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2.9.2 출20;10 자기 < 부부 < 자녀 < 주변, 주일의 은혜 단계는 상대를 이해하는 계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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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2.9.2 출20;10 자기 < 부부 < 자녀 < 주변, 주일의 은혜 단계는 상대를 이해하는 계산으로

관리1 0 100 2022.09.0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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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2 금새

제목 : 자기 <부부 <자녀 <주변, 주일의 은혜 단계는 상대를 이해하는 계산으로

찬송 : 180장(주가 맡긴 모든 역사)

본문 : 출애굽기 20장 10절 -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너는 안식일을 지켜라, 자기와 부부까지를 확대해서 살펴야 됩니다. 또 네 아들이나 딸이나 하나님이 맡긴 너의 가족 너의 앞날 너의 희망 네가 지도해야 되는 호적의 자녀 말할 것 없고 신앙의 자녀까지 포함하셔야 됩니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육체의 자녀만 여기 아들 딸이 되지만 구약에도 양자는 있었습니다. 또 자녀를 주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신약이 되면 성경을 읽으실 때 시간과 공간에 막히지 않고 읽으면 좋습니다.

신앙의 아들 신앙의 딸도 있어야 됩니다. 호적의 내 아들 내 딸만 붙들고 죽는 날까지 이어지면 주님은 우리에게 나는 왜 널 위해서 죽었어야 되느냐, 그런 질문이 나오게 되어 집니다. 넌 호적에 네 아들과 딸만 너의 자녀다 그러면 난 왜 널 위해서 죽었어야 되느냐, 주님은 하나님인데 너희들이 하나님이냐 주님이 육체로 올 때 이스라엘 유대인으로 오셨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구원은 유대인들 밖에 없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부인하지만 그 유대인들은 우리 구약 이렇게 성경 읽는 거 기분 나빠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주신 우리의 것인데 너희들은 이방인인데 뭔 이방인들이 난리냐 라고 합니다.

불신자 자기 부모 제사에 옆집이 와서 뭐 감 놔라 배 놔라면 좋아할 사람 있습니까, 내 집 귀신인데 주님은 왜 하나님이신데 우리 위해 그 고난 다 받으셨던가, 사랑함으로. 이렇게 성경에서 표시해 놨습니다. 사랑함으로.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라서 좋아하는 이성의 사랑 애정 끼리끼리 좋아서 주고받는 사랑 우정이라 그럽니다. 애정 우정. 그다음, 내가 낳은 내 아이라 좋아하는 것은 육의 사랑 부정 모정이라 그럽니다. 애정 우정, 모정에 울고불고 난리하지만은 주님이 우리를 애정이겠습니까, 우정이겠습니까, 모정이겠습니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냥 주기만 하는 사랑 이걸 아가페 사랑이라 그럽니다. 조건 없는 주기만 하는 사랑.

우리는 한 줌의 흙이고 뭐 인간의 숫자가 많아 도움 받을라 또 아니면 뭔 매인 것이 있어 그런가 전적 사랑함으로, 애정 우정 모정이 아닙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인데 그 사랑을 받아 놓고 하나님께 하나님의 사랑 받아 놓고 호적의 가족만을 위해서 다 쏟아 부으면 가족조차 떼 내버리고 자기 하나만 아는 인간도 있지만 부부라도 가족이라도 사이좋으면 좋습니다마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족 사랑으로 묶어버리면 참 아쉽다 그럴 겁니다. 우정으로만 그쳐버려도 그럴 겁니다. 사랑의 실력도 없는 인간이 아프리카까지 비행기 타고 선교 간다고 설치는 것도 탈이지만은 너의 가족 먼저 사랑하고 그리고 주변을 좀 살피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네가 구원의 사랑이 좀 넓어지도록 가족 외에 더 돌아볼 사람이 없느냐, 말로 자세라도 그리 될 때 우리 위해서 죽은 그 사랑 네가 잊지 않는구나, 이게 보람인 겁니다. 그게 장한 겁니다. 그게 은혜를 더해줄 귀한 자세가 되어 집니다. 한 몸이라는 부부도 자기 하나만 아는 사람, 부부끼리도 자기만 아는 사람 부부 둘은 좋은데 자녀들은 뭐 이리 되든 저리 되든 별로이 감이 없는 사람 부부 자녀 자기 가족은 똘똘 뭉쳐 단합이 되고 단결이 되는데 형제자매는 아예  관심 없는 사람 다 차례대로 문제입니다.

부부 둘 좋은 거는 좋은데 아내 남편 사랑하느라고 자기를 너무 무리해 놓으면 자기 일찍 죽어 놓으면 또는 장애 걸려 놓으면 상대방에게 결국은 좋겠습니까, 날 위해서 날 조심하고 상대방 위해서 날 조심하고 또 상대방 나와 한 몸 되어 신앙으로 하나 되기 위해 또 낳을 수 있는 정성 다하여 부부 둘 손발이 맞아야 되는 것이고 부부 둘 좋은 결과로 아이를 가졌으면 그 아이까지 확대된 자기로 삼아 아들이다? 강한 자녀? 억센 자녀? 잘난 자녀? 그 자녀 중에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딸이라 좀 곱고 좀 섬세하고 그런 자녀도 또 이런 저런 자녀 전부를 이걸 더 확대하여 신앙의 아들 신앙의 딸도 있어야 됩니다.

제게 만약에 신앙의 아들이란다면 남반이든 여반이든 교회 굵은 일 큰일 그런 일을 말을 하면 아들 같은 교인일 것이고 섬세하게 그리고 신앙의 아름다움을 가졌으면 자녀 중에서도 딸과 같은 신앙의 사람 될 겁니다. 아들이나 딸이나 너만 하나님의 날 챙겨 하나님의 은혜 받지 말고 부부 함께, 자녀 함께, 더 넓혀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가 지시하면 움직이는 종업원 토요일 저녁 12시까지 품꾼 일을 시키면 그 사람의 다음 날 주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루 일당을 줬을지라도 토요일에 일을 너무 많이 시켜 놓으면 주일날 무리가 될까 이거까지 염려하고 계산할 줄 알아야 품위 있는 사장, 좋은 사장, 실력 있는 사장, 오래 가는 사장 될 겁니다. 일당 줬다고 일당만큼 박박 긁어 다 가져오고 월급 줬다고 한 달을 빈틈없이 다 부려 먹고 난 사장이라고 종업원과 사장의 사이니 자를 때 가차 없이 잘라버리고 죄 되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내가 내 권리를 철저하게 밭두렁 논두렁 경계까지 내 거라고 한 톨 남김없이 박박 긁어대면 나는 내 울타리 안에 것만 긁어댔다고 생각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경계 밖에 이웃의 밭과 논을 손대게 돼 있습니다. 야문 사람 철저한 사람 자기 거 야물게 철저하게 거둬 대는 사람 따지는 사람 안 봐도 옆집 넘나 들고 있습니다. 자기야 자기 기준으로 보면 안 그랬다 그러지. 우리나라처럼 경사지가 많은 이런 논밭에 논두렁에 제일 이쪽 경계 쪽을 소로 가지고 깊이깊이 파면 태풍 오면 이게 허물어집니다. 허물어지면 좀 더 밀고 들어가고 좀 더 밀고 들어가고 애매하게 밀고 들어가니 억센 집에서 밀고 들어가니까 약한 집에는 그냥 마음이 아파도 밀리는 겁니다.
 
지금 우리 집회야 뭐 좀 자리가 있으니까 그렇지만은 과거 이렇게 무릎 위에 딱딱 붙는 그런 집회에 덩치 큰 사람 생각 없이 그냥 턱 퍼지르고 앉아버리면 옆 사람 좀 밀려나가고 좁아지는 겁니다. 백 목사님과 기차를 두 번인가 타봤습니다. 완행열차, 손님이 빽빽할 텐데 한 자리에 세 명씩 앉을 때입니다. 한 자리에 두 좌석 표 끊고도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타니까 우리 좌석도 세 자리로 좁히고 세 자리로 좁히면서도 주로 경상도 사나이 대장부들 다리 딱 이렇게 앉지 않고 딱 무릎을 이렇게 새 각시처럼 무릎을 딱 이렇게 자기 몸을 이렇게 간추려 이렇게 부산서 대구까지 가는데 표 끊고도, 그때 연세가 70에 가까워 자리 양보할 연세는 아니지만은 자기 몸을 딱 조여서 이렇게 딱 끝까지 깎는 이런 게 장한 사람이고 위대한 사람입니다.

제 돈이라고 제 돈 과시 착, 해버리고 내 돈이지만은 내 돈 과시하는 만큼 옆에서는 그거 소리 없이 치는 겁니다. 타고나기를 기골이 장대한 사람 뼈가 통뼈에 강하고 이렇게 운동을 해서 근육이 좋고 이런 사람 막 골목을 으시대고 거시대고 가면 자기는 툭툭 치지 않아도 뭔가 눈빛에 그 기운에 약한 사람들은 기압에 눌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딱 눈길을 내리 깔면서 이놈들, 이런 자세 그게 조선 오백 년 양반 놈들의 참, 나라 말아 먹을 짓이었습니다.

임진왜란에 일본군 들어왔을 때 그때 양반들이 이 놈들, 하고 다 나섰더라면 오기도 전에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저것들끼리 양반 놀음하고 자기 민족 부려 먹을 때는 쌍놈이라고 뭐 같이 다 해놓고 왜놈들 쳐들어오니까 양반들 도망간다고 왕부터 전부 다 튀고 쌍놈들만 나라 지키느라고 그 나라가 쌍놈의 나라입니까? 양반의 나라고 임금의 나라지. 이게 나라가 돼 먹지 않으려면 이리 돌아가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으시대고 거시대고 살아도 교회 올 때는 어깨를 좁히고 발걸음을 좁혀서 약점이나 잡힌 것처럼 교회 올 때는 좀 이렇게 좀 숙이면 누가 보더라도 교회 전체 공기가 겸손이구나, 조심이구나, 하늘의 하나님을 어른으로 삼아 조심하는구나, 이러면 좋은 겁니다. 예배당 밖에 가서는 기도 못 펴다가 예배당만 오면 막 그냥 전부 내리 깔아 기압을 주는 것 그런 것도 다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종일지라도 네가 부려먹고 네가 억압할 수 있는 사람일지라도 “밭모퉁이까지 베지 말아라” 이게 성경입니다.

과수원 몇 만 평 하면서 썩은 거 하나까지 싹 다 걷어 들이면 그 몇 만 평 과수원위를 날라가는 까치가 주인 욕을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여 저런 인간을 갖다가 복을 주셔서 저런 짓을 하게 합니까! 사탄은 뭐 박수를 치고 잘한다, 딱 긁어대라, 네가 욕심보를 마구 내야 네 주변에 전부 내 부하 다 만든다, 그것도 모르고 그냥 놀부 위에 놀부처럼 하면 아끼는 게 아닌데 원래 그러지 않던 사람들이 공회 복음, 공회 말씀을 잘 못 듣고 허송하지 말아라, 허비하지 말아라, 이 말씀만 딱 은혜를 받고 밭모퉁이까지 거두지 말라 이런 말씀 잊어버리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너의 육축이나” 육축이라니요? 네 집에 닭 한 마리 네 집에 고양이 한 마리 네 집에 강아지 한 마리도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의 생명이 있으니 생명 가진 걸 볼 때는 배가 고프면 뭐 잡아먹을 수는 있지만은 잡아먹을 때 잡아먹을지라도 필요 없이 죽이거나 장난삼아 죽이거나 학대하지는 말아라.

짐승을 함부로 대하면 사람을 대할 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되어 집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냥꾼은 후손의 문제가 생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업으로 사냥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에서가 사냥꾼이 직업인데 직업이 잘못돼가지고 그리 된 거 아닙니다. 사냥을 하다 보니까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게 자꾸 직업이 되어 피 보는 것이 직업이 되어 생명을 자꾸 죽이고 생명을 과도하게 죽이는 게 이게 자기도 모르게 습관이 돼 가지고 하나님과의 연결을 우습게 알고 끊어버렸습니다. 짐승에게 생명 주신 것은 짐승을 위해 준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저 짐승도 생명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가르치는 겁니다. 생명이 뭔데? 생명 없으면 그냥 끝나버립니다. 그걸 보며 생명이 제일 중요하구나, 생명이 뭐지요? 하나님과 연결입니다. 하나님과 연결 없으면 넌 산송장이다, 하나님 연결 없이 부자 될 수 있고 학자 될 수 있고 정치가 될 수 있고 하나님과 연결 없이 주일날 권투선수해서 챔피언도 할 수 있다, 안 봐도 그건 다 산 송장의 노름이다.

그 짐승에게 생명을 주시고 사냥을 주시고 우리가 짐승을 잡아먹게 한 것은 생명 없는 존재는 어찌 되느냐, 생명 있는 존재는 어찌 되느냐, 생명의 유무를 비교해 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의 생명을 보는 겁니다. 하나님 없으면 난 심판에 잡아먹을 짐승과 같다, 지옥 갈 육체 지옥 갈 분량만 많아지는 겁니다. 돼지가 잘 먹어서 몸집 불리면 마지막에 잡혀서 음식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고 하나님 없이 살면 지옥에 보낼 내 생애, 지옥에 보낼 내 활동만 많아지는 겁니다. 생명이 있어야 된다, 생명이 소중하다, 그래서 내 육축 가축까지도 주일을 안식일을 기억해야 됩니다.

요즘은 가정에 식모들인 사람이 없지요? 이전에는 어느 정도 좀 살면 식모를 예사롭게 들였습니다. 세끼 밥을 못 먹으니까. 세끼 밥만 주고 식모가 되는 겁니다. 네 집에 밥 얻어먹는 식모라도 네가 월급 주는 가정부라도 좀 지나치게 그러지 말아라, 여기도 다 지나치게 한 분들 다 계실걸요? 제가 초등학교 때는 집에 식모 누나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바뀌어가며. 자다가 누나 물, 그러면 물을 떠다 줍니다. 참 평생에 죄송하기 그지없지요. 그 누나도 어느 집의 귀한 딸인데 세끼 밥을 못 먹어 저희 집에 식모살이 온 겁니다. 식모 산 누나가 밤이 되면 잠이 더 올 거 아닙니까? 대게 나이가 지금 생각해 보면 10대 후반인데 더 잠이 올 건데 주인집 아들  놈이 물, 그런다고 또 물 턱 , 그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때는 몰랐는데 이런 걸 제 윗사람들이 잘 설명을 해서 이렇고 저렇다 이해를 시켰더라면 아마 좀 낫지 않았을까? 이런 게 아쉬워서 지금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도 돈 주면 집에 오고 가는 사람 서로가 그러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직업을 다 가집니다. 나도 다른 집에 가서 월급 받고 일하고 나도 우리 집에 또 아이 부탁도 하고 서로 서로 그럽니다. 믿는 사람은 내가 남의 집에 돈 받고 일할 때는 돈 값 하기 위해서 한 번이라도 일 더 해야 되고 내가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토요일 저녁까지라도 노력하는 것이 맞고 내가 돈 주고 일 시키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좀 돌아보셔야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서로가 자기는 다 남들한테 잘해줬다 그럽니다. 문제는 그 남들이 자기가 생각할 때는 어떠냐? 반드시 양면을 가지고 가는 이런 거 필요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남의 입장 돌아보지 않으면 하나님 심판대에 설 때 죄송하게 됩니다. 그때는 다시 고치지를 못 합니다. 오늘 남의 입장을 자꾸 돌아보는 우리가 되어 집시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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