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22.10.16 딤후3:15 모든 독서량보다 성경 읽은 것이 많도록 늘 읽기를 노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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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22.10.16 딤후3:15 모든 독서량보다 성경 읽은 것이 많도록 늘 읽기를 노력할 것

관리1 0 97 2022.10.1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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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1016 주후

제목 : 모든 독서량보다 성경 읽은 것이 많도록 늘 읽기를 노력할 것

사회 : 안응규
찬송 : 160장(하나님의 진리등대), 121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 20장(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본문 : 디모데후서 3장 15절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사활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어둠 속에 갇혀 어둠의 자식으로 살았을 저희들인데,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일과 예배와 성경으로 우리에게 소망을 든든히 삼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함을 드립니다. 지난 최근에 배운 말씀대로 날 중에 제일 귀한 날 주일을 확정하고, 시간 중에 제일 귀한시간 예배시간을 확정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고귀한 가치를 성경에 두지 아니했던 과거를 돌아봅니다. 오전 말씀을 통하여 성경 읽는 것이 너무나도 부족한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 사, 말씀 안에 복과 능력이 다 담겨져 있는데 이곳에서 찾지 아니하고, 세상문화에 더 의지하고 의뢰했던 과거를 이 시간 또 자복하나이다. 오늘 오후 말씀도 오전에 이어 성경에 대하여 바른 교훈의 지식을 바로 깨닫게 하시 사, 가볍게 외우고 또 교양처럼 상대했던 잘못된 관행들을 다 내려놓게 하시 사,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복과 능력이 있는 귀한말씀으로 남은 생애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이 말씀에 다 의지하며 의뢰할 수 있도록,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세우신 죄종의 영육의 강건함을 구합니다. 피곤치 않게 하시고 영생의 말씀으로 인도하실 때에 잘 듣게 하시고, 이 말씀으로 바로 깨닫는 귀한시간이 되어 질 수 있도록 우리의 닫혀 있는 신앙의 양심의 길을 열어주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 하시며 마지막 저녁시간까지, 주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킬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끝까지 붙들어 주옵소서. 함께해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신앙의 늘 상식으로 기억하실 몇 가지 잠깐 말씀드립니다.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께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보이는 성전을 주신 것은 보이는 성전을 보이는 면으로 잘 관리하도록 보게 해 주셨고, 신약은 주일과 예배와 신앙과 보이지 않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과의 연결의 길을 주셨습니다. 주일만 잘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주일을 통해 평일까지 바로 되라는 말씀이고, 예배만 바르게 드리고 나머지는 그냥 알아 지내라는 말이 아니라, 예배라도 붙들어야 그다음 모든 시간이 바로 되기 때문에, 그래서 주일과 예배와 신앙생활과 오늘 오전부터 시작하는 성경에 대한 상식도 그렇습니다. 구약의 성전을 붙들지 못하면 성전마저 끝장나면 세상은 볼 것도 없어집니다. 신약은 볼 수 없는 교회 신앙의 생활이 잘못되면 그 뭐 세상은 볼 것도 없어 다 헛일됩니다. 주일과 교회와 예배와 신앙을 먼저 붙드는 것은 이게 종자니까, 이게 시작이니까 이걸 붙들고 펼쳐가라는 것이지. 주일과 예배 때는 천사 같고 사회생활 가정생활에서는 불신자와 막가는 사람 되라. 그 말은 아닌데 평소도 중요하다 해서 주일과 예배를 배제하는 것도 탈이고, 주일과 예배를 붙들자고 강조하다가 주일과 예배 외에 방종이 되어 잘못되는 것도 탈이고, 참 맞추기는 어렵습니다마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신명기 5장 32절의 말씀에 따라 부족하고 죄악세상 어두우니, 날 중에 주일이요 시간 중에 예배의 시간이요 책 중에 성경책입니다. 이게 생명이고 이걸 붙들고 그 다음 펼쳐서, 모든 날 모든 시간 모든 지식 전부가 다 주일의 연장이 되고 예배의 실천이 되고 성경 말씀의 실행이 되어져라. 이런 것은 눈치 있으면 한 번 들으면 평생 잊지 않을 말씀이고, 조금 방향 틀어버리면 영 엉뚱한 데로 가버립니다. 모든 신앙에 늘 기본으로 자세를 잘 가지시자는 뜻입니다.

주일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주일 제대로 지킬 수 없는 때입니다. 정죄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작년보다는 올해가, 한 걸음만 나아지면 하나님은 의인으로 보십니다. 빵점이 1점 되면 하나님은 100점으로 도장 찍습니다. 100점이 99점으로 내려오면 하나님은 죄인으로 바로 돌아서십니다. 1점과 99점은 세상의 꼴찌와 1등 차이인데 99점을 틀렸다 보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고 있느냐 올라가고 있느냐 이걸 보시기 때문에 이것까지 귀담아 들으시면, 그 신앙 없는 사람 가정이나 건강이나 여러 형편 때문에 다 지키고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 시험들 게 없습니다. 과거보다 나아지면 무조건 의인입니다. 발전하는 죄인은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보십니다. 후퇴하는 의인은 그 어떤 지경에 이르더라도 진노하십니다. 그러면 위로 올라가 있는 오래 믿은 사람 목회자일수록 불리하고, 다윗을 보면 압니다.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도바울 같은 사람은, 밑바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늘 발전만 했습니다. 어느 것이 좋을지 모르나 하나님이 알아서 주셨습니다. 다윗은 절정의 그런 신앙이나 뭐 누구든지 지을 수 있는 한 번의 실수를, 하나님은 극히 진노하셨고 다윗 위에 사울 왕은 죄 짓기를 마구 지어도 상대하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면 꼭 기억하셔서 내가 주일을 철저하게 못 지켜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옳다. 맞다 마음에 두시고 언젠가는 저렇게 가야 되겠다. 이것만 붙들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한 걸음이라도 좋아지면 그때부터는 의인이 되어 진 겁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면을 그렇게 살피시고 하나.

그다음 이번 주간은 수요일이 10월 19일입니다. 그냥 다 모르고 사시지요? 여순반란 사건이 있던 날입니다. 천하는 잊어도 또 여수순천은 그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박수를 쳐도, 신풍사람 그중에서도 신풍교인들은 누가 뭐라 해도 반란사건 기억은 하셔야 될 거고, 그날 순교한 둘 2년 뒤에 순교하신 분하나 합해서 셋의 순교 뒤에 그 순교를, 하고 싶어도 누가 죽여줍니까? 잘 믿는다고 누가 죽여줍니까? 뺨 한 번이라도 때립니까? 요즘 세상에. 또 실제 그만한 어려움이 오면 예배당에 앉아 계실 분 한 두 사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로님이나 저 한 둘 정도는 가는 데까지 몰라도 좀 남 보기나 따나 앉아 있을 것 같고, 나머지는 근처도 안 계실걸요? 남 말하는 거 아닙니다. 손 목사님 넘겨준 사람 아들 둘 처형한 사람 이 자리도 대부분 다 그럴 건데, 내가 그 형편 당하지 않으니까 막 그냥 남 말 잘한다고 그럴 수 있냐 있냐 그러는데, 지금 이렇게 좋은데 이 정도로 믿는다면 그리되면 다 그리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하나 팔고 돈이 30 생기는데 은전 30입니다. 큰 돈 생기는데 누가 주님을 잡혀먹지 않겠습니까? 요즘 돈으로 말하면 주님이 한 30억짜리 된다면 다 잡혀 먹을 걸요? 삼십은커녕 삼억만 떨어져도 부모 잡혀먹는 세상입니다. 남 말 하는 게 아니고 지금의 내 신앙은 주님 오셨으면 주님 가룟 유다처럼 은 삼십에 팔아먹을 우리들입니다. 남이 아니라 우리도 그리 되면 그리 됩니다.

또 1950년이 되면 목사 안 내놓으면 굶겨 죽이겠다고 양식을 끊고 쭉 들어오니까, 뭐 먹고 살아야 회개도 하는 거지. 이런 마음으로 가지고 넘기는 겁니다. 다 살다보면 그리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 시험만 합격하면 평생 이제 잘 믿을 거다. 그러면서 손을 대는 겁니다. 다 그런 겁니다. 결혼도 그렇고 취업도 그렇고 시험도 그렇고 우리가 그런데, 역사에 남을 두고 뭐 이랬다 저랬다 내가 오늘 그런데, 내가 오늘 그런 줄 알고 또 그때 그렇게 팔아넘긴 사람 죽창 들고 댕긴 사람 나도 그럴 사람인 줄 알고, 근데 그 과거에 그분들이 세월 지나가니까 그렇게 후회할 일이 되었으니, 나도 멋모르고 죽창 들고 나도 멋모르고 돈 30에 주님 팔았다가 뒤에 어찌 되겠는가 이걸 생각하면서, 나는 그러지 않아야 되겠는데 내 신앙 내 처지 내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으니 그러면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조금씩이라도 옳고 바른 대로 한 걸음씩 나아가자. 그러면 오늘 우리는 과거에 실패한 분들 때문에 우리는 좀 더 나아집니다. 이렇게 몇 발자국 걷다보면 그냥 사도바울 근처까지 가버립니다. 그때는 그때고 오늘은 오늘이고 이 사람은 기회 되면 주님 은행에 잡혀먹을 사람입니다. 주님 잡혀 먹을 사람인데 뭔 누구누구 넘기고 안 그러겠습니까? 누구누구 넘기고 말고 할 것 없이 지금도 배고프면 딸 다 팔아먹고 그렇지 않습니까? 딸 팔아먹는 집안들 더러 아시지요?
 
예전부터 그런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면, 딸 시집보낼 때 반드시 아버지 사업에 유리한 쪽에 결혼을 시킨다. 그게 바로 딸 팔아 먹는 겁니다. 말로는 안 그렇지. 뭐 자녀는 부모한테 그건 더한 거고. 일본 사람들이 그런 말을 지어냈다. 이렇게 거짓말이 있는데 고려장이라는 것은 일본 사람이 지어낸 말이 아니고 수백 년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남 말하는 거 아닙니다. 우리는 대개 배가 고프면 부모 고려장 할 사람들이고, 딸 시집보내면서 자기사업이나 자기 앞날에 유리하도록 할 사람들이고, 젊은 사람들은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지 좋은 대로 하다가 다 실패할 사람들이고, 역사에 가룟유다 한 사람만 죄인이 아니라 죄인 중에 하나를 적은 겁니다. 가룟유다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배신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누가 자기를 배신자라 그러면 억울타 해명하기보다, 들여다보면 우리 속에는 배신이 가득 찬 인간들입니다. 선악과가 배신입니다. 모든 죄가 배신입니다. 배신 없는 사람이 있다니? 없습니다. 이게 역사고 이게 죄악세상 아래 우리의 현실이니 그러면, 모든 인류가 다 죄 지었고 배신했고 주님을 잡혀 먹었으니 뭐 우리도 할 수 없이 그럴 것인가? 이걸 기록해 주심은 우리에게는 그러지 말자고 조금이라도 나은 대로 바뀌자고 이런 말씀을 주셔서, 한 달 반 주일과 예배 그다음 지금 성경을 살피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살피고 있는 거 간단합니다. 모든 책 읽은 거 다 합해도 성경 읽은 분량이 많아야 된다. 이겁니다. 이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해 보이는데 이게 생활화가 되어져야 신앙의 기본입니다. 잘 믿는 게 아니고 신앙의 출발이 그렇습니다.

그다음 성경에 있는 것을 다 믿을 것, 믿어지지 않으면 믿으려고 애를 쓸 것, 이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움직이는 데는 손닿는 데는 항상 성경을 둘 것. 뭐 요즘은 차에 성경이 있으면
손 내밀면 성경이 있는 겁니다. 좋기는 작은 성경이 있으니까 품에 품고 주머니에 넣고 들고라도 다닐 것. 활동을 하다보면 노동현장에 그러지를 못해도 언제나 성경은 손에 쥐고 있어야 되는데, 일을 하다 보니 허리에 찰 수도 없고 그래서 지금 옆에 둔 거고 차 안에 둔 거고, 조선시대 불나면 족보부터 건져 나왔고 북한에서는 불나면 김 뭐시기 저 초상화부터 들고 나온답니다. 오늘 이 나라 불나면 신용카드부터 들고 나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휴대폰이든지. 믿는 사람은 성경이 가득 찼지만은 그래도 성경부터 들고 나와야 되지 않겠느냐. 생각 머리는 그쪽으로 돌아가야 이게 잘 믿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래도 믿는 사람의 자세는 됐다. 이 정도가 되는 겁니다. 이번 주간 수요일이 여순반란 사건입니다. 다른 교회는 거의 다 잊었고 여수 순천의 교회는 뭔 행사는 많이 하는데 행사를 거꾸로 합니다. 내용이 뭔지도 모릅니다. 그 너무 강단에서 강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냐 싶기도 한데, 여수 순천의 여순사건 기념관이 순천에 가면 매고 옆에 있습니다. 순천시청에서 돈 들여서 엄청 잘해놨습니다. 거기 안내하는 책임자한테 벽에 붙인 사진을 쭉 보면서 이거 다 지금 잡아간 사람들 처형하는 그림 아니냐고, 이 모든 사진에 순교한 사람 그 순교한 사람 처형한 사람들 상 주자는 사진 아니냐고 그러니까 깜짝 놀라요. 자기가 어디 들어서 지금 뭐 하는 줄도 모르는 겁니다. 그 기념관 핵심들 지도자들 전부 손 목사님 잡아주고 아들 둘 죽인 사람, 보상금 주느라고 이거 다 지장 찍은 사람들이고 운동한 사람들입니다.

4월 초파일에 대웅전 절에 앉아가지고 삼겹살 지져 먹는 일은 곤란한 겁니다. 집에 가서 고기를 먹을망정 4월 초파일 절에 와서 삼겹살을 지져 먹으면 그건 심해도 너무 심한 겁니다. 그 그러는 거 아닙니다. 세상이 완전 뒤집어져 있으니 또 우리의 신앙은 그렇게 훌륭하지 못하니 운동할 것은 없어도, 또 원래 우리는 그 어떤 것이든지 주일 외에는 행사가 없고 광고가 없고 그냥 조용하게 소리 없이 지켜왔습니다. 적어도 마음속에는 신풍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알던 모르던, 여순반란 사건에 둘 돌아가시고 2년 뒤에 목사님 돌아가시고, 장차남에 남편 묻고 이 신앙을 팔아먹을 건가 이 신앙을 지킬 건가, 둘 중에 하나의 온 신풍이 반대로 방향을 틀 때, 난 순교한 분들이 개죽음 당한 것 아니고 재수 없어 죽은 게 아니고, 영웅심에 괜히 나섰다 죽은 게 아니고 주의 말씀 붙들고 걸어가다 죽었으니, 나 역시 이대로 걸어갈 거고 이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그렇게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러고 시작한 교회의 배경이 된 게 48년 10월 19일 21일 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1950년 9월 28일 그리고 그 2년 후에, 2년간 온 신풍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순교자 셋 묻어 놨으니까 우리는 이제 쉽게 믿자는 쪽으로 방향을 다 바꿀 때 죽든 말든 거기 그대로 간다. 그렇게 출발한 게 1952년 신풍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잘 믿든 못 믿든 마음으로는 옳게 믿는 게 옳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그들보다 더 부족하나 마음은 옳게 믿는 게 좋고 목표는 바로 돼야 되지 않겠냐. 이것만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믿어지지 아니할 때, 믿는 것이 맞는데 믿어지지 아니하니 이걸 어떻게 할까. 이렇게 고민하면 됩니다. 성경을 읽으시다가 안 믿어질 때 안 믿어지니 치워버려라. 이게 성급한 사람이고 섣부른 사람입니다. 수천 년 내려온 하나님의 말씀이라는데 선진국일수록 더 잘 믿는데, 그렇다면 뭔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믿어지지 아니하나 이걸 믿는 것이 맞을 것 같으니 어떻게 좀 믿어봐 볼까. 안 믿어져도 연구를 이렇게 해야 이게 복된 사람인데, 학교 성적표도 떼보면 점수도 별로 나오지도 않는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어 저럴 수가 있어? 진짜야? 그리고 휙 치워버리면서 자기가 단정해 버립니다. 이게 성급한 사람이고 이게 참 못난 사람입니다. 굳이 불신자들한테 성경을 말할 때는 그리 말합니다. 역사에 제일 베스트셀러입니다. 그 한 해에 제일 많이 팔린 책을 베스트셀러라고 그렇게 영어로 말을 합니다. 역사 이후에 성경보다 더 많이 팔린 책은 없습니다. 그리고 선진국부터 성경을 그대로 믿습니다. 미개할수록 안 믿습니다. 이 정도면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 그렇게 전력해서 믿었다면 뭐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라도 마음을 믿어야 이게 복이 있는데, 학교 성적도 바닥밖에 안 되고 신풍에서 1등 광주 갖다놓으면 1등 하겠습니까? 중간도 못 가지. 그렇게 별로 머리도 좋지 않은 사람들이 뭐 딱 읽어보니까 다 틀렸고 안 맞네? 그러면서 휙 던지는 거보다 수천 년 베스트셀러가 되고 목숨 걸고 전하느라고 이렇게까지 되어졌다면, 일단 내가 모르는 뭔가 있지 않겠는가. 안 믿어져도 이 정도의 과제와 이 정도의 연구와 이 정도의 궁금한 것은, 자기 마음에 살려놓는 것이 양심이고 지혜고 복입니다. 이런 마음을 먹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씨에다 대고 성령으로 열어주시면, 옳아 이런 게 있어서 모두 그랬구나. 이리 되면 그때는 자기가 이제 앞장서게 돼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돌고 도는 통계는, 잘 믿는 사람일수록 첫 시작할 때는 욕을 하고 기독교 박해를 했다가, 베드로부터 사도요한 다 그랬습니다. 바울만 그런 줄 알지만은 제자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웃었고 놀렸고 돌아섰고 그리고 양쪽을 한 번 두 번 비교하다가 그다음 돌아섰고, 확실히 알고 나면 목숨 걸고 전했고 또 새로 듣는 사람들은 말이 안 된다는 사람 비웃는 사람 박해하는 사람 쥐 박는 사람, 그러다가 또 돌아섰고 이게 지금까지 수천 년 반복해 온 역사입니다. 역사가 그렇다니 내 마음에 믿어지지 않으면 나도 지금은 믿어지지 않으나, 어느 날 하나님이 내 마음을 열어주시면 나를 믿게 하려고 그렇게 애가 터졌던 그 선배의 마음을 나도 알고,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려고 또 노력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소망이라도 이런 소망을 가지시면 이건 논리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겁니다. 차량보험이라는 것이, 차 몰고 나가는 사람이 오늘 몰고 나가면 차사고 난다. 하고 보험 넣습니까? 다 오늘 자기는 차사고 안 난다고 차를 타고 왔는데 왜 몇 십만 원 공짜 돈을 죽는 날까지 보험금을 왜 냅니까? 만에 만에 만에 하나 잘못될까봐 그 아까운 돈 생돈을 갖다가 그렇게 퍼붓는 겁니다. 그러면서 차량보험을 대학에서는 경영학에 사회과학으로 분류해 놨습니다. 그건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라 그럽니다. 몇 천 번 몇 만 번에 한 번 통계적으로 생긴다 해도 차량보험은 넣어놔야 되지 않겠느냐. 의료보험 안 넣는 분계십니까? 암 걸린다고 넣습니까? 만에 하나 걸릴까봐 모두들 자기는 안 걸리고 자기는 다 건강할 줄 압니다. 근데 만약에 하나 생각해서 넣는 겁니다.

수천 년 베스트셀러라는데 똑똑하고 위대하고 발달된 문명일수록 성경만 믿어왔다는데, 그 나라가 잘 될 때 더 잘 믿었다는데 이 정도가 되면, 이건 거의 맞다 치고 접근하는 것이 더 지혜롭지 않겠는가. 그거는 어떤 불신자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고 논리적으로는 당연한 겁니다. 그런다고 믿어지지는 않습니다. 믿게 만들어야 믿어지는데 이런 말을 하고 그런 말을 접수하는 사람은, 저게 믿으려고 하나님께서 먼저 마음속에 이런 말까지를 받아들이게 먼저 손을 쓰시는구나. 이렇게 알 수가 있습니다. 단정은 아니라도. 금 번 주간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들고 다니시고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성경을 제일로 읽으시라. 간단하게 이 한 줄을 위해서 성경을 살펴 나가는 겁니다. 퇴직하고 시간 많은데 성경이나 읽지 뭘 할 겁니까? 공부 안 해도 대학 졸업장 다 주는데 공부가 재미있고 공부를 하니까 저절로 잘 돼서 공부 덕을 본다면 좀 할 수가 있지만d,s, 공부해봐야 안되니까 신풍 살지 않습니까? 공부할 마음도 별로 없고 해봐도 별로 성적도 안 오르고 성적은 wh금 오르는데, 써먹을 데도 없고 성적 졸업장은 나오는데 그걸로 취업을 해봐야 거의 안 되니까 신풍 살지 않습니까? 길이 있으면 신풍에 삽니까? 다 나가지. 나간 사람은 몰라도 신풍에 사는 우리는 학교 댕기고 공부해봐야 별 거 남는 거 없으니, 성경 많이 읽어두시면 손해 보지 않을 것이라. 손해 안 보는 정도가 아니라 좋은 일이 막 벌어질 것이라. 공부 좀 해본 사람 아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절규를 하고 부탁을 하는 겁니다. 강제로 읽혀줄 순 없고. 사택에 아이들부터 성경만 읽고 다른 책 안 읽으면 저는 무조건 100점입니다. 근데 그래놓고 뒤에 돈 못 벌었다고 후회하면 손해가 되기 때문에 강제는 못하는 겁니다. 주저앉히고 강제로 읽힐 재주가 없어 그런 겁니다. 프로그램만 있으면 그냥 다 그렇게 만들어 버리겠는데, 근본적으로 신앙은 자유 자율로 깨닫고 와야만 되기 때문에 애 터질 뿐입니다.

세례학습 때 성경 읽은 독수를 물어봅니다. 공회에서 그대로 자란 분 세례 받을 때 성경 한 30~40독 40~50독 했습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사택 아이들은 물어보니까 뭐 두독? 세독? 목사 딱 그냥 제명감입니다. 강제로 못해 그렇습니다. 어쨌든 성경 많이 읽는 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가고 연세가 많아지면, 세상 사람은 연세 많아지면 건강한 거 이상이 있습디까? 어떤 방면에 최고의 최고를 다 가졌는데 50, 60에 건강에 빌빌하면 건강 외에는 눈에 보일 리가 없습니다. 연세 많아지면 결국은 건강 하나밖에 없구나. 결론은 그리 가게 돼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결론은, 그냥 성경을 많이 읽은 것만이 하나님 앞에 들고 갈 건데, 결론은 그리 갑니다. 시골이지 나라에서 공돈 몇 십만 원 밀어붙이지. 할머니 서너 명 모이면 냉난방 국가에서 공짜로 막 들여 부어 주지. 성경 외에 어디 쳐다보실 겁니까? 나 많은 두 분 여기 모여서 저기 모여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 내 얼굴 보면 내 얼굴이 보이진 않는데 노인당의 친구 얼굴을 보면 그 주름이 내 주름이라고 돌아와 보이지 않습니까? 그게 우울증을 주고 그게 절망을 주지 그게 소망을 주지 않을 겁니다.

시골이니까 젊은 사람 다 나갔으니까 먹을 것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니까, 이걸 해석을 하면 하늘에 하나님이 신풍시골에 연세 많은 교인들은 성경만 보다가 성경 읽다가 그냥 숨 딱 끊어지면 좋겠다. 이 정도로 읽으시면 맞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내 손이 가야 되는 아이가 있다면 이 사명은 내버리지는 못합니다. 3분의 1이 여기에 다 해당될 겁니다. 가운데 3분의 1 연세 되는 분들, 그냥 건강 위해서 하루 서너 시간 너 댓 시간 왔다 갔다 하면 먹을 것은 넘칩니다. 그 운동에 좋을 만큼 서너 시간 활동하시고 많으면 너 댓 시간 활동하시고 나머지는 성경 읽으면 충분합니다. 이전에는 전도할 때도 많지 심방할 때도 많지 그리고 성경도 읽어야 되니까, 심방 전도 성경생활이 3분의 1씩 나누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다 믿는 사람인데 누구를 전도하겠습니까? 지금 신풍과 여수 순천에서 전도지 들고 전도하는 말은, 다른 교회 다니는 사람 우리 교회에 오라는 말밖에 되질 않습니다. 정말로 전도를 제대로 해보면 여 순천 안에는 전도할 사람이 없습니다. 신풍은 더 그렇습니다. 심방은 과거에 가능했는데, 사생활이 워낙 중요해서 남의 집 문고리를 잘못 잡았다가는 경찰에 가야 됩니다. 예약하고 상대방 일정 다 살펴서 한 번 얼굴 보러 가려면, 전도는 없는 세상 심방은 귀한 세상 나머지 남는 시간 가지고 세상 구경하고 다니겠습니까? 세상 죄악의 낙을 쌓아놓은데 타조가 모래에 머리 쳐 박고 앉아서 그냥 세상모르고 지낸다고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역사 이후에 오늘 우리나라처럼 자기 나라 말로 성경을 마음껏 읽게 된 시대가 없었고 그런 때가 없었고, 성경만 읽어도 먹여주는 시대가 역사이후에 우리밖에 없었고. 읽을 수 있고 경제가 되어 지고 시간까지 이렇게 다 몰아주신 적은, 역사 이후에 지금의 우리 한국 교회밖에 없지 싶습니다.

영어는 단어가 어려운 게 많아 성경 읽기가 어렵습니다. 한글처럼 쉬운 글이 없습니다. 이게 한글이 수준은 낮습니다. 한글 학자들은 뭐 한글예찬을 하늘 끝까지 별처럼 노래를 부르는데, 그건 고슴도치도 지 새끼 털을 만지면서 예쁘다고 그러는 그런 겁니다. 한글은 수준은 낮습니다. 근데 이 수준 낮은 천박한 한글이 믿는 우리에게는, 성경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줬으니 이보다 더 고마울 데가 없습니다. 부자가 돈 관리하다 보면 성경 읽을 시간이 있겠습니까? 고관대작에 도장 하나에 국가와 사회가 움직이는데 성경 볼 시간이 있겠습니까? 가난하고 못났으니 걸리는데 없으니까 성경만 볼 수 있고 글이 쉬우니 잠깐 배워 마음껏 읽을 수 있고, 나라에서 먹여주지 오만 거 다 갖춰줬지, 돌아가실 때까지 그냥 요양원에서100살까지 먹여주고 씻겨주니 마음껏 성경 읽을 수 있고, 요즘은 백내장도 안약 몇 방울 하루 세 번씩만 한 방울씩 집어넣으면 백내장도 안 걸린답니다. 세상에. 이삭도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쌍둥이 아들을 바꿔버렸습니다. 아버지 속에서 복을 훔쳐온 야곱이도 또 나이 많아 또 아들 구별 못했습니다. 이삭도 야곱 같은 사람도 뭐 요즘으로 말하면 백내장인가 둘도 나 많아서 앞을 못 봤습니다. 오늘 우리는 석 달에 천 원이면 한 방울씩 눈에 들어간 백내장도 막아준답니다. 그래도 만약에 눈으로 못 본다면 읽어주는 성경 공짜로 마음껏 읽어주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속도 조절까지 다 됩니다. 이만하면 지상낙원입니다. 지상낙원을 펼쳐주면 감사라도 하면 좋겠는데, 지상낙원을 펼쳐주면 죄악성에 못된 인간은 더 좋은 것 갖다 대라고 또 울어댑니다. 집집마다 외동아들 집집마다 막내아들 억지는 다 알지 않습니까? 전부 주변에서 몰아주고 예쁘다 그러니까 점점 더 악을 쓰고 더 뻗습니다. 미리 고쳐야지 그거 더 준다고 고쳐지는 거 아닙니다.

2022년 10월 16일 10월 셋째 주 오늘 같은 이번 주 같은, 병원에 계셔도 지상낙원 요양원에 계셔도 지상낙원 예배당에 오셔도 지상낙원, 아이도 어른도 어느 누구도 다 지상낙원을 받았는데 세상구경 다니라고 주신 거 아닙니다. 돈 더 벌려고 주신 것도 아닙니다. 못 입어본 옷 한 번 더 입고 폼 잡고 다니라고 이런 세상 주신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주인 만든 창조주 하나님은 성경 한 자라도 더 읽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야 할 천국이 어떤지 그러면 나는 오늘 무엇을 정리해야 될는지 내 마음은 어떻게 먹으면 내 생활은 어떻게 돼야 되는지, 말씀 속에 전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다담아 읽을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모실 수 있도록, 이렇게까지 우리 눈앞에 쫙 펼쳐주시는데 기어코 눈을 돌려 세상의 죄악의 낙을 향하여 줄달음치면, 주신 은혜가 많은데도 방향을 틀면 따라가는 매도 적지는 않습니다. 결론은 이런 간단한 한마디인데, 성경이 근거가 돼야 되니까 몰라도 들기는 들으셔야 되니까 따라하십시다 디모데후서(디모데후서), 3장 16절(3장 16절), 모든 성경은(모든 성경은). 예, 오전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입니다. 나타난 하나님.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느냐? 볼 수 없는 하나님이니 하나님 자체는 보여줄 수 없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이 땅위에 하나님을 직접 보여 그대로 우리 눈앞에 펼쳐놓은 거는 성경밖에 없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마음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이러하시구나. 읽어야 알지요. 읽어야 알지요. 읽지를 못하면 들어서라도 알아야지요. 읽었는데 뭔 말인지 아직까지 잘 모르거나 오해할 수 있다면, 앞서 걸어간 이들에게 들어보며 참고하면 되어 집니다. 그래서 계시록 1장 3절 이 책의 예언을 읽는 자 듣는 자 그대로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읽는 자 듣는 자. 읽을 수 있으면 좋고 읽으면서 들으라니 글을 몰라서 못 들으면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것을 들으라는 그 정도가 아니라, 성경을 읽으며 성령이 내 마음속에 이게 바로 그 말이다. 그거 들어라 그 말입니다. 글자를 읽기만 한다면야 한글학자가 우리보다 더 잘 읽지 않겠습니까? 속독학원 댕긴 사람들이 우리보다 10배 더 빨리 읽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빨리 읽어봐야 필요 없습니다.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셔서 우리가 이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너 이 말씀 앞에 부끄럽지? 너 이 말씀 앞에 죄인이지? 너 이 말씀 듣고 보니 좀 정신 차려야 되겠지? 너 이 말씀을 읽고 보니 지난 날 잘 믿은 거 감사하지? 감사하면 찬송도 해야 되겠지? 말씀을 읽다보면 죄송한 것도 있고 감사한 것도 있고 기쁜 것도 있고 슬픈 것도 있고, 좌절할 것도 있고 소망도 있고 모든 걸 다 담았습니다. 내속에 부족한 것과 죄악을 보면 좌절해 죽을 지경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주신 걸 보면 소망이 있고 영생의 하나님의 아들이 고, 여러 가지 모든 걸 다 담아서 성경전체에 기록해 놓고 그리고 이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믿는 사람에게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혀 다른 현실을 따로 주셨습니다.

지금 주일오후 예배당에 백 몇 십 명 함께 이렇게 앉아 있지만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자기 현실은 제각각 다 다릅니다. 배경이 다르고 앞날이 다르고 지금의 마음과 걱정 근심이 다 다릅니다. 여기에 맞춰서 성령이 각자의 마음속에 경제면을 찌르는 분, 성격을 고치라고 부탁하는 분, 한 주간 애썼다고 칭찬하는 분,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다른 그 마음속에 하나의 말씀 속에 한 성령이 가셔서, 감화와 감동과 인도와 사명은 다 달리 해주십니다. 이걸 줄여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이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해 준겁니다. 어디에 기록했느냐. 기록한 걸 따라 하십시다. 66권 성경(66권 성경). 항상 성경은 66권이다. 66권 성경이다. 이 귀신이 성경을 그냥 두면 성경이 만병통치니까 만병통치를 불순물을 섞어서, 주사 약물의 불순물 들어가면 그다음 약이 아니라 독이 됩니다. 성경을 독으로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 성경을 성서라 그래 버립니다. 성서. 더 올린 것 같은데 더 낮춰버린 겁니다. 성경의 경자란 말은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인간 위에 하나님을 상대하는 책이다. 그럴 때만 성경 그럽니다. 성경 뒤에 서 자를 붙이면, 똑똑한 인간들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책이 성서입니다. 성경. 성가대가 아니고 찬양대입니다. 헌금이 아니고 연보입니다. 우리도 전도사님, 전도사님 말은 혼돈 없게 하려고 쓸 수는 있지만은 전도사님이 아니고 조사님입니다. 공회만 전국 어디서나 조사님, 조사님 그러니까 주변에 무식한 사람들이, 전도사가 아니고 조사라 이단 아니야? 그럽니다. 그럴 때마다 손 양원 조사님인데요. 그러면 그 양반 조사면 아 그러면 옳구나. 이럽니다. 손 양원 목사님이 하나님입니까? 근데 그 이름이 너무 좋으니까 그냥 손 양원 전도사 있는가 보십시오. 손 양원 조사님입니다. 그러면 조사는 이름이 나쁜 게 아니구나. 그분이 가졌으니 좋은가 보다 이제 이렇게 말을 풀어나갑니다.

좀 차분하게 들어보고 비교를 해보면 알 걸,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막 찔러대고 큰소리부터 치는 겁니다. 헌금보다 연보가 좋은 말입니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연보는 맞는 말이고 헌금은 곤란한 겁니다. 찬양이 맞는 말입니다. 성가대는 곤란해지는 겁니다. 우리는 성도라 그러지 않고 교인이라고 그럽니다. 교인보다 성도가 더 좋은데 왜 성도라는 말을 안 쓰는가? 누가 저를 보고 성도라 그러면 제가 제 속을 아는데 부끄럽지 않습니까? 성도 축에 들어갈 정도 성격이 다 되었습니까? 예배 마치고 돌아가시는 뒤통수 한개 딱 쳐보면 성도인지 아닌지 단번에 압니다. 성도 뒤통수를 쳐버리면 죄송합니다. 하고 쳐다볼 거고 욕부터 하면서 주먹이 뛰어나오면 그게 성도인가요? 그게. 교회 차량에 교회 이름을 붙이지 않는 원리와 같습니다. 교회는 소중한데 너무 소중한 교회를 이 못난 그릇에 가졌으니, 소중한 교회 이름이 나 때문에 더러워질까봐 그래서 안 쓰는 겁니다. 성경 성서는 성경이 맞습니다. 더 올라가면 하나님이 맞습니까? 하느님이 맞습니까? 원래 우리나라 애국가를 처음 만든 사람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이렇게 하나님이라고 못을 딱 박아놨는데, 귀신이 천주교 식으로 하느님 이렇게 바꿨습니다. 천주교는 하나님이 아니고 하느님이라 그럽니다. 불신자들이 믿던 하늘 님의 ㄹ이 유음화 현상에서 탈락한 게 하나님입니다.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 없었습니다. 하늘 님 하느님만 있었지. 선교사들이 고마운 것이 그 한글도 모르는 분들이 이 나라 와서 미신이 많으니까, 이 미신의 나라 하나님 이름부터 정해줘야 되겠는데 어떻게 정해줘야 이 미개한 민족이 하나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은혜가 되겠는가. 뭐 그분들이 정하는 대로 가는데 그분들이 천주교는 하느님이라 미신과 뒤섞어 만들었고, 기독교는 하나님 천번 만번이라도 하나님으로 부르는 게 복됩니다. 아무리 연구를 해봐도 이름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어원은 하나입니다 한 분. 영어로 쓰면 대문자를 써서 한 분밖에 없는 분 한 분밖에 없는 절대자가 누구냐. 그러면 우리 하나님밖에 나오지 않게 돼 있습니다. 하느님 하늘 님은 곳곳마다 꽉 찬 게 하늘 님입니다. 연보라는 단어도 우리교회만 쓰는 겁니다. 찬양대도 우리교회만 쓰는 겁니다. 조사님이라는 말도 우리나라 교회만 쓰는 말입니다. 다른 거는 다 전도사님 강도사님 뭔 이렇게 다 말이 다 바뀌어서 말이 멋있던데, 세상에 멋을 맞추고 맛을 맞추고 분위기를 맞춘다고 다 그래 나갑니다. 남 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닮는 것은 속화라 한다. 산 사람이 닮을 사람이 없어 송장흉내를 내서 되겠습니까? 한 10년 안 씻으면 아마 송장 냄새 날 겁니다. 할 일이 없어서 그런 일을 해야 되겠습니까? 가신 분이야 씻어도 할 수 없으니 씻어서 묘지에 묻지만은, 산 사람이야 아침저녁으로 자꾸 씻어 산 사람답게 돼야 되지, 산 사람이 할 일이 없어 죽은 사람 본을 보다니, 교회가 할 일이 없어 세상을 따라가다니. 교인이 더욱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가려고 노력을 해도 이게 될까 말까 하는데, 교인이 할 일이 없어서 예배와 설교와 찬송과 기도를 세상 바깥 행사로 슬금슬금 따라가는 거, 그거 좋지 않다고 주일과 예배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계속 말씀드립니다. 오늘부터는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담아주셨습니다. 근데 그냥 읽으면 그 뜻 그 마음을 모릅니다. 이게 왜 이렇게 적혔을까 이게 뭘까 그리고 읽다보면, 내게 필요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느 한 대목에서 열어주십니다. 그럴 때 딱 붙들면 그 한 순간을 위해서 66권을 다 적어주시고 수천 년 오늘 나를 위해서 준비된 하나님의 친서가 되어 집니다. 이 순간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이 땅위에는 하나님의 자녀 나 하나밖에 없는 겁니다.

아담 때 우주 만물에는 사람이라고는 아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은 75억이 있어도 이 순간에 이 말씀이 깨달아지는 순간에 하나님과 나 사이는, 나밖에 없습니다. 다 각자가 그런 자기로 자기를 길러 가는데 필요한 시간으로 말하면 주일이요. 시간으로 말하면 예배 시간이요. 그리고 지식적으로 따져서 꼭 찍는다면 성경 안에 내 마음을 열어주는 그 감동입니다. 하나님의 감동 두 글자로 줄이면 영감이라고 그럽니다. 하나님의 감동 그때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니까, 성령 하나님의 감화와 감동 두 글자로 줄이면 영감. 읽거나 듣도록 기록해 주셨고 왜 하필 책에다 대고 글로 이렇게 적어주셨을까? 초등학교 1학년 가면 기역 니은부터 예전에는 배웠습니다. 요즘은 글을 읽고 가도 그다음 또 읽고 또 배워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걸 교육과정이라고 그럽니다. 교육과정이라는 것에 단어를 보면 걸어간다 한 발자국씩 걸어간다. 그 뜻이 들어가 있습니다. 성경을 책으로 주신 것은 간단합니다. 읽으라고. 한꺼번에는 안 된다고. 하나씩 배워 하나씩 자라가라고. 하나님께서 열어서 빨리 길러가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도 그분 내적으로 보면 한 걸음씩 자라갑니다. 다른 분보다는 빨라도 걸음걸음 자라 올라갑니다. 느려도 자라 올라갑니다.

학교도 잘하는 아이 못하는 있듯이 나도 성경을 빨리 빨리 읽고 외우고 빨리 깨달아서 막 줄줄 나왔으면 좋겠다. 아닙니다. 다섯 달란트 준 분 한 달란트 준 분 하나님 앞에는 같습니다. 세상은 뭐라 뭐라 해도 일등은 일등이고 꼴찌는 억울해도 꼴찌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5배 빨리 배우고 빨리 가나 100배 100배 늦게 가나, 하나님이 주신 대로 한 걸음씩만 가면 하나님은 이것도 100점 저것도 100점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좋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냥 읽으시면 됩니다. 읽다가 어느 말씀에서 자기 마음이 열릴지는 모릅니다. 이건 역사이후로 모든 사람은 다 다릅니다. 무식한 사람이라 아무리 설교를 해도 도무지 못 알아듣는데 그 사람도 그럴까? 그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직접 역사를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이게 인간이 만든 인간에 줬으면 쉬운 걸 못 난 사람이 깨닫고, 수준 높은 사람은 어려운 것까지 이렇게 될 건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말씀에서 어떤 순간에 하나님이 깨닫고 이렇게 인도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차분하게 읽는 대로 읽으시라. 이게 제일 좋은 법입니다. 세상 책도 글로 된 책을 또박또박 읽으면서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읽으면서, 그러면서 그다음에는 이제 암기라든지 응용을 하든지 이다음이 있지. 한 단계 두 단계 다 떼쳐버리고 처음부터 막 올라가는 거 그거 우선 좋은 것 같아도 다 무슨 음식이라 그러지요? 인스턴트라고 그러나요? 라면처럼 뭐처럼 뚝딱 먹는 것은 우선은 편리한데 몸속에 들어가면, 온몸의 세포가 인스턴트 뚝딱 들어온 이 음식 때문에 골치를 앓는답니다. 그리고 온몸의 세포가 암세포로 바꾸려고 연구를 한답니다.

그냥 일반적인 자연의 식품 자연스럽게 꼭꼭 씹어 먹으면서, 그러면서 영양제를 먹을 수도 있고 주사 맞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러면서 특별할 때는 특효약 먹을 수도 있는 거고 기본은 기본입니다. 기본을 무시하고 넘어가려는 통에 이게 문제입니다. 성경은 그냥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시간 나는 대로 또박또박 읽으시면서, 아이들 사고 칠 때 남자아이들은 만화방 가고 요즘은 저 게임하고 인터넷에 뭐 어디 게임방 다닌다는 것처럼, 시간만 있으면 빠져나가려고 그러는 것처럼, 여학생들은 뭐 인형 가지고 노는지 그림을 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어느 날 성경이 그리 되어 틈이 있으면 성경이 궁금하고, 기회 있으면 얼른 성경 읽고 기회가 없으면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좀 읽어보려고 그런다면, 하루에 한 줄만 읽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렇게 하나 둘 하나 둘 가다보면 이 맛에 취해서 모두들 그렇게 성경, 성경 그랬구나. 라는 그런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 순간이 딱 오면 그 순간은 인간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직접 내 마음에 오신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을 해놨습니다. 그리고 다 그런 순간을 가졌기 때문에 오후예배 두 번째 또 이렇게 애절하게 부탁을 하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기회를 만드시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그러다보면 나머지는 솔솔 다 해결이 되어 모든 문제 모든 면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구나. 그 이상이 없다는 그 고백을 하게 되고 그 경험담을 내놓게 되어 집니다.

(기도)
성경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개별 인도를 깨닫는 크고, 크고 큰 은혜를 받는 우리 교인들 되어 각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깨달을 때, 순종으로 걸음걸음 오늘도 한 주간도 남은 때도 끝까지 걸어가는 저희들이 되어, 세상은 세상으로 발전하여 밝은 세상이라고 좋아하고 우리는 그 세상을 어둡게 보고 말씀으로 우리의 빛을 비추어 천하와 맞서고, 자기 앞날의 주변과 맞서 이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어디까지 어디까지든지 따라가는 말세의 교인, 오늘의 청소년들 주님 오실 때까지 자기 현실을 책임지는 우리 교인들이 되어 말씀 속에 한없는 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 속에 있는 뜻을 찾는 나날들 되도록 마음을 열어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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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
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10.16주전  딤전3:14            성경 읽기                      총공 신풍

■ 성경             
1. 하나님 말씀
  ① 나타난 (하나)님
  ② 하나님의 (마음)
2. 성령의 기록
  ① (사람)을 통하여
  ② (개별)적인 인도
3. 성경에 기록
  ① 읽거나 (듣도)록
  ② (배워) 가는 책
4. 진리의 말씀
  ① 정확 (무오)
  ② 항상 (단일)
5. 생명과 능력
  ① 하나님과 (연결)
  ② 하나님의 (역사)

■ 성경에 대한 상식
1. 많이 읽을 것
  ① 책 중에 제일 (많이) 읽을 것
  ② (모든) 독서보다 많이 읽을 것
2. 다 믿을 것
  ① 있는 (그대)로 믿을 것
  ② (자기)에게 대한 것을 믿을 것
3. 성경으로 살 것
  ① 말씀(대로) 살 것
  ② 말씀(으로) 살 것

4. 항상 지참할 것
  ① (손)에 가지고 다닐 것
  ② 손 (닿는) 곳에 둘 것

■ 참고 성구
1. 구원의 지혜, 딤후3:14
① 확신 :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② 스승 :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③ 시기 :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④ 결과 :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2. 말씀을 묵상, 수1:8
① 자세 :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② 방법 :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③ 노력 :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④ 결과 :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3. 사랑할 말씀, 시편119:140
① 구성 :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② 자세 :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4. 즐거운 말씀, 시편1:2
① 본능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② 생활 :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5. 진리 지식, 딤전2:4
① 사랑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② 목표 :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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