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12.2 마24:21 결말을 모르니 부족에 삼가 조심으로 단번 기회를 감사로 받아가지는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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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2.12.2 마24:21 결말을 모르니 부족에 삼가 조심으로 단번 기회를 감사로 받아가지는 준비

관리1 0 45 2022.12.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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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2 금밤

제목 : 결말을 모르니 부족에 삼가 조심으로 단번 기회를 감사로 받아가지는 준비

찬송 : 114장(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본문 : 마태복음 24장 21절 -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예배를 시작한다는 말이고, 또 교독을 할 때는 마지막에 몇 절 그러면 한 두 절 안팎에 시작한다고 그러거든요. 미리 나와 계셔야지, 예배시작 때 얼른 탁 나와 이게 군대처럼 그런 게 아닙니다. 무조건 너무 일찍 나올 수는 없어도 예배 분위기 봐가면서 조금 일찍 나와서, 기다리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이어져야 됩니다)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그런 즉 깨어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항상 기회를 주셔서 부족해도 마음껏 영생과 완전을 향하며 준비할 수 있는, 크나 큰 중생의 은혜에 신앙 건설의 은혜를 구비하게 지난날 또 오늘도 베풀어 주시는 주님.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게 함으로 준비하면 얼마든지 그날과 그 시를 준비하고, 방심하면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두 길을 열어주셨으니, 그날과 그 시는 알 수 없게 하신 이 사랑 인하여 늘 긴장하고 조심하여 복된 이 밤이 되고, 연말이 되며 남은 날들이 되어 지도록 우리 교회 우리 공회, 말세의 천하의 모든 성도들 되도록 마음마음 살펴 주옵소서. 이 밤도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환난의 날을 감하시리라. 열흘간 어려울 건데 3일을 빼든 절반을 빼든 이렇게 조절해 주실 것이라. 그 말씀도 되어 지고 내 힘으로 이길 수 없는 나머지를, 은혜를 주셔서 능력으로 안고 넘어가는 일도 있습니다. 출애굽의 40년을 이스라엘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빈 들판 사막에서 물이 문제고 음식이 문제인데, 출애굽 할 때 먹을 반죽을 지고 나가라 해봐야 얼마나 지겠습니까마는, 일단 지고 나가고 나머지 40년은 주님이 먹였습니다. 뭐든지 다 그렇습니다. 이거 가지고 되겠느냐 주저앉으면 나머지를 못 받습니다. 40년 광야 생활에 물과 음식이 없는데 하루 음식 가져가 봐야 하루 더 먹고 말고의 차이가 있겠는가. 하루치라도 들고 나가면 39년 12개월 30일 치는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그 하루치를 들고 나가지 않으시면 않으면 나머지 39년 치를 다 빼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되면 광야 40년을 저렇게 맨손으로 통과하다니 굉장하다. 굉장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순종하다보니까 그리 된 겁니다. 머리 나쁜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불리한 것은 머리가 나쁘다고 신앙생활을 못 할 줄로 압니다. 학교공부는 못 할지라도 신앙은 전혀 상관이 없는데. 학교도 책이 읽고 글을 읽고 교회도 성경책이 있고 읽어야 되니까, 학교처럼 책 잘 읽고 기억하고 이걸로 가지고 말 잘하는 사람이, 학교 공부 잘 하듯이 교회 와서도 신앙생활을 잘 할 줄 아는데, 잘 읽고 많이 읽는 사람에게는 많은 걸 요구합니다.

글 모르는 사람은 글 모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덮어주시고 안고 가버립니다. 글은 몰라도 기도는 할 수 있는데 글 모르는 사람이 기도해 봐야 뭘 기도하겠느냐. 글 모른다고 털어버리면 나머지 은혜 하나도 오지를 않습니다. 세상은 타고난 것만큼 유리하고 노력하는 것만큼 유리한데 신앙의 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주신 기회 잘 쓰면 나머지는 천이든 만이든 다 은혜로 쳐버립니다. 아무리 앞서가고 선천후천이 뛰어나도 가진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빼버리면, 하나님이 더해주는 나머지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으로는 믿는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낙제가 됩니다. 여기 11절에 그때의 큰 환란이 있겠다. 역사 이후에 오늘처럼 어려운 때는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면으로든지 다 그렇습니다. 이렇게까지 어려운 때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지금이 역사적으로도 마지막입니다. 근데 이 마지막을 조금 더 연장하고 계시는데 지금 세상 마지막이 10년 더 연장이 되던 100년이 더 연장이 되어도, 오늘 내가 죽으면 나에게는 이 세상은 끝이 나는 겁니다. 세상의 끝을 가지고 나죽는 오늘을 들여다보셔야 됩니다. 아이라고 늦게 가는 거 아니고 건강이 없다고 일찍 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태어나고 데려가는 것은 하나님이 혼자 아시고 딱 정해놓기 때문에, 이걸 아는 사람은 작은 건강도 조심하고 아무리 건강에 자신이 있어도 조심합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원래 건강이 약한 사람은 내가 건강 조심해 봐야 얼마나 건강하겠냐. 타고난 건강이 없다고 좌절하면 하나님이 더해 주는 건강을 다 빼버립니다. 그래서 병약하여 일찍 죽으며 난 타고나기를 약하다 이런 말을 하는데 그 말은 틀린 겁니다. 자기가 자기 건강을 자기가 밟아버린 겁니다.

타고난 건강이 있는 사람, 제 건강으로 다 될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은 은혜 아니면 안 됨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요절을 내버립니다. 건강도 경제도 공부도 신앙도 그래서 늘 준비하고 기회 주면 감사히 가지고. 이게 전부입니다. 기회를 주시는데 그때 좀 실력이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오늘 아니면 내일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서 부어지는 모든 은혜를 다 포기해버립니다. 또 좀 부족한 사람은 내가 발버둥 쳐봐야 얼마나 더 하겠다고, 그리고 작은 노력을 하지 않으니까 누가복음 15장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이 없으면, 그러면 불의가 되는데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께 받을 모든 기회를 다 놓쳐버립니다. 부자도 늘 조심하고. 그 부자재산 뭐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은 간단합니다. 가난한 사람 벼락부자 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거지도 늘 조심하고. 언제 기회 줄지 모르니 부자도 언제 망할지 모르니 좀 조심하고. 그냥 조심하면 사회성이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상식적인 사람이고, 주님 때문에 조심하면 이건 하늘의 복을 받아 가진 사람입니다. 건강도 공부도 경제도 만사 모든 것도 따라 하십시다. 조심할 것(조심할 것) 이걸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복된 말씀입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믿는 사람에게는, 세계 모든 민족이 뛰어나게 하신다는 주님을 붙드는 순간, 자기만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제일 위에 올려 놓아버립니다. 하나님이 전능자라 그게 되는 겁니다.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날지라도 세계 모든 민족의 발바닥에 끌어다 놓는 것이 주님은 잠깐입니다. 그래서 늘 조심하는 겁니다. 조심이란 말은 주님이 기회를 언제 주실지 모르니까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기회입니다.

세상 마지막 홍수심판 마태복음 20장에 이런 모든 종말에 대한 것은 전부 기회라고 바꿔 읽으시면 좋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에는 때가 있습니다. 언젠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언제인지 모르니 조심해야 됩니다. 조심한단 말은 미리 준비한다는 말입니다. 미리 준비한다는 말은 기회 줄 때 잡으면 됩니다. 기회 주시는데 자신 있는 사람은 웃으면서 그 기회를 통과시키고 웃어버리고 남한테 줘버립니다. 에서처럼. 그리고 통곡하고 눈물로 구해도 두 번 기회는 주지 않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자유입니다. 우리의 자유. 그날과 그때는 알지 못한다. 세상 마지막 날은 알지 못한다. 더하여 작은 기회 큰 기회 살아가며 하나님은 시대마다 사건마다 늘 기회라는 걸 손에 들고 계시는데, 요셉이 총리 되는 기회 이런 걸 말합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시키는 유월절의 기회 이런 걸 말합니다. 400년 기다려도 출애굽이 오지 않았습니다. 400년을 기다려도 출애굽이 오지 않으니까 400년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지 아니하는가 보다 그 생각이 들어서 실패한 겁니다. 준다고 했으니 400년 지나가더라도 401년째 402년째라도 올 수 있다. 이게 조심하는 거고 이게 기회를 아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 언제 인도하시는지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람, 그리고 모세를 통해 나오라 할 때 그날이 유월절이고 그날이 출애굽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갈 때도 기회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번씩 중요한 기회를 주십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진학도 그렇고 진로도 그렇고 인생 살아가는 중요한 대목, 대목 기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근데 이걸 언제 주실 런지는 따라 하실까요. “그날과 그 시를”(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알지 못하느니라). 24장에 이어 25장이 계속되는 말씀인데 한 장 넘겨 25장 13절입니다. “깨어있으라” 깨어 있으라. 그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아예 알려주지를 아니합니다. 언제 어떤 기회가 올는지 이거는 심지어 천사도 모르고 성자 하나님도 알지 못하느니라. 이렇게까지 감춰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는 게 꼭 같은데 왜 성자 하나님은 모르게 해놨는가. 성자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해결하는 하나님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했을 때는 처벌하시고 해결이 되면 사랑하는 하나님입니다. 아버지처럼 공평하고 그다음 처리가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입니다. 동시에 우리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한 하나님이지만은 우리 잘못을 다 해결해 주시는 성자 하나님, 성자 하나님을 통해서는 그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하게 해놨습니다. 오늘은 마음대로입니다. 그러나 그날과 그 시는 성부 하나님만 아십니다. 주의하고 준비하면 누구든지 다 가질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믿는 사람은 믿는 순간 죽는 날까지 늘 행복하며, 늘 만족하며 늘 감사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은 기회를 그렇게 주십니다. 내가 그 기회를 잊어 버렸고 내버렸고 쓰레기장에 갖다 버려 괜히 그러고 있는 겁니다. 택한 백성이 중생이 되고 나면 믿기 시작하면, 그날부터는 감사할 것 밖에 없고 웃을 것밖에 없고 행복할 것밖에 없도록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를 하시는데, 알아보지를 못해가지고 괜히 이렇다 저렇다 그러는 겁니다.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이 기회는 똑같이 주셨습니다. 잘 믿는 사람에게는 웃을 일을 많이 주시고 잘 못 믿는 사람에게는 억울한 일을 많이 주시고 그러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은 전부 똑같이 복되고 똑같이 참 천하제일이며 세상 이 이상이 없겠다. 이렇게 딱딱 맞춰주시는데 이걸 오해를 했던지 하나. 아니면 그 뭐 허구한 날 꽉 찼는데 하고 내버리든지. 에서는 장남이라 아브라함과 이삭의 복이 놀고 있어도 다 떨어질 줄 알았습니다. 야곱은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리고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의 복을 주려는 순간 에서는, 그까짓 것 주면 주고 말면 말고. 원래 실력이 있어서 부모 것 주면 더 좋고 안주도 말고.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내려오는 신앙의 복 신앙의 계통은 저건 인간이 노력에서 가질 수 없는 하늘의 것이므로, 그걸 사모하고 그걸 나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없나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늘 기다렸습니다. 에서는 뱃속에서부터 늘 자신이 만만했습니다. 쌍둥이라 엄마 배 속에서 동생하고 이렇게 엉켜 보니까 이거 정도는 늘 제압합니다. 에서는 쉬웠습니다. 야곱은 늘 불리했습니다. 불리했기 때문에 하늘이 주는 기회를 놓칠까봐 늘 기다렸고 늘 노력했고 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에서는 뱃속에서부터 야곱을 이기니까 먼저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내려오는 복이 자기에게 다 쏟아질 거니까 놀아도 오고, 이래도 오고, 저래도 오는 것. 또 오지 아니할지라도 내 손으로 그까짓 것은 만들 수 있는 것 이게 에서였습니다.

오늘 부잣집 재벌로 태어나 건강하고 인물 좋고 성격 좋고 머리 좋고 사회성 좋고, 말하자면 이게 에섭니다. 여기 우리 교인들이 다 좋아하는 거. 뭐 아버지 한 달 수입이 몇 십 억이 아니라 몇 백 억 되고, 뭐 그 집에 태어나면 다 갖춰지지요. 근데 머리까지 좋고 보기도 좋고 성격도 좋고 사회성도 좋고 건강하고, 이만하면 믿는 것보다 낫고 하나님의 아들 되는 것보다 낫고 그렇지 않습니까? 근데 성경은 너 에서일 수 있으니 조심해라. 성경은 조심해라 하는데 조심은 야곱이 주고, 놀고 있어도 한 달에 이자가 계좌에 얼마씩 들어오는데 뭐 돈 문제없고, 이미 타고난 인물 어디 내놓아도 그냥 꽉 찼고 또 머리 좋고 성격 좋고 건강하고, 교회는 장애자들 안 풀리는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나가서 하늘에서 은혜주기를 떨고 기다리지, 나 같은 고관대작이 뭐가 아쉽다고 예배당에 가서 떨고 뭔 그런 소리 들어? 그 사람, 에서입니다. 에서에게는 기회가 차고 넘쳤습니다. 자기 원하면 뭐든지 다 됩니다. 근데 세상의 기회가 아니라 하늘의 은혜는 이삭을 통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에서는 평소처럼 자신만만하게 나갔고 들판을 누볐고, 야곱은 그동안 불리했고 앞날의 희망도 없고 그래서 조심했고 그래서 기다렸는데, 한 번 밖에 없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붙들고 아람으로 가고 아브라함 이삭은 에서가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은 야곱으로 방향을 틀어버렸습니다.

오늘 이 밤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귀하게 참 귀하게 수고하여 두 손 들고 마련하고, 이거 좋은 거 다 받아가지라 그러면 예 그러는 것이 고운입입니다. 고운 입. 사진 찍으면 입술이 예쁘게 나오는데 그놈 말은 어찌나 참, 독사 혓바닥 같은 말만 하는지 그리 되시면 안 됩니다. 뭐 이왕이면 입술까지 더 예쁘면 더 좋겠지마는 주님은 입술이 이리 생겼냐. 저리 생겼느냐를 아예 보질 않습니다. 말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를 봅니다. 말하는 말 참 맞다 참 곱다 참 복 받을 말이다. 자꾸 그렇게 노력하셔야 됩니다. 말 마디마디 하늘에서 조말 끝을 보겠고 조말 값을 주겠고 조 말의 결과를 반드시 두고 보자. 하늘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적어가며 꼬박꼬박 따지게 되고 쌓이게 되면, 이게 화산 지진으로 또는 천재지변으로 한 사람과 한 가정에 들이닥칩니다. 그럴 때는 우리 식구 중에 나는 의인이고 나머지만 죄인이다. 그러지 마시고 한 집안 안에는 다 공범입니다. 도둑이 들고 오는 거 나눠 먹었으면 다 공범입니다. 아버지만 도둑질했지 내가 도둑질했냐? 도둑질한 걸 나눠 먹었으니까 도둑놈이지.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보상은 범위가 안 넓습니다. 나 몰랐다. 나 말 안 했다. 나 발 뺐다 이게 안 통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이 왕이라 이러니까 유대인들이 잡아왔습니다. 로마의 황제만 왕인데 예수가 왕이라니 역적입니다. 처형시켜달라고 데려오니까 빌라도가, 네 나라는 어디냐 하늘나라다. 어 정신 빠진 사람이 하나 있구나. 횡설수설이구나. 반역자가 아니며 역적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잡아온 유대인들에게 내가 조사해 보니까 무죄다 죄가 없다. 죽일 죄라니? 말조심하라고 채찍 한번 때리면 전부지 예수는 죄가 없다. 이렇게 판결을 했는데, 유대인들이 자기가 왕이라는 인간을 놔두면 빌라도는 황제에게 충신이 아니라고 막 폭동이 일어날 지경이 되니까, 자기 편하기 위해서 넘겨줘 버렸습니다. 넘겨줄 때 세숫대야에 손을 씻었습니다. 나 상관없다. 너희들이 달라 해서 주는 거지. 내가 좋아서 주는 거 아니다. 그런데 주님은 빌라도에게 너한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빌라도에게 넘겨준 유대인의 죄가 더 크다. 그러면 빌라도가 다시 유대인들에게 넘겨주면 누구 죄가 더 큽니까? 빌라도 죄가 더 큰 겁니다. 처음에 잡아다가 빌라도에게 넘길 때는 유대인의 죄가 더 큽니다. 근데 빌라도가 심판해 왔고 무죄인 줄 아는데 이걸 다시 유대인들에게 내어주면, 빌라도 네 죄가 더 크다. 결국 오늘을 편하기 위해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에게 내줬고, 사도신경에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이렇게 딱 찍어놓고 2천년 교회가 반복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손을 씻었는데 손을 씻은 것이 아니라 빌라도의 죄가 더 큽니다.

사도신경. 찬송가 제일 뒤를 봐보시지요. 찬송가 제일 뒤. 찬송가 제일 뒤를 보면 사도신경이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성부 하나님입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성자 예수님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성령 하나님입니다. 삼위일체. 근데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유대인 소리 하나도 없습니다. 잡아 죽이라고 밀어붙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치운 유대인 제사장 이름은 다 빼버리고, 빌라도 이놈이 십자가에 못 박은 녀석이다. 빌라도는 그날 주님을 빼내고 살려보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백방으로 노력했는데 마지막 하나만 살짝 넘어갔습니다. 그 하나를 딱 두고 네가 사도신경의 주인이 되거라. 유대인과 제사장 이런 이름은 다 빼버렸습니다. 뭐 말 안 해도 아니까. 오늘도 유대인이 되어 예수님을 처형하려고 드는 것은 양심이 다합니다. 근데 빌라도처럼 마지막에 도장은 제가 안 찍었는데요. 안 찍어? 도장 안 찍어? 도장은 안 찍었는데 너 뒤에서 자세가 어찌 되었더라? 심보가 어찌 되었더라? 너 뒤에서 슬금슬금 어떻게 했더라? 다 보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4장 다시 돌아옵니다. “그때에 큰 환란이 있겠음이라” 세상 제일 마지막에는 제일 큰 환란이 있을 것이고 그 이전에는 그 이전에도 제일 큰 환란은 있을 겁니다. 항상 그 때 그 사건에 따라 제일 큰 환란은 지나갑니다. 항상.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오늘은 그런 때입니다. 많이 말씀드렸습니다. 아이 같은 아이가 없으니 이만하면 환란이고, 어른 같은 어른이 없으니 이런 때는 없었고 청년 같은 청년이 없어졌으니 이런 때는 없어졌고, 사장다운 사장이 없어졌으니 시대는 불행하고 노동자다운 노동자가 한 명도 없으니 이것도 참 불행한 시대고, 교회 같은 교회가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없는 듯하고 이만하면 큰 재앙입니다. 그러나 이런 큰 환란이지만은 22절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하나” 그 환란의 양을 사건에 따라 사람에 따라 신앙에 따라 준비에 따라 하나님께서 조절을 하십니다. 오늘 밤 어리면 어린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이거 하나님의 인도가 맞느냐 이것만 잘 지켜보시고 확실히 하나님의 인도가 맞다 확정이 되면, 맡겨 놓고 걸어가면 부족한 것은 주님이 더해주시고 보태주시고 업고 책임지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도와주고 업어주고 빌려주고 나면 찾아가지를 않습니다. 도와준 걸 놔두고 가십니다. 그래서 어려움 환란을 겪을 때 말씀의 인도라 순종을 하고나면, 원래 내 실력은 둘인데 다섯 실력이 있어야 넘어가는데 내 실력은 둘인데, 말씀의 인도라고 둘만 가지고 다섯이라야 되는 환란을 맞서 나아가면, 셋을 더 해주시고 통과를 시킨 다음 셋을 찾아가지 않고 그냥 두니까, 둘 실력으로 다섯 환란을 통과하고 나면 자기 실력이 다섯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래봐야 실력이 다섯인데 100 아니면 못 넘어갈 일이 닥칠 때 주님께 맡기고 순종하고 나가버리면, 다섯만 가졌는데 100을 넘어선 다음 95 도와준 걸 찾아가지 않고 그냥 두기 때문에, 다섯의 실력이 100의 어려움을 통과하고 나면 남이 보면 원래 백이나 되는 것처럼 실력이 쑥 자라버립니다. 그래서 신앙의 실력이라는 것은 한 번 두 번 세 번 환란을 통과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원래 하늘의 천사인 줄 알고 굉장한 능력의 사람인 줄 아는데, 실은 뒤를 뒤져보고 내면을 연구해 보면 인간은 백지장 한 장. 백지장이라는 말은 종이 한 장이라 그 뜻입니다. 종이 한 장 두께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우리 천하의 죄인 사울이나 다윗이나 종이 한 장 두께의 차이밖에 없는데, 죄 짓고 자기중심으로 돌아서니까 사울 되고, 목숨 걸고 순종하다가 죄지었을 땐 주님 앞에 엎어져 회개할 때 다윗이 되었습니다. 둘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순종하기 어려울 때 한 번 순종, 순종하기 어려울 때 두 번 순종, 한 세 번 정도 순종하고 나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버립니다. 뭐 초중고 그만, 그만 그렇게, 그렇게 자랐는데, 이런 고비 이런 기회에 저런 순간 그때 말씀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순종한 사람. 마치 타고나기를 너무 신앙 있는 사람처럼 이렇게 돼버리고, 그냥 비슷한데 한 번 두 번 세 번 꺾인 사람 완전히 꺾여서 둘을 비교해 보면, 같이 출발했는데 하나는 선생 되고 하나는 제자도 못 될 만큼 이렇게 차이가 나버립니다.

우리나라 재벌 역사 잠깐씩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현대 삼성이야 세계적인 기업이라 망할 수 없는 기업이라 다 그러지만은, 그거 시작할 때 중소기업 시절 거칠 때 봐보면 아찔한 게 몇 번 지나갔습니다. 그때 꺾여 버렸으면 뒷골목 뭐 그냥 동네부자 됐지 그 이상은 안 됐을 겁니다. 그 회사들보다 더 유리하고 앞서간 회사들. 시대 한 번 잘못되고 판단 한 번 잘못되고 재수 한 번 없어져 버리니까 그대로 끝난 겁니다. 경제적으로 재벌 된 회사들 그 오너들 원래 사장들은, 참 지난날을 보니 운이 좋았구나. 그러지. 제가 실력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 소리 절대 안 합니다. 단 하는 데까지 포기하지 말고 하는 데까지 하기는 해봐라. 이 말은 전부 다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하는 데까지 하기는 해라 이거는 성공한 부자들의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면 다 되더라 그 사람은 절대 안 합니다. 그건 운이더라. 우리는 그 정답을 압니다. 하나님이 지켜보고 직접 주시는 은혜입니다. 평생에 좋은 기회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는 은혜 쉽게 버리지 않기 바랍니다. 사경회 같으면 뭐 이런 예를 한 100가지 들어놨으면 눈으로 더듬어도 그거는 진리겠다 싶겠는데, 집회 때는 아이들 안 믿는 집에 자녀들 아이들이 많아서 못 그러고 또 평소는 예배 시간이 짧아서 못 그러고, 그냥 애타는 마음입니다.

한 가정도 빠짐없이 한 명 한 명 빠짐없이, 하나님은 천하의 최고의 그 사람에게 맞는 기회를 손에 들고 이제 가지 거라 하나님은 기회를 주셨고, 그때 그 기회를 턱 차버리고 휙 뿌리치고 그리고 뒤에 그 은혜를 구하여 통곡하며 다시 사정해도 두 번 기회를 주지 아니하더라. 왜 두 번 기회를 안 주냐? 두 번 기회를 주지 않아야 앞으로는 그 짓을 안 할 테니까. 지난날의 어떤 기회도 한 번으로 딱 접어버립니다. 그걸 통해 앞으로 한 번 더 기회 줄 때는 그렇게 만만하게 웃어가며, 그렇게 인생을 네가 망치지 말아라.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입니다. 조금 눈치 있으면 한 번은 실패하고 지난날은 실패해도, 이후로는 복에 복을 소복소복하게 담아, 참 믿기를 잘했다. 믿는 게 복이라더니 이렇게까지 복인 줄은 몰랐다. 똑같은데 한 사람은 늘 그 말하고 살고, 복 없는 사람은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막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하나님까지 욕을 하다가, 독이 바짝 올라 자기 독에 자기가 탁 죽어 버립니다. 죽은 얼굴도 곱지를 못합니다. 그렇게까지 되지 않도록 그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하느니라. 한 장 넘겨 한 번 더 한 장 넘겨 한 번 더 읽어보실까요. 25장 13절입니다. 따라 하겠습니다. “깨어 있으라”(깨어 있으라) “그날과 그 시를”(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 하느니라”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알려주지 않습니다. 모르니 그냥 놀고 먹지. 이거는 망해도 싼 인간. 알려주지 않았으니 조심해야 되겠구나. 실력이 있는데 조심한다고 되겠느냐. 자기 실력만큼만 요구하시지 이 이상을 요구하지를 않습니다.

내 실력이 하나면 하나 내 실력이 다섯이면 다섯, 자기로서만 준비하고 기다리면 그러면 주님은 이 귀한 보배, 둘도 없는 기회 천하의 이복을 받아 가지 거라. 눈앞에 딱 들어올 때 쥐는 것이 마태복음 24장입니다. 겉돌지 말라는 것이 마태복음 23장입니다. 주시는 기회 붙들되, 붙들되 그대 미리 준비하면 누구든지 성공한다. 그게 25장입니다. 25장까지가 이런 기회를 두고 적어주셨고, 26장 넘어가면 이제 주님이 잡혀갑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처형을 당합니다. 그리고 부활승천을 합니다. 그 모습 그 모습 그 모습을 딱 보니까 아무리 부족해도, 부족하니 조심하고 주신 기회 잘 받아가지겠습니다. 그러면 다 되는구나. 과거에 성공의 법도 이 법 하나고 오늘의 성공의 법도 이 법 하나입니다. 불신자들은 성공하는 비법을 AI 컴퓨터 계산을 해서 요리 빼고 조리 빼고 전부 컴퓨터 하고 앉아서, 정신도 없이 그냥 뺑뺑 돌아가는데 믿는 사람은 쉽게 할 만한 사람은 하고, 쉽게 못할 사람은 그냥 말씀으로 주시는 기회가 뭔고. 그리고 보면 천하에 없는 제일 소중한 걸 내 손에 주시며 받아가지라 주님은 그러십니다. 그 기회를 우리는 내버렸고 웃었고 발로 찼고 그다음 밟아 깨버렸고, 이게 지난날입니다. 오늘 이후로는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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