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9.9 출20:11 주일의 복, 말씀이 복, 받은 말씀으로 실행하는 것이 주일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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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2.9.9 출20:11 주일의 복, 말씀이 복, 받은 말씀으로 실행하는 것이 주일의 복

관리1 0 91 2022.09.0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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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9 금밤

제목 : 주일의 복, 말씀이 복, 받은 말씀으로 실행하는 것이 주일의 복

찬송 : 166장(예수가 거느리시니)

본문 : 출애굽기 20장 11절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하늘도 땅도 바다도 우리 구원 우리의 신앙 위하여 좋게 만들어 주시고 복되게 운영해 주시는 주님, 날 중에 귀한 주일을 중심으로 주일의 말씀이 실상에 복이 되고, 주일의 변화가 연단으로 더욱 옳고 바르게 되도록, 세상 속에 우리를 6일 두시며 5일째 맞이하는 매일을 손꼽아 기억하고, 지나간 주일과 또 주실 주일을 마음에 두며 주의 날 또 우리에게 주신 자기위치 자기사명에 충성할 양면을 보며, 이 밤도 5일 예배로 불러주셨사오니 어두워져 가는 세상 속에 밝은 빛을 사모하는 열심을 주시고, 세상과 과학의 발전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이 아니고는 절대로 아니 되겠다는, 믿음만을 더욱 벼려가며 밝혀가는 이 밤에 저희들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주신 가족들 돌아보며 말씀으로 함께하는 오늘저녁 곳곳에 오가는 모든 우리 교인들 발걸음 지켜주시고, 우리가 부족하므로 생존과 건강의 은혜를 더 하사 이전보다 더욱 잘 믿고 충성하게 기회주시고, 우리는 그 기회를 하늘을 향한 걸음에만 잘 쓰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이 밤도 불러주셨사오니 말씀 속에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공간적으로 세상을 만들 때는 위로 하늘 아래로 땅과 바다를 나누어 주셨고, 땅과 바다는 공간적으로 좌우로 분리를 시켜 땅 옆에 바다가 필요해서 주셨기 때문에, 땅도 바다도 또 위로 하늘도 공간적으로 좌우와 상하를 구별하는 습관을 늘 가져야 됩니다. 하늘의 은혜와 이 땅 위에 주신 일반의 은혜 반드시 둘을 다 가져야 됩니다. 땅의 은혜는 잔뜩 모아 쌓아놓고 위에서 주시는 하늘을 모르면 큰일 납니다. 또 하늘의 은혜를 받아 또 이 땅위의 은혜를 넘치게 받는다 해도, 바다는 바다 땅은 땅 나누어 이게 나란히 있어야 좋은 거지, 땅만 있다고 좋은 것 아니고 바다만 있다고 좋은 거 아닙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동양도 있고 서양도 있고 식물도 있고 동물도 있고, 택한 하나님의 백성도 있고 똑같이 생겼는데 지옥 갈 불택자들도 있고 그거 다 필요해서 만들어 놨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만 챙기고 싶습니다. 농사하는 분들 태양만 있으면 농사가 잘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햇빛이 많아야 잘 된다고 전기가 들어 와가지고 간판에 가로등 켜기 시작하니까, 위로는 요즘 청년들처럼 쭉쭉 자라는데 건드려 보면 허깨비입니다. 키와 덩치와 옛날에 비하면 전부 다 장골이고 다 보기 좋게 쫙쫙 커 올라가는데, 속에는 바보도 등신도 이거 뭐 부실해서 그냥 다 수수깡처럼 그렇습니다.

예전 분들이 키도 작지 시커멓지 못나 보이지요? 생존력은 비교도 못합니다. 지금도 아마 70대 80대하고 요즘 20대하고 일 시켜놓으면 20, 30대 삽자로 못 잡을걸요. 근육 중에서도 노는 근육 까부는 근육 돈 안 될 근육은 보기 좋게 연습을 하는데, 곡괭이자루 맡기면 나 많은 이들 못 이깁니다. 이게 겉은 좋아 보이는데 속이 부실하다 그 말입니다. 남자들 이야기입니다. 또 남자 이야기 했으면 여자 이야기도 해야 되겠지요. 겉보기야 다 공주처럼 다 바뀌는데 속의 인격의 아름다움은 차마 입에 표현도 못할 만큼 엉망일 건데요. 인내가 있습니까? 절제가 있습니까? 자기관리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며 빛과 어두움을 먼저 만드시고 이건 공간이 아니고 빛과 어둠입니다. 양면입니다. 두 번째 날에 위와 아래를 나누어 위도 필요해서 만들었고 아래도 필요해서 나누어 만들었습니다. 어릴 때 어른들이 많아서 불편해도 다 그거 지나놓고 보면 적금보다 낫고 그거 취업보다 낮고 엄청 좋은 겁니다. 어릴 때는 그런 거 귀찮아서 그냥 뭔 친척이고 어른이고 뭔 인사고 용돈이나 받으면 좋지, 그 용돈 누가 만들어 누가 준 겁니까? 이래서 철이 없다 그러는 겁니다.

이말 저말 떠나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함께 주셨습니다. 똑같은 선물로. 아래 위도 똑같이 주셨습니다. 지금은 5천만 명이 전부 대통령입니다. 5천만 명이 전부 제 마음대로입니다. 신하가 없습니다. 이래 놓으니 이것도 또 지옥입니다. 임금은 하나 정도 되고 5천만이 기고 살면 좀 덜한데 5천만이 전부 왕 노릇을 하려니, 이런 걸 몇 백 년 전에 만인이 만인을 향한 만인의 전쟁이라고 그랬습니다. 만 곱하기 만 곱하기 만이면 1조가 되나요? 만 곱하기만은 1억입니다. 1억에 만을 곱하면 한 1조 정도 되겠지요. 싸움의 개수가 이리 됩니다. 가정에 남자 하나 머리가 되어도 복잡한데 부부가 같이 머리 되고 아이가 같이 머리 돼가지고, 셋 있는 가정은 왕이 셋 다섯 있는 가정은 왕이 다섯, 이거 뭐 문제는 해결을 못 하는 겁니다. 애는 애라고 악 써가며 자기 원하는 대로 다 만들려고 그러지, 뭐 어른은 할 수 없으니까 이제 죽어주지마는 져주지마는, 이거 끝까지 져 주어놓으면 이 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뭐 이런 판입니다. 빛과 어두움을 첫날 만들어 주셨습니다. 정반대 같은데 합해야 좋은 겁니다. 아래 위도 하나님이 만들어 준 겁니다. 그래서 밑에 사람은 위를 쥐 흔드는 거 아니고 위에 사람은 밑에를 들볶으면 곤란합니다. 아래 위가 다 내 겁니다. 그리고 똑같은 땅도 땅과 바다로 나누어 주시며 더 앉을 자리 남이 앉을 자리 땅이 있을 자리 바다 있을 자리 따로 주셨습니다. 이런 거 함부로 바꾸고 뒤섞는 거 아닙니다.

지금 북극 빙하가 녹으며 수면이 한 한 뼘 30cm 올라온다고 세계가 벌벌 떨고 있습니다. 땅과 바다를 뒤섞어 비빔밥 만들어 놓으면 생지옥 되는 겁니다. 사장은 사장 종업원은 종업원 교사는 교사 학생은 학생답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우주와 자연의 운영의 기본입니다. 주일이라는 것은 낮밤을 알고 아래 위를 알고 땅과 바다의 구분을 알고 남자 여자가 다른 데 함께 살아야 되는 걸 알고, 부자 가난한 사람 유식무식이 둘이 함께 필요하고 함께 살아야 되는 이런 걸 다 아는 사람에게 그 다음, 제 4계명이 제 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니 거룩히 지켜라. 그리고 11절에 엿새 동안에 하늘 땅 바다 전부를 만들고 그 안에 있는 거 다 만들었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인 줄 알고 위로 하나님이 주인인 걸 알고, 주인 하나님 하나님이 아버지인데 날 위해서 준 걸 알고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바다를 보고 살면, 이 땅 위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건 구약인데 신약 디모데전서 4장 4절에 가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땅 바다 하늘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모두를 다 여기 11절에 하나님이 만들었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하나님이 맞는 것은 좋은데 하나님이 안 맞는 것은 나쁜 거 아니냐. 그런 거 없습니다. 하늘 땅 바다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걸 하나님이 만드셨다. 우리의 신앙을 위하여 좋게 만들어 놨다. 그리고 다시 보면, 남한 집어삼킨다고 협박하는 북한이 있어서 남한은 국방과 경제가 함께 발전했습니다. 여자가 있어 인류가 이렇게까지 많아졌고 남자가 있어 인류가 이렇게 먹고 살았습니다. 요즘은 여자가 먹여 살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 6천 년은 남자가 먹여 살렸을 겁니다. 그 오랜 시간도 아닙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 죽으면 재혼해야 되지 혼자는 못 버텼습니다. 혼자 버티다니요. 그래서 남자 없어지면 억울하든 말든 무조건 뭐라고 그러던가요? 혹시 최지연 선생님 아시나요? 남자 없이 저 영현 선생 죽어버리면 최지연 선생 뭐 되는지 압니까? 두 글자? 과부라 그럽니다. 그 ‘과’자가 혼자 남았으니 얼마나 외로울 것이며 이제 죽을 것인가 그 뜻입니다. 아 남정네 없으면 더 좋은데? 그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역사 6천년 대부분은 남자가 지켰고 남자가 땀 흘려 이렇든 저렇든 이게 생존이 되어 진 겁니다.

지금은 남자 없으면 더 잘 나가는데? 그거 아마 뒤 끝이 좋지 않을 겁니다. 벌써 좋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이 만든 것은 디모데전서 4장 4절, 하나님이 만들지 않은 것은 없는데 하나님이 만든 하늘 땅 바다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 하나도 빠짐없습니다. “선하매” 하나님이 좋게 만들어 놨습니다. 왜 좋은가? 우리 신앙 위하여. 그래서 믿는 사람은 75억이 코로나 때문에 난리가 나도, 코로나는 싫지만은 이것조차도 하나님이 우리 신앙에 필요해서 만들어 주실 것이니, 그리고 다시 들여다보며 참 그것도 필요하구나. 이리되어집니다. 죽는 것도 좋으냐? 그럼 반대로 여쭤보지요. 안 죽고 한 300년 살아보시겠습니까? 난리 날 걸요. 요양원에 지금 요양 중인 구순 연세 되는 분들에게 한 100년 더 사십시오. 그러면 그 이상의 저주는 없을 겁니다. 멋모르고 일찍 죽을 때 오래 사는 장수를 좋아했는데 그것도 철들고 알고 보니, 막상 장수 시대에 살고 보니 좋게 살다 좋게 죽는 게 좋지 무조건 길게 사는 것은 재앙 중에 재앙이구나.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거 다 선한 겁니다. 그런데 넌 왜 백 살까지 이렇게 오래 사느냐? 백 살까지 사는 사람은 살아야 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천국 준비를 못하고 100년 됐으니 좀 더 신앙 준비하라고 더 살게 하신 것이지, 좋은 세상 더 살라는 거 아닙니다.

구순에 의식 잃고 10년을 멋모르고 산다면 그분은 어찌 되느냐, 살아있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는 겁니다. 똑똑히 봐라 죄로 죽었고 죄로 죽은 인생은 죽기 전에 생지옥 죽는 연습 미리 한다. 그 가족의 그런 노년의 안타까운 형편을 들여다보면 누가 큰소리 치고 누가 하나님 앞에 맞서겠습니까? 하나님과 하나님 중심으로 하늘나라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다시 들여다보면. 이 땅위에 하나님이 실수로 만들어 놓은 거 하나도 없이 다 귀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선하매” 잘 만들어 놨으니 감사함으로 받으면 참 하나님이 나의 신앙을 위하여 필요하게 만들었구나. 이게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버릴 것이 없나니. 이렇게까지 디모데전서 4장 4절에 출애굽기 20장 11절을 해석을 해 두셨습니다.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들었다. 앞으로 필요한 것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위의 것 전부 하나님이 만들고 준비하고 있으니, 하나님 뜻대로 잘 살면 때가 되면 부어주실 것이다. 염려 말아라. 그래서 믿는 사람은 점치러 안 가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무당 굿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염불 안 하는 겁니다. 금방 몇 가지 예를 들었죠? 세 가지. 왜 이 세 가지 예를 들었을까요? 무당굿하고 점치고 염불하고, 뒤로 몰래 좀 하고 다니니까 그러는 겁니다.

요즘이야 무당 점집 염불을 하려고 해도 다 폐업이 돼가지고 없는데 어디 갈 거냐? 있을 때는 슬금슬금 다녔고 지금은 없으니까 인터넷을 뒤져서 어디를 찍어야 돈을 벌꼬? 그건 죄 되는 게 아닙니다. 어디에 투자해야 돈 벌꼬? 그건 죄 되는 것이 아닌데 하나님 떼놓고 주일까지 뒤지고 앉았으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염불한다. 무당 굿한다. 점치고 앉았다. 라고 그리되는 겁니다. 제가 선암사 뒤뜰을 거닐면 중 보러 갔겠습니까? 부처 보러 갔겠습니까? 운동하러 공기 마시러 갔겠습니까? 제가 선암사를 돌아다니면 운동입니다. 거기 있는 중들은 미신 믿는 염불의 죄가 되는 겁니다. 절이 죄가 아니라 그 자연환경 그 산속에 깊은 환경을, 하나님 동행함으로 하나님이 만든 이런 골짜기도 있구나. 그러면 저는 은혜 받고 그 좋은 골짜기에서 목탁 두드리고 앉았으면 하나님은 참 염불 뭐같이 한다. 그럴 겁니다. 예배당 자체가 이 예배당 자체가 성전이거나 이게 복주는 건 아닙니다. 오해가 돼가지고 전부 예배당 꾸미는데 돈을 마구 투자를 하는데, 그거 다 천주교 천 년간 염불한 것하고 비슷합니다. 염불은 험한 말 아닙니다. 염불이란 욕하는 게 아닙니다. 중 저것들이 괜히 바늘방석이 돼가지고 생난리인데, 중이라는 말 염불이라는 말은 그냥 일반적인 단어입니다. 자기들이 그게 좀 심리적으로 그래가지고 난리지.

천주교 천 년간 천주교가 기독교를 염불에 불당처럼 만든 게 성당입니다. 천주교회 미사입니다. 그런 미사 그 다 미신입니다. 정상적인 기독교는 예배당이란 예배드리는 정성과 예배드리는 이 분위기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지붕이 있어 비 막아주면 되고 벽이 있어 바람 막아주면 그만 예배당입니다. 그 이상 돈 칠해버리면 그거 성당되고 불당 됩니다. 이게 바로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빛과 어두움 상하와 수평의 모든 것을 다 우리 위해서 만드셨구나. 내 눈에 좋다 나쁘다 그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좋게 만들었으니 내가 복되게 사용하면 전부 복이 되는구나. 이게 바로 믿는 사람의 기본자세입니다. 불교도 저 미신을 믿고 저렇게 고기도 안 먹고 도를 닦는데, 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돼가지고 얼마나 예배에 정성을 드렸는가, 참 부끄럽다. 불경 불도 절에 염불을 가지고도 신앙의 도움을 받으려면 아 저 미신에 저러고 앉았는데 난 뭐 하냐, 이러면 이것도 또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예배당 잘 지어놓고 예배당이 워낙 좋으니 여기 들어가기만 하면 복을 받지 않겠냐. 이리 되면 예배당을 불당으로 바꾸는 미신종교 돼버립니다. 나쁘지 않은 게 없고 좋지 않은 게 없는데 믿는 사람은 좋지 않은 게 없도록 주셨으니 좋지, 좋기만 하도록 만들면 되어 집니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도 6일간 이렇게 하나님의 날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복으로 바꿀 수 있는데, 그렇게 우리의 복이 되려 하면 11절 뒤입니다.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만들었다. 안식일은 복된 날입니다. 안식일이 복된 날이라서 6일이 복된 날이 될 수가 있고, 안식일이 복된 날 아니고 이 복된 날을 씻나락 까먹듯이 볶아 먹어버리면 나머지 6일은 사나마나 그 헛일입니다. 왜 주일이 복된 날인가 달력에 빨간 칠을 해서 무조건 복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도 물 뚜껑을 열어두지 않으면 물은 모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안식일을 주셔도 안식일에 받는 복을 받을 수가 있어야지 복을 주시는데도 뚜껑을 열지 않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안 되겠지요? 주일의 복은 뭐 두말할 것 없이 그냥 말씀의 복입니다. 또 한 번 기억하시지요. 말씀의 복(말씀의 복). 성경책 책이 복인가 이거는 뭐 불 질러도 상관없습니다.

일본에 한 몇 백 년 전에 많은 순교자들이 나올 때 우리보다 몇 백 년 먼저 믿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을 처형해 나갈 때 믿는 사람 골라내는 방법이, 예수님 그림을 그려놓고 밟아 봐 그럽니다. 안 밟는 것들은 이거는 속으로 믿는 것들이라 처형해 버리고, 밟고 지나가는 것은 이거는 믿었다 해도 개종을 해서 돌아섰기 때문에 이건 이제 천국에 못가니까 우리 편이다. 원래 안 믿어도 밟고 갈 것이고 속에 믿는지 안 믿는지 애매한 거 테스트할 때도 그랬습니다. 예수님 사진 예수님 그림 그려놓고 밟고 가라면 밟고 가겠습니까? 안 밟고 가겠습니까? 거기다 대고 성냥불 불을 지르고 가지 그 그림이 예수님입니까? 성경에 예수님의 그림 예수님의 흔적 예수님의 필체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신앙이란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세계라 예수님 얼굴이 그림이 남아놨더라면 거기에 절하고 육갑 다 했을 겁니다. 예수님 필체가 남아놨으면 아마 서양 필체는 전부 예수님 필체로 정신도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날 위해서 죽고 이렇게 하셨다는 기록만 남아 있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관련된 사진 필체 뭔 그림 나왔다면 심각해지는 겁니다. 그걸 전문하는 데가 천주교입니다.

기독교란 천주교 그거 틀렸다고 나온 게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정식 기독교는 예수님 얼굴이니 그런 거 아예 그건 펄펄 뛰고 그런 건 안 합니다. 우리는 있든 말든 그거 안 쳐다봅니다. 하는 사람은 하는 자유고 안 할 사람은 안 하는 자유인데 근데 그 사진을 한 번 봐 놓으면,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 이름이 나오면 그 사진이 자꾸 나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모세라고 영화의 모세 영화를 한번 봐놓으면 모세 나올 때마다, 그림에 나오는 그 영화배우 그 놈이라고 또 해야 되겠는데 말이 억세다고 하도 그래 싸서, 뭐 그 분 그럴까요? 영화배우 그 인간 얼굴이 모세 나올 때마다 자꾸 떠오르는데 이거 못 지웁니다. 홍해 바다는 십계라는 영화에 나오는 그런 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봐 놓으면 나쁜 거는 한 번 만 머리에 들어가면 죽는 날까지 씻어도 씻겨 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아예 그냥 말아라 그러는 겁니다.

1960년대에 십계 영화 예수님 무슨 뭐 무슨 영화 무슨 영화 기독교 영화 참 줄줄이 나왔습니다. 미국과 세계에 그냥 완전 다 쓸어버렸습니다. 한국에 제일 잘 믿는다는 어느 교단 어느 교단 어느 교회 그 영화 본다고 예배시간에 목회자들이 그냥 교인들 다 데리고, 오늘 설교보다 저 영화 보는 게 더 은혜스럽다고 다 데리고 댕기고 생난리 다 했습니다. 그때 공회교회만 참 코미디하고 육갑한다. 이래서 공회교회는 좀 수준과 보는 각도가 높다 그러면 문제가 될 거고 다릅니다.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60년 전에 온 나라의 교단 교회 전부가 십계니 뭐니 뭐니 기독교 영화 쿼바디스니 뭐니 다 몰려 댕길 때, 최근에 10년 전에 영화는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힌다고 그게 제목이? 패션 오브 크리스트인가 뭐 그런 또 영화 하나 들어왔었지요. 또 이거 오랜만에 들어 와가지고 뭐 얼마나 은혜롭다고 난리인지.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 이야기 이런 거는 상관이 없습니다마는, 성경 자체를 가지고 예술로 그림으로 문학으로 영화로 만드는 것은 천주교 같은 죄입니다. 죄 원리는 그렇습니다. 원리는 그렇고 각자 신앙이 다르고 또 수준이 다르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하시고. 하늘도 땅도 바다도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도, 우리 현실 우리 평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내 신앙 위해서 주셨는데, 안식일을 안식일답게 지킬 때에 이게 우리의 복이지 안식일 실패하면 하늘도 저주 땅도 저주, 바다도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저주 덩어리 됩니다. 왜 안식일을 복이라고 그러느냐 성경에 복이란 말씀이 복입니다. 주일 아닌 날도 설교 듣고 성경 읽고 얼마든지 말씀을 복으로 받을 수 있지 않느냐. 주일날 주시는 말씀이 복입니다. 주일날에 그 복을 가지고 그다음 한 주간에 그 말씀으로 살아가면, 살아갈 때마다 이게 보이지 않는 복으로 바뀌는 겁니다.

요즘처럼 마트 있고 주문 배달 있을 때 말고 한 50년 전으로 돌아가 보지요. 부모들이 급한 일이 있어 3일간 어디 멀리 외가에 갔는데, 초등학교 아이들만 남겨놓고 셋이 3일간 자기들끼리 밥을 먹었으면 안 봐도, 아버지가 벌어 놓은 돈으로 엄마가 3일간 먹을 밥, 반찬, 김치 등을 해놓은 거 이걸 가지고 3일 먹었을 겁니다. 아버지 돈 가지고 가족이 먹고 살았을 겁니다. 아버지 돈 아닌 돈이면 엄마가 몸 팔러 댕겼든지 아니면 도둑질한 거겠지 아니면 얻어먹었겠지. 정상적인 가정의 돈은 밥이든 옷이든 뭐든 아버지 돈이라야 됩니다. 아버지 돈을 가지고 엄마가 아이들 옷을 사 입히든 엄마가 밥을 하던 엄마가 학비를 주던 학원비를 주던 신발을 바꿔주든, 밖에서 벌어온 돈은 아버지 돈이고 이게 쪼개지고 나뉘어져서 밥이 되고 옷이 되고 이게 여행이 되고 신발이 되고, 외식이 되고 웃음이 된 것은 밖에서 땀 흘린 아버지의 땀이 이게 월급으로 엄마의 손을 거쳐 이리저리 나누어지는 것처럼, 그런데 아버지 벌이가 시원찮으면 엄마가 가서 맞벌이해서 맞출 수도 있는 거고, 또 아버지가 기술 배우느라고 못 벌면 엄마가 한 몇 년 또 대신 벌어줄 수도 있는 거고, 이건 뭐 꼭 이래라 저래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밖에서 벌어온 아버지의 돈이 어머니의 손을 거쳐 가정에 군불이 되고, 옷이 되고 음식이 되고 학비가 되고 아이들의 모든 이발이 되고 그러는 것처럼, 그런데 이건 그러지 않을 수가 있지만은 하나님 앞에 주일과 평일의 관계는, 주일날의 말씀의 은혜만 주일날에 말씀의 은혜만 한 주간에, 그 말씀대로 살다가 돌아오는 생활의 복이 되어 집니다. 생활의 복.

아이가 새 옷 하나를 사 입었으면 설 추석이라고. 오늘 추석에 옷 새로 사 입은 학생들 내일이 추석이라는데, 예전에는 추석 전날 옷 한번 설날 전에 옷 한번 그게 전부입니다. 옷이 차고 넘쳐서 지겨워서 전부 쓰레기통에 버리는 통이 돼 놓으니까, 설 추석에 옷 사 입으면 옷에는 참 수준이 낮아 이상한 사람들에게 딱 알맞지. 그냥 뭐 입던 옷 그냥 입고 오는 거지 이게 부자가 되면 그런 겁니다. 부자가 되면 설날이라고 옷 새로 사 입고 그러지 않습니다. 많이 먹어본 사람은 설 추석이라고 음식 이만큼씩 차려놓지 않습니다. 옛날 할아버지 그 위에 윗대에 저 다리 밑에 거지 출신들은 그때가 생각나서 설 추석만 되면 음식 하느라고 정신도 없는데, 설 추석에 음식 많이 하면 조상 욕 얻어 먹이는 겁니다. 신풍사택 설날 추석날 음식 하는 거 보셨습니까? 윗대가 잘 살아오니까 설 추석 되면 그 뭐 예사 평소 먹듯이 먹지 뭔 설이라고 더 먹어, 이제 부자가 되면 그렇습니다. 부자가 아니면 흉내라도 이리 흉내를 내야 부모 욕을 얻어 먹이지 않는 겁니다. 대학을 못가본 집 안에 대학 하나 들어가면 생난리가 납니다. 대학을 지걱지걱 많이 다녀본 가정은 아니 돈 벌면 되지 뭐 대학 그거 뭐 어느 짝에 쓰냐? 이럽니다. 교수가 많이 나온 집안은 교수했다고 그러면 그거 맨날 책이나 들여다보고 눈도 안 좋고 그런 교수를 했냐. 너 아니면 꼭 안 될 만큼 그렇게 유명한 교수면 몰라도 할 게 없어 교수를 하냐. 정말 윗대가 좋으면 신풍에 살면서, 아이 뭐 그냥 주일 지키고 예배 보고 세 끼 밥 먹으면 되지 먼 도시로 가고 교수를 하고 뭔 인류 대학을 가고 뭔 설날 반찬을 차리고 그러냐. 여긴 다 지금 그렇지요 아마? 이제 지금 우리 신풍교회는 다 고급이 됐고 조상들을 갖다가 귀족을 다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서 추석 설이 그냥 그만 이렇게 돌아왔지 않습니까? 이게 정상입니다. 주일은 일주일에 한 번 명절입니다.

주일은 매 주일 명절이고 나머지는 설날이 오든 환갑이 오든 제삿날이 오든 뭐가 오든 뭐가 오든 나머지는 그냥 평일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가 부잔데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외동 자녀인데, 하나님의 날 주일만이 전부고 나머지는 주일날 배운 말씀 주일날 깨달은 말씀 붙들고, 이 말씀으로 한 주간을 그대로 실행하며 살아간다. 비가 오든 바람이 오든 태풍이 오든 날이 좋은 명절이 되든 아니든 말이든, 세상을 떠나라는 말은 아니고 여름이면 여름답게 입고 겨울이면 겨울답게 입고, 명절이라고 전부 가족이 모이면 함께 모이고 이거는 좋지만은, 깊은 마음속에 명절 중에 명절은 매주일 오는 주일이고 날 중에 날이고 나머지는 그냥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기면 기고 아니면 말고. 뭐 그렇지 않습니까? 이게 안식일에 제4계명이고 하늘도 땅도 바다도 하나님이 전부 만들어, 어떤 것도 널 위해서 좋게 만들어놨으니까 안심하고 그냥 어깨 딱 펴고, 조선의 임금의 외동아들이 어깨 펴고 지 멋대로 살듯이 나쁘게는 살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의 나는 하나밖에 없는 자녀니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니 열심히 지키고, 나머지 평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주일날 배운 말씀으로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6일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움직일 때 움직이는 걸 보며 움직일 때마다 복을, 복을 이렇게 바꿔줍니다.

한 달 일을 하면 예전에는 현금이 옵니다. 그 이전엔 쌀을 줬습니다. 그 이전에는 쌀도 없어서 콩을 주고 뭐 보리를 주고 그랬습니다. 한 달 일하면 곡식을 줬고 세상이 바뀌니까 현금 돈을 줬고 세상이 바뀌니까 수표를 줬고 요즘은 계좌로 이체를 합니까? 한 달 일을 하고 수표를 받든지 계좌에 돈이 들어가면 이 월급은 끓여 먹지도 못하고 그걸 로서는 옷을 못 입습니다. 월급은 이걸 가지고 쌀을 사 먹고 이걸 가지고 옷을 해 입고 이걸 가지고 차를 사는 겁니다. 주일날의 말씀을 가지고 월요일을 살면 사는 만큼 이게 신앙의 양식이 되고, 화요일 그 말씀으로 사는 만큼 신앙의 인격이 되고 신앙의 생활이 되고, 인격이 되고 행위가 되고 생활이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복은 저절로 쌓이는 겁니다. 내 그릇이 한 홉이면 한 컵이면 폭우가 쏟아져도 한 컵만 담기고 나머지는 흘러갑니다. 내 그릇이 한 드럼통이면 폭우가 쏟아져도 이만큼만 차고 나머지는 다 흘러 없어집니다. 내 그릇이 태평양 바다가 되면 오는 비 다 내 것 됩니다. 주일의 말씀을 가지고 주일의 말씀을 가지고 하루하루 말씀을 기억하며 그대로 살면, 사는 그 순간순간이 내가 바뀌고 내 행위가 바뀌고 내 생활이 바뀌고 바뀌는 걸 보면서 하나님께서 여기에 필요한 은혜를 가지가지 채워줍니다.

요셉처럼 걸어가니까 요셉에게는 총리를 채워주셨고, 다윗처럼 걸어가니까 승전을 주셨고 솔로몬처럼 걸어가니까 지혜를 주셨고, 지혜를 주셨고 손양원 목사님처럼 50여 년 살아가니까 손양원 목사님의 걸음걸음에 하나님께서 복을복을 복을 줬는데 죽고 나니까 우리 신풍 어른들은, 아니 사람은 좋은데 그냥 죽어버렸지 아들 둘 죽었지 가정 판 아주 그냥 비참하게 다 깨졌지, 참 사람은 좋은데 예수를 믿어 놓으니까 영 저주를 받았네. 라고 그랬습니다. 이게 신풍의 원래 민심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잘 믿어서 복 받았다. 그거는 최신식의 말이고. 30년 전에 와서 동네 조사를 해보니까 이 사람은 좋은데 영 가정이 그냥 예수 때문에 박살이 나버렸어. 에이 교회는 못 쓰는 거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죽고 큰아들 둘째 아들 다 죽었는데 누가 거기다 대고 복 받았다고 하겠습니까? 지금 여기도 한 집에 셋 죽으라. 그러면 하나 죽으면 몰라도 셋 죽으라면 좋아할 집 없을 걸요. 하나 죽으라면 왜 좋지요? 아니 저 남자 죽지도 않고 밥해 줘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데려가면 속이 시원하고 복 받았다고 그러겠지. 그런데 그 남자 시댁에서는 욕을 퍼붓겠지. 너나 가거라 그러겠지. 한 집에 이제 셋 정도 데려간다면 주님 때문에 순교자 셋 나와도 싫습니다. 다 그럴 겁니다. 옛날에는 더 했겠지요. 그분들은 복을 뭔지 몰랐습니다. 세상이 모르는 하늘의 복, 육체로 받을 수 없는 신령한 복, 세상 복도 미개한 그때 주면 그때 주면 복이, 복이 안 되는데 뒤에 복을 주셨습니다.

정치 얘기는 아니고 예를 듭니다. 네가 반드시 5년 대통령이 된다고 확실하게 안다면, 대통령 일찍 해먹고 싶을 겁니까? 뒤에 해먹고 싶겠습니까? 되기만 된다면 대통령은 앞에 하는 게 낫겠습니까? 뒤에 하는 게 낫겠습니까? 뒤에 해야 앞에 것들 다 집어넣지 내가 먼저 해 놓으면 뒷사람이 나를 집어넣는데 그런데 먼저 하고 싶은 이유는, 지금 된 거는 먹으면 내 거지만 뒤에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모두들 이 난리를 부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복을 확실하게 준다 그러면 앞에 받는 것보다는 뒤에 받는 게 더 낫습니다. 왜 그런가? 일찍 세상 복을 받아 놓으면 아이들을 다 버립니다. 성경에 인물부터 성경에 인물부터 역사의 인물 중에 부잣집 아이들 잘 되는데 있는가 봐보십시오. 그 이상하게 그냥 부잣집 자녀 그러면 대개는 그냥 엉망 되는 겁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요즘 부자들은 돈 가진 부자가 아이들을 더 잡아 족칩니다. 돈맛 알고 돈 때문에 건방지면 큰일 난다고 어설픈 부자들이 애들한테 돈을 풀지. 우리 교인들은 아이들한테 용돈 안 풀지요 전부 다? 전부 일 시켜서 돈 벌고 아마 그러지요? 그러면 뭐 아이들 좋아질 거고 안 됐다고 돈 풀기 시작하면 그 집 아이는 어느 집 아이든지 반드시 그거는 바로 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때와 기한을 정하는 겁니다. 저거 좀 일찍 복을 받아야 모두에게 좋겠다. 가끔 가다가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대개는 하나님께서 지켜보다가, 요셉은 30년 고생하고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130년 뒤에 복을 받았습니다. 다 계산하십니다.

주일은 말씀의 복을 받는 날입니다. 줄여서 그냥 여기서는 안식일 날 복이라고 그러는데 복 무슨 복? 말씀의 복. 그 말씀으로 한 주간을 살면 사는 순간순간 순간이 하나님은 전부 복으로 계산을 하시다가, 인간 눈에 보이는 그림은 빨리 줄 수도 있고 늦게 줄 수도 있습니다. 말씀으로 살았는데 복이 늦어지면 안 봐도 그 복은 엄청 커집니다. 은행 이자야 하도 이자가 요즘 싸니까 오래 두면 이자손해 보지만은, 7% 이자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사택사모 사고 나고 받은 보험금이 7% 이자입니다. 엄청 센 겁니다. 이자 많아지면 한 몫에 빼서 연보하려고 한 3년 4년 놔뒀더니마는 보험회사에서 찾아가시라고 울고불고 생난리를 다합니다. 7% 이자인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늦어지면 7%겠습니까 70%겠습니까 700%겠습니까 감당 못하도록 커집니다. 근데 인간이 그릇이 작으니까 빨리 주면 뽀시시 웃고, 뽀시시가 아니고 배시시 웃고, 조금 뒤에 주면 막 하나님이 이럴 수 있느냐고 데모가 일어나 가지고 그냥, 도무지 그냥 정신이 없도록 만들고 전부 절에 간다고 협박을 하고 이 판입니다. 이래 놓으니 하나님이 좀 거래를 하고 크게 키우고 싶어도 그릇이 작으니 이게 참 탄식입니다. 나무도 나무답게 기르려면 10년 만에는 못 기르는 건데, 나무를 기를 때도 백 년 뒤를 본다 그럽니다. 나무를 길러도. 겨울 김장 채소야 뭐 채소는 뿌리면 석 달 만에 나옵니까?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큰 게 나옵니다. 쥐는 아마 2주일이 안 걸릴 겁니다. 병아리는 3주던가요? 돼지가 석 달 삼주 3일에 나옵니다. 소는요? 사람처럼 열 달을 채우고 나옵니다. 송아지 값 돼지 새끼 값 병아리 값 생쥐 값 값이 다르지 않습니까? 종류에 따라 큰 것은 큰 인물은 큰 인재는 천천히 준비를 시킵니다. 뒤에 큰 걸 만들려고 좀 늦추고 있는데 막 빨리 복을 안 준다고 오도바이처럼 따발총처럼 냄비처럼 바르르 끓지 따르륵 하지 난리가 나니까, 애들이 울면 일단 먹이고 보는 것처럼 아이고 너도 작은 거 먹고 떨어져라 이런 판이 되는 겁니다.

좀 하나님과 10년 50년 거래하실 분들은 없습니까?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자손 믿음의 조상들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약속을 안 지키는 거 보니까 이건 무한한 걸 줄란 가보다 소망 속에 갔다 그랬습니다. 우리의 그릇 우리의 포부 우리의 좀 시야 좀 넓혀서 주일은 말씀의 복을 받는 날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미리 조심하고 예배의 말씀이 중심이 되고, 그 말씀으로 한 주간 실행을 하게 되면 한 것만큼은 이미 복은 돼버렸습니다. 이제 이 복된 것을 복으로 보이도록 하나님께서 때와 기한을 정하는 것은, 그거는 알아서 하시니까 놔두고 오늘 저녁. 내일이 추석인데 예전 같으면 추석이라고 난리가 났는데 지금은 이제 추석 없이 조용하니까 참 얼마나 좋은지 이게 정상입니다. 이제 그러다가 주일까지 같이 대충 그냥 휴일로 만들어 벌이는 통에 이건 또 불행입니다. 명절의 주일이 함몰되어 사라지는 것도 불행, 명절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좋고 차분하게 연휴를 보내니까 이거는 좋은데, 그 바람에 이제 연휴에 주일을 볶아 먹고 없애버린 거는 더 큰 불행, 예나 지금이나 믿는 사람의 명절은 날 중에 귀한 날 주일밖에 없고 나머지는 평일입니다. 그리고 평일도 평일답게 이제 이런 저런 날 하나님 앞에 복되도록 평소의 말씀으로 그대로 진행하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연휴로 멀리 오고 가는 차들이 많습니다. 만사 안전위한 기도는 꼭 하십시다. 우리가 잘 믿지를 못했으니 좀 더 살아야 채우고 가지 않겠습니까.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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