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2.9.13 사58:14 주일 바로 지키면 참 기쁨, 참 영광, 신앙 선진의 모든 복까지 받게 됨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화새22.9.13 사58:14 주일 바로 지키면 참 기쁨, 참 영광, 신앙 선진의 모든 복까지 받게 됨

서기 0 103 2022.09.13 05:08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20913 화새

제목 : 주일 바로 지키면 참 기쁨, 참 영광, 신앙 선진의 모든 복까지 받게 됨

찬송 : 55장(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본문 : 이사야 58장 14절 -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주일은 신앙의 첫 걸음입니다. 주일은 신앙의 생명입니다. 주일을 잘 지키는 자에게 14절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완전자의 안에서 즐거움이라, 바다 안에서의 즐거움은 물이 주는 즐거움일 것이고, 하늘에서의 즐거움은 창공의 공기로 인한 즐거움일 것이고, 채식을 먹는 즐거움은 식물성 즐거움일 것이고,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은 하나님적인 것이니.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는 완전자, 그다음 영원불변, 수평으로 잘라봤을 때 어떤 빈틈도 잘못된 것도 없는. 그리고 이것이 쭉 이어지는 연결로 보면 영원무궁, 그리고 이 영원무궁이 생명이 없는 만물은 돌은 천년만년 그대로고, 생명을 가진 것의 영원무궁은 끝없이 자라갑니다. 끝없이 자라가는 것을 그냥 표현할 때에는 무한이라 그러고, 자라가는 것을 강조할 때에는 광대하다고 그럽니다.

하나님 안의 즐거움이라, 빠진 것이 없고 충돌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기쁨. 그 완전한 기쁨이 영원무궁 그대로 기쁨, 오늘은 기쁜데 내일은 슬픈 것 이게 세상의 고민입니다. 아이가 태어나 모두 좋아하니 또 한쪽에서는 좋아도 죽는다고 또 눈물을 그만큼 흘려야 됩니다. 월급을 쥐고 돈을 벌어 돈을 버니 좋은 만큼 그 돈 벌기 위해 노력한 한 달이 생각나고 쉽게 돈을 번 돈은 돈이 웃으며 들어왔으나 그 돈이 쓰이면서 인격과 가정의 행복을 많이 뺏어 갑니다. 그런데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그 어떤 사람이 그 돈을 그 만큼 손해 보고 억울해 합니다. 그 억울함이 쌓이면 나중에 좋지 않게 돌아옵니다. 해결이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은 요셉에 가졌던 기쁨처럼, 풍년 7년, 흉년 7년 14년을 통해 요셉은 요셉이라 좋고 왕은 요셉을 가져서 좋고 신하들은 신하라서 좋고 백성은 백성이라 좋고, 심지어 이방의 외국인들까지 함께 좋고, 세상에 그런 좋은 것은 없는 겁니다. 신하가 훌륭하면 임금이 위협을 느낍니다. 종이 주인보다 너무 나아버리면 주종이 바뀌어버립니다. 주인보다 못하면서 잘해야지. 요셉은 왕이 나는 이름만 왕을 하고 진짜 왕은 너 해라. 그게 나 테도 좋겠다, 위로도 그렇고 윗사람이 좋아하면 밑에서는 꼭 난리가 나는데 밑에서도 좋아하고 옆에서도 좋아하고. 이 민족이 되어 지면 그건 분쟁 밖에 없는데 이민족도 좋아하고. 요셉을 팔아먹은 열  형도 그 발 앞에 엎드려 영광 돌리고 회개를 하고, 요셉을 단면으로 내용을 들여다보면 빠진데 없고 부족이 없고 충돌이 없습니다.

신앙 외적으로 이런 세계가 어린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아이에게 존재자체가 행복입니다. 어릴 때는 엄마의 사랑에 매달려 살기 때문에 일시 그런 현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다섯 살 되고 열 살 되면 자기 하고 싶은 것, 자기 가고 싶은 것, 막는다고 개입한다고 이제 슬슬 이해 충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 땅위에 젖먹이 아이가 엄마만을 좋아하는 잠깐의 순간 이것을 자연의 계시로 보여 주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영원무궁, 이게 정상입니다. 그냥 좋고 좋은 것이 영원무궁 계속 좋고. 어린 아이의 엄마 좋아하는 것은 한 3, 4년? 벌써 유치원만 가도 문제가 생기고 그 이후에는 많은 갈등이 생깁니다. 좋았던 것만큼 문제가 생깁니다. 영원무궁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안식일을 통한 은혜 안식일을 통한 복은 현재가 완전, 그 완전이 영원무궁토록 불변, 성질은 영원무궁인데 내용을 보니까 영원무궁히 자라갑니다. 광대한 세계. 그리되어지니, 주님이 그 사람을 땅에 높은 곳에 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땅이라니? 하늘이 아닌 곳, 하늘보다 낮은 곳, 하늘을 준비하는 곳이 성경의 땅입니다. 오늘이 땅이며, 금세가 땅이며 하늘을 준비하는 곳이 땅이며 타락한 세상. 죄악 세상이 오늘의 땅입니다. 그러면 타락 이후에 죄악 세상은 해결이 없는데 그건 전쟁이고 이것은 영생지옥인데 가기 전에 미리 지옥 체험 학습하는 곳인데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께 연결 된 그 연결 그 연결을 타고 들어 온 은혜, 그 복으로 자꾸만 바뀌어 가는 신앙 당연히 하나님을 닮을 것이고, 하나님화 되어지는 것이고 된 것만큼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는 겁니다. 물질의 빛, 가로등이나 형광등 빛이 아니고 또 경제적인 빛 아니고 국방과 애국의 빛도 아니고 학문의 빛도 아니고 가족 사랑의 빛도 아니고 그런 것은 하나님 밖에도 많습니다. 주일 아니라도 있습니다.

주일을 통해 하나님께 받은 복과 변화의 은혜는 하나님과 연결이 없는 세상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복을 모르는 주변에게 하나님을 닮아가는 세계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면으로 빛입니다. 아 저렇게 살아도 사는구나, 주일을 지키고도 살아가는구나, 라고 모두들 교회를 처음 나올 때 처음 나온 이야기들이 다 각각 있지마는 돌아가신 지연심 집사님은 마전 앞들에 일을 하다보면 산곡에 진 집사님, 주일 되면 깨끗이 씻고 깨끗이 차려 입고 교회를 가는 모습을 보며 아니 일주일 내도록 죽자 껏 일을 하고 저 분은 주일마다 일 안하고 교회를 가는데 굶어 죽지를 않으니 안 죽을 바에는 나도 하루는 저렇게 좀 쉬어보고 저 분 따라봐야 되겠다, 7일에 7일을 다 죽도록 일을 해야 먹고 산다 그 생각밖에 없었는데 하루는 일 안해도 먹고 사네, 전부 논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그냥 뒹굴고 있는데 깨끗이 옷 입고 가도 하루를 봐도, 일 년을 봐도, 십 년을 봐도 멀쩡하네, 그게 부러워 교회를 출발했다고 그럽니다. 이게 빛입니다. 옷을 깨끗하게 입은 것이 빛이 아니라 주일날 일을 해야 먹고 사는 것 아니냐? 주일날 일을 해야 농사가 되는 것 아니냐? 주일날 일을 안 하고도 농사가 되고 가정이 먹고 사느냐? 그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주일은 모든 일을 완전히 접어버리는데도 너나 나나 똑같으면, 그게 늘 똑같으면 그러면 나도 주일은 나의 일을 하지 않고도 살 수가 있는가보다, 이렇게 첫 걸음을 시작하고 그 다음 평생을 걸어가신 겁니다. 함께 사는 자녀 위해서 간곡한 기도 말도 못하고 말없이 엄청 많았고 그렇게 이제 많이 기도를 하고 가시게 되면 그 기도 때문에 자녀 중에 한 분은, 자녀 중에 한 분이 아니고, 시내 있는 분들은 교회를 다니고 우리에게 왔고 함께 살던 아들은 유학(儒學)을 했던 분이라 우리나라 마지막 유학(儒學)의 분입니다. 마지막 서당을 다니고 마지막 유학(儒學)을 한 분. 끝까지 이런 분들은 믿기가 어려우나 마지막에 어떻게 하겠지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완전히 잊었으나 열심히 교회를 출발하고 있지 않습니까가?

생전에 안 되면 죽을 때까지 기도 하고 죽으면서 기도해놓으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붙들고 사후에라도 저렇게 하시는 겁니다. 기도한 정도를 보면 사후에 그 자녀들의 신앙과 복이 어느 정도 되겠구나, 아는 겁니다. 성의껏 그냥 잠깐잠깐 하면 나중에 기본구원이나 받을 만큼 교회 문고리나 잡을 거고 그 기도가 좀 더 간곡하면 교회를 다녀도 그냥 다니지 아니하고 열심히 다닐 것이고, 아마 지금 벌써 성경, 교회 출발한지 1년 안됐는데 벌써 한 1독 이상 했는가 봅니다.

세상은 처음 믿는 사람이 열심하고 신앙의 세계는 믿을수록 더 열심을 내는 것이 그것이 생명입니다. 믿어갈수록 성경을 더 사랑하고 더 깨달아가는 것이 그것이 맞습니다. 기도한 것만큼, 그 기도의 내용이 애절한 것만큼 당장이든 아니면 늦어지면 늦어져도 늦어짐의 손해 없이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나 혼자 기쁨이 즐거움을 얻는 건데 이게 밖으로 표가 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표를 내서 주변에 빛이 되게 하여 높은 곳에 올린다, 두신 위치가 높아진다, 계급이 높아진다 그 말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많아지게 한다, 그 말입니다.

나아만 집의 계집종이야 무슨 계급이 높겠습니까? 여자애 잡혀갔는데, 아람나라가 다 쳐다보고 이스라엘 나라가 다 쳐다보고 양국의 왕들이 다 그 아이만을 쳐다보는 여기까지 올라갔습니다. 종도 종 나름이지 양국의 왕들이 쳐다보고 있으면 그 종은 이름이 종이지 벌써 왕 위에 왕입니다. 올리는 방법은 많습니다. 무조건 높은데 기어 올라가면 떨어질 때 많이 깨집니다. 위치는 낮은데 지켜보는 사람이 많은 게 오히려 낫지.

“높은 곳에 올리고 너의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야곱의 업이라니? 목동입니다. 상업이 아닙니다. 무역도 아닙니다. 사무직도 아닙니다. 전부 목동 목축을 시킨다는 말입니까? 야곱의 업은 목축이었고 그 목축업을 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까운 사람 속여서 남의 것 빼앗아 오기였고 빼앗아 오기인데 눈뜨고 가져왔으니 이건 사기성이 좀 많은 사람입니다. 어려서 형의 것 쥐고 날랐고 도망가서 외삼촌 집의 것 다 끌어왔고 이게 야곱의 업입니다. 인간 대 인간 기술로 실력으로 안 되면 꾀로 거짓말로 사기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게 야곱입니다. 칼이 아니라 입으로, 꾀로 살아온 야곱. 그 업을 이어가리라. 그 말씀은 아니겠지요?

성경에 야곱의 이름이 나오면 믿기 전 하나님 모를 때 꾀쟁이, 못된 야곱 그 말인데 그 야곱의 이름이 좋은 의미로 나올 때는, 여기도 좋은 의미입니다. 야곱의 이름이 좋게 나올 때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야곱입니다. 야곱의 회개하고 나서 신앙의 이름은 이스라엘인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이라고 적지 않습니다. 계통을 적을 때는 꼭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적습니다. 못났든 꾀쟁이든 어쨌든지 아브라함의 믿음의 복이 이삭으로 야곱으로 그리고 열두지파로 오늘까지 내려옵니다. 믿음의 조상, 그 쳐다보기도 어렵고 부르기도 죄송한 위대한 아브라함, 위대한 이삭의 복이 야곱에게 그대로 다 갔는데 대대로 내려오는 이 복이 그다음, 주일을 끝까지 지키는 네 가정에 네 교회에 다 쏟아지리라.

우리는 이 주일 말씀 지금 3주 넘어 이어가며 마음속에 감사가 넘쳐야 됩니다. 주일을 주일답게 교회 단위로 지켜내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한 번씩 이렇게 설명하면 전화도 오고 그럽니다. 자기들 교회도 지킨다고. 기준이 문제지. 학교 가는 녀석들 있냐? 저 때 아, 우리 아이는 개근상을 따 왔습니다, 요새 학교가 학교입니까?  놀이터지, 그 말은 학교 간 것이 아니라아니라 학교 가서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 뜻입니다. 공부에 매진했냐? 그것만 말합니까? 공부 무슨 공부? 부모 팔아먹는 공부? 세상 뒤집는 공부? 그건 매진할수록 나쁜 공부지. 해야 될 공부 바른 공부 했냐, 이제 이렇게까지 나오면 교과서조차 엉뚱한데 뭐, 무슨 바른 공부해? 했으면 거꾸로지. 기준이 문제인 겁니다.

목회자야 교회에서 주는 월급 받는데 주일날 일 다니겠습니까? 그것도 공회 교회 목사들이. 그런데 공회 교회 목사님들의 자녀를 보니 자녀야 사무엘의 아들들은 뭐 말 잘 들었습니까? 그것들도 죄인인데. 엘리 제사장은 아이들을 똑바로 길렀는데 하나님 볼 때 너 아주 아이들을 갖다 죄 지으라고 부추기고 있네, 이렇게 보셨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홉니와 비느하스 두 아들이 성전 교회 안에서 짓는 죄를 책망하며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길이 있지만 하나님께 죄를 짓고는 길도 없다 그러지 말아라, 야단 쳤습니다. 그런데 그 야단치는 모습을 하나님은 지켜보면서 아주 연극을 하고 앉았다, 부추기도 앉았다, 네 중심을 아는데 하나님 들으라고 지금 광고하냐? 엘리와 엘리의 두 아들의 죄, 자자손손 하나님께서 계통으로 물었습니다. 사무엘은 그 두 아들도 또 이거 또 도둑 사기들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두 아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사무엘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있는 힘을 다해서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삐뚤어진 거지.

목회자의 아들이 주일을 지키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주일을 바로 가르쳤구나, 이럴 수도 있고 목회자 아들은 주일을 지켰는데 하나님은 너는 주일 내버렸다, 부모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보면 아는 겁니다.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 돈이면 전부다, 우리 교회 안 다녀도 멀리 가서 출세만 하면 된다, 목사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목사 자녀들이 자기 태어난 자기 교회 위해서 헌신하고 주일 지키고 신앙생활 하도록 어릴 때 그렇게 심었느냐? 심었는데 목회자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빗나간 것은 상관하지 않지만은 너는 너희 교인들에게는 너희 교회 다니라고 그래 놓고 너희 아이들은 이리 빼고 저리 빼고 다른데 세상으로 다 뺐네? 주님이 모르시겠습니까?

군의 부대장들이 남의 집 스무 살 아이들에게는 적군을 향하여 죽으라 그러고 자기 아들은 군대 빼 버리고 후방으로 빼 버리고 비겁한 거지, 아버지가 자기 목숨 바쳐 군인이니 앞장서고 아들도 앞장을 세우려 그랬는데 있는 힘을 다 해도 아들을 잡아 오지를 못해서 놓친 것과 뒤로 서류 조작해서 슬금슬금 뺀 것, 세상도 다 알지 않습니까? 공회 목회자들도 전부들 자녀들은 진학 진로에 좋다면 공회교회 없는데도 다 보냅니다. 보내서 거기서 개척을 하면 되는데 공회교회로, 알고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따질 거 없는 겁니다. 주일은 자기 교회 주일만 주일입니다. 본 교회 주일만 주일, 이제 이렇게까지 따지고 들어가면 본인이 결심하고 된다고 그러는 것 아닙니다.

주일이 바로 될 때 완전한 즐거움, 영원불변의 즐거움이 자라가기까지 합니다. 그 사람은 저절로 옆에 주변에 빛이 되고 그다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는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모든 복이 위에 있게 됐습니다. 오늘 신풍의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공부하고 취업해서 나아가는 것 뛰고 둘러봐야 한 걸음 더 올라 가기 어려울 것이나 주일 지키느라고 세끼 밥 먹기도 어렵다고 그러는 이 주일을 바로 잡으면 역사 이후에 모든 복된 교회, 복 된 선지사도 우리 앞에 가셨던 위대한 종들의 그 기도와 그 은혜가 전부다 우리 교회에 다 떨어집니다. 세상을 혼자서 다 쥐는 방법입니다. 이것까지 다 계산하고 그다음, 하나하나 부탁하는 겁니다. 적은 것이 아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도시를 못나가서 전부들 시골에 있지 시골이 좋아서 원래부터 시골에 있었냐? 원래부터 시골에 있어서 있는 교회 아마 찾기 어려울 겁니다. 기회를 못 잡아 시골에 있지. 도시를 갈 수 있어도 하나님의 주신 현실이라 현실을 지키고 그 정신으로 주일을 지키고 그렇게 되어질 때 이 복과 주일에 되어 지는 은혜가 위로부터 고생하고 만들어진 것이 다른데 가지 않고 우리 위에 쏟아집니다.


1차-khs

Comments

Category
State
433,639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