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2.8.3 시73:21 성소에서 깨달음, 신앙양심으로 만나는 것, 어두울수록 정성을 모아 동행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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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2.8.3 시73:21 성소에서 깨달음, 신앙양심으로 만나는 것, 어두울수록 정성을 모아 동행노력

관리1 0 63 08.03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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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3 수새

 

제목 : 성소에서 깨달음, 신앙양심으로 만나는 것, 어두울수록 정성을 모아 동행노력

 

찬송 : 101(주 예수 대문 밖에)

 

본문 : 시편 73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마음이 하나일 때 진실이라 그럽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면 진실인데 그 마음이 복잡해져 버리면 이게 산란이 되어집니다. 죄인이 죄를 지어도 죄짓는 마음 하나로만 달려가면 잘못된 진실이지만은 진실은 진실입니다. 죄인도 죄 짓는데 빨라지고 무식한 사람이 진실하기 때문에 거칠고 무작합니다. 무식이 용감하다 그러지 않습니까? 도둑이 도둑질하는 것만 계산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이 애써 벌었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또 그 가족이 얼마나 아플까? 이거저거 많이 생각하면 마음이 산란해 지고 도둑의 마음이 산란해 지면 도둑질 할 때 용감이 나오지를 못합니다. 전쟁도 그렇고 장사도 그렇고 그 어떤 것이든지 한쪽으로 마음을 모아야 되는데 마음을 하나로 모았는데 그 방향이 틀려지면 돌아설 수 없이 일념으로 엉뚱한 길 가게 되어집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마음 모으기는 쉬운 것이고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일편단심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신가? 이렇게 마음을 모아 버리면 그러면 그 마음이 간단해지고 진실해지고 좋아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계산하기가 어려울 때는 성경에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면 됩니다. 성경에 아무 말씀이나 살펴볼 것도 아니고 내 양심에 내가 들은 말씀 내가 기억하는 말씀 내 마음 속에 최근에 말씀 기억하는 말씀 내 양심에 가책이 되는 말씀 그 말씀 하나를 붙들고 살살 풀어가다 보면 하나님의 마음은 이렇겠구나 알게 되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시편 73편을 적은 분이 나는 깨끗하게 신앙생활 했는데 죄 짓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모두가 잘 될까, 이 악인이 저렇게 막 가는 사람이 제 멋대로 사는 사람은 잘 되고 새벽마다 두려워하며 하루 종일 주의 눈치 보고 사는 사람은 만사 이렇게 펴 나가질 않고 어려우니 이게 뭘까? 이런 고민 이런 고통 속에 마음이 흔들려졌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흔들려진 마음을 성소에 들어갈 때에 17절 하나님을 만난 다음 성소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구약의 성소는 성막 성전을 지어 성막 성전 제일 깊은 안을 지성소라 그럽니다.

 

하나님을 뵙는 곳. 신약은 우리가 성전이니 내 눈으로 보는 것 내 귀로 듣는 것 말고 내 눈과 귀가 듣고 나면 욕심과 감정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그것도 말고 욕심과 감정을 부추기는 내 속에 있는 지성 지식으로 들어가고 이성으로 들어가면 이게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들리고 보이는 대로 움직이면 감각으로 사는 사람, 본능으로 사는 사람 들리고 보이는 그 속으로 좀 더 깊이 열고 들어가면 희로애락이 있고 욕심이 있습니다.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서재가 있어 이게 뭐더라 과거에 들어놓은 게 있고 사람이 그동안 쌓아놓은 지식이 있습니다. 좀 더 신중해집니다. 그 지성 안으로 들어가면 지식을 가지고 판단을 하는 계산과 이치를 가지고 따져보는 마음이 있습니다. 따져보는 마음을 이성이라 합리적이라 그럽니다. 여기까지 들어가면 이제 양심을 만납니다. 양심의 가책 그래도 사람이 이렇지 않을까? 그 양심을 붙들고 그 다음, 왜 죄인은 잘 되고 왜 주님 앞에 조심하는 우리는 이렇게 만사가 어렵습니까? 이렇게 양심을 찾아 그다음,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할 때 그 양심이 그냥 양심이 아니라 양심 안에서도 따라 하십시다, 신앙 양심(신앙양심) 신앙 양심까지 들어갈 때 그때서야 이제 하나님께서 준비가 됐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 신앙양심 함부로 들어가는 거 아닙니다. 욕심이 마구 흔들어 버리면 양심은 도망을 가서 신앙양심은 흔적도 없습니다.

 

회의에 욕심이 사회를 보면 양심은 발언도 못하고 도망갑니다. 맞아 죽을까 봐. 늑대가 사회를 보면 양들이 회의에 오겠습니까? 발언하겠습니까? 잡혀 먹으려고. 늑대가 산 속에 회의하면 이리 솔쾡이 살쾡이 뱀 이런 것들만 회의합니다. 그러면 양을 잡아먹어야 되겠습니까? 말아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만장일치로 그 잡아먹자고 나옵니다. 그 사람들 양심 보나 안 보나 깨끗합니다. 혼동 되는 게 없습니다. 생쥐가 나와서 사회를 보면 뭐 이런 죄 저런 죄 별의별 쥐들만 모이니 그 회의에 누가 오겠습니까? 내 마음에 욕심이 먼저 사회를 보면 양심은 찾지를 못합니다. 발언 안 하고 숨어 버립니다. 내 마음의 회의를 내 감정이 회의를 하면 감정과 맞서는 마음 양심은 사라져 버립니다. 욕심 감정 이런 것들 가지고는 양심은 아야 나서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지성이 나와야 양심이 한 마디를 하지. 들은 지식 아는 지식 가지고 있는 지식을 지성이라 그럽니다. 문제는 지성적인 사람 지식적인 사람 배운 사람이 사회를 서면 마음속에 양심 중에 그 지식에 편드는 사람들만 모입니다. 그건 양심이 아닙니다. 화인 맞은 양심. 양심은 눈치를 보지 않아야 되는데 신앙의 양심,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주인 된 그런 양심 하나님은 뭐라 그럴까? 성경의 말씀은 어떠할까? 이렇게 되어 지고 이렇게 찾아갈 때 굽어보시는 하나님이 만날 준비가 되었구나, , 준비가 되나 마나 뭐 그냥 만나러 오시면 되지.

 

아이가 얼굴을 씻었든지 뭐 빗을 빗었든지 말았든지 내 아이니까 오랜만에 만나면 부모님이 아이 만나는 면접에 씻고 오너라, 입고 오너라, 머리 빗고 오라 그러겠습니까? 보고 싶은데 그냥 왈칵 만나는 거지. 아이 때는 그렇습니다. 그렇게만 자꾸 구별 없이 치대고 살면 서른 살 50이 되어도 철없는 사람 됩니다. 막 가는 사람 됩니다. 많은 사람을 쥐어박는 사람 됩니다.

 

어려도 왕궁의 왕자들처럼 만인을 다스리는 임금님이 아버지니, 아버지니 품안에 달려갈 수 있지만은 지켜보는 모든 궁궐의 사람들 이 나라 제일 높은 사람들 다 지켜보니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하고 너도 앞으로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될 것이니 네가 열 살이면 아버지 앞에 갈 때는 입어야 될 옷이 있고 씻고 머리를 빗고 만백성 보는 가운데 네가 제일 앞장서서 그 아버지 앞에 조심하라 할 때, 나중에 네가 왕이 되면 만백성이 너를 조심하는 거다, 네가 아버지라고 그냥 대나 개나 맨날 세살처럼 억지나 부리고 들어 눕고 그냥 마구 가서 안기면 지켜보는 모든 만백성과 나라의 충신들이 저 개망나니 저거한테 나라 맡겨놓고 목숨 걸고 싸웠다가는 나라가 무너지겠구나, 저거 왕 갈아치워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이 들어갑니다.

 

부모 자녀 사이도 부모 자녀 사이 나름이지 한 끼 얻어먹어야 되는 다리 밑에 거지 엄마하고 다리 밑에 거지 딸하고야 오늘도 한 끼 먹고 버티는 게 생존이지만은 지켜보는 사람들을 책임져야 되는 책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전체가 분산이 되고 분담이 되고 위치가 있고 질서가 있어야 이게 다 돌아가는 건데 제일 위에 있는 네가 모범을 보이고 그다음, 네 아들이 모범을 보여야 그게 질서가 있지, 경찰서장 아들놈은 도둑질을 하든 음주운전을 하든 남을 쥐어박든 아,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안아주고 사랑으로 품어주고 남의 집 아이들은 질서를 안 지키면 세상이 어찌 되겠냐 막 추상같이 엄하게 전부 잡아놓고 난리가 나면 온 주민들이 어, 법이란 센 놈이 마구 잡아먹는 맹수의 세계구나, 그 나름대로 자기 힘대로 다 해버리면 결국은 그게 경찰서장과 제 아들한테까지 좋을 것인가? 내가 불편해도 내가 먼저 법을 지키고 내가 남의 눈을 생각하고 질서와 순서를 지킬 때 사회와 주민 전체가 바르게 되어 지고 전부가 안정되고 바르게 되어져야 위에 있는 너도 좋고 중간에 있는 나도 좋고 밑에 있는 만백성이 서로서로 좋은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네가 윗사람이냐? 중간이냐? 아랫사람이냐? 네가 제일 꼭대기에 앉아 네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스리고 너 원하는 대로 움직이니 네가 너와 너의 가정을 제일 먼저 모범을 보여야지. 당연하지 않습니까?

 

내 마음 속에 욕심이 항상 자리 잡고 흔드는 사람, 내 마음속의 감성 감정 느낌이 앞장서서 만사를 흔드는 사람, 느낌만 없다면 뭐 그냥 뒤집어 버리는 사람, 불안해서 이거 뭐 그냥 봄 되면 봄바람 날 거고, 가을 되면 가을바람 날 거고, 기분 좋으면 도장 다 찍어댈 거고 기분 나쁘면 다 쳐내버릴 것이고, 그 감정을 어떻게 다 맞출 겁니까 세살 먹은 애도 버릇을 잡아야 될 건데 임금님이 좋으면 나라 곳간 다 풀어서 백성들에게 다 인심 쓰고 나라 살림과 전쟁은 누가 할 겁니까? 임금님 기분 나쁘면 나라 백성 절반 귀향 보내고 또 다음 날 마음 바뀌면 안 보낸 것들 다 보내버리고 두세 번만 해 놓으면 나라가 뒤집어집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 들거나 강건할 때에 변치 않고 한 길을 지켜내겠느냐 내가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그럴 수 있겠느냐 그럴 때에 작던 크던 책임자라 그럽니다.

 

우리는 목회자든 교인이든 나이에 상관없이 세상에 상관없이 믿는 사람은 한 명, 한 명이 하나님만을 모신 천하의 어른들이고 책임자들이고 그 연습을 해가지고 천국의 영원한 나라에 한 분야씩 하나님의 대리 통치를 하는 총독들이 될 겁니다. 우리 밑에 하나님이 붙여주신 천군 천사 수 없이 붙어 끝없는 영계를 통치하며 나아갈 겁니다. 한 명, 한 명이 하늘나라 하나님 오신 영원한 왕이 될 사람들인데 왕궁의 왕을 더럽게 길러놓으면 나라가 더러워지고 왕궁에 왕자가 막 가면 나라가 막 가서 망합니다. 왕과 왕자는 왕이며 왕자가 되는 순간 공인입니다. 몸조심하는 겁니다. 나는 이렇게 슬펐습니다, 좋았습니다, 말로 끝나질 않습니다. 책임자 판단 하나에 온 나라가 휘청해버립니다. 백성만 쥐어 박히는 거 같은데 마지막에는 많이 그래놓으면 임금은 자기한테 손해가 돌아옵니다. 내가 날 위해서 신중해야 됩니다.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시대가 어둡고 어지럽습니다. 어둡고 어지러워지면 그다음, 어려워집니다. 어려워지면 전체가 어려워지면 혼자 잘 되는 수는 없습니다. 다 배고픈데 우리 집만 따뜻하게 잘 먹고 잘 살면 도둑이 들어오고 강도가 들어옵니다. 변란이 일어나면 나부터 처단합니다. 다 잘 먹여 살릴 수는 없지만은 어두워지고 어려워지고 어지러워지면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간곡하게 기도할 뿐입니다.

 

이번 집회를 앞두고는 그냥 재독 30년 그 다음 설교 집회로 바꾸고 아홉 번을 지나 이번이 열 번째입니다. 뭐 아홉 번 했으니 열 번째야 전문가가 되고 기술자가 되고 습관이 되어 대충 해도 뭐 그만큼은 하지 않겠는가? 운전이 처음이 어렵지 10년 운전을 해서 이제 운전이 잘 익어지면 뭐 그까짓 거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너 혼자 잘 하니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른손을 거두시면 살아도 송장이고 죽어도 송장이고 잘 되면 더 큰일이고 잘못돼도 애 터지고 그렇습니다.

 

천 번을 생각하고 만 번을 생각해도 이 좋은 세상에 먼 산속까지 가서 그래도 놀러 가면 뭐 가겠지마는 뭔 허구 날 하루 여러 번씩 했던 소리 또 하고, 했던 소리 하고 뭔 소리해도 하나님 소리밖에 더 하겠습니까? 뭔 소리에도 세상에 깊이 빠지지 말라 그 소리밖에 더 하겠습니까? 마음은 세상이고 세상이 천국보다 나은데 세 살 먹은 것도 싫은 말 하면 얼굴을 벌써 돌리고 인상이 달라지는데 좋은 말하고 살살 달래도 올까 말까 하는 세상에 시대와 다른 소리 사람 속에 들어있는 감정과 다른 길을 마치 수술을 해야 되는데 자기가 건강하고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데 생사람을 갖다가 잡아 수술하자면 다 도망가고 몇 명 오겠습니까?

 

그러면 요즘은 이런 식이 아니라 옛날 어려워 죽을 지경일 때는 함께 모여 주님으로 한번 해결책을 찾아보자, 그래서 은혜가 있든 없든 모였지마는 지금은 천국보다 나은 세상인데 뭘 수술하고 뭘 또 그럴 거냐, 귀찮은 소리 들으면 양심의 가책이나 되지 안면 때문에 체신 때문에 입장 때문에 마지못해서 몇 명이나 올까 좋아서 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게 정상이라.

 

주일이 흐려졌듯이 예배가 다 무너졌듯이 집회다운 집회는 이리저리 슬슬 다 흩어지고 무너져 몇 명이 되든 말든 우리나 남았다 싶을 만큼 이렇습니다. 그나마나 점점 이렇게 자꾸 줄어갈 건데 몇 남지 않은데 뭘 그렇게 불씨를 살릴 만큼 가치가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주님 아니면 안 되겠고 주님의 오른손 붙들려면, 그 오른손이 나를 붙들어 주게 하시려면 주님 앞에는 감정이 아니라 말재주가 아니라 돈이 아니라 인격을 모으고 신앙의 양심으로 상대를 해야 되겠으니 참 주님 아니면 안 되겠구나.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그래도 집회에 취지가 있으니 그 취지는 이렇게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더욱 더 필요하구나 해서 불편해도 어려워도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우리가 애를 쓸 때, 애를 쓸 때 주님이 오른손을 내밀고 우리를 붙들면 참 감사히 복되게 헤쳐 나갈 것이고 딱 보니까 요즘은 추세가 그렇지 않은데 하고 우리가 먼저 마음으로 한 발 빼버리면 주님은 못 잡아서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기계처럼 억지로 강제로 끌고 물가로 가지는 아니합니다.

 

새벽에 나오는 교인들이 마음에 애 터지는 마음을 모아 시대가 어둡다, 그건 좀 생각하면 압니다. 어두우니 참 어지럽다, 정신이 없습니다. 어둡고 어지러우니 알고 보면 어려운 때다. 그럼 내가 헤쳐 나갈 수 있는 때냐? 주님이 붙들어 주셔야 되겠다. 주님이 붙들어 주시려면 내가 내 정성과 마음을 모아 내가 주님과 동행하려 이아침에도 애를 써야 되겠다. 마음을 모읍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천 번을 생각하고 만 번을 생각해도 배고플 때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 살려달라고. 병원 가기가 어려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를 때는 1년에 두 번씩 집회를 가서 살려달라고 애 터지게 기도를 했습니다. 먹고는 살아도 가난한데 어찌 좀 복을 주시면 좋겠다 싶을 때는 모였습니다. 지금은 잘 먹고 길게 살고 뭐 집집마다 전부 지상낙원입니다. 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사정을 해야 될까요? 애 터지는 마음이 없으면 집회란 필요가 없는 겁니다. 정말로 애가 터지는 사람인가? 그런 마음으로 그런 집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1-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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