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2.11..25 마24:12 신앙의 전쟁, 결판과 배경, 시대론과 오늘 건설구원 성공 실패 과정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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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2.11..25 마24:12 신앙의 전쟁, 결판과 배경, 시대론과 오늘 건설구원 성공 실패 과정 설명

관리1 0 69 2022.11.25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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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5 금새

제목 : 신앙의 전쟁, 결판과 배경, 시대론과 오늘 건설구원 성공 실패 과정 설명

찬송 : 61장(이 세상 험하고)

본문 : 마태복음 24장 12절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신앙의 전쟁은 단판에 그렇게 쉽게 끝나지를 않습니다. 밤중에 등을 들고 기름 준비를 한 사람은 통과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패라. 그냥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냐? 열 처녀 중에 다섯 처녀는 성공, 다섯 처녀는 실패. 주님 오시는 순간에 간단하게 그렇게 둘러 나뉘어졌습니다.

그 모습은 순간적이나 그러나 그 순간 오기 전에 초저녁도 있었고 그 순간 오기 전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 긴 하루 해가 있었습니다. 오전에 오후에 미리 준비했더라면 오전과 오후의 준비가 늦어졌더라도 저녁되기 전 막바지 준비를 했더라면, 그 말은 많은 준비의 기회가 주어졌고 그 많은 준비의 기회를 잘 살렸더라면. 이게 원인이고 이게 진짜 전쟁이고. 내가 원하면 마음껏 기름을 준비할 수 있는 때에, 기회가 또 있고 또 있어 기회야 넘치는데 바로 그때에 기회가 넘치니 뒤로 미루는 사람, 기회가 넘치니 나는 부족하고 약하니 이럴 때 미리 준비해두자. 선택입니다. 두 길 중에 하나입니다. 이게 전쟁입니다. 여기에서 이미 결판은 났고. 그리고 밤중에 기름은 대낮에 준비할 수 있는 그 기회에 이미 이리 가느냐 저리 가느냐 이미 전쟁은 지나간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지막 순간 소돔과 가나안으로 나뉘는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도 그렇고, 노아 방주도 비 오는 날 방주 타면 되고 못 타면 못 가는 그런 순간으로 보이지만은 방주 준비에 최대 120년의 세월을 줬습니다. 마음껏 준비할 수 있는 때. 120년의 준비를 120년 다 걸려야 되는 것이 아니냐? 노아 부부는 120년이나, 노아의 세 아들들은 그 노아 방주에 참석한 게 120년 걸리지 않았습니다. 셈과 함과 야벳, 한 60년 기회가 그랬습니다. 노아 480살에 홍수 예고가 왔고 600세의 홍수입니다. 120년. 480에 홍수가 예고되었습니다. 그런데 셈 출생이 노아 600세입니다. 노아 500세입니다. 600세에 홍수 480세에 예언 그리고 500세에 셈이 출생을 합니다. 태어나던 날부터 노아 방주에 건설에 동참을 해도 노아는 120년이나 노아의 자녀들은 100년입니다. 스무 살은 되어야 마음껏 일했다 치고 그러면 80년으로 준비가 줄어듭니다. 노아는 120년 아들들은 80년 안팎. 120년 다 참가를 하지 않아도 뒤에 보태진 사람도 구원을 받았다. 계산이 그렇습니다.

주님 오셔서 이른 아침에 일 시킨 사람, 오전에 일 시킨 사람, 오후에 일 시킨 사람. 마지막에 이제 하루 해가 끝나기 직전에 불러다가 농장에 넣고 마지막 결산할 때에는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줬습니다. 기회는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기회입니다. 밤중이 되고 나면 준비의 기회를 주지를 않으십니다. 오늘 아침 이 아침이 우리에게 복된 것은 이 아침에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직 신앙의 환란은 없습니다. 이 아침은 기도해도 됩니다. 기도하는 이 아침이 전쟁입니다. 이 아침에 오시고 이 아침에 기도하고 이 아침에 준비하면 이 아침에 준비한 것으로 이겨야 되는 그다음에 실제 실현, 연단, 시험에서는 웃으며 감사히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전부 제멋대로인 세상이 될 것이라.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인간끼리 사랑은 넘치는데 하나님 사랑은 식어지리라. 성경의 사랑은 딴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입니다. 전부들 제 멋대로니 하나님 사랑은 줄어든다. 이게 불행한 시대입니다. 인간 사랑은 넘치고 하나님 사랑은 없어지고 인간들은 세상에 사랑이 넘친다 그러고 하나님은 사랑이 식어지리라. 사랑이 없어졌다 그럽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무턱대고 견디라는 말입니까? 여기 “끝까지 견디는 자는” 견딘다는 말은 계속하기가 어려울 때에 계속하라. 계속이라는 뜻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야고보서 1장 2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란 또 여기 견디는 것이란, 참고 견딘다는 말과 이것이 계속된다는 계속이라는 내용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인내는 계속이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계속이다. 그렇게 읽으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인데 하나님의 사랑은 식어지고 인간 사랑만 넘치는 시대에 무엇이 견디는 것인가? 하나님 사랑을 붙들고 놓지 아니하는 것. 하나님 사랑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는 것. 더 구체적으로 주일이 휴일 되고 주일이 모든 사람의 자기 좋은 날로 다 바뀌는 시대인데 주일을 끝까지 주님의 날 주일로 붙들고 가는 자, 놓치지 않는 자, 내주지 않는 자, 포기하지 않는 자, 주일을 주일로 주일을 주일답게 끝까지 붙들고 가는 사람. 그 사람이 끝까지 견디는 사람입니다. 예배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원하는 대로 다 흩어지고 난리를 난리들이 나는데 그러든 말든 예배는 하나님 앞에 조심이라. 하나님 앞에 조심을 붙들고 끝까지 나아가면 이것이 사랑이 식어질 때에 끝까지 견디는 자입니다.

성경 말씀 자체를 읽는 것은 골치가 아프고, 이런 신학 저런 상식 세상 지식으로 성경도 세상이 보고 세상 지식으로 해석하고. 또 성경의 말씀 몇 천년 된 것이라 몇 마디는 인용을 하나, 말씀 전체를 말씀으로 읽는 이런 일이 식어지고 이런 일이 없어지는 때에 이게 사랑이 식어지는 때에, 우리 교회도 나도 합류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말씀 붙들고 그대로 계속을 한다면 이것이 끝까지 견디는 자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끝까지 버티는 사람 계속 하는 사람은 천국 가고 나머지는 지옥 가는가? 믿는 사람은 아무리 실패를 해도. 주일 놀고 예배 짓밟고 성경 무시하고 기도 없이 살아도 믿는 사람은 정확하게 중생된 사람은 천국은 갑니다. 그러나 주일 없이 산 그날, 예배가 쉬어 보이는 그 자세, 성경의 말씀이 인간 지식보다 이게 못하게 생각되는 그 순간  그 기회 그 모든 생활은 그 생활 그 행동은 천국 가져가지를 못합니다. 버려둬야 됩니다. 기능적으로 부분적으로 건설적으로 구원과 실패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대충 믿어도 오늘만 포기되지 천국 가는 것은 상관이 없으니 문제가 있겠는가? 오늘 그 생각을 쉽게 하는 사람은 안 봐도 그 사람 내일은 더 할 사람 됩니다. 남은 인생 그렇게 살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 때문에 천국은 들어갈지라도 날 위해 피 흘려 몸 바쳐 죽은 주님 얼굴을 볼 때에 이런 주님이 이렇게까지 고난을 당하신 줄 알았더라면 내가 그러지 않았을 터인데. 그 사람의 천국 영원토록 평생 그 천국 되어집니다. 학교 다닐 때 쉽게 대충 다니다가 막상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성적표 때문에 졸업 성적 때문에 졸업장 때문에 인생 살며 후회될 때마다 그때 좀 해둘걸. 이게 쌓이고 쌓이며 그 후회 그 회환이 그 다음 자기 아이를 공부해야 된다고 들볶는 것입니다. 자기 닮은 아이가 자기처럼 공부 안 하지, 자기 닮은 아이가 옆집 아저씨 닮아 그렇게 공부하고 그러겠습니까? 해야 될 일을 하기 어려울 때에 이거 내 손으로 꺾지 않으면 자자손손 3대 4대 이어진다. 혀를 깨물고 하셔야 됩니다. 지금 내가 곁길 가면 내 밑에 자자손손 곁길의 곁길이 더 가게 됩니다.

롯이 소돔 갈 때는 웃으며 쉽게 갔습니다. 가족 때문에 가는 거지 뭐 제가 좋아 가는 건 아닙니다. 아브라함 삼촌에게 죄송합니다. 삼촌이 가셔야 되는데. 그러나 제가 가는 것은 제 뜻은 아닙니다. 가족 때문에 뭐 할 수 없어 그냥 가는 겁니다. 쉽게 갔습니다. 가고 보니 못 올 때를 왔습니다. 아내와 딸들을 붙들려 했으나 오기 전에 안 오는 것은 좀 더 쉽고 왔는데 바로 살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잘못 살았으면 소돔에서 맞아 죽을 일이지. 죄는 회개하지 아니하고 죄는 지어놓고 죄는 회개하지 않고 죄를 붙들고 도망을 나와 놓으니, 멋모르는 사람은 소돔 전멸에 세 식구가 피했으니 축복을 받았다. 이런 미혹 이런 거짓말을 하는데, 그 성에서 그냥 떨어지는 유황불비의 순간 맞아 죽으면 끝날 일을 살아나왔으므로 모압과 암몬이라는 천추의 불행과 험악한 꼴을 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세월이 가면 갈수록 자손이 뻗어나가 대대를 거쳐 하나님 나라의 구원 운동의 원수 노릇만 합니다.

성경의 모압과 암몬을 에스겔까지 끝까지 읽어봐 보시면 소돔을 가지를 말았든지 소돔을 갔으면 거기서 죽었어야 한다. 거기서 살아나온 것이 구원이 아니라 불행이었다.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끝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주의 길, 망할 길 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 기회 하나하나 즈려 밟고 끝까지 못 피할 자기 불행을 쌓아갑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문제입니다. 모든 고비와 전쟁은 결판은 마지막 순간이나 그 결판이 나는 그 순간 배경을 보면 많은 준비 많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기회 그 평소 그 좋을 때에 내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될 때에, 그때에 이럴까 저럴까 할 때에 바른 길 선택했으면 이게 전쟁에 이긴 것입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될 때에 저 길을 택했으면 전쟁 전에 이미 저버린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지는 때에 하나님의 사랑 주일과 예배와 성경과 기도를 붙들고 남들이 뭐라든지 뭐라든지 나와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 붙들고 끝까지 이어 갑시다. 하도 주변과 하도 사방이 다 그러니 이거 뭐 그냥 하나님의 사랑 그대로 붙들고 갈 수가 없는 희한한 시대라. 그래서 더욱 하나님 사랑 끝까지 계속하자는 말씀으로 한 주간 이어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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