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2.7.13 출6:1 가나안 과정의 엘림, 목적을 이루기까지 모든 출발과 과정에서 중단 말고 끝까지 걸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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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2.7.13 출6:1 가나안 과정의 엘림, 목적을 이루기까지 모든 출발과 과정에서 중단 말고 끝까지 걸어갈 것

관리1 0 43 07.13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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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3 수새
 
제목 : 가나안 과정의 엘림, 목적을 이루기까지 모든 출발과 과정에서 중단 말고 끝까지 걸어갈 것
 
찬송 : 18장(내 진정 사모하는)
 
본문 : 출애굽기 16장 1절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출애굽 하는 달을 1월로 정했습니다. 그냥 이스라엘의 법이 그렇습니다. 출애굽하는 달로 정월 1월을 삼으라. 출애굽기 12장 유월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10일 동안, 정월 10일간 준비하고 그 다음 10일이 되면 유월절에 사용할 양을 지정하고 그리고 1월 14일이 되면 그 양을 잡아 유월절을 지켜라, 그리고 출발한 것이 출애굽입니다. 세상에서 천국으로 마음먹고 출발, 세상의 임금 밑에 눈치 보고 살다가 하나님을 모시고 출발한 그 달이 1월이고 그 출발이 14일입니다. 여기 한 달을 지나 제 2월 15일이라 날짜를 구체적으로 딱 찍었습니다. 세상 생활 400년 이제 하나님의 나라로 출발하는 한 달이 지날 쯤 이 사이에 홍해 바다 있었고, 마라의 쓴물 사건 있었고. 그리고 엘림에 이르러 물 샘 열둘, 열두 지파를 위하여 물 샘을 열둘을 주셨으니 그만하면 그냥 앉아 있고 싶고 눌러 살고 싶었던 때입니다. “그곳에 장막을 치니라“ 장막이란 출발을 향하여 나아가는 잠깐의 숙소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세상 살다 아무리 좋아도 가야 할 곳은 천국이지 중간에 쉴만하다고 눌러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어렵게 살다가 모처럼 가정이 쉴만하고 사회 분위기가 괜찮고 또 복잡했던 교회가 조용해지고 그러다 보면 그만 거기에 영 눌러 앉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 그런 인간의 연약성이 있습니다. 영 눌러앉아 버리면 출애굽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인데 학교 가서 공부하느라고 집에서 나왔는데 등교한다고 가방 들고 집에서는 나오고 학교 대문 앞에는 도달하지 아니하고 엘림에서 눌러앉아 버리면 출애굽을 해서 좋은 게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실패입니다. 항상 신앙의 이런 면은 좀 생각하셔야 됩니다. 성경을 읽지 않던 사람이니 성경을 읽으라고 그러는데 성경은 읽고 그 속에 담아 주신 하나님의 뜻은 모르고 성경을 읽는 것은 안 읽는 거 보다는 나은데 성경은 읽어 놓고 글을 읽었지 그 속에 있는 진리와 내가 깨달아야 되는 말씀을 몰라 버리면 이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 율법은 그림자다. 그림자를 왜 주셨느냐? 율법은 참 형상이 아니다. 가짜배기를 왜 주셨느냐?
 
좋은 일은 주님이 구원 하는 것이 좋은 일이고, 율법은 좋은 일에, 장차 오는 좋은 일에 그림자다. 참 형상이 아니다. 처음부터 좋은 거주시지 왜 좋은 주님의 구원은 미루어 두시고 그림자며 참 형상도 아니라 하신 율법을 왜 몇 천 년 주셔서 이렇게 어렵게 만드시나? 그림자가 있어야 실상이 있고 참 형상을 주시기 위해서 준비가 필요해서 율법을 주셨던 겁니다. 학교를 가기 위해서 집을 출발을 했습니다. 출발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학교까지 들어가야지. 책을 펴는 게 잘못 사람입니다. 펴야 그 속에 배울 것을 배우지. 순서가 있도록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으니 출발만 했다고 성공 한 줄 알지 말고 목표가 어딘지를 보고 그 목표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 출발이 좋으니 과정도 끝까지 인내로 걸어가고 마지막에 주신 목적 달성 할 때까지 걸어가라. 이 면으로 이 말씀을 살펴 봐 보십시다.
 
애굽은 세상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라 문제가 아니라 하늘나라 못 가도록 붙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나와야 됩니다. 나오면 하늘나라인가? 가나안까지 들어가는 데는 40년의 광야생활이 있습니다. 애굽을 떠나는 것도 40년 광야를 통과하는 것도 가야 할 가나안 때문에 그렇습니다. 목표를 잊지 말고 목적 도달 때까지 인내로 견뎌라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으로 잊지 말고 오늘 하루도 간밤에 데려가지 않으시고 건강하게 눈뜨고 예배당에 왔으니 성공인가? 오늘 하루를 말씀으로 잘 살아야 지난밤이 편안했던 것이 복이 되고 이아침에 새벽 예배가 의미가 있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남가니까 따라가고, 가니까 따라 가고, 하니까 따라하고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 안 하던 것은 이상하고 하던 것은 자연스러워지듯이 주일을 쉬는 것도 습관이 되어 그리 될 수 있고, 주일의 예배도 습관이 되어 그리 될 수 있고, 신앙의 모든 것이 집회까지도 도둑도 하던 도둑질 한다고 습관이 되어 계속 반복하는 중에 또 하나가 되어 지면 신앙생활 자체는 좋은 것이나 쭉정이로 끝이 납니다. 농사를 지어 알곡을 추수 하려 했는데 껍데기는 있고 껍데기 속에 알맹이가 맺어지지 않았으면 1년 농사 뭐가 되느냐? 모든 신앙과 모든 매일의 생활을 출발도 하고 목적을 잊지 말고 그 목적 달성 할 때까지 꾸준하게 이어지며 끝까지 걸어가는 자기가 되도록 특별히 살펴봐보십시다.
 
이스라엘 자손 자자손손 온 회중이, 한 명도 빠짐없이 엘림에서 떠났더라, 엘림에서 떠났더라. 물 샘 열둘이 있고 종려 칠십 주가 감사 했으나 가야할 여행을 위하여 잠깐 주신 휴식이고 배려지 거기에 영 눌러 붙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려 신앙생활 잘 하다가 결혼해서 좋은 남자 만나 가정이 편안해지니까 이제 신앙생활 다 한 줄 알고 영 가정에 눌러 두 번 다시 얼굴도 못 볼 만한 분들도 더러 계십니다. 이 결혼, 어려운 시절에 신앙생활 잘하고 좋은 아내 만나 이제 가정생활 따뜻해지니까 천국 다 온 줄 알고 신앙 졸업을 해버린 분들도 계십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목회 은혜 받아 개척하고 교회 발전 위해서 애를 쓰다가 교회가 한 일, 이백 되고 예배당 가지고 안정적이 되면 목회자들은 천국에 다 온 줄 알고 그만 이제 천국에 왕 노릇 하듯이 그냥 눌러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편 1편 1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않는다” 악인의 꾀는 시작하는 방향입니다. 자세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걸어가는 길이 가야할 길이냐 아니냐 이게 의입니다. 그래서 길이라 그랬습니다. “악인의 꾀를 쫓지 않는다” 자기중심으로 출발, 자기중심으로 생각, 방향을 잡는 걸 말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길? 이거 뭐 좋은 마음이든 목표든 상관없이 길 선택이 잘못되면 그 길 따라 엉뚱한 데로 갑니다. 의인의 길에 선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악인의 꾀 잘못된 출발이 아니라 바른 출발 방향을 잡았고 가는 길은 의인의 길에 섰다면 다 되었느냐? 바로 출발하여 바로 걸어가다가 주저앉으면 중단이 되면 “오만한 자의 자리”라고 그럽니다. 이제 목표달성이 다 됐습니다.
 
좋게 출발했지, 바른 길 선택하여 잘 가고 있지, 길인데 길에 가다가 눌러 앉고 집 인줄 알면 방심을 했다는 말입니다. 아직까지 목적지는 남아 있는데 방심을 했다는 말이 되어 집니다. 방심이라니, 이걸 “오만한 자라” 이렇게 좀 매몰차게 기록을 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출발하고 바른 길을 걷고 있으니 좀 일어나서 끝까지 가라 격려해 주시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아무리 출발이 옳고 길이 옳아도 가다가 중단하면 힘이 없어 중단했고 사정이 있고말고 별별 위로를 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 방심 오만으로 치닫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울이 처음부터 나쁜 사람 아닙니다. 온 이스라엘의 모든 면으로 가장 뛰어났고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큰 전쟁을 승리했던 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다가 중간에 다윗을 만났습니다. 가다가 다윗을 만났으면 다윗 덕에 업혀 가지고 다윗 덕에 함께 가고 아 더 좋아야 될 건데 다윗이 눈에 보이니까 그때부터는 이게 경쟁인 줄 알고 이게 원수인 줄 알아 원수는 블레셋이며 이방 나라인데 다윗을 원수로 잡는 바람에 끝이나 버렸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출발했고 의인의 길에 서서 죄인의 길을 떠났는데 잘 가다가 그만 내가 왕인데 그래도 왕인데 자기를 자꾸 왕이라고 인식을 하고 남이 불러 주니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왕이니까 다 된 줄 알았습니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왕이라 가야할 길이 더 멀고 책임진 사람이 더 많은데 그리고 주저앉고 사울은 그걸로 끝나버렸습니다. 오늘의 사울 되지 말고 출발의 바른 자세 가는 길 꼬박꼬박 바르게 새벽예배 정도 나오면 의인의 길에서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끝까지입니다. 이 정도에서 그만 은퇴하고 퇴직생활 하고 남은 날들 여유생활 한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참 건방지다, 건방지다 라는 말에 더 강조가 가면 오만하다 차고 넘친다는 말이 되어 집니다. 끝까지 겸손하게 천하가 흩어지든 어려워지든 어두워지든 나는 독립으로 주님만 모시고 무언의 용사로 갈 길 끝까지 간다. 오늘 하루도 날이 저물도록 끝까지 흔들리지 말고 계속 가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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