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2.7.12 출15:27 광야 40년 준비의 마지막 엘림, 환경 불편 거침없이 주님의 인도만을 보고 따르는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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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2.7.12 출15:27 광야 40년 준비의 마지막 엘림, 환경 불편 거침없이 주님의 인도만을 보고 따르는 감사를

관리1 0 81 2022.07.12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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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2 화새
 
제목 : 광야 40년 준비의 마지막 엘림, 환경 불편 거침없이 주님의 인도만을 보고 따르는 감사를
 
찬송 : 120장(주와 같이 가게 됨은)
 
본문 : 출애굽기 15장 27절 -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오는 3대는 가나안을 약속으로 받았고 약속으로는 받았으나 다 받지는 못하고 약속에 그쳤습니다. 4대째 요셉이 되니 가나안은커녕 400여 년 계속되는 외국 생활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목적에 두시고 먼저 에덴동산 주시고 에덴은 내려 온 하늘나라입니다. 에덴을 잠깐 구경시켜 놓고 그다음, 역사 전부를 타락 후 세상 생지옥 가운데로 던져 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 몰랐을까? 실수일까? 잔인일까? 사랑 중에 사랑입니다. 똑같은 은혜가 주어져도 은혜를 복되게 받으면 한량없는 복으로 자꾸 자라 가는데 주시는 은혜를 삐딱하게 자세가 잘못 돼 놓으면 영원히 불만자만 나오게 됩니다. 불만은 아니 해도 어려움을 모르면 감사를 느끼지를 못하게 되어 집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먼저 에덴을 주시고 그다음, 하나님 떠난 세계를 구경시켜 주시고 그리고 다시 부르심처럼 믿음의 조상들에게 잠깐 가나안 주시고 400여 년 애굽을 주신 다음 세상에 섞여 사는 거 좋지 못하다, 바로를 임금으로 섬기는 거 사망이며 멸망이며 좋지 못하다, 실감 있게 느끼게 만드신 다음 출애굽을 시켰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믿는 가정에 태어나던 아니던 세상과 또 세상의 임금인 악령 밑에서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중생을 주셔서 믿는 생활을 좀 일찍이든 늦든 출애굽을 시켜 주셨습니다. 조금만 정신차려보면 세상이란 쓰고 다 버려야 되는 데입니다. 또 인간이 제멋대로 사는 것은 알고 보면 악령이 임금 되어 종살이 하는 겁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불행인데 불행을 불행으로 느껴야 되는데 어항 속에 물고기가 처음에 어항 속에서 부화되어 자라다 보니 어항이 제 세계에 전부인줄 압니다. 작고 못나서 그렇습니다. 팔뚝만한 가물치를 어항 속에 넣어 두면 못 견디고 그냥 파닥 거리다가 죽어버립니다. 복장이 터져서. 이건 활동력과 덩치가 있기 때문에 어항은 교도소인줄 알기 그렇습니다. 예배당만한 수족관이면 가물치도 아마 살아남을 겁니다. 자유인 줄 알고. 갇힌 줄을 모를 겁니다. 그런데 우리 예배당만한 어항에 예배당만한 고래를 집어넣으면 못 견딥니다. 그 고래를 태평양에 풀어 놓으면 죽는 날까지 돌아다니면서 자유인 줄 알 겁니다. 태평양은 넓기는 넓지마는 그것도 수족관인데 그물이 넓으면, 어항이 넓으면, 범위가 커져 버리면 갇혀 살아도 갇혀 사는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근본적으로 목표가 하나님이고 그 과정이 하나님께 인도를 받아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 인간과 인간에 속한 것 안에서 살면 그 자체가 보이지 않고 소리 없는 그게 감옥 입니다. 그게 부자유고 그게 속박입니다. 하나님 아니고는 만족이 없어야 중생의 생명이 제 정신을 차린 것이고 천국에 대한 일념과 방향 없이는 세상 전부를 다 줘도 다시 들여다보면 세상은 허무하여 가질 수가 없어야 이게 믿는 사람입니다. 조그만한 사무실 하나 받았다고 자유인 줄 알고 몇 백 월급 받으면 그게 이제 퇴직 때까지 고정이고 또 연금까지 이어진다면 인생 팔자 다 핀 줄 압니다. 등치가 작고 그릇이 작아 그렇습니다. 포부가 작아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포부도 아닌 인간으로 말미암는 포부가 큰 것은 주변에 많은 피해를 줍니다마는 하나님과 하나님에 속한 것, 천국과 천국에 속한 것으로만 만족하는 우리가 돼야 되는데 애굽에서 나오고 싶었으나 막상 나오려니까 세상이 그냥 놔둡니까? 붙들지. 세상이 화를 내고 교회를 못 가게 신앙의 자유를 붙들어 버리니 단번에 그냥 애굽을 떠나겠다고 부르짖은 것을 취소하고 그냥 세상에 살겠다고 그랬습니다. 그걸 뒤흔들고 뒤집어 출애굽을 시켰는데 홍해가 가로 막고 그 앞에서 또 좌절하고 홍해를 하나님이 능력으로 건네 놓으니 3일을 갔다가 물 없으니 또 원망이고, 마라에서 쓴 물, 못 마실 물을 만났는데 모세가 나뭇가지 하나 집어넣으니 그냥 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도, 홍해 바다도 마라에 쓴물을 고친 것도 신앙의 출발에 온갖 세상에 평생이 다 위협하고 불편을 끼치더라도 염려 말고 주님 한 분 따라 말씀을 따라 가면 다 해결이다, 이걸 연습 시켰는데 재앙 때도 실패, 홍해 앞에서도 실패, 삼일 물 못 마시니 실패 한 번, 두 번, 세 번 경험했으면 전능이구나, 사망도 죽음으로 바꾸시는구나, 어떤 장막도, 어떤 장벽도 다 초월 하시는구나, 세상과 세상에 임금 하나님 손아귀에 딱 붙들려 숨도 못 쉬는구나, 다 구경 했으면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그만 평안을 가지고 거침없이 주님의 인도만을 보고 광야 40년 어떻게 인도하셔도 감사로만 가겠습니다, 이리 되어져 버렸습니다.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 외에는 좋으면 웃고, 어려우면 짜증내고, 막히면 죽는다고 뒤집어 버리고 그리고 어릴 때 한 번, 두 번, 세 번 때 고쳐야 되지 한 번, 두 번, 세 번 습관 넘었으면 세살버릇 평생 간다, 일찍 믿던 늦게 믿던 신앙의 첫 출발에 감사를 배우고 눈치를 채면 평생에 감사하고 은혜 가운데 살고, 처음 믿으며 하나님이 한 번, 두 번, 세 번 능력과 기적으로 살펴 주는데 억지를 부리고 하나님 욕을 하니까 뭔가 챙겨 주는구나, 이게 처음에 심겨 지면 죽는 날까지 이런 사람 되어집니다.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5장 27절에 엘림으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따라 하십시다. 엘림(엘림) “물 샘을 열둘을 주시고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그래서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바로 그 앞에 3일간 물이 없어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는 물 샘입니다. 계속해서 솟아나는 물 샘이고 광야인데도 불구하고 “칠십 주의 종려나무가 있더라” 종려는 번성을 말합니다. 종려나무는 나무가 옆으로 번지며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종려나무는 꼭대기까지 무조건 일단 치고 올라갑니다.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는 다 올라가고 위에서 펼칩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좁쌀처럼 한도 없이 많습니다. 예전 연구소 건물 예전 예배당 건물 옆에 있던 나무가 종려나무입니다. 쪽 그대로만 큽니다. 하늘을 향하여 치솟고 무성하게 번성합니다. “칠십 주라” 7이란 하나님의 수 고, 열이란 늘 인간의 만족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인도와 은혜가 다 갖추어진 곳입니다.
 
“물 샘이 열둘이라” 열 두 지파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 옆에 마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장막을 치니라” 그만 여기 못 박고 살면 되니까 눌러 붙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신 곳입니다. 여기가 가나안입니까? 여기가 영생의 천국입니까? 여기가 목표 달성입니까? 애굽에서는 나와야 되고 가자시는 가나안까지 가야 성공입니다. 그런데 출발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물 샘 열둘과 칠십 주의 종려의 번성과 복을 주신 것은 이거 가지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고생도 하고 생사도 넘고 그리고 또 잠깐의 평안을 주시며 휴식 시간 주셔서 마치 이세벨에게 쫓기는 엘리야가 유대 광야로 들어가다가 로뎀 나무 밑에 엎어져 그냥 이만하면 넉넉하오니 데려 가시지요, 천사가 떡과 물을 마시며 ‘일어나 가자’ 그리고 나서 사십 주야를 걸어 시내산을 갔던 것처럼 하나님의 산 호렙산으로 같던 것처럼 정말 가야 할 길은 엘리야는 사십 주야 광야 생활이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십년 광야 생활이 이게 끝까지 가야 될 과정입니다. 그 먼 길을 걸어가는 첫 출발은 출애굽의 과정이 있었고 출애굽의 과정에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장벽 벗어났고, 절대로 뚫고 가지 못하는 홍해 뚫었고, 생사를 넘어 뚫고는 갔으나 물이 있어야 사는데 물 없는 것 하나님이 구경시켜 주셨고, 그리고 엘림에서 잠깐 쉬게 하여 이 휴식은 이게 목표고 이게 전부가 아니고 이게 복이 아니라 여기서 지난날을 계산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 될 사십년의 광야 생활을 맞아 가자, 담대하게. 가다가 다시 또 원망하거나, 가다가 또 다시 화를 내거나, 가다가 다시 또 실망하거나 그러지 말자. 엘림을 넘어서서 문제 생기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매가 들어갑니다. 엘림을 넘어 그 다음, 2월 15일 출애굽 한지 한 달 시내산으로 들어갑니다. 신 광야 시내산으로 이제 이어지는데 시내산으로 모세를 부를 때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 만들었고 금송아지 만든 것 때문에 3천명이 죽습니다. 이후로는 문제 생기면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말로 달래지를 아니 합니다.
 
신앙 출발에는 별별 일이 다 있어도 모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여러 가지를 주십니다. 억지를 부려도 달래시고 기적도 능력도 주지만은 한 두 번하고 두 세 번 하고 말지 그거 잘못 돼 놓으면 여기 어느 집사님처럼 50년 울고불고, 뛰고 굴리고, 머리를 벽에 박고 땅에 박고, 예배를 보다가 뒤를 보고 옆을 보고 그래 가지고 이제 남는 게 뭔가? 50년 믿은 거 다 불 질러 버린 불장난한 겁니다. 지금은 평안하게 앞을 보고 예배를 드리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지난 50년 되돌아보며 회개 하셔야 됩니다. 참 내가 미쳤다, 그러니 동네에서 미쳤다고 칼을 드는구나, 이래야 되지 내가 건전한데 나를 위협했다, 섭섭하다 이거는 판단도 틀렸고 가는 길이다 틀린 겁니다.
 
왜 교회에 그런 분을 두시는가? 그러지 말라고 주시는 겁니다. 왜 성경에 기록하는가? 이런 걸. 천하 믿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 보이시는 겁니다. 그리고 각자 돌아보면 뭐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도 다 비슷하지. 돌아보며 자세와 방향이 복되게 되도록 자기를 돌아봅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못된 말 잘못된 자세로 하나님을 상대로 알 만한 사람이 뒤를 뻗고 쥐 박고 억지를 부리면 돌아오는 것은 정확하게 정신 차리는 혹독한 매가 됩니다. 찬송하며 감사하며 복 받고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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