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22.9.25 요4:24 예배란 주님 원하는 뜻에 따라 순종하는가 내용이 관건, 예배의 본질과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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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22.9.25 요4:24 예배란 주님 원하는 뜻에 따라 순종하는가 내용이 관건, 예배의 본질과 변질

관리1 0 71 09.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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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0925 주후

제목 : 예배란 주님 원하시는 뜻에 따라 순종하는가 내용이 관건, 예배의 본질과 변질

찬송 : 6장(전능왕 오셔서), 31장(내 주는 살아계시고) / 91장(환난과 핍박 중에도)

본문 : 요한복음 4장 24절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인간을 이 땅에 두신 이래로 영육에 넘치는 이러한 시절을 주시는 것은, 매 주일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하신 자를 바르게 알아, 지혜와 명철의 사람이 되라는 귀하고 복된 기회를 주신 것이니, 세상의 어두움에 편승하여 받은 기회를 더 이상 낭비하거나 허송세월함이 없도록, 오전예배에 이어 바른 예배 관을 배울 때에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경외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주님만을 향하여 마음과 정성을 쏟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후예배가 되도록, 오가는 발걸음 주님께서 지켜주시며 곳곳에 두신 우리 교인들 일일이 돌아보옵시고, 부족하여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에게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한 본문을 반복할 때는 꼭 좀 외우시라는 뜻입니다. 주일에 이어 예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주일은 주의 날 하나님의 날 하나님의 것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뭘 원하시는가, 이게 주일의 기본입니다. 또 주일의 핵심이 예배인데 예배는 여기 본문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예배가 예배입니다. 내 생각 우리생각 교인생각 목회자생각, 요즘시대 요즘세대 유행 이런 것은 아예 예배당 밖에 다 털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모여 하나님은 뭘 원하실까 이게 예배입니다. 오전에 예배의 ‘예’자는 굽히는 예자라
숙이고 굽히는 ‘예’자라 숙이고 굽히는 ‘배’자라고 그랬습니다. ‘예’ 자 ‘배’ 자 두 개가 반복입니다. 강조입니다. 숙이고, 숙이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엎드려 이게 예배입니다. 엎드려 뭐하라고? 뭘 원하시나? 뭘 좋아하시나? 그게 예배입니다. 엎드려, 그 엎드렸으면 당연히 그다음 엎드려 섬기는 겁니다. 음식 한 끼 먹어주러 오는 손님에게 주인이 고분 고분고분 고분 속도 없이 자존심도 없이 어쨌든 손님 위해서 벌벌 떱니다. 고객을 위해서 비행기에 스튜어디스도 그럽니다. 국가의 공무원도 속으로는 민원인 우리에게 내가 너보다 잘 났다 그게 있어도 밖으로 표시하면 큰일 납니다. 그냥 욕을 하고 마구 엉망을 해도 예 예 그게 국민을 섬기는 공무원입니다. 뭐든지 다 그런데 인간끼리 그런 것은 크게 보면 인간끼리 서로가 그럴 수 있습니다. 예배란 인간끼리가 아니라 아예 인간 위에 있는 사람을 만든 하나님 앞에 숙이는 겁니다. 굽히는 겁니다.

구약은 회개를 할 때 잘못했다고 회개를 할 때 옷을 찢게 했습니다. 왕이든 누구든 자기 옷을 찢는 것은, 잘못 살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 뜻으로 옷을 찢으며 회개를 했는데, 세월이 지나다보니까 옷만 찢지 마음을 찢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회개하는데 속으로는 회개가 없으니까 요엘 2장 13절에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이나 찢으라 이것들아. 이렇게 야단을 친 겁니다. 아까운 옷을 찢을 때, 내 행동이 잘못되었습니다. 나 살아온 것이 다 잘못되었습니다. 그 뜻으로 옷을 찢으며 마음으로 회개를 해라 이런 뜻인데, 옷 찢는 것만 자꾸 반복하다가 옷만 찢으면 그게 회개인 줄 알기 때문에, 구약 말기로 가면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옷을 찢느냐? 옷을 찢으며 마음도 찢었느냐 너 마음을 찢으라고 옷을 찢으라고 한 거다. 벌써 구약에도 그 속에 들어있는 정신 속에 들어있는 신앙을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라는 것은 남자아이들 소변 볼 때 제일 더러운 그 끝을 잘라 내버리는 것이 할례입니다. 더러운 짓 하지 말아라 그 뜻입니다. 아이 낳지 말아라 말이 아니라 더러운 짓 하지 말아라. 그 뜻으로 할례를 시켰더니만 난지 팔일이면 부지런히 끊어대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표시다. 그게 아이디처럼 증명서처럼 시민권처럼 그러고 다니니까 예레미야 4장 4절에, 살갗을 베지 말고 마음을 베어라 못된 마음 더러운 마음. 육체의 아이의 소변보는 끝을 자르며 깨끗하게 쓰거라 더럽게 쓰지 말아라 그게 할례입니다.

그럼 이걸 자르며 왜 잘라라 그랬는가? 이상하게? 이거 자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더러운 마음 정욕의 마음 믿는 사람이 세상을 향하여 마음 뺏기는 것이 전부 더러운 겁니다. 이걸 마음에서 끊으라고 할례를 가르쳤는데 온갖 세상 더러운 짓은 다하면서,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난지 8일 만에 끊어버렸습니다. 이러고 다니니까 살갗을 베지 말고 마음을 베어내버리라 어떤 마음? 세상을 가고 싶은 더러운 마음 세상이면 다 되는 정력의 신앙의 그 마음을 자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태어나면 사내아이 8일 만에 잘라버리는 그 방식이 살을 자르며, 이 아이의 평생의 더러운 세상을 향한 그런 마음을 잘라버리라 했으니 늘 이걸 생각하는 거고, 또 회개할 때는 옷을 찢는 것이 요즘은 옷이 많아서 성한 것도 찢을 수 있지만은, 옷 하나 없어 얼어 죽던 옛날에 옷을 찢는 것은 지난 날 살아온 거 다 틀렸습니다. 이제 완전히 돌아서겠습니다. 그 뜻으로 옷까지 찢었으니 마음도 돌려야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의 예배는 제사입니다. 구약의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것은 죄를 지으면 이렇게 죽는 겁니다. 그 뜻입니다. 내가 죽으면 할 수가 없으니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내 죄 때문에 대신 죽었습니다. 그 뜻으로 양을 잡아 죽이며, 아이 주님을 이렇게 잡아 죽이다니 참 죄인이다. 그래서 안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내 마음에 죄 짓는 죄를 죽여 버려라. 이게 제사인데 양만 계속 잡아 제사를 드리면서 죄는 더 짓고 앉았으니, 양이 없어 양 잡아라 그랬느냐, 양을 죽이며 너 죄 짓는 마음을 잡아 죽이라고 그랬는데. 이게 구약의 제사고 신약으로 오면서 예배로 바꿔주시며, 예배는 몸을 숙이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 마음을 숙여라 인격을 숙이고 마음을 숙이고 자존심을 숙이고 네 생각을 하나님 앞에 굽혀라 꺾어라.

꺾은 다음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를 딱 살펴 하나님 원하는데, 물 한 그릇을 원하면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을 원하면 밥 한 그릇 주일을 지키는 걸 기뻐하시면 주일을 지키는 것, 성경 읽는 걸 기뻐하시면 성경 읽는 것 내 생각 내 마음을 굽혀 꺾어, 주님 내게 원하는 것을 해드려라 그게 하나님을 섬기는 거다. 그 단어를 예배로 모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돌부처처럼 눈에 보이면 그 앞에 가서 절하면 됩니다. 근데 볼 수 없는 하나님이니 우리가 절한다고 받는 분도 아니고, 또 하나님을 섬기라. 섬기라 한다고 돈 드린다고 하나님이 가져가십니까? 밥상을 차린다고 드십니까?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뭘 좋아하는지 말씀 속에 하나님이 뜻이 들어 있으니, 주일날 예배시간에 찬송 기도 설교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교회에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하나님은 나에게 뭘 원하시나. 내 자존심 내 자아를 꺾고 숙이고 굽혀서 하나님 뜻을 잘 살펴, 세상을 너무 많이 돌아다녔으니 좀 덜 돌아다니는 것을 기뻐하시는구나. 그러면 한 주간 돌아다니는 나를 좀 줄이시고, 한 주간 실컷 돈 벌고 공부하고 놀았는데 주일마저 내 마음대로 사는 거 기뻐하지 않겠구나. 이게 느껴지면 주일은 조심조심 살며 나를 꺾고 주님은 뭘 원하실까. 이렇게 교회마다 사람마다 각각 무엇을 원하실까 뜻을 살펴 그대로 하는 것이 섬기는 겁니다.

부모님이 배가 고프면 집을 팔아서라도 밥상을 차려 드리는 것이 섬기는 것이고, 부모님이 잘 드셔서 체중관리를 못하는데 옷이 없어 헐벗으면, 식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옷을 해드리는 것이 섬기는 것이고, 잘 드시고 옷도 많은 부모님인데 노랫가락을 듣고 싶으면 노래를 불러드리는 것이 섬기는 것이고, 부모님이 부자고 건강하고 잘났고 모자란 것이 없는데 손주를 보고 싶으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드리는 것이 섬기는 것이고 뭐 뻔한 거 아닙니까? 부모가 공부를 못해서 졸업장이 그리워 우리 집에도 졸업장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부모의 마음이면 이를 깨물어서라도 커닝을 해서라도, 졸업장을 한 장 두 장 갖다 드리는 것이 섬기는 겁니다. 하나님은 졸업장을 원하겠습니까? 밥상을 원하겠습니까? 옷을 원하겠습니까? 우리 춤추는 걸 원하겠습니까? 교회마다 가정마다 사람마다 주님이 하나씩 속으로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너희 가정은 안 싸울 걸로 자꾸 싸우니 좀 이해하고 살면 좋겠다. 이런 가정도 있을 것이고, 네 가정은 다 좋고 부부도 좋은데 게을러서 탈이다 너 가정은 게으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가정도 있을 것이고, 너희 가정은 돈 벌어서 그냥 아무 데나 퍼부어 싸는데 그거 퍼주는 거 아니다. 돈 조심해 쓰는 거다. 이런 뜻을 가졌으면 그 가정은 돈을 아끼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일 것이고, 어떤 가정은 잘 벌고 부지런하고 많이 쌓아놨는데 부부 둘이 자기 가정만을 위해서 살지, 주변에 누가 죽든지 말든지 잔인하게 쳐다도 보지 않으면, 너 둘은 너무나 위대한데 주변을 좀 살펴줄 수도 있는 거다. 이걸 원하면 또 주변을 살펴 드리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오전예배 결론입니다. 예배는 자기를 엎드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엎드리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과 자기생각을 꺾고 굽히는 것이고, 섬기는 것은 내게 대한 하나님 소원 내게 대한 하나님 뜻대로 해드리는 겁니다. 학생들의 교안은 2번입니다. 그러면 예배란 첫째로 위치가 문제인데 위치는 무조건 하나님 앞에서 이것만 예배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이지만은 특별히 예배는 그 어떤 것도 옆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무조건 하나님 앞에서 신인관계지요. 하나님 앞이니까 그러면 넌 자세가 어떠해야 되겠는가? 우리의 준비는 정성 다하여. 없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없는 것을 달라 하지 않는다. 있는 대로만 가져오면 된다. 세살은 세살만큼 정성 기울이면 되고 10살은 10살 만큼 30살은 30살 만큼,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만큼 아픈 사람은 교회 올 것도 없이 실시간으로 집에서 드려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와도 되는데 뭔 예배당을 갖다가 하루에 두 번이나 가나. 오래 믿어서 잘 믿는 사람이 그러고 앉았으면 너 두 다리 가지고 놀러 댕길 때는 천지를 쫓아 댕기면서 학교는 하루에 열 번도 가면서, 아니 예배는 두 번도 많아? 그렇게 너 다리 쓰기 싫어? 그 두 다리 분질러 버리면 어떡할 겁니까. 두려워서라도 놀러는 못가도 공부는 못가도 돈 벌러는 못가도 교회는 정성을 다해야 됩니다. 예배는 위치적으로 하나님 앞입니다. 준비는 내 게 있는 것은 다 해야 됩니다. 없는 것은 하지 마시고.

남들이 다 자동차 타고 간다고 차도 못살 사람이 차사서 오는 것도 그것도 곤란하고, 남들이 건강해서 걸어서 가는데 자기는 불편해서 차타고 오면 좋겠는데,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교회는 걸어서 가야 정성스럽다고 걸어오다가 차 사고나 나고 다리나 고장 나서 입원해 놓으면 그것도 탈입니다. 사람마다 건강 다르고 다 다르니까 자기대로 마음준비 다 하라. 이게 준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본자세는 자기를 굽히는 것이 예배입니다. 자기를 굽히다니? 너 생각 굽혀라 너 지식을 굽혀라 너 주관 굽혀라 너 자존심 굽혀라 너 혼자 잘난 건방진 거 다 굽혀라. 유엔 총회에 가서 유엔의 온 세계대표를 향해서 미국 대통령은 큰 소리를 칠 건데, 세계를 향해서 큰소리 쳐도 예배드리러 갈 때 하나님 앞에는 대통령이고 뭐고 다 굽혀라 이게 예배입니다. 자기를 굽혀 그다음 뭘 할 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목사 시키는 대로 해라 아닙니다. 교단 시키는 대로 해라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해라 하나님이 뭘 시키는데? 성경을 읽고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살피다보면 내 마음 내 양심 속에, 너 좀 이런 거 고쳐야 되겠다. 넌 이런 건 좀 노력해야 되겠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안 믿는 가정에 10살짜리가 장년 반 예배에 앉았으면 남 예배 보는 거 방해나 지기지 말아라. 그래도 하나님이 100점 줄 겁니다. 믿는 집에 아니면 한 자라도 필기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할 겁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되면 한 시간에 많은 말씀을 다 기억 못해도, 한 두세 자라도 기억하고 가면 하나님이 기뻐할 겁니다. 신앙의 세월과 수준과 노력에 따라 건강과 가정형편에 따라 하나님이 원하는 뜻은 다 다르니, 다른 사람이 뭐 고기 먹는다. 다른 사람이 채소 먹는다. 다른 사람이 예배 때 발이 아파서 발을 좀 이렇게 뻗고 있는다.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그럴 수 있는 겁니다.

몸 불편하신 분 예배당까지 오셔서 누워서라도 예배드리면 얼마나 덕이 되고 빛이 되겠습니까? 아이 집에서 누워 계셔도 되는데 예배당까지 저렇게 침대에 누워서라도 꼭 예배당에 오시겠다니 하나님이 참 기뻐하겠다. 그렇다고 건강한 제가 여기 강단에 누워서 설교를 하고 앉았으면 하나님께서 천벌을 때리지 그냥 두겠습니까? 사람마다 다 다른 겁니다. 예배당 안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내 눈에 못 볼 게 보일 때는 뭔가 그런 사정이 있는가 보다. 오 은아 선생님 맞습니까? 오 은아 선생님 이 말이 맞습니까? 예배 때 다른 사람이 못할 행동을 하고 예배당에 온 교인이 못할 행동을 해도 그런 사정이 있는가 보다 이게 바른 마음입니다. 정 영희 집사님 맞습니까? 오 은아 선생님 맞습니까? 오 은아 선생님 뒤에 심 은경 선생님 맞습니까? 다 맞지요? 심 은경 선생님 뒤에 집사님 맞습니까? 맞습니까? 뭔 말인지 지금 들으셨습니까? 예배당에 누가 소주병을 가지고 들어오면 말 통술을 먹을 사람이 오늘은 교회 온다고 소주병 하나만 들고 왔는가 보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그게 교회입니다. 술병 잘 들고 들어왔다 그 말은 아닙니다. 말술에 잠겨 죽을 사람이 교회 온다고 소주병 한 병 들고 들어오면 그 불신자가 그렇게라도 오면 고마운 거지. 근데 집사님이 술병 들고 들어오면 예배당 들어오다가 천벌 맞아 초상 칠겁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겁니다. 모르니까 그러는 거고 그런 분에게 교회 올 때는 술병을 저 현관에 두고 들어오시면 좋겠습니다. 이래 말하면 다 알아듣겠지요. 4월 초파일에 절에는 삼겹살 굽어 먹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는 것이지. 이놈이 절에 싸움하러 왔다고 멱살 잡고 싸워서 이기고 지고 해봐야 뭐가 좋겠습니까? 신앙생활이라는 거는 그런 겁니다.

사람마다 교회마다 가정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못 볼 행동을 하면 아직 신앙이 어려 그런가보다. 아직도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니까 그런가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주여 저 마음을 열어 하나님이 두려운 사람이 되게 해주옵소서. 열심히 기도해 놓으면 인간이 가서 간섭하면 싸움이 생기는데,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두려운 마음을 주시면 겁이 나서 다 회개하고 돌아오게 돼 있습니다. 이런 걸 예배라고 그럽니다. 구약은 제사 신약은 예배 이렇게 하나님께서 바꿔주셨습니다. 왜 그러냐. 구약은 겉모습 구약은 모습이 앞에 갑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양을 가지고 와서 잡아 죽여라. 이게 구약의 제사제도입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양을 잡아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를 드려라 이렇게 겉모습을 먼저 가르칩니다. 그게 구약입니다. 그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라 하니까 시키는 대로 하면서, 왜 양을 잡아 죽이라고 그러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생각을 하는 겁니다. 왜 멀쩡한 양을 죽이라고 그러지?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을 죽이라?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 없는 누구를 하나 죽어야 내가 용서를 받는가 보다 그게 누굴까? 이렇게 자꾸 생각을 하다보니까 모습이 앞서가고 구약에 성전 구약의 제사 구약의 양 잡는 제사 제도를 겉모습을 먼저 따라가고, 자꾸 생각하다보니까 죄인 나의 죄를 씻기 위하여 어린 양 예수님이 올 걸 표시를 했구나. 내가 죄를 지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앞으로 이렇게 죽게 되는구나. 나에 짓는 죄는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죄가 되는구나.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며 내가 죄를 지어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런 짓을 해서 되겠냐. 그 제사를 자꾸 지내다가 이제는 내가 죽지 죄는 짓지 말아야 되겠다. 이게 구약의 제사입니다.

모습이 앞에 가고 내용이 뒤를 따라가는 것이 구약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만들어라 제사는 레위인만 제사를 지내거라. 이게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해가 되든 말든 예루살렘 성전에 레위지파의 제사장만 제사를 관장합니다. 그리고 신약으로 오면서 예루살렘 성전이 문제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잡혀죽은 주님이 막 바로 나를 구원하러 오신 성전이며 어린 양 재물이 되셨구나. 이렇게 신약은 예수님을 먼저 믿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그 예수님을 모시고 살려다보니, 주신 주일날 주신시간 예배시간에 날 위해서 죽은 주님이 나에게 뭘 원하실까, 내용이 앞서가고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배우기 위해서 집에서 예배드리는 게 낫겠는가 아니면 예배당에 오는 게 낫겠는가? 또는 예배 시간은 언제쯤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겠는가? 이렇게 내용이 앞서가고 모습이 뒤따라가는 겁니다. 우리는 시골이라 30분이면 여수 순천 어디서든지 옵니다. 그래서 10시 예배를 드립니다. 서울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날아가도 한 시간 걸리는데도 있답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교회는 10시 예배보다 멀리서 오는 분을 생각해서 10시 반에 드린다면, 그런 거는 죄 되는 것 아니고 그럴 수 있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교회에 안 믿는 집에서 나오는 학생들이 없다면 장년만 예배 여덟시 반에 드릴 때가 올 겁니다. 안 믿는 집 아이가 안 믿는 집 부모 밑에서 교회를 오니까 그 아이들을 주일 학교 8시 반에 예배를 드리느라고, 아이들 데려다 주고 오느라고 10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10시보다는 9시가 더 정성스럽고 9시보다는 8시 반이면 더 정성스러우니까, 연세 많은 분 또 불편한 분 여러 종류의 신앙을 생각해서, 학교도 여덟시 반에 가는데 회사도 8시 반에 가는데, 아이 교회 하나님 앞에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시간이 8시 반은 돼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8시 반으로 정하려다가 불신가정에 초등학교 아이들 주일학교 오는 아이들 때문에 8시 반을 내 드리고, 연세 많은 분들은 할 수 없이 양보를 해서 10시에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10시 예배는 지각하는 게 좋지 않습니다.

오전예배에 어른들이 지각을 할 때는, 안 믿는 사람이 안 믿는 가정에서 교회를 오다 보니까 그렇겠지 제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아니면 오다가 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그래서 늦었겠지. 또는 오다가 혼자 오면 일찍 오는데 안 믿는 집 사람을 하나 모시고 오느라고 늦었겠지. 그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런 뜻으로 보기는 봅니다. 근데 오래 믿고 잘 믿는 사람이 다른 데는 불 칼처럼 출근하고 학교를 가지만은, 주일 오전 예배 그까지 끌 시간 맞추면 내가 졸병이야? 바보야? 나 같은 간부는 한 5분 늦게 와도 되지 자세가 만약에 그리 된다면 틀린 겁니다. 틀렸다고 뭐 강단에서 회초리 들겠습니까? 야단치겠습니까? 주여 저 죄인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마음을 열다가 안 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결해 주옵소서. 그 기도는 제가 안 합니다. 그런 기도 해놓으면 다리가 부러지기 때문에, 다리가 부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소화마비 걸려서 장애자가 될까봐, 신앙이 있는 사람이 예배를 우습게 알면 때려주시옵소서. 다리를 분질러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는 안 합니다. 그냥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여기까지만 합니다. 그런 걸 긍휼이라 그럽니다. 어떤 누구가 뭐 우리 교회 장로님이 만약에 5분 10분 예배 때 지각을 하면, 장로님이 지각할 때는 오늘 배탈이 났던지 어느 분을 업고 오시든지 설마 그렇겠지, 예배를 늦출 때는 그렇지 않겠는가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이해를 하다보면 다 해결이 되어 집니다.

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 우리의 몸도 만드시고,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 인간의 영도 만드시고 천사도 없는 가운데 만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와 같은 영 우리의 영과 같은 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자 무형의 하나님이 인간의 영과 천사 영을 만든 하나님입니다. 천사 영과 하나님과 같다하면 큰일 나지요. 그런데 왜 영이라 그러셨는가. 돌 앞에 가서 자꾸 절을 해 싸고 금불상 앞에서 저를 해 싸고 보이는 것을 우상으로 잡아 자꾸 절을 해 싸니까 하나님은 물체가 아니다. 인체도 아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분이 아니다. 그 말을 못 알아듣기 때문에 간단하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눈에 보이는 조각품을 만들어 우상을 만들어 거기 절을 하는 그런 짓 하지 말아라. 그 뜻이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으로 예배하라. 신령이란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신령한 예배입니다. 신령이란 뜻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은 신령 한 면을 가르치기가 어려워서 돌로 성전을 만들고, 돌로 만든 성전 뜰에 제단을 만들고 제단 위에 짐승을 잡아 불을 태우는 제사로 그쳤습니다. 이게 예배다 그게 왜 예배인고? 앞서 모양을 보면서 죄는 내가 지었는데 엉뚱한 양이 죽는구나. 죄는 내가 지었는데 내 죄 때문에 엉뚱하게 죄 없는 저 양이 죽는구나. 저 양은 누구며 나는 누굴까 이걸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죄 지은 나의 죄를 해결하실 어린 양 예수님을 가르치는구나. 겉모습을 먼저 가르쳐서 속에 들어 있는 이유를 가르친 것이 구약이고 신약은, 신약은 내용이 앞서갑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있는데 신약은 어디라도 교회가 되어 집니다. 장소가 필요가 없습니다.

20절 앞으로 봐봅니다. 20절 여기 사마리아 여인이 신앙생활 타락한 사람을 사마리아라고 그럽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20절에 “우리 조상들은”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엉뚱하게 그냥 잡종이 돼버리고 타락을 해 버린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 우리 조상들은” 사마리아 우리 산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유대인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라고 그럽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것이 맞냐? 사마리아에서 예배드리는 게 맞냐? 어느 산에서 예배드리는 게 맞냐? 여기가 맞냐? 저기가 맞냐? 집에서 예배드리는 게 맞냐?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게 맞냐? 서울에서 예배드리는 게 맞냐? 초가집에서 예배드리는 게 맞냐? 어디서 몇 시에 어떻게 예배드리는 게 맞냐. 구약은 예루살렘 성전 제단의 예법을 따라 무조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신약은 시골에서도 예배드릴 수 있다. 도시에도 예배드릴 수 있고 방 안에서 예배드릴 수도 있고 혼자 예배드릴 수도 있다. 목회자를 모시고 예배드릴 수도 있다. 목회자 없이 예배 드려도 된다. 신약은 어디서라도 또 언제라도 예배는 드릴 수는 있다. 또 누구라도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구약의 예배는 레위에 레위지파 제사장만 제사를 인도했습니다. 신약은 목사가 예배 인도할 수 있습니다. 교인도 예배인도 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 나와서 면허증을 가진 목사 아니고는 설교를 하면 큰일 난다 이게 장로교입니다. 장로교의 그게 약점입니다.

침례교라는 교단은 저 대전 저쪽에 많은데 침례교라는 교단은, 목사도 설교하고 교인도 설교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누구라도 설교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설교할 수 있습니다. 신풍교회 예배당에 우리 주일학생이 정말로 설교를 잘하고 늘 잘하고 계속 잘하면, 주일 학생 설교할 수 있고 저 밑에 내려가서 배워야 됩니다. 엘리 제사장이 나이 많다고 어린 사무엘을 무시하면 어떻게 됩니까? 큰일 나지. 구약은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 대한민국에서는 구약의 제사 못 지냅니다. 세계적으로 예루살렘 성전 한 군데서만 제사드릴 수 있습니다. 그 제사는 레위지파만 제사를 지낼 수 있습니다. 신약은 어디서라도 누구라도 예배 인도할 수 있다. 누구라도. 일제 36년이 지나가면서 일본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모든 교회가 태양신 앞에 절하면 놔두고, 태양신 앞에 절 못하면 전부 목사들 다 잡아가 버리고 나니까 여반 교인만 몇 명 남습니다. 예배를 드렸겠습니까? 안 드렸겠습니까? 쫓겨 가서 산속에서 사모님 하나 여반 교인 둘 셋 둘러 앉아 예배드리면, 목사도 없는데 그게 예배냐? 이러겠지. 그러면 그분들이 니들은 목사 자격증 가지고 일본 태양신 앞에 절하고 예배드리는 것도 예배냐? 이러겠지. 어느 것이 맞겠습니까?

목사 신학교 나와서 목사 면허증만 있으면 태양신 앞에 우상 절을 하고도 예배인도가 된다. 이게 장로교 헌법입니다. 문제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려다보니 목사들은 다 잡아가서 변절을 했든지 교도소에 들어갔던지 죽었든지 없어지고, 남반들은 평소에 억세다고 그러는데 환란이 일어나면 남반들은 먼저 도망갑니다. 성경에도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27장 마가복음 15장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그 많은 제자들 남자들인데, 그 많은 제자들 남성들인데 어디 갔는지 봐 보십시오. 예수님 십자가 마지막 딱 매달릴 때 남반들은 전부 다 도망가고 팔아먹고 그 짓 했습니다. 여반 몇 명 끝까지 따라 갔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여반이 신앙이 좋다. 말도 아닙니다. 남자면 무조건 억세니까 잘 믿는다 그 말도 못하는 겁니다. 남자든 여자든 앞서가신 주님 따라 십자가 끝까지 걸을 수 있으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천하가 뭐라든지 말든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또박또박 걸어갑니다. 걸어가다가 이번에 코로나로 세계를 휘 젓어 버렸지요? 75년 전에는 일본 제국주의 때문에 온 주변 나라가 다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이럴 때는 평소에 대표들이 남자니까 남자들 다 잡아가고, 여자도 대표되는 사람 표시 난 사람은 다 잡아가고 다 잡혀가고 남은 여반 몇 명, 서너 명 많아봐야 10명 여반들끼리 모였습니다. 6년을 여반들끼리 모여서 예배드렸습니다. 그 예배 아니라고 그러겠습니까? 양심으로 제정신 차리고 쳐다보면 함부로 그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구약은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 한 군데, 신약은 산골이든 지리산 꼭대기든 서울 도심이든 신풍 예배당이든 어디서든지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풍 예배당에 예배드려도 되는데 아이 10월에 좋은 날 우리 저 지리산 단풍 구경 가서, 단풍 구경하면서 거기서 예배 봅시다. 그러면 어디서라도 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그러니까 지리산 꼭대기 단풍놀이 하면서 예배를 드릴까. 그 예배냐 단풍놀이냐 이놈들아 그러실 거 아닙니까? 너 그거 예배라고 예배냐 단풍놀이냐 물어볼 거 아닙니까? 순천 매산 고등학교는 아마 기독교 학교일 건데 기독교 학교 동창회를 하면서, 평일에 하니까 불편해서 일요일에 저 지리산 어디 놀이터에 가서 순천 매산 기독교 학교 동창회 40회, 우리는 일요일 날 여기에서 예배드리고 지리산 뱀사골에서 우리 주일 오전예배를 봅니다. 그러면 너희들이 동창회 하는 거지 그게 예배냐 그러시겠지요. 신사참배 신풍 리에 신사참배 반대한 분은 한 분 교도소 가셨고, 그분의 신앙으로 모인 몇 명 밀려서 저 섬진강 넘어 지리산 시작 하는 데가 백운산입니다. 광양. 지리산 시작하는 지리산 백리길 시작이 백운산, 백운산 골자기 몇 명 여반 둘러앉아서 6년을 예배드렸는데, 목사도 없는데 그게 예배냐 그래서 모두 제명을 다 했습니다. 고 제명한 그 손을 하나님께서 천국에 올 때 그 제명한 손 떼고 오라고 그러겠습니까? 달고 오라고 그러겠습니까? 부활하면 이 몸은 부활하여 가지만은 이 손으로 못된 짓 못된 도장 한 그 힘 그 행위는 천국가지 못할 겁니다. 어떤 죄인도 부활하면 온전한 몸을 가지고 천국은 갑니다. 그런데 목사가 주먹으로 가지고 이 손으로 가지고 잘 믿는 사람 제명한다고 도장을 찍고, 도장을 찍고 도장을 찍다가 천국에 가면, 그 사람 손 가지고 천국 가서 할 일이 있겠습니까? 없을 겁니다.

이게 제사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보이는 제사라 싫던 좋든 예루살렘 한 군데서만 보고 신약은, 정말로 너 혼자 너 집에서 예배를 볼 상황이냐 정말로 하나님이 주신 현실이 그래서 너 집 안에서 예배를 정말 봐야 되느냐? 봐라 예배다. 우리교회는 1952년에 시작할 때 예배당 짓고 시작하지는 못했고, 예배당을 짓느라고 시간이 걸려서 사모님 사택에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혼자 사는 사모님이 아이들 몇 데리고 앉아서 예배를 드리니 옆에서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목사도 없고 전도사도 없고 남자도 없고. 사모님 혼자서 동네청년 아이들 몇 명. 김 종화 씨 다 아시나요? 김 종화 씨? 당 머리에 김 종화 씨? 또 저 여수 서 시장에 채소 도매하시는 박순혜 모친 아시나요? 그래 몇 명, 사모님 방 한 칸에 그래 몇 명 데리고 앉아서 사모님이 찬송 성경 신앙생활은 이런 거 하는 거다. 기도하고 이렇게 마쳤습니다. 목사가 없어 예배당이 아니랍니다. 넣어주지도 않고 기록에서 다 없애버렸습니다. 목사 있는 교회가 진짜지 그럽니다. 이런 것도 잘 역사도 알아야 되고 역사를 알아야 되는 것은 늘 믿으려다 보면 이런 일들이 앞으로도 벌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평안한 때 주시고 좋은 예배당 주시고, 별일 없이 이렇게 목회자와 교인들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을 때는 당연히 걸어와서 예배드리는 게 맞고, 어느 날 제가 선암사 중들한테 돈을 받고 신풍목사가 선암사 절이 용해서 아들도 낳아주고 출세도 시켜줍니다. 헛소리를 하는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계속하면, 계속하면 이 예배당의 이 강단은 이미 선암사 절이 되었고, 또 멋모르고 교인들이 다 줄줄 따라 댕기니 온 교인들 상대로 멱살 싸움 할 수는 없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기 집에 혼자 앉아 마음 맞는 사람 2명 3명이, 찬송 기도 설교 말씀 성경 말씀을 읽으며, 요한복음 4장 20절에 이산에서 예배드리는 게 맞습니까? 저 산에서 예배드리는 게 맞습니까? 이렇게 말할 때 구약은 장소를 정해줬고 레위인도 정해줬지만은, 신약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일날 예배를 드리자니 나 다니던 예배당에 자꾸 헛소리를 하는데 그 소리를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우리 집에 두 명 세 명 앉아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 학생이 인도를 해도 여반이 예배를 인도해도 이게 하나님의 인도고 옳고 바르면 이게 교회입니다. 이게 교회.

해방이 되고 나니까 세상도 친일파다 뭐다 막 싸움이 나서 난리였는데, 세상 얘기할 거 없이 해방 딱 되고 나니까 신사참배 했던 사람이 대부분이고 안 한 사람은 몇 명 안 되니까, 장로교는 전국총회를 모이면 국회처럼 모입니다. 모여가지고 손들어 51% 넘으면 무조건 통과입니다. 신사참배 했던 사람 유리한 대로 결정하겠습니까? 몇 명 반대하고 나온 사람들 좋도록 해주겠습니까? 해방되고도 신사참배한 사람들 다 제명해버렸습니다. 교만하다고 건방지다고. 해방 전에야 일본 사람 때문에 할 수 없이 죄를 지었지 않냐. 그래라도 생각하는데 해방된 조국의 세상도 아니라 기독교,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던 장로교총회 회의할 때마다 신사참배 한 죄인들이 전부 다 손 들어봅시다. 다수결로 통과를 다 시키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그거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회는 출발할 때부터 아예 다수결 안 합니다. 다수결 하면 돈이든 말든 51%만 내 편으로 잡으면 교회도 절로 바꿔버립니다. 세상은 이러나저러나 민주주의로 가야 되겠지마는 어떡합니까? 교회도 51% 좋으면 교회를 절 만들고 그럴까요? 교회는 옳으면 한 명이라도 하고 교회는 틀리면 100명이 다 좋아해도 안 되는 겁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다. 신령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은 인간 내 힘 다하여 하나님 앞에 우리 힘 다하여 두 개가 합해졌을 때만 예배입니다. 이럴 때 주님이 뭘 원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알게 될 때 그대로 해버리면 그게 예배를 드린 겁니다. 그게 주일을 지킨 겁니다. 그게 한 주 간의 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배란 찬양대가 순서하고 발표하고 사회를 하고 누가 하고, 이래서 좀 신학을 제대로 한 교회는 예배 순서가 30개가 됩니다. 절차 30개를 다 안 밟으면 예배 론이라는 신학의 학문에서 예배 아니다. 이렇게 정죄를 해버립니다. 그게 바로 천주교입니다. 천주교 미사가 그렇습니다. 천주교 틀렸다고 나온 500년 전에 칼빈주의 기독교의 본론은 찬송 기도 말씀 새시면 예배로서는 충분하다. 찬송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원하는지를 살펴, 주님이 이런 걸 원하는구나. 이걸 전하고 이걸 깨달았으면, 깨달았으면 이미 하나님 앞에 예배는 드린 게 된다. 이제 깨달았으면 그대로 행하기만 행하면 전부 복이 되어 지는 거다. 이걸 예배라고 그럽니다.

옛날로 올라가면 이런 말이 다 통했고 이런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엉뚱한 데로 발전하듯이, 교회도 발전을 한다면서 희한하게 이게 뒤엉켜가지고 오만 일이 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든 말든 하나님 앞에 감사, 이게 뭐라고요? 찬송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구, 이게 뭐라고요? 그게 기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네가 이렇게 해! 그거는 중 염불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이걸 원했습니다. 그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족합니다. 도와주옵소서. 이게 기도입니다. 이게 기도. 말씀을 듣고 깨닫고 보니 이걸 몰랐습니다. 이걸 해야 되는데 힘이 없습니다. 이게 제가 신앙이 없어 걱정입니다. 도와주옵소서. 이게 기도입니다. 또 말씀 속에 이렇게 구원이 좋은 거구나 감사할 때는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찬송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 살펴보니, 예배는 하나님만 혼자 계시고 우리는 눈치를 보며 잘 듣고 잘 배우고 알아차렸으면, 이제 그대로 살면 이게 한 주간 세상의 생활 전부가 알고 보면 예배생활이어야 이게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되어 집니다. 예배를 더 조심 더 조심 발전시킨다고 천주교식 미사가 돼 버려도 탈이고, 예배를 인간들 흥미롭게 인기 좋게 유행을 따라 마구 그냥 뒤죽박죽 만들어 놓으면, 예배가 방종방탕이 돼가지고 쓰레기가 돼버립니다. 예배를 인간 지 멋대로 개판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예배를 조심조심하다가 천주교 미사를 만들어도 안 되고, 조심은 하되 주님이 뭘 원하시느냐 여기에 모든 초점을 맞춰, 아 예배란 내 생각대로 하는 게 아니구나. 이번 한 주간은 요거 하나만 잘 마음속에 넣고 살아도 충분한 말씀이고 충분한 찬송과 기도가 되어 집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광고)
광고 하나 드리겠습니다. 잠깐 앉으시고 광고 따로 하나 드립니다. 우리 교회 개척이 1952년입니다. 정확하게 만 70년입니다. 다른 교회들 같으면 플래카드 붙이고 행사를 많이 할 건데 광고도 안 해서 알아듣는 분들도 별로 없을 겁니다. 뭐든지 보이는 행사를 안 하기 때문에 그렇지 잊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오전에는 불신가정 아이들 오전만 오는 분들 예배 시간이 길어서 광고를 안했는데, 오후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은 적어도 신풍교회 중심 교인들이라 알고는 계셔야 됩니다. 만 70년이고 1952년에 출발하게 된 이유가 오늘이 9월 25일 이번 수요일이 9월 28일이 손 양원 목사님 순교일입니다. 9월 28일 날 손 목사님 순교하자 딱 돌아가시자 그 순간부터, 교회를 이제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리자 안 된다 해가지고 장례 기간에 벌써 싸움이 붙어버렸습니다. 모르는 분들은 장례 보름간 함께 울었다더라. 손 목사님 신앙대로 지금까지 간다더라. 그러는데 모르는 소리고 손 목사님 계실 때는 말 한마디도 못하다가 딱 돌아가시니까 교회방향을 180도로 바꾸기 운동이 벌어져 버렸습니다. 겉으로는 장례식이고 속으로는 손 목사님 믿은 방향이 맞다 사모님 혼자 그러고, 나머지는 눈치 보고 그리고 애양원의 운영권을 가진 선교 부는 이제 180도로 바꾼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고 2년간 소리 없이 그러다가 애양원에서 나와서 출발한 것은 1952년인데, 순교 때부터 벌써 내막으로는 그리 된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버리면 애양원이나 주변교회에 미안해서 그냥 잘 안합니다. 표시도 안 하고 그런데 교회 출발의 역사는 알고 계셔야 되고, 이 모든 이야기들을 전부 책으로 묶어서 오 귀례 집사님 딸 차 경희 교수님이 지금 한 몇 년째 자료준비를 하고, 그 책으로 신풍의 교회 100년사를 곧 발표를 할 겁니다. 원래 신풍에 애양원도 없고 아무 교회도 없을 때 1924년 지금부터 99년 전에 차 선생님 부친이 부친 형제간이, 차 진환 부부 차 진환 형제간이 구암의 집에서 처음 출발했습니다. 신풍의 모든 교회는 1924년이 출발이고 애양원은 광주에서 쫓겨나서 뒤에 온 겁니다. 뒤에 왔는데 등치가 크다. 보니까 뭐 형님 노릇을 자꾸 하는데 좀 곤란한 일입니다. 애양원이 광주에서 오기 전에 신풍마을의 교회가 먼저 있었고 그 교회의 출발이 차 선생님 가정입니다. 그게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손 양원 목사님 오시고 나서 손 목사님께 배우느라고 교회가 합해졌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제자리로 돌아온 겁니다. 이 정도는 기억하시고 신풍교인은 9월 28일 신풍 말고는 손 양원 기념 순교 기념일이라고 뭐, 한국교회가 그냥 생일잔치 한다고 정신도 없습니다. 전부 헛다리짚고 엉뚱한 짓 하고 있고 우리는 표시를 내지 않지만은 9월 28일 기억은 꼭 하셔야 됩니다.

(기도)
날 중에 귀한 복된 날 주일마저 흐려지고, 시간 중에 가장 생명의 시간 복된 예배 자체가 흐려지고 희미해지고 없어지는 시대에, 부족한 우리들을 이 시대에 두셨으나 우리가 부족하므로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좋은 길을 앞선 선지 사도들을 통해, 귀하고 복되게 출발시켜 주변과 세상이 어떻게 되어 지든 주일을 주일답게 예배를 예배답게, 하나님 앞에 부족해도 있는 정성 다하여 하루하루 믿고 걸어갈 수 있는 교인들로 오전에 이어 오후예배도 참석케 하시고, 저녁예배 새벽예배까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예배를 지켜나가며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때, 늘 우리를 위해 앞서 수고한 분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저희들이 되어, 앞선 수고가 뒤따르는 우리를 볼 때 보람이 있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도록, 또 하나님 직접 주시는 은혜에 넘치도록 남녀노소 모든 교인들 주변과 세상에 상관없이 끝까지 복된 길 걸어가도록 늘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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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
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9.25주전    요4:20-25        예배 – 신령과 진정              총공신풍

■ 예배
1. 단어
  (엎드려) 섬김                            서비스 제사 스튜디어스 종
2. 내용
  ① 위치 : (하나)님 앞에 > 신인관계        현대: 손님 앞에, 여자 앞에
  ② 준비 : (정성) 다하여 > 지극정성        고대: 부모 앞에, 임금 앞에
  ③ 자세 : 자기를 (굽혀) > 자기부인        신앙: 하늘 앞에, 귀신 앞에
  ④ 섬김 : (시키)는 대로 > 지사충성        자기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3. 구약과 신약
  ① 구약 : (모습)이 앞에 가고                        내용이 뒤 따르고
          예루살렘 (성전), 레위인만 (제사), 하나의 법
          (천주)교, (외식) 교회 > 죽은 신앙 > 석고 무덤
  ② 신약 : (내용)이 앞에 가고                        모습이 뒤 따르고
          어디라도 (교회), 누구라도 (예배), 각자 (형편)
          기독교, 실제 (교회) > (생명) 신앙, 잘못 되면 (방종)    방탕

■ 신령한 예배          구약: 모습 통해 시작, 신약: 모습으로 나타나고
1. 하나님 앞에
  구약 : (모습)에 최선을 다하고
  신약 : (마음)에 최선을 다하고
2. 하나님 은혜
  구약 : (보이)는 복을 받고
  신약 : (신령)한 복을 받고
3. 하나님의 뜻
  구약 : 규칙을 지키다 보면 (깨달)아 지고
  신약 : 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달고 실행

4. 깨닫는 방법
  구약 :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림으로
  신약 : 말씀을 통해 성령의 (감동)으로
5. 각오와 변화
  구약 : 눈에 보이는 (모습)을 통해
  신약 : 지성의 (이해), 의지의 (각오), 성령의 (변화)

■ 진정의 예배
1. 마음 다하고
  통제 : 흩어 진 (마음)을 모으고
  소망 : 주님의 (은혜)에 집중하고
2. 몸 다하고
  수종 : 마음 (다할) 수 있도록
  외부 : 남을 (방해)하지 않도록

■ 아버지께서 찾는 예배
1. 구약
  바른 (제사)가 거의 없고
  외식 (전시)로 하다 멸망
2. 신약
  바른 (예배)가 거의 없고
  방종 (방탕)으로 다 멸망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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