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22.9.25 요4:24 예배는 하나님 앞이니 인간적 취향을 버리고 두려운 자세로 그 뜻을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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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2.9.25 요4:24 예배는 하나님 앞이니 인간적 취향을 버리고 두려운 자세로 그 뜻을 찾는 것

서기 0 86 09.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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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0925 주전

제목 : 예배는 하나님 앞이니 인간적 취향을 버리고 두려운 자세로 그 뜻을 찾는 것

사회: 김희락
찬송: 5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62장(내 주의 도 첨 받은 날) / 139장(십자가로 가까이)

본문 : 요한복음 4장 24절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한줌 흙에 불과한 이 존재를 영원불변의 하나님의 목적의 대상으로 삼아,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자라가도록 오늘도 귀하고 복된 주의 날을 저희에게 다시 허락하사, 자라가게 하시고 길러가게 하시고 고쳐가게 하신 이 은혜를 감사드리나이다. 주님의 모든 계명과 말씀은 우리를 복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존귀케 하시려고 주신 것인데, 참된 주일과 예배가 상실된 이 시대에 저희에게 옳은 길을 보여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니, 한 걸음 한 걸음 실행하며 그 실행이 끝까지 이어지며, 범하기 쉬운 자기중심의 악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 중심의 선으로만 걸어갈 수 있는 그러한 저희가 되어, 복을 받기까지 주님 이 시간 진리와 영감과 피와 진리와 영감의 은혜로 더하여 주시며, 각 사람의 마음 마음을 열어 주사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우신 주의 강단 영육의 강건함으로 붙드시며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하여 주옵소서. 주일 학생으로부터 노년의 종까지 곳곳에 두신 우리 교인들, 마음을 모으고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에 실시간의 은혜에도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한 달간 주일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주일의 핵심은 예배입니다. 오늘부터 신앙의 기본인데 기본이 없어져버리는 이런 세상에 발전도 발전이지만은, 우리 서있는 터 우리 신앙의 기본이 뭔가 주일에 이어 예배를 살펴봅니다. 여기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이라고 한 것은 사람의 영과 같은 영이다 그 말은 아닙니다. 영으로 된 존재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영이 있고 천사도 영입니다. 천사도 영이고 사람의 영도 영이지만은 하나님을 영이라 할 때에 그 영은, 하나님은 무형의 완전자기 때문에 육이라 영이라 이런 피조물로 가지고 비교를 못합니다. 비교를 할 수 없어 그냥 눈에 보이는 거 손에 잡히는 거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 정도로만 영이라고 한 겁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오늘 살펴볼 일은 예배가 뭔가. 신령과 진정이 뭔가. 세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예배드리는 집을 예배당이라고 그럽니다. 그냥 상식입니다. 현재 우리 예배드리는 이 건물은 교회가 아니고 예배당이라고 그럽니다. 예배당과 교회는 다릅니다. 그런데 예배당과 교회를 섞어 쓰다보니까 그냥 합해서 쓰는 거지, 믿는 사람은 예배를 드리는 집은 예배당이고 예배드리는 사람 믿는 사람 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예배당 아닙니다. 교회라고 그럽니다.

시장을 여수시청의 시장을 두 가지로 쓰는데 당선돼서 5년 시장하는 사람도 시장입니다. 그 사람이 앉은 자리를 시장이라 그럽니다. 이 단어를 혼돈을 하는 바람에 불신자들 세상 살아가는 것도 그렇게 복잡하고 엉뚱한 일들을 합니다. 예배당과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모신 교인들 하나님을 모신 한 교인일 때는 개인교회입니다. 부부가 하나님을 모신 가정이 되면 가정교회라고 그럽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함께 정한장소 정한시간에 모일 때 우리는 신풍교회입니다. 신풍교회는 이 집을 부수고 새로 지어도 됩니다. 또 삼거리에 있던 예배당을 이렇게 옮겨왔습니다. 70년 전 지금 활주로 가운데 처음으로 돌집을 지은 것은 교회가 아니고 예배당입니다. 학서 예배당. 그다음 52년 전에 공항이 들어 와가지고 그 돌집을 뜯어가지고 그대로 삼거리에 세웠습니다. 교회를 옮긴 것이 아니라 예배당을 옮겼습니다. 교회는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7년 전에 예배당이 좁아서 이쪽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예배당은 이렇게 세 번을 옮겼습니다. 교회는 내나 그 교회입니다. 저도 교회와 예배당을 섞어 쓸 때가 있습니다. 모두들 혼돈을 하니까 말 가지고 따지자면 한도 없어서 교회 예배당을 섞어 쓰기도 하지만은 구별은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여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예배란 하나님께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모신 예배만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는 한 잔 먹고 뛰고 굴리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요즘 애들은 막 빠른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건 노래방에 가면 됩니다. 어른 앞에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데, 경찰조사 받으러 가가지고 횡설수설하면 큰일 납니다. 다 잡혀갑니다. 별 것 아닌 경찰 앞에도 말조심을 하는데 재판 받을 때 판사한테 토시 한 개 잘못 나가면 그대로 집니다. 판사 앞에도 조심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그냥 젊은 애들은 이럽니다. 나 많은 사람은 타령을 합니다. 예배 아닙니다. 그 예배를 짓밟아버린 겁니다. 오래 전에 우리 신풍에 왔다 가신 그 하나님의 종 귀한 분이, 예배당에서 회관처럼 예배 말고 다른 짓을 하다니! 야단을 쳐놔가지고 신풍에서는 예배당에서는 예배만 드린다. 상식이 돼 있는데 신풍을 조금 떠나면, 예배당이 연극장인가 예배당이 노래방인가 예배당이 세상 뭔 뭘 하는 데인지 모를 만큼 그리 돼 있습니다. 그 교회 아니고 예배당 아닙니다. 천 번 만 번을 말해도 학교는 배우는데 입니다. 학교가 놀면 놀이터가 되는 겁니다. 여자는 여자고 남자는 남자입니다. 억울하든 말든 예배당은 예배드리는 집입니다. 그 ‘당’자가 당자가 집 당자입니다. 집 당자 예배 보는 목적으로 지어놓은 집입니다. 그래서 예배당에서 예배 끝나고 회의할 때는 어떡해야 예배를 잘 드릴 것인가 그 회의만 하는 겁니다. 우리교회 20대 청년들은 축구차러 어디 갈까? 그건 예배당 밖에서 회의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노인들은 노인당에 모여서 떡을 돌릴까 뭘 돌릴까? 예배와 상관없는 회의를 하고 말을 하면 예배당 밖에 저 대문에서 하든지 마당에 하든지 다른 데서 해야 됩니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 앞입니다. 절 다니는 사람들이 4월 초파일 대웅전 앞에서 삼겹살을 지져대면 그건 불도인도 아니고 그건 인간도 아닌 겁니다. 그건 싸움하러 간 깡패들이지. 불교인들이 집에서는 다 불고기 해 먹을 겁니다. 1년 12달 불고기를 해 먹다가 4월 초파일 석가 생일날 절에 갈 때는, 절 대문 안에 대웅전에 4월 초파일 염불할 때는 거기서는 고기 잡고 고기 먹는 것이 아닙니다. 큰일 나는 겁니다. 요새는 신식이라 되는데? 되면 불교를 치워 버려라. 뭔 케케묵은 소리 하냐 그건 불교를 갖다가 없애고 그러시면 됩니다. 불교의 절에 4월 초파일에 대웅전에 염불 할 때는 고기는 안 먹는 겁니다. 이런 걸 가지고 따지고 싸우면 그건 순 깡패고 왈패고 그건 막가는 그건 몹쓸 인간입니다. 예배당은 예배 본다고 지어놓고 왜 예배 외에 다른 일을 합니까? 식당이 한 식당이면 한식을 팔아야 되고 중국 식당이면 중국 식사를 대접하는 거고, 간판은 중국집이고 안에는 양식이고 식당은 레스토랑이고 안에 들어가니까 한식당이고, 그건 수준 낮은 사기꾼들 잡범들 하는 일입니다. 믿는 사람은 모든 시간 모든 날을 7일로 딱 끊어서 주일과 주일 지난 6일이 있다. 한 달간 살펴봤습니다. 주일은 무슨 날이냐 주님의 날 하나님의 날입니다. 내 마음대로 손 못 댑니다. 그다음 주일이 주일인 것은 주일 안에 예배시간이 있어 주일이 주일입니다. 임금님이 사시면 그 집이 작은 집이라도 궁궐이라 그럽니다. 궁궐보다 더 큰 집을 지어도 집 대문에다 대고 궁궐이라 붙이면 역적으로 처형을 해버립니다. 돈이 많고 집이 많고 적고를 떠나 임금이 있으면 대궐입니다. 그것처럼 날 중에 귀한 날이 주일입니다. 주일날이 귀하고 귀한 것은 주일의 예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배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은 애들 좋아한다고 어린이 성경 따로 만들고, 애들 좋아한다고 율동 예배당 안에서 연극하고 율동하고 그런 거 못합니다. 그건 유치원에 가서 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예배는 요즘 시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느려빠진 옛날 타령 식 유행가가 아니라, 토끼처럼 다람쥐처럼 톡톡 뛰는 이런 노래를 좋아하니까 교회의 찬송도 그런 식으로 비틀어서 만들자. 그건 예배당 밖에 가서 하시면 됩니다. 예배당 밖에 가서 술을 하시든 마약을 하시던 노래방을 하시든 뒤로 구르던 앞으로 구르던, 대한민국 예배당에 드럼 갖다 놓고 저 악기 그렇게 갖다 놓은 역사가 없습니다. 그냥 맨몸으로 찬송하는 것보다 드럼으로 북으로 드럼으로 막 두드려대니까 신이 나더라. 그건 노래방에 가서 하는 겁니다. 드럼 없는 교회 거의 없을걸요. 그 드럼 한 세트에 몇 백만 원씩 합니다. 시골 예배당에 나 많은 이들 밖에 없는데 그 뭐 하려고 드럼을 갖다 놨습니까? 어느 교회 어느 교회 어느 교회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안 다녀봐서. 있으면 문제가 있는 교회입니다. 그럼 드럼 없으면 좋은 교회인가? 좋은지 안 좋은지는 들어봐야 됩니다마는 교회는 예배로 모이는 예배당이고 예배당은 예배만 드리는 곳입니다. 예배드리는 데 필요한 회의도 하고 예배드리는데 필요한 일은 합니다. 예배 외에는 못 합니다.

예배는 뭐가 예배인가? 교인들이 모여서 신나면 되지 않느냐. 예배는 하나님 앞에 섭니다. 하나님 좋아하는 거, 하나님 좋아하는 거 하나님 원하는 거. 예배의 내용은 크게 찬송 기도 그리고 말씀 세 가지로 나눕니다. 머리 몸 팔다리 셋을 합하면 인간의 몸입니다. 머리 떼 놔버리면 인간이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송장이라 그러지. 차는 엔진도 있고 바퀴도 있어야 차입니다. 엔진만 있으면 발동기입니다. 바퀴는 있고 엔진이 없으면 리어카입니다. 엔진도 있고 바퀴도 있고 두 개가 합해야 차가 되는 겁니다. 예배라는 것은 찬송, 기도, 말씀 셋을 모으면 예배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찬송은 유행가 하고 틀리고 클래식 음악하고 틀리고, 학교 노래하고 틀리고. 그건 나 좋게 나 기분 좋게 날 위해서 부르는 겁니다. 또 다른 사람 위해서 부르는 겁니다. 모든 노래는 인간 좋게 인간 위해서 만든 거고 찬송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게 찬송입니다. 현재 우리 가지고 있는 찬송이 과거 새 찬송 600곡을 줄여 200곡만 추려놓은 겁니다. 이거 100년 전에 만든 겁니다. 100년 전에 선교사들 100년 전에 믿은 사람들은, 영어는 모르고 공부는 안 했어도 하나님이라 그러면 떨고 조심을 했습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을 좀 아는 분입니다. 요즘 하나님 알기를 갖다 우습게 하는 세상 아닙니까? 그리되면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의 세 가지 찬송 기도 말씀 첫 번째가 찬송입니다.

이런 찬송을 불러야 요즘 애들이 좋아합니다. 아예 그거는 아닙니다. 찬송을 요렇게 해야 요즘 청년들이 교회를 옵니다.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맞추지 사람한테 맞추는 게 아닙니다. 사람한테 맞추려면 예배당 밖에서 실컷 하시면 됩니다. 그 다음 기도라는 거, 하나님 앞에 내 형편이 왜 이렇습니까? 물어보고 하나님 앞에 내가 이래 부족하니 도와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듣는 게 기도입니다. 내 속에 쌓인 울분을 풀어놓고 화풀이 하는 것 기도 아닙니다. 공부는 안 했고 애는 못 됐지만은 어쨌든 이게 좋은 대학을 가야 좋지 않겠냐. 우리 아이 대학 보내달라고 자꾸 얼러대고 불러대고 반복하는 거 그거는 절에 있는 중들도 염불할 때 그리 합니다. 기도는 나를 만들고 내 형편을 만든 하나님 아버지 제 형편이 왜 이렇습니까? 모르니 알려주옵소서.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제가 부족하니 도와주옵소서. 이게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구하는 게 기도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찬송이고, 그다음 예배의 세 번째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해 놨으니 나는 어떻게 믿어야 되는가. 이게 예배 안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학생들만 예배는 세 가지 첫째는 뭐라고요? 찬송이 있고 두 번째는 기도가 있고 세 번째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도 찬송도 말씀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상대하는 겁니다.

찬송은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여쭤보고 하나님께 배우는 겁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답니다. 하나님이. 목사 말고 장로님 말고 교인 말고 하나님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찬송과 기도와 말씀 셋을 합하면 예배인데 예배는 전부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라는 단어의 ‘옛’자가 절하는 ‘옛’자입니다. ‘배’자도 절하는 ‘배’자입니다. 예배란 엎드려, 예배란 엎드려 누구 앞에 엎드리지요? 목사 앞에 엎드리는 것 아니고 장로님 앞에 엎드리는 것 아니고 교인 앞에 연보 많이 해달라고 목사가 빌고 엎드린 것도 아니고,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겁니다. 구약은 몸을 엎드려서 엎드렸고 신약은 몸을 엎드리지 않아도 마음을 엎드리고 자세를 엎드리는 것이 예배의 ‘예’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기 위해서 잘 듣기 위해서 이렇게 어깨를 펴고 저도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도 말씀을 받지만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자세는 말씀 앞에 미안해서 죄송해서, 내 인격과 내 마음이 자꾸 숙여져야 됩니다. 어떤 말씀이라도 그 말씀 앞에 부족하지 않은 목사가 있겠습니까? 신앙이 있고 훌륭해질수록 말씀 앞에 더 죄송한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잘 듣기 위해서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서로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배우지만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자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강단 앞에 나와서 뛰고 굴리고 기타를 치고 드럼을 치고 막 그냥 요들방정을 해서 온 예배당 안이 들썩들썩하니까, 아이쿠 은혜를 받았다 그러는데 그 은혜는 술 한 잔 먹고 밤무대에 가면 더 은혜로울 겁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팝송가수 하나 우리나라 오면 몇 백만 명이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몇 십만 명이 모여서 밟혀 죽고, 악을 쓰고 옷을 벗고 온통 그냥 막 난리가 납니다. 그거 은혜입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좋다는 사람의 잔치입니다. 예배 아닙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적어도 우리 예배당처럼 예배당 안에서는 예배만 진행하는 겁니다. 아마 저 없어지면 우리교회도 1년 안에 3년 안에 예배당 안에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막 난리가 날 겁니다. 아마. 말 잘하는 사람 똑똑한 사람 시내를 아는 사람 어디든지 가면 말 한 자리하고 휘젓는 사람들이, 이렇고 저렇고 이래서 케케묵은 사람 죽어버렸으니 이제 우리 예배당도 시내교회처럼 발전을 하자. 그건 발전이 아니라 망하는 겁니다. 천년이든 만 년이든 주님 오실 때까지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경찰 앞에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큰일 날까 싶어 슬슬 기는데, 대통령 된 사람 대통령 될 사람 경찰 앞에 하나만 잘못 잡혔다 하면, 대통령이 날아가기 때문에 했던 말도 안 했다 그러고 안 한 말도 했다 그러고 다 슬슬 오천만이 조심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대로 이 말하고 저 말하고 아닙니다. 찬송 중에 어느 찬송이 신이 나냐 어느 찬송이 유행이냐 어느 찬송이 요즘 모두 좋아해서 뜨냐? 인간의 여론 인간의 조화는 흥분대로 인간들 하자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가려면 그건 유행갑니다. 유행가. 찬송과 유행가는 다릅니다.

절에 가서 불고기 지져먹으면 절에 가서 싸움하러 가는 왈패고 그건 깡패지 그건 전도도 아니고 그거는 불도인도 아닙니다. 절에 중들이 저래서 고기 먹다 들켜서 신문에 나오는 경우 많지요? 막 가는 사람들입니다. 예배당 안에서 예배 말고 다른 짓 하면 그건 막가는 겁니다. 뭐하나 교회라고 딱 찍기는 싫고 대한민국에 제일 유명하고 제일 잘 믿는다는 교회 예배당 1층 본당에서, 아니 뭔 세상행사를 그렇게 많이 합니까? 그건 뭐 우리 편이든 남의 편이든 그 예배당을 갖다가 마구 짓밟는 겁니다. 안 그러는 데가 없어 기가 막혀 드리는 상식의 말씀입니다. 신풍교회 70년 전에 세우던 분이 천하가 다 거지돼도 이 예배당 안에서는 예배만 보는 거다, 라고 부탁하고 목숨 걸고 세워서 그분 감사하고 그분 때문에 지금까지 예배만 드려왔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리고 지금 예배 보는 세대가 다 돌아가시고 주님 오실 날이 남아서 2세 3세 100년 몇 백 년을 가도, 신풍교회는 예배당에서 예배만 드리는 예배당이었다. 이거 하나 지켜낸다면 그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나라 몇 손꼽는 예배당 될 겁니다. 굉장히 중요하고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말씀 드렸습니다. 80년 지나면 여기 20대 이상은 다 돌아가시겠지요? 80년 지나면 여기 다섯 살 열 살 아이들도 더러 있는데 이 아이들이 그때 들은 말 한마디 때문에, 신풍 예배당에서는 예배만 드리고 예배 외에 다른 거 할 일이 있으면, 땅 사서 집 지어서 침실도 하고 식당도 하고 놀이방도 하고 유치원도 하고 교회이름으로는 못합니다. 교회이름으로는 교회이름 걸고는 예배당에 예배만 드립니다. 그리고 그 예배 때문에 꼭 필요한 것만 합니다. 나머지는 교회 밖에서 마음껏 하시면 됩니다.

예배는 찬송과 기도와 말씀 세 가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찬송은 유행을 안탑니다. 유행타면 유행가입니다. 기도는 유행을 안탑니다. 기도는 부자기도 가난한 자의기도 다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왜 내 형편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께 물어보고 그리고 하나님이 마음속에 감동해 주시면 그렇습니까? 부족하니 도와주옵소서. 이런 식으로 오고 가는 것이 이게 기도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성경에 미리 적어주셨으니 하나님이 2천 년 전에 이렇다고 적어주셨으니 이걸 읽으면서, 아 하나님은 이러시구나. 오늘도 요한복음 4장 24절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스스로 가르쳐 나는 영이다. 인간이 아니다. 피조물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해라. 신령과 진정이 예배지 신령과 진정 아닌 거는 예배가 아니구나. 누가 뭐라 해도 딱 떼버리는 겁니다. 신령이라는 말은 영적이다. 그 말입니다. 영적인데 왜 앞에 ‘신’자를 붙였느냐? 하나님은 영이시니 이걸 두 글자로 줄이면 신령이라고 그럽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떼버리고 하나님을 무시해 버리면 그때부터는 예배가 아닙니다. 차에서 엔진을 떼버리면 뭐가 된다고요? 리어카 밖에 안 됩니다. 아무리 비싼 벤츠 차라도 엔진 떼버리면 그건 리어카 밖에 안 됩니다. 엔진 빠진 차라니요. 차가 아닙니다. 신령이라는 말은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거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조심하면 이제 예배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건 돈도 필요 없습니다. 오래 믿었던 오늘 처음 나왔던 잘 믿든 못 믿든 상관없이, 그래도 주일이고 예배시간이니 하나님 앞이니까 요 마음이 딱 들어오면 이거는 예배가 될 수 있고 이거는 예배의 시작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인데.

세 살짜리는 할아버지 앞에 까붑니다. 우리는 그걸 건방지다 그리 말하지 않습니다. 세 살이니까. 서른 살 40살 되는 것이 할아버지 턱을 툭툭 치면 예쁘다 그러지 않고, 그놈 어디 가서 저런 짓을 배웠을까. 말했다가는 요즘 칼이 오고 주먹이 오니까 말은 못해도 속으로 30살 40살이 할아버지 턱을 턱턱 친다. 세 살짜리가 할아버지 턱을 톡톡 치니까 모두들 예쁘다 하니까 서른 살도 할아버지 턱을 턱턱 치면 그 놈은 나쁜 놈입니다. 제 나이가 3살이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를 잘 모르고 예배를 잘 모르는 사람은 예배당에 슬리퍼를 끌고 올 수도 있고 예배당에 기타 들고 들어올 수도 있고, 예배당에 술 한 잔 걸치고 오셔도 괜찮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교회는 뭐 하는 건고 구경하러 오면 우리야 반갑습니다. 그 뭐 와서 한번 보십시오. 이랬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반바지 입고 슬리퍼 끌고 기타들고 와서 여기에서 그냥 유행가 한번 척 부르고 이 소리 저 소리 하면, 그건 하나님이 얼마나 괘씸하게 생각하실까, 구약의 성전 안에 제사장이 행동 하나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육체를 죽여 버렸습니다.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라 예배당에서 술집을 하던 노래방을 하던 뭘 하든 뭘 하든 하나님은 모른 척하고 그냥 내버려둡니다. 그건 인간도 아니니까. 자기들끼리 뭐 목사니 예배니 교회니 그래 쌌는데 하나님이 볼 때는 그게 교회야? 예배야 그게? 이리 보입니다.

예배의 ‘예’자는 몸을 굽히는 몸을 굽히는 ‘예’자에 몸을 굽히는 ‘배’자입니다. 예배가 그런 뜻입니다. 눈에 보이는데다 되고 몸을 숙이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볼 수 없습니다. 만질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굽히고 무엇을 조아리라는 말이냐? 마음과 자세를. 하나님이 보이기만 보인다면 야 그 앞에 절을 해버리면 되는데, 볼 수 없는 하나님이라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머리를 숙이고 몸을 숙이고 절을 합니다. 죽은 사람은 안 됩니다. 죽은 사람 앞에 고개와 몸을 숙이면 귀신대접을 하는 겁니다. 그게 우상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신사참배니 뭐니 그런 난리가 벌어졌고, 살아있는 나의 몸은 살아있는 사람 앞에는 인사할 수 있고 인사 받을 수 있고 절을 할 수 있지만은, 돌 앞에는 금 앞에는 별 해 다 앞에서는 고개를 못 숙인다. 그렇게 버틴 사람이 이 나라에 몇 명 없었습니다. 일본의 귀신 이름을 천조대신이라 그럽니다. 그 천조대신이 하늘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태양이 아무리 비싸고 아무리 소중하지만은 태양한테다 대고 절은 못합니다. 태양은 만물이고 우리는 만물의 주인, 어른입니다. 인간끼리는 반갑다고 절할 수 있고 아랫사람이 윗사람한테 엎드려 절할 수 있고 엎드려 절할 때 또 어른이 아이에게 절 받아줄 수 있고, 살아있는 사람들끼리는 몸을 숙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만물이라도 금으로 만든 금동상이라 100억짜리라도 몸을 숙이지는 못합니다. 그 몸 숙이면 불교인입니다. 믿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끼리만 머리와 몸을 숙여 절을 합니다. 그것은 예절이라고 그러지 예배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예배라는 단어의 ‘예’자와 예배라는 단어의 ‘배’자가 들어가면 하나님 앞에 그 다음 엎드림 숙이는 걸 말합니다. 몸을 숙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자세를 숙이는 게 맞습니다. 교인도 이렇게 200여 명 모이면 공석이니까 서는 사람이 조심하는 게 예절이 됩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우리가 함께 드립니다. 그래서 목사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제일 조심하고 마음과 자세를 제일 조심하고, 제 마음과 제 자세가 하나님 앞이라 예배시간에 제일 조심하면 그거 괜찮은 겁니다. 그래서 공회교회는 예배시간에 강단에 올라오면 목사도 무릎 꿇고 사회하는 분도 무릎 꿇고 발이 아프면 저도 의자에 앉습니다마는, 발만 안 아프면 강단 위에서는 무릎 꿇고 앉습니다. 못났기 때문에. 만약에 여기에 초등학생만 200명이 있고 제가 주일학교 목회자라면 애들 200명 앉힌 자리에서는 무릎 꿇을 것이 없지 않겠냐? 예배가 하나님 앞이지 사람 앞이 아니기 때문에 한 명 앞이든 10명 앞이든 예배는 하나님 앞이고, 하나님 앞일 때는 무릎을 꿇어도 아프지 않으면 무릎 꿇고 앉은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무릎이 아파서 예배를 드릴 때 자꾸 몸을 뒤척거리면, 예배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편한 자세로 앉으시라 하지만은, 몸과 마음과 자세를 조심하는 게 예배의 기본입니다.

한 살짜리 두 살짜리는 할아버지 수염을 당겨도 할아버지가 웃습니다. 임금님이 할아버지인데 임금님의 손주 두 살짜리가 임금님 수염을 잡아당기면 모두가 예쁘다고 그럽니다. 20살짜리가 임금님 수염을 잡아당기면 그 손목이 아마 날아갈 겁니다. 교회를 처음 나오는 분은 교회와 예배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술 한 잔 거치고 올 수도 있고, 맨발로 올 수도 있고 마음대로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신앙이 3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자기가 신앙으로 어느 정도 좀 자랐다고 생각하면, 자기의 신앙의 정도에 따라 알아서 조심은 좀 하는 게 맞습니다. 친구 집에 가도 한 번 조심을 하는데 예배당 오는 것쯤이야 이리 되면 곤란한 겁니다. 친구 집 갈 때 친구 부모님 만날 때만큼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는 가져야 됩니다. 이런 것은 상식에 속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20년 하고 40년 하고 50년을 하고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교회가 자기 안방 같아져서 편한 마음이 들어서 그만 목회자와 사택과 장로님 같은 분들처럼, 예배당을 많이 오고 가는 분은 교회 들어오면서 그냥 주머니에 손 놓고 예배당에 올라와가지고, 그때 목사님 예배시간에 기도하는 걸 봤는데 이 손을 폼에 놓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세계 몇 째 손가락 꼽는 교회인데. 한 60이 넘은 위대한 목사님이 이렇게 기도 합니다. 또 주머니에 손 넣고 단추 풀고. 네가 청와대가 불러서 대통령 앞에 가면 단추를 잠굴 걸? 대통령 앞에 가면 목사가 단추 잠그고 정장 입고 교인들 앞에서는 우와기 벗어버리고 설치고 댕기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 하나님이 너희 대통령보다는 좀 못한 가본데 못 갈구어서 비켜 놔줍니다. 하나님이 교회와 예배에서 비켜 놔주면 그건 교회가 아니고 예배당이 아니게 됩니다.

예배를 배우는 한 주간 예배의 ‘예’자는 하나님 앞에 몸을 숙이는 겁니다. 예배의 ‘배’자는 하나님 앞에 몸을 숙이는 겁니다. 한 자가 그렇습니다. 숙일 ‘예’ 숙일 ‘배’자입니다. 몸을 숙이는 것은 절 믿는 사람이 돌부처밖에 모르고 금부처밖에 모르니까 그 앞에 가서 이제 숙이니까 그거는 미신이고, 믿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들끼리만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 그 외에는 몸 숙일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라 그러냐. 인격을 숙이고 마음을 숙이고 자세를 숙여라. 요엘 2장 13절 회개할 때 옷을 찢는데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예레미야 4장 4절 육체의 살갗을 잘라버린 것이 할례인데 구약에 정말 할례는 마음을 베어버려라. 구약에도 벌써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살을 찢지 말고 네 마음을 베어내라 이렇게까지 벌써 말씀을 다 하셨습니다. 항상 교회와 예배와 신앙이라는 것은 좀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이 말씀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지금 안 믿는 부모 밑에 주일 학생들도 여기에 함께 앉아 있는데, 이런 아이들이야 여기 앉아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나게 고생하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고 남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교회와 예배를 우습게 히죽히죽 밟고 댕겨버리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나처럼 이렇게 저려 밟고 가는 거다. 이리되어 집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양복보다 그냥 티셔츠 입는 게 낫고 청바지 입는 게 더 편하지만은, 주일날 예배 강단에 청바지를 입는 것이 죄가 되어서 안 입는 게 아닙니다. 청바지 입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청바지 입으면 교인은 잠옷 바람에 오겠지. 그럼 만약 애들은 팬티 바람에 오겠지. 그러면 히피들은 옷 벗고 예배당에 오겠지. 그런데 신약이라 쥐 박지를 못하니 그냥 교회에 앞선 사람들이 조심하면서 그걸 보면서 따라 하면 좋은 거고, 못 따라 하면 할 수 없는 거고 그렇습니다.

2009년에 미국에 출장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교회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교회가 미국의 요즘 새들백 교회라고 있는데 일부러 그 교회를 가봤습니다. 목사님 예배당 들어오면서 성경 없습니다. 찬송 없습니다. 바지는 청바지인데 청바지는 일부러 떨어진 거 입고 옵니다. 그래야 멋있으니까. 위에는 티셔츠 하나 입고 이게 세계 제일 잘 나가는 교회다 이래서 교인들이 수도 없이 모이니까, 그것 본받아서 우리나라 잘 나가는 교회들 전부 따라 한다고 정신이 없는데, 잘 나가는 교회들은 그렇게 잘 나가시고 못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좀 조심해야 됩니다. 하나님보다 잘났으니 하나님 앞에 우습게 알 거 아닙니까? 하나님보다 잘난 사람들은 예배와 교회를 우습게 알고, 하나님 앞에는 못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만은 조금 조심을 하고, 100년 전에 교회는 전부가 하나님 앞에서는 조심을 했는데, 세상에 돈이 많아지고 교회마다 건물이 좋아지고 박사가 많아지고 지성인들이 많아지고 나니까, 하나님 알기를 우습게 알아가지고 하나님은 쫓겨 돌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아마. 못난 신풍 예배당에나 와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못난 자를 찾아오시지 잘난 자한테는 하나님은 찾아가지를 않습니다. 건강한 자는 의원이 필요 없다. 병든 자라야 필요하다. 병원에 환자 말하는 거 아닙니다. 인격에 병이 들고 신앙에 병이 들고 못나고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아니면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이 모일 때 교회고 그 시간이 예배시간입니다. 그래서 다른 데는 모르겠고 교회와 예배 앞에서는 항상 자기를 좀 숙이시고 그다음 예배의 두 번째는 섬기는 겁니다.

예배를 영어로 바꾸면 서비스라고 그럽니다. 서비스 다 들어보셨지요? 학생들 컴퓨터 하는 사람은 서버라는 말 다 아시지요? 서버 서비스라는 말이 예배라는 뜻입니다. 그게. 비행기 안 타보신 분 요즘 거의 없지요? 비행기 타면 대한민국에 제일 예쁜 여자들 제일 똑똑한 여자들 제일 잘난 여자들 영어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100대 1 시험 치고 비행기 안을 돌아다니면서 막 고분고분 물 갖다 주고 뭐 갖다 주고 정신도 없이 서비스를 합니다. 그 서비스하는 비행기 안에 여자들을 스튜어디스라고 그럽니다. 그 스튜어디스라는 말 남자는 스튜어트라고 그러는데 그 말 그 말 그 말들이 전부 다 섬긴다 말입니다. 돈 주는 손님 앞에도 설설 기는데 서빙 한다. 서브 한다 그러지요? 서빙 한다. 서비스 한다. 돈 한 푼 벌려고 손님 앞에도 설설 기고 우리한테 오면 더 잘해줍니다 이러는데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섬기는 게 예배입니다. 예배. 예배도 영어로 서버(server)다. 월십(worship)이다. 이러면 또 알아주고 좀 조심하고 얘는 또 뭐 가르치는 가보다 이러고, 그냥 알아듣기 쉽게 예배를 예배라 그러니까 이건 케케 구식이구나. 이리 생각하는데. 35년 전에 신풍 오기 전에 제가 부산에서 대학교 영어 가르친 사람입니다. 영어 몰라서 영어 안 쓰는 거 아닙니다. 우리말로만 해도 차고 넘치는데 뭐 하려고 또 교회에서 예배 오는데 영어를 왜 씁니까? 원어는 왜 씁니까? 목사 지도 원어를 모르면서. 대한민국 목사와 대한민국 신학자는 원어를 모릅니다. 모르게 돼 있습니다. 괜히 무식한 것들이 아는 척 하는 거지. 대한민국에 영어를 제대로 한 사람 미국에 다 이민 가서 도망갔지 여기에 앉아 있지 않습니다. 남보다 조금 더 한다고 괜히 한 마디씩 쓰는 문자지.

요한복음 4장 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보이는 물체로 보이는 미신으로 보이는 우상으로 하나님을 상대하지 말아라. 예배하는 자는 예배란 하나님께 드리는 게 예배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왜 예배냐 하나님 앞이니 하나님 앞에는 숙이는 게 좋습니다. 잘난 자도 예배당에 와서는 좀 숙여야 됩니다. 못난 자는 못났으니 세상에서도 기고 살았는데 예배당에 와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좀 숙여야 됩니다. 말을 잘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함부로 말하면 큰일 납니다 한 마디 한마디 전부 하나님이 뒷조사합니다. 부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조심해야 됩니다. 옛날 시골에 잘사는 사람들은 동네 가면 마님이 되어 놓으니까 예배당에 와서도 교인들을 여종 부리듯이 머슴 부리듯이 그러는데 큰일 나는 겁니다. 큰일 나는 겁니다. 예배당 밖에 가서는 사장은 사장대로 권력자는 권력대로 다 써먹어도, 예배당에 와서는 왕이든 부자든 지식인이든 목사든 교회연보를 제일 많이 한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인격을 숙이고 자세를 숙이고 조심조심하는 겁니다. 왜 조심하느냐.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게 스튜어디스들의 기본입니다. 비행기 타서 누구든지 조금 불편하면 그 예쁜 사람들이 마구 쫓아와서 뭐가 필요합니까? 어쩌십니까? 아프십니까? 어떻게 해 드리겠습니까? 다 잘난 집의 잘난 딸들이고 최고의 대학에 성적 제일 좋은 사람들입니다. 근데 비행기를 탈 때는 손님들 앞에 설설 기기로 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돈도 많이 벌지만은 뭐가 불편하십니까? 어떻게 해드립니까? 이렇게 설설 기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난장이라 그렇고 뭔 곱사라 그렇고 그 사람들이 못나 그런 게 아닙니다. 예배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드려야 되겠습니까? 세상이 이 일은 엉망이니 너희들은 좀 깨끗하게 살아라! 알겠습니다. 못 먹고 살아도 깨끗하게 살겠습니다. 이게 예배입니다.

이번 주일은 명절이라 전부 다 고향 간다고 예배당 다 비어버린다. 다 그래도 너희들은 주일은 주일이니까 그러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이번 명절은 천 없어도 예배는 예배로 드리겠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게 예배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두고 우리가 스스로 살펴보면 당연히 부족한 게 많은 겁니다. 하나님 앞에 부족함이 없다고 어깨 펴고 뻣뻣한 거 기본적으로 그건 안 되는 겁니다. 이런 말은 백 년 전에는 할 것도 없이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그 높고 높은 신위에 귀신 위에 미신 위에 하나님이 계신단다. 그러고 왔기 때문에 백 년 전에 전도를 하면 예배당을 안 오면 안 오지 예배당 오는 사람들은 전부 다 조심을 했습니다. 지금은 예배당을 오래 댕긴 사람들이 예배를 지근지근 짓밟고 예배는 노래방이다. 예배는 연극하는 데다. 예배는 오페라 하는 데다. 예배는 바자회 하는 데다. 예배는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지식 선전하는 데다. 예배에는 코미디하는 데다. 별의 별짓을 다 해 버려놓으니 교회를 처음 오는 사람들부터 이 예배당은 무슨 이벤트가 있냐? 이것부터 따지고 생난리입니다. 이렇게까지 되어 진 세상에 남들 욕할 것 없고 남들 비교할 것 없고, 우리만은 예배는 예배고 예배가 싫으면 예배당은 안 나오지, 일단 예배당을 왔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 고? 마음과 자세를 좀 조심하고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걸 원한다고 그러면 알겠습니다. 부족해도 그렇게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예배의 가장 쉬운데 예배의 가장 중요한데 예배를 가장 없애버린 시대에 가장 필요한 말씀이다. 이 한 말씀으로 요약을 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겉으로 벌벌 떠는 식 그런 식 말고 마음속으로 자세로 인격으로 생각으로 조심하며 하나님 앞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기도)
사람 살기 좋아진 만큼,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급속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좋은 세상 만들어진 것이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이며 하나님이 주신 기회며 선물인 줄 깨달아, 사람 살기 좋고 나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 질수록 더욱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조심하며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이아침의 저희들이 되어 모든 날 중에 주일을 생명으로 모든 시간 중에 예배시간을 제일 귀한 시간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의 모든 부족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와 간구와 하나님의 뜻을 찾아 예배가 바로 되므로 주일이 바로 되고, 예배와 주일이 바로 되므로 한 주간이 바로 되고 매 한 주간이 바로 되므로 이 땅위에 살아생전이 바로 되고, 살아생전 바로 되는 그런 낱낱의 모든 순간이 그와 관계된 영원한 하늘의 영광으로 펼쳐지는 광대한 세계를, 깨닫게 하시고 깨닫지를 못해도 주일과 예배를 조심하며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고 사는 한 주간 되도록, 모든 교인들 가정마다 마음마다 함께 해주옵소서. 큰 수술 후 회복을 기도하는 가정에 특별하신 은혜로 함께 하시고, 알고 모르는 모든 염려 기쁜 일 슬픈 일 어려운 일 늘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해결 받고 복되게 나가는 저들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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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
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9.25주전    요4:20-25        예배 – 신령과 진정              총공신풍

■ 예배
1. 단어
  (엎드려) 섬김                            서비스 제사 스튜디어스 종
2. 내용
  ① 위치 : (하나)님 앞에 > 신인관계        현대: 손님 앞에, 여자 앞에
  ② 준비 : (정성) 다하여 > 지극정성        고대: 부모 앞에, 임금 앞에
  ③ 자세 : 자기를 (굽혀) > 자기부인        신앙: 하늘 앞에, 귀신 앞에
  ④ 섬김 : (시키)는 대로 > 지사충성        자기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3. 구약과 신약
  ① 구약 : (모습)이 앞에 가고                        내용이 뒤 따르고
          예루살렘 (성전), 레위인만 (제사), 하나의 법
          (천주)교, (외식) 교회 > 죽은 신앙 > 석고 무덤
  ② 신약 : (내용)이 앞에 가고                        모습이 뒤 따르고
          어디라도 (교회), 누구라도 (예배), 각자 (형편)
          기독교, 실제 (교회) > (생명) 신앙, 잘못 되면 (방종)    방탕

■ 신령한 예배          구약: 모습 통해 시작, 신약: 모습으로 나타나고
1. 하나님 앞에
  구약 : (모습)에 최선을 다하고
  신약 : (마음)에 최선을 다하고
2. 하나님 은혜
  구약 : (보이)는 복을 받고
  신약 : (신령)한 복을 받고
3. 하나님의 뜻
  구약 : 규칙을 지키다 보면 (깨달)아 지고
  신약 : 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달고 실행

4. 깨닫는 방법
  구약 :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림으로
  신약 : 말씀을 통해 성령의 (감동)으로
5. 각오와 변화
  구약 : 눈에 보이는 (모습)을 통해
  신약 : 지성의 (이해), 의지의 (각오), 성령의 (변화)

■ 진정의 예배
1. 마음 다하고
  통제 : 흩어 진 (마음)을 모으고
  소망 : 주님의 (은혜)에 집중하고 
2. 몸 다하고
  수종 : 마음 (다할) 수 있도록
  외부 : 남을 (방해)하지 않도록

■ 아버지께서 찾는 예배
1. 구약
  바른 (제사)가 거의 없고
  외식 (전시)로 하다 멸망
2. 신약
  바른 (예배)가 거의 없고
  방종 (방탕)으로 다 멸망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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