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2.9.28 요4:1 어린 사람을 길러 가는 양면-자녀의 인성 교육, 신앙의 외식에서 진실을 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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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22.9.28 요4:1 어린 사람을 길러 가는 양면-자녀의 인성 교육, 신앙의 외식에서 진실을 향함

서기 0 53 09.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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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8 수밤

제목 : 어린 사람을 길러 가는 양면-자녀의 인성 교육, 신앙의 외식에서 진실을 향함

찬송 : 88장(주의 주실 화평)

본문 : 요한복음 4장 1절 -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받아 영원히 하나님을 향한 영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날 중에 귀한 날 시간 중에 귀한 예배의 시간을 우리에게 주시고 알려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세상이 바쁘고 할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을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 모신 동행의 생활 하나님을 모시고 순종하는 예배의 생활에, 마음 다하고 정성 다하여 세상 속에 사나 세상은 세상으로 살고, 우리는 세상 속에 천국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람 하늘의 사람으로 살도록 이 밤도 불러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어두워질수록 모이기를 더욱 힘쓰는 우리가 되어, 모든 주변이 세상 속으로 또는 자기일정으로 흩어질 때일수록, 우리는 부족함으로 더욱 주님 앞으로 달려 모이는 신풍교회의 앞날, 또 주님 오실 때까지 이어가며 이 노선 이 강단을 지켜내는 말세의 교인들 되도록, 마음마음 붙들어 주시고 이 한 중심 이한 노력 위에 필요한 모든 가정과 건강과 세상을 살아가는 은혜를 조절하시고 더하여 주옵소서. 이 밤도 여러 형편인하여 병원 요양 출타 근무 해외 또는 주님 주시는 어떤 위치에서도, 그 마음 그 정성 기울이며 예배의 연결과 은혜를 구하는 우리들 되게 해주옵소서. 이 밤도 함께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요한복음 4장 전체를 잠깐 잠깐 비교하며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은 예배에 대한 말씀입니다. 1절에 “예수님이 제자를 삼고”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는 숫자가 세례요한이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는 수보다 많다는 말이 바리새인들한테 들어갔습니다. 세례요한도 두려운 선지자인데 세례요한이 준비했다 그러고 오신 주님이, 제자를 삼고 세례에 주는 숫자가 세례요한보다 많으면 선지자보다 큰 자가 오게 되면 어떻게 되나. 이게 바리새인들의 걱정입니다. 복에 복이 오면 좋아해야 되는데 복에 복이 온다고 걱정을 하면 참 슬픈 일입니다. 그 사람이 거꾸로 가면 그렇게 갑니다. 월급 받는 선생님이 숙제를 하나 내주는 것보다 둘 내주면, 공부를 더 많이 하라는 가보다 숙제 더 내준다고 돈 더 받습니까? 더 좋아할 일인데, 숙제가 적으면 애들이 좋아하고 숙제가 많으면 애들이 울상이 됩니다. 그럼 학교를 가지 말아야지. 시험을 적게 보면 좋아서 얼굴이 펴지고 시험이 많아지고 어려워지면 그 모두들 걱정을 합니다. 학생은 아닌 겁니다. 세례요한이 구약 마지막에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빛을 비춰주니 그만해도 좋은데, 세례요한의 빛이 문제가 아니라 빛 되신 주님이 직접 와버렸습니다. 세례요한은 촛불 정도고 주님은 햇빛이니 더 좋아해야 되는데 왜 더 밝은 주님이 오니까 더 싫어하지요? 죄인이라 그렇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죄인인데 죄를 씻고 의인이 되고 싶으면 그 빛이 밝을수록 좋아하는데, 죄를 지어놓고 그 죄가 좋아서 그 죄 속으로 들어가고 싶으니까 밝은 빛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다음 2절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세례를 주신 사람은 적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주는 바람에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오는 제자가 많고 세례 받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세례를 주면 더 좋고 제자들을 통해서 주면 시시한 것인가?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야 더 좋고 하나님이 태양을 통해 낮을 주고 달을 통해 밤을 주시고 부모를 통해 우리 몸을 만들어주면, 이건 시시해서 부모한테 대들고 그러는가. 신앙은 일원론이기 때문에 직접 와도 주님 간접으로 와도 주님 간 간접으로 와도 주님입니다. 간접 간접으로 쓰시는데도 주님 때문에 두려워하면 위대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면 듣지만은 선지자를 통해 이래라 저래라 그러면 그놈의 선지자는 죽여 버리기도 하고 이게 구약 백성들입니다. 신앙이 있어 주님을 직접 뵙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니라 강퍅해서 그렇습니다. 부모가 직접 부탁해도 순종, 동생을 통해 형이 오면 부모님이 이렇게 하라더라. 부모가 동생을 통해 말을 전달해도 부모의 말이면 두려워하면 그 부모를 아는 아들이고, 부모가 직접 말하면 말을 듣는데 동생이나 형을 통해 말하면 대들고 못들은 척하고 나쁜 겁니다. 심부름 하는 사람 쥐 박으면 심부름 시킨 사람을 쥐 박는 게 됩니다. 만사 조심하셔야 됩니다.

그다음 3절입니다. “유대를 떠나 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유대는 구원의 땅입니다. 갈릴리는 구원의 땅에서 저 북쪽에 멀리 떨어진 외지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서울은 우리나라 중심이고 우리 여수나 저 함경도 꼭대기 같은 데는 저 먼 변방이라. 시시한 것들 별 것 아닌 것들 쫓겨 갔고 버려둔 그런 차별이 있는 지역입니다. 유대는 구원의 중심지 갈릴리는 저 변방입니다. 근데 주님이 갈릴리를 본부로 삼았습니다. 주님 계시는 곳이 본부지 사람이 많이 모이고 역사가 깊다고 본부 되는 거 아닙니다.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을 양면을 잘 보셔야 됩니다. 유대를 떠나 북쪽 갈릴리로 가는데 사마리아라는 곳을 비껴가는 것이 원래입니다. 근데 주님이 사마리아로 일부러 들어가셨습니다. 안갈 곳으로. 예루살렘 위쪽에 있는 사마리아라는 곳은, 구원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나쁘게 만들고 변질시키고, 아주 그냥 나쁜 인간들만 살고 있는 데입니다. 그래서 유대나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저 사마리아는 가지도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하고는 만나지도 말아라. 물든다. 이런 데가 사마리아입니다. 근데 주님이 사마리아로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이 술집에 갔으면 술 먹으러 갔겠습니까? 전도하러 가셨겠습니까? 경찰이 뒷골목으로 갔으면 뒷골목에 돈 뜯으러 갔겠습니까? 뒷골목에 돈 뜯는 양아치들 잡으러 갔겠습니까? 주님이 사마리아로 간 것은 사마리아에 신앙이 타락을 하고 세상으로 들어갔는데, 이걸 씻어 다시 구원하기 위해서 간 겁니다. 주님은 구원을 위해 사마리아로 가셨는데 주님이 사마리아로 갔더라는 이런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이 술집도 갈 수 있고 밤무대도 갈 수 있고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지. 뭐 이래라 저래라 그런 거 없다. 그러는 사람들의 심보를 들여다보면, 말은 전도하기 위해서 술집에 간다고 그러는데 전도하기 위해서 술집에 갔는가. 술 먹으러 가면서 핑계를 댔는가. 그건 그 사람도 알고 남도 알고 불신자도 보면 다 아는 겁니다. 저 사람은 회사를 나와도 신앙생활하기 위해서 돈 벌려고 온 사람이다. 이 사람은 직장을 와도 전도하러 온 사람이다. 남이 아는 사람이 있고 저건 교회 가면 성도고 직장 오면 불신자다 우리보다 더하다 그거 다 알고 있습니다. 귀신도 알고 나도 알고 남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들어간 것은 타락한 사마리아에 가서 때를 묻히고 죄를 짓고 하나님과 멀어지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씻으러 구원하러 가신 겁니다. 구약은 사마리아에 가지 말아라. 가면 물 든다. 어리기 때문에 금지를 시켰습니다. 신약은 술집에 가셔도 되고 담배를 피우셔도 되고 교회 안 나오셔도 되고 절에 가도 됩니다. 근데 절에 가서 절 믿는 중들을 데리러 오기 위해서 가셨으면, 불국사 석굴암 어디든지 가셔도 됩니다. 등산하러 절에 갔다가 중한테 잡혀서 불교 믿을 사람은, 절 있는 산 쳐다도 보지 말아라 그럴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거는 신앙에 각기 개별적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자기 신앙의 수준을 따라 뭐든지 알아서 하면 되는데. 가면 갈수록 신앙이 조금씩 좋아진다면 뭐든지 좋은 겁니다. 갈수록 신앙이 후퇴하면 이 사람은 뭘 하든지 다 나쁜 겁니다.

작년과 올해를 비교해서 신앙이 유지가 되면 됐습니다. 한 걸음 나갔으면 의인입니다. 한 걸음 뒷걸음을 쳤으면 이건 무조건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1년을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알게 돼 있습니다. 10년 전과 10년 후를 비교해보면 이건 뭐 열매가 여지없기 때문에 그 여러 말 할 것 없이, 10년 전의 신앙과 오늘의 신앙을 비교해서 신앙이 후퇴했으면, 이 말 저 말 할 것 없이 참 부끄럽다. 정신 차려야 되겠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쏟아집니다. 2012년과 2022년 모두들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일학교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새벽 기도도 나왔다면, 중학교 1학년이 되면 새벽기도 인도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보조반사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리 되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은 다 옳은 겁니다. 초등학교 때는 새벽기도 나오고 중학교는 밤 예배 나오고, 고등학교 되면 주일오전 예배 나오고 대학 가면 저 사람 교회에서 본 게 몇 년 전이더라?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죄인 중에 개수 죄인입니다. 5년 10년을 비교해 보면 뭐 딱 점수가 나오는 겁니다. 건강할 때도 있고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서, 봄과 가을을 비교해서 표시하기는 좀 어렵지만은 1년이면 어느 정도 표시가 나오고, 5년 10년 전과 뒤를 비교해 보면 이건 두 말할 것 없이 하나님과 자기가 서로가 딱 결론이 맞게 되니까, 사마리아라는 죄인의 동네를 가도 죄인을 구원하고 가르치러 가는 것은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주님도 가셨고 우리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3절 4절, 주님이 사마리아로 들어가셨다는 이 말씀 때문에 오늘 저녁에도 예배 안 나오고 저 여수시내 뒷골목에 술집 가는 사람, 전도하러 갔겠지 뭐 술 먹으러 갔겠습니까? 예배당에 와서 예배드려도 되는데, 주변에 한 사람이라도 예배드리는 모습을 간접으로 안내하려고 와도 되는 분이 지금 실시간으로 보고 아마 그럴 겁니다. 말하자면 그 어떤 개별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구약은 사정이 있든 말든 딱 하나의 법으로 죄와 의가 나눠지고 신약은 하나의 법으로 이렇게 저렇게 말을 못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믿을 사람은 마음껏 잘 믿을 수 있고, 바로 이 개별성 때문에 죄 지을 사람은 밑도 없이 타락하게 되어 있으니, 구약은 지도자를 만나는데 따르고 신약은 지도자 핑계 댈 것 없이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겁니다. 4절 그 다음 5절입니다. 사마리아에 가니까 사마리아에 수가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따라 하시지요. 사마리아 수가동네(사마리아 수가동네). 이 수가동네 수가마을에 들어가시는데 그 마을 들어가기 전에 외곽에, 옛날 구약의 야곱조상이 열두 아들 중에 그 막내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 둘째 아들 요셉은 11번째 아들인데 요셉에게도 준 땅이 있습니다. 장남한테만 다 줘놓고 나중에 후회하면 장남 잘못이 아니라 부모 잘못일 수 있습니다. 막내한테 주는 게 좋은지 장남한테 주는 게 좋은지 나눠주는 게 좋은지 그건 가정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야곱은 구약인데도 열한 번째 아들 요셉에게도 준 땅이 있었습니다. 그 땅이 그 부근인데 또 야곱이 판 야곱의 우물이 있었더라. 이 우물은 우리나라 땅을 파서 유전 나오기가 어렵듯이 이스라엘 땅은 땅을 파서 물 얻기가 어려워 물을 얻으려면, 땅을 많이 파고 계단으로 뱅뱅 밑으로 걸어 내려가야 될 만큼, 우물이라는 것은 그렇게 드문 겁니다. 구약에 보면 많이 나옵니다.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사마리아로 들어가시다가 길이 멀고 길이 험하다보니까 피곤하여 예수님도 많이 걷다보면 피곤해집니다. 예수님의 몸은 죄가 없는데 어떻게 피곤해지느냐. 예수님의 몸도 우리의 몸과 같습니다. 죄만 없지 우리의 몸과 같은 몸이라 안 먹으면 배고프고 안마시면 갈합니다. 또 많이 걸으면 피곤합니다. 예수님의 육체를 봐보시지요. “예수께서 행로에” 유다에서 저 유대에서 갈릴리로 먼 길을 가는데 중간에 사마리아로 들어갔는데, 사마리아 수가 동네로 들어갈 때 길이 멀고 길이 험하여 피곤하였더라. 그래서 우물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내려가서 좀 물 좀 떠 잡수시지 우물에 내려가지 않고 우물곁에 그대로 앉아 계십니다.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성경에 육시는 오늘 우리 시계 육시와 다릅니다. 성경 여기저기를 찾아보며 육시는 어디쯤인가라고 이렇게 찾다 보면 아 육시는 대개 이정도겠구나. 알 수 있는 게 나옵니다.

7절 우물곁에 피곤해서 앉아 계시는데 7절 사마리아 수가 동네 여자 하나가 물을 기르러 우물에 왔습니다. 물동이 이고 우물에 저 물 길러 다녀본 분들 장 현정 선생님 물동이 이고 물 길러 다녀보셨나요? 참샘이? 안 가셨고. 오 은아 선생님 다녀보셨나요? 아니고. 강 집사님은 다녀보셨을 거고 60은 되어야 아마 물동이에 물이고 다녀봤을 겁니다. 딸들 철들게 하려면 물동이에 물이고 물 나르라고 그러면 저절로 철듭니다. 학교를 보내면 착한 딸들이 나쁜 딸들 되고 대개는, 빨래하고 머리 감고 밥해 먹는 물을 물동이 이고 저 우물에 물 뜨러 다녀 보면 저절로 사람 되고 철듭니다. 인격자가 됩니다. 그거 안 하고도 인격자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는데 그런 거 안 하고 인격자 되기는 어렵습니다. 물동이 이고 저 물 뜨러가는 거. 물동이가 대략 한 말입니다 한 말이면 10리터니까 한 10kg 됩니다. 10kg 이고 한 10분 갔다가 10분오는 한 20분오고 가는 거 하루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씩이면 물 한 방울 조심합니다. 수도꼭지 트니까 물이 쫙 나오니까 물을 함부로 쓰는데, 물을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그렇게 함부로 쓰면 인간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걸 방종방탕이라 그럽니다.

옛날 남자 아버지들 술 먹고 일 안하고 놀고 가정 뒤집었고 이런 걸 방종방탕이라 그럽니다. 물 한 방울 함부로 쓰는 거 방종방탕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셔야 됩니다. 이런 거는 학교가 가르치고 텔레비가 가르치고 세상이 가르쳐야 되는데, 세상에서는 더 쓰라고 난리니까 할 수없이 예배 때 한마디 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물동이 이고 물 나르면 여자는 사람 되고 그러다 결혼해서 이제 시집 살면 완성품이 됩니다. 시집 살면 천사 같은 여자가 되든지 아니면 악녀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시집 살아놓고 또 시집 살리면 그거는 귀신이 된 거고 시집 살아보고 자기 며느리한테 친정어머니처럼 잘하면 그건 성녀가 되고 그건 천사가 된 겁니다. 물동이 이고 시집을 살면 여자는 인간 될 수 있다. 거기 학교는 대학까지 다 들어가도 그거는 상관도 없는 거고, 남자는 노가다 하면 사람 됩니다. 저절로 다 해결됩니다. 두 번째는 결혼해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되는 짐을 떠안으면, 그다음부터는 이제 독종이 되든지 아니면 천사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 됩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를 나오면 성경만 한마디 딱 가르치면 다 통합니다. 근데 남자도 땀 흘리지 않지 여자는 물동이 일 리가 없지 남자는 결혼하고 싶어도 결혼해 주는 여자가 없으니까, 먹여 살릴 가족이 없지 여자는 시집 안살아도 되니까 뭐 맹수 같은 사람들 교회 나와서 설교 들어도 참 사람 되기가 어려운 겁니다.

야곱이 준 우물 그 부근에 사마리아 수가동네가 있고, 그 동네에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기르러 왔으매. 지금 물동이는 플라스틱이라 물 없으면 뭐 가볍지요. 옛날 물동이는 물이 없어도 통나무로 물동이를 만드니 물동이에 물이 없어도 무겁습니다. 여기에 물을 채우면 이제 더 무겁습니다. 뭐가 머리 위에 올라가서 쥐 눌러야 이게 참을성도 있고 인간이 되는데, 펄펄 뛰고 싶은 대로 부채를 부쳐서 사방천지 날라리를 만들어 놓으니까, 뭔 놈의 세상이 그냥 이게 세상인지 지옥인지 저도 좀 헷갈립니다. 예수님이 우물가에 일부러 앉아 계시니까 물 뜨러오는 여자가 물동이를 들고 물을 기르러 왔습니다. 7절 예수님께서 물 뜨러온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 물 좀 얻어먹자. 예수님은 베푸는 분인데 왜 남한테 신세를 지는가? 겉으로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얻어먹는 것처럼 보이는데. 겉으로 물을 얻어먹으면서 속으로는 가르칠 게 있어 그런 겁니다. 9절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보니까 유대인인데 나는 사마리아 여잔데,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하고 만나지도 않는데 물을 달라? 왜 물을 달라 하나이까? 모르니까 물었습니다. 주님은 뭐 가르치고 싶은 게 있어 일부러 그렇게 환경을 만든 겁니다.

일단 여기까지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족들이 좋고 웃고 늘 행복할까? 행복하게 웃고 살라고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 가정은 왜 이렇게 웃고 살도록 만들어 주셨을까? 이유가 뭘까? 이거 못 찾아내면 지금 불장난하는 겁니다. 다른 가정은 다 행복한 것 같은데 우리 가정은 왜 이리 골치가 아프고 안 좋은 일이 많을까? 주님이 이 가정에 숙제를 많이 내준 겁니다. 숙제 좀 풀라고. 주님이 이런 일 저런 일을 많이 주셔서 왜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 많을까? 아이는 아프지 부부 사이는 그렇지 또 사업은 그렇지 나라도 그렇지. 괜히 지나가는 사람이 와서 문을 차고 시비를 걸지. 잘 될 일이 갑자기 브레이크가 딱 잡혀 버리지. 주님이 왜 이런 일을 나한테 숙제를 문제를 내주셨을까? 그리고 이걸 문제로 풀어야 좋은 학생인데, 문제가 왜 이렇게 어려운 함수가 나오고 삼각 뭐가 나오고 딱 하나님 앞에 지금 고생하기 좋게, 좋게 상대하는 겁니다. 이유가 있어 문제를 줬는데 풀려고 안 그러고 짜증을 내거나 그런 자세가 딱 되면 문제를 좀 낮춰줄 수는 있습니다. 좀 낮춰줬다가 또 줍니다. 또 어려운 거. 계속 올라갑니다. 참 문제가 어렵구나. 하나님이 내신 문제니까 풀 수 있는 걸 내셨겠지 고생하라고 낸 것은 아닐 것이라. 왜 우리 가정이 요즘 이렇게 잘 풀릴까 왜 우리 가정이 요즘 이렇게 어려울까 연구를 하고 문제를 풀어야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물 길러 왔는데 예수님이, 아 뭐 우물에 가서 물 떠 잡수면 될 건데 물 좀 달라 심부름을 시키고 과제를 주십니다. 멀리서 물 뜨러왔는데 물동이도 무거운데 평소에 사마리아 사람 인간대접도 안 하고,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강아지 돼지 사마리아 사람들 비슷하게 취급합니다. 역사적으로 이걸 이 여인이 잘 압니다. 짜증이 나고 화가 나지. 평소는 뭐 돼지처럼 취급하더니만 또 물 달라 그래? 물은 왜 달라고 그래? 짜증나게 말이지. 우리 마음 그리 되면 여기 있는 이 여자 믿기 전처럼 되는 겁니다. 계속 그거 회개할 때까지 계속 숙제를 내주는 겁니다. 왜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10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았다면 하나님의 선물을 보통 뭐라고 그러지요? 다 같이. 은혜라 그럽니다. 하나님이 공짜로 주는 게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쉽게 설명하면 선물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하나님이 선물이다. 뚝 공짜로 주는 게 뭔지 알았다면 근데 선물에 더하여 지금 너한테 물 좀 달라는, 네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선지자 메시아 하나님인 줄 알았다면, 야 인간아 물 뜨러 물동이로 평생에 왔다 갔다 물 떠서 그다음 먹고 나면 또 목마르고 또 와야 되고, 마시고 나면 또 물 뜨러 와야 되고 평생 이 짓만 하는 겁니다. 물 들어갔다가 마시면 좋고 먹고 나면 또 마시러 가야 되고 이게 직장생활이죠? 이게 공부지요? 뭐 안 믿는 사람 모르고 사는 사람 평생 하는 짓이 우물에 물 뜨러갔다가 물마시고 또 물 들어갔다가 물마시고 물 떠온 거 쓰고 물 뜨러가고, 평생 그러다가 꼴깍 가는 게 인생 결론입니다. 위에나 밑에나 예외는 없습니다.

근데 주님이 여기 와서 이 여자에게 물 좀 주라! 라고 말을 해놓고, 주님의 마음은 죄를 지은 인간이니 물 뜨러 오고 가는 것은 못 피합니다. 그건 하되 이 헛일 물 뜨러 오고 가는 인생길 속에 영원히 솟아나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샘물을 해결을 해라. 이걸 가르쳐주기 위해서 오셨는데 물 좀 달라 하니까 왜 물을 달라고 그러지요? 따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10절에 하나님의 선물이 뭔지 알았더라면 그리고 물 달라는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았더라면, 모르니까 맨날 헛일만 하고 있는 겁니다. 네가 그에게 바로 물을 드렸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하고 영생의 샘물로 영원히 물들러 다닐 필요 없는 천국 구원을 주는 주님이 은혜로 그 선물을 줄 건데, 이걸 주고 이걸 가르치려고 와서 물 좀 달라 그러니까 지금 따지고 앉았습니다. “누구인 줄 알았다면” 여자 너는 주님에게 물을 떠주면서 이런 마셔봐야 헛일 이런 물 말고 영원히 물 뜨러 다니지도 않아도 되는, 영원한 생수 영원한 생명 샘을 주옵소서라고 네가 누군 줄 알았더라면 구했을 것이고, 그리고 주님은 너에게 생수를 주셨으리라. 야곱의 우물에 물 뜨러 평생에 다니는 여자 신세, 그리고 죽으면 영원한 지옥입니다. 이런 여자 물 뜨러 왔는데 주님이 물 뜨러 다니냐? 물 좀 보자. 그 부탁하는 주님이 이 물 말고 영원히 솟아나 마르지 않는, 영원히 죄 없고 영원히 육체의 고난 없는 영원한 천국의 안식 영원한 구원 영원한 영생의 은혜를 받아라. 그걸 줄 터인데 네가 모르니까 지금 물 달란다고 유대인 남자한테 왜 물을 달라하냐? 평소 왜 우리를 갖다가 강아지 취급했냐? 이러냐? 저러냐? 이러냐? 저러냐? 그러고 있는 겁니다.

가정마다 딸들이 엄마하고 티격태격 하는 거 전부 다 물동이 이고 물 뜨러 보내지 않아서 생기는 일입니다. 가정마다 남자애들이 아버지하고 부딪히는 문제 가족을 가져보지 않으니까 그러는 겁니다. 제 처자식이 생기면 그럴 리가 없는데. 제 물동이 이고 오고 가다가 아이 낳고 이제 시집 살아보면 저절로 사람이 되는데, 여기 이 여자 주님 모르고 물만 뜨러 왔다 갔다 왔다갔다. 물 떠봐야 마시고 나면 그만 쓰고 나면 그만 또 물 뜨러 가야 됩니다. 쓰면 또 가야 됩니다. 평생 해야 해 헛수고만 하는 겁니다. 주님이 오셔서 아담의 죄와 원제와 본죄가 있어 물은 뜨러 다녀라. 불신자들의 물 떨어 다니는 것은 평생의 엇 일인데 믿는 사람은 물 뜨러가고 물 뜨러오는 것도, 이제부터는 그 물 뜨러 오고 가는 속의 영원한 영생의 생수를 마구 하나님이 쏟아주실 건데, 그거 주려고 주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11절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뜰 그릇도 없고 물 길어 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저 깊은데 이 생수를 어떻게 얻겠삽나이까? 여자는 물동이에 물을 길러 왔습니다. 또 우물이 깊다 했습니다. 계단을 따라 이렇게 내려가는 것이 이스라엘 우물입니다. 우리나라는 땅 좀 파면 물이 나오니까 두레박으로 끈으로 보통 그러는데, 이스라엘의 우물들은 계단으로 내려 가가지고 한참 내려가서 겨우 떠오는 나라입니다. 그 계단으로 밑으로 내려가지도 않고 땅 위에 걸터앉아서 물 좀 주라. 유대인 남자는 사마리아 사람 강아지 취급하는데 뭐 떠먹지 달라 말라 그럽니까? 내가 누군 줄 알았더라면 얼른 줬을 건데 생수를 줬을 건데 생수는커녕 물 마실 그릇도 없으면서 뭔 소리냐? 이런 이제 대화가 오고 갑니다.

12절 이 여자가 우리 조상 야곱이 자기들도 조상은 야곱이랍니다. 마구 섞여서 잡종이 되어 버리고 영 세상이 돼 버렸는데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올라가면 우리도 야곱의 핏줄 하나에 이렇게 걸린 게 있으니까, 잡종은 잡종이지만 저들도 야곱의 조상이랍니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여기서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거는 맨날 뜨러 다녀야 되는데 당신은 생수를 준다니, 뜨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생수를 준다니 생명수를 준다니 우리는 물 뜨러 맨날 댕기고 먹어봐야 죽는데, 당신의 물은 죽지도 않는 생수를 준다니 당신이 야곱보다 큽니까? 위대합니까? 야곱이라는 유명한 조상이 준 우물도 물 길러 와서 가서 먹고 쓰면 또 길러 다니라 이랬는데, 당신이 주는 생수는 생명수라 이거는 뭐 한 번 주면 영원히 그냥 죽지 않는 그런 영생의 물이 있다니 야곱보다 큽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1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 사되” 네가 와서 물 뜨는 이 우물의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니까 또 뜨러 다녀야 된다. 그러고 죽어버린다. 예수님 내가 주는 물은 “이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생수니까 생명수의 물이니까 주님이 주는 이 구원의 인생문제의 해결은 한 번 해결되면 영원한 구원이니까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영생의 구원에 생수를 가르치고 이 여자 분은 물 뜨러 다니는 지금 물가지고 얘기를 하니까, 물은 똑같은 물인데 한 사람은 떠먹는 물 한 사람은 구원의 생수를 가르치니까 이게 말이 안 통하는 겁니다.

똑같은 교회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와 시내가 생각하는 교회가 아마 다를 겁니다. 똑같은 예배인데 시내가 생각하는 예배와 우리가 생각하는 예배가 다를 겁니다. 성경도 똑같은 성경인데 우리 읽는 성경과 시내에서 읽는 성경이 내용도 많이 다릅니다. 찬송도 다릅니다. 같아 보이는데 무조건 다 다릅니다. 이렇게 항상 주님은 겉과 속 두 가지를 주면서 가르칩니다. 15절 사마리아 여자가 지는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불신자입니다. 자기는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데 주님이 보니까 잘 믿지도 못하는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수요일 밤에 이만큼 많이 나왔으면 우리교회 다 잘 믿고 여기 있는 분들 다 잘 믿는 분들입니다. 근데 여러분과 저 전부가 주님이 오면 너희들이 신앙이냐? 이것도 신앙이야? 이런 식입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그 한 번 먹으면 영원히 해결이 되는 생수 생명의 물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야곱의 우물에 물 뜨러 평생에 다니는 거 귀찮아 죽겠고 힘들어 죽겠습니다. 또 마셔봐야 마지막엔 다 죽습니다. 한 번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 수 생명수 그런 샘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물 길러 오고 가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니까 주님이 이제 한 단계 더 나간 겁니다. 처음에는 물가지고 말을 하다가 그물 말고 생명수가 문제다 그러니까, 아이 그 생명수 있으면 좋지요 주옵소서. 이제 이렇게 된 겁니다.

죄인의 동네로 갔는데 전도하러 같이 죄 지으러 간 거 아닙니다. 신약에 믿는 사람 세계 어디든지 마음대로 다 다녀도 됩니다. 근데 가면 갈수록 자꾸 신앙이 좋아지면 좋은데 간 겁니다. 오고 가는데 갈수록 신앙이 내려가면 지금 잘못 가는 겁니다. 어디든지. 두 번째 물 길러 온 사람에게 물가지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 여자는 물 들어가는 인생 문제 해결,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주님은 인생 문제가 문제가아니라 영생을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똑같은 물인데 하나는 인간의 갈증, 주님은 영생의 해결, 물가지고 이야기하다가 주님이 생명수를 말하니까 이 생명수를 주옵소서. 뜨러오는 물 말고 그러면 영생 수 구원을 주옵소서. 이제 한 단계 올라왔습니다. 그러니까 너 남편 좀 불러오너라. 나이나 딱 보니까 여자가 결혼했습니다. 네 남자 데리고 오너라 너 여자니까 네 남자가 머리라 머리하고 몸하고 같이 와야지 가정 구원을 함께 라야 되지 너 남편 데려오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남편이 없는데요. 지금은 없습니다. 남편이 없는데요. 1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남편이 없다? 남자가 없다? 없기야 없지 남편이 없습니다. 저는 혼자입니다. 그래 없지 혼자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도다. 그래 네 말이 네 말로는 맞지 18절 다섯이나 있었지, 지금은 없지 다섯이나 있었지. 이것도 갈아보고 저것도 갈아보고 하나 가지고 됩니까? 이것도 갈아보고 저것도 갈아 보고.

가정과 같은 것이 교회인데 교회도 이것도 갈아보고 저것도 갈아보고. 감리교도 가보고 침례교도 가보고 장로교도 가보고 뭐가 옳은지 몰라서 연구는 할 수 있습니다. 또 옳은 줄 알고 있었는데 더 좋은 게 나와서 갈 수는 있습니다. 근데 그냥 뭐 장난감 바꾸듯이 중고 차 바꾸듯이 신발 바꾸듯이, 음식 바꾸듯이 네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 남자 지금은 하나도 없지. 지금도 하나 데리고 살고는 있는데 그건 네가 생각해도 그건 네 남자 아니지, 이 여자의 속을 주님은 다 들여다보셨습니다. 너 지금 세상이 네 남자지, 주님이 네 어른이고 네 머리고 네 남편이냐? 세상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 간에 붙었다가 쓸개 붙었다가 지금 있는 남자도 또 언제 바뀔지 몰라서 이것도 정식도 아닙니다. 네가 믿는다 하지만은 네 속에 믿음이 있어 주님만으로 전부 입니다. 그거냐? 이것도 잡아보고 저것도 건드려보고 아니면 말고, 이러니 이런 너에게 구원 이런 너에게 은혜를 주겠느냐. 남자 다섯 갈아치우고 지금 하나 데리고 있는 것은 데리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고, 여기에 주님이 하나 더 얹어야 되겠느냐 다 치우고 주님만 나의 구주로 주님 없으면 안 됩니다. 이런 신앙의 정절을 가져야 되겠느냐 이렇게 하나씩 가르쳐가는 겁니다.

남자 다섯이나 갈아치우고 여섯 번째라 그 일 하느라고 지금 물 뜨느라고 맨날 정신없지. 이게 공부고 이게 직장이고 이게 결혼이고 이게 전부 세상 살아가는, 겉으로는 믿는다는데 믿는다는 사람 속을 들여다보면, 네 속에 너의 머리가 하나냐 둘이냐 셋이냐 계속 바꿔치기 하고 있냐. 이 일을 위해서 물 뜨러 돌아다닙니다. 해결, 해결 수고 해결 돌아서면 또 문제 또 해결. 그러지 말고 주님 한 분으로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로 삼아 이제는 그러지 말아라. 이걸 지금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있는 자는 데리고는 있지만은 네 남편도 아니니 네가 나한테 남편이 없다 말한 것도 거짓말은 아니지. 알고 보면 사람의 거짓말이라는 것은 사실은 없는 겁니다. 그 다른 사람한테 자꾸 속였다. 속였다 그러는데 이리 생각해 보면 이렇고 저리 생각해보면 저런 겁니다. 깡패가 어린아이를 쳤으니까 폭행 범이지 폭행입니까? 주물렀겠지. 아닌가요? 또 아이는 뭐 어른한테 물리치료 받았겠지. 이래 말을 하면 어떤 말이든지 거짓말은 아니고 다 참 말 다 만들 수 있습니다. 전부 자기중심으로 모든 것을 왜곡하고 비틀어가지고 제 중심으로 바꾸는 자기가 죄악의 근본이지, 남 욕할 거 없습니다.

네 말이 남편이 없다? 옳도다. 주님이 옳도다. 근데 하나 데리고 있지? 이렇게 모든 대화를 잘 분석하고 마음을 넓혀보면, 뭐 저 사람이 거짓말을 했니 이 말 했니 저 말했니. 속이 상했니. 그렇게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제 속이 좁고 제 속이 모두 잘못돼가지고 오만 말을 다하지. 어떤 사람의 말도 다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석가의 말도. 아 구원을 안 받았으니까 돌이 최고인 줄 알았겠지 돌만큼 안 변하는 게 있습니까? 돌이 제일 오래 가는데 그 이해를 해야지. 구원을 못 받으면 그리 되는 겁니다. 유교는 높은 걸 따지다보니까 하늘이 제일 높으니 하늘이 전부인 줄 알았지,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이해를 해야지. 부모가 죽으니 귀신이 돼가지고 나 뒤에 이렇게 떠돌아 댕기지 않겠느냐? 안 믿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고 귀신이라도 믿으니 인간이 나빠지려고 그러다가 조금 자제가 되는 겁니다. 귀신 때문에. 귀신조차 없는 줄 알고 보면 오늘 이 사람들처럼 이렇게 막 가버립니다.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남편이 없다 그랬는데 다섯이나 있고 지금 저 동네 하나 있지 라고 딱 알아맞추니까, 19절에 여자가 주여 선지자로소이다. 선지자니까 다 알아봅니다. 선지자로 소이다. 이제 자꾸 수준이 올라가는 겁니다. 물만 먹으면 되는데 물 뜨러 고생하는데다 대고 물 달라고 그러니까 네 발로 먹으러 가지 왜 나한테 시켜 이런 식으로 들어가다가, 한 번 마시면 죽지 않는 영생수가 있다니까 귀가 번쩍 뚫렸습니다. 어 영생 수 생명수 생수 샘물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달라 그랬습니다. 혼자 먹고? 네 남자는 어떻게 하고? 남편 데리고 와! 없는데요. 없다는 말 맞지. 남편 다섯 갈아치우고 지금 있는 남자는 남편 축에도 안 들어가지. 이것까지 전부 다 알아맞추는 걸 보니까 선지자입니다. 드디어 선지자를 만났구나. 이제 자세가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20절에 선지자를 알아 모시고 나니까 이번에는 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이제. 우리의 조상들은 사마리아 우리의 조상들은 사마리아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근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된다. 그럽니다. 학설이 두 개입니다 주장이 두 개입니다. 여당 야당이 맨날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싸우는 겁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사마리아 우리 조상들의 주장이 맞습니까? 유대인들의 주장이 맞습니까? 돈을 벌면 나눠 먹어야 세상이 행복하답니다. 이게 맞습니까? 실력대로 벌어서 실력 있는 사람이 잘 돼야 거지도 얻어먹고 잘 된다는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이게 맞습니까? 저게 맞습니까? 결혼해서 애 낳아 봐야 나중에 애 때문에 그냥 무자식 상팔자 소리 나오니까, 결혼 안 해버리고 애 안 낳는 것이 행복하다 그럽니다. 이게 맞습니까? 신풍교회처럼 스물이면 결혼해서 애나 놓지 뭐 하려고 밖에 돌아다니느냐고 고함지르는 저런 놈의 교회가 맞는 겁니까? 안하는 우리가 맞는 겁니까? 어느 것이 맞습니까? 이제 선지자를 알아본 겁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21절 “예수께서 가라 사되 여자야 내 말을 믿어라” 나만 따르라 내게만 순종하거라. 지금까지 들은 이 소리 저 소리 다 치우고 네 앞에 있는 분이 하나님이 사람 되어, 너한테 샘물 생명을 주러 온 구주다 내 말만 들어라 내 말만 따르거라. 따르면 횡재하는 거고 이 남자도 있고 저 남자도 있고 선지자도 뭐 이 사람이 있고 저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선지자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면 그냥 이제 아무나 잡고 실패하든지. 1절부터 21절까지 본문 간단하게 지금 짚어가며 이번주간은 예배를 살핍니다. 보이는 예배 볼 수없는 예배 특히 보이는 예배를 지금 살피면서 볼 수없는 예배도 함께 살핍니다. 모든 것은 안팎 두 가지로 보셔야 됩니다. 모든 것은 넓혀보면 틀린 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주님이 오셔서 나에게 인도하는 생명의 한 길은 따로 있습니다. 찾으면 복이고 이 사람이 이래 말하고 저 사람 저래 말하던데? 그러면 이 사람 따라가던 저 사람 따라가던 알아서 흩어지고 자기책임 자기가 지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여자 사람 되는 방법 남자 사람 되는 방법, 여기 이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만나 물 뜨러 다니는데 불편한데 왜 물 달라 그러냐고 시비를 하다가 따져보니까, 여기에서 영생수를 잡아버렸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따지다가 예배 속에 영생수를 잡으면 좋겠습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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