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2.9.27, 고전11:27 (안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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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2.9.27, 고전11:27 (안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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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7 화새

설교 : 안응규
 
본문: 고린도전서11장 27절 -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죄 중에 특별한 죄가 칠계명의 음행의 죄는 몸 안에 죄라 이렇게 특별히 구별을 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죄 전부와 비교를 하며 음행의 죄는 몸 안에 있는 죄라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습니다. 성찬이라는 것이 마태복음 26장 26절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주님이 내 몸이 내라고 하고 건네주신 떡, 주님이 내 피 생명의 피니라 하고 주신 잔, 주의 몸 주의 피를 먹고 마시면 내 몸이 되고 내 피가 되어 집니다.
 
주님의 생애와 주님의 생명을 주님은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가 이걸 가졌기 때문에 믿기 전에 그 몸 그대로 살지 마는 주의 몸으로 살아라, 내 생명 내가 가지고 살지 마는 주의 생명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 그 연결로 사는 그 연결을 이제는 이어 끊지 말고 네가 그렇게 살아라, 그 뜻 그 실상에 그 신앙의 실상을 떡과 잔으로 주시고 떡과 잔을 받았으면 이제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특별한 관계를 살펴보면 부모의 몸과 부모의 피 그 안에서 만들어 아이가 생겨 졌습니다. 몸도 다르고 자기 피도 각각 달라 두 사람이라 사람이 다른 것 같은데 이게 나오기를 봄의 것으로 나와서 그리고 자란 겁니다. 나무에 열매가 맺어지고 그 열매가 떨어져 다시 나면 이게 다른 나무일까, 다른 나무입니다.

또 한 번 물어봅니다. 정말로 다른가, 한 나무가 자라 열매라는 결과를 맺었고 이게 떨어져 여기서 다시 싹이 났기 때문에 열매에서 난 것은 열매의 것이라 둥치와 가지가 난 뿌리와 다르다 그럴 수 있겠는가 둥치와 가지는 뿌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뿌리 위에서 돋아 나온 게 둥치고 둥치에서 뻗어 나온 게 가지고 뿌리가 먹어 올려준 걸 먹고 자랐습니다. 모양은 다르고 위치는 다르고 역할은 다르고 겉보기의 존재는 확연하게 뿌리와 둥치와 가지가 다르지만은 내면을 분석하고 연결해 보고 아래 위의 원인과 결과를 보면 다르다 할 것 없이 온전히 하나입니다.

아궁이에 나무를 떼면 나무는 없어집니다. 그런데 없어지는 그 나무에 그 없어지는 만큼 방바닥이 따뜻해집니다. 냉랭한 방바닥이 뜨거워지는 만큼 아궁이 안에 있는 나무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옵니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통나무는 방바닥을 데운 열과 굴뚝 밖으로 나가는 연기로 바뀐 겁니다. 굴뚝의 연기와 방바닥의 열기를 합하면 나무입니다.

냄비에 물 1리터를 넣고 불을 떼면 1리터의 물이 수증기가 되어 날라 갑니다. 냄비 안에 물이 없어진 것만큼 수증기가 되어 지금 방 안을 떠돌아다니는 겁니다. 그 방 안에 공기 속에 수증기를 다시 차갑게 냉각을 시키면 냄비 속에 정확하게 그 물이 되어 집니다. 냄비 속에 물과 떠다니는 수증기가 다른가, 하나는 물이고 하나는 수증기가 수증기니까 다릅니다. 하나는 냄비 아니고 하나는 공기 속이니까 다릅니다. 그런데 정말로 다른가, 이게 흩어진 겁니다. 뿌리와 둥치와 가지와 열매의 차이 그리고 그 열매가 다시 생기면서 다시 또 뿌리 둥치 열매로 이렇게 이어지는 것과 부모 자녀, 자녀, 자녀로 나아가는 것과 연계를 시켜보면 그게 다른 것이 아니라 모양이 다르고 위치가 다른, 그런데 내용은 하나인 것처럼 이 모든 자연의 모습을 가지고 주님이 성찬으로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이거는 건너갈 수 없고 합할 수 없는 다른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안에 가지고 있는 주님의 인성 그 살과 피를 떡과 잔으로 우리에게 건네주시면서 갖다 먹으라 이게 내 몸이라 이게 내 피니라, 그리고 직접 받아먹고 마셨고 이것을 전하라 해서 이것이 먹고 마시는 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먹는 떡은 떡일 뿐이고 이게 들어오면 우리의 피와 살이 되는 것 이건 일반 음식과 이 음식과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형식, 이 모습, 이런 외형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은 주님의 생애, 주님의 대속, 주님이 마련하고 건네준 하나님과의 연결 그 연결이 점점 내 심신의 생애를 움직여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의 형상 마치 뿌리와 둥치와 가지와 열매와 같이 신성 안에 있는 것이 우리에게로 그대로 건너온 것은 아니지마는 신성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 하나님의 사랑과 신성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에게 넘어와 물질로 말하면 뿌리 둥치로 신앙이 자라가는 것처럼 하나님 자체가 만든 목적 그 목적이 이어가도록 이 위 성자 하나님이 인성을 가지셨고 인성을 우리 위해서 다 바쳤고 그 구원 그 목적이 실상이 되도록 떡과 잔을 건네 우리가 먹고 마시며 우리의 몸,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우리의 몸 이게 주의 것이라는 게 아니라 이게 움직여 만들어지는 그 연결 그 신앙 이 몸속에 만들어지는 신앙의 새 인격, 새 행위 이것이 주님을 닮다가 우리가 죽을 때 이 육체를 흙으로 보내고 다시 부활 때 이 인체를 찾아가실 때는 그 심신은 부활전의 심신과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에 문제가 생기면 27절에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내 몸이라 내 피라면서 주신 잔을 먹고 마시는 것을 잘못하게 되어 지면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비유를 말씀드린다면 임금님 아들의 뺨을 올리면 임금님이 내 뺨이 아프다 그럴 것입니다. 비유를 좀 더 줄여서 임금님의 발바닥을 밟아버리면 임금님의 입이 아야, 그럴 겁니다. 좀 범위를 넓혀보면 심지어 임금님이 집고 있는 지팡이를 그냥 쓰레기통에 신하가 휙 던져버리면 임금님이 내 발을 임금의 권위를 쓰레기통에다 대고 획 던져 버리는구나, 이렇게 기분 나빠하고 불편할 겁니다.

성찬의 잘못은 임금님의 밥그릇 임금님의 지팡이를 걷어차는 정도일까? 임금님의 아들의 뺨을 때린 정도로 잘못일까? 임금님의 발등을 밟아 버리는 정도일까? 임금님의 몸에 살 한 점을 떼 내 버리고 임금님의 혈관을 잘라 정맥에서 피를 좀 빼버리는 것과 같을까 마지막이 아닐까? 이런 면으로 조심을 시킨 겁니다. 그런데 성찬이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그 성찬만이 성찬이면 성찬을 늘 조심하듯이 조심하면 되겠지마는 이 성찬의 범위를 좀 넓힌다면 그 성찬의 범위는 예배라는 모든 예배가 성찬입니다. 이것을 확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찬의 범위 예배의 범위를 더 넓히면 주일과 평생이 되어 집니다. 아이가 태어난 고향 출생지를 잡을 때 요즘은 대개 병원입니다. 그러면 병원이 고향이며 병원이 출생지인가, 그건 엄마 몸으로부터 떼 나올 때 이야기고 살던 집이 출생지며 고향입니다. 좀 더 범위를 넓히면 그 동네 신풍이 고향입니다. 내 살과 피니라 주님의 생애입니다. 주님의 고난의 전부입니다. 주님의 희생에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산했고 계획한 것부터 영원 후까지의 전부입니다.

이 떡과 잔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성찬 때만 딱 조심하고 먹고 마시면 됐고 나머지는 내 멋대로인가, 아예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떡과 잔을 먹고 마셨으면 내 몸 내 생명 내 생애가 가신 주님 대신 살아야 되겠다, 예배 때는 주의 제자고 주의 생애고 예배당 문 밖에 나가면 제 멋대로 막 가고 그렇게 움직여 이걸 분리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용 몸 따로 있고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서 억세게 활동할 몸 따로 있고 집에 차가 두 대면 여행용 하나, 업무용 하나 당연히 두 대를 나누겠지마는 집에 차가 한 대면 이걸로 업무를 보면 업무 차량이고 이걸로 여행 다니면 자가용이고 그런 것처럼 우리의 한 몸 한 생애를 가지고 이걸로 성찬도 예배도 주일도 평생도 살아야 되니 이 몸은 어디로 움직이든지 그 속에 있는 하나님과의 연결의 내용과 목적은 목적과 신앙은 늘 하나라야 됩니다.

그러라고 떡과 잔을 조금 덜어 넘겼고 이걸 먹고 마심으로 주님이 산 생애 그 고난이 이제는 내 속에 들어와 그 생애가 나의 생애가 되어져야 되고 주님은 하나님이고 나는 교인인데 피조물인데 성찬 때문에 주님의 사활 대속 때문에 내 속이 주님 되고 주님의 것이 내가 되는 이거는 구별할 수 없고 따로 놀 수 없는 이런 연결, 씨앗과 씨앗이 자란 나무와 따로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냄비 속에 물과 수증기가 되어 방 안을 돌아다니는 그 기체화 된 수증기와 다르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이걸 좀 연결시켜보면 아이는 부모의 생애입니다. 불신자들도 아이들은 부모의 내일이라 그럽니다.

부모 죽어야가 아니라 지금 부모는 부모의 생애를 살고 이 아이의 움직이고 아이에 이루어진 것 다 부모로부터 나간 겁니다. 부부도 구별하여 살고 부모 자녀도 구별하여 살고 만사가 그렇지만은 그 속에 넣어두신 하나의 길 생각하면 만사 모든 면으로 인격적이 되고 신앙적이 되고 부부답게 되어 지고 주님 모신 우리의 신앙이 되어 집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성찬은 일반적인 그냥 하나의 식으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하시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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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사회 09.27 21:56
실시간으로 예배를 은혜롭게 잘 드렸습니다. 준비도 진행도 결과도 모두 공회의 평소 지도에 맞습니다.
목회자도 한 번 잘 하면 다음에는 또 실수가 많은 법입니다. 그런데도 여기 적는 것은 다른 분들에게 우리 교회의 설교가 주로 여반 중심으로 진행이 되어 늘 아쉬웠는데 앞으로 남반들도 평소 설교가 이렇게 잘 진행이 되어 교회의 강단은 늘 필요할 때 필요한 분이 맡아도 별 차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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