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2.10.22 요8:23 하늘의 지식, 땅의 지식. 지식의 출처에 따라 방향 목적 입장의 완전한 차이 *결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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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2.10.22 요8:23 하늘의 지식, 땅의 지식. 지식의 출처에 따라 방향 목적 입장의 완전한 차이 *결혼관

관리1 0 105 2022.10.2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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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교 소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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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1022 토새

제목 : 하늘의 지식, 땅의 지식. 지식의 출처에 따라 방향 목적 입장의 완전한 차이 *결혼관

찬송 : 158장(내 주의 지신 십자가)

본문 : 요한복음 8장 23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원래 하나님 한 분의 창조입니다. 그러면 만물은 위에서 난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원인이 되고 시작이 되면 땅에서 난 것입니다. 아래쪽에서 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간적으로 위가 아니라 가치적으로 권위적으로 또 존재적으로 위입니다. 부모 키보다 요즘 아이들 키가 더 큽니다. 키라는 높이가 큰 거지 인격이 높고 큰 것은 아닙니다. 할머니가 오그라져 제일 작을 것이고 아들들이 그 다음일 것이고 요즘 한 스무 살 되는 손주들 키가 아주 큽니다. 길이를 재면 갈수록 커지지만은, 잘 먹으니까. 그렇다고 기린이 인간보다 존재적으로 가치적으로 또 지식적으로 더 높은 것은 아닙니다. 음식이 좋으면 또는 조상 종자가 좋으면 그건 큰 것입니다. 주님이 위에서 났다. 주님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것입니다. 출처가 위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들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 위에 오셨으나 그 몸이 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위에서 난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위에서 만들어 위에서 났으나 죄를 지어 타락함으로 진리에서 멀어졌고 지옥을 향하여 걸어가는 향방적으로 하나님과 반대며 지옥을 향하는 우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을 표시해서, “주님은 위에서 났으며 우리는 세상에 속하였고” 또 “주님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주님이 위에서 났다 했으니까 우리는 땅에서 아래에서 난 것입니다. 죄악 가운데 난 것입니다.

오늘 아침은 성경에 대한 말씀을 살피며 마지막으로, 성경을 많이 읽을 것. 그리고 성경 그대로 있는 대로 다 믿을 것. 그리고 하나씩 살아가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어집니다. 왜 항상 지참하라 그러느냐, 사람이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말씀으로 살고 말씀을 믿고 살아가다가 건강 문제나 가정 문제나 감당 못할 세상에 큰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손에 쥐고 있는 이 성경이 뭔 절 믿는 사람 목탁처럼 천주교 믿는 사람 묵주처럼 불신자들 뭔 부적처럼 효력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손에 쥐고 있는 이 말씀 성경책이 아니라 보이는 책 손에 쥔 책, 이 안에 들어있는 말씀, 말씀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평소에 맨 정신으로 판단하고 대처할 때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대처할 때는 책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이 없는데, 너무 급박한 일 너무 중한 일 감당 못한 일이 턱 닥쳐버리면, 그때는 말씀 없이 내 속에서 나오는 것 내 인간으로 나오는 것 내 세상적인 생각과 행동이 나오게 되어 있는데, 손에 쥐고 있는 이 성경 때문에 이 성경 안에 기록해 주신 말씀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이렇게 막다른 길 낭떠러지 같은 길 넘어갈 수 없는 벽을 만날 때,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나와 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 그리고 이 현실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이 현실에 주권자 인도자 이 현실을 만든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라고 했을까 그러면서 아는 말씀 또 기억하는 말씀 그 말씀으로 잠깐 생각해보면, 여기 새벽 예배 앉은 정도의 분들이면 따로 설교 들을 것 없고 심방 받을 것 없고 상담 받을 것 없이 내 속에 쌓여진 말씀만 가지고도, 이 땅 위에 살아가며 어떤 놀랄 일 감당 못할 일 억장 무너질 그런 일을 만나더라도 감사할 수 있고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리고 내가 해야 될 말과 행동 바르게 갈 수 있고, 그런 상황 속에 그런 대처의 모습을 보며 참 말씀이라는 것이 좋구나.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저런 환경에 저 정도 되면 이런 말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하지 누가 저런 말을 하고 저런 자세를 가지고 저런 행동을 하겠는가. 없는 가운데 천지를 만든 그 능력이 땅에서 났고 아래에 속한 일반 인간 속에 들어있는 자기중심의 악과 살아온 인생의 모든 상식으로 볼 때, 저런 말을 들을 때 이런 행동을 하고 저런 행동에 대해서 이런 대처를 할 때 창조의 능력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과 능력으로 붙들고 저렇게 대처하게 하는구나. 이게 빛이 되는 것이고 그게 빛이 되고 말고를 떠나서 나는 말씀을 알았으면 그 말씀 붙들고 사는 길 복된 길 걸어가지, 이만큼 말씀 알고 알아야 되고 또 다른 사람을 지도한 사람이 막상 자기 일 닥치니까 그냥 평소에 말하고 평소에 걸어온 것과 반대의 길을 걸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2001년 3월에 사택에 사고 당할 때 목회자들한테도 심방 오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심방이라는 말은, 어 사택에 사고를 당했으니 지금 목사가 슬프다는 말이고 목사가 위험한 일을 당해서 지금 시험들 거니 와서 위로를 하라는 말인데, 그게 위로를 받을 만한 큰 일 같으면 평소 목사 설교 다 거짓말이라 그 뜻입니다. 일 닥쳤을 때 심방 가야 될 목사도 있는 거고 적어도 뭐 그 정도는, 이 사고를 당했으니 이 병원 안에 있는 환자를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이건 물어봐야 되고 도움 받아야 되고 연구를 하지만은 사모가 위기에 처했으니 이제 목사가 슬플 거다 낙망이 될 거다 그래서 위로를 해야 될 거다. 그 순 욕이 되는 겁니다. 나 그 정도 아니니까 욕하러 오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데려가면 데려가는 거고 뭐 호스 여러 개 꼽아놓고 그냥 한 달 가면 한 달 가는 거고 10년 가면 10년 가는 거고 그건 병원과 의료와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고, 제가 의료인 아니고 전대병원 응급실보다 더 나은 병원 데려갈 정도의 돈 없는 거고 그건 현실이고, 그러면 사랑은 사랑이고 동정은 동정이고 그다음 대처는 딱 뻔 한 것입니다.

새벽 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은 자기 일 집안 일 당할 때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슬프겠느냐 뭐 위로를 받아라. 하나님의 위로만 위로지 인간의 위로가 위로가 된다는 순간 인간의 위로가 위로가 되는 순간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광화문 네거리에 뭐 이쪽저쪽 100만 명 모여 떠들어보나, 친구 따라갔고 뉴스가 뜨더니 떠들고 세상이 그러니 가을 되면 쌀쌀하고 겨울 되면 춥고 봄 되면 따뜻하고 환경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는데 온도야 그렇지만은, 신앙도 봄이 되면 바람이 들어 밖으로 돌아 댕기고 신앙도 여름 되면 덥다고 주저앉아 버리고 신앙도 겨울 되면 얼어붙어 꼼짝 못하고 그리 돼야 되는가. 사람의 몸은 환경 따라 건강 따라 그럴 수 있지만은 신앙의 감사와 신앙의 회개와 신앙의 사명이라는 것은 그건 뭐 그냥 그건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다음 수요일날 결혼식이 있을 것 같은데, 아마 우리 신풍교회 역사의 제일 귀한 결혼식이 되지 않을까 그 말은, 가장 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니까 뭐 큰 결혼식이겠지. 탈렌트 둘이 만나가지고 히히닥거리는 거야 뭔 기쁠 일이지 뭔 십자가가 있고 또 교회가 그런 것은 좋은 일이라고 그러겠습니까. 이런 데서 그런 것 있겠습니까. 죄인들의 죄악의 낙이니 그건 예배당 밖에서 히히닥거리다가 그러든 말든 그리 되는 거고. 교회의 결혼이란, 이 결혼이든 저 결혼이든 뭐 좋아 보이던 안 좋아 보이던 전부가 주님은 십자가 앞서 걸어가셨고 나는 뒤따라 갈 건데, 혼자 가는 길은 개인 교회라 그럽니다. 또 이미 결혼한 분들의 걸어가는 걸음은 가정교회라 그럽니다.

그런데 이제 첫 신혼이든지 재혼이든지 혼자 걸어가다가 다른 사람과 부부가 되고 그리고 가정을 이룬다면, 이제부터 십자가는 나 혼자의 십자가가 아니라 상대방까지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십자가입니다. 불신자는 혼자보다 둘이니까 좋겠다고 히히닥거리지마는, 믿는 사람은 12제자가 주님 앞에 다 도망갔습니다. 그들에게 한 사람 더 붙들고 걸어가라고 했다면 더 일찍 주저앉고 더 일찍 도망갔을 것입니다. 12이 한 명 한 명이 주님을 따라가도 급하니까 도망을 갔는데 하나씩 업고 있었더라면, 베드로 같은 사람은 결혼 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따라가는 이 길에는 가정을 떠나 지금 혼자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베드로에게 하나를 더 업고 주님 따라 십자가 걸어가라면 더 일찍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혼자니까 그래도 겟세마네까지는 따라간 거지. 이게 신앙의 길입니다. 이거는 기본이고 이거는 당연하고 전부인데, 뻔한 걸 가지고 아 혼자 가도 뭐 어려운데 하나 더 있으니까 이렇다 저렇다 징징 짜고 울고 짜고 그러면, 여덟 살 되면 학교를 가는 건데 학교를 갈 때마다 뭐 오늘도 숙제해야 되냐 뭐 오늘도 또 뭐 걸어가는 길에 또 차가 오고 갈 건데 그래도 가야 되냐, 오늘은 바람이 분다 뭐 오늘은 뭐 이렇다 저렇다 그래 싸면, 그 아이의 건강에도 좋지 않고 그래 가지고 그냥 학교 가면 그거 공부도 될 리가 없고 밀려서 가서 앉아 놓으면 하루 종일 딴 생각하지 그거 뭐 공부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는 것입니다.

갈 수밖에 없다면 피할 길이 없다면 이왕이면 이건 해야 될 일이니까 마음먹고 해버리면 더 빨리 더 좋아집니다. 세상도 그런데, 주님이 앞서 걸어가며 내가 걸어간 길 길 만들어 놓고 다 해결해 놓을 테니까 남은 십자가만 지고 오너라. 주님의 십자가는 사람이 대신할 수는 없는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완전의 법을 다 해결해야 되고 악령의 주권적이고 왕권적인 모든 시험을 다 이겨야 되고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안고 가야 되는 그런 십자가입니다. 그거는 인간이 눈꼽만큼도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걸어가고 완성한 십자가의 길을 뒤따라가는 것은 그건 게으르지 않으면 됩니다. 그건 자기중심이 되어 눈만 뒤집어지지 않으면 그거는 그냥 가는 길입니다. 그건 죽으려고 말씀을 어기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냥 내 마음 내 행위 내게 맡긴 것만 또박또박 걸어가면 나머지는 전능의 십자가 성령이 붙들고 알아서 해결하십니다.

결혼의 한 쪽은 제가 설명하기가 어려운 쪽이고 결혼의 한 쪽은 저하고 한 길을 함께 걸어가는 분이니 뭐 이말 저말 할 것 없이, 우리 공회 목회자들도 아이들 고등학교까지는 교회 돈으로 갈 수 있겠다.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그 뭐 할라고 학교를 댕길 거냐, 다닌다면 그 아이가 벌써 나이가 됐으니 지가 알아서 벌어서 공부를 하든지 장학금을 받든지 그렇지. 교회 돈 가지고 세상에 대학 공부 대학 등록금을 주다니 우리 그런 것 하지 말자. 약속하고 좋다 하고 걸어간 길입니다. 그런데 몇 발자국 걸어갔더니만 뭐 이러니 저러니 울어 쌌는데 그냥 아 울라면 그냥 진작 저쪽으로 가지 왜 따라 나섰냐. 등산 가는 사람이 산 올라가면 땀나는 거는 당연한데 지리산 등산 간다고 준비해서 출발해 놓고 뭐 까풀이 이렇게 높으냐 뭐 아직도 산이 남았냐 등산을 왜 나왔냐 그 말이죠. 땀 흘리려고 나왔는데 높은 데 가려고 나왔는데. 땀 흘려 높은데 올라가고 나면 느껴지는 성취감 때문에 그 좋다고 나와 가지고 왜 중간에 말이 많으냐. 다른 사람들한테 다 그냥 그렇게. 목회자가 그런 겁니다.

새벽 예배 나오는 분들은 십자가의 길 주님 걸어가셨고 그 길 걸어가며 매양 새벽마다 한적한 곳에 나가 늘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침에 일부러 나오는 것입니다. 알면서. 그런데 새벽 예배를 나오면서 계산을 해보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건강에 좋고 불신자도 좋답니다. 만사 좋은 게 많답니다. 저녁에는 죄를 짓고 사람이 새벽에는 죄를 안 짓게 되어 있답니다. 주님도 새벽마다 한적한 곳을 찾았습니다. 주님도 기도했습니다. 뭐 하나 둘 생각해 보니 얼마나 많은지. 옛날로부터 믿는 세계에 새벽예배란 건강에는 무조건 다 좋더라. 이건 뭐 신앙이 있고 없고 이건 상식입니다.

결혼을 두고 둘 다 이러시고 저러시고 그건 뭐 저 생지옥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건 북쪽처럼 되는 길입니다. 그냥 주님 먼저 걸어간 길 뒤만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 행복이 있고 그 안에 천국이 있고 그 안에 주의 도우심이 있고 그 안에 모든 것 다 있습니다. 뭐 두 말할 것 없습니다. 내게 주지 않은 것 할 것 없고 내가 할 수 없는 것 할 것 없고 내가 할 걱정 아닌 것 할 것 없고. 내가 내 중심 내가 내 걸어가는 걸음만 또박또박 붙들고 걸어가면, 하늘과 땅과 상대방 마음과 모든 걸 다 동원하여 혼자 가면서 못 고치는 것 고쳐줄 것이고, 혼자 살면서는 절대로 못 고치는 걸 고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나를 더 붙이는 것입니다. 수술실입니다. 세상에 결혼식이란 수술 예약하고 지금 수술방 들어가는 건데, 이게 좋다고 뭐 히히닥거리니 그 결혼 그거 깨지든 아니면 울고불고 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혼자로 못 고치니 하나를 더 붙여 하나님께서 그 상대방을 칼로 삼아 나를 고치겠다는데, 아 왜 상대방이 칼을 들었냐 뭐 째냐 바늘로 짚냐 뭐 오만 소리를, 야 인간아 수술을 해야 너 지금 더 나아지는데 수술하기 싫어?

결혼의 첫째, 하나님께서 혼자 못 고치는 것 고쳐주려고 하나를 더 붙여 놓은 것입니다. 두 번째 혼자 배울 수 없는 것 둘이라야 알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 혼자로서는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절대 못 배우는 것, 그거 가르쳐주려고 붙여놓는 겁니다. 둘. 고치고 배우고. 그 다음 혼자 걸어가서는 외다리처럼 토끼뜀밖에 못 뛰는데 두 발이 되면 자라 가는데 더 낫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하나를 데려가는 것은 이제 더 배울 것 없다. 그만 배워라 그 말입니다. 이것이 슬픈 일이오 이것이 아쉬운 일이오 이것이 참 애석한 일인 것입니다. 둘이 함께 가며 고치고 배울 게 있는 건데, 넌 그만 혼자 배우고 말아라. 이제 시험지 내라. 더 이상 쓸 거 없다. 시험 보는 학생에게 종 쳐버렸습니다. 이게 아쉬운 겁니다.

그런데 둘 중에 하나 데려가는데 남자를 데려가면 여자들은 뭐 살판났다고 그냥 참 제정신 아닌 말을 하는 거지. 시험지를 빼곡하게 100점짜리를 써서 제출하고 시험 끝났다고 좋아하는 거야 그거는 좋지만은, 시험지에 절반도 못 적었는데 종이 치니까 아이 시험 끝났다 해방이다. 성적표가 날아갈 건데. 여자 혼자 살면 요새 같이 이렇게 좋은 세상이 어디있냐고 그냥 생 좋아서 난리입니다. 축하를 하고. 딱 속으로는 미쳤네 소리가 나오지만은, 말이 험하다 그래 싸니 그냥 웃고 말지 어떡하겠습니까.

또 남자는 혼자되니 막 슬프다고 우거지상을 하고 온 시내에 다 그냥 누가 보더라도 저렇게 슬픔을 당하는 것 보니까 저 남자는 분명히 여자가 없는 것 같다. 표를 내고 댕깁니다. 이건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난리입니다. 시험장에 들어가 가지고 남의 것 컨닝하는 사람입니다. 아이 주변에 컨닝할 공부 잘하는 사람 모범답안이 주변에 있어야 갖다 뱉길 건데 혼자 시험을 보자니 뭐 그냥 컨닝 할 게 없다고 하나는 웃는 겁니다. 이게 아래에서 나고 땅에서 나고 밑에서 나면 다 이 모양입니다.

못 나도 중생 된 사람 못 나도 진리의 지식을 바르게 배운 사람은, 여자는 혼자되면 더 이상 고쳐질 것 없다 이러니 참 탄식이다. 지난 날 100점입니까? 100점이 아닌데. 함께 살며 고치고 함께 살며 배울 기회를 끊었으니 이제 홀로이 둘처럼 걸어가야 되니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구나. 지난날을 후회하며 개인 신앙이라도 하나 더 챙기라는 뜻입니다. 이게 위에서 내려온 지식입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식 아래에서 나온 지식 이 두 지식의 충돌을 제대로 가르치는 데가 없었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전 목사님께 배우고 공회에서 배웠기 때문에 그래서 목사님과 공회가 이렇게 고마운 것입니다. 지금도 다른 데 한 번씩 둘러보는데 아예 근처도 없습니다. 위에서 나온 지식 위로 데리고 가는 지식.

둘이 살다가 하나가 죽어버리면 무엇이 애석한 일이냐, 저 인간 때문에 내 속에 고칠 게 있고 저 인간 아니고는 못 고치는 건데 그게 없는 사람이 없는 건데 하나를 데려가셨으니, 시험 답안 다 적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냥 됐다 더 이상 적지 말아라. 50점에서 끝이 나니 이게 탄식할 일입니다. 이런 것이 위에서 내려온 결혼 지식입니다.

공회 신앙을 한두 개라도 제대로 딱 들은 사람은, 천하 어떤 식민지 어떤 미개지 어떤 아프리카 어떤 무작한 동네 어떤 막가는 사람한테 던져놔도, 아람나라 나아만 대장한테 포로 잡혀간 여자아이보다야 더 슬픈 일이겠습니까, 그보다야 낫지. 그건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데 원수의 나라인데. 또 요셉처럼 팔려갔는데 하필이면 또 감옥까지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속에서 기쁨과 감사와 소망을 끌어낸 것이 위에서 나온 지식입니다. 그 안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아이고 내 팔자야 하고 엉 울고 앉았으면 그거 아래에서 나온 거니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보디발 아내를 죽이고 보디발을 죽이고 고향으로 돌려보내도 그거는 더 슬픈 일입니다.

우리 받은 말씀 우리 걸어간 길은 이건 뭐 심방도 필요 없고 이런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한 말씀 한 말씀 이렇게 새기고 있는 것입니다. 따로 모시고 이말 저말 그냥 뭐 설명해봐야 다 이런 말입니다. 그냥 딱 이거 하나 알면 아무 말 들을 것 없이 주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그 길을 또 귀한 분들이 하나 걸어갔고 둘 걸어갔는데 뭐 하나 둘 걸어간 그 뒤를 갖다가 그냥 솔솔 따라가는 길, 저 사람 때문에 내 속에 못 고칠 걸 기어이 고치고 오라 하시는구나. 그냥 주님이 더 이상 고칠 것 없다 그런 줄 알았는데, 한 번 더 기회 줄 테니 마저 고치거라. 남은 것 고치라. 그러면 감사합니다. 그러는 거고. 그리고 들여다보면 뭐 다 정답 보고 뱄기는 건데 뭔 어려울 게 있습니까, 감사히 걸어가면 되는 거지.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아이들 직장도 뭔 윗사람이 그렇다 사장이 월급이 짜다 뭐 길이 이렇다 저렇다 안 되는 소리 술술 내놓으면 그거 맞춰 줘봐야 또 그 소리 할 사람입니다. 아이 뭔 남의 집에 돈 벌러 갔는데 이 정도야 당연하지. 이 정도 아닌 데가 어디 있느냐. 이 사람 앞에는 모든 직장은 열린 문입니다. 결혼도 직장도 학교도 기술도 아니 안 배울 기술 모르는 기술 새로운 기술 배우는데 그게 어렵지 어떻게 새로운 기술 배우는데 그게 쉬운 게 있냐. 배우는 게 쉽고 재미있으면 그건 기술 아닙니다. 주색잡기라고 그러지. 배우는데 시간이 들고 어렵고 힘이 드니 이게 배울 만하고 배워놓으면 써먹는 거지. 뭐든지 원리가 그렇습니다. 간단합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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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제목-khr)



221022 토새

요 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두 출처

1. "나는 위에서 났으며"

①자존자 (모든 원인)
원래 하나님 한 분의 창조이다. 그러면 만물은 위에서 난 것이다. 이 땅 위에서 원인이 되고 시작이 되면 땅에서 난 것이다. 아래 쪽에서 난 것이다.

②지존자 (높음)
하나님은 공간적으로 위가 아니라 가치적으로 권위적으로 또 존재적으로 위이다. 부모 키보다 요즘 아이들의 키가 더 크다. 키라고 하는 높이가 큰 것이지 인격이 높고 큰 것은 아니다. 할머니가 오그라져서 제일 작을 것이고 아들들이 그 다음일 것이고, 요즘 20살 되는 손주들의 키가 아주 크다. 길이를 재면 갈수록 커지지만은, 잘 먹으니까. 그렇다고 길이니 인간보다 존재적으로 가치적으로 또 지식적으로 더 높은 것은 아니다. 음식이 좋으면, 또는 조상 종자가 좋으면 그건 큰 것이다.

③도성인신 (그대로)
주님이 위에서 났다. 주님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다. 출처가 위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들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 위에 오셨으니 그 몸이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위에서 난 그대로이다.

2. "너희는 아래서 났고"

①존재는 하늘 (창조된)
우리는 위에서 만들어 위에서 났으나,

②죄로 인한 하락 (주님과 반대)
죄를 지어 타락함으로 진리에서 멀어졌고 지옥을 향하여 걸어가는 향방적으로 하나님과 반대며 지옥을 향하는 우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을 표시해서 주님은 위에서 났으며 우리는 세상에 속하였고, 또 주님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주님이 위에서 났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땅에서 아래에서 난 것이다. 죄악 가운데 난 것이다.


■ 성경은 하늘의 하나님이 출처이기에, 성경으로 만사 해결이 가능해야 함

1. 성경으로 만사 해결 방법

①4가지(많이 읽고, 다 믿고, 하나씩 실행, 항상 지참)
오늘 아침은 성경에 대한 말씀을 살피며 마지막으로, 성경을 많이 읽을 것. 그리고 성경 그대로 있는대로 다 믿을 것, 그리고 하나씩 살아가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어진다.

②항상 지참의 효력 (기억하라) 
왜 항상 지참하라고 그러느냐? 사람이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말씀으로 살고 말씀을 믿고 살아가다가 건강 문제나 가정 문제나, 감당 못할 세상의 큰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손에 쥐고 있는 이 성경이 무슨 절 믿는 사람 목탁처럼 천주교 믿는 사람 묵주처럼, 불신자들 무슨 부적처럼 효력이 있다라는 말이 아니라, 손에 쥐고 있는 이 말씀. 성경책이 아니라 보이는 책 손에 쥔 책 이 안에 들어 있는 말씀, 말씀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일이 닥쳐서
평소에 맨 정신으로 판단하고 대처할 때에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대처하고 책 있거나 없거나 상관 없는데 너무 급박한 일 중한 일 감당 못할 일이 턱 닥쳐버리면,

⒝튀어나오려 할때
그 때는 말씀 없이 내 속에서 나오는 것 내 인간으로 나오는 것, 내 세상적인 생각과 행동이 나오게 되어 있는데,

⒞손에 쥔 말씀으로
손에 쥐고 있는 이 성경 때문에 이 성경 안에 기록해주신 말씀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이렇게 막 다른 길 낭떠러지 같은 길 넘어갈 수 없는 벽을 만날 때에,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나와 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 그리고 이 현실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이 현실의 주권자 인도자 이 현실을 만든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라고 했을까?

⒟기억하고 생각
그러면서 아는 말씀, 또 기억하는 말씀, 그 말씀으로 잠깐 생각해보면 이 새벽예배 앉은 정도의 분들이면 따로 설교 들을 것 심방 상담 받을 것 없이, 내 속에 쌓여진 말씀만 가지고도 이 땅 위에 살아가며 어떤 놀랄 일 감당 못할 일 억장 무너질 그런 일을 만나더라도, 감사할 수 있고,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리고 내가 해야 될 말과 행동 바르게 갈 수 있고. 그런 상황 속에 그런 대처의 모습을 보며 참 말씀이라는 것이 좋구나.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저런 환경에 저 정도 되면 이런 말 이런 행동하지 누가 저런 말과 행동을 하겠는가? 없는 가운데 천지를 만든 그 말씀이 땅에 속하고 난 인간 중심의 자기 속의 악과 살아온 인생의 모든 상식으로 볼 때, 저런 말을 들을 때에 이런 행동을 하고 저런 행동에 대해서 이런 대처를 할 때에 창조의 능력의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과 능력으로 붙들고 저렇게 대처하게 하는구나. 이게 빛이 되는 것이고 그게 빛이 되고말고를 떠나서 나는 말씀을 알았으면 그 말씀을 붙들고 사는 길 복된 길 걸어가지,

2. 정말 자기 문제 앞에서 말씀의 효력을 써먹을수 있는가?

①평소 책임
이만큼 말씀 알고 알아야 되고 또 다른 사람 지도하는 사람이, 막상 자기 일 닥치니까 그냥 평소 말과 평소 걸어온 길과 반대의 길을 걸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효력,심방 불필요)-사택의 경우
2001년 3월에 사택 사고당할 때에 목회자들에게도 심방 오지 말았다. 심방이라는 말은 사택 사고 당했으니 지금 목사가 슬프다는 말이고 목사가 위험한 일을 당해서 지금 시험들 것이니 와서 위로를 하라는 말인데, 그게 위로를 받을 만한 큰 일 같으면 평소 목사 설교 다 거짓말이라 그 뜻이다. 일 닥쳤을 때 심방가야 되는 목사도 있는 것이고 적어도 그 정도는 사고 당했으니 이 병원 안에 환자를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이것은 물어봐야 되고 도움 연구를 하지만은, 사모가 위기에 쳐했으니 이제 목사가 슬플 것이다 낙망할 것이다 그러니 위로하자 그것은 순 욕하는 것이다. 나 그 정도 아니니 욕하러 오지 말라 했다. 하나님이 데려가면 데려가는 것이고 호스 꼽고 한달이면 한달 10년이면 10년, 그건 병원 의료와 하나님의 결정에 달린 것이고 제가 의료 아니고 전대 병원 응급실 더 나은 병원으로 데려갈 돈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러면 사랑은 사랑이고 동정은 동정이고 그 다음 대처는 딱 가는 것이다.

②감사,회개,사명은 환경과 별개
새벽예배 참석하는 분들은 자기 일 집안 일 당할 때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슬프겠느냐 위로를 받으라. 하나님의 위로만 위로이지 인간의 위로가 위로가 된다는 순간, 인간의 위로가 위로 되는 순간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사람이다. 광화문 네거리에 백만명 떠드나보나 친구 따라갔고 뉴스가 떠드니 떠들고 세상이 그러니 가을 되면 살쌀하고 겨울되면 춥고 봅되면 따뜻하고 환경 하자는대로 끌려가는데 온도야 그렇지만은 신앙도 봄이 되면 바람 들어 밖으로 돌아다니고 신앙도 여름되면 겨울되면 그래야 되는가? 사람의 몸은 환경 따라 건강 따라 그럴 수 있지만은 신앙의 감사와 회개와 사명이라는 것은 그것은 뭐 그냥 그냥 그대로 가는 것이다.


■ 위에서 내려온 결혼 지식

1. 귀할수록 큰 십자가
다음 수요일날 결혼식이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신풍교회 역사에 제일 귀한 결혼식이 되지 않을까? 그 말은 가장 큰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니까 큰 결혼식이겠지. 탤런트 둘이 만나서 희희낙은 기쁠 일이지 무슨 십자가가 있고 무슨 교회가 좋은 일이라 할까 이런데에서 그런게 있을까? 죄인들의 죄악의 낙이니 예배당 밖에서 희희낙 거리다가 그러는 것이고.

(더 큰 십자가)-상대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무거움
교회의 결혼이란 이 결혼이든 저 결혼이든 좋아보이든 아니든 전부가 주님은 십자가 앞서 걸어가셨고, 나는 뒤따라 갈 것인데 혼자 가는 길은 개인 교회라고 한다. 또 이미 결혼한 분들의 걸어가는 걸음은 가정 교회라고 한다. 그런데 이제 첫 신혼이든지 재혼이든지 혼자 걸어가다가 다른 사람과 부부가 되고 그리고 가정을 이룬다면, 이제부터 십자가는 나 혼자의 십자가가 아니라 상대방까지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십자가이다. 불신자는 혼자보다 둘이니까 좋겠다고 희히낙 거리지만은 믿는 사람은 12제자가 주님 앞에 다 도망갔다. 그들에게 한 사람 더 붙들고 걸어가라고 했다면 더 일찍 주저 앉고 도망갔을 것. 12명 한명 한명이 주님 모시고 가다가다 던져버렸는데 하나씩 등에 지고 잇었더라면. 베드로도 결혼했으나 혼자 나와 있었는데 같이 있었떠러마녀 더 일찍 주저 앉았을 것. 혼자니까 겟세마네까지 갔을 것.

(기본 상식)-신앙은 홀로 가는 것
이게 신앙의 기본이고 당연인데. 뻔한 것을 가지고 혼자라서 힘들다고 징징 짜고 그러면 학교갈 때마다 오늘도 숙제해야 되나 오늘도 걸어가는 길에 차가 오고갈 것인데 그래도 가야 되냐? 오늘은 이렇다 저렇다 그러면, 그 아이의 건강에도 좋지 않고. 그래가지고 그냥 학교가면 공부도 될 리가 없고. 밀려서 가서 앉아놓으면 하루종일 딴 생각하지 공부가 눈에 들어올리 없는 것이다. 가 수 밖에 없다면 피할 길이 없다며 이왕이면 이것은 해야 될 일이니 해버리면 더 좋아진다. 세상도 그런데

2. 또박 또박 따르면 말씀이 해결
주님이 앞서 걸어가며 내가 걸어간 길 만들어놓고 해결해놓을테니 남은 십자가만 들고 오너라. 주님의 십자가는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십자가. 하나님의 완전의 법 해결, 마귀의 왕권적인 모든 시험을 다 이겨야 되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안고 가야 되는 십자가. 인간이 눈꼽만큼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뒤따라가는 것은 게으르지 않으면 된다. 그건 자기 중심이 되어 눈만 뒤집어지지 않으면 그건 그냥 가는 길이다. 그건 죽으려고 말씀을 어기지만 않으면 된다. 그냥 내 마음 내 행위 내게 맡긴 것만 또박 또박 걸어가면 나머지는 전능의 십자가 성령이 붙들고 알아서 해결하신다.

(어려움 예정)-약속을 기억
결혼의 한쪽은 제가 설명하기 어려운 쪽이고, 결혼의 한쪽은 저하고 한 길을 함께 걸어가는 분이니 이 말 저말 할 것 없이, 우리 공회 목회자들도 아이들 고등학교까지는 교회돈으로 갈 수 있겠다 그 이후부터는 그거 뭐하려고 학교다닐 것이냐? 다닌다면 그 아이가 벌써 나이가 되었으니 혼자 돈벌든지 자학금 받든지 그렇지 교회 돈으로 대학 등록금을 준다니? 우리 그거 주지 말자 그랬더니 약속하고 걸어간 길이다. 그런데 몇 발자국 가니까 하도 울어대니, 그러면 진작 다른 길 가지 왜 따라나섰느냐? 지리산 등산 출발 해놓고 뭐 이렇게 높으냐 아지곧 산이 남았느냐? 아니 그러면 등산을 뭐하러 나왔느냐? 땀 흘리려고 높은데 가려고 나왔는데 높은데 올라가면 나오는 성취감 때문에 좋다고 나와서 왜 중간에 말이 많으냐? 목회자가 그런 것이다.

(어려움 전환)-새벽예배,건강
새벽예배 나오는 분들은 십자가의 길, 주님 걸어가셨고 그 길 걸어가며 매양 새벽마다 한적한 곳에 나가서 늘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래서 이 아침에 일부러 나오는 것이다. 알면서. 그런데 새벽예배를 나오면서 계산을 해보니 일찍 자고 일어나는 것이 건강에도 불신자에게도 좋다고 한다. 만사 좋은게 많다고 한다. 저녁에는 죄를 짓고 새벽에는 사람이 죄를 안 짓게 되어 있다고 한다. 주님도 새벽마다 한적한곳, 주님도 기도하셨다. 하나둘 생각하니 얼마나 많은지? 옛날부터 믿는 세계에 새벽예배 새벽 예배란, 건강에는 무조건 다 좋더라 이것은 신앙 있고 없고 이것은 상식이다.

3. 결혼 전에 미리 알아야 할 것
①주님께 순종
결혼을 두고, 둘 다 이것이고 저것이고 생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건 북쪽처럼 되는 길이다. 그냥, 주님 먼저 걸어간 길 뒤만 따라가다보면 그 안에 행복이고 그 안에 천국이고 그 안에 주의 도우심 있고 두말할 것 없다. 내게 주지 않은 것 할 것없고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런 걱정할 것 없고 내가 노력하면 내가할 수 있는 것을 또박 또박 걸어가면 하늘과 땅과 상대방 마음 다 동원하여 혼자 가면서 못 고치는 것 고쳐줄 것이고. 혼자 살면서는 절대로 못 고치는 것을 고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나를 더 붙이는 것이다.

②수술실
수술실이다. 세상에 결혼식이란 수술 예약하고 지금 수술방 들어가는 것인데, 이게 좋다고 뭐 희희낙 거리니 그 결혼 그거 깨지든 아니면 울고 불고 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혼자로 못 고치니 하나를 더 붙여서 그 상대방을 칼로 삼아서 나를 고치겠다는데, 왜 상대방이 칼을 들었냐 째냐 바늘로 하느냐 오만 소리를? 아 살려주는 수술을 하기 싫어?

(결혼목적3가지)-고치고,배우고,자랄 것
결혼은 첫째, 혼자 못 고치는 것 고쳐주려고 하나 더 붙이고. 둘째 혼자 배울 수 없는 것. 둘이라야 알 수 있는 것 배울 수 있는 것은 혼자라면 아무리 좋아도 못 배우는 것 가르쳐주려는 것. 둘, 고치고 배우고. 그 다음 혼자 걸어가서는 외다리처럼 토끼뜀인데 두 다리되면 자라가는데 더 낫기 때문에 그렇다.

③한정된 기한
그러다가 하나님이 하나 데려가면 그만 배울 것이다 해서 이것이 아쉽고 애석하고 슬픈 일인 것이다. 둘이 함께 가며 고치고 배울 것이 있는 것인데 너는 그만 혼자 배우고 말아라? 이제 시험지 내라 더 이상 쓸 것 없다. 시험보는 학생에게 종 쳐버렸다. 이게 아쉬운 것이다.

(구원의 아쉬움)-기쁜게 아니라
그런데 둘 중에 하나 데려갔는데 여자들은 살판 났다고 참 제정신 아닌 말을 하는것이지 시험지를 빼곡하게 100점 짜리로 제출하고 좋아하는 것은 좋지만은 시험지 절반도 못 적었는데 종 치니까 시험 끝났다 해방이다? 성적표가 곧 날아갈 것인데. 여자 혼자사는데 이렇게 좋은 세상이 어딨냐고 축하를 하는데 딱 속으로는 미쳤네 소리가 나오지만은, 말이 험하다고 속으로 울고 말지 어떡하나.

(구원의 박차)-슬픈게 아니라
또 남자는 혼자 되니 막 슬프다고 우거지 상을 하고 온 시내에 누가 봐더라도 저렇게 슬픈 것을 보니 저 남자는 여자가 없는가보다 표시를 내고 있다. 이건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또는 컨닝 하는 사람이다. 모범 답안이 있어야 베길 것인데  혼자 시험보니 컨닝할 것이 없다고 우는 것이다. 이게 아래에서 땅에서 위에서 난 사람이라 그렇다. 못 나서 진리의 지식을 중생된 사람은 여자는 혼자 되면, 더 이상 고쳐질 것 없다 이러니 참 탄식이다. 지난날 100점인가 아닌데. 함께 살며 고치고 함께 살며 배울 기회를 끊었으니 이제 홀로이 둘처럼 걸어가야 되니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구나. 지난 날을 후회하며 개인 신앙이라도 하나 더 챙기라는 뜻이다. 이게 위에서 내려온 지식이다.  위에서 나온 지식, 위로 데리고 가는 지식, 둘이 살다가 하나가 죽어버리면 무엇이 애석한 일이냐? 저 인간 때문에내 속에 고칠 것이 있고 저 인간 아니고는 못 고치는 것인데 하나를 데려가셨으니 시험 답안 다 적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냥 됏다 더 이상 적지 말아라. 50점에서 끝이 나니 이게 탄식할 일이다. 이런 것이 위에서 내려온 결혼 지식이다.


■ 위에서 내려온 지식의 능력

1. 어느 현실도 꿰뚫는 (자세가 중요)
위에서 내려온 지식, 아래에서 나온 지식, 이 두 지식의 충돌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없었다가. "뉘게서 배운줄 알고" 저는 목사님과 공회에서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고마운 것이다. 지금도 다른데 찾는데 근처도 없다. 공회 신앙을 한 두 개라도 제대로 딱 들은 사람은, 천하 어떤 식민지 어떤 미개지 어떤 아프리카 어떤 무작한 동네 어떤 막가는 사람에게 던져놔도, 아랍 나라 나아만 대장에게 포로 잡혀간 여자 아이보다야 더 슬픈 일이겠는가? 그보다야 낫지. 거긴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 원수의 나라인데. 또 요셉처럼 팔라갔는데 하필이면 또 감옥가지 들어가버렸다. 그 속에서 기쁨과 감사와 소망을 끌어낸 것이 위에서 나온 지식이다. 그 안에서 이를 바득 바득 엉엉 울고 있으면 아래에서 나온 것이지 해결할 길은 없다. 보디발 죽이고 고향을 돌려보내도 더 슬픈 일이다.

2. 하늘 위로, 하늘 소망 (인도 명확)
우리 받은 말씀, 우리의 걸어간 길은 이것은 뭐 심방도 필요없고 이런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한 말씀 한 말씀 이렇게 새기고 있는 것이다. 따로 모시고 이 말 저 말 그냥 뭐 설명해봐야 다 이런 말이다. 그냥 딱 이거 하나 알면 아무 말 들을 것 없이, 주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그 길을 또 귀한 분들이 하나 걸어갔고 둘 걸어갔는데 뭐 하나 둘 걸어간 그 길을 갔다가 솔솔 따라가는 길. 저 사람  때문에 내 속에 못 고칠 것을 기어이 고치고 오라시는구나. 그냥 주님이 더 이상 고칠 것 없다 그러는 줄 알았는데 한번 더 기회줄테니 마져 고치거라 그러면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들여다보면 다 정답 보고 베끼는 것인데 먼 어려운 것이 있나? 감사히 걸어가면 되는 것이지.

통성으로 기도.

(배움의 원리)-피할 수 없는 어려움
아이들 직장도 윗사람이 사장이 월급 짜다. 길이 어떻다 안되는 소리 술술하면 맞춰줘봐야 안될 사람이다. 남의 집 돈 벌러가는데 이 정도 고생은 당연하지 않느냐? 이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열린 문이다. 안 배운 기술 모르는 새로운 기술 배우는데 어렵지 어떻게 그게 쉬운게 있나? 배우는게 쉽고 재밋으면 주색 잡기라고 그러지. 배우는데 시간이 들고 어렵고 힘이 드니 이게 배울만하고 배워놓으면 써먹는 것이지. 뭐든지 원리가 그렇다.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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