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2.8.24 계1:9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려 할 때 주변과 다르게 드러나는 표시, 비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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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2.8.24 계1:9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려 할 때 주변과 다르게 드러나는 표시, 비교의 선택

관리1 0 91 2022.08.2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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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4 수새

 

제목 :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려 할 때 주변과 다르게 드러나는 표시, 비교의 선택

 

찬송 : 122(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본문 : 요한계시록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이 노년에 밧모라는 섬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교회 기록에 역사에 밧모섬으로 귀향이 되었더라. 주일을 지키려 노력하다보면 주일에 받은 은혜로 세상을 사는 것은 당연히 주님을 따라가는 환란이며 그래도 주의 통치를 받는 나라로 참음, 인내하다보면 세상에게 시달리는 것은 환란과 나라와 참음으로 나가는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자기 주어진 현실에 전해야 되는 말씀, 또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다. 예수 증거라는 말은 주님은 저런 분이겠구나. 말씀으로 사는 우리, 우리의 말투 우리의 구별 우리의 생활 우리의 인내 우리의 참음, 우리의 고난을 지켜보는 주변이, 저게 돈 때문에 그럴까? 저게 공자의 도덕 때문에 그럴까? 원래 성격이 저럴까? 주님 때문에 그럴까? 주님 때문에 그러하다면 그게 바로 예수의 증거입니다.

 

보면 알게 되는 것, 들으면 알게 되는 것. 주님은 저렇겠구나. 이게 바로 예수의 증거입니다. 한 주간 그 생활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자기의 개인 이익적으로는 밀리게 되고 손해 보게 되고, 그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밧모라는 섬으로 갈 필요도 없습니다.

 

주일을 뚜렷하게 주일로 놓고 지키려다보면, 믿는 표시가 나게 되어 있어서 아무리 친구라도 아무리 동료라도 심지어 가족이라도 뭔가 속에 사상이 다르고 언행이 다르다보면 섬처럼 따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술 좋아하는 친구 10명이 어울려 다니는데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도 술은 입에 대지 않아버리면 온갖 말은 다 하겠습니다마는 술 먹는 아홉과 그 중에 술 안 먹는 하나가 되면, 술 먹는 그 분위기 때문에 술 안 먹는 사람은 술 먹는 사람 속에 마치 섬처럼 떨어지게 되고 돋보이게 됩니다. 좋게 보인다는 말이 아니라 달리 보인다 그 말입니다. 달리보이면 비교가 되는 겁니다. 어느 것이 더 나은가? 아니 술 없이 어떻게 친구가 되겠는가? 술로 친구가 되는 아우, 건강에 좋지 않고 돈에 좋지 않고 인격에 좋지 않고, 더군다나 저것은 자기가 믿는 신앙에 좋지 않아서 마시지 않는다고 하니, 그의 신앙이 친구들 사이에 눈에 띄이게 됩니다. 달리 보이니까.

 

학생이 학교를 다니며 대학생인데, 군대 가기 전에 1년 같이 다닌 학생들이 3년 군대 갔다 와서 다시 만나가지고 조용하게 첫 인사가 3년 전에 그때에 동전하나 떨어진 것을 이렇게 보는 것을 옆에서 봤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봤으면 당연히 주울 것 같은데 줍지 않더라 왜 줍지 않았냐? 그 학생은 공회 학생이고 배운 게 있어서, 떨어진 돈 줍는 것 남의 것이고, 남의 것 주웠으면 주인에게 돌려줄 책임이 있는데 동전에 표시가 없으니 어떻게 돌려줄 것이며, 그것을 경찰이나 누구한테 주면 그 사람 것 되지 그 어떻게 찾겠으며 돌려주겠습니까. 차라리 보고 그냥 가버리면 돈 찾는 사람은 그 돈이 아쉬울 때에 자기 다닌 곳을 돌아보고 오게 되어 있습니다. 분실물은 그냥 두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그런데 머플러처럼 바람에 잘 날아갈 수 있는 것이면 위치가 바뀌면 못 찾을 수 있으니 돌 같은 것으로 살짝 얹어서 도망가지 않도록 할 수도 있겠지마는 그것도 안 하는 게 좋은 것은 머풀러 잃어버린 사람이야 바람에 날렸다 계산하고 조금 더 넓게 찾겠지. 결국 그 사람이 못 찾든지 아니면 찾을 가치가 없으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서 쓰레기로 가든지 그것마저 주워 입어야 되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들어가게 되겠지. 그건 바람으로 사람의 심리로 사람의 시선을 주권하시는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이지 내가 끼어서 그것을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그럴 것은 없다. 하나님의 주권까지가 그 뒤에 박혀 있는 겁니다. 없으면 굶는 것이고 얻어먹을 것도 없으면 굶는 형식으로 마지막에 오라는 뜻이니, 주님이 오라면 어떡하겠습니까 가야지.

 

목에 식도암 걸려놓으면 천하 없는 부자라도 마지막에 굶어 죽습니다. 기술이 발달해서 굶어 죽지 않도록 링겔을 갖다 꼽으면 링겔 들어가는 만큼 더 고생합니다. 링겔을 꼽아서 살만하면 사는 것이고 링겔을 곱아서 고생을 더할 정도면 꼽을지 안 꼽을지 연구해봐야 되는 것이고, 만사 천하를 만든 하나님이 나를 머리털까지 헤아리고 있으니, 감기이니 조심해서 나으라는 뜻인가? 조심해서 낫는 게 맞습니다. 또 이 정도면 조심하고 건강 유지해서 치료하는 게 맞으면 운동할 수 있습니다. 음식 조절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도적질 하지 말찌니라남의 것을 빼앗아 오기까지 주워오기까지 해야 되겠는가?

 

믿는 사람은 무조건 살고보자. 불신자는 세상 밖에 없으니 있는 수단방법 다해서 살고 봐야 되고 하루라도 더 살아봐야 되지만은 믿는 사람은 세상을 끝내면 더 좋은 천국을 간다? 정말 그렇게 믿느냐? 정말 그렇게 믿으면 세상은 천국을 마련하는 기간이니, 기회이니 이것을 포기하거나 내버릴 수 없고, 성실하게 살지만 자연을 보나 건강을 보나 여러 가지를 볼 때 주님이 부르시는 때다 싶으면, 더 좋은 곳을 갈 준비하는 것이지. 세상이 좋으니까 죽어도 못가겠다고 버티고 몸부림치고 난리치고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그러면 종교가 아니고 신앙이 아닙니다. 강단에서 큰 소리 치고 나중에 너 그런 일 마주치면 정말 그럴 수 있느냐? 이게 확정이 될 때에 드릴 수 있는 말씀이고, 확정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이게 맞을 것 같다 그 정도만 말씀 드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꾸 세월 속에 좋아지면 소개하는데 확정이 되는 것이고, 확정의 기쁨까지 되는 겁니다.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믿다가 믿는 것 때문에 친구가 떨어져서 외톨이가 되면, 사도 요한이 밧모라는 섬에 갔더니 나도 드디어 밧모라는 섬에 가게 되었구나. 아니면 아니 믿는 것도 서럽고 손해가 많은데 믿다가 따돌리고 외톨이가 되면 밧모라는 섬에 귀향을 가는데 내가 밧모라는 섬에 귀향 가기까지 어려워져서 되겠냐, 그러면 믿지를 말아야지. 그 말이 되는 겁니다. 길은 간단하게 하나입니다. 공부 열심히 하려면 책 봐야지. 친구하고 놀 시간 없는 겁니다. 놀래 공부할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실컷 놀고 나중에 공부가 잘 돼서 성공하느냐? 그러면 놀고 성공하면 된다. 놀고 성공하는 것은 모두 타락한 인간들이 좋아하는 길이라 남들 놀 때 함께 놀고 성공하는 길은 아마 없을 겁니다. 놀고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지 않냐 머리가 탁월하겠지. 그 사람이 만약에 더 공부했으면 더 나아졌겠지. 더 나아질래? 덜 나아질래? 실패할래? 성공할래? 죽을래 살래?

 

선악과부터 항상 인간은 자유성의 존재이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를 주시고 네가 결정하고 네가 책임져. 이게 인간의 근본입니다. 죄는 내가 저지르고, 뒤치다꺼리는 저 사람이 하면, 그 자체가 죄인 겁니다. 어린 아이에게도 말 안 들으면 어려서 그렇지만은 눈치 하나라도 손가락 끝 하나라도 이것은 아니야 이것은 좋은 것이야, 선택에 대한 댓가가 엄밀하게 조용하게 수준에 따라 꾸준하게 가서 이리되면 이리되고 저리 되면 저리되는구나. 강아지 대소변을 가려도 계속해서 이건 돼 이건 안 돼 반복이 되면 강아지도 다 알아듣습니다. 사람이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주일을 중심으로 평일은 다음 오는 주일을 준비하는 주일의 날이요. 또 한편으로는 주일날 받은 은혜로 실제 살아가는 주일이요. 주일을 중심에 두고 마음을 기울이다보면 저절로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밧모섬까지 밀려가고 끌려가고 외톨이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친구 없이 어떻게 사냐? 너 결혼해서도 친구하고 살래? 친구 좋아하는 분들, 결혼을 하지를 말아야지. 친구 좋아하는 사람들, 부부끼리 좋아서 서로 쳐다볼래? 부부끼리 결혼해 놓고 각자 자기 친구들하고 놀래? 그러면 아이가 태어나면 어떡할래? 결혼했으면 모든 친구보다 부부 서로 좋아해서 쳐다봐야 될 것이고, 아이 생기면 좋아서 보호하기 위해서 기르기 위해서 여기에 집중해야지. 집에 오면 처자식 있고 밖에 가면 친구가 있어서 55? 그거 부부되기는 어려운 겁니다.

 

주님을 믿었다면 주님이 주인이니까 전부이니까 주님이 머리이니까, 귀찮으면 머리 떼어 놓고 다니다가 바쁘면 머리를 또 모셔놓고 살고 뗐다 붙였다 그럴 것인가? 아예 주님과 신앙의 사이는 뗐다 붙였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머리에 이고 살면 머리로 붙이고 살면 다른 사람은 머리가 없는데 나만 머리가 있으니 표시가 나는 것이고 표시가 나면 이상해지는 것이고 밧모라는 섬에 밀어낼 것도 없이 똑같이 앉아 있어도 이상하게 그거 다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 회식 자리에 사장님 있고 20~30명 쭉 앉아 있는데 사장이 모두 술 한잔 따라서 건배 하고 그러는데, 혼자 잔을 들지 않으면 분위기 모양이 이상합니다. 예전에는 회사 못 다닙니다. 지금은 그것 때문에 짜르면 사장 교도소 들어갈 판이라 짜르지는 못 해도 영 분위기 이상해지는 겁니다. 주일을 중심에 놓고 살다보면 이것은 기본입니다. 남자 틈에 여자 있으면 여자가 돋보이는 것이고 여자 틈에 남자 하나 있으면 남자가 돋보이는 것이고, 어른만 있는데 아이가 하나 있으면 모두들 이상하게 쳐다보고 좋게 쳐다보는 것이고, 온 지리산 사방 천지 백리 산인데 백리, 백리 산 속에 범 하나 돌아다니면 백리 지리산 사람이고 짐승이고 전부 떨고 그러는 것이고 그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직장도 경제도 친구도 일정도 생활도 말도, 주일을 중심에 놓고 주일 준비 때문에 또는 주일 이후 때문에 달라져야 되고 구별이 되어져야 되고 표시가 나야 되고, 주일 때문에 표시 나는 이 주일 표시와 주일 아닌 것과 비교를 해볼 때에 어느 것이 더 좋으냐? 좋은 대로 가는 겁니다. 주일 표시하고는 살기가 어렵다. 손해 봐서 안 되겠다. 곤란하다. 가치가 적으면 버리는 것이고.

 

주일 때문에 주일에 얽혀서 살고 붙들고 살다보니까 이게 보배다. 보배는 놓을 리가 없는 겁니다. 손톱은 길면 짤라도 이 심장이 이게 덜컹 덜컹 한 번씩 애 먹인다고 심장 빼내는 사람 없습니다. 그건 빼면 바로 죽으니까. 목숨 걸고 어떤 일이 있어도 머리와 심장은 지켜내는 것이지.

 

주일은 한 주간의 중심입니다. 모든 평일은 오는 주일을 마음에 두고 준비해나가는 과정입니다. 한편으로는 지나간 주일을 풀어 주일 그 은혜 그 결심 그대로 사는 날입니다. 지난 주일을 기억하며 오는 주일을 준비하며 그리고 주변과 달라지는 것이 정상이며,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표시가 나는 겁니다. 그 표시가 날 때에 주님은 이 땅 위에 주일 때문에 저게 표가 나는구나. 표가 나는 만큼 관리가 되어집니다. 그게 주일날 더해지는 은혜로 반복이 되는 겁니다.

 

오늘은 수요일, 주일 지난 삼일입니다. 주일과 주일 사이에 삼일을 넣어 삼일예배를 드리는 것은 주일을 지난 삼일, 오는 주일을 준비할 수 있는 삼일, 그 가운데 삼일 저녁 예배를 두어 이 수요일 예배를 둔 이유도 이게 하필이면 삼일 저녁인 이유도 주일과 주일 사이에 기둥을 하나 더 설치하는 겁니다. 기둥이 너무 멀어서 가운데가 불안하면 하나 덧대는 원리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일을 못 지킬지라도 마음속에 주일을 기억만 하고 생각만 하면 생각만 해도 이게 영향을 뻗치고 이게 은혜가 되고 그게 도움이 되어집니다.

 

 

1-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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