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9.23 고전16:1 주님 은혜를, 연보로 받아, 주님처럼 다른 사람 신앙을 위해, 대표를 통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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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2.9.23 고전16:1 주님 은혜를, 연보로 받아, 주님처럼 다른 사람 신앙을 위해, 대표를 통해 사용

서기 0 116 2022.09.2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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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3 금밤

제목 : 주님 은혜를, 연보로 받아, 주님처럼 다른 사람 신앙을 위해, 대표를 통해 사용

찬송 : 137장(내 평생소원 이것 뿐)

본문 : 고린도 전서 16장 1절 -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피 흘려 우리 죄를 사하시고 영원히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사, 두고 갈 땅의 생명이 아니라 중생의 생명 부활의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고 영원한 소망을 주셨으니, 이 밤도 두고 갈 땅의 것 인간에 속한 것 다 벗어놓고 말씀을 따라가는 사죄의 길, 주의 뜻을 찾아가는 칭의의 순종 주님모신 동행의 생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마음속에 가진 소망의 저희들로 예배의 말씀도 찬송도 기도에도 인도하시고 주님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어지러울수록 단일의 진리의 말씀에 애착하는 저들 되게 하시고, 어두울수록 밝은 빛 하나를 끝까지 붙드는 저들 되게 하시고, 어려움 올 때마다 주의십자가 생각하므로 담대하며 감사하게, 각자 주님을 향한 이 밤의 교인들 되고 앞날의 교인들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예배당으로 오고 가는 모든 발걸음 늘 지켜주시고 주신 형편 인하여, 곳곳에서 말씀으로 동행하는 우리 모든 교인들 심령심령 동일한 은혜로 함께해 주시되, 군무에 두신 아들들 입원 치료 요양 재활 또는 해외에 있는 우리 교인들까지 두루 돌아 주님이 보살펴주옵소서. 이 밤도 함께 하시고 특별히 7계명으로 어두워진 세상에 적절하게 결혼하고 주시는 아이 잘 길러, 세상이 따라올 수 없는 하늘을 향한 가정들 이루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이 밤도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한 달째 주일에 대한 말씀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일 공부 끝나고 나면 이번 주일부터는 예배에 대하여 그 다음 성경읽기에 대하여, 그 다음 기도에 대하여 그 다음 전도심방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에는 물질생활 연보에 대하여, 신앙의 가장 기본 되는 거 손꼽아가며 공부할 겁니다. 오늘은 연보에 대한 것이 아니고 주일에 대한 겁니다. 지난 며칠간 사도행전 20장 7절 안식 후 첫날 주일에 떡을 떼는 성찬의 예배가 있었더라. 주님 오신 뒤, 주님의 부활 뒤부터는 토요일이 아니라 주일날 예배로 모여 주님 날 위해서 죽었다. 주님 날 위해서 부활했다. 늘 기억함으로 주일을 지내고 한 주간을 지내며 죽는 날까지 늘 주님 날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다. 이게 예배며 이걸 기억하는 것이 말씀이며 이걸 감사하는 것이 찬송이며, 이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였습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16장 2절로 본문을 바꿨습니다. “매 주일 첫날에” 달력에 보면 일월화수목금 토 7일을 일요일로 시작하는, 그 첫날 매 주일 한 주간의 첫날이 주일입니다. “매 주일 첫날에” 한 주간 두 주간 할 때 ‘주’자는 한 바퀴를 돌아가는 주간을 말합니다. 주위 뺑 돌아가는 주위, 일주일 돌아가면 또 다시 돌아오고 그 ‘주’자입니다. 계시록 1장 10절에 주의 날의 주자는 주인 주님 ‘주’자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의 매 주일은 한 주간 두 주간의 ‘주’자인데 이 ‘주’자는 ‘한 바퀴 돌 주’자입니다. ‘주님 주’자가 아닙니다. 7일로 한 바퀴씩 돌아가는데 7일로 한 바퀴씩 돌아가는 첫날이 일요일이며 이 날이 주님의 날입니다.

“매주일 첫날에 떡을 떼러 모였더라” 밥 먹으러 주일날. 식사대접을 하더라 그 말이 아니고 주님 날 위하여 죽었으니 나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 내용을 가지고 힘을 삼으라 신앙의 양식을 삼아, 마치 밥을 먹으면 힘이 나고 밥을 먹으면 활동을 하는 것처럼, 주님과 주의 고난을 생각하면 신앙에 힘을 얻고 신앙으로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이 되니, 주님의 고난이 우리의 신앙의 양식이다. 그 떡을 떼라 그 양식을 먹으라 그 말입니다. 교회에서 점심 먹으라 말이 아니고. 교회에서 점심 먹으라는 말이 아니라 말은 식사 말라는 말이 아니라, 그건 오전오후 예배 때문에 그냥 밥 먹는 것이고 신앙의 힘 신앙의 양식은, 예배 때 기도 속에 예배 때 찬송 속에 예배 때 말씀 속에, 주님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으니 그렇다면 나를 꺾어야 되겠구나. 주님 날 위해 고난을 당하셨으니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구나. 주님 나를 위하여 이 말씀을 주셨으니 이 말씀으로 실행을 해야 되겠구나. 신앙의 실행 신앙의 힘을 주는 그 원동력이 주님의 고난이다. 이게 성찬이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고난을 당했으니 순서적으로 이걸 알고 이걸 깨닫고 나면, 너도 뭔가 해야지 너는 뭘 할 건가? 네가 할 일 주님처럼 네가 수고할 일이 뭔가? 주님처럼 목숨을 바치면 생명을 연보하는 것이고 주님이 죽을 기회도 안 주는데 죽으면 살인입니다. 그건 안 되고 주님이 죽을 기회는 주지 않으나 평생을 주를 위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자기의 생애 평생시간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면 순교 연보, 목숨은 바치지 못해도 시간이라는 평생을 바치면 시간 연보, 돈만 연보가 아닙니다. 또 이렇게 바쁜데 주님 생각하여 집에서 예배드려도 되지만 아직까지는 교회 와서 앉는 것이 더 낫겠다. 힘든 몸을 끌어다가 예배당에 갖다 놓으면 이것도 노력의 연보가 되어 집니다. 생명의 연보 시간의 연보 수고의 연보, 남이 듣기 싫은 소리 하는데 주님 때문에 참았다면 참는 그 성격도 주님께 바친 거니까 연보, 하도 사람들의 수준이 낮고 그러니까 돈만 연보인 줄 아는데, 돈이 연보의 전부인 줄 알면 수준이 좀 문제가 있습니다.

가난할 때야 돈만 주면 다 효자지. 지금은 10만 원 용돈 주면서 부모한테 욕을 하면 국가에서 한 달에 주는 돈이 얼만데? 요즘 노인네들 다 돈이 얼만데? 예전 같으면 10만 원 용돈 주면 엎드려 절이라도 하지만 요즘 같으면 그냥 집어 던져 버리겠지. 가난할 때는 먹여주면 무조건 고마운 겁니다. 세끼 밥을 먹으면 먹는 것도 중요하나 성의를 보는 겁니다. 정성을 보는 거고 마음씨를 보는 거고. 참 저것이 고마운 마음으로 그래도 나름대로 그러는구나! 이걸 받는 겁니다. 정성이라는 것은 그 사람 수준에 따라 손에 든 걸 보면 압니다. 재벌회장님이 사과 한 개 들고 주님 앞에 벌벌 떨면서 정성입니다 그러면, 그 정성 되겠습니까? 어린 아이의 정성, 없는 사람의 정성, 10원짜리도 하나님이 정성이다 봐줄 수 있습니다. 재벌같이 돈이 지걱지걱 해서 명품을 챙기는 사람은 정성의 수준도 좀 올라가야 마음이 있을 겁니다. 액수는 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날 위해서 다 바쳤습니다. 이제 순서는 내가 순서입니다. 없으면 못 바칩니다. 없으면 바칠 수 없지만은 있는데도 딱 거머쥐고 못 바친다. 그러면 네 건 너 해라 주님의 추가적인 은혜는 금지가 됩니다. 그게 자유입니다. 알아서 주님을 모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모시든 중간으로 모시던 저 밑에 걸레처럼 모시던 그 본인이 결정하면 됩니다. 주일은 주의 날입니다. 주일은 주님이 다 바쳐 나에게 주시는 날입니다. 주님을 다 내게 주면서 받아 가지라는 날이 주일입니다. 그 주님을 받아가지고 나는 뭘 드려야 주님께 정성이 될까? 추운데 배고픈데 펄펄 끓는 곰국을 갖다가 그냥 한 냄비를 주겠다고 오라는데 손으로 받겠습니까? 앞치마에 받겠습니까? 종이컵에 받겠습니까? 주시는 것이 펄펄 끓는 곰국이면 뭐 못나도 냄비를 가져가든 바가지를 가져가야 되겠지요. 또 이게 좋게 받으려면 좀 씻어서 가져가셔야 되겠지요. 못 먹고 굶어 죽는 사람에게 펄펄 끓는 곰국을 끓여 놓고 받아 가거라. 퍼가거라 공짜로 퍼가거라. 손바닥으로 퍼가든 앞치마에 적셔가던 신발에 떠가던 돼지 구시 주는 박재기로 떠가던, 아니면 자기 집에 있는 것 중에서는 큰 걸로 깨끗하게 씻어 오던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이게 우리가 해야 될 주일의 정성입니다.

옷이 없어 떨어진 옷 입고 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하지 않습니다. 거지나사로는 옷도 없었습니다. 개가 와서 핥고 앉았는데 머리 감았겠습니까 상관 안 합니다. 스위치 누르면 뭐 뜨신 물 찬물이 펄펄 끓는데, 다른 데 갈 때는 하루에 두 번 아침저녁으로 씻고 닦고, 예배당 갈 때는 뭐 빗 빗을거나 있나 그러고 오면, 그 하나님께서 그거는 정성이 아니다 그리 보실 겁니다. 아니 머리 안 비었다고 정성으로 안 봅니까? 네가 거지 나사로냐 너는 홍포 입은 부자 아니냐. 홍포 입은 부자가 거지 나사로처럼 오는 거는 그거는 주님을 멸시하는 거지.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가져갈 신앙이 거의 없는 겁니다. 부자는 어디 들어가지 못한다고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주님이 못을 딱 박아놨으면 너 부자냐 네 천국은 없다. 주님이 피 흘려 구원했기 때문에 주님의 자녀라 천국 문에는 들어갑니다. 그런데 손에는 들고 갈 것 없습니다. 부자는 그 돈 그 시간 가지고 세상 쓰고 돌아다녔으니까. 돈 있는데 쓰지 안 쓸 리가 있습니까? 머릿속에 든 게 있는데 써먹고 돌아 댕기지 안 써먹을 리가 있습니까? 옷이 좋은데 옷 자랑하러 시내 돌아 댕기지 좋은 옷 입고 예배당 올 리가 있겠습니까? 옷 부자냐 인물 부자냐 학식 부자냐 재산 부자냐. 뭐든지 많이 가진 자는 틀림없이 그거 들고 세상 다녔지 천국에 쓸 리는 없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다 한때 한 번씩 집안들이 다 잘 살았던 적이 계시지요? 나라가 작다 보니까 변동이 많아서 3대 안에 부자 아닌 집은 우리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3대 초 보면 3대 정도에는 한 번씩은 다 잘 살았습니다. 한 때는. 그래서 어느 가정이든지 똑같은 겁니다.

잘 나갈 때는 다 건방졌고 하나님 앞에 매 맞기 좋을 만큼 살았을 겁니다. 그러니 그 부자가 오래 가지를 않는 겁니다. 부자가 지나치게 교만했지 주변을 쥐 박았지 예배당까지 와가지고 부자 짓을 해놨으니, 하나님께서 바짝 깨 버린 겁니다. 하나님이 깬 거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 그릇을 깨버린 겁니다. 청년들 건강과 청년의 미모를 하나님이 탁 깨도록 만들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거 반질반질해가지고 시내로 자꾸 돌아 댕기면 뒤끝이 별로 좋지를 않습니다. 머리 좋은 분들 좋은 머리가지고 머리 없는 사람 도울 연구 안하고, 좋은 머리가지고 주변에 자기 머리만 못한 사람 요리 빼먹고 조리 빼먹고 계속 그러면 위에서 지켜보시다가, 그 인간 머리 눈 밝은 괭이 돌아 댕기다가 다친다고 딱 그래 만듭니다. 젊을 때 주먹 있다고 약한 사람 툭툭 쥐 받고 살면, 그 주먹이 뒷날에 좋지 못하고 자녀들의 뒷날이 좋지를 못합니다. 뭐든지 있으면 벌벌 떨어야 됩니다. 조심조심 이거 잘못 쓰면 큰일 나니까. 잘 쓰면 복인데 잘못 쓰면 큰일 나니까. 다이너마이트라는 거는 작은 막대기인데 다이너마이트는 바위 안에 넣고 터져버리면, 천 명 만 명이 달려들 걸 순간에 다 깨버립니다. 그래서 보배입니다. 근데 이거 밥 먹다가 잘못 터지면 식당 하나 다 날아갑니다. 복음이 그런 겁니다. 또 뭐든지 이 땅위에 좋은 거는 다 그렇습니다. 좋은 직장도 선물이며 위험물이고 좋은 가정도 선물이며 위험물이고, 돈도 그렇고 인물도 그렇고 말재주도 그렇고 모든 거는 다 양면을 함께 주신 겁니다.

부자는 절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절대 진리입니다. 뭐 있는 돈 다 연보하라는 말이냐 그게 아니고, 천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이거는 주님의 것이라 주님께 물어보고 쓰면 부자가 아닙니다. 주님께 여쭤보면 쬐끔은 널 위해서 쓰고 또 다른 사람 신앙에 도움 되도록 써라. 시간도 건강도 돈도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예 주님은 하나님인데 이 땅위에 오셔서 주님의 모든 것 전부를 날 위해서 다 주시면서,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주님의 것을 다 주시면서 너는 나처럼 남만을 위해서 다 쓸 수는 없고, 너를 위해 이만큼 쓰고 네 식구를 위해서 이만큼 썩어라 이렇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남을 위해서 많이 쓸 것이 있는 사람도 있고 날 위해서 써도 빠듯한 사람도 있고 다 다릅니다. 주일은 주님이 날 위해서 전부를 다 주신 날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주일은 날 위해 주시는 걸 다 받는 날입니다. 날 위해서 다 주시는 것을 받으려면 어떤 그릇을 가지고 가야 주는 걸 받겠느냐. 굶은 사람에게 보약을 펄펄 끓여 탕약을 주는데 곰국을 주는데 앞치마에 받아오시겠습니까? 손바닥에 받아오시겠습니까? 젓가락에 찍어 오겠습니까? 자기내면을 들여다보시고 냄비 있으면 냄비를 잘 닦아가지고 오시고, 큰 국그릇이 있으면 국그릇을 잘 닦아 오시고 어쨌든지 있는 대로 가져오시면 됩니다. 그러면 다 채워주십니다. 말 통이 있는 사람은 말 통에 채워주시고 예배당만큼 이렇게 큰 용량이 있는 분은 다 닦아 오시면 거기에다 담아주시고, 숟가락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은 숟가락 하나만 닦아 와도 그만큼은 가져갑니다. 근데 더러운 걸 내놓으면 안 주십니다. 주의은혜 더럽힌다고. 그래서 주일은 정성과 성의를 다 하시는 겁니다. 정성과 성의를 어떻게 다하느냐 고린도전서 16장입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하나씩 차분하게 살펴봅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연보는 누구 위해서 쓰는 거라고요? 본문 봐 주시지요.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연보는 뭐 하는 게 연보라고요? 성도, 교인 위해서 쓰는 겁니다. 하나님이 가져가는 거 아닙니다. 연보 하나님이 가져간다고 하나님 앞에 내놔라 그러면 종교 사기꾼 됩니다. 하나님은 완전 자라 우리가 아무리 바쳐도 못 가져가십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어야 우리의 충성으로 덕을 보는데, 주님은 하나님이시라 완전 자라 천하의 모든 교인이 다 모금해서 드려도 받아 가지를 않으십니다. 연보는 성도를 위하는 겁니다. 교인 위해서 쓰는 겁니다. 앞으로 교인이 될 사람을 위해서 쓰든 교인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위해서 쓰든, 어떻게 쓰든지 교인을 위해서 쓰는 게 연보입니다. 아예 연보에 대해서 사고방식 바꾸셔야 됩니다. 근데 교인들끼리 쓰는 게 연보니까 회비 모으자 그거보다는, 하나님께 바치자 이래야 이제 연보하는 데는 모금운동에 도움은 되겠지. 공무원들이 뒤로는 돈 다 떼먹으면서 앞으로는 국가를 위해서 바칩시다. 이래야 이제 IMF에 뭐 금반지도 빼고 다이아 반지도 빼고 그러겠지. 그래서 뉴스에 막 부추겨가지고 실컷 가져 가가지고 어느 인간 입에 들어갔는지 그 입이 밉습니다. 인간은 미워할 수 없으나 IMF 핑계 대고 온 국민의 금반지 다 걷어다가 어느 입에 들어갔는지 그 입이 밉습니다. 안 와도 되는 IMF를 만들어 가지고 굿판을 만든 그 인간 그 꾀, 한마디 더 들어가면 문제가 될 거고 다 누군지 아시지요? 어느 인간한테 당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인생 바치는 사람 평생 바치는 사람 번 돈 바치는 사람, 예배당에 연보 제대로 쓰이는지 뒷조사해 보면 90%는 헛일 하고 있을걸요. 90%는 엉뚱한 데 쓰고 있을 겁니다. 정신 차리는 사람은 어떻게 번 돈인데 저 도둑 입에다 대고 집어넣어? 이거 깨달은 분들은 다른 교회를 다녀도 연보는 신풍에 맡깁니다.

신풍교인이 연보한 것보다 신풍교회 밖에서 들어온 연보로 초기에 운영비가 훨씬 많았습니다. 평생을 믿어보고 자기교회 연보를 해보고 자기교회의 회계를 해보고, 자기교회 돈 쓰는 구석구석을 보니 이 부자교회에 내 돈을 이렇게 죄짓는 데 다니는데 또 내가 연보를 해? 교회는 다른 교회 다니면서 연보는 신풍에다 대고 꼬박꼬박 평생을 했던 분들 많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그런 분들 때문에 돈 한 푼을 쉽게 쓰지를 못하는 겁니다. 조사를 하면 조사나 그냥 잘 받으면 되지만은 조사도 안 하고 맡기니, 조사를 하는 것보다 양심에 더 철저하게 쓰는 겁니다. 연보는 다 같이 어디에 쓰는 거라고요? 성도를 위하는 연보입니다. 교인 위해서 쓰는 겁니다. 목사도 교인입니다. 오늘 처음 온 분도 교인입니다. 또 주변에 교회는 안 다녀도 이분들도 교인이 돼야 되기 때문에 이분들 교인 만드는데 쓰는 것도 교인을 위한 겁니다. 일단 그렇게만 아시고. 성도를 위하는 연보다. 그러면 예배당 팔아서 나눠 먹으면 되겠네? IMF 첫해에 예배당 팔아서 교인들한테 나눠준 목사도 있습니다. 예배당 팔아서 교인들에게 다 뿜빠이 해서 나눠주니까 막 신문에 이런 좋은 목사가 있다. 그 목사 앞에 주님이 계셨으면 주님 은행에 저당 잡혀 돈 나눠 먹은 인간입니다. 예배당 팔아서 현금으로 나눠주고 그 돈을 예배당보다 더 잘 썼는지 뒤에 책임을 져야 됩니다. 신풍교회 돈으로 나눠서 한 집에 몇 천만 원씩 나눠 놓으면 죄를 더 많이 지을까? 그 돈 가지고 예배당 오는 것보다 신앙에 더 복되게 쓸까? 함부로 그렇게 못 하는 겁니다.

어쨌든 연보는 교인을 위해서 쓰는 건데, 그냥 교인 그러면 함부로 손을 대기 때문에 여기 성도라고 그런 겁니다. 교인의 신앙을 위하여, 교인이 정말로 신앙에 필요할 때 정말로 필요할 때, 예배당 지붕은 있어야 예배드리겠지요. 배워야 아는 거니까 그래서 예배당 지붕에 건축비가 들어가고 유지비가 들어가는 겁니다. 예배당 지붕이 공중에 떠 있습니까? 그래서 예배당 벽에 건축비가 들어간 겁니다. 바닥없이 예배당 벽과 지붕이 떠 있습니까? 그래서 바닥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바닥을 남의 논에 지어서 되겠습니까? 그래서 땅 산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의자와 모든 걸 갖춰 놓은 겁니다. 이렇게 딱 갖춰 놓은 걸 볼 때 그 교회 예배당 참 아껴서 실무적으로 구질구질하게 거지처럼도 아니고, 건물에다 대고 돈을 마구 허비도 아니고 딱 알맞게 적당하게 했구나. 그러면 좋은 예배당입니다. 이게 좋은 예배당입니다. 비싸게 지은 예배당이 좋은 게 아니고. 건축 미학적으로 예술로 아름답게 지은 것이 좋은 예배당이 아닙니다. 이런 거는 한번 딱 들으면 박혀서 죽는 날까지 이런 것은 흔들리지 마셔야 됩니다. 다른 교회 말고 신풍에 신풍교인들이 신풍 예배당을 지은 것은, 더 아낄 수 있는데 건물에다 대고 공연히 과실을 한 것이 있는가. 그런 거는 실수입니다. 또 돈 아낀다고 예배 볼 때 창문이 들썩거리고 문짝이 들썩거리고 비가 새서 예배드리면서 자꾸 시선이 이렇게 문제가 됐는가. 그 또 돈을 잘못 쓴 겁니다. 이런 것은 스스로 비교하고 판단해보는 겁니다.

교인의 신앙을 위하여 쓰는 것이 연보다. 주님은 당신을 다 바쳤습니다. 우리는 주의 은혜로 주의은혜로 주의은혜 받은 주일날, 주의 은혜 받은 걸 계산해 볼 때 이만큼은 다른 사람 신앙을 위해서 써야 되겠다. 시간도 노력도 무엇도, 무엇도 모으는 것이 연보입니다. 1번 연보는 교인의 신앙을 위해서만 쓰는 거다. 두 번째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는 고린도교회에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게 갈라디아 교회들에게도 내가 이렇게 명령을 했다. 고린도교회도 갈라디아교회도 똑같은 명령을 한 걸 보니까 연보에 관한 말씀은 어느 교회나 똑같습니다. 연보는 교인의 성도 교인의 신앙을 위해서 씁니다. 1번. 어떤 교회 어떤 연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보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넘어가기 전에 3번 세 번째로 넘어가기 전에 내가 갈라디아 교회입니까? 교회들입니까? 갈라디아 교회들입니다. 한 지방에 교회는 하나밖에 없어야 된다. 그분들은 성경을 창세기로 계시록처럼 우리까지 우리처럼 또박또박 읽지를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경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한테 성경 몇 독 읽었냐 물어보면, 속독을 해서 많이 읽었던지 아니면 옛날에 많이 읽었던지 그렇지.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또박또박 읽지를 않기 때문에 교리고 뭐고 엉망진창이 되는 겁니다. 읽고 싶은 것만 읽는 겁니다. 성경 안에 읽고 싶은 것만 읽으면 성경이 아니라 자기 속에 주관만 커집니다. 성경 그대로 읽으면 갈라디아교회들 복수입니다. 한 지방에 교회가 여러 개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도 하나 상식으로 알아놓으시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갈라디아 교회에도 똑같은 명령을 했다. 연보는 교인의 신앙을 위한 거다 두 번째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다 두 번째 그다음 2절입니다. 매주일 첫날에 주일날 연보는 모읍니다. 일 년 열두 달 해도 됩니다. 적어도 주일은 연보를 하는 겁니다. 10원이라도. 10원이 없고 어떨 때는 1원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이 몸을 예배당에 가져오는 것도 이것도 적은연보 아닙니다. 부자가 10만 원 들고 정성 없이 와가지고 10만 원 돈은 던지고 몸은 정성 없이 앉았다 갈 수 있습니다. 10만원 연보에 정성 없는 교인과 1원 가지고 와서 정성 있는 교인과, 돈 교회 돈 목사는 정성 없어도 10만원 연보하는 교인을 장로로 시킬 겁니다. 하나님은 1원을 가지고 와도 정성을 가지고 온 교인을 기뻐하실 겁니다. “매주 일 첫날에” 주일날에 첫 번째는 교인의 신앙을 위하여 쓰는 것이 연보입니다. 두 번째 어느 교회든지 연보는 이게 이치입니다. 세 번째 매주일 첫날 주일날에는 연보를 하는 겁니다. 얼마를 하느냐는 것은 놔두고 주일은 연보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연보봉투에 제일 위에 보면 주일 연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연보가 가장 기본입니다.

그 다음 “너희 각 사람이” “이” 이문 한 주간을 살아서 번 돈 요 ‘이’자라는 것은 이익 이문 영리의 ‘이’자입니다. 지난 한 주간 번 돈을 너희 각 사람이 알아서 연보하라. 각 사람별로 다른 겁니다. 신풍 와서 놀란 거 많았는데 좋아서 놀란 것도 있고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고, 교회 뭔 일을 하면 전부 뿜빠이를 합니다. 한 집에 한 명씩 나오기, 예배당 길을 닦으면 한 집에 만 원씩 내기. 아니 부잣집도 있고 가난한 집도 있고 노인네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는데, 보니까 이제 시골동네 일할 때 보니까 한 집에 한 명씩 나오고 한 집에 5m씩 풀 뽑고, 이런 걸 습관을 하다보니까 교회 일도 급하면 그냥 인원수대로 가정수대로 집사님들 숫자대로 이렇게 나눠버리는데, 급할 때는 그럴 수 있지만은 그건 될 수 있는 대로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죄 되는 것은 아니지만은 새벽기도 한 가정에 하나씩 나오라면 목사 집에 목사는 나오고 사모는 자서되겠습니까? 당장 그런 겁니다. 목사 집은 다 나와도 전도까지 해 와야 될 거고 당연히 다를 거 아닙니까? 교회의 연보는 그 말은 주일날 주님께 은혜를 받기 위해서 내가 무얼 들고 가야 되느냐, 이게 나의 정성이며 나의 연보입니다.

믿는 사람의 연보란 돈이든 시간이든 정성이든 하나님이 부어주는 걸 받아오는 그릇의 정성입니다. 모여진 것은 교인의 신앙을 위해서 쓴다. 이건 어느 교회나 다 마찬가지다 2번. 세 번째는 주일날은 그런 날이다. 주님은 모든 은혜를 다 주시고 우리는 작은 그릇 한 그릇 알아서 집에 있는 걸 가지고 오는 겁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집에 숟가락 하나밖에 없으면 숟가락 하나 들고 가서 숟가락 하나만큼만 받아오는 겁니다. 옆집 것 도둑질해서 가져오는 거 아닙니다. 집에 큰 드럼통이 있는데 그거 씻어서 가져가면 힘도 들고 받아 오는데 무겁고 하니까, 냄비 하나 달랑 들고 오면 그건 주의은혜를 무시하는 겁니다. 연보란 주님이 주시는 주일의 은혜를 받아오는 그릇이라 그랬습니다. 그릇. 받은 만큼 쓰는 것은 다른 사람 교인의 신앙을 위해서 씁니다. 그다음 이거는 항상 진리의 이치입니다. 원리가 같습니다. 세 번째 주일이 이런 날이 주일입니다. 각기 다릅니다. 각 사람이 다릅니다. 왜 다르냐. 각 사람의 지난 한 주간 받은 벌어 둔 주님께 받은 건강이 다르고 가정환경이 다르고 신앙이 다르고 돈벌이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벌기는 많이 벌었는데 가족이 많으면 덜 번 것과 같은 것이고, 혼자 벌어도 적지만은 쓰는 사람이 없으면 많을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각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첫째는 교인의 신앙 둘째는 원리는 꼭 같다 어느 교회든. 세 번째 연보는 주일날 주시는 은혜를 받아오는 그릇이다. 주일날. 네 번째 각 사람마다 그릇은 다 다르게 되어 있다. 남 눈치 보고 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다음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 연보를 하지 않게 해라 준비를 말합니다. 돈 많은 분들 지갑에 이전에 현금 많이 들고 댕길 때, 교회 왔다가 연보시간 되면 손에 집히는 대로 척 꺼내서 이렇게 턱 냅니다. 그거 하나님 앞에 참 건방진 일입니다. 우리교회는 그런 분들 없으니까 이 설교하지, 도시교회는 그런 분들이 많아서 그런 설교도 미안해서 못 할 겁니다. 그냥 주머니에 턱 넣어서 뒤적여서 만 원이든 5만 원이든 나오는 대로 척 내면서 어깨 힘을 딱 넣습니다. 넌 돈은 집히는 대로 했는데 준비 없이 정성 없이 그냥 집히는 대로 대충 주님 앞에 거지동냥을 하는구나. 주님한테 거지동냥을 하는구나. 주님이 거지동냥 던지는 그 신앙을 보며 자세를 보며 그놈 참 복 받을 짓 한다 그럴까? 세 살짜리가 입에 들어가는 장난감 하나를 어머니 생일이라고 어머니 하시라고 한다든지 과자 하나를 어머니 드린다든지 그러면 그게 예쁜 겁니다. 서른 살짜리가 연봉 5천만 원을 벌면서 오늘 아침에 어머니 생일이다 그러니까, 어 그래요 만원 척 거지동냥 그런 돈은 그냥 물리칠 줄 알아야 그게 인간이 될 건데, 주일은 주님은 은혜를 주시고 우리는 받는 겁니다. 우리가 받는 그릇이 연보입니다. 너는 주일이 얼마냐 너는 주일날 이 정성이 숟가락이냐 아니면 냄비냐 도라무깡이냐. 돈의 액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정성만큼 담아주십니다. 이거는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냄비 가져왔는데 도라무통만큼 부어 버리면 다 흘러버립니다. 딱 정성 가지고 온 것만큼 대주십니다. 그리고 각 사람이 다 다른데 그 정성이란 지난 한 주간에 주신은혜 시간 건강, 또 실제 번 돈 많은 걸 계산해서 나는 1000원이면 주님이 기뻐하시겠다. 나는 100원이면 기뻐하시겠다. 다 다를 겁니다.

저는 한 주간의 연보가 딱 만 원입니다. 특별한 일 없으면 고정적으로 그냥 딱 만 원. 제 월급 제 나이 제가 먹어야 되는 거 많은 걸 계산해서 그냥 매주 일 만 원. “매주 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평소 지난 6일 동안 번 걸 가지고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그리고 주일이 되면 지난 한 주간 주신 것이 얼마나 쌓였느냐, 무엇이 있느냐 얼마가 있느냐 각자 형편 다 다르니까 남 따라 남 눈치 보지 말고 알아서 해라. 그 다음 3절입니다. 사도 바울이 모아놓은 연보를 거두러 갈 때 거두러 갈 때, 너희가 인정한 사람 저분에게는 주일에 모아놓은 이 정성 우리교회에 이 역량을 맡겨도 일을 잘하겠다. 대표가 있으면 그 대표를 세우 거라.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할 때 맡기 거라. 모든 사람이 목사 되고 모든 사람이 선교하고 모든 사람이 주차 지도하고, 그럴 수 없으니 서로서로 이렇게 책임자를 맡기는 겁니다. 온 교인의 정성을 다 모으거라. 그리고 그 모은 정성을 분야에 따라 사용하는 대표를 따로따로 세워라. 피아노 반주도 있을 것이고 안내도 있을 것이고 식당 책임자도 있을 것이고, 구역장도 있을 것이고 주일학교 부장도 있을 것이고 목회자도 있을 것이고 운전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또 그중에 남는 돈이 있으면 예전에는 송금을 못하니까 돈을 모아서 멀리멀리 갈 때, 가다가 잊어버리지 않을 사람, 가다가 어디 술집에 들어가지 않을 사람, 가다가 떼먹지 않을 사람, 가다가 강도 만나서 연보하고 빈 털털이 되지 않을 사람, 그런 대표를 세워서 대표한테 맡기는 겁니다. 교회대표 인물보고 세우는 거 아닙니다. 말 멋들어지게 잘한다고 세우는 거 아닙니다. 세상 정치가야 말 잘하면 세우고 인물 좋으면 세우고 그럴지 몰라도, 교회대표는 주일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아서 이 걸 교회가 복음운동을 위해서 쓸 때, 이건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잘 쓰겠느냐 누구에게 맡겨서 쓰는 것이 잘 쓰겠느냐.

한 10년 전에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한테 중간 반 부장님으로 올라가시라고 그러니까, 자기가 기도를 딱 해보니까 목사 영감이 지금 귀신이 들어가서 자기 영감이 맞다고 교회 나가버렸습니다. 한 30명 데리고 나갔지요? 300명 아니라 다 데리고 나가도 옳고 그른 게 문제지 나 아니면 안 돼! 네 교회냐? 이제 이렇게 되는 겁니다. 네가 하나님이냐? 목사 속에도 귀신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주일학생 속에도 성령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 12번 70번도 바뀔 수 있습니다. 서로 모르기 때문에 잘 모를 때는 연구해보고 비교해보고 기도해 보고 조심스럽게 하면 되는 겁니다. 목회자가 성령이라는 말이 두려워서 잘 쓰지를 않으니까 교인들이 막, 내가 성령 받았다고 턱턱 목사를 가르치려 드는데, 공회교회가 목사가 많이 조심을 하다보니까 목사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교인 중에 참 많습니다. 교회마다 많습니다. 목사가 등신이라서 입에 성령이라는 말을 안 붙이는 게 아닙니다. 함부로 조심스럽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겁니다. 목회자도 영감이다. 성령의 역사다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말을 조심하면 교인은 더 조심을 하는 겁니다. 목회자가 이걸 안 써먹으니까 교인이 아이 그럼 냅다 내가 써먹을게 해가지고, 내가 성령을 받았는데 이러시고 저러시고 이러시고 저러시고. 뭐 이 자리도 저 가르치는 사람이 한 다섯 사람이 넘을걸요. 한 분 두 분 세 분 네 분 다섯 분은 그냥 한눈에 한 다섯 보입니다. 저 서울 쪽으로 가면 거의 다 저를 가르치려 듭니다. 부산도 그렇습니다. 그렇던지 말았든지 저는 배울 거 빼오면 저는 복입니다. 근데 멋모르고 가르치려고 잘못 올라 앉으면 큰일 나는 겁니다.

우리 공회의 장점은 목회자들이 교인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조심하자 이게 우리 공회 굉장히 좋은 점입니다. 다른 데서 아마 못 찾을 걸요? 목사들도 자기교인들에게 배우기를 노력하자. 교인들은 우리는 더 노력해야 되겠구나, 그래야 죽이 맞고 짝이 맞고 손이 맞는 겁니다. 도둑질도 손이 맞아야 하는데 옳은 일은 더한 겁니다. 목회자가 교인에게 배워오겠다고 조심하니까 교인이 와서, 너 배운다고 그랬지? 내 시키는 대로 해! 이래저래, 이래저래 오늘은 이래 내일은 저래 몇 바퀴 돌았는지 지금 뭐 기억도 못 할 만큼, 백번씩 이백 번씩 시켜버리니까 그거 회개하고 조심하셔야 됩니다. 주일은 주님이 모든 은혜를 주시는 날입니다. 그 은혜를 내가 준비한 것만큼 받아오는 겁니다. 내가 준비하는 만큼 받아오는 그 준비가 연보입니다. 돈의 액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건강도 정성도 모든 것도 다 연보입니다. 받으면 받은 거는 어디에 쓰느냐 교인의 신앙을 위해서 씁니다. 이건 교회의 교리며 이건 진리입니다. 이거는 주일날의 본질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은 다 주시고 하나님이 다 주실 때 내게 필요한 걸 다 받아 오는 날이다. 필요한데 절반 받아오는 사람, 필요한데 10분의 1 받아오는 사람, 필요한데 받아가지고 가다가 내버리는 사람, 남 볼 때는 거지나사로처럼 별 거 없는데 주일마다 주시는 걸 솔빡솔빡 다 받아 오는 사람 각각 다릅니다. 각각 다른 건 할 수가 없고. 주일날 받는 것이고 각각 사람마다 다른 거고, 그래가지고 모여진 교회에 주님 우리위해 바쳤으니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이만큼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만한 정성 이만한 건강 이만한 복음운동 이만한 전도활동 이만한 봉사활동 이만한 역량이 있습니다. 이걸 전도부장에게 이걸 주일학교 부장에게 이걸 장로님에게, 이걸 목회자에게 이걸 부엌의 책임자에게 이걸 자동차 운전기사에게, 각각 맡길 때는 이거는 교회의 그 면에 대표입니다. 대표. 목사도 교인의 대표 중에 하나입니다. 모든 교인은 각각 대표입니다. 이게 정확하게 성경이고 이게 옳고 바른 겁니다.

정성스럽게 미리 계산하고 준비하였다가 잘 살펴보고 하는 거지, 기분 내키는 대로 그냥 뚝 떼서 한다든지 아니면 못 준다고 딱 거머쥔다든지, 남 눈치 보고 대충 한다든지 그러는 것이 아니니라. 오늘 고린도전서 16장 1절에서 3절까지 주일은 주님은 모든 걸 다 주시고, 우리는 주시는 것을 각자의 그릇에 따라 받는 거고 받아서 그걸 모아가지고 그다음, 우리 모든 교인과 우리 교회의 복음 운동을 위하여 대표들을 세워서 맡겨서 잘 쓰는 것이라. 참 뭐 바로만 깨달으면 이렇게 좋은 집단, 이렇게 좋은 조직, 이렇게 좋은 교회, 이렇게 그림 같은 그런 가정이 없을 건데 이해의 핀트가 잘못되면 오해가 되어 지면 다 틀어져 버리고, 이해가 안 되든지 오해가 된다든지 틀어지기 시작하면, 옆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제일 크게 싸우고 가족이 서로 제일 많이 싸우게 되는 겁니다. 이해가 안 되면 누구하고 싸우겠습니까? 가족끼리 제일 세게 부딪혀 버리지. 오늘 저녁말씀 잘 분석해 보시고 잘 살펴보셔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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