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2.11.30 마24:19 미리 독립 신앙을 만들지 못하고 기회가 지나가면 지도자의 책임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수새22.11.30 마24:19 미리 독립 신앙을 만들지 못하고 기회가 지나가면 지도자의 책임

서기 1 116 2022.11.30 07:13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21130 수새

제목 : 미리 독립 신앙을 만들지 못하고 기회가 지나가면 지도자의 책임

찬송 : 176장(이 몸의 소망 무엔가)

본문 : 마태복음 24장 19절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태복음 24장은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가 주후 70 몇 년, 주님 가신 지 한 40년, 주님 십자가 못 박혀 죽고 가신 지, 한 40년 안팎이 되어 로마군이 이스라엘을 다 밟아버리고. 원래부터 점령을 했는데 반란을 일으키니까 점령을 하러 와가지고 아예 예루살렘 성을 다 헐어버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헐어버리고 지성소까지 다 밟아 버리고 성전 안에 있는 금촛대까지 들고 가버리는 이런 극단적인 참화가 일어납니다. 세계 역사에서도 유명한 예루살렘 함락. 그리고 성전을 다 헐어버리면서 완전히 그냥 헐어버리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억을 못할까봐, 전부 헐면서 한쪽 벽을 일부러 남겨 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해마다 성전을 찾아오게 되어 있는데 매년 성전에 올 때마다 벽 하나만 일부 남아있고 나머지는 완전히 헐어버려서 어떻게 참혹하게 당했는지를 눈으로 보아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2천년 전에 헐어버리고 하나 남은 그 조그마한 벽이 지금까지 남아 있고 세계 관광지가 되어서 통곡의 벽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벽을 붙들고 지금도 울고 있습니다. 고향 방문하면 그 벽을 붙들고 울고, 미국에서 태어난 유대인 아이들도 철 들고 그러면 반드시 부모가 데려가거나 해서 2천년 전에 완전히 짓밟힌 그날을 잊지 말자 그리고 똘똘 뭉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주님 가신 직후 그렇게 처참하게 당했던 기억, 그날.

그런 환란이 밀어닥칠 때에, 그날에는 19절 “아이 밴 자들과” 아이를 가진 엄마들 또 젖을 먹이는 엄마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멀쩡한 사람도 도망가기 어려운데. 또 포위가 오래 가니까 성안에서 사람 잡아먹는 일들이 있었다고, 유세프스라고. 유세프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가입니다. 안 믿는 사람인데 예루살렘 멸망하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한 역사책이 있습니다. 말로 표현 못하는 모든 비참한 일이 다 일어났고 성경을 아는 사람이 읽어보면 성경 딱 그대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배가 고프면 그냥 그러다가 굶어 죽는 것 같은데, 유목민들이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은, 성경은 걸핏하면 엄마가 자기 아이 잡아 먹는 이런 일들이 역사적으로 그렇게 많습니다.

어쨌든 도망을 가고 싶어도 환란에 버티고 싶어도 아이 가진 엄마와 젖먹이는 엄마, 이거 뭐 도망을 제대로 가겠습니까? 먹을 것을 제대로 찾겠습니까? 나 배고픈 것도 참 기가 막히지만은 그 젖먹이 젖 없어서 울고 앉아 있는 꼴을 본다는 것 그거 뭐 그 이상의 고통이 있겠습니까? 아이 가진 사람 젖먹이는 사람은 환란이 일어나면 화가 있으리로다. 적지 않아도 그거는 일반적으로 상식인데 왜 하필 그렇게 적었을까? 그리고 오늘은 그럴 일이 없는데 마태복음 24장 19절,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환란이 일어나 먹을 것이 없거나 도망을 갈 때에 얼마나 불편하냐? 육체의 불편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양식 없어 수도 없는 사람이 죽어 나간다. 이런 이야기는 얼마 전까지 아프리카 이야기 우리가 흔히 듣는 것이고 또 멀리 갈 것 없이 북한의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은 그런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몇 백만 명 굶어 죽었다는 북한 아직도 주님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먹고 살만한가 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단일의 진리 변치 않는 진리이면, 이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해당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역사 마지막에도 해당이 되나 오늘도 해당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 가진 사람, 아이를 가졌다 말은 태어날 아이를 가졌다는 말도 되어 집니다. 그런데 남자들한테는 해당이 없지 않습니까? 아내가 아이를 가지면 아내가 죽을 판이지. 급하면 남자 도망가는 데야 뭔. 19절은 여자하고 상관이 있지 남자하고 상관은 없지 않느냐? 구약의 신부는 여자만 신부인데 성경의 신부는 주님만 바라보는 모든 성도가 다 신부입니다. 남자 여자를 말한 것이 아니라 주님만 바라본다. 주님만 의지한다. 그리고 주님에게 순종한다. 주님이면 다 되고 주님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을 역사적으로는 남편을 기다리는 처녀라고 그럽니다. 지금은 처녀도 없겠지마는. 난리 소문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갔는지 지금 처녀가 없습니다. 몸을 베려 처녀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몸을 뭐 하려고 버려? 혼자 살지. 그러면 처녀가 처녀 아니란 말입니다. 처녀가 처녀 아니란 말은 이런 난리가 있고 이런 끔찍한 일이? 인간이 인간다울 때 인간인데 인간이 개가 되고 인간이 생쥐가 되고 인간이 독사가 되어 놓으면 인간이 독사가 되어놓으면 독사보다 더 해가 심할 걸요. 개가 개면 개는 멸치 세 마리만 던지면 통합니다. 아무리 억센 개도 멸치에 한 줌 계속 한 마리씩 던지면 그거 친합니다. 인간이 개가 되어 놓으면 텔레비에 나 와가지고 10년 짖어 되는데 두들겨도 안 되고 이건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한 마리 쥐어박아 놓으면 백 마리가 짖고 천만 마리가 짖고 난리입니다. 5천만 마리가 전부 개떼가 돼 버립니다. 처녀는 남자를 기다려야 처녀입니다. 기다리지도 않고 발광하고 돌아 댕기는 것도 큰일. 이것은 기생이고. 또 남자 어느 짝에 쓰느냐고 또 그러고 멀뚱하고 앉았으면 이건 또 처녀가 아니니까 탈인데 처녀가 처녀 아니면 이거는 뭐 그냥 그때부터는 괴물이 되어지는데 그렇다고 또 아이를 가지면 어떡하느냐? 성경의 처녀란 남녀의 처녀를 두고 기록하면서, 주님을 마치 신랑으로 그 말은 육체를 가진 주님이 아니라 신령한 주님을 모시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 아니면 안 되고 늘 마음속에 주님을 그리고. 그리고 주님과 손잡고 영원히 살아가는 이 면을 가르치기 위해서 세상에 남녀를 두시고 그 중에 남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은 기다리고 있고 마음을 다 기울이는 이 상태를 처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가졌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졌으면 남자로 가진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사람이 생겼다면 예수를 소개하고 예수를 믿게 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그게 아이를 가진 겁니다. 그렇다면 남자도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아이를 열 낳은 엄마가 믿지 않으면 주님이 볼 때는 이거는 아이 없는 여자입니다. 신앙의 사람을 말합니다. 내가 신앙으로 책임질 사람. 그 사람은 나의 아이이고 나는 그 아이의 엄마와 같은 역할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직 내 뱃속에 있어 사람은 사람인데 이게 혼자 움직이지 못한다면, 내가 교회 가면 나 따라는 교회를 오지마는 내가 교회 안 가면 교회 갈 리가 없는 사람, 뱃속에 있는 아이입니다. 혼자 이러고 저러고 하기는 하는데 아직까지 젖먹이다. 내가 깨닫고 내가 가르치지 않으면 신앙의 양식이 뭔지 모르고 신앙으로 사람 노릇을 못 한다. 함께 설교를 듣는다고 앉으면, 나도 설교 말씀 속에 깨닫는 게 있고 내가 데려다 앉혀놓은 이 사람도 또 자기 나름대로 깨닫는 것이 있어야 제 밥을 제가 먹는 사람입니다. 자기 밥을 자기가 먹으면 그러면 이제 그때부터는 이리저리 인제 움직이고 배우고 인생사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예배당 청소하니 나도 교회 다닌 세월이 있고 나도 예배당에 한 자리를 앉아 있으니 한 달에 한번은 몰라도 1년에 한번은 나도 청소를 해야 되겠구나. 이게 인제 젖먹이를 벗어나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이 큰 집이 많은 사람이 움직이려면 돈이 하늘에서 떨어집니까? 하나님이 교회 계좌에 송금을 하십니까? 아 교인들이 회비를 내서 교회를 운영하는가 보다. 그러니 목사 월급도 주고 차도 움직이고. 또 주일마다 간단하지만 식사를 준비하고 이러는 것이 교회의 운영비가 있겠구나. 교회 운영비는 누가 내겠는가? 조금씩 조금씩 모두들 함께 거두는가 보다. 그런데 나는 그냥 연보 한 번도 안 하고 1년도 2년도 3년도 그냥 다녔구나. 그렇다면 요즘 경제에 한번 올 때에 천원, 천원 정도야 내면 전기값 전등 하나라도 되지 않겠는가? 설교를 듣고 교회를 오가다가 천원이라도 이런 생각으로 자기가 연보를 한다면 이것은 이제 젖먹이에서 밥 먹는 아이로 바뀌는 것입니다. 밥을 먹게 된단 말은 없던 치아가 나왔단 말이고 걸어 다닌단 말이고, 이제 무조건 부모만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부모 없을 때에 집 뒤도 가보고 앞도 가보고 이것도 열어보고 저것도 들여다보고 이제 세상이 어떤 지를 갖다가 두리번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돌아다니는 연습도 하고 뭐가 있는지 정보 파악을 위해서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무서우면 울고 좋으면 웃고 좋은 것 있으면 쥐어보고 잘못 잡다가 뜨거우면 아 이건 위험하구나 피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 사람이 한 사람답게 이제 모습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 정도가 되어야 환란이 일어나면 도망이라도 가지, 숨기라도 하지. 엄마와 함께 숨었다가 칼 든 사람이 뒤지고 있으면 엄마가 소리 내지 말라고 쉬 그러면 애도 겁을 먹고 함께 조용히 하겠지. 젖먹이는 배고프면 뭐 적들이 와서 수색을 하는지 사람을 죽이는지 압니까? 고함부터 질러버리지. 고함 못 지르도록 입 막으면 질식해 죽을 것이고, 숨 쉬게 놔두면 숨통으로 가지고 악을 질러버리고. 이게 젖먹이입니다. 뱃속에 있는 것은 나를 꼼짝도 못하도록 나를 주저앉힙니다. 낳아 놓기는 했는데 낳아 놓은 것이 아직도 젖먹이면 내가 업고 지고 다녀야 됩니다. 나 하나도 힘이 드는데. 아이를 위해서 내가 고생을 하지 않겠다 말이 아니라 낳아 놨으면 가졌으면 낳아야 되고 낳아 놨으면 이게 독립의 사람이 되어서 움직일 수 있고 자립해서 먹을 수가 있고 그다음 숨을 수가 있고, 이럴 수가 있고 저럴 수가 있어야 이 아이의 인생이 인간으로 자라 가는데. 안 믿는 사람 전도할 때까지는 아직까지는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이 나 때문에 믿게 되는 순간 이것은 뱃속의 아이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직까지 내 몸에서 분리가 되지 않아서 아예 나 없으면 교회도 안 가는 사람은 아이 가진 사람의 아이. 교회는 다니지만은 이거 뭐 그냥 아직까지 신앙이 뭔지 집회가 뭔지 예배가 뭔지 성경 읽는 것이 뭔지 모를 때는 석 달짜리 6개월짜리 1년짜리 아직도 엄마 아니고는 생존이 곤란한 것. 그리고 3살이 되고 5살이 되어 이제 이가 나고 돌아다니고 이러면 건강하지는 못하고 장성하지는 못해도 독립의 생명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환란 오기 전에” 그 말은 하나님이 기회를 거두기 전에, 그 말은 하나님이 마음껏 은혜 주셔서 영육 간에 모든 것이 가능할 때에 그때에 나의 신앙도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환란을 미리 생각하며 나의 지식도 나의 생활도 나의 사고방식도 나의 모든 일정과 모든 세상관을 정리하고 가꾸어 바로 잡아 든든하게 만들고, 그리고 내가 신앙으로 책임진 사람들이 자기에게 닥치는 자기 현실의 어려움이 생길 때에, 아 믿는 사람이면 당연히 이 정도는 불편한 거지 이 정도 불편도 없을 리가 있는가?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한다고 하면 재미있습니까? 공부가 재미없어도 하는 거지. 한 달 월급을 받으려면 놀고 먹고 월급이 들어옵니까? 한 달간 별별 잔소리 들어야 되고 손님 만나야 되고 그러는 것이지.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데도 온갖 일이 있는데 죄인이 천국 가는데 주님이 천국 가도록 구원을 해놨는데 주일과 예배와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하다 보면 술 친구도 떨어지는 것이고 주일날 놀러 가지 못하는 것이고. 아 그런 거야 당연하지. 이렇게 되어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이런 사람을 빨리 만들어야 그래야 환란이 닥칠 때에 나는 내 신앙으로 이기고 나의 신앙의 사람들도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대로 그 환란을 이길 것입니다.

아이 나야 이 환란 이기지만은 내가 책임진 신앙의 이 사람은 이제 독립 신앙도 있고 이제 깨닫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어리지 않느냐? 어린 사람은 어린 만큼 환란 주시지 어린 사람에게 못 이기는 감당 못할 시험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의 신앙의 사람이 깨닫고 알고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세상 환란에서는 별 소용없으나 신앙의 환란에서는 주님이 그 사람에게 알맞은 환란으로 바꿔 주시고 피할 길을 내시고 그러니, 환란 닥치기 전에 미리 미리 가르쳐 길러 독립의 신앙을 만들어 두거라. 코로나 오기 전에 주일과 예배를 잘 설명해서 코로나가 닥칠 때에 비록 어렵지만은 힘들지만은 그래도 이 정도의 내가 주일은 가야 되지 않겠느냐 해서. 코로나 2년으로 뒤흔들어도 목사의 당연히 직업적으로 와야 될 것이고 신앙 있는 사람들이야 이까짓 게 뭐 아무것도 아니니까 더 기뻐서 와야 될 것이고, 문제는 어중간하게 믿는 사람 이제 막 출발하는 사람들이 문제인데 지난 코로나 2년 마구 뒤흔들어도 우리 교회는 웬만하면 다 교회를 오고 갔습니다. 코로나 환란을 기준으로 보면 뱃속에 아이가 있어 나까지 주저앉는 일은 없었고 또 젖먹이 때문에 교회에 전체적으로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야 감기니 뭔 감기도 환란인가? 이런 것이 아니라, 요즘은 벗고 다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옷을 입고 사느냐? 그렇다면 우리는 그 하나는 또 이긴 것입니다. 지금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그냥 전부 도서관에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검정고시 하는 학생들이 많으니까 대학이니 뭐니 그런 문제 때문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환란에도 아이 밴 여인이 없고 또 젖먹이는 아이가 없어 대부분은 다 신앙으로 다 고비를 넘어갔다 보입니다. 결혼 문제로 오면 이거는 뭐 과거에 별로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딱 브레이크가 잡혔습니다. 이쪽 환란에 대해서는 전부가 뱃속의 아이들이며 아니면 젖먹이 아이들이 됐구나. 사람은 사람인데 뱃속에 있는 것 젖먹이는 환란이 닥치면 이거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까지 주저앉힙니다. 이런 시대가 오기 전에 바로 가르쳤던가? 또는 그런 환란을 아이 그 뭐 그냥 결혼을 하라면 재미있지 연애도 재미있다는데 연애보다 더 좋은 결혼이야 뭐 100배 더 재미있겠지. 아니 머리가 그렇게 돌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연애도 재미있다고 이거 뭐 10살 되면 벌써 별의별 발광을 다 하고 앉았는데.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되면 짝이 있고 선생이 짝을 만들어주고 그 짓을 하고 있을 걸요. 선생이라는 것들이. 5학년 6학년 되면 선생이라는 것들이 너 짝 있냐? 너 짝 있냐? 연애 하냐? 교제를 해라. 그게 사랑이다. 이렇게 교육을 시킨다는 말까지 듣고 앉아 있습니다. 중학생쯤 되면 중학생이 선생한테 담임한테 나하고 연애합시다 그럽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아는 일입니다. 또 20살 넘은 여선생이 열 몇 살짜리 남자 애하고 데리고 돌아 댕깁니다. 애도 낳고 그 짓을 합니다. 이 놈의 세상이 이 정도입니다.

이게 예수님 사후의 예루살렘이 주저 앉은 환란보다 지금 더 큰 환란이고 이게 노아 홍수보다 더 큰 환란입니다. 이런 때에 방주 마련한 사람들이야 다 인류가 다 빠져 죽든 말든 상관이 있습니까? 더 좋지. 나는 스물에 결혼할 테니까 내 마음 잘 정리해서 스물 되면 연애보다 나은 결혼해서 천하보다 나은 내 아이 낳고. 이런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다 갖춰졌는데 그게 뭔 말인고? 그러면 이거는 사람도 아니고. 그 말은 맞다마는 그러면 뱃속에 아이이고. 그게 좋아서 나도 그냥 그렇게 해볼까? 그런데 뒤뚱거리면 그건 젖먹이고. 말이 맞고 상황 판단이 되고 이렇게 좋은 기회 줬으니 나름대로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뱃속의 아이가 젖먹이를 통해 이제는 하나님 앞에 사무엘 같은 어린 좋은 사람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런 아이 하나 속에서 앞날이 있고 또 세운 세상이 노아 홍수 이후에 열리듯이 열릴 것이고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훼파되어 끝난 줄 알았는데 신약 교회가 유대인을 벗어나 오늘 한국 우리에게까지 힘 있게 시작이 된 게 바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인 마태복음 24장 때문에 일어난 새 생명의 운동입니다. 지금 세상이 이 정도 되어진 것은 노아 홍수 때와 같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짓밟힌 때와 같습니다. 이거는 뭐 교회도 전부 다 그러니까. 목사들도 다 그러니까. 공회의 목사 빼고는 목사들도 거의 연애결혼 다 했습니다. 아닌 경우 거의 없습니다. 목사가 연애결혼 해 놨는데 교인들한테 아예 목사가 교인들한테 연애 결혼하라고 부추기고 앉았습니다. 이 정도 되었는데 내가 결혼할 때 되면 내 남자 있을 것인데 내 남자한테 연애하다 왔다 그러면 그 미안할 것 아닌가요? 반대로 말을 해보지요. 선 보러 나온 남자가 나 말고 여자 많이 데리고 놀아본 놈이 나를 잘 데리고 놀면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까? 기분이 나빠야 될 것 같습니까? 남자가 선 보러 갔는데 이 여자가 벌써 몇 남자를 거쳤는지 어디까지 갔는지 모른다면 좋을까요? 나쁠까요? 여자가 한 남자도 없다가 자기만 남자로 상대한다면 말로라도 그냥 좋을 것인데? 아마?

환란을 다시 들여다보면 환란은 알고 보면 진흙탕 속에 묻혀 있는 보배 하나를 챙기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에게는 환란이라는 것은 엄청 큰 횡재하는 것이고. 노아는 환란 속에 횡재했습니다. 구약교회가 완전히 짓밟힐 때에 신약교회는 생명을 가지고 새 출발을 했습니다. 오늘도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니 별 것 없는 우리에게도 다음 날이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LJH

Comments

교인 2022.11.30 17:21
이런 설교가 20대청년을 죽이고,죽였고,
혹 살아 요셉이 된다.
Category
State
347,011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