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2.9.30 요4:24 * 예배는 하나님 앞이니, 예배당 오가는 자세도 삼가 조심 * 미신 귀신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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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2.9.30 요4:24 * 예배는 하나님 앞이니, 예배당 오가는 자세도 삼가 조심 * 미신 귀신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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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30 금새

제목 : *예배는 하나님 앞이니, 예배당 오가는 자세도 삼가 조심 * 미신 귀신의 원리

찬송 : 61장(이 세상 험하고)

본문 : 요한복음 4장 24절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는 가장 높고 낮은 것이 부모와 자녀 사이입니다. 임금과 신하 사이도 그 어떤 주인과 노예의 사이도 부모와 자녀만큼 소중하지는 않고, 또 부모만큼 높은 존재는 없는 법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차이가 인간 중에서는 제일 아래 위가 높습니다. 나머지는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전부 합해서 인인관계라고 그럽니다. 인인 관계. 부모와 자녀도 인인 관계입니다.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예배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뛰어넘는 하나님과 사람의 신인 관계의 예배입니다. 예배가 없어지고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미신, 귀신이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천하의 잡신, 미신, 귀신이 그득할 때에는, 신은 틀렸지만은 신을 대하는 자세는 그게 맞았습니다. 부모를 넘어서고 인간을 넘어서는 절대자, 그 앞에 떨었고 그 앞에 빌었고 그 앞에 겁을 먹었습니다.
 
신은 잘못 찾았는데 잡신, 미신, 귀신 신은 아닌데 가짜배기인데 죄를 지어서 영이 죽어버리니까 신을 찾는 눈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우리 몸이 아무리 바보라도 자기 마음은 느낍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영을 느낍니다. 죄를 지어서 영이 죽어버리니 뭔가 인간 위에 신이 있기는 있는데 그것은 아는 겁니다. 뭐가 있기는 있는데. 저 바다 넘어서 뭐가 있기는 있지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또 바다 밑바닥이라는 것은 밑바닥이 있으니까 물이 담기지 밑바닥이 없으면 물이 담기겠습니까? 그런데 바다가 너무 깊으면 저 필리핀 앞에 바다는 1만 킬로니까 4천 킬로면 1만입니다. 바다 밑으로 몇 만 리가 있는 겁니다. 높은 산보다 바다가 더 깊습니. 아무리 깊어도 뭔가 있기는 있습니다. 물이 담기는 것을 보니.

그런데 인간이 몸만 가지고는 물속에 아무리 밑으로 들어가도 2, 30미터 들어가지 더 이상은 못 들어갑니다. 그러니 바닥이 있기는 있는데 그건 압니다. 얼마나 깊은지 그 밑이 어떻게 돼 있는지 그건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위로 올라가면 하늘이 보이니 하늘은 있는 것이고 그런데 저 하늘 저 끝 저 위에는 뭐가 있을까? 그건 모릅니다. 뭔가 있기는 있지 없지는 않은데. 우리의 몸이란 아프지 아니하고 배부르면 행복해 합니다. 병 없이 배부르면 몸은 만족입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은 아무리 배가 부르고 아무리 아프지 않아도 마음은 지식으로 채워야 배가 부르지 지식으로 채우기 전에는 마음은 배가 고픕니다. 밥 실컷 먹고 공부를 안 해서 글도 못 읽으면 저 책의 글이 무슨 말일까? 자꾸 궁금해지게 돼있습니다.

결국 밥을 한 끼 덜 먹어도 배우러가게 돼 있습니다. 몸은 아프지 않고 배부르면 만족한다, 마음은 몸이 배부르고 아프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 이제 마음이 배가 고픕니다. 마음은 지식을 먹어야 됩니다. 또 다 알고 나면 이제 마음은 만족인가? 우리가 밥을 아무리 먹어도 국을 안 먹으면 서운하고 밥과 국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김치를 안 먹으면 밥 먹은 듯하지 않고 뭔가 좀 그렇고, 밥 국 김치를 아무리 먹어도 간장 먹지 않으면 또 그런 것처럼,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것으로는 만족한데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영광, 남이 알아주는 대우, 영광 대우가 없으면 이게 또 섭섭하고 이게 추워집니다.

많이 알아야 되고 남들이 알아줘야 되고, 남들이 박수치고 남들이 존경을 해야 또 마음은 흐뭇해합니다. 많이 알아야 되고 할 일이 있어야 되고, 또 남들이 알아줘야 되고, 다 하나씩 채워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임금으로 말을 하면 천하제일 좋은 의사 갖다 놨지, 천하제일 좋은 것 먹지, 만 백성이 숙이지, 박수치지, 뭐든지 이제 다 갖춘 겁니다. 자기 갖출 것을 다 갖추고 나면 그다음 백 프로 만족을 해야 되는데 뭔가 섭섭합니다. 알고 보니 인간이 인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뭔가 있기는 있는데, 꼭대기에 올라가보지 않은 사람은 올라만 가면 되는 줄 알고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보고 다 살아보고 다 알고 나면, 그때서야 이게 뭔가 몸이 아니고 마음이 아니고 뭔가 인간 위에 신적인 것이 있으니 이게 뭘까? 뭔가 느끼는 겁니다.

그때부터 이제 머리 좋은 사람들은 이것저것을 뒤섞어 중국에서는 땅과 하늘 아래 위가 이렇게 조화롭게 세상이 돌아가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이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짐작이 있고 추론이 있고 시도가 있고 그 과정에 생겨나는 것이 철학이고 철학 위에 종교고, 철학과 종교의 제일 위의 꼭대기 중심은 철학의 중심은 아무리 들어가도 인간이고 종교의 중심, 종교의 제일 끝은 부처다, 하늘이다 뭐다 해서 하나씩 갖다 붙입니다. 그 존재 앞에는 모두가 떨었습니다.. 겁을 먹었습니다. 바짝 얼어 벌벌 메고 살았습니다.

영이 죽었으니 귀신은 영이 죽었으니 하나님은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말은 잘 만나봐야 악령이고 대부분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확실한 것은 인간이 전부는 아니다. 과학이 아무리 요술을 부려도 과학의 요술은 인간 머리에서 나온 인간적인 겁니다. 또 인간이 머리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땅을 파고 그 안에 있는 것을 짜고, 갈고 이렇게 만들어낸 것도 있으니 그것은 자연입니다. 자연은 물질입니다. 인간 머리와 인간 머리보다 밑에 있는 물질 두 개가 조화롭게 만들어낸 것이 오늘의 별의 별 것입니다. 아무리 많아봐야, 아무리 탁월해봐야 인간과 물질 안에서만 일어난 것이 이게 과학입니다.

영이 죽어 영이 역할을 못하다보니 심령이 어둡고 심령이 깜깜하니 뭔가 있기는 있다는 것까지는 느끼고 뭔지는 모르고,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일반 종교며, 그 일반 종교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간이 전부가 아니며, 자연이 전부가 아니며 물질이용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생전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생전 후를 찾았으니 사후 세계고 세상을 만들고 움직이는 세력을 찾았으니 이런 저런 잡신이었습니다.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고 결론은 잡지를 못했으나 인간이 전부가 아니라 떨었습니다. 그 자세가 바로 예배의 신령과 진정의 자세입니다.

교회 다니는 우리는 위대해서 신을 바로 찾았습니까? 하나님이 먼저 오셔서 내가 하나님이다, 이렇게 보여주시고 손을 잡아주시니 그래서 알게 된 겁니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그 관계, 그 자세가 예배입니다. 예배. 아무리 위대해도 예배드리는 예배당에 올 때는 부잣집 마님의 마님도 안방에 벗어놓고 오셔야 되고 그 집의 식모도 그 집에 식모 노릇하던 비겁함 비굴함도 그 부엌에 놓고 교인으로 오셔야 되고, 성경을 많이 읽고 신학을 많이 공부한 목사도 강단에 설때는 이 시간 주님은 어떤 말씀을 원하실까? 그것만 들고 와야 되고 교인들도 오늘의 예배에는 어떤 마음을, 어떤 생각을, 어떤 하나님의 인도를 참아야 될까? 그것만 집중을 해야 됩니다.

인간끼리는 뭐 하늘과 땅만큼 이렇게 차이가 나지만은 하나님 앞에서는 그거 말하자면 하늘 밑에는 백두산이나 한라산이나, 바다 밑바닥이나, 그거나 그거나 높이 잴 것이 없습니다. 전부 피조물입니다. 무지 무능입니다. 그냥 두면 전부 지옥입니다. 하나님은 1등 놓고 나는 두 번째 가고 너는 세 번째 가고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높고 나머지는 똑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만. 그리고 인간끼리는 부자면 부자고 못나면 못났습니다. 크면 크고 작으면 작은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커도 작고 작아도 작습니다. 예배당에 오실 때는 멋진 것도, 잘난 것도, 많이 아는 것도, 잘 먹은 것도, 까다로운 자기의 성격도, 못된 자기의 성깔도 집에 벗어놓고 와야 됩니다. 예배당 안에서 성깔 나오고, 예배당 안에서 오기 나오고, 예배당 안에서 나는 화나면 획 뱉어 버립니다, 그런 것 다 예배당 안에서 안 됩니다. 하나님을 쥐어박는 일입니다. 그 하나님을 많이 쥐어박으면 손이 깨져 있고 머리가 깨져 있고 인격이 밟혀 있고 인간이 몹쓸 인간이 돼 있는 겁니다. 그냥 내발로 살살 걸어 다녀도 다칠까 싶어 두려운데 이마로 바위를 쥐어박고 발로 바위를 자꾸 차면 그 이마 그 온몸 발이 깨지고 터지고 뭉개지는 겁니다. 그게 오늘의 자기의 모습입니다.

인간 대 인간도 한 사람이 온 마을 사람하고 다 싸워가지고는 좋을 게 없습니다. 내가 옳다고 해도 온 마을 사람과 싸우는 것은 지혜롭지를 못한 겁니다. 마을이 반반 패싸움하는 것이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주변 전부와 싸우는 것은 미련한 일입니다. 독수리가 공중에 제일 왕이라도 조막만한 까마귀가 몇 백, 몇 천 마리가 달려들면 일단 도망갑니다. 사자가 아프리카 제일 억센 조폭이라도 상대방이 10마리 20마리 100마리 달라들면 일단 도망갑니다.

제 아무리 훌륭해도 온 동네 온 마을 온 주변을 다 욕하고 사는 것은 자기 마음에도 좋지 않고 자기 인생에도 좋지를 못합니다. 예배당은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데입니다. 그래서 목사도 예배당에 올 때에는 뒤꿈치 들고 떠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목사가 그러면 교인도 예배당 안에서는 말조심, 행동 조심, 눈 조심, 손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좀 교회를 안다닌 사람은 몰라도 교회를 좀 다닌 사람치고 신풍교회 예배당 안에서 유독 고함지른 사람 있습니다.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30년도 아니고.

제사상을 엎으면 귀신이 그냥 두지를 않습니다. 절에 가서 불상 앞에 난리를 부리면 중들이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예배당 안에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교인들이야 점잖으니까 전부 죄인이라 두려우니까 조심하지만은 하나님이 그냥 두지는 않습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어떤 말이라도 말을 할 때는 하나님 앞에서 뭐든지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교회 회의할 때는, 틀린데 찬성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데 말은 하나님이 지켜보니까 고분고분 좋게좋게 부드럽게 말씀을 하셔야 됩니다. 모두가 동쪽을 말하는데 결국은 서쪽이 옳지 않겠느냐? 이 정도 해야 되지 눈을 부리라고 씩씩 거리면서 누가 내 말을 반대했느냐고 집집마다 전화를 하고 뒤흔들고 다니면 큰일 나는 겁니다. 그렇다고 옳지도 않은데 줄줄 따라가는 것은 눈먼 망아지 또 도살장 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기 까지 해서 구원하고 열어준 기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이니까 우리의 자세는 아이든 어른이든 모두가 서로 조심하는 것이 낫고, 저도 강단에서 한 번씩 억센 이야기하다가 연세 많은 집사님들께 그거 너무 심하다, 이런 말 한 번씩 듣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면 무조건 예, 조심하겠습니다, 그러지 뭘 안다고 그러냐? 그래본 적 없습니다. 돌아가신 공 권사님이 한 번씩 전화 오면 옳은 말 보다 틀린 말이 더 많습니다, 오해를 해서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또 조심하겠습니다, 그러지 당신 틀렸다고 또박또박 대들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배당이라 그런 겁니다. 그런데 교인이 예배당 안에서 휘젓으면 안 되는 겁니다. 시골에 하도 못난 것들이고 집에 가면 다 머슴기이고 식모니까 예배당에 와서도 머슴 취급하고 식모 취급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예배란 일단 하나님 앞입니다. 오늘 새벽, 이런 설교 할 때만 좀 조심하고 남들 볼 때 나 조심하니까 봐라, 그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 설교 끝나고 한 달이나 지나면 또 개 버릇 남 줍니까? 또 나오지. 그러는 것 아닙니다. 옳은 것은 한 번 결심하면 50년, 100년 죽을 때 까지 변치 않는 이게 신앙의 기본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예배가 그렇기 때문에 예배당 오갈 때도 마찬가지로 조심해야 됩니다. 예배당을 오갈 때. 집안에서 살때야 식구끼리, 동네끼리야 놔둬도 저절로 해결이 될 것이고.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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