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2.11.28 마24:16 이미 보고도 자멸하는 환란, 피해야 하는 4가지 고비와 기회, 19절까지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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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2.11.28 마24:16 이미 보고도 자멸하는 환란, 피해야 하는 4가지 고비와 기회, 19절까지 주해

관리1 0 129 2022.11.28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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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8 월새

제목 : 이미 보고도 자멸하는 환란, 피해야 하는 4가지 고비와 기회, 19절까지 주해

찬송 : 126장(주를 앙모하는 자)

본문 : 마태복음 24장 16절 -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기도)
부족하고 연약한데 환경은 강하고 음습하니 하늘의 은혜 주의 은혜 인하여 입하고 이 시대를 넘어가야 되겠고 하늘의 은혜는 우리의 간절 우리의 정성 우리의 애절함을 원하시니 이 아침 첫 시간을 주님 앞에 함께함은 부족하여 주의 음성 듣고 주님께 간구하기 위해 함께 했사오며 입원 중인 이들 수술 후 회복을 기다리는 우리 어린아이 노년의 종들까지 또는 오늘 하루 좋은 일로 어려운 일로 바쁘게 움직일 모든 우리 교인들 마음 마음 속에 가야 할 한 길 더 중요한 자기 길을 잊지 아니하고 잃어버리지 않는 복된 마음 순종의 마음 주의 은혜 받는 마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환란이 닥치면, 다른 말로 바꾸면 하나님이 준비할 기회를 거두어 가시면, 기회라는 것은 마음껏 가질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주셨는데 기회를 거두어 버리면 이게 환란이 되어도 어렵고 환란이 아니면 별 것이 없다 생각하는데, 6.25 전쟁만 이 나라의 환란이 아닙니다. 전쟁이 없어도 좋아서 먹고 뛰고 굴리다가 스스로 내려 앉는 일이 많습니다. 못 먹어도 탈 다쳐도 탈, 잘 먹어 몸이 감당하지 못해 위장 간장 신장, 장 자 붙은 내장에 심장까지 못 견디다가 안에서 썩고 눌러 앉아버리면 그것도 탈입니다. 잘 먹으면 혈관 가는 곳곳마다 막혀서 많이 먹어서 그냥 주저 앉습니다.

환란이라는 것은 양면으로 함께 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는 외부에서 치고 들어오는 것을 피하고 막는 이런 준비도 있고. 또 엄청 좋은 기회를 주시는데 큰 것을 주시는데 못 받아버리는 이런 통탄한 일도 있습니다. 양면으로 오는데, 어떤 환란이든 피할 수 있는 기회, 그 환란을 이기고 큰 상으로 큰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는 이런 고비가 닥쳤고.

그 다음 그렇게 닥쳐진 때에는, 16절 “유대에 있는 자들은” 성경에 유대라는 말이 나오면 살아가기는 어려운 그런 뜻입니다. 예루살렘 밑에가 유대입니다. 땅은 넓은데 우리나라로 말을 하면 저 강원도처럼. 땅이야 넓은데 사람은 적다고 합니다. 살기가 어려우니까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살기는 어려운데 신앙은 계통을 지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다윗의 계통이 유대입니다. 구원의 계통 세상 살아가기는 험한 곳.

“유대에 있는 자들은” 신앙을 지켜나가며 세상이 어려워도 꿋꿋하게 버티며 자기 위치를 지키던 자들아.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지 않고 마지막으로 몰아 치면 어려우니까 주저 앉을 것인가? 어려우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세상 속으로 편입이 될 것인가? “산으로 도망할 찌어다” 어려울수록 역항으로 역행으로 더욱 신앙을 향하여. 그런 것입니다. 시험 때가 가깝게 몰아쳤고. 이렇게 몰아치는 때에 공부하기 싫다고 옆에 친구들이 전부 놀자고 분위기를 잡아 나갈 때에 아이들이 휩쓸리기가 쉬운 것인데 공부는 어렵고 주변에 축제라니 뭘 하니 이렇게 휩쓸리기 쉬울 때에 휩쓸려버리면 그 동안 수고한 것도 다 헛일입니다. 그럴 때에 더욱 공부에 집중해라. 이렇게 말을 하면 부모나 교사들은 전부 좋은 말이다 그럴 것입니다. 돈 벌기 쉽고 돈 쓰기 좋은 때라고 흥청망청할 때에 너무 좋아지면 그다음 탈이 생기니 이럴 때에 더 조심하고 바짝 모으고 조심하고 앞날을 준비하자 이러면, 젊은 사람들로서는 무슨 맛으로 살 것이냐 그러지만은, 연세가 많은 분들은 달도 차면 그 다음 뭐라고 그러지요? 안미송 선생님? 달도 차면? 예. 연세 많은 분들은 아시지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달이 무럭 무럭 무럭 이렇게 커지면 한량 없이 하늘을 다 찹니까? 만월 보름달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이제 밑으려 내려갑니다. 산이 아무리 높아도 올라가다보면 내려갑니다. 돈 벌이가 아무리 잘된다고 놀고 먹어도 돈을 막 그냥 밀어 넣어주느라고 생난리가 났는데 더 그럴 것이라 더 그럴 것이라 더 그럴 것이라? 마지막 고비를 넘겼으면 풍선 터지듯이 어느 날 주저 앉을 것입니다. 올라가는 것은 한 걸음씩 올라가도 터지고 내려앉는 것은 순간입니다.

세상에 경제를 두고 젊은 사람들이 돈 알기를 우습게 알 때에 경험 많은 사람들은 들어올 때에 잘 모으고 쓰지 말고 잘 앞날을 대비하라. 둘 중에 하나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마구 써도 된답니다. 그럴 때에 한번 더 조심해라. 이게 여기 말씀입니다. 신앙으로 기회가 다 갔고. 이젠 도무지 신앙으로 더 이상 못 견디는 때가 딱 다쳤느냐? 과거보다 더욱 신앙으로 매진하라. 이게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산은 달리면 높아서 어렵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다 산 밑에 처집니다. 조금 올라오면 전부 힘이 들어 주저 앉습니다. 조금만 더, 한 걸음 더.

세상에 가장 어려운 순간을 전쟁터에 최후 5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쪽이 도무지 더 이상 못 견딜 때에 이쪽만 그렇겠습니까? 저쪽도 그렇지. 마지막에 치열하고 마지막에 자기를 다 쏟아 부은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 먼저 주저 앉은 쪽이 그동안 피 흘리고 그동안 고생한 모든 것 다 헛일 되고, 한번 더 밀어붙인 쪽이 이깁니다. 세상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전쟁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만사가 그렇습니다. 이런 자연의 여러 환경을 보여주며 그것은 이겨봐야 잠깐이나 영생을 둔 신앙은 어떠하냐? 시골까지 전부 예배당 강단 앞에 드럼 세트를 갖다 놓고 이것을 쳐야 전도가 된다고 합니다. 애도 없는데 사람도 없는데 칠 인간도 없는데. 90대에 책 출간 때문에 한 100개 200개 교회를 다녀 본적이 있습니다. 단기간에. 교파별로 시골까지 별의별 교회를 다 다녀봤는데 아니 시골에 이것을 칠 사람이라도 있는가? 이것을 치면 좋아할 사람이라도 있는가? 안 봐도 그 교회 목사님 아들 혼자 드럼 칠 것입니다. 그리고 앉아 있는 나이 많은 집사님들은 저게 뭔가? 요즘 그런가 보다 그럴 것입니다. 시골 교회에 연세 많은 분들한테는 타령이 더 낫지. 100만원 200만원 짜리 드럼 세트 시골에 몇 명 안 되는 교회도 전부 다 떡 하니 강단만큼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행이랍니다. 그래야 부흥이 된다고 합니다. 뛰고 굴리면 부흥 되는 교회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더 주저 앉는 교회도 있을 것이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전부 다 휩쓸어버립니다. 요즘 전국 어디를 가도 해외 선교 10군데 한다 20군데 한다. 그 연보를 가 가지고 해외에서 놀러 다니는 유흥비로 쓰는지 정말 선교를 위해 쓰는지, 90프로는 놀고 먹지 90프로 모자라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우리는 수십 년간 선교 연보 딱 한번 해봤지요? 그 분은 확실히 아는 곳이라서 했습니다. 그 외에는 안합니다. 돈 있으면 내가 먹고 쓰지 왜 남들 해외여행 다니는데 경비로 줄 겁니까? 말로야 선교이지. 선교지에 정말 선교인가? 아직도 있으나 대개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선교 유행에 시골에서 선교가 뭔지도 모르고 아껴 번 돈 부어대는 사람들. 예배당 드럼 세트 두들겨서 전도가 되는 교회도 있는데 뻔히 안 되는데 남들이 하니까 다 하는 교회. 요즘 찬송하면 전부 두손 들고 이럽니다. 예전에는 예배당에서 찬송 박수치고 두들기면 전부 전도관 박태선이라고 다 욕했습니다. 지금 전부 그러고 앉았습니다. 시대가 흔들어 버리면 결국은 다 따라가는데 마지막에 따라가지 않기 어려운 그때에 이를 깨물고 나는 독립으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간다. 이런 인내의 신앙을 가지라.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지붕은 조금이라도 높은 곳입니다. 신앙으로 조금이라도 하늘을 향해 가까운 그래도 잘 믿지는 못해도 주일은 지킨다면 십일조는 한다면 평소 잘 믿지는 못 해도 그래도 새벽예배라도 나온다면 지붕 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조금 내려가면 집안에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런 저런 소중한 것이 있을지라도 그것 가지러 들어가는 통에 들이닥치면 그 안에서 죽습니다. 집 안에 보물 단지가 있어도 두고 갈 땅의 것은 포기하고 마구 환란이 닥칠 때에 신앙으로 달려가라.

18절, “밭에 있는 자들은” 성경에 밭이란 자기 마음 밭을 갈아 엎는 것입니다. 모든 농사는 땅을 뒤집고 씨를 심고 길러 갑니다. 땅을 뒤집는다니? 내 속에 나쁜 마음 세상 마음, 말씀과 하나님 없이 다져진 내 마음 생활에 단단하고 굳은 것을 좀 뒤집어 파야 이게 옥토가 됩니다. 옥토라야 씨가 심기면 자랍니다. 이게 밭입니다.

“밭에 있는 자들은” 회개하는 자들은 자기를 돌아보며 말씀으로 자기를 자꾸 말씀화 시키던 사람들은, 환란이 왔는데 남들 보나 따나 겉옷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남들 볼 때에 부끄럽지는 않아야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내 몸도 좀 보호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환란이라 이 환란을 이겨야 되겠고 피해야 되겠으나 적어도 겉옷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하나 밖에 없는 마지막에 소중한 겉옷이라도 환란에는 포기하라. 아무리 그래도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되지 않냐? 그것도 딸 수 있으면 따고 그것도 시대의 신앙 지키는데 불편하거든 치워버려라. 뭐든지. 세상을 향하여 기어나갈 때에는 뭐든지 다 털어버리는 사람이 신앙을 위해서 뭔 하나 수고하라면 죽을 고생이라고 엄살 엄살 다 하고 앉았습니다. 놀러가라면 천길을 마다하고 마구 뛰어드는 것들이. 공부를 하라면 책장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또 뭐라더라? 연필 들려니까 손가락이 아픕니다. 게으른 것들 정월 초하루 나무하러 갈 때에 인제 그때에 뒷꼭지에다 대고 그놈 고생하거라 그러는 것이지.

긴긴 여름 그 좋은 때에는 빈둥 빈둥 놀고먹다가 게으르면 그릇에 손을 넣고도 입까지 올리기가 힘이 들어 괴로워하느니라. 게을러지면 그렇게까지 게을러집니다. 그렇게 게을러 보셨습니까? 드러누워서 편하면 하루 이틀이지 한 3일 가면 허리가 쑤시고 디스크가 와서 못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게으른 것들은 디스크 내려 앉도록 드러누워 있습니다. 아무리 미련하고 아무리 망하려고 작정을 해도 그렇게까지 가면 안 됩니다. 그런데 건설을 향해서 달려가라고 그러면 얼마나 엄살이 많은지. 큰 복이 놓여 있고 앞에 쌓여 있는데 가져 가라고 하면 아이 뭐 늘 복이라는 것은 있는데 언제든지 주면 되지. 아이 저 금덩이를 갖다가 주워 오려면 힘이 들 것인데 무거울 것인데 그러면 굶고 죽으면 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가운데는 없습니다. 이왕 수고를 하려면 복된데 수고를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계산해 봐도 주일 지키느라고 애 쓴 것이 몸에 휴식에도 좋고 마음에 휴식에도 좋고 하나님께 복 받는데도 나을 것입니다. 주일을 어기느라고 발버둥 치는 것보다는 주일을 지키느라고 싸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하느라고 애 먹는 것이 노느라고 위험 감수하고 애 먹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이태원 골목 가서 그냥 그 짓하는 것이 다 공부 안 하고 노는 것 아닙니까? 그런 위험한 데라도 놀기 위해서는 한 골목에 몇 만명이라도 들이 밀겠다? 그렇게 위험을 감수할 만하고 그렇게 애를 쓸 그런 마음이면 책을 들고 앉아서 그 짓을 하지, 돈 벌이하느라고 그 짓을 하지.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건설을 하기 위해서라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라 그러는 것인데, 망할 곳을 향해서 갈 때에는 용감하고 용사가 되고 그냥 정신이 없고. 복된 길을 걸어가라면 엄살이 도가 지나쳐서. 지금 이 말을 들어야 될 사람은 이 새벽에 와서도 눈을 감고 있지요?

그 어느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던데. 금 밭에 가서 금 캐라고 그러니까 자갈 밭에 가 가지고 자갈 밭을 파헤치면서 그 금반지 하나 줍는다고 생 난리라. 이쪽에는 금밭이라 금덩이가 꽉 찼으니 하나 주워 놓으면 금덩이인데 이건 꼭 외면하고 자갈 밭 잡석 밭을 뒹굴면서 그 속에서 금반지 하나 찾겠다고 생 발광을 하니까 뒷꼭지에다 대고 참 염병하네. 뭔 놈의. 금밭이 없고 금광석이 없으면 몰라도, 금덩어리가 가득한 금밭은 외면하고 자갈밭에 가 가지고 뭔 금반지 찾는다고 저 생고생을 하느냐. 아버지가 딸한테 한 소리입니다. 신풍이 아니라 저 부산 분입니다. 또 우리는 안 그런가요?

“밭에 있는 자들은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아라” 겉옷 하나 챙기려고 돌아갔다가 죽으면 끝날 일입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아 아이 가지면 환란 때에 도망갈 때에 얼마나 불편할까. 그렇겠지요? “젖 먹이는 자” 젖 먹이는 것은 이것은 떼어놓으면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못 떼어내고 젖 먹이도 못 떼어내고 이것을 들고 도망을 가려니 이 환란에 도망을 가겠느냐? 그러니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이구나. 그러니 아이를 가지지 말라는 구나. 복 없는 인간들은 꼭 그렇게 뒤집어 가지고 죽을 길을 찾습니다. 자기 자유로 죽을 길을 목숨 걸고 찾아 나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잘 죽어라 그래야지. 이게 저주입니까? 그렇게 좋다니. 아이 가진 것이 환란에 화가 된다는 말은, 환란이 오기 전에 내가 맡은 신앙의 식구, 이 내가 맡은 신앙의 식구가 자기 깨달음으로 자기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자란 아이입니다. 이것은 제 발로 도망갈 수 있습니다. 애들은 더 잘 도망갑니다. 작아서 피하기도 잘합니다. 교회를 10년 다녔는데도 아직도 내가 품지 않으면 이거는 교회 안 다닙니다. 나 있으면 교회 따라 오고 나 없으면 교회 안 나오는 아이, 이것은 뱃속에 있는 아이입니다. 나는 나인데 내 속에 있는데 나 아니면 못사는데 나는 아닙니다. 내 속에 있는 나인데 나 아니고는 존재를 못합니다. 나의 신앙의 식구인데 나 없이는 신앙 생활 안할 사람. 이런 것이 뱃속에 있는 아이이며 젖 먹이는 아이입니다. 그게 있어야 또 새 생명이 나오고 또 새 생명이 자라고 새 생명이 또 신앙의 사람이 되는데 10년 가도 젖 먹고 앉아 있으면 부모 없으면 굶어 죽으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10달이면 나와야 되는데 세상 꼴 보기 싫다고 10달이 지났는데도 딱 버티고 세상 못 나가겠습니다. 너 나 교회 데리러 오면 따라갈 것이고. 나 교회 데리러 차가지고 문 앞에까지 오지 않으면 내가 교회를 가? 뱃속에 있는 아이입니다. 믿기는 믿는데 자기 신앙 자기 노력으로 스스로 하는 움직이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경우.

내 속에 욕심 중에, 성령의 소욕이 좋은데 세상의 물욕은 나쁜 것인데 애매한데 아직까지 이 욕심을 지식으로 신앙으로 바꾸지를 못해서 세상 절반 신앙 절반 애매한 이런 것이 아이 가진 여인의 뱃속의 아이입니다. 환란 닥치면 이거 큰일 납니다. 이런 기회에 이런 평소에 내 속에 있는 내 인격 하나 둘 따지고 살펴서 독립의 신앙을 만들어서, 나는 안 믿을 때는 음악에 취하여 살았으나 이제는 나에게의 음악은 신앙에 필요한 음악 찬송의 음악은 가지고 신앙에 필요 없는 것은 딱 잘라 내버린다. 그러면 단일의 생명입니다. 나는 나인데 내 속에 숨도 따로 쉬고 놀기도 따로 노는 것이 있어서 교회 와 앉아 있어도 찬송시간이 되면 즐겁고 나머지 시간은 지겹고 찬송시간도 뚱땅 뚱당 흥 나는 찬송이 나오면 세상 노래처럼 신나게 부르다가 느려터진 복의 근원이 나오고 50장 찬송이 나오면 뭔 저런 것도 찬송이냐 이러고 앉았으면 내 속에 있는 음악도 아직까지 이게 뱃속에 아이입니다. 이런 것 속에 주렁주렁 가지고 있다가 환란 나면 도망도 못 갑니다. 몸이 무거워. 젖 먹이가 있으면 나 하나 도망 가서 살까 말까 겨우인데 다른 것 하나를 들고 어떻게 둘이 살겠습니까? 아이 밴 여인 젖 먹이는 여자는 화가 있으리로다. 결혼하지 말아라 애 가지지 말아라 그 말이 아닙니다. 내 속에 인격을 주님만을 따라가는 신앙의 사람을 만들어 성장을 시켜라. 장성한 신앙을 만들어라. 평소에 기회를 줄 때에, 평소에 내가 전도한 나의 식구, 처음에는 내가 데려다가 교회 앉히지만은 도와주고 깨닫게 하여 교회는 얻어먹으라고 다니는 것이 아니구나. 남이 와서 가자니까 따라 나오는 것이 아니구나. 작정하고 잘 믿어야 되겠구나. 그러면 장성한 청소년 청년이 된 것이고. 30년을 교회 다녀도 뱃속의 아이처럼 젖먹이 아이처럼 버티고 앉았으면 환란이 닥치면 이런 사람들 다 끝장이 나는데, 환란이 닥칠 때 이런 사람이 끝장이 날 때에 하나님이 물어볼 것입니다. 이 교회 이 교인 환란 오니까 세상 속으로 도망을 가버리는데 이거 애 임자 누구냐? 이 교인의 임자 누구냐? 일일이 다 물어볼 것입니다. 그때에 목자의 입장 부모의 입장의 지도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이 가정이 신앙의 가정이 되어야 되는데 아직도 젖 먹이 밖에 안 되는 것 제 책임입니다 그러다보면 신앙의 지도 위치에 있는 사람들 하나님 앞에 심판 많을 것입니다. 왜 동천은 올해만 아이가 7명입니다. 올해 태어난 아이만. 신풍은 왜 하나도 없지? 목사 네가 가르치기를 갖다 세상만 잔뜩 가르쳐 놓으니까 그렇지 그러지. 목사는 잘 가르쳤는데 교인이 강퍅해서 말을 안 들었습니다. 하나님 심판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겔 33장을 읽어 보면 그 원리가 나옵니다. 파수꾼은 나팔을 불어라. 나팔을 들었는데도 적이 쳐들어 온다는 나팔을 들었는데도 놀다가 죽는 인간들은 자기 죄로 죽는 것이다. 그런데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았다면 그런데 적의 칼에 죽는 사람이 있으면 죽는 인간은 자기 죄로 죽지만은 나팔을 불 파수꾼에게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네 놈 때문에 주민들이 죽었다고. 우리 교회는 파수꾼이 많이 떠들었으니 목사 책임은 없지 않냐? 헛 나팔을 불었으니, 귀에 안 들리는 소리를 했으니 먹히지 않았으니. 이것도 목회자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가정마다 부모한테 책임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귀한 자녀 너한테 맡겼는데 이 모양 이 꼴을 만들어나? 하나님의 자녀를 맡겼는데 이 모양이 이 꼴을 만들어놔? 네 걸 만들어? 네 걸 만들어? 이게 에스겔서입니다. 애미가 그 짓 하더니마는 딸까지 이렇게 만들어 놔? 이게 에스겔서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제일 읽기 고통스러운 게 에스겔서입니다. 귀한 딸 줘 놨더니만 이런 걸 만들어놔? 이런 잡것을 만들어놔? 이건 뭐 천것도 아니고 이거는 막 가는 것도 아니고 그 이상이라. 읽지도 못할 만큼 이런 짓을 하게 해나? 어미의 탓이지.

가정마다 모두들 6. 25 전쟁이 터졌는데 피난을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 그냥 전쟁 구경하지 하고 서울에서 버티고 있다가 온갖 일을 다 당하고 이산가족 70년이 됐니 자녀가 고아가 되어 가지고 서러웠니 오만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는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전쟁 전에 북한에서 미리 피난 온 사람은 전쟁 났다니까 그냥 듣자 막바로 부산까지 튀어버렸습니다. 아따 그놈들 북한에서 봐보니까 이거는 해결이 없더라. 왜놈들보다 더하더라. 그래가지고 개척된 교회가 충북 제천 남천교회입니다. 그 남천교회 개척한 분들이 평양 최부자집 분들이었는데 전쟁 나기 전에 해방 후에 김일성이 하는 꼴 딱 시작하는 것 딱 보니까 이 인간들은 왜놈보다 10배 100배 더하구나. 그래서 전쟁 전에 피난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남한에 피난 오면 살 줄 알았는데 전쟁이 났다니까 안 봐도 이거는 밀고 내려온다. 바로 트럭 빌려다가 그냥 부산까지 바로 내려왔다가 공회 교인 되고 수복할 때에 남천교회 개척한 가정은 한 번 당해보고 평생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한번 당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간 것 뻔히 보고 망할 일 부모가 하는 것 뻔히 보고 자자손손. 따라가고 죽을 길 따라가고 또 죽고 또 죽으면, 어떡하지요? 그럼 자유롭게 가야지.

앞에 낭떠러지 서 있었다가 하나 떨어져 죽고. 또 그 빈자리 뒷사람이 와서 또 낭떠러지 끝에 서서 뛰고 놀다가 또 하나 떨어져 죽고 둘 떨어져 죽는 것 보고 셋째가 또 낭떠러지에 서가지고 이번엔 내가 1등이라고 폴짝폴짝 뛰다가 또 떨어져 죽고. 하나 둘 셋 넷, 10번째 100번째 1,000번째 10,000번째, 그리고 또 낭떠러지 끝에 서서 이쁘다고 폴짝폴짝 뛰면 그렇게까지 가면, 작정하고 하나님께서 안 떨어질 것도 밀어 넣어 버립니다. 그게 에스겔서부터 이후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으로 시대를 다 삼켰고 교계를 다 삼켰고. 우리 교회도 한 3분의 2는 지금 귀신 아가리 속에 들어간 듯합니다. 이제 나오기가 어렵지 않을까? 마태복음 24장, 이미 들이닥친 현실입니다. 고요히 심각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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