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2.9.28 요4:21 예배로 받은 은혜를 주변에 전하는 것이 옳고, 주변에게 피동 되어 흐려 지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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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2.9.28 요4:21 예배로 받은 은혜를 주변에 전하는 것이 옳고, 주변에게 피동 되어 흐려 지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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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8 수새

제목 : 예배로 받은 은혜를 주변에 전하는 것이 옳고, 주변에게 피동 되어 흐려 지지 말 것

찬송 : 10장(빛나고 높은 보좌와)

본문 : 요한복음 4장 21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이 길을 지나가시다가 사마리아 동네를 지나가셨습니다. 4장의 시작입니다. 사마리아라는 곳은 타락한 신앙, 변질된 신앙 그래서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가지 않고 또 지나간다 해도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상종을 하지를 아니합니다. 물이 들까 봐. 원래 이스라엘이 우리나라처럼 남북으로 이렇게 긴 나라입니다. 열두지파 중에 열 지파가 북쪽 이스라엘이 되고 아래쪽에 두 지파만 다윗의 계통 신앙을 이어온 유다 나라입니다. 우리는 38선이 중간쯤 되지만은 이스라엘로 말하면 경남, 전남 정도만 유대 나라고 그 위쪽으로는 전부가 다 이스라엘 나라가 되어 진 형편입니다. 그런데 북쪽이 먼저 큰 죄를 지어 위쪽에 있는 앗수르 나라가 열두지파 중에 열 지파가 만들었던 이스라엘 나라를 점령을 해버리고 그 다음 인종을 섞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던 원래 열 지파는 대부분 잡아가 버리고 점령한 이방 나라에서 여러 잡족들을 빈자리에 채워가지고 사람 자체를 섞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부분적으로는 몰라도 역사적으로 유대인은 유대인끼리만 결혼합니다. 이방인 결혼이 금지돼 있습니다. 점령한 아수르 나아가 열 지파 북쪽을 잡아가고 또 이방의 여러 잡족을 이사를 시켜 뒤섞어 버리다 보니까 하나님을 믿어 온 기억은 있고 뭔가 제사도 지내고 그러기는 그러는데 이거는 뭐 신앙과 불신, 미신, 사방의 여러 귀신들이 마구 뒤섞여 가지고 엉망이 돼 버렸습니다. 집에서 딸아이 곱게 기르다가 동네 어지러운 여자아이들하고 뒤섞여 놀아 놓으면 곱게 기른 딸아이의 좋은 품행을 놀고 다니는 아이들이 본받는 것이 아니라 곱게 길러놓은 거 그건 뭐 한순간이면 엉망이 돼 버리듯이 이리 되어 지니까 예수님이 올 때쯤은 이미 5백년, 6백년 이상 북쪽은 뒤섞여 엉망이 된 상태에서 오랜 세월 내려오다 보니까 남쪽 유다 나라 두 지파 정통의 신앙을 지켜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마리아 지역이라는 북쪽 섞인 그쪽은 아예 상종을 하지 않습니다. 물이 될까 봐.

타락한 사람도 전도하고 가르쳐 바르게 믿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마는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니까 민족적으로 뒤섞여 버렸고 예배고 신앙이고 모든 것이 성경의 기독교 신앙과 미신, 귀신법이 끝없이 뒤섞여 버린 그들과 접하게 되어 지면 이거 뭐 순수성이 다 흐려질 것이라 그래서 면접이 서로 만나는 이런 일들이 다 금지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오늘은 신약입니다. 오늘은 신령한 시대니 우리는 이스라엘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아예 조상이 다른 구약의 이방 민족이지만은 우리가 예수님을 더 많이 믿고 잘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예수님 믿는 사람들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주인과 손님이 바뀌어 버렸지마는 그러나 기억할 일은 예수님 아니고는 사람이 지은 죄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런 것이 교회의 혈통이고 순수성입니다. 예수님 믿어도 천국 가고 석가 믿어도 천국 갈 수 있는 거 아니냐? 이게 바로 구약의 북쪽 이스라엘이 뒤섞인 신앙 아주 잡족으로 잡 신앙이 된 그런 결과입니다.

오늘은 민족적으로 외형적으로 다른 민족과 섞인 민족들과 접촉하지 말아라, 그건 구약이고 신약은 상관이 없으나 신앙으로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예수님 그분만 구주시다,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그리고 주님의 대속으로 중생된 우리들만 말씀으로 살아 우리의 심신이 자꾸 깨끗해지는데 이것만 구원인데 이걸 모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만 구원입니다, 이렇게 전하는 것이 복음이니까 원래 믿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고 사람이 착하면 천국 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말에 흔들리지 말아라, 믿는 사람은 우리가 더 굳게 가르쳐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 드려야 되는 것이고 또 대충 아무나 믿으면 되지 굳이 교회를 다니고 그래야 되느냐,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는 예수님만 구원입니다, 그 외에는 전부 지옥입니다, 이걸 자꾸 전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다 보면 상대방이 귀찮아서 도망을 가버립니다. 교인들 만나 놓으면 뭐 그냥 기회만 주면 전도를 하려고 생난리니 교회 다니는 것들하고는 상종을 말아야 된다, 불신자가 오히려 외면을 하고 도망을 가야지 우리가 외면하고 우리가 그냥 포기하는 것은 신약은 곤란합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만나다가 또 잡종이 나올까봐 말하자면 그래서 그냥 만나지도 말아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잡족을 만나지 말아라, 이렇게 돼 있지마는 오늘 우리는 예수님만 구원입니다, 그 소리를 자꾸 하려고 하면 상대방이 그냥 아예 얼굴을 돌려버리고 도망을 가버리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지 않도록 잘 달래서 얘기할 기회를 잡으려면 기회는 잡을 수 있겠지마는 또 결국 내 속에 들어있는 전도의 지식 안타까운 말을 하려고 들면 아, 또 저 소리 한다 우리 그 소리는 하지 말고 그냥 친구로만 지내자 가족으로만 지내자, 뭐 그러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또 좀 기회를 봤다가 또 그러고, 또 펄쩍 뛰면 좀 쉬다가 또 그러고, 또 그러고 우리가 잘못된 신앙 틀린 신앙에게 다가가고 그들은 우리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오히려 신앙에 물이 들까 봐 도망가도록 하는 것이 그게 원래는 우리의 신앙이 맞습니다.

다만 내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상대방과 만나야 되는데 내가 내속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친구와 친구가 좋아서 우정으로 만나고 하나님은 떼놓고 우정으로 만난 두 사람 사이에 주님만 구원입니다, 이걸 전하려다 보면 전기가 끊어졌는데 뭔 스위치 켠다고 불이 들어오겠습니까? 전기가 연결이 되고 스위치를 켜고 그다음 어두운 데를 비추러 다녀야 되는 겁니다.

여기 주님이 유대인들은 다니지 않는 사마리아 동네를 일부러 들어가셨습니다. 뭐 들어가는 거야 들어간다 하지마는 사마리아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이 말을 걸고 대화를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아니, 선생님은 유대인인데 왜 사마리아 사람인 저하고 이렇게 대화를 하고 그러십니까? 라고 오고 가는 이야기가 먼저 4장에 있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까지만 가지고 새벽에 마칩니다.

앞에 넘겨 4장 3절입니다. “유대를 떠나” 유대지방입니다.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실 쌔 가는 길 사이에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넓은 사마리아 안에 수가라는 동네가 있고
그 수가라는 동네에 우물이 있어 우리나라는 우물이 많으나 이스라엘은 우물 찾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7절에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신앙으로 뒤섞여 잡족이 되어 주님이 구원인지 미신도 맞는 건지 헷갈리는 이런 여인이 물 뜨러 왔습니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그러시니까 9절에 사마리아 여자가 당신은 딱 보니까 “유대인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는 상종치 아니 하더라” 아예 만나질 않고 서로 말을 섞고 그러지를 않는 법인데 그런데 물을 달라 그러니까 이야기가 시작이 된 겁니다.

신약은 우리가 유대인처럼 정통의 신앙을 아직도 지켜나가는 데라면 예배 이러고저러고 사람들 좋은 대로 뛰고 굴리면 되지 꼭 그렇게 예배를 옛날식으로 드려야 되느냐, 그게 사마리아 방식입니다. 사마리아 방식. 주일 지킬 수도 있고 말수도 있지 뭐 주일을 늘 지켜야 되느냐, 이런 방식. 예수님만 꼭 구원이라 그럴 수 있느냐 이런 방식. 예배 때 아리랑 타령을 하던 뭐 팝송을 하던 정치 선동을 하던 운동을 하던 그 넓은 예배당에 교인들이 모여서 술 한 잔을 하던 춤을 추던, 놀던 사람이 재미가 있어야 되지 꼭 예배만 드리고 신앙생활에만 집중을 하면 삭막해서 되겠냐?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게 오늘의 사마리아입니다.

저 연세대 이화여대 전부가 다 기독교 학교입니다. 연세대 이화여대 신앙생활 어떻게 하는지 한번 들어봐 보십시오. 불교인지 기독교인지 뭔지 뒤섞여 정신도 없습니다. 또 가까이 내려오면 순천 매산 학교가 기독교 학교입니다. 일반 학교와 매산 학교가 뭐가 다른가? 믿는 아이들 몇 명은 찬양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뒤죽박죽 돼가지고 정신없습니다.

그리고 시내 교회들 이렇게 저렇게 주일날 체육관 가가지고 하루 종일 온 교인들 체육관에서 운동회 놀이 하고 주일 지켰다, 그럽니다. 우리 방식은 100년 전 선교사들이 가르친 그 방식 딱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다른 교회 교인들하고 만나지 말아야 될 거냐? 다른 교회 교인들 만나서 우리가 맞고 누가 틀린다, 그런다면 싸움밖에 생기지 않습니다. 또 안 만나면 그러면 우리 신앙이 바로 되느냐?

다른 교회 교인들과 신앙적으로 만나서 교류를 하다가 전부 다 엉망이 되었습니까? 그냥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만 다니고 우리 교인 외에는 신앙으로 만나는 일이 없는데 세월 속에 그냥 슬금슬금 후퇴를 하다 보니까 잠든 신앙이 되고 그다음, 주저앉는 신앙이 된 거지 난 핑계 댈 거 없습니다. 그러나 정식을 말하면 내가 주님 모시고 바로 살려고 노력해야 되고 첫째, 그다음 내가 믿는 신앙과 다른 신앙이 있을 때는 잘 달래고 설명해서 좀 더 깨끗하고 바른 신앙으로 서로가 끌어주고 서로가 잡아주는 게 그게 인정이고 사정이고 그게 좋은 겁니다.

아, 좋은 걸 나만 가지고 남은 죽든지 말든지 버려도 되겠습니까? 정말로 그렇게 해보려고 하면 기독교인들, 신풍 교인들 저 사람들하고 슬슬 친해지고 나면 교회 가자고 하도 난리를 하니까 아예 그냥 지나가다가 그냥 눈인사나 할까 얼른 지나쳐야 되지 말할 기회를 주면 아니 된다, 그게 사랑이고 그게 병든 사람을 고치는 사랑의 마음일 겁니다.

여기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는 것은 물을 얻어먹으면서, 물을 얻어먹는 신세를 지는 것이 아니고, 물 값을 내는 것이 아니고 물 좀 달라고 해놓고 그다음, 여자 분과 대화를 시작하며 물을 달라고 그러면 아니,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자한테 말할 겁니까? 말이 나올 거고 그러면 이제 한 마디 가고 한 마디 듣고 오고 가고 오고 가다가 이 여자를 전도해서 나중에 여자가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고 여자가 온 사마리아 자기 동네까지 가 가지고 사람들을 끌어다가 전부 믿는 사람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려고 주님이 사람들이 오신 것이고 이게 오늘까지 우리에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그 누구를 만나도 내 속에 바른 신앙이 상대방에게 전해지든지, 전해지지 않으면 적어도 내 신앙이 뺏기지는 말아야 됩니다. 나의 신앙이 다른 사람 만나다가 뺏기는 일만은 없어야 될 것이고 좋기는 내 속에 있는 좋은 신앙이 상대방을 타고 들어가서 그 사람도 좋아지는 것이 그게 예배의 마지막의 결론입니다.

지금 주일부터 배우고 있는 예배는 내가 주님과 하나 되고 내가 주님을 따라가고 내가 주님을 모시는 방법이고 내가 주님을 확실히 모시고 나면 그다음, 이 생명의 주님을 나만 모셔서 되겠습니까? 당연히 생명의 주님을 모셨다면 이 생명 없는 사람, 이 생명에서 이탈된 사람에게 신앙의 도리는 이겁니다, 저겁니다 말로도 해야 될 것이고 말은 하지 않아도 남들이 보면 저게 믿는 사람답기는 답다, 라는 말이 나오도록 되는 것이 내가 예배를 드려 주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과 하나가 된 것이 주변 남들에게 전해지도록 까지 되어져야 되는데 주님 떠나 엉뚱하게 믿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도 교회에서 놀러 갔으면 좋겠다, 동네에서 놀러 가면 되지? 우리도 한 판 먹었으면 좋겠다, 이 집에서 하루 세 끼씩 먹어서 먹어도 체중 조절도 못 하는데 예배당에서까지 먹어놓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 못난 거지 근성이 이게 베어 내려오다 보니까 세상에서 못 논 것 교회에서 놀자, 세상에서 못 먹은 것 교회 공금 가지고 먹자, 얼마나 못났으면 세상에 친구가 없어 놓으니까 교인들끼리 친구하자, 주님 모시고 믿는 것이 뭔가 이걸 연구하는 게 교회인데 10살은 10살끼리, 30살은 30살끼리, 직장인은 직장인끼리, 사업가는 사업가끼리 모여서 이렇게 모이면 교인과 교인이 만나도 이미 사마리아가 되고 세상이 되는 겁니다. 이게 좀 어렵지만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에 주력하다 보면 언제 놀 일이 있습니까? 그럴 때 또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친구를 새겨야 사회성이 생기지, 공부 잘해 놓으면 친구가 줄줄이 들어오고 나는 잊어버려 친구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네 친구라고 먼저 전화가 오고 소개를 해서 불편해서 못 견딜 만큼 그리 됩니다. 공부 안 하고 친구 새겨놓으면 둘이 교도소 동기 될 겁니다. 나중에 그 친구가 날 피해야 자기 살겠다고 자기 발 빼려고 발버둥 칠겁니다. 하물며 교회겠습니까?

요한복음 4장에 예배에 대한 말씀을 가르치기 전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관계가 먼저 시작됩니다. 마음속에 살아온 나를 되돌아보십시다. 나는 나아는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저게 믿는 사람인가, 믿지 않는 사람인가도 잘 모르는 정도로 내가 상대해 왔는가? 저건 뭐 돌아가나 이리 가나 마지막에는 저게 또 교회 나오라고 전도나 할 거다 저건 뭐 전도 외의 신앙 외에는 저건 속에든 게 다른 게 없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살펴서 상대방에게 무리하고 상대방에게 무례한 것은 잘못이지만은 지혜롭게 기도하며 내 속은 복음 외에는 없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예배로 모신 주님 예배로 받은 은혜 주변으로 흘러가며 생명수가 되어 나 주변이 솔솔 모두 다 복음으로 더 밝아지고 더 살아나오는 것이 옳은 겁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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