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2.10.3 왕상16:7 어려움을 주신 3가지 간섭, 돌이키는 방향에서 이탈하면 변질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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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2.10.3 왕상16:7 어려움을 주신 3가지 간섭, 돌이키는 방향에서 이탈하면 변질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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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3 월새

제목 : 어려움을 주신 하나님의 3가지 간섭, 돌이키는 방향에서 이탈하면 변질의 악순환

찬송 : 192장(옳은 길 따르라)

본문 : 열왕기하 16장 7절 -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더니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다보니까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것이고 죄를 지어 결과로 오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죄를 지어 결과로 오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죄 지은 것도 아니고 실수한 것도 아니지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길러 가시기 위해 과제를 주시고 연단의 훈련을 위해 어려움을 일부러 주실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약속을 따라 순종하고 나아간 아브라함에게 기근을 주사 어려움을 겪게 한 것은 아직 아브라함이 실수나 죄를 지어 그런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머물라 해놓고 어려움을 주셔서 흔들어보는 겁니다. 배가 고파 죽을지라도 주의 인도만 따르겠나이다, 배부를 때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과 배가 고픈데 애굽에는 양식이 많을 때에 이때 이제 시험이 되는 것이고 이럴 때에 신앙이 자랄 수도 있고 꺾여 질수도 있습니다. 배고프다고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아브라함의 잘못입니다. 그 경험 때문에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올라오면서 내려가기 전에 아브라함과는 다른 아브라함이 되어 집니다.

배부를 때 주님을 순종한 것, 좋을 때 신앙생활 잘하는 것, 어려워도 그 신앙 그대로 이어갈 것인가? 시험에는 꺾여 졌으나 그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크게 보고 다시 돌아올 때, 이제는 조카 롯과 문제가 생겼을 때에 먹고 사는 것 주님께 있다 하고 100프로 던져버립니다. 그렇다고 해도, 애굽의 바로 왕에게 이유 없이 공 제물 받아 나온 것은 이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4대 동안 종 살이 해야 되는 값을 따로 부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산은 우리처럼 대충 넘어가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따져보십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은 요셉의 죄나 요셉의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아버지 품속의 요셉보다, 세계의 중심 애굽에 밀어 넣어 천하에 하나님 대신하는 요셉으로 기르기 위해 유학을 보낸 겁니다. 또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아합처럼 매를 맞고 고치라고 그런 현실도 주십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무조건 죄 값입니다, 그것도 신앙은 아니고 무조건 제가 약해서 그렇습니다, 그것도 신앙도 아니고, 잘못의 결과일수도 있고 부족하여 연약의 결과일수도 있고 일반적으로는 정상적이나 더욱 길러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의 목표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뒤흔들며 길러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셋 중에 어느 것인가? 겸손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잘못 돼 그런 것이 아닌가? 어려움이 올 때는 이것을 먼저 살피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은 어려움을 겪을 때 잠깐만 생각해봐도 바로 알도록 하시지 이것은 어렵게 그러지 않으십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부족해 그런가? 그 다음 세 번째, 잘못도 아니며 약해 그런 것이 아니라 길러 가시기 위해서 주는 연단인가?  세 번째가 된다면 이것은 복입니다. 이것은 복입니다. 아무나 대학을 다 가는 오늘날 어려운 학교 배우기 어려운 기술을 부모가 시키면 포부가 크기 때문에 기대를 하는 건데 나를 데려온 자식이냐, 나를 구박하냐, 왜 어려운 학교 보내서 이 고생을 시키냐 그러면 일이 되지를 않습니다. 일이 되지를 않고.

생활이 잘못되어 병이 왔으면 생활을 고쳐 병을 고쳐야 되는데 습관이 잘못되고 술 담배를 해 가지고 간이 부었는데 주님이 나를 연단하시는 것이다, 그러고 앉았으면 이것도 참 대책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 대나 개나 뭐 그냥 죄를 지었다고 자꾸 울어대면 길러가지를 못하게 됩니다. 죄의 값은 믿는 사람에게 없습니다. 그건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을 때 이 죄를 깨닫게 하여 그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죄를 지으면 그 죄의 값으로 보이는, 반드시 값은 옵니다. 불신자는 죄 값으로 지옥이고 믿는 사람의 죄 값은 전부 해결을 했기 때문에 지옥과는 상관이 없으나, 그러나 죄의 결과를 보여주며 이 죄를 막아주십니다.

하나는 죄의 결과, 하나는 연약하고 부족한 결과, 하나는 정상적인데 더 기르기 위한 세 가지의 이런 어려움이 신앙생활에는 늘 있습니다. 크게 잘못 없고 크게 부족이 없는데 어려운 일 힘든 일이 겹쳐 자꾸 생길 때는 잘 살펴 죄 문제면 얼른 돌아서면 바로 해결이 되고 약한 것은 주님이 길러가는 방법이고, 만약에 세 번째 정상적인데 어려움을 주시면 이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그런데 복이 뭔지 기준이 잘못되어, 두고 갈 땅의 것이 많아지면 이것이 복이라는데 이것은 뭐 불신자고 이것은 믿어도 헛 믿는 겁니다마는 이 땅 위에 우리를 두사 세상 복과 천국 복이 헷갈리도록 고난도의 문제를 내시면서 너는 천국과 세상과 인간과 하나님을 구별하느냐, 그리고 계속 흔들어보시는 겁니다.

이게 다윗을 1대, 솔로몬을 2대로 친다면 여기 아하스 왕은 14대 왕이며, 이스라엘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고대 중세 말기에 속하는 말기의 시작점의 아하스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아하스 왕에게 왕이 되었고, 복 받는 다윗의 길을 걸어가면 좋겠는데 “다윗같이 정직히 행치 아니 하였더라” 2절입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처럼 “이방인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더라” 믿는 사람이 딱 봐도 믿는 사람으로 해서 안 되는 세상 인간들 하나님 진노하실 일을 골라서 따라 가더라, 이리되면 하나님께서 매를 들고 고칠래? 말래? 이건 필연적입니다. 버린 자식이면 던져놓지만은 사랑할수록 이 매는 강한 법입니다. 이 매는 저주가 아니라 사랑의 매입니다. 매를 들면 고쳐버리면 될 건데 죄를 지어 우상 문제가 생겨서 매를 드니까, 먼저 죄를 짓고 먼저 우상을 섬긴 이 이스라엘과 그 다음 안 믿는 아람 두 나라를 가지고 매를 삼아 아하스를 치니까 더 큰 세상, 더 강한 세상, 더 억센 죄인을 불러다가 해결을 합니다.

신앙생활이 잘못되어 정신 차리라고 독한 감기, 독감을 주니까 독한 독감정도야 그냥 예방 주사로 또는 병원에 가서 링거 맞으면 되지, 감기가 걸렸을 때에 건강을 함부로 잘못 써서 그러냐, 그러면 생활을 조심하면 됩니다. 건강은 조심하나 사람이 약골이라 감기가 걸리면, 평소 조금 더 운동하고 식생활 조심하고 이렇게 자기 면역력을 기르면 됩니다. 그런데 원래 건강한 사람 자기 관리가 되는 사람 튼튼한 사람인데, 잘못된 친구를 자꾸 만나대니까 나쁜 접촉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감기를 주시면 감기는 접촉입니다. 이런 접촉을 감기를 주시면, 감기가 걸릴 리가 없는데 감기 걸렸다는 말은 찬 공기, 이게 좋지 않은 접촉이 있어서 이것을 주셨는가보다. 그리고 잠깐 생각해보면 그건지 이건지 바로 판단이 나옵니다. 믿는 사람으로 만나지 않아야 좋을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서 만난다고 하지만은 슬금슬금 세상 죄 짓는 쪽으로 자꾸 이렇게 놀고 그러면 감기 안 걸릴 사람에게 감기를 주시면서, 접촉 조심해라 라는 말인데, 그것 까짓것 한 이틀 쉬고 링거 맞고 그러면 낫겠지 하고 버텼을 때 나으면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거는 일반적으로 걸릴 리도 없고 이 정도면 충분히 나아야 되는데 이게 계속 진행이 되면 뭔가 하나님께서 원하는 소원이 있는가보다, 그리고 자기를 얼른 살펴보셔야 됩니다. 이럴 때에 감기를 쉬고 링거 맞으면 된다고 버티면 감기가 이제 기관지로 가고 기관지가 폐렴으로 가고, 감기로 나을 것을 끝까지 버티면 하나님은 감기를 가지고 기관지 폐렴으로 갖다 그다음, 폐암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창조의 능력을 가진 사랑의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이 볼 수 없는 무형의 하나님이니까 쉽게 생각하고 쥐어박지만은 하나님은 쉬운 하나님이 아닙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영원불변입니다. 우리의 상태를 따라 길러가는 방법이 바뀌니까 하나님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하나님 자체와 우리의 구원의 인도가 바뀝니까?

얼른 방향을 딱 잡고 일이 생겼을 때 이 일이 원인이 무엇인지 얼른 분석하고 바로 대처하면 바로 한 계단씩 쭉쭉 올라가 버리면 굉장히 빠르게 신앙이 좋아지는데, 역사적인 경험에 큰 은혜 받은 사람 빠르게 회개하고 빠르게 따라가는 사람 석 달이면 몇 십 년 믿은 것을 앞서고  3년 바로 믿으면 역사적인 사람이 된다 할 만큼 신앙은 이렇게 빠르게 자라갑니다. 그런데 죄 짓고 버티고 죄 짓고 버티고 계속 헛 돌게 되면, 여기 다윗의 자자손손 14대 왕이면 천하를 제패하고 세상이 천국이 된 것처럼 되어야 될 것인데, 바로 믿고 나면 그 다음 교만해서 넘어지고 또 회개하고 올려놓으면 또 죄 짓고 내려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이 반복이 40년 광야의 반복이고 열왕기상에서 열왕기하까지의 반목이고 2천년 신약의 교회사의 반복이며 오늘 이 새벽에 우리도 돌아보면 은혜 받고 좀 좋아지면 좋아졌다가 그 다음 교만하고 방심하면 하나님께서 꺾었다가 올라갔다가 꺾었다가 그러다가 그냥 세월만 지나가며 많은 세월 속에 내가 믿고 잘 한 것이 뭐냐 되돌아 볼 때 재수, 삼수, 오수, 십 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하루 종일 달렸는데도 주인이 보면 그 자리입니다.

방향을 딱 잡아버리고 한번 두 번만 고치고 나가면 바로 그냥 창공을 차고 올라가는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신앙이 가파르게 올라갈 터인데. 이리 생각하면 좋겠는데 아니 뭐 여기에 있는다윗이나 요셉이야 원래 너무 높으니 내가 바라볼 신앙이 아니고 나야 이정도면 그래도 됐지, 자기가 자기 스스로 왕이 아니라 그런 평민처럼 그런 못난이처럼 만들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이 올려주시는 기회를 다 꺾어 버리고 내버리는 겁니다.

구약의 왕은 구약에 하나밖에 없는 왕이나 오늘 신약의 나는 내 현실에 날 중심으로 나는 하나님 앞에 하나 밖에 없는 왕이 바로 나다, 왕 된 나의 판단과 잘못은 내 현실에 끼쳐지고 연관된 모든 사람의 불행이 된다, 똑같은 군사인데 다윗이 왕이 되니까 전부 유명한 장군이 되고 성전의 용사들이 되고 똑같은 장군들인데 사울이 왕이 되니까 전부 패잔병, 졸장부, 도망자가 돼 버립니다. 나 하나가 주님 바로 따라 바로 걸어가면, 나와 연관된 나를 중심으로 주신 이 모든 나의 현실에 신앙의 모든 사람들이 용장이 되며 승장이 되어 집니다.

내가 사울처럼 그리되어지면, 나 때문에 나와 관계된 모든 주변 전부가 패잔병이 되고 졸장부 되고 도망자 되어 집니다. 하나님과 나는 신약의 모든 교인이 1대 1의 하나님 앞에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종들입니다. 다윗처럼 되어도 되고 여기 아하스처럼 되어도 되고 아하스같은 죄인으로 출발하여 이 모든 꼴을 당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는 아버지가 우상 숭배하고 끝장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러지 않겠다, 아버지의 실패를 똑똑히 보고 돌이킴으로 히스기야 때 하나님이 주신 복을 보면 다윗 때의 군사력과 부강이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그렇게 되어 집니다. 다윗의 아버지는 무명용사입니다. 이름 없는 일반인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는 못되고 참 나쁜 것만 가진 왕입니다. 부모의 잘못 때문에 자녀는 더 의인이 될 수도 이고 부모의 잘못을 보며 아니라, 아니라 하면서 결국 부모를 닮아 그 영향으로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고. 이것은 자기의 자세에 달려 있는데,

오늘 하루 이 좋은 2022년의 10월에 펼쳐진 현실을 세상을 향하여 마음껏 달려가도 이 좋은 세상 자유입니다. 이 좋은 세상 이렇게 좋으니 세상은 주님께 맡겨놓고 성경 읽고 예배 생활과 신앙생활에 매진을 해도 국가에서 먹여주는 이런 세상. 마음껏 신앙의 열심을 내도 자유입니다. 어느 쪽으로 달려갈 것인가? 요즘은 연휴에 2박 3일 괌도 저 남태평양 휴양이 기본이다, 주일 끼고 2박3일 가면 그 비행기가 태평양을 바로 날까? 겁이 나서라도 못할 것 같은데 용감하게 타는 사람들 용감하게 타고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혹시 버렸나 걱정해보셔야 됩니다.

그렇게까지 세상을 들여다봐야 되겠는가? 세상에 발맞추어 뒤떨어지지 않아야 되겠는가? 너의 신앙은 어떤 상태인가? 자꾸 돌아보셔서 돌아봄으로 신앙에 크게 유익이 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 가고, 세 번 가고 계속 반복을 하는데 이건 세상을 통해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배운다고 말은 하는데 이건 세상에 완전히 빠져버린 사람인가? 그런 사람인가? 못 본 세상을 한번 봄으로 내 현실을 감사하고 내 현실의 복을 깨달아 더욱 신앙으로 달려가는가? 그건은 쉽게 외관으로 판단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는 자기 마음에 알 겁니다. 너무나 좋아진 세상, 있는 힘을 다해 믿기에 열심을 내어, 주변에서 너무 지나치게 믿는 것은 아닌가, 이 말을 들어야 겨우 신앙의 보통입니다. 저거 완전히 교회에 미쳤다 해야 이제 조금 믿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처럼 신앙에 매진하고도 세상이 불편 없도록 까지 복을 현실에 갖춰주신 역사는 거의 없습니다. 복된 하루 되도록 고요히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더 큰 세상 문제 해결하기 위하여 더 죄인을 불러들인 것이 아하스가 앗수르 왕을 불러들인 겁니다. 그 왕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내어줬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에만 쓰는 것인데.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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