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9.30 요4:22 예배에 최선, 넓히면 주일 전체, 그대로 조심을 이어 평일까지 '하나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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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2.9.30 요4:22 예배에 최선, 넓히면 주일 전체, 그대로 조심을 이어 평일까지 '하나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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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30 금밤

제목 :  예배에 최선, 넓히면 주일 전체, 그대로 조심을 이어 평일까지 '하나님' 앞에서

찬송 : 60장(날 구원하신 예수를)

본문 : 요한복음 4장 22절 -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여자가 가로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사람으로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것, 사람으로 영원히 알 수 없고 영원한 흑암 속에 있는 죄를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 우리 죄 위하여 다 바치셨고, 우리에게 새 생명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셨으니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메시아, 그리스도 되신 주님을 이 밤도 배우며 닮아가며 주님과 다른 것을 고쳐가는 이 한 시간 되며, 예배가 거듭될수록 주님을 닮아가는 심신의 내면이 점점 많아지고 좋아져,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일편단심 이 한 가지에만 전심을 가지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이 일에 필요한 세상은 알아서 조절해 주실 것이며, 그 이상으로 우리가 구하고 찾으면 세상에 잠깐을 얻고 영생을 손해 보는 참담한 손해가 있겠사오니, 어디 있든지 이 밤도 주님만을 향한 우리 되게 하시되, 정한시간 정한장소를 기억하는 예배의 기회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우리들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이 밤도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사마리아 너희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 예배의 방법도 예배의 계통도 다 무시하고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건데, 하나님 빼버리고 엉뚱하게 예배를 드렸으니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일단 주의명령 주의계명을 따라 정한장소 정한방법이 있어야 되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의 사마리아 식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방법이 틀리면 틀린 겁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했다. 너희들 마음대로 예배드린 것은 너희들끼리는 예배고 하나님 앞에서는 예배가 아니다. 이래서 사마리아 예배는 틀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예루살렘의 유대인, 하나님이 정해놓은 그 법대로 그 계통을 따라 예배드리는 유다지파 예루살렘 성전의 예배가 옳습니다. 방법은 옳고 계통은 맞는데 그 예배를 바르게 드렸느냐, 구약의 예배가 실패했기 때문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또 주님이 오셔서 21절에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주님 오셨으니 주님만 따르거라. 구약의 모든 율법이 오시는 주님을 가르쳤고 주님이 오셨으니 이제 주님만 따르거라. “이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사마리아의 방식 하나님의 법을 떠난 이들은 아예 틀렸고,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구약은 맞는데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며 왜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이렇게 드리라고 했겠는가. 내용을 알아야 되는데 방법은 알고 형식은 알고 내용을 모르고 내용이 틀렸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으나 그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성전의 제사도, 주님 오심으로 이제 끝이 나버렸습니다.

사마리아 예배는 아예 다 틀렸다. 예루살렘 예배는 옳기는 옳은데 이제는 기회가 지나갔다. 이제 주님이 오셨으니 이제부터는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왔다. 죄인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예배를 못 드리는데 죄로 끊어졌기 때문에, 이미 끊어진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주님이 오셔서 연결을 시켰기 때문에, 주님을 통해보면 하나님이 보이고 주님을 통해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 예배가 되고, 하나님도 주님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면 은혜를 주시고 예배가 되어 집니다. 발전소가 있고 가정에 전기제품이 있어도 중간에 전선이 끊어져 버리면, 발전소 있으나마나 집에 가전제품이 있으나마나 필요가 없는데 주님이 오셔서 끊어진 전선을 이어버렸습니다. 전선이 이어지니 발전소에서는 마음껏 전기를 보낼 수 있고, 가정의 모든 전자제품은 마음껏 전기를 끌어다가, 빛도 되고 온도도 되고 얼음도 되고 요리도 되고 별의 별게 다 됩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게 예배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선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이 끊어진 선을 연결하러 오신 분이 주님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왔다. 주님이 오셨고 우리 죄로 죽었고 우리에게 새 생명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시니, 죽고 부활을 합하면 사활대속이라고 그럽니다. 사활의 대속 주일날 그래서 모든 날 중에 7일을 자르고, 7일 중에 주일을 생명의 날 죽은 인격이 산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없는 죽은 행위가 하나님께 붙들린 행위가 될 수 있는 생명의 날 생명의 기회가 주일이라. 사활의 대속으로 주일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 주일 때문에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는 겁니다.

주일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주일예배라 그럽니다. 주일 중에 예배시간을 따로 또 다시 정하여 정한시간 정한장소, 구약은 예루살렘 성전밖에 없으나 신약은 홀로이 가정단위로 또는 각 교회는 교회별로 정한시간 정한장소 주일에 예배로 모여, 주일의 예배로 모이는 이유는 인간의 죄로 하나님과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고 하나님 뜻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 주는 은혜가 올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고, 이게 구약이고 이게 주님 오기 전의 일입니다. 주님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연결시켜 놓으시고, 연결하기 위해 금요일 날 죽으시고 연결하는 순간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7일 중에 주일을 하나님 앞에 서는 날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날, 그 뜻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면 받는 시간이 주일의 예배입니다. 이 예배 때문에 주일이 주일인 겁니다. 주일에 예배 때문에 세상에 모든 매매 노동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일정을 다 끊어버려라. 끊고 말고도 할 것 없이 주님의 날 나의 주님 앞에 주의 은혜 받기 위해 집중하다보면, 이것저것 세상을 돌아볼 시간도 없어야 됩니다. 어린 신앙에게 끊어라 말아라 접어라 그랬지만은, 공부에 환장한 아이에게 뭐 나쁜 친구 따라 놀러 가지 말아라 게임방 가지 말아라. 이 말 저 말 할 것 없이 공부에 다 팔렸는데 뭔 걱정, 몸 상하지 않도록 공부해라 그게 제대로 된 학생입니다. 어디 가지 말아라 어디 가지 말아라 어디 가지 말라 뭐 하지 말아라. 이거 뭐 사실 학생도 아닙니다. 근데 역사 이후로 사람이란 별의 별 사람이 있기 때문에 어린 사람 막 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일곱 가지를 지켜라 매매 장사하지 말아라 이런저런 말 하는 겁니다.

금요일 밤의 예배는 교단 적으로 전국에 우리 공회밖에 없습니다. 기도회는 있고 찬양예배는 있고 다른 거는 있는데, 이런저런 다른 걸로 모이는 것은 교회의 그냥 행사입니다. 주일 오전처럼 오후처럼 3일 예배처럼 5일 예배를 예배로 그냥 지켜 나오는 것은, 우리공회도 1970년부터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52년 이어오고 있습니다. 수요일의 3일 예배는 그 이전부터였고 주일 오전과 오후예배는 2천 년 역사에 이것은 지켜오는 예배였습니다. 왜 주일인가 하나님과 끊어진 걸 해결하고 그다음 하나님과 연결시킨 그 출발의 날이 주일이니 주일날은, 우리의 날이 아니라 주의 날로 딱 잡아 24시간 전부를 하나님의 날로 알고, 24시간 전부를 예배드리면 더 좋겠지마는 일부러 하나님께서 그 주일 중에서도 예배시간을 교회마다 정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10시와 2시가 주일의 예배입니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지만은 특별히 주일은 주일이라고 이름까지 붙였으니 더욱 주일이고, 주일전부가 하나님의 날이니 하나님 앞에 예배의 자세라야 하지만은, 집중력에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예배시간이라고 따로 딱 떼서 정했으니, 모든 날도 주의 날이나 주일날은 더욱 주일이고, 주일의 모든 날이 하나님 앞이지만 그중에서도 주일 예배만큼은 있는 힘을 다해서 이거는 하나님 앞이라. 내 마음 너 마음 인간 세상 모든 것 주일의 예배에는 100% 딱 끊어버리고, 그래서 주일에 오전과 오후에 예배가 인간적인 걸 다 걷어버리고, 잘 믿던 못 믿던 하나님 앞에 조심하는 우리로 예배시간이 지켜지면, 이걸 예배준비와 예배 후의 시간에 조금 넓혀버리면 이게 정상적인 주일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주일을 6일에 번져버리고 6일에 흩어버리고 6일에 배어나가서 6일을 전부 다 바꿔버리면, 주일만 주일인데 실질적으로 7일 전부가 주일적인 날이 되어져야 이게 바로 된 겁니다.

공부를 자꾸 예 드는 것은 공부가 제일 예를 들기가 쉬워 그렇습니다. 성경과 옛날에는 학교가 없기 때문에 농사짓는 걸로 가지고 자꾸 비교를 했습니다. 지금은 공부 안하는 사람 없고 공부 안 시키는 가정이 없어, 공부라는 것이 옛날 농사처럼 모르는 사람이 없어 학교로 가지고 자꾸 비교합니다. 수업시간은 정말로 수업시간이니까 선생님이 아니 그렇게까지 난리인데, 선생님 눈앞에서 나쁜 짓 하면 그거 되겠습니까? 수업시간만큼은 선생님 말 똑바로 들어라. 그 말은 수업시간 앞뒤는 네 멋대로 마음대로 해라 그 말이 아닙니다. 수업시간은 선생님이 정말로 요긴한 걸 가르치니 그 시간은 정말로 집중하고, 이 시간이 제대로 되려면 예습도 하고 복습도 해야 될 것 아니냐. 자기의 실력과 상황에 따라 예습을 더 해야 되는 과목도 있고 복습을 더 해야 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영어는 예습입니까 복습입니까 혹시 아십니까? 영어는 복습입니다. 수학은 예습에 있습니까? 복습에 있습니까? 수학은 예습에 있습니다. 미리 풀어보려고 발버둥을 하고 그다음 선생님 설명을 딱 들으면 아 이렇구나 하면, 그다음 복습은 별로 필요 없이 해결됩니다. 영어는 그냥 선생님 가르치는 거 들어가지고 그대로만 계속 반복하면 저절로 올라갑니다. 그렇다고 영어라도 예습은 전혀 필요 없고 수학이 복습은 전혀 필요 없다 말은 아닙니다. 과목에 따라 좀 다른 겁니다. 아이들의 실력에 따라서도 좀 다른 겁니다. 전체적으로 수업시간에 조차 한눈팔고 엉뚱한 짓 하는 것들은 가차 없이 처단해라 그러면 학교입니다. 뭐 말 안 해도 이건 상식입니다.

주일에 예배 시간만큼은 네 멋대로 해서 되겠느냐 그때만큼은 주님 앞에 주님은 어떤 마음일까. 여기는 빼고 더하고 뭐 형편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집중해라. 그리고 주일 예배시간 앞에 오전오후 그 시간은 가정의 형편 건강 따라 이럴 수 있고 저럴 수 있다. 그 말은 주일이 예배만 하나님 앞이고 나머지는 네 멋대로가 아닙니다. 주일전부가 하나님의 날인데 예배는 학생으로 말하면 수업시간과 같고, 그 다음 주일 전체는 수업시간 앞에 예습의 복습에도 잘 각자 알아서 조절해라. 그 공부 할 학생이면 당연한 겁니다. 이제 이렇게 되면 수업시간도 바로 되고 수업전후 점심시간 방과 후 또 저녁에 학원까지, 여러 가지를 통해서 이제 수업시간에 부족한 걸 채우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배운 걸 써먹기도 하고, 자기에게 맞춰 강조도 달라지고 그러면서 공부한 혜택이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방학이 되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이제 방학 때는 책은 모조리 읽고 마음껏 살아라. 그게 방학입니까? 풀어놓을 ‘방’ 학교에서 풀려나와 고삐 풀린 망아지 그냥 들판을 네 멋대로 돌아다니라 이게 방학인가? 그 학생 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수업은 수업이고 수업 앞뒤의 예습복습도 꼬박꼬박 해나가다가 방학 두 달 석 달 심지어 방학을 넉 달을 주거든, 다른 사람 때문에 붙들려 나가던 일정 그 일정에서 해방이 되어, 너만이 갖추고 너만이 나아가야 될 바쁜 일이 있지 않냐. 방학에 몇 달간 너 원하는 걸 있는 힘껏 달려 나가거라. 적어도 학생이면 잘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이거는 기본입니다.

굳이 주일로 비교를 하자면 수업시간이 주일의 예배시간, 수업시간 앞뒤의 예습복습이 주일 24시간 전부입니다. 그리고 평일은 주의 날이 아니니까 네 멋 대로냐? 어린 사람 이야기고 정말 믿고 싶은 사람 제대로 믿는 사람에게 평일이란 학생에게 방학과 같이, 이제는 주일의 예배와 주일 전체를 통해 나는 주님 앞에 무엇이 급하다. 주님은 내게 뭘 원하겠다. 이걸 딱 잡고 학생은 학교로 사업가는 사업으로 각자 자기 환경 자기 현실로 흩어져, 학교 공부시간 학교일정에 매이지 않은 방학처럼, 그러니 방학에 평소공부 잘한 사람은 사회를 둘러보면서 역량을 기를 수도 있는 거고, 한껏 노력에도 수학이 부족한 사람은, 방학 두 달 석 달 완전히 수학만 할 수도 있는 것처럼, 주일의 예배와 주일은 일반적으로 같고 그다음 주일이 바로 지나갔다면, 아니 예배가 이렇게 중요한데 난 예배를 멋도 모르고 그냥 오고 갔구나 그리고 학교를 가며 그리고 직장을 가며, 그리고 한 주간 나 마음대로 일정을 잡을 수 있는 학교의 방학과 같은 이 6일을, 나는 어떤 면에 특별히 주력을 할 것인가. 성경에 읽을 사람도 있을 거고 일주일에 기도를 많이 해야 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바쁘게 전도할 사람도 있는 것이고 또 열심히 돈을 벌어 우리 모든 식구들이 신앙생활 자유롭게 하도록, 그냥 돈에 마치 환장한 사람처럼 돈 버는 데 열심인 사람도 있겠지마는, 그 속에 내막은 전부 다 학생이 학생답게 방학을 보내는 것처럼, 믿는 사람은 주일의 예배와 주일을 지나며 나머지 평일은 목사는 목사다운 평일, 잘 믿는 사람은 잘 믿는 사람다운 6일의 평일, 이제 막 교회를 알고 주일을 막 배운 사람은, 주일 하루를 위해 6일간은 그냥 허겁지겁 세상일만 해도 벅찰 겁니다. 주일을 주일답게 바로 지키려면 주일에 문제없도록 미리 정리를 하고 미리 다 해야 되기 때문에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이게 주일이며 주일의 핵심인 예배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 주일날입니다. 예배라는 것은 주일날 전부가 주님의 날인데, 주님의 날 안에도 주님 앞에 조심해야 할 예배시간에 예배를 주일의 예배라 그럽니다. 24시간 전부를 조심하다 보면 그냥 집중이 흐트러져가지고 죽도 밥도 안 될 수가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만은 더욱 조심하고 주일의 예배에 더 조심한 그 마음을 가지고, 주일 하루는 전체적으로 주님의 날이라. 예배 때 받은 말씀 예배를 준비하는 그 자세로 주일은 어쨌든 하나님 앞에 조심조심하는 겁니다. 큰 집에 어른이 안방에 있으면 안방에 어른 앞에 갈 때는 더 조심하는 거고 안방 문을 닫고 밖에 나오면, 이제 어른 계시는 방문을 닫고 마당에 부엌으로 나왔으니 이제 기지개도 켜고 좀 자유롭지만은, 그래도 넓은 집 안에 어른이 있으니 여전히 좀 조심하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입니다. 이것처럼 예배는 어른 눈앞에 앉은 것과 같습니다. 예배 시간이 마친 주일 전체는 어른 방에서는 나왔습니다. 문을 닫았습니다. 화장실도 가고 복도도 가고 뒤뜰도 가고 우물도 가고 부엌도 가고 형제끼리 만나서 소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 안에 지금 어른이 계시면 좀 조심하는 겁니다. 주일의 조심은 평일의 조심과는 달라야 됩니다. 주일하루 전체의 조심보다 예배에 조심은 이거는 뭐 그냥 자기대로는 조심해야 됩니다. 자기대로는. 누가 보더라도 저 사람은 평일과 주일은 확실히 표가 난다. 주일날은 고르는 게 많더라. 안 하는 게 많더라. 확실히 주일은 저 사람은 자기대로는 뭔 하고 안하고가 있더라. 평일과 주일은 선을 지켜야 됩니다.

주일 중에서도 예배당 안에서와 예배당 밖에서는 다르더라. 예배당 안에서도 예배 시간과 주일의 다른 시간은 역시 다르더라. 이렇게 구별이 있고 구별이 있는 것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며 출애굽한 지 오순절 50일쯤 지났을 때 시내 산으로 갑니다. 시내 산꼭대기는 모세가 올라갑니다. 시내 산 중턱에는 백성의 간부들 두목들만 올라옵니다. 일반 백성들은 저 시내 산발치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시내 산, 주님을 모시는 하나님과 만나는 산 저 발 치 밑바닥에 있으니 좀 자유롭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중턱까지 올라와야 됩니다. 더 조심해야 됩니다. 이거 선을 지키지 않고 조심 안하면 하나님이 돌격해서 그대로 그냥 살라버립니다. 그리고 모세처럼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되는 최고의 지도자는 더욱 조심하는 겁니다. 목회자는 더욱 조심 오래 믿은 사람들은 일반교인보다 더 조심 또 일반교인은 일반교인 만큼 이게 주일입니다. 이게 주일의 예배입니다. 그래서 날 중에는 주일이고 시간 중에는 예배시간이라 기억하셔서, 이후 여하를 막론하고 예배시간은 남 흉내를 다 낼 수는 없지만은 목회자 장로님 오래 믿고 잘 믿는 사람과 똑같이 하기는 어렵지만은, 나로서는 예배의 시간은 다른 시간보다는 더 돌아보고 더 조심해야 예배를 아는 사람 됩니다. 그게 정성이 모여질 때 하나님이 그 사람 앞에 찾아갑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예배가 되고 신령한 예배, 하나님이 찾아오는 신령한 예배가 되려면 인간은 마음을 다하고 자세를 다하는 것을 신령과 진정이라.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겁니다. 나로서는 건강에 따라 조심, 나로서는 경제에 따라 조심, 나로서는 신앙과 건강과 경제와 여러 입장을 봐가며 제일 조심 예배입니다. 이게 진정입니다. 너는 좀 더 해도 되는데 네가 동네에서는 악을 쓰고 원래 평생 싸움만 하는 사람인 줄 온 동네가 아는데, 그 주일날 예배당에 와가지고도 이 사람 저 사람 욕을 하고 삿대질을 하고 싸움 박지기를 해서 되겠느냐.집안과 동네에서는 너는 싸움패라 왈패라 너는 사방천지 싸우고, 별별 악쓰는 사람인 줄 온 집안이 알고 온 동네가 안다만은, 주일날 예배당에 와서 예배시간에도 그래? 그거는 안 되는 겁니다. 그건 조폭도 안 되고 그건 경찰도 안 되고, 예배시간에는 경찰이 저 뒤에 앉았는데 앞에 도둑이 있으면, 예배 끝나고 예배당 밖에서는 잡아 갈망정 예배시간에는 살인마가 있어도 그거는 잡아가는 거 아닙니다. 예배 끝나고 잡아가면 가지. 예배시간에 다른 사람은 박으면 가서 꺾어서 잡아가야 되겠지마는, 경찰이라도 조폭이라도 평일은 잡으러 다니고 담을 뛰어 도망을 가도 주일날까지 도둑질하러 다녀? 주일날까지 담 넘어서 도둑 놈 따라 다녀? 평일 날 하지 그게 주일입니다.

예배 시간은, 네가 한 주간 온 동네 온 집안 식구와 별별 싸움을 다 한 줄 천하가 알지만은, 주일날 예배당 안에서도 눈을 부라리고 싸우고 생난리야 그거 하나님을 갖다가 짓밟는 행동입니다. 그거 하나님을 짓밟는 행동입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거. 집에서는 영감을  쥐 박고 애들한테 혼을 내고 앞집 뒷집을 갖다가 따지고 전화를 해서 욕을 하고, 한 주 간을 내 하고 평생을 다 그래도 주일날 예배 시간에는 그러면 안 됩니다. 예배 마치고 그러면 저 식당에 가가지고는 이제 눈에 봐놓은 사람 옆구리를 들쑤시고 다니면 되겠습니까? 깡패야 뭐 예배시간 참으면 잘했고 예배시간 끝나고 나서 싸우는 거는 그럴 수 있지만은, 교회의 간부들 오래 믿은 분들 잘 믿지는 못했지만 남들이 오래 믿어서 잘 믿는 줄로 아는 그런 분들은, 예배당 와서는 그러시면 안 됩니다. 돈 받을 게 있어도 예배당에 와서 돈 받으러 댕기고 그러면 안 됩니다. 주일날 예배당에 수금하러 댕기는 분도 계십니다. 요즘은 없던데. 천만금을 떼여 쪽박을 차도 주일날 예배당에 오면서 예배시간에 점심시간에, 예배 마치고 가는 차 안에서 수금하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이때는 어찌 될라 하나님 앞에 가는 시간이니 또 하나님께 은혜 받고 돌아가는 시간인데 하나님이 지켜보니, 주일날도 안 됩니다.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고 매매하지 말고 일하지 말라 여기에 주일날 수금도 안 됩니다. 싸움 박지기는 더 안 됩니다.

주일날 예배당에 오셔서 싸움 해보신 분들 스무 명은 넘을 것 같고 한 절반 될 걸요 여기. 예배시간 안에서도 싸운 사람은 몇 있습니다. 한 두 세 사람. 예배당에 예배시간에도 일어서 가지고 목사한테 삿대질 하고 악쓰고 그런 분, 여기 계십니다. 회개하셔야 됩니다. 한 30년 전에 그러셨습니다. 예배가 끝났다고 종 치기 전에는 광고를 해도 예배시간입니다. 발표를 해도 예배 시간입니다. 저 구예배당에 한 앞에서 한 네 번째 줄 이 줄에 앉아가지고, 예배도 끝 안 났는데 벌떡 일어나 가지고 막 삿대질하고 이 말을 하고 저 말을 하고 그럽니다. 30년 전입니다. 하나님 멱살 잡고 때리는 그런 행위입니다. 좋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예배시간 안에 그런 분들은 뭐 별로 없는 거고 예배당에 오면서 싸운 분들 더러 계시지요? 예배 마치고 가면서 싸운 분들은 많지요? 오전예배 오후예배 사이에 식사하면서 이 방에 가서 집적 저 방에 가서 집적 애들은 혼내고 윗사람한테는 대들고, 스무 명은 넘을 것 같은데 제 나이가 한 100살 되면 이런 예배시간에 그런 사람 이름을 불러서 일어나라 그러고 좀 손을 들고 벌서라 그러겠는데, 아직 100살이 되려면 나이가 3, 40년 더 있어야 됩니다. 그냥 자기 마음으로 손듭니다. 손들지 마시고 마음으로, 주일날 예배당에 오셔서 싸움 해본 분들 마음으로 손들어 보시지요. 여기 한 스무 명이 됩니다. 근데 교회 다닌 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은 그럴 수 있는 겁니다. 모르니까 그런데. 근데 한 10년 배우고 그러면 그거 안 되는 겁니다. 30년 40년 50년을 교회를 다니고 그 예배 가르칠 것 없이 그게 예배입니까?

부부가 부부싸움을 해도 어른 앞에서는 부부싸움 하는 게 아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거는 눈치입니다. 여자한테 한 소리 할 거 있어도 친정에 가가지고 처갓집 가가지고 여자 야단치는 이런 사위 놈은 망할 놈이지 그런 것들은. 또 여자가 남자를 쥐고 살아야 되겠지마는 시부모 앞에서 콱 이래가지고 지근지근 밟고 그러는 거는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부부 둘이서 결판을 내서 서열을 따지는 거는 좋지만은, 부모 앞에 와가지고 그러는 거는 아닌 겁니다. 불신자들도 이런 것은 옛날에는 어디든 다 알았습니다 한국은 100% 알았습니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부모 앞에 그러면 온 동네에서 때려서 거의 반 죽여 버립니다. 두 번 다시 못 그러도록.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서로 조심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주일날 오전예배 오후에 마치면 한 2~3시간 별관에서 식사도 하시고 쉬시기도 하는데,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서로 대화하고 그러는 거지. 거기서 이 사람 저 사람 건드려서 주일날 점심시간에 잘 믿는 누가 이런 말을 해서 나 그 교회 안 다니련다. 하나 빠지고 한 가정 빠지고 두 가정 빠지고 열 가정 빠지고 스무 가정 빠지고, 이 시골에서 한 사람 모시려면 1년에 한 사람 전도도 어려운데, 주일도 모르고 예배를 모르니까 그런 분은 집사도 떼버리고 세례 받은 것도 취소를 시키고, 장로교회 헌법에 보면 한 석 달 교회 나오지 마! 이렇게 처벌을 해야 되는데 공회교회는 처벌을 안 합니다 한다고 먹힙니까? 교도소가 있다고 잡아 들어가기야 하겠습니까? 그냥 알아서 조심하시라 그런 겁니다.

이제 어른들에 대해서 이만큼 말씀을 드렸으니까 20대들 10대들, 아무리 화가 나도 예배당에 오면서 성질내고 오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화가 나면 마음으로는 화가 나도 얼굴에 환한 얼굴로 가지고 교회 은혜 받고 예배드리러 오는 남들한테다 대고, 악기 독기 이런 걸 뿌리는 것은 바이러스 뿌리는 사람하고 같습니다. 코로나 뿌리는 사람들처럼. 그 집 안에 있었던 일은 집안에 묶고 와야지 부모한테 화난 것은 부모한테 상대해야 되지, 왜 옆집한테다 대고 인상을 그리고 그럽니까? 그런 사회성 공공성을 모르면 그 직장 들어가 봐야 직장에 오래 있지도 못하고 또 올라갈 자리에 올려주지도 안 합니다. 그거 다 고쳐야 되지. 이게 다 예배를 배우고 나면 그리되는 겁니다. 잘 믿는 사람은 한 주간 세상을 살아도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이 지켜보기 때문에 조심. 못 나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켜보니까 말조심 행동조심. 바보처럼 당하고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켜보니 이 정도 조심 이게 한 주간입니다. 주일이 되면 이날은 주의 날이니까 그냥 아주 조심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배당 예배가 되면 주님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그러셔야 됩니다. 예배당이 그래놓으면 너무 차갑고 너무 갑갑하고 너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아니냐. 죄인이 숨이 좀 막혀야 하지 죄인이 마음대로 설치고 돌아 댕기면 약한 사람 얼마를 갖다가 그냥 죽이고 강도짓을 하려고? 대한민국의 교도소에 아마 10만 명은 있을 건데, 교도소에 5만 명 10만 명 다 풀어가지고 그냥 너 멋대로 살아라 그러면 5천만 명이 살겠습니까? 교도소는 좀 조용히 해야 되고 쥐 박아야 되지. 교도소 가기 싫으면 평소 조심하는 거지. 요즘은 남을 째려보다가 cctv에 걸렸다 하면 남을 째려본 것 가지고도 교도소 갑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켜보시니 한 주간도 조심 그리고 주일은 더 조심 예배는 더 조심. 그래서 예배 때문에 주일은 다른 날과 차이가 나고 주일이 다른 날보다 나아졌기 때문에 점점 다른 날 평일도 조금씩 조금 씩 나아져서, 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평소에 먹을 게 있어도 알아서 먹고 조심해 먹고 살피더라. 하나님 모르는 사람은 먹는 것이 남는다고 기회가 되면 먹고 보는데 믿는 사람들은, 먹을 기회가 와도 다 먹어도 되느냐 절반만 먹어도 되느냐 얼마나 먹어야 되느냐 먹으면 아니 되느냐. 하나님 때문에 계산하느라고 세상 살 때는 조심하고 좀 서툴어야 그게 믿는 사람입니다. 주일 지킨 사람은 그리 돼야 되고 이러다가 주일을 겪어야 주일이 주일답게 되어 집니다. 예배는 하나님 눈 바로 앞에 말하자면, 주일은 어른이 계시는 집 안에서는 좀 조심하듯 이것이 주일이다. 그리고 동네 나가고 직장을 나가도 내가 직장에서 이 말을 하면 이런 행동을 하면, 직장의 윗사람이 옆에 사람이 그놈 아버지 어떤 인간인고? 저런 걸 낳고도 지어미가 미역국을 먹었을까 나를 낳은 부모한테 이런 말을 들어서야 되겠느냐. 일등은 못하지만은 상은 못 받지만은 저런 놈의 인간이 있냐. 저놈 성씨가 어디냐, 저놈 행동을 보니까 저 아버지는 아주 그냥 죄인 중에 괴수구만. 부모한테 이렇게까지 말 듣게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부모한테 욕 얻어 먹일까 좀 조심하고 살면, 부모한테 좋은 게 돌아가기 전에 자기한테 좋은 겁니다. 부모 욕은 얻어 먹여서는 안 되겠다. 이 요 정신으로만 살아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때문에 들먹고 하나님 때문에 늦게 먹고 하나님 때문에 좀 조심하면 하나님께서 지켜보면서, 나 때문에 100을 가질 건데 10을 손해 봤냐. 나 때문에 욕 하나 더 먹을 걸 둘 얻어먹었냐. 나 때문에 너도 10번욕을 할 걸 한두 번 줄였냐. 나 때문에 손해 본 걸 딱 계산했다가 갚으시지 않겠습니까? 예배와 주일과 그리고 평일을 3단계로 구분해서 아무리 망나니라도 어른 눈앞에선 조심하고, 어른이 계실 때 집안에서는 좀 조심하고 밖에 나가면 내 마음껏 살지만은 아무리 마음껏 살 수 있어도, 저놈 부모가 누굴까 그 소리가 들리도록 까지는 하지 않아야 되겠다.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입니다. 이래 1년 2년 살다 보면 굉장히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 때문에 이 정도 조심하면 하나님이 마구 치켜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렇게까지 되어지는 출발이 예배입니다. 예배. 예배는 하나님 눈앞에 주일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날이니 아버지의 집에 가서, 결혼한 부부가 부모 앞에서는 조심하는 겁니다. 부모 눈앞에서는. 그리고 처갓집에 가서는 부인한테 처부모 없는데서라도 처가 집 안에서는 더 조심하는 겁니다. 그리고 평소 살아도 처가집이 멀리 있고 시댁이 멀리 있어도, 여기여기 그까지 건너가도록 까지는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겁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도 이런 거는 상식입니다. 예배와 주일과 평일의 관계를 이렇게 놓고 예배를 예배답게 보내면, 하나님께서 적어 놓으시고 계산하시고 헤아릴 수 없는 복으로 갚으실 겁니다. 그 갚아주는 복을 노리고 연극하라 그 말이 아니라, 처음 믿을 때는 뭔가 주는 게 있으니까 그러겠지마는 좀 생각해보면 그거는 기본이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겁니다.

당연한 기본으로 믿다보면 잘 믿는 사람이 되고, 잘 믿는 사람이 되고 보면 잘 믿는 것만큼 세상에 좋은 일은 없구나. 그리 되는 겁니다. 금요일 예배 오늘 참석한 분들, 평생에 죽는 날까지 뺨을 백 개 맞고 천 개를 맞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도 주일날 욕하고 싸우는 거 아닙니다. 나도 내 밥 먹고 내 인간행동 못하는데 왜 남이 남 밥 먹고 내 앞을 저거 하는데 왜 가르치려 듭니까? 왜 쥐 박습니까? 밥 줬습니까? 밥 준 거지한테도 이래라 저래라 하면 요즘 거지는 밥그릇 집어 던져버리며 더러워서 안 먹는다고, 집에서는 내 집에 머슴이라도 집에서는 내 집에 식모라도, 예배당 와가지고 자기 집에 식모머슴을 식모머슴으로 부리면 하나님께서, 너는 나를 머슴인 줄 아는구나. 이리 됩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예배시간에는 예배 시간과 시간에는 주일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눈을 생각해 그냥 집에까지 가셔서 집에 가서 할 말을 하시더라도, 예배당에서는 소리나오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 소리가 들려서 이 정도로 표현하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뒤에 잘못했습니다. 안 그러겠습니다. 그런 말 필요 없이 안하시면 됩니다. 안하면 그게 최고입니다. 앞으로는 안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은 또 뒤에 또 하게 돼 있습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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