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2.10.26 창46:1 가나안에서 애굽으로의 환경, 주님의 뜻인가 아닌가, 야곱의 확정과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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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2.10.26 창46:1 가나안에서 애굽으로의 환경, 주님의 뜻인가 아닌가, 야곱의 확정과 순종

관리1 0 92 2022.10.2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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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6 수새

제목 : 가나안에서 애굽으로의 환경, 주님의 뜻인가 아닌가, 야곱의 확정과 순종

찬송 : 117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본문 : 창세기 46장 1절 -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니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살아야 될 형편, 있어야 할 현실로 주셨습니다. 원래 아주 먼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 살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가나안에서 멀지 않은 하란이라는 곳, 아주 먼 갈대아 우르, 그 가운데쯤 되는 하란까지 왔다가 머물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중간에 어중간하게 머물지 말고 끝까지 가자고 데리고 나온 것이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의 신앙의 출발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그 하란이라는 곳에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하던 그 하란은, 원래 원 본토가 아니고 또 원래 조상 때부터 살아오던 곳이 아닙니다. 원 고향 원래는 갈대아 우르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한걸음씩 내려오다가 어중간하게 있을 때입니다. 기준에 따라, 원래 고향도 아닌데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넓은 범위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을 주셨고 가나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도 생사가 걸리는 문제가 있었고 또 당연히 하나님의 인도가 가나안이라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 이어 이삭도 야곱도, 가나안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여기 창세기 46장이 되면 야곱의 나이가 130입니다. 오래 살던 때라고 하지만은 살만큼 살아 인생의, 야곱이 146에 7에 죽나요? 130이니까 야곱의 나이 90% 이상을 살았을 때입니다. 야곱이 147입니까? 예. 147에 130년이면 90% 이상을 살았을 때입니다. 100살을 사는 오늘이라면 오늘 기준으로 봐도 90입니다. 80을 사는 기준으로 보면 70이 훨씬 넘는 때입니다. 그런 나이에 아무리 봐도 위의 형 10이 요셉을 애굽으로 넘겨버렸고, 아버지 몰래 그랬습니다. 또 요셉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들어보고 상황을 볼 때에 양식 사러 보낸 첫 번째 10명 그 중에 하나 시므온을 떼어버렸습니다. 아직까지 야곱은 몰랐습니다. 더 이상 앉아서 다 죽을 수 없으니 그 아끼던 베냐민을 또 따라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베냐민이 또 붙들렸습니다. 그런데 베냐민이 붙들린 대신에 돌아온 아들들이 애굽나라의 바로가 보낸 많은 준비물과 예물과 또 요셉이 살았다는 모든 이야기를 전부 들어볼 때에 아직까지 야곱의 눈으로 요셉은 보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애굽에 간 적 없고 애굽에 간 요셉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상황을 45장에서 딱 보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가 처음부터 있었고 과정 과정 전부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였고, 상황이 그렇고 흘러온 인도의 방향이 그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가나안을 떠나지 말라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오는 오랜 세월에 하나님의 한계가 가나안이고, 여러 가지 상황이 펼쳐지고 보니 7년 풍년이 오다가 7년 흉년이 이어지는 것도 이게 어떤 죄인, 어떤 인간의 관계된 것이 아니고. 천하가 그러니, 양식을 사러 갔던 10명의 아들의 1차 다녀온 것이 수상했고 그리고 두 번째 다녀온 상황이 딱 보니까 이건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46장 바로 앞에 27절,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 야곱에게 고하매” 아비 야곱이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 이것은 형들이 어떻게 중간에서 훔쳐올 수 없는 거고 연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보니까 족하도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요셉이라는 또 한 걸음, 또 다시 새로운 걸음 시대를 열어주는구나. 이렇게. 그 흔적, 그 인도 그 표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요셉을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이렇게 내려온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요셉이 보낸 수레를 딱 보니까, 그 선물 그 준비 그 시간 그 말, 모든 것이 보지 못했으나 앞날이 열렸습니다.

이제 야곱으로서는 가야 되겠는데, 아직까지 가나안 아닙니다. 전체적으로는 가나안 안인데 애굽 쪽으로 내려가다가 가나안을 벗어나기 전, 이제 한 걸음 더 가면 가나안을 벗어나고 애굽으로 들어갑니다. 그 시점, 그게 브엘세바입니다. “브엘세바에 이르러” 돌아가신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지 무슨 이삭의 하나님인가? 아브라함을 이은 이삭은 자기 주관으로 살지 않고 평생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걸어간 조용한 순종의 이름이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의 출발의 이름, 이삭은 이어지는 아브라함을 따라 고요히 문제없이 소리 없이 조용하게 그냥 걸어간 이삭입니다. 야곱은 인생이 파란만장하고 엉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그러지 않고,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딱 짚었습니다. 가나안에 살아야 되는 이 막중한 이 당연한 걸음에, 애굽으로 가라?

이건 하나님의 인도가 분명한데 영 내키지를 않습니다. 서툰 걸음 첫 걸음 아예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은 세상이 다른데, 130 이 나이에, 이미 야곱의 눈까지 멀었던 때입니다. 세상 살기에는 이제 앞이 보이지를 않는 때인데, 하나님의 인도가 그러니까 브엘세바까지 오기는 왔다가, 이 브엘세바에서 그 다음 마음이 망설여집니다. 그 야곱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밤에, 그 앞날이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그 와중에,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 야곱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두 번을 불렀습니다. 귀까지 먹은 야곱은 아닙니다. 잊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내가 너를 깜빡 놓쳐버리고 그러지 않는다. 확실하게 두 번을 불러, 야곱이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냥 여기 있나이다 이게 맞지. 야곱의 평생은 하나님이 불러도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제 멋대로 살았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야곱이 어디에 있는지 만유주 하나님이 몰라서 불렀고 몰라서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자세는,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데려가시면 따라가는 것이지. 이게 어떤 길인지 길을 모를 때에, 그때 그 뜻을 찾기 위해서 난리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인도가 확실할 때에는 그냥 여기 있나이다 가져가시고 알아서 하옵소서. 제단 위에 자기를 올려놓는 것이지,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첫째 둘째 출생의 순서부터 이것은 요동을 했습니다. 끝까지 노려보고 지켜보다가 이삭에게 내려가는 그 복을 중간에 새치기까지 했던 야곱입니다. 밧단 아람 20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놓으니까, 100살 쯤 되어서 아들 10명이 이번에는 또 야곱을 그렇게 해버렸습니다. 복잡한 가정입니다. 이제 130에 요셉의 모든 결론까지 다 듣고서야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말씀 하시면 입 닫고 따라 가겠나이다 이렇게 자세가 바뀐 것입니다.

3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나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인도하는 주권자라 나는 절대자라, 너는 야곱이 아니냐? 참 야곱의 이름이 오늘 우리들입니다. 네 아비 이삭도 순종했고 그리 인도하고 그렇게 따르는 것이 좋은 것이다. 지금 애굽으로 내려가는데 애굽으로 내려가기가 두렵고 이게 어설프고 이게 안 가본 것이고 생각 못한 것이고. 이 백성은 아예 도무지 이 상황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상황을 보니 가야 되겠고 이것은 아들이 불러가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딱 보니까 하나님의 만들고 인도하는 것이 맞고. 그런데 내려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사명과 살아온 모든 세월을 볼 때는 도무지 맞지를 않고 이 두 사이에 주저하는 자세

그 야곱에게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너 조상들까지도 한 번씩 가나안을 움직이는 바람에 일을 생겼던 것 아는데, 그 경험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신앙의 선배들도 이런 저런 경우에 그리 되더라. 그래서 이렇게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손해 보는 것이고 서툰 것이고 좋지 않은 것이라 다 그럴지라도, 내려가는 현재 너의 걸음은 하나님의 인도다.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에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육체의 이스라엘은 야곱, 낳아놓은 아이로 큰 민족이 되는 것이고, 신약의 우리는 육체의 자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너의 신앙의 훗날 너의 신앙의 결과 너의 신앙의 열매를 하나님께서 크게 만드실 일이 있는 것이라. 야곱의 애굽에 내려가는 이 때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 또 오늘 유명한 신앙가의 그런 인생의 큰 계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현실이 항상 이런 성격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인간적으로 내가 왜 여기에? 인간적으로는 내가 왜 거기에, 인간적으로는 내가 왜 저기를? 역사가 그렇고 인간이 그렇고 주변이 그렇고 모든 사람이 다 그럴지라도, 그건 참고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인도냐 아니냐는 것을 자꾸 따지는 것이지. 하나님의 인도 아닌 인간적인 통계와 일반적으로 그렇다 이것을 하나님의 인도가 보일 때까지 들이밀면 그때부터는 발람 꼴 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올 때에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왔다고 맨날 말씀 드렸습니다. 그냥 가라니까 온 것이지. 또 여기 있는 분들은 막 그냥 환영을 한다고 생 모두들 얼마나 그때 환영 제일 많이 했던 분들이 강단 위에 올라오고 멱살 잡고 별별 일을 다 했던 분들입니다. 그렇게까지 그럴 일은 아닌데. 또 그다음 일 마치면 나는 몇 달 있었으니까 가면 되는데,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전화까지 해서 붙들고 늘어진 분 그 뒤에 저한테다 대고 신풍교회 더러워서 떠난다는 말을 몇 천 번을 했습니다. 한두 번 하고 말지 아무리 그렇다고 그것을 10년 20년, 막 한번 전화를 하면 2시간 3시간 울어 대면서 성암 교회가면 권사 준다더라 뭐 대전교회 갔다 왔다 뭐 여상교회 갔다 왔다 뭐 안 돌아다닌데 없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그러는 것 아닙니다. 아직까지 제가 회개를 못 받았습니다. 오기도 민망해서 못 올 것입니다. 편지를 써서라도 그런 것은 사과를 하고 그러지 않겠다고 하고 하나님 앞에 가야 될 것입니다. 그 다음 날은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결혼도 인간적으로 이 나이에 이렇게 살다보면 뭔 그런 일을? 야곱도 130에 애굽 가는 것 아닙니다. 나이가 130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움직이지 말라 그런 환경을 받은 야곱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애굽에 양식 사러갔던 아들들이 돌아 와가지고 요셉 이야기를 하는데 딱 들어보니까 이것은 130살이 된 야곱으로서도, 요셉이 보낸 애굽의 수레를 보니까, 이건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주변에서 모두들 이거는 뭐 도무지 그럴 일이 아니라 그래도 하나님께서 46장 1절로 3절까지 가자 하면, 가다가 중간에 죽어도 뭐 뒤에 이리되든 저리 되든, 신앙이란 믿음이고 믿음이란 순종입니다. 내 주관의 순종이 아니고, 어느 돈 어느 인심 민심 누구의 지도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여기에도 지금 아들들이 와서 하는 말입니다. 애굽에서 보낸 수레를 본 것입니다.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봐도 그 뒤에 그 배경은 하나님이 주신 환경의 하나님의 인도로 보입니다. 그러면 그만 다 던져놓고 깨끗하게 깔끔하게 예하고 마치 애굽 안이 가나안처럼 전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이 들어갈 때에 70여명 들어갔으나, 그때 들어갈 때에 상상 못하는 그 훗날 그 뒷날은 또 하나님께서 따로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교회 전체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런 과제가 하나 있다면, 또 그 중에 한분이 가정적으로 떠맡고 출발을 해야 된다며 아무리 봐도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 외면한다고 외면이 되겠습니까 또 그것을 누가 대신한다고 대신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냥 가는 길은 명확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결혼식 때문에 별관 또 여기 본관, 간단하게 청소도 좀 하시고 정리도 한꺼번에 하시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이 많지를 않아서 나중에 사진 찍을 때 앞에 한 양쪽에 한 의자 3~4개만 잠깐 빼면 되니까, 뭐 바쁘게 그럴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부산에 손동희 권사님이 구순인데 지금 건강도 안 좋고 정신상태도 좀 약간 혼동스럽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누워서라도 오겠다 해서 지금 오신다는 연락받았습니다. 또 둘째 딸은 다리 골절, 아마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일 마음을 기울이는 분인데 가족들이 다 오실 것입니다. 가정별로 아마 대표가 한분씩 오니까 한 서너 분이 될 것 같은데, 이 땅 위에 아마 가족들이 모이는 마지막 모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여러 가지 큰 인사를 하실라 그러는 것을, 그냥 수요일 저녁예배니까 사진 한 장외에는 없다고 그냥 다 말렸습니다. 소리 없이 마음껏 마음 정성 기울여서 모시면 좋겠습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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