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2.9.26 요4:23 무형의 하나님, 그 뜻이 말씀으로 내려 오니 바로 깨닫는 것이 예배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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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2.9.26 요4:23 무형의 하나님, 그 뜻이 말씀으로 내려 오니 바로 깨닫는 것이 예배의 내용

서기 0 109 2022.09.26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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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6월새

제목 : 무형의 하나님, 그 뜻이 말씀으로 내려 오니 바로 깨닫는 것이 예배의 내용

찬송 : 114장(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본문 : 요한복음 4장 23절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구약은 예루살렘 성전 한 곳에서만 제사 드리는 게 원칙입니다. 또 구약은 레위 지파의 아론의 직계 후손들이 제사장이 되어 아론의 후손들이 진행하는 그 제사만 제사가 되어 집니다. 장소도 사람도 모두 다 하나씩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자세한 거 전부 다 레위기에 일일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걸 떠나면 큰일 납니다. 신약에 오며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주일날 부활을 하심으로 구약의 모든 날과 구약의 모든 장소와 구약의 모든 정해진 사람을 해제시켜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몇 명이라도 구약의 제사가 신약의 예배로 바뀐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의 중심은 죄 지은 나의 죄를 양을 잡아 죽이므로 하나님께 사죄를 받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신약은 주님이 나 대신 이미 죽어 나의 영원한 죄를 다 해결은 해놓았는데 해결된 이 사죄의 은혜를 내 것으로 적용을 시키고 내 것으로 써먹는 방법은, 방법은 말씀으로 내 속에 있는 나의 죄를 내 손으로 죽이는 내 죄를 죽이는 것이 구약의 양 잡는 거와 같습니다. 나의 이 단점, 나의 이 죄, 나의 이 잘못 때문에 주님이 이미 대신 죽어주셨다, 주님이 죽어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주님의 사활의 공로를 붙들고 믿는 사람은 자기의 심신 속에 어떤 죄든지 꺾을 수 있고 죽일 수 있고 없애버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병원도 없고 약도 없고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치료를 하려면 병원에 벽돌부터 하나 놔야 되고 병원에 약 사러 다녀야 되고 뭐 있어야 시작을 하니까, 이게 구약의 제사입니다. 신약은 인간이 모으던 그 병원 벽돌 의료기자재, 병원에 필요한 이런저런 인원, 인력 구하러 다니던 제사제도의 전부를 주님이 오셔서 병원 지었고 의약품 기술 의사 전부 완비를 다 시켜놨습니다.  그리고 아픈 몸 너 여기 오기만 하면 된다, 영은 이미 해결이 되어 졌고 이제는 마음과 몸의 단점, 고칠 점 병원만 오면 무조건 해결이 된다, 지금 우리는 의료보험 제도까지 있지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병원 가면 의료보험이 있고 저절로 수술이고 뭐고 다 해결이 됩니다. 겁이 나서 안 간다든지 다른 이유로 안 가고 버티다가 그 병에 당하는 것은 할 수가 없습니다.

30년 전 의료보험 제도 없을 때는 몸이 아파 병원 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 못 갑니다. 그 전에는 병원이라는 데가 없어서 찾아갈 수가 없습니다. 또 이 병원이라는 것이 있어도 가짜배기도 있고 가짜 약장사 가짜 돌팔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게 고쳐준다는데 고칠 수 있기나 한가, 말로 가지고 돈이나 받고 사람이나 애 먹이는가?

말하자면 이게 구약입니다. 그럴 때의 예루살렘 성전, 양을 잡아 제사의 절차를 제사장 앞에 가서 전부를 철저하게 다 밟으면 그 밟는 모습을 전부 다 100% 바로 지키면 그 죄 하나만 해결합니다. 신약은 주님이 오셔서 병원, 기술, 의사, 의료보험 모든 거 다 전부 다 해결해 놓고 오기만 하면 그냥 깨끗하게 해결해 주마, 안 가면 헛일입니다. 안 가면 못 고칩니다.

예배라는 것은 사방천지의 병원과 널 고칠 수 있는 의료보험 제도는 가득 차고 넘친다, 날 중에 주일날 시간 중에 예배 시간, 일단 주일과 예배 시간에 먼저 집중하고 그리고도 필요하면 오후 예배도 좋고, 저녁 기도회도 좋고, 이렇게 월요일 새벽에도 좋고 계속 이어지며 재활치료가 되든지 입원이 되든지 이후 추적 검사를 통해서라도 지속적으로 전부 다 해결되는 것이 신약입니다.

예배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유형이면, 보인다면 그러면 천주교식으로 그러면 불교식으로 미신 귀신 별별 방법을 다 할 수가 있는데 형체가 없으시고 초월의 주님이라 어떻게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닿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할 아예 차원이 다른 절대자 하나님 그리고 땅 밑에 기고 사는 인간, 이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격차를 성경의 말씀으로 가지고 연결을 시켜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없었다면 또 예수님의 대속으로 중생된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연결시켜놓은 이 말씀을 봐도 읽어도 뭔 말인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국어 책 읽듯이야 읽겠지 성경의 말씀을 세상 책 보듯이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 진리와 진리 속의 영감은 중생되지 않은 사람은 봐도 모릅니다. 신풍에 태어난 석달짜리에게 영어 간판 눈에 보이나마나 눈망울에 보이기야 보이겠지 석달 짜리 신풍에 태어난 아이에게 영어 간판 한자 글자 보이나마나 자기하고 뭔 상관이 있습니까? 코로나 예방지침이 있네 예방주사가 있네 코로나 때문에 국민들 고생한다고 돈을 갖다가 한 달에 50만원 찾아가라, 100만 원 찾아가라 방송이 나온 들 들리지만은 알아 듣습니까? 안내문이 있던 들 눈에 보이나 그게 뭔지 알 수가 없는 것처럼 불신자 중생되지 않은 사람은 성경책 다 외워도 그냥 상관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 중생 된 신앙의 사람은, 신앙의 사람은 우리 속의 영이 중생이 되었고 영의 이 중생은 하나님과 나를 연결을 시켜 놓기 때문에 중생된 영을 가진 우리는 볼 수 없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에게 대한 소원, 나에 대한 뜻을 말씀을 통해 알아볼 수가 있다, 이걸 느낄 수 있고 또 말씀을 통해 말씀 속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소원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방 안에 휴대폰이 있어도 석 달 아이에게는 상관이 없지만 그걸 쓸 수 있는 어른은 방 안에 휴대폰이 있다면 전화를 걸 수도 있고 오는 전화를 받을 수도 있는 것처럼 성경의 말씀은 닿을 수 없고 파악할 수 없고 알 리가 없는 하나님의 세계와 나 사이를 연결시킨 게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그 대속이 내 영을 중생을 시켜 영이 중생이 되면 하나님과 나 사이가 개통이 되고 연결이 됩니다. 이런 믿는 사람의 마음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라 더라, 그리고 이 말씀을 읽으며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있구나.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를 하는 것이 뭔 말인지를 몰라서 그냥 예배당에 식구들하고 오고 가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목적 저런 목적 다른 목적으로 오고 가는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도 있겠구나, 아예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구나, 아이가 아버지로 모든 살아가는 보호를 받고 인도를 받고 지도를 받는 것처럼 세상을 죄인이 죄 짓고 사는 거야 하나님 아버지 필요 없고 상관이 없으나 죄악 세상 속의 천국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는 믿는 사람의 심신의 건설은 매일의 생활은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가 있고 지도가 있고 보호가 있는데 하나님이 아버지 되셔서 책임을 지시고 지도를 하시고 보호를 해 주시는데 인도도 지도도 보호도 전부 주신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통해 모두 해결을 하게 되니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예배입니다.

알아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알아야 그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이게 하나님의 뜻이니 알겠습니다, 하나님이 정해놨으니 저는 이대로 순종하겠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하나, 그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 이게 하나님 앞에 자기를 숙이고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예배의 예(禮)자, 예배의 배(拜) 자는 몸을 숙인다, 몸을 굽힌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면 하나님을 향해서 머리와 몸을 숙이면 그게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께는 몸을 숙일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숙이고 인격을 숙이고 생활을 숙이고 내 속의 주관을 꺾어, 어디 하나님 앞에 뻣뻣하게! 나의 지식도 나의 주관도 나의 인격도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는 분지르고 꺾어서 굽혀서 하나님이 이런 걸 원한다더라, 예! 이렇게 꺾어버리고 나는 이런데요, 나는 저리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동쪽입니까? 저는 서쪽입니다. 학교에서는 남쪽으로 가랍니다. 요즘은 전부 다 북쪽으로 갑니다. 나와 내속의 별의별 걸 하나님의 뜻 앞에서는 다 꺾어버리는 것이 이게 숙이는 겁니다. 굽히고. 그쪽입니까? 아, 그러하십니까? 알겠습니다, 이게 예배의 첫째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살면 그게 예배의 실행입니다.

그러면 주일은 주일과 한 주간 전체를 두고 하나님은 너를 동쪽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그 생각 하나님의 그 뜻 하나님의 그 인도를 성경 말씀을 읽으며 말씀을 배우며 말씀을 깨달으며 말씀을 들으며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렇게 살았는데 이거 잘못됐구나, 또는 이렇게 살았는데 이게 맞는 것이구나, 말씀으로 가지고 오늘과 한 주간 살아갈 방향을 잡고 살아갈 원리를 알고 살아갈 목표를 잡고 살아갈 때 주의할 점을 배우고 이게 예배 시간에 배우는 겁니다. 배우면서 그렇다더라가 아니라 배우면서 아, 이게 잘못돼서 이렇게 고장이 났구나, 이제는 이대로 기어코 살아야 되겠다.

첫째는 바로 배우고 둘째는 바로 배우면서 내게 대한 것을 깨달아 확정을 하고 바로 배우고 확정하고, 옳다 확정하고 확정된 다음에는 꼭 이대로 살겠나이다, 각오하고 그 각오가 인간의 각오에 그치면 인간 각오 해봐야 3일도 안 갑니다. 그 각오에 성령이 이대로 살 때 도와주마, 인간의 각오를 하나님이 각오하게 하고 그 각오를 할 때 하나님께서 그 각오대로 살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나를 변화를 시켜 내 속의 새사람에게 말씀에 붙들린 나를 만들어 버리면 예배를 잘 드린 겁니다.

이 사람이 예배 시간 맞히면 이제 어떤 현실 어떤 한 주간을 펼쳐놔도 변화된 말씀의 사람이 되어 그냥 이제는 거침없이 그대로 가버리는 겁니다. 그 전부를 잡았기 때문에 말씀을 바로 배우고 좀 더 깊이 하나님이 나에 대한 뜻이 뭔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파악하고 옳다 확정을 해버리고 이제 이대로 살겠습니다, 각오를 하고 여기까지는 나의 노력입니다. 이렇게 하는 나를 보고 성령이 오셔서 그 말씀으로 살 수밖에 없는 나로 변화를 시키고 만들어 주시고 힘을 부어주시면 신령한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령한 예배. 신령한 예배가 되게 하기 위해서 나 있는 힘 다하여 내 정성을 다하는 것이 신령과 진정의 진정입니다. 신령의 예배가 진정으로 하나 되고 신령과 진정이 만들어지면 깨달았으니까 확정했으니까 그 확정을 하나님이 확정하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버렸으니 이제 던져 놓으면 되는 겁니다.

작은, 배꼽에나 닿을만한 작은 수영장에서 호흡도 배우고 발차기도 배우고 그 다음, 손짓하는 것도 배우고 충분히 다 배웠고 확실히 배웠다면 강이든 바다에 이제 휙 던져놔 보면 예전에는 맥주병처럼 꼬르륵 가라앉던 것이 이제는 배웠기 때문에 정말 배웠으면 강물에 바닷물에 집어 던지면 자유롭게 수영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드리는 주일 예배, 새벽 예배, 예배라는 것은 작은 풀장에서 배우는 것이고 정말 배웠다면 이제 예배 후 하루를, 주일 후 한 주간을 어디에 던져놔도 어떤 상황이 와도 겉으로는 세상 생활인데 속으로는 주일날 또 새벽에 결심한 말씀, 그 말씀 붙든 말씀, 그 말씀 붙들고 이어지면 온전한 예배가 된 거고 예배 시간에는 옳다, 맞다 이제 그렇다 이제는 잊지 않겠다, 했는데 막상 새벽 예배 마치고 바빠서 그냥 설치다 보니까 들은 말씀이 잊어버리고 또 각오한 것도 뿌리 뽑히고 흔들려져 버리면 예배 시간은 잘 지켰는데 예배 시간 속에 만들어야 되는 자기를 만든 것은 100점이 될 수도 있고 10점이 될 수도 있고 빵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배 후에 이어지는 예배의 생활이 확장이 되어 일반 생활 속에 들어가지를 못해도 예배가 반복이 되면 자꾸 바뀌면 그래도 나아집니다. 몰라도 자꾸 다니다 보면 자꾸 알아지는 게 좀 있지 않습니까? 좋기는 잘 준비하여 시간마다 바로 배우고 배운 것마다 자기를 만들고 그것이 딱딱 이렇게 발전이 돼 나가면 한 석 달 정도 열심히 신앙생활 잘하면 다른 사람 30년 평생 믿은 걸 앞질러 버립니다. 그래서 신앙의 세계는 앞선 자가 뒷 서고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 라고 하는 겁니다. 뒤에 출발했으니까 무조건 앞선다 그 말이 아닙니다. 한 석 달만 제대로 믿어보면 30년 평생 믿었던 사람 훨씬 앞에 가버립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방심하지 말고, 안심하지 말고 늘 긴장하고 열심히 살아야 되는 오늘 하루입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입니다. 예배 때의 말씀 그 말씀 속에 내가 결심하고 깨달은 것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 불씨를 끄치지 말고 죽이지 말고 오늘 하루 이어 갑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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