 아니냐. 장자의 명분, 형은 장자 아니냐. 장자라는 것을 내게 팔아라. 그러면 밥 줄게 배고플 때 급하게 딱 갖다 붙이니까, 에서가 배고파 죽겠는데 먹는 게 급하지 장자 이런 그게 뭔 소용 있다고. 나는 익숙한 사냥꾼이고 천하를 제패하는 훌륭한 사람인데, 아브라함 이삭 내려오는 하나님이 복 준다는 그 복 안 받아도 나는 복이 차고 넘친다. 너 해 버려라.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복의 계통 복의 우선권을 야곱에게 던져주고 밥 한 그릇 먹고 가버렸습니다. 33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절입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줬고 에서는 잘 먹고 잘 마시고 일어서서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제일 끝에다 대고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우습게 알았더라. 쉽게 알았더라. 경홀히 여기였더라. 아 예배 시간 그거 뭐 어디 써? 공부하는 데도 필요 없게 너나 가거라. 주일? 나 도서관 갈 테니까 너 나 교회 가거라. 집회? 나 그 한 주간 돈 떼돈을 벌란다. 그 산속에 들어 가가지고 뭐 하는 짓이야? 주일? 예배? 성경? 돈 버는데 세상의 경쟁에 세상에 달리기에 세상에 성공에 뭔 소용이 있는데? 예배를 우습게 여겼더라. 주일을 쉽게 여겼더라.

하나님이 복 준단 말을 코웃음을 치며 하나님이 복을 너나 하거라. 나는 배가 고프니 우선 한 끼 먹고 또 나가면 사냥할 거고 천하는 내 것이라 그리고 야곱과 에서가 각각 나뉘어졌습니다. 오늘도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은 에서의 세상의 실력과, 하나님께 복 받는 야곱의 순종과 둘을 놓고 어느 거 할래? 물어보십니다. 어느 거 할지 물어보면 전부 다 에서 한다고 그러지요? 그러다보니까 여기 신풍에 살고 있는 겁니다. 에서의 실력, 세상을 살아가는 데 우선권 실력, 압도적인 그런 조건. 압도적인 조건 이게 좋지 왜 야곱처럼 비실비실, 남자애가 나이 들도록 부엌에서 엄마하고 둘이 설거지나 하고 말이지 밥이나 하고. 주일도 이 시간에 공부를 해서 합격을 해서 저 서울 중앙에 진출을 해야 되는데, 이 바쁜 일정에 교회를 가? 너 나해! 난 크고 중요한 거 할 거야! 이게 에서의 길입니다. 선택은 자유인데 히브리서 12장 16절 17절로 보니까 뒤에 에서가 땅을 치고 통곡하며, 어떻게 나도 하나님의 복 한 쪼가리 받아볼까 했으나 두 번 기회를 주지 아니했더라. 단번의 기회입니다. 아무소리 말고 말씀이 주는 복된 길로만 걸어갑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회는 항상 주십니다. 그러나 선택은 단번입니다. 순간입니다. 두 번이 없습니다.

(기도)
하늘의 복 영생의 하나님의 복 이 땅 위에 한 번 주시는 기회로 중생되고, 중생된 우리에게는 평생 매 순간 에서의 후회할 세상길과 야곱의 복된 신앙의 길을 기회로 주시는데, 세상이 아니라 신앙의 기회로 만사를 보며 결정하여, 매 순간 매 현실 매 사건마다 야곱에 받은 복의 길을 쌓아가고 모아가며, 하나님 앞에 감사만 하고 두고 갈 세상은 털어버리고 영생만을 수입으로 잡는, 이런 인격 이런 지식 이런 자세에 신앙의 사람 되도록 마음, 마음 밝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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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22.12.4주전    창25:19~34        항상 기회, 단번 결정            총공 신풍
■ 본문
1. 믿음의 가정
 ① 아브라함 > ② (이삭) > ③ (야곱) > ④ 12명 지파

2. 이삭의 결혼
 ① 나이
    결혼 –  (40)세             25:20
    출생 > 아이, 결혼 > (사람)
    별세 > (180)세     35:28
     
 ② 아내
    이름 - 리브가
    출신 - 밧단 아람, 환경은 (불리)하나
    가정 - 브두엘 딸, 신앙으로 (가까운)

 ③ 아들
    에서 - 익숙한 사냥군, 들사람 > (유리) (실력)
    야곱 – 조용한 사람, 집안 일 > (불리) (못난)

■ 우리 안에 두 사람 
1. 하나님이 주신 기회
  ① 장단점을 주심 - (공평)의 하나님
  ② 기회를 주심 - (자유)성을 주심

2. 자기의 선택
  ① 좋을 때 - (방심) (오판) (자멸)
  ② 불리해도- (준비) (순종) (축복)

■ 신앙의 통계, 역사의 모습
1. 전도서
 ① 역사적 인도,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 (쉽게) 인도하심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 잊으면 늘 (실패)
 ② 하나님의 배려, 1:10
  무엇을 가리켜,,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 (부족)한 우리 위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 (복) 되게 인도하심

2. 오늘의 전도서
 ① 세상의 피곤함, 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 우리의 (형편)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 세상 (본질)

 ② 단번의 기회
    인생은 (단번)                      이 설교가 이 시대의
    모든 기회도 (단번)   이사야가 된다면 > 소망
    준비할 기회는 (항상)                예레미야가 된다면 > 절망




히12:16~17 ..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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