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2.7.15 출16:18 절대 주권과 예정, 인간의 자유성의 성격과 내용. 둘의 모순 속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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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2.7.15 출16:18 절대 주권과 예정, 인간의 자유성의 성격과 내용. 둘의 모순 속 일치

서기 0 81 2022.07.15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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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분 55초부터 정상녹화본입니다. 그 이전은 보조 녹음본으로 영상과 음성을 맞춰놓았습니다. 



220715 금새
 
제목 : 절대 주권과 예정, 인간의 자유성의 성격과 내용. 둘의 모순 속 일치
 
찬송 : 60장(날 구원하신 예수를)
 
본문 : 출애굽기 16장 18절 -
 
오멜로 되어 본 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금번 8월 집회 준비하는 교재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예정 영원무궁토록 만사는 하나님의 결정대로 하지 인간에게 티끌만큼도 시간도 순서도 분량도 맡기지를 아니하신다, 이게 첫 번째 주제입니다. 하나님이 100% 붙들고 계신다면 우리는 기계며 기계의 부속품이 아니겠는가? 기계는 느끼지를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느낌을 주십니다. 느낄 뿐이 아니라 생각도 주십니다. 느낌에 그다음, 생각에. 느낌은 단순히 목격과 같습니다. 그다음 생각이란 마음의 활동입니다. 따져보고 비교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다음, 판단하고 느낌의 생각을 주시고 행동까지 하게 해주셨습니다. 이걸 하나로 줄이면 자유성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이 인간임은 걸어 다니니까 인간인가? 원숭이도 걷고 연습시키면 개도 걷습니다. 곰은 아주 잘 걷고 잘 뜁니다. 그렇다고 인간 되는 거 아닙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다. 오랜 세월 철학에서 주장해 왔습니다. 집에 기르는 강아지 고양이 다 이성 있습니다. 이성이란 따져보고 비교하고 그다음에 돌아가는 이치를 따지는 마음 그런 마음을 이성이라고 그럽니다. 이치 이, 자 입니다. 개 고양이 다 이성이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다. 이러면 동물들이 이성 없는 동물도 있냐? 이렇게 되물어볼 겁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우리도 인권이 있는 인간이겠네 라고 그럴 겁니다. 기억도 이성도 사랑의 감성도 느낌도 생각도 판단도 인간도 동물도 다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뭔가 걷는 것도 아니고 이성도 아니고 인간은 양심의 동물이다. 양심은 인간만 있다. 개도 고양이도 양심이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인간인 것은 본질이 뭔가? 자유성입니다. 동물은 제멋대로 못 하는가? 동물도 느끼고 동물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결정하고 그다음 뛰고 싸우고 행동합니다. 그 자유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의 둘을 앞에 놓고 죄와 의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가? 이게 인간에게만 주신 자유성입니다. 써 먹는 것은 자유인데 선악과를 두고 한 번 아담이 죄를 지어버렸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죄 짓는 자유만 있지 의롭게 살 자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 지은 아담은 중생 되지 않은 모든 인류는 죄와 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기 때문에 그 모습은 인간인데 속은 자율성이 없는, 그 말은 인간다운 인간이 아닌 동물 중에 하나가 돼 버렸습니다. 그냥 고등동물이라 그 말은 괜찮습니다. 죄든 뭐든 위에 있으니까 인간은 고등동물이다. 그 외에 말 함부로 못합니다. 범죄 후 아담 중생 전 모든 인류는 죄와 의를 두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인간에게서 자유성을 빼버리면 원래 하나님이 만든 인간이 아닙니다. 죄와 의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인간 이게 원래 인간이라 그런 인간을 참 사람이다 그럽니다. 범죄 전 아담 오늘로 말하면 중생 후 믿는 사람만 참 사람입니다. 더 정확하게 참 사람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아담은 만들 때부터 참 사람이었고 범죄 후 참사람은 죽었고 오늘 우리는 중생이 되면 참사람이 될 자격을 주시고 그럴 입장을 주십니다.
영이 중생이 되었으니 자기 영의 인도를 받으면 영의 인도를 받은 마음, 영의 인도를 받은 마음에 붙들린 몸 이 시간, 이 상태, 이 연결은 참 사람. 사람다운 사람이고 이거는 인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영과 상관없이 제 마음대로 마음이 제 마음대로라 말은 알든 모르던 그 속에 악령과 하나가 돼버렸습니다. 악령에 붙들린 마음 몸이 잘 따라가든 못 따라가든 마음이 벌써 영과 끊어지고 악령에 붙들렸으면 이 사람의 심신은 옛사람입니다. 옛날에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사람이 아니면 잡아먹어도 되는가, 죽여도 되는가, 그건 사람이든 아니든 사람이었던 사람 언제 중생 될지 모르니, 언제 중생 될지 모르니 이건 하나님께서 특별대우를 시켰습니다. 죽는 날까지 모든 사람은 택자일 수 있다, 택자일지 모른다, 더 나아가 택자가 아니겠는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면서 최종의 판단은 이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딱 보니까 나쁜 녀석이다. 저건 희망이 없다 라는 이 최종의 판단을 그러나 또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최종을 유보하고 우선은 10년 20년 평생 하는 짓을 보고 저건 인간 안 되겠다, 말도 마음도 그렇게 가질 수는 있지만은 정말 최종적으로 절대 인간이 되지 않을 사람이냐? 하나님이 바꾸면 다 바꿔진다.
최종 순간에 바뀌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마지막까지 지켜보기 전까지는 판단하지 못한다, 이렇게 유보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복 받을 자세입니다. 대대로 거지로 살고 인간 돈 벌기 싫고 돈 벌기 싫고 돈만 쓰는 걸 보니 저 인간이 집 사고 부자 될 리는 없다, 지금까지를 봐서 그리 보인다 라는 뜻을 담아 절대 부자 안 된다, 이리 말할 수는 있지만은 장담하고 저 인간 앞으로 절대 안 된다고 정말 못을 박아버리면 심판하는 죄가 되어 하나님 자리에 하나님은 밀어내고 자기가 앉는 큰 죄 됩니다. 혹시 설교든 우리가 생활하던 단정을 하기는 하지만은 모든
단정 뒤에는 늘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배정, 하나님의 주권 인도가 어찌 되는가 하나님께 주권이 있지 인간에게는 그런 거 없습니다. 목격담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운영하시고 미리 정해놓은 대로 배정하시고 영원무궁토록 돌아가니 영원 전 계획된 하나님 그 결정대로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성경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모든 물질계와 영계의 입자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 기본 요소까지 변동은 없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자유성을 주셨다. 그 자율성은 죄와 의를 두고 판단할 수 있는 자유성을 주셨다. 이 둘은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다 결정했는데 뭔 인간에게 결정권을 주셨는가? 하나님 쪽에서 보면 틀림없이 100% 결정입니다. 인간 쪽에서 이쪽을 보면 분명히 자유성이 있는 걸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면 여러분의 앞을 봅니다. 문 열고 들어오는 분이 여러분을 보시면 뒤만 보입니다. 똑같은 한 사람을 두고 전 얼굴만 보고 이제 오는 분은 뒷꼭지만 봅니다. 제 말도 맞고 들어오는 분의 말씀도 맞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입니다. 서 있는 위치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집니다. 앞에서 본 것과 뒤에서 본 것이 당연히 다를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쪽에서 보면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운영됩니다. 영원무궁토록. 미리 다 정해져 있습니다. 내가 선 내 위치에서 앞날을 보면 내 마음대로 살면 됩니다. 하나님 욕을 하든 교회를 다니든 말든.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습니다. 그러면 이 둘이 마주치는 그 순간을 양립을 할 수 있느냐? 병존을 할 수 있느냐? 이게 모순 없이 되어 질 수 있느냐? 그건 우리가 자아가며 알아가는 신앙의 성장의 과정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어릴 때는 모릅니다. 아무리 무작해도 자꾸 세월이 가며 경험을 많이 해보면 믿든 말든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참 인간이 생각대로 되는 거 없다, 결국은 마지막에 이 말이 나옵니다. 된 것도 알고 보면 내 마음대로 된 것 아니고 안 된 것도 내가 안 해서 안 된 것이 아니고 참 인간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정한다, 불신자들은 하늘을 모르니까 하늘을 말했고 우리는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말합니다.
 
18절에 많이 거둬봐야 남음이 없고 적게 걷은 자도 모자람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조절의 역사를 하시는데 왜 그러느냐? 각자에게 주신 필요한 양이 있습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위치가 있고 분량이 있고 그에게 주셔야 되는 게 있고, 주지 않아야 되는 게 있습니다. 물고기는 해변에 나와 걸어 다니고 산책을 하면 물고기가 아니 됩니다. 그래서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물속에 물고기처럼 살고 싶어도 생긴 모양도 숨 쉬는 것도 그렇게 못 하게 돼 있습니다. 존재에 따라 역할에 따라 그렇습니다.
 
큰 것은 하나님의 여정이 맞겠는데 생각 같이 아주 작은 것도 세밀하게 다 예정이겠는가? 큰 게 예정이고 절대 주권이면 조금씩 좁혀보면 결국은 다 그렇습니다. 큰 예정이 예정대로 돌아가려면 큰 예정을 형성하는 작은 예정도 맞물려서 같이 돌아가야 됩니다. 알고 보면 맞물리지 않은 인간이 없고 공기가 없고 물질이 없고 그런 존재가 없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지구의 모든 공기가 전부 서로가 서로에게 부딪혀 있고 연결이 돼 있습니다. 여기 공기 하나가 돌아다니는데 얘만 돌아다니고 나머지 공기는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이게 돌아다니면 다른 공기가 밀립니다. 그리고 위치가 바뀝니다. 그러면서 결국 지구 대기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면서 날씨와 환경을 조절합니다. 그리고 공기와 모든 기류 대류 이 환경에 영향 받지 않는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주까지 다 그렇습니다. 예전엔 별과 별 사이는 100% 텅 비어 있다 그랬습니다. 과학자들이 무식할 때는. 무식한 과학자들이 조금 눈이 떨어지고 나니까 우주에 텅 비었다고 생각한 곳을 가득 채우는 그 무엇이 있다, 없을 리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걸 다 밝혀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만물이 서로 다 얽혀 있습니다. 하나도 제 멋대로가 없습니다. 난 내 멋대로 넌 너 멋대로 따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는 것 같은데 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작은 게 예정이면 큰 것도 예정이고, 큰 것도 예정이면 작은 것도 예정이고, 한국이 예정이면 세계도 예정이고, 세계가 예정이면 한국도 맞물려 예정입니다. 인체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이 있고 각자에게 주신 위치가 있고 그 사명에 따라 필요한 양식의 분량이 있더라, 이리 퍼가던 저리 퍼가던 마지막 그리 되도록 해놨습니다. 나머지는 공연히 수고만 한 겁니다. 부자 안 될 사람이 당연히 부자 되겠다고 평생 설쳐봐야 헛일 한 겁니다. 그렇지만은 하나님이 부자 되도록 소망을 주셨으면 되고 안 되고는 하나님의 결정이고 부자 될 소망으로 노력은 해야 그게 복입니다. 사명입니다. 교인이 은혜를 받고 말고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목회자 안 되고는 안 되도록 인도를 하시면 부끄러워도 죄송해도 나서야 되고 설교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은혜 되도록 있는 힘을 다해야 됩니다. 여기까지는 충성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은혜가 되고 말고는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나야 뭐 말 주변 없고 나야 뭐 지나온 세월이 그렇고 요즘 사람들이 강팍하니 아무리 준비해서 전해 봐야 듣나? 은혜를 받나? 대충 전해도 그냥 간단하게 마치는 게 좋지, 그래도 하나님이 은혜를 받게 만들어 버리면 은혜가 되고 은혜가 되는데 준비가 잘못되면 전한 사람은 죄인 됩니다. 되니까 하고 안 되니까 말고 그건 큰일 날 일입니다. 할 일이냐 말 일이냐 하나님이 결정하고 할 일이면 하는 거고 안 될 일이면 마는 거지. 은혜를 끼칠 만한 사람이 노력하고 끼쳐야 은혜가 되고 그래야 보람이 있고 그래야 하는 거지 그건 하나님이 하실 말씀이지 종 된 우리 입에 담을 것은 아닙니다.
 
원리가 그런데 실제로도 봐보면 저런 목사가 저런 도둑질을 하고 저런 사기를 치는데도 저렇게 수만 명이 모일까? 라는 교회들이 많다고들 그럽니다. 대부분은 충성하는 좋은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확실하게 작정하고 나쁜 인간이 타고난 말솜씨로 게으른데 말솜씨 몇 가지로 몇 만 명을 모으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교인들은 또 은혜를 받는다는 착각 속에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 만들면 또 그래야 됩니다. 교인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으면 그 목사는 충성을 했고 의인인가? 그건 별개입니다.
 
이게 출애굽의 첫 순간 한 달 만에 만나를 주시며 과거를 정리하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세팅 시켜놓은 배정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성격을 규정해 놓은 말씀입니다. 은혜란 네가 끼친다고 끼쳐지고 만다고 말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한다, 너 할 일은 성실하게 있는 힘을 다해서 준비해라 전하거라, 여기에 만나를 거둬 오는 것도 그렇습니다.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자기 건강관리도 그렇습니다. 타고나기를 우리 집안은 단명이라, 어제 전성수 목사님 가족묘에 관리하는 분을 묘소에 가서 보고 왔습니다. 그 가정은 40대에 간경화 간암으로 다 돌아가셔서 사람이 없습니다. 윗대로부터 그냥 40대가 되면 전부 간으로 다 돌아가십니다. 40에 다 죽으니 실컷 퍼마시고 죽자, 그 사람 죄인입니다. 40에 다 죽어도 더 살지 말지 하나님의 결정이고 나로서는 40에 죽어도 술은 좋지 않으니 끊고 죽어도 충성은 해야 되고 남들이 게으르다고 욕을 해도 조심은 해야 된다, 그러면 의인입니다. 하나님이 결정하는 겁니다. 건강관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되는 것은 내가 해야 건강해진다 해서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만큼 하나님이 주신 분량만큼은 하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하는지는 하나님께서 하는 겁니다.
 
“많이 거두지도 말고 적게 거두지도 말아라” 많이 거둬 와야 될 형편 주시면 남이 욕을 하든 말든 많이 거둬 와라 많이 걷어오면 많이 먹느냐? 많이 거둬 왔는데 많이 먹을지 안 먹을지는 하나님의 결정이다. 많이 거둬 왔고 많이 먹었는데 많이 먹어서 많은 힘을 발휘할 건지 말 건지 그것도 하나님이 결정한다. 매 현실 하나님이 주시는 인도를 보며 우리는 성실하게 진심을 다해 충성하는 것 여기까지다, 원리 때문에 10대들 20대들 젊은 사람을 향하여 요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아, 요즘 사람이 그런 말을 듣나? 듣든 말든 하지 않으면 안 될 환경을 주시면 해 놓고 보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죽은 자를 살리든, 죽어 갈 자를 살리든, 원래 죽기로 돼 있는 사람 죽는 데 필요 없는 말이 되든, 그것이 훗날 예언이 되든 허공 속에 사라지든 뒤는 하나님의 결정이고 오늘은 내가 걸어갈 길을 걸어가는 것 오늘 하루 살아가는 기본 자세를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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