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2.7.4 히10:22 온전한 믿음, 말씀에 맞춘 마음, 마음을 담은 몸의 노력, 양심의 악을 버린 실행, 믿어지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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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2.7.4 히10:22 온전한 믿음, 말씀에 맞춘 마음, 마음을 담은 몸의 노력, 양심의 악을 버린 실행, 믿어지는 은…

관리1 0 99 2022.07.04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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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4 월새
 
제목 : 온전한 믿음, 말씀에 맞춘 마음, 마음을 담은 몸의 노력, 양심의 악을 버린 실행,
믿어지는 은혜
 
찬송 : 141장(예수 더 알기 원함은)
 
본문 : 히브리서 10장 22절 -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걸어가는 것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째 방법입니다. 몸을 끌어다 놓으면 마음은 딸려옵니다. 자기 몸을 끌어다가 뒷골목 갖다 놓으면 마음이 뒷골목에 가 있고 자기 몸을 도서관으로 데려다 놓으면 마음도 도서관의 분위기와 책을 보며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몸 끌어다 놓는다고 마음이 다 해결 된다면야 몸을 교도소 갖다 놓으면 마음도 갇히는가? 마음은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몸과 마음이 완전 별개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끌려 다니고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 몸을 예배당으로, 몸을 예배로, 몸을 신앙으로 먼저 움직이는 것 필요하고 몸뿐이 아니라 몸속에 들어 있는 마음도 함께 담아 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학교 가는 아이들의 마음에 공부가 궁금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학교를 간다면 똑같이 듣고 보고 노력하는 그 효력이 여러 배는 더해져 버립니다. 아무리 공부하고자 해도 몸이 학교를 못 가면 그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배우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담은 몸 마음을 담아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을 줄여서 자세가 중요하다, 생각이 중요하다라고 그럽니다. 아무리 자세와 생각이 중요해도 몸이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그 마음은 그냥 애타고 많은 겁니다.
 
마음을 담아 나아가자, 그 마음만 담아 나아가면 도덕도 과학도 세상 살아가는 것은 거의 해결이 되어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마음을 담아 몸이 온다고 다 되는가? 여기까지는 주관입니다. 나의 노력과 나의 행위입니다. 거기 믿음은 담기지 않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시고 마음을 담아 온 그 몸, 몸을 따라 함께 온 그 마음, 그 심신을 굽어보며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말씀을 열어 주실 때 그리고 마음이 그 말씀을 인정하고 몸이 그 말씀을 따라 실행하려고 할 때, 또 실행을 하고 있을 때 지켜보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그때서야 비로소 따라하십시다. 온전한 믿음(온전한 믿음) 이건 인간의 힘으로 가질 수가 없는 겁니다. 내가 100% 확신합니다, 믿었습니다, 믿어줬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믿으려는 노력이지 믿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밀어 넣고 믿어지게 해야 믿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믿음이 전능입니다. 내 확신은 전능이 아닙니다. 이 성경 안에 어떤 말씀 있는지 내가 읽어내겠다, 그리고 읽습니다. 마음속에 담아 두겠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담습니다. 이거는 절에 중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다음, 이 말씀을 보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내가 원수를 사랑하겠다, 그것이 정신건강학 쪽으로 면역 신경계통으로 전부 건강에 좋고 내게 좋다더라, 좋으니까 내가 가지겠다, 과연 이것이 인체 건강에도 좋겠다, 내가 날 위해서 원수를 가지지 않겠다, 불신자도 그럴 수 있고 절에 중도 그럴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는 더욱더 그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노력은 인간이 믿어 보려고 시도하는 것이고 노력하는 충성입니다. 자체가 믿음은 아닙니다.
 
이런 인간의 마음, 인간의 노력, 인간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다음, 하나님이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시면 하나님이 직접 마음을 열어 믿어지게 해 주시면 밖에서 밀고 들어오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속에 믿으려고 움직인 것은 하나님이 밀고 넣어 주시는 그 믿음을 받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어쨌든 내 준비가 있으니까 주님이 믿음을 넣어 주셔서 전능의 믿음을 가지지 않았느냐? 그러니 나도 중요하지 않느냐? 나도 5%, 1% 더 하지 않았느냐? 인간 것은 전혀 아무 역할을 못 합니다. 온전한 믿음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다시 앞에 보니까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어제 오전 오후 합해서 말하면 죄 문제가 하나님과 우리를 끊어 놓습니다. 이걸 연결시키는 게 중생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은 스스로 하나님께 찾아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찾아오는 법을 열어 놓으셨으니 구약의 제사입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넓게 말하면 율법이라 그럽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법.
 
하나님의 백성은 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짐승을 죽여 하나님께 대신 바치거라. 내가 죄 지은 것과 짐승으로 제사 드리는 것이 뭔 관계가 있는가? “죄 값은 사망이다” 이걸 심는 겁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죄의 값 사망을 해결하려면 죄 없는 다른 생명이 대신 죽어야 된다. 대신 죽는 걸 대속이라 그럽니다. 그냥 없애 주고 잊어 줄 리는 없습니다. 네가 값을 내 놔야 되는데 네가 값을 내놓으면 죽어 지옥을 가야 되고 네가 해결 하려면 죄 없는 다른 생명이 하나 대신 죽어야 된다, 그래서 계속 짐승을 잡으며 나의 죄는 다른 생명이 되신 죽어야 된다, 그런데 죄 없는 사람이 있나? 죄 없는 생명이 날 위해서 죽어야 된다, 그 죄 없는 생명이 누굴까? 죄 없는 생명 하나는 내 죄 지은 행위 하나만 해결합니다. 나의 죄 10개를 해결하려면 죄 없는 생명 열이 와야 되고 1만의 하나님의 백성을 해결하려면 1만의 죄 없는 생명이 와야 됩니다. 무수한 제물이 필요합니다. 1만의 죄인이 1만의 죄를 지으면 1억의 죄 없는 생명이 와야 됩니다. 얼른 계산해 봐도 인간 중에서는 그럴 수가 없겠구나,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가며 하나님이 사람 되어 해결해 주실 메시야, 그리스도, 구주 다 같은 말입니다. 이걸 알려주셨고 알게 되었습니다. 준비의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게 했구나, 인간의 죄는 인간으로 해결을 못 하는구나, 하나님도 그냥 없애 주시지는 않으시는구나, 나의 죄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사람 되어 오셔서 그분은 무한이니까 모든 택자의 모든 죄를 다 해결하시겠구나.
 
이렇게까지 생각이 진행이 되면 이제 그 마음이 부끄러워야 되고 죄송해야 되고 몸 둘 바를 몰라야 됩니다. 10대 아이들이 친구들하고 천 원짜리 사 먹으면 그냥 사 먹는 것만 알지 그 천원을 위해 부모가 천원 어치 땀을 흘려야 되고, 시간을 쏟아야 되고 장사하는 사람은 손님에게 천원어치 자존심을 굽혀야 됩니다. 월급 백, 이백, 삼백 벌어오려면 백, 이백, 삼백의 시간과 땀과 노력이과 그 부모도 하고 싶은 게 많을 건데 그걸 절제 했고 직장이면 윗사람, 사업이면 손님에게 몇 백만 원어치 속이 썩어야 되고, 자기 부인 있어야 되고, 참아야 되고 웃기 싫은데 웃어야 되고 그게 돈으로 바뀐 겁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 이렇게 진행이 돼야 되고 이렇게 진행이 되면 나는 듣기 싫은 말 한마디 부모에게 들었다고 삣궈 버리고 돌아서 버리고 문 닫고 나가 버리고 그런데 부모는 이 돈 벌기 위해서 그 마음이 어땠을까? 헤아려 볼 때 지난날이 죄송해야 되고 뭐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해결의 방법이 나와야 되고 여기까지가 21절입니다.
 
이게 진행이 되다 보면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더러운 옷은 물에 들어가서 치대 버리고 섞여 버리면 때가 빠지고 깨끗해집니다. 이 마음에 다 대고 물을 들이 부어 물로 치대고 씻고 흔들고 두드려 때를 빼는 게 마음에 뿌린다고 한 겁니다. 뿌리다니? 물을 뿌려 때를 빼는 걸 말합니다. 돈 벌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고 땀이 필요하고 절제의 인내가 필요하고 속도 썩을 줄 알아야 되고 웃기 싫은 마음을 웃어야 되듯이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내 마음에 가질 마음을 가지고 챙길 마음을 챙기고 돋아나는 생각을 어떤 것은 꺾어 버리고 그래가지고 마음을 말씀에 자꾸 맞춰 가는 게 그게 “마음에 뿌림”을 받는 겁니다. 그렇게 마음을 자꾸 씻고, 씻고, 흔들고 세탁을 하다 보면 양심 속에도 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양심의 악이라니? 양심 하면 모두가 좋은 마음 착한 마음 모두가 이거는 영인 줄 아는데 아예 역사적으로 신학 중에 양심이 막 바로 중생된 영,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대세 입니다.얼마나 자기들이 착해서 그럴까? 양심이라는 것 조금만 생각해보면 며느리 양심, 시어머니 양심이 다른데 신랑의 양심과 신부의 양심이 다른데 신랑은 못 나도 이 나라 최고의 여자 갖고 싶은 게 신랑이 양식인데 신부는 거지라도 재벌 집 며느리 되고 싶은데 그 양심 속에 도둑놈이 들어앉았는데 양심을 내용을 들여다보면 겉은 미꿈한데 속은 엉망입니다. 양심이 양심다운 양심이 없습니다. 언론 때문에 요즘 구경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난 끝장을 내도 그건 괜찮고 남은 의심만 받아도 끝장을 내버리고 흉악한 양심, 무자비한 양심, 이리의 양심은 오늘도 토끼 몇 마리를 사냥해서 새끼들을 먹여야 에미로서 양심이 편합니다. 독사는 쥐를 잡아 삼켜야 그 양심이 편합니다. 토끼는 이리를 피해야 양심이 편합니다. 이게 자기중심의 악이 들어가 그렇습니다. 양심은 자기중심이 들어가면 그건 독약인데 양심이 아닌데 자기중심을 빼버리고 그리고 이제 이렇게 되면 마음을 씻었지 마음속에 양심을 제대로 차렸지 그러면 그 다음, 몸으로 실행하고 생활하는 이 생활을 말씀으로 자꾸 씻어 이렇게까지 되면 참 마음 온전한 믿음이 되고 이것이 진행될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겁니다.
 
밭에 채소를 뽑아 그대로 먹으면 토끼일 거고 사슴일 거고 뽑아서 못 먹는 거 끊고 씻고 그대로 먹으면 설사하기 때문에 잘 다듬어 삶고 양념 치고 그리고 깨끗한 그릇에 그리고 식탁에 올려놓으니까 식구들이 맛있고 영양 있고 좋은 걸 행복하게 웃으며 먹는 겁니다. 밭에 나가 그대로 뜯어먹지 뭐 뽑아다가 씻고 냉장고에 넣고 빼고 도마질을 하고 양념 칠을 하고 생 발광인가? 그냥 가서 뜯어 먹지. 토끼 그냥 이리가 사냥 하듯이 토끼 잡아 그대로 뜯어 먹지 뭐 하려고 거기다 대고 별의별 단계가 있는가? 다 알지 않습니까? 채소하나 음식하나는 별의별 과정이 다 있고 요리법이 있고 신앙생활이야 뭐 그냥 마음먹으면 다 되는 거 아닌가? 네 마음이 그게 하나님이 기뻐 할 마음인가? 잘못된 마음인가?
 
말씀으로 마음을 씻어 마음에 맞추고 양심이라는 그 속에 자기중심이 있으면 그거 빼 버리고 이렇게 마음과 양심이 바로 된 것으로 그다음 실행으로 나아가 말씀으로 실행하면 이제 마음과 몸이 바로 되고 마음과 몸이 바로 된 그 마음 그 믿음이라야 그다음 하나님께 비로소 이제 나아가고 하나님은 은혜로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실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자꾸 말씀으로 마음을 씻어 그 씻은 마음이 몸을 말씀으로 실행시키기까지 몸을 실행시킨 그 마음이라야 비로소 깨끗한 마음, 깨끗한 양심, 깨끗한 실행의 믿음이 되어 집니다. 그 과정 노력하는 걸 보면서 믿어지는 은혜를 줘야 되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밀고 들어가시면 뭐 위에서 쏟아지는 이 은혜에 참 신앙의 좋은 날들을 다 경험하게 됩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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