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2.12.2 마24:16 닥친 환란으로 평소 인생의 주력을 시험, 급할수록 하나님을 향하여 주력이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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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2.12.2 마24:16 닥친 환란으로 평소 인생의 주력을 시험, 급할수록 하나님을 향하여 주력이 정상

관리1 0 88 2022.12.02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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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2 금새

제목 : 닥친 환란으로 평소 인생의 주력을 시험, 급할수록 하나님을 향하여 주력이 정상

찬송 : 61장(이 세상 험하고)

본문 : 마태복음 24장 16절 -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산이라고 한 것은 신앙이라 또는 인물이라고 읽으시면 됩니다. 성경에 나무를 사람으로 그릇을 사람으로 산을 사람으로 여러 가지로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그릇이라. 사도바울을 부를 때에, 내가 그를 준비한 그릇으로 지목했다. 사도 바울을 그릇이라고 그랬습니다. 사람을 나무로 그릇으로 또는 산으로 이렇게 비교를 할 때는 인간처럼 횡설수설, 뜻도 없이 이말 저말 그 말입니다. 또는 급하면 이 말 저 말 갖다 붙이는 그런 식이 아니고, 성경은 말씀이 아무리 많은 것 같아도 무한하신 하나님이 정확무오하게 기록을 하셔서 한 글자 글자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이 정확하게 필요한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사람을 그릇이라 이렇게 비교를 할 때는 담는 그 사람의 사명의 용량 때문에 그렇습니다. 얼마나 맡길 것인가? 얼마나 담을 수 있는가? 사람을 산으로 표시했을 때는 우뚝우뚝 그 작은 산도 있고 큰 산은 돋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 자체도 그렇지만은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신앙으로 올라가야 되는 이 면을 두고 산이라.

여기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이스라엘의 중심인 예루살렘이 절단 날 때에, 예수님 때까지는 아직까지 육체의 이스라엘 구약입니다. 신약은 예수님 오심으로 시작이 되지만은 정확하게 부활 후부터 신약입니다. 지금 주님 십자가 이전까지는 구약입니다. 구약의 제일 마지막입니다. 주님 자체가 신약이니 구약 마지막에 신약이 시작이 되어 겹치고 있습니다. 이때에 환란은 보이는 환란입니다. 동시에 볼 수 없는 신앙의 환란을 말합니다. 모든 종류의 환란이란 주님이 주시는 마지막 기회의 정리가 됩니다. 정상적이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한 학년이 마칠 때마다 연말고사를 통해 정리하고 그다음 한 학년 올라갑니다. 기말고사, 연말고사. 한 학기가 마치면 기말고사, 한 학년이 마치면 연말고사. 그리고 초등학교를 다 마치면 졸업시험을 보고 올라가고. 그 시험 보고 졸업을 시키고 그 시험 넘어서야 한 학년 한 학교를 올라가면 정상적인 학교고. 놀아도 올려주고 결석에도 올려주고 이거 손님 받는 업소지 학교라 하기에는 참 곤란합니다. 세상은 이러나 저러나 먹고 살면 되고 하나님은 어떤 신앙도 준비의 기회 이게 평안한 때입니다.

준비가 다 되어 가면 그동안 얼마나 준비를 해서 얼마나 신앙을 마련했는지. 하나님이 몰라서 시험을 쳐서 점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만유주 전지자 하나님은 아시지만은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정작 자기가 모르기 때문에 자기의 신앙이 얼마 정도인지, 그냥 할 일 없이 오고 갔는지. 할 일 없이 교회 오고 간 사람은 할 일을 많이 줘 버리면 안 나올 것이고. 돈 때문에 교회 다닌 사람은 부자 되면 안 나오든지 다녀봐야 돈벌이에 별 도움이 되지 않겠다면 그래 끝날 것입니다. 이렇게 한 단계씩 점점 올려가며 길러 가시는데, 기회가 다 되어지면 남들이 볼 때는 환란이고 주님과 나 사이에는 준비한 기간이 다 지나가고 마지막이 가까우면 앞뒤 가릴 것 없이 신앙으로 더욱 달려가라. 무조건 뛰어가야 되는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어려우니 두고 갈 세상에 중심을 가진 사람은 어려우면 세상으로 더욱 붙들고 난리고. 전쟁이 나서 예루살렘이 난리가 났는데 집 안으로 가서 수저 하나라도 논 문서 하나라도 금붙이 하나라도 챙겨 나오기 위해서 지붕에 있는 자들은 집 안에 들어가 뭐든지 하나 들고 나와야 될 것이고. 들에 있는 자들은 마을로 뛰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두리번거릴 것이고. 산 위에 있던 자들은 산 밑으로 내려와 가족을 구하든 뭘 하든 애착이 있고 마음에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오히려 내려올 것이나, 기본적으로 세상에서 천국을 살아가며 하나님을 하나님과 천국에만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바쁠수록 기회가 지나갈수록 다급할수록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달려 올라가는 이 일에 주력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정말 시험에 모든 것을 다 쏟는 사람은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 책을 들여다 볼 것이고 시험 날이 하루 전으로 다가서면 그 날이라도 밤을 새든지 그러지. 시험 날이 가까우니 준비는 없고 쳐봐야 그만이라. 마지막 날까지 놀러 다닐 겁니까? 그 속에 들어있는 신앙의 자세를 보는 것입니다. 넌 뭐냐? 네 속에는 무엇을 넣고 있었느냐? 넌 인간을 뭐라고 보느냐? 넌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환란이 무엇이며 세상이 무엇이며 네게 닥친 이 현실을 무엇이라 보며 어떻게 보느냐?

“환란이 급하게 닥치거든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6. 25 전쟁 막 직후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결혼이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갑니다. 6. 25 전쟁 이전에는 18, 19이 결혼이고 6. 25 전쟁을 거치면서 20, 21로 결혼의 나이가 약간 늦어집니다. 그리고 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따라 결혼이 22, 24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80년대로 오면 25, 27으로 늦어집니다. 공부를 더하고 준비를 더 해야 세상을 살아가는 경쟁에서 이긴다고 준비를 한다고. 6. 25 전까지는 초등학교 나오면 다행이고 중학교 개념도 없을 때에는 초등학교 나오고 일을 해서 벌써 사회생활이 5년 6년 7년 그러니 뭘 하겠습니까? 결혼하지. 멀쩡한데. 전쟁이 끝나고 나니까 중학교를 기본적으로 진학을 하게 되니까 사회적으로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학교 졸업하면 16, 17이 되니까 3년 4년 사회생활 하느라고 20이 넘어간 겁니다. 60년대 70년대가 되니까 산업이 발달하면서 공장이 많아지고 그 공장에 망치를 들어도 공고 나오면 훨씬 낫고 그러다 보니까 고등학교까지를 예사로 졸업하면서 19, 20이 졸업이고 그러다 보니 결혼이 22, 23 내려간 겁니다. 이게 이제 80년대가 되면 여전히 대학은 10프로 15프로만 진학을 할지라도, 학교마다 똑똑한 것들 잘 사는 것들 앞선 것들이 대학을 졸업하려면
남자는 군대까지 갔다 오면 스물대여섯. 공부 잘하는 것들 훌륭한 것들 앞선 것들이 스물대여섯. 대학 졸업하고 이리 되어지니까, 아니 뭔 초등학교 나오고 중학교 나오고 머슴살이하면서 노가다 하는 사람들이 저들은 저들대로 그냥 10대 후반 가면 될 것을 자기들도 기준을 높여 가지고 대학이나 나온 것처럼 20대 중반 이렇게 결혼이 걸쳐 버립니다.

제가 신풍 오기 전에 부산에서 대학교 토플 영어 강의를 했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그때 토플 책이 크게 두 권이 있습니다. 이재옥 토플이라는 책이 있고 아카데미 토플이라는 책이 있는데 하나는 서울대 연고대 애들 용입니다. 하나는 이류 대학용입니다. 그런데 서울대 연고대에 다니는 아이들이 전부 이재옥 토플을 쥐고 있으니까 이류대 애들도 대학생이면 전부 그 책 들고 지방의 3류 대학도 전부 그 책 들고, 전부 서울대 애들이 뭔 책 가졌는지 그 책 들고 전부 줄줄이 이렇게 내려갑니다. 자기들은 읽지도 못하는데. 이게 자기 인생 모르고 남의 인생 쳐다보고. 그 옛날 어른들이 참새가 제비 따라 강남 간다고 그럽니다. 아무리 말해도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성이 있으니 망해서 죽어버려도 망할 때까지는 자유가 있으니까 끝장을 보는 것입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소중한 자기 인생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하나님이 만들 때부터 둘 때부터 종류가 다르고 주신 위치가 다른데 전부 위에만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하고 상관도 없는데.

서울대 연고대를 다녀도 그 안에서 최고의 학생들만 읽을 수 있는 책이 타임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이거 고등학생들도 그거 들고 댕깁니다. 그래야 연애를 하니까. 아이 뭐 부자야 자가용 두 대라도 되고 세 대라도 되고 나는 가난하면 버스 타고 댕겨도 되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 좋아하는 것 윗사람 좋아하는 것, 그것 따라가느라고 마지막에는 그냥 짝퉁을 입고서라도 기어코 맞추려고 그러니. 사람만큼 다리가 긴 황새를 뱁새, 참새 종류입니다. 뱁새가 따라가려니 그 놈의 다리가 찢어지지 멀쩡한 일은 없는데. 참 고통입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목숨 걸고 있는 힘을 다 기울여 달리고. 그런 것은 예수 믿을 때만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생활. 우리는 신앙생활. 사람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있는 힘 다하여 해놓고 보자 이거는 신앙생활에만 그런 겁니다. 신앙생활에는 앞뒤 가릴 것 없고 죽느냐 사느냐 먹느냐 입느냐 이것저것 가릴 것 없지만은, 두고 갈 세상 생활은 부자는 부자답게 살고 가난하면 가난하게 사는 거고 잘나면 잘난 대로 사는 거고 못나면 못난 대로 사는 거고. 넌 네 인생이 있으면 난 내 인생이 있는 거고.

이리 되어야 되는데 아니 천하의 여자가 전부 천하의 남자 닮겠다고 다 나섰으니 이런 환란이 있겠으며 이런 홍수가 있겠습니까? 여자는 여자로 태어났고 여자다운 여자의 모양과 내용과 여자의 모든 장점을 다 줬더니만 이거 다 팽개치고 차버리고 남자를 닮겠다고 전부 나섰으니 이거 보통 문제는 아닙니다. 미쳐도 이거는 다 미쳐버려서. 너무 과한 말이 아니라 노아 홍수 때 노아 하나 빼놓고는 전부 다 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물로 다 담아버린다고 예고를 해 놨는데 기회를 넉넉히 120년을 줘 놓으셨는데 온 인류가 물에 빠져 죽을 짓만 하고 총 달려가는데 산꼭대기로 가야 되겠습니까? 홍수가 온다는데 산 밑으로 평지를 향해서 바다 쪽으로 내려가야 되겠습니까?

노아 한 사람만 홍수가 오면 마지막이니 신앙의 극단으로 달려갔습니다. 노아 혼자 그 큰 배를 만들어야 되니 120년 노아가 먹은 것은 배 만들기 위해서 먹었지 다른 일 때문에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먹어도 입어도 또 배를 만들다가 셈, 함, 야벳을 낳았는데 결혼 생활도 출산도 오로지 노아는 오는 홍수를 넘어서는 배만을 향하여 마음도 정성도 노력도 모든 발버둥, 필사적으로 여기 다 기울여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입에다 대고 모든 일정 모든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전쟁이 나면 적을 죽이고 내가 살아나는 생존의 모든 것을 다 쏟아버립니다. 설날이 가까우면 시골 연세 많은 분들은 설날에 오로지 떡 하나 더 놓기 위해서 그냥 생각도 활동도 전부 거기에 다 자기를 쏟아 부어 넣어버립니다.

넌 누구냐? 넌 어디에 너를 다 쏟아 넣었느냐? 공부에 쏟아 넣으면 학생이고. 돈에 자기를 전부 쏟아 넣으면 사업가이고. 먹는데 모든 것을 다 걸었으면 돼지이고. 쪽 빼 입고 돌아 댕기는데 모든 걸 다 했으면 제비이고. 요즘은 제비라고 잘 안 쓰지요? 요즘 제비는 뭐라고 그럽니까? 장주형 선생님? 요새 쪽 빼 입고 못 된 짓하고 돌아다니면 뭐라 그러나요? 예전에는 제비라고 그럽니다. 요즘은? 요즘 말로도 있겠지. 제 나이 또래의 어른들이 남자 애들을 보며 아 그 놈 제비다. 그 아저씨 제비다. 제 아버지는 제비다 그러면 제일 센 욕입니다. 처자식 내 팽개치고 제 할 일 내 팽개치고, 남자 놈이 어쨌든지 그냥 뺑끼칠만 해가지고 못된 짓만 하고 댕길 때 제비라 그럽니다. 구두는 백구도 신고, 옷을 쪽 다려서 먼지 하나 묻으면 손가락으로 탈탈 털어내고. 똑 그런 놈만 쳐다보는 또 여자가 있으니까 또 그럴 것이고. 그것들끼리는 또 그것들끼리 그럴 것입니다. 아이 파리가 냄새 나는데 끓지 어디 갖다 붙겠습니까? 끌리는 그 속에 끌림이 있고 끌어오는 인간 속에 그게 있고, 이 속에도 뭐가 있고 저 속에도 뭐가 있으니까 그게 파리 끓듯이 끓는 것입니다.

“산으로 도망하라” 너 인생의 주력, 너 생각의 전부는 무엇이냐? 400년 전에 여수 앞바다를 돌아다닌 장군은 아무리 봐도 왜놈이 몰려올 것이고 몰려오면 이 나라 전부 도륙이 날 테니까 몰려만 오면 전부 여수 바다에 다 그냥 내려앉히겠다고 일편단심 그것만 있어 준비했고 그다음 마지막에, 하나까지 앞바다에 집어넣다 자기도 죽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넌 애국자구나. 너는 군인이구나. 비로소 그럴 때에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급하면 쏙 빠져서 어디 도망갔는지도 모르겠고. 평소는 큰 소리 다치고 오만 계급장 달고 거들먹거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평소에도 산으로 향하여 남들은 산발치 저 밑에서 노는데 나는 산꼭대기를 향하여 하나 더 걸어가고 또 하루 더 걸어가고 또 성경 한번 더 읽고. 또 이 말씀으로 나를 돌아보며 부족한 것이 있나? 인생을 가루는 제일 중요한 한 번 밖에 없는 시험에 준비를 충분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더 뒤져보는 것처럼, 빠진 것이 있나 놓친 것이 있나? 그리고 우뚝 올라서는 것입니다. 아니 난 뭐 1등도 싫고 꼴찌도 싫고 중간쯤 대충 살면 되지. 성공 아니면 꼴찌든 중간이든 이등이든 전부 하나님은 낙제로 도장을 찍어버립니다. 홍포 입은 부자다 그래버립니다. 내 평생에 내 수준에 무엇으로 1등 한다는 말이냐? 남과 비교할 것 없이 너에게 맡긴 한 달란트 그 한 달란트에 충성하면 넌 1등이다. 이래 보기 때문에 소망이 있고 “산으로 달려갈찌어다”

요즘은 일반적으로 코로나 걸렸다가 죽으니 나도 코로나 걸려 죽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러고 댕길래? 아니면 오뉴월 한여름에도 마스크 전부 끼고 댕길래? 한 살짜리 두 살짜리도 전부 마스크 2년간 다 쓰고 다녔지 않습니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는 오뉴월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그 정도면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은 아니지. 그런데도 그냥 한 여름에 100 프로 5천만 명이 마스크 끼고. 그런 일에는 물 샐 틈이 없고. 주일은 듬성듬성 시간 있으면 한 번 가서 눈도장 찍고 아니면 말고.

우리에게 피할 수 없고 가야만 하고 복이 되고 옳고 바른 어린 시절이라는 노정을 주셨고, 어린 시절을 겪고 나면 사람다운 자기 인생의 청년의 때를 주셔서 이 청년의 때에 창창할 이때에 개미는 양식을 마련했답니다. 베짱이는 그때 놀고 노래 부르고, 아 세상 좋다. 아침 좋지, 점심 좋지, 친구 좋지, 출근 좋지, 퇴근 좋지, 월급 나오지, 갈 때 있지, 볼 것 있지, 놀 것 있지. 뭐 하려고 씨 뿌려? 뭐 하려고 풀 뽑아? 뭐하려고 거름 줘? 전부 나무 꼭대기에서 기타치고 노래 부르느라고 땀 흘리는 개미를 보면, 아이 멍청한 놈들 아이 답답한 것들 저렇게 숨이 콱 막히니 어느 인간이 저런 교회를 가겠냐고 전부 산 나무 위에서 베짱이 노래 부르느라고 온 천하가 그냥 베짱이 노래에 귀가 따갑습니다. 그게 70년대까지는 무교동 술집이라고 그랬습니다. 서울 사직동 교회 앞 골목이 무교동입니다. 4월 5일 입학하고 첫 공휴일 되니까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한 번 모이자 해서 갔더니마는 그런 데라. 아 얘들은 들락날락해왔는지 아닌지 저는 그때 문고리 처음 잡아봤습니다. 멀쩡한 골목에 문을 턱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까 이거 난리도 이런 난리 그냥 수백 명이 전부 쥐약을 먹고 폴짝 폴짝 폴짝 뛰는데 이것을 보는 순간 눈이 퍽 떨어져서 좋아서 기어 들어가는 사람. 미쳐도 이렇게까지 미친 게 함께 살았나? 이 두 세계가 이제 겹쳐 사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하나를 보며 그런 것을 보며, 무교동 근처는 아예 쳐다도 봐서 안 되는구나 그러면 이렇게 살아오는 것이고. 돈 벌어 이 맛에 살지. 그러면 그 속에 머리를 쥐어박는 것이고. 그 무교동이 아마 뒤에는 압구정동 아마 그렇게 되고. 압구정동 들을 때마다 꾸중물로 제가 그렇게 읽습니다. 앞에 있는 꾸중물. 앞 꾸중물. 요즘은 그게 이제 아마 이태원이나 되고 그랬을 것입니다. 이태원 골목은 가고 싶어도 가본 적이 없는데? 이태원이 옛날에는 가야 이태원이지만 지금은 신풍에 집집마다가 전부 이태원일 건데, 휴대폰 안이 이태원일 건데. 휴대폰 안에 이태원이 저 서울의 이태원보다 몇 배는 더 더러울 건데 다 빠져 죽었을 건데. 신앙은 다 빠져 죽었을 거고 빈껍데기만 지금 다 돌아다니고 있을 건데.

이런 것이 주변에 차고 넘칠 때에 우리는 산으로 도망하자. 그런 데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산입니다. 하나님이 근본적으로 인생에게 준 것, 피할 수 없는 길이 어느 길인가? 이게 복이고 영생이고 생명인데, 그쪽을 쳐다보면 넓은 길로 다 가는 판에 좁은 길에 사람이 없으니 좁은 길이 넓은 길이 되어 버렸습니다. 넓은 길은 말씀 떠나 망할 길인데 넓은 길은 이태원처럼 다 가버렸으니 좁은 길이 되어 버렸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길은 원래는 좁아서 출발도 가는 길도 좁고 협착하여 고생스러운데, 혼자 가다 보니까 이것은 복된 길 찬송 부르며 다녀도 되는 이런 시대를 주셨습니다.

그냥 물 건너 불구경하듯이 슬금슬금 그러다가 자기 일로 들이닥치면 큰일 납니다. 생각 하나 바꾸시고 방향 하나만 바꾸면 복된 길 영생의 길 좋은 길은 한량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찬송하며 걸어갈 수 있는 역사 이후에 없는 이런 복을 우리에게는 깔아주셨습니다. 이것은 꿀단지입니다. 꿀단지에 머리 쳐 박고 마음껏 먹어도 족히 먹어라. 꿀을 만나거든 족히 먹어라. 이런 때를 주셨습니다. 망할 쪽으로 방향 틀면 세상도 안 막아주고 하나님도 내버려 두고 이것은 미끄러져 그대로 끝장납니다. 이 좋은 때에 이 무사한 때에 마음속에 환란을 닥친 듯 6. 25 전쟁 터졌다는 말을 듣는 그런 조바심으로 복된 길 찾아가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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