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7.1 히10:25 부족할수록 펼쳐진 은혜와 소망의 세계, 한 걸음 한번이라도 더 모이기를 힘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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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2.7.1 히10:25 부족할수록 펼쳐진 은혜와 소망의 세계, 한 걸음 한번이라도 더 모이기를 힘쓸 것

관리1 0 82 07.02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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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1 금밤
 
제목 : 부족할수록 펼쳐진 은혜와 소망의 세계, 한 걸음 한번이라도 더 모이기를 힘쓸 것
 
찬송 : 59장(피난처 있으니)
 
본문 : 히브리서 10장 25절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천국의 백성으로 순식간에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만들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활 평생토록 끝까지 견디므로, 하나씩 구원으로 불러들이는 이 은혜를 주셔 오늘도 5일 예배로 모이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한 주간 주신 기회를 하늘의 것으로 옮기며 바꿔야 될 저희들, 돌아보며 오늘과 내일 남은 날들을 통하여 미진한 거 열심히 노력하는 저희들 되도록, 이 시간도 말씀으로 살피고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하루를 잃어버리면 한 주간을 잃어버리고 하루와 한 주간을 잊어버리다보면 평생의 마음과 평생에 생활이 다 세상 속으로 쏟아져 버리오니, 늘 긴장하며 주신 구원 감사하며 마음과 몸에 깨닫고 실행하는 저들이 되어, 세상은 빛을 보고 우리는 감사할 수 있도록, 이 시간도 병원 요양 출타 해외 곳곳에 두신 우리 교인들 낱낱이 살피며 인도해 주옵소서. 사모하고 준비하는 8월의 집회도 일정과 참석에 은혜주시고, 짙어져가는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빛과 마음을 열어주시도록 애절하게 기도하며, 또한 소돔보다 더 악한 세상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우리 10대 20대들 되도록, 저들의 마음 여러 감사함으로 걷는 우리 교인들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더욱 그리하자”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우리는 점점 밝아지고 세상은 점점 모이기를 폐하고, 우리는 점점 모이기를 더욱 노력하고 그날이 가까울수록,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주님이 오시겠구나! 이러다가 주님이 오시겠구나! 그러면 이전보다 더욱 모이기를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시험 때가 10년 남았을 때 1년 남았을 때 한 달 남았을 때 시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을 때, 평소에도 열심히 하지만은 시험 날이 가까우면 더 노력하는 것이 그게 당연한 겁니다. 시험 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책과 멀어지고 학교와 멀어지면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 누가 말하든지 내 속에 내 인격이 그러든지 줄여가고 흩어지고 멀어져 가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 따라가면 귀신한테 붙들려 가는 겁니다. 귀신이 우리를 낚을 때 그 흉측한 얼굴로 직접 설치고 그러지를 않습니다. 미끼로 물고기를 낚듯이 보기 좋고 먹고 싶고 좋아 보이듯이, 또 새를 낚을 때 볍씨를 흩어 먹기 좋고 보기 좋고 가지고 싶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 것처럼, 어떤 것이든지 눈에 좋고 뭐든지 가지고 싶을 때는 세상은 실수로 좋은 걸 그냥 주는 수가 있지만, 악령은 666이라 어떤 것도 우리한테 좋은 거 그냥 주는 수가 없습니다. 공짜가 없습니다. 어떤 공짜든지 공자를 볼 때는 그 속에 독이 있다. 더 쉽고 함정이 있다. 우선 좋고 뒤에 나죽는 길이다. 공짜란 그리 보면 정확합니다.
 
정말로 탈이 없는 것은 탈이 없어 쉽게 먹고 나면 사람이 방심을 합니다. 탈도 안 나니까 더 방심하고 더 안심합니다. 자기 자신이 붕괴돼 버립니다. 믿는 사람은 음식이든 돈이든 누구의 신세든 그 어떤 것이든지, 공짜다. 앞에서 좋아 보인다. 뭔가 모두들 좋아서 휩쓸린다. 그러면 일단 문제는 있겠구나, 그러고 조심해서 보면 지혜롭고 신앙에도 좋습니다. “모이기를 피하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데 굳이 예배당이라야 하느냐? 율법주의 아니냐? 그럴 때는 또 율법주의라는 그 어려운 말을 쉽게 사용을 합니다. 율법주의 들고 나오는 사람들한테 율법주의가 뭡니까 물어보면, 대답할 인간은 100명 중에 한 명도 드뭅니다. 혹시 나름대로 이게 율법주의다 저게 율법주의다 그러는데 헷갈리면 잠깐 적으시면 됩니다. 요즘은 휴대폰이 다 노트 메모지라 적기가 좋지 않습니까? 바보가 말을 해도 박사같이 똑똑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이, 모이기를 힘쓰면 율법주의가 아니냐? 어려운 말을 내면 한 번 더 불러보시지요. 그러고 율법주의라고 메모를 해두고 녹음을 딱 해두면 좋습니다. 그게 뭔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연구하고 또 배워보겠습니다. 모르면 배우고 모르면 연구를 해야지. 아는 척하는 바람에 속고 아는 척하는 사람한테 기니라고 속고, 뭐 세상 다 그리 속고 가는 겁니다.
 
뭣도 모르고 내다 지르고, 내다 지르는 사람들은 보통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용감한 사람들이 큰 소리는 세게 칩니다. 일단 먹혀 들어옵니다. 먹고 도망가는 겁니다. 나라는 인격과 나라는 신앙을 무식한 것들이 큰 소리 하는데다 대고 집어던져 되겠습니까? 율법주의라 그러면 율법주의가 뭡니까 물어보시고, 말이 막히면 그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되고, 율법주의가 이거고 저거고 이렇게 짖어 싸면 간단하게 뭐라고 말합니까, 하고 받아 적어 놓으십시오. 그리고 와서 배우면 됩니다. 떠드는 사람은 거의 다 거짓말입니다. 여기 히브리서 10장 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은” 안 된다고 그랬지 않느냐, 근데 율법주의라면 이게 구약도 아니고 신약인데 말이 안 되지 않냐. 성경을 잘 알면 몰아가고 성경을 잘 모르면 아는 척 하려고 하지 말고 무릎 꿇고 그냥 좋게 받아 적으면 됩니다. 그리고 확인하고 정말 맞으면 정말 선생님이고, 틀렸으면 내가 배운다고 내가 무릎 꿇은 만큼 상대방을 쥐 눌러버릴 수가 있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말 못 하도록.
 
중국사람 우리 쪽 이쪽들이 유교 문화라. 유교 문화가 발달한 쪽은 공통적으로 체면이라는 게 있어 모르는 게 꼭 아는 척, 못난 게 꼭 잘난 척, 없는 것이 꼭 있는 척을 하려고 그럽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그냥 다 뭉개진 겁니다. 중국은 워낙 덩치가 커서 몇 천 년 떼어도 생존을 하는데, 한반도는 워낙 이렇게 쥐꼬리만 해서 이건 아차 하면 그냥 없어져 버립니다. 모르는 거 그거 못 난 거 아닙니다. 아는 척 하는 게 못 난 거지. 하나님이 모르겠는데 하나님이 책임을 지셔야 되지, 그럼 알게 하시지 왜 모르게 만들어 놨습니까? 배우라고 왜 어리게 만들어 놨습니까? 자라라고. 자라갈 때가 예쁘고 자라갈 때가 소망이 있고 자라갈 때가 다 부럽지 않습니까? 20대 중반이 되면, 저희 때는 열여덟 열아홉 고3이면 어떤 인간도 더 이상 자라지를 않았습니다. 고3 지나서 조금이라도 더 자랐다는 사람은 100명에 한 명도 안 됐습니다. 요즘은 이건 뭐 비료를 뭘 넣어놨는지 그냥 스물 하나에도 자라고 스물둘에도 자르고 그럽니다. 그건 아마 기형일 겁니다. 좋지 않을 겁니다. 어쨌든 20대 중반이면 다 자랐겠지. 20대 중반 다 자라면 그날부터 늙어집니다. 자라 가는 게 좋지 늙어지는 게 좋겠습니까? 양심껏. 뭐 천하 예쁜 것 중에 자라가는 것만큼 예쁜 것 없고, 아무리 얼굴에다대고 몇 억을 갖다 부어도, 나이 많은 것은 그건 커버가 되지를 않습니다. 어린 게 좋고 자라니까, 모르는 게 좋고 배우니까, 약한 게 좋고 강해지면 되니까, 이건 소망이 있습니다. 더 이상 강해질 수가 없도록 끝이 나와 버렸으면 이제부터는 추락입니다. 더 볼 게 없으면 추락입니다. 잘난 것은 일단 좋은데 잘난 것이 더 잘나서 더 자라가면 좋은데, 더 이상 잘날 수가 없고 더 이상 자랄 수 없으면 그냥 있지 않습니다. 여기도 “더욱 그리하자” 주님 오실 때가 되면 사람의 지식과 왕래가 더 빨라진다. 지난 5월 집회 때 가속의 원리를 잠깐 좀 살폈습니다.
 
죄도 그냥 가는 수가 없습니다. 갈수록 더 큰 죄가 되고 의도 갈수록 더 큰 의가 되고, 생명도 갈수록 더 큰 생명이 되고 사망도 갈수록 더 죽어져 갑니다. 나는 한 걸음이라도 좀 나아지느냐 이거 뭐 참 좋은 겁니다. 천하에 그 어떤 것도 바꿔줄 것 없는 제일 보배, 배워가고 자라가고 나아진다는 거,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적은 사람일수록 자라가기가 유리합니다. 한 살짜리가 자라가기가 유리합니까? 10살짜리가 자라가기가 유리합니까? 20살짜리가 자라가기가 쉽습니까? 어릴 때는 돌아서면 자라버리지 않습니까? 갈수록 자라는 속도가 점점 늦어집니다. 그리고 스물 안팎 이제 다 자랐다하면 중단이 아니라 면밀하게 보면 그때부터는 추락합니다. 신앙이 그렇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출석도 그렇습니다. 매일 매일 나아지면 사도바울처럼 다메섹에 가다가 전도 받고 다메섹에 가서 벌써 선지자 되고, 아라비아 사막에 갔다 온 다음에는 열두 제자들보다 나은 바울이 되어 버립니다. 매일매일 자라가면 사도바울 정도 되고, 우리가 사도바울만큼은 되지 않아도 바울은 날마다 옛사람 죽이고 날마다 새사람으로 좋아졌습니다. 매일 매일이고. 우리는 좀 못났으니 적어도 1년 단위로 계산해가지고 작년보다는 올해가 성경 한 장 더 읽고, 작년 한 해보다는 예배당에 오시는 거 한 번 더 나오시고 한 번이야 쉽지 않습니까? 작년에 새벽예배 365일 중에 200일 나온 분은 올해는 200 하루만 나오시고, 그것도 무시무시하게 발전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겁니다.
 
한 걸음만 마음을 쓰면 하나님이 괘씸해서 들고 있는 모든 진노와 모든 벌을 전부다 일단 치워버립니다. 이게 큰 겁니다. 어느 인간이 하나님 앞에 꾸중 듣지 않고 매 맞을 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라도 나아질 때 모든 진노 모든 섭섭한 거 일단 다 치워버리고, 이게 얼마나 잘 될까? 소망 중에 이렇게 들여다보십니다. 이걸 성경에 세리의 의라고 그랬습니다. 흠도 점도 없는 최고의 의를 바리새인의 의라 그럽니다. 그건 100점짜리인데 하나님이 볼 때 100점이 아니라 지 혼자 100점입니다. 지가 100점이니 더 이상 배울 게 있습니까? 고칠 게 있습니까? 하나님이 볼 때는 숭숭한데 자기는 100점 하나님이 볼 때는 낙제. 이것이 자기가 낙제인 줄 알아야 배울 건데, 된 줄 아니까 고치지 않고 고치지 않으니까 추락을 하는 겁니다. 이게 바리세인입니다. 세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이지만은 죄인이라 이게 복된 게 아니라, 세리는 자기가 죄인인 걸 알아차렸습니다. 이게 복입니다.
 
오늘 저녁 첫 말씀 어린 게 복이고 모르는 게 복이고 약한 게 복입니다. 세상에서는 약한 게 서럽고 모르는 게 억울하고 없는 것이 비참한 겁니다. 세상에 없는 자랑은 그건 비참한 겁니다. 세상에 약한 자라는 건 짓밟히는 겁니다. 세상에 못 난 것은 더 못 난 사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르는 게 이게 소망입니다. 약한 게 예쁜 겁니다. 모자라는 게 하나님 앞에 이게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다 쏟아집니다. 모르면 한 번 더 오시면 됩니다. 많이 알았으면 뭐 올거나 있습니까? 많이 알았는데, 모르느냐? 한 번 더 오시면 됩니다. 학교를 1년 다니고도 모르냐 그럼 1년 더 다니면 됩니다. 6년 다녔는데 초등학교 교과서가 잘 파악이 안 되면 1년 더 배우겠습니다. 이게 참 영웅인데 주변에 그런 영웅적인 아이들 혹시 보셨습니까? 다 못나 그런 겁니다.
 
학교 6년 책 보따리 들고 왔다 갔다 하면 그게 이제 졸업장이 되고 그게 실력이 되는 겁니까? 배우고 나가야지. 초등학교 낙제 1년 더 시키는 거 혹시 보신 분 있습니까? 4학년이 5학년 올라가려는데 4학년 담임이 너 4학년 한 번 더해! 해가지고 1년을 더 붙드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혹시 기억을 하십니까? 오정자 집사님? 들은 거 있습니까? 학교 다닐 때 그랬어요? 4학년이 5학년이 아니라 이건 6학년 바로 올라가도 되겠다 싶으면, 4학년을 6학년 바로 올려버립니다. 서부교회 담임 서영호 목사님이 초등학교를 5년 만에 졸업한 사람입니다. 2학년 때인가 그랬죠? 아마? 딱 보니까 공부를 너무 잘합니다. 그냥 한 해 더 넘어가라 이게 세상이고 그게 좋을 때입니다. 등신도 졸업해라 천재도 앉아가지고 시간 때워라. 이게 평등이다. 그게 좋은 나라다 참 나쁜 인간이지. 저나 그러면 되는데 또 저는 안 그럽니다. 남의 자식들만 그렇게 짐승을 만듭니다. 사육장의 돼지처럼 사육장에 닭처럼. 실력이 있으면 3년도 뛰 넘어갈 수 있지, 실력이 없으면 3년 맴돌고 배우고 배워서 알고 올라가야지. 하도 취업이 안 되니까 요즘은 대학에 가서야, 뭐 5년 다니고 졸업한 사람 10년 다니고 졸업한 사람 그건 비정상입니다. 아무 데나 가서 일하면 돈 벌지 뭔 놈의 꼭 좋은 직장만 직장인가?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아라. 모르니까 한 번 더 나오는 겁니다. 또 한 번 들어 잘 모르니까 두 번 듣는 겁니다. 설교를 한 번 하고 한 번 읽은 히브리서 10장 25절 수요일 날 공부했는데 또 한 번 더하고, 안 되면 또 한 번 더하고 못 났으니까 모르니까, 모르니까 하나님 앞에서야 모르니까 더 배우겠습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은 잘 가르쳤으면 한 번 가르치면 다 알고 그냥 올라가야 되는데, 배우는 사람도 시골이니 좀 부족할 것이고 또 가르치는 사람도 익숙하질 않으니, 맨날 가르쳐봐야 밑에서 배우는 사람이 없으니 두 번 세 번 가르치는 겁니다. 배울 때까지 알 때까지 중요한 걸 붙들 때까지. 아이들이 젓가락질 하다가 실패하면 치워버립니까? 열 번도 시키겠지. 3살 되어서도 젓가락질 못하면 다섯 살 되도록 까지 시키겠지. 예전 아이들은 젓가락을 일찍 배웠죠? 강 집사님? 잘 몰라요? 요즘 애들 젓가락질이 늦지 않습니까? 비교가 안 됩니까? 한순희 집사님 혹시 비교해 보셨습니까? 이놈들 굶겨 놓으면 숟가락질 젓가락질 다 잘하게 돼 있습니다. 먹을 게 차고 넘치니까 기적거리고 앉았지. 먹을 거 많은 미국 사람들 젓가락질 못합니다. 어른들도 손으로 집어 먹지 미개하기야 저것들이 더 미개한데.
 
먹을 게 적으면, 그런데 부모가 식사 예절 때문에 손으로 먹으면 원숭이 된다. 짐승 된다. 야단을 쳐 놓으니까 숟가락질 젓가락질 뒤에 먹으면 못 먹으니까 전쟁이 벌어지니까 빨리 배워버리지. 먹고 등치는 옛날보다 빨라지는데 걷는 것도 옛날보다 다 느립니다. 예전에 돌이면 다 잘 다녔습니다. 빠른 애들은 여덟 달 열 달이면 쫓아 댕겼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그랬습니다. 집에 애들이 많으니 달리기 못하면 못 먹으니까. 그 제비집에 제비 새끼들 엄마가 벌레 하나 물어오면 막 목숨 걸고 하나 더 일찍 받으려고 서너 마리 네댓 마리 경쟁 붙는 거 보십시오. 그렇게 경쟁을 해가지고 한 개 두 개 얻어먹어야 저 강남까지 바다비행을 하는 겁니다. 강남이 저 베트남 저 필리핀 쪽이랍니다. 조막만한 제비가 쉬지도 않고 천리 길이 아니라 만 리 길을 날아갑니다. 그렇게 갔다 와야 얘들은 삽니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가 떠먹여 주고 그러지 않습니다. 먼저 달라는 거 입에다 대고 집어넣지, 그래야 목숨 걸고 먹겠다고 발버둥을 치지. 그래야 빨리 먹고 빨리 날지 빨리 배워야 강남을 가지. 새 새끼도 그런데 짐승도 그런데 식물도 그런데, 인간만 말세에 귀신들이 먹을 걸 많게 시간을 많게 해놓으니까 전부 죄 짓고 나쁜 데만 머리가 자꾸 틔워버립니다. 안할 말 잘하고 못된 말 잘하고 참 자기 후회할 짓만 골라골라 잘하고.
 
한 25년 전인가 어느 불신자가 저 사무실에 와가지고 신풍교인 하나 유혹을 하면서, 이놈 주색잡기만 능한 놈이라고 여자 말아먹고 여자 고생시키고, 이놈은 돈 쓸 줄만 알고 돈 가지고 놀 줄만 알고 나쁜 짓만 할 줄 알고, 어쨌든지 돈 벌고 건설적인 건 아예 모르고 그냥 딱 단어가 그렇습니다. 주색잡기만 잘한다고. 그때는 한 100명 중에 한 명이나 그럴까 지금은 100명 중에 아마 한 80명 90명이 다 그럴걸요? 이 시대에 게으르지만 아니 해도 세끼 밥값만 해도 인물 났다 소리 들을 만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 만드느라고 지금 했던 말 자꾸 하고 있는 겁니다. 한번 따라 하십시다.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 모이기를 더욱 노력하라(모이기를 더욱 노력하라). 배울 게 없으면 모일 것 없습니다. 배울 게 있으면 모여야 됩니다. 선생이 잘 가르쳐야지? 선생이 못 가르치니까 더 많이 와서 배워야지. 간단한 겁니다.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 학교는 한 번 배우고 머릿속에 쏙 들어왔으니 됐고, 그 사람은 또 다른 걸 자꾸자꾸 배워야 되니 또 가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 가르치는 사람은 오래 살지를 않고 저 손양원 목사님처럼 50에 데려가 버립니다.
 
1950년에 50살에 가신 저 손양원 목사님은, 한국 안에서는 설교를 제일 잘한다고 소문이 나가지고 수천 군데 전국을 설교하러 다녔습니다. 애양원에 별로 있지를 못했습니다. 전국을 다니느라고. 한 번만 들으면 인생이 바뀌고 한 번만 들으면 신앙의 세계가 바뀐다고, 전국이 잘 가르친다고 난리였습니다. 근데 이런 분은 하나님이 일찍 데려가시거든요. 죽기 전에 자꾸 더 배워야지, 그래서 이분 가는 데마다 또 따라가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게 지혜롭지 하나 배우고 말 겁니까? 하나가 전부입니까? 잘 가르치면 배우고 또 배우기 위해서 더 와야 되는 거고, 못 가르치면 하나라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 두 번 세 번 와야 되는 거고, 수학 문제 한 번 풀고 맙니까? 두 번 세 번 풉니까? 두 번 세 번 풉니까? 네 번 다섯 번 풉니까? 그 학습지 중에 1 더하기 1, 1 더하기 2를 갖다가 수도 없이 풀게 하는 그게 구몬 이던가요? 이전에 구몬 말고 뭐가 하나 있었는데? 12 더하기 13, 12 더하기 13, 12 더하기 15, 또 11 더하기 12, 11 더하기 14, 그 뭐 다 비슷한 것 같은데 또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또 가르칩니다. 바보라 그렇습니까? 돈 받으려고 그럽니까? 아무리 머리 나빠도 시키는 대로 하나하나하나 하다 보면 수학이 틔워버리니까 그런 겁니다. 결국 대기업으로 돈 벌었지 않습니까? 그깟 수학 하나라도 10번 100번 될 때까지 계속 반복을 하는데, 뭔 천재라고 진리의 말씀을 한 번 듣고 다 알았는데? 하나님 욕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진리를 한 번 들으니까 다 알겠답니다. 이건 하나님 욕을 하는 거지. 고등학교 수학도 얼마나 배워야 되는데 대학 수학도 얼마나 어려운데, 수학과 교수는 평생 수학만 연구하고도 아 수학은 어려워서 모르겠다. 그러는데 그런 수학 교수한테 뭐 수학책 한번 척보면 알지 뭐 두 번 봅니까? 그러면 그게 사람 무시가 되는 거지요. 잘 가르치면 잘 가르치는 분한테 죽기 전에 얼른 하나라도 더 배우시고, 일반적으로는 잘 못 가르치니 한 번 더 배우러 와야 되는 거고, 또 잘 가르쳐도 내가 무능해서 내가 배워야 되니 두 번 세 번 해서 자꾸 배워놓는 게 낫고, 운전도 그런 거고 알파벳도 그런 거고 걸음마도 그런 거고. 부부 둘이 맞춰 사는 것도 제 경험은 한 40년 지나가니까 대충 알겠던데, 혹시 40년 덜 살고도 부부가 서로 잘 파악이 돼서 문안한분 여기 계십니까? 문안하다 계산하시면 앞으로 몇 년 후에 한번 또 혼이 더 나봐야 됩니다. 한 40년 살아보니까 이제 겨우 알겠다. 그러면 80 되는 분이 60년 더 살아봐라 그때 알 거다 또 그럴 겁니다. 인생 살아가는 것도 그러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만에 딱 가르친다? 한 번 만에 딱 들었다? 배웠다? 깨달았다? 에녹이 되려고? 엘리야가 되려고? 모세가 되려고? 엘리야도 시험 들던데 모세도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낙제했는데, 모세도 낙제한 요단강을 넘어가기 위해, 120년 노력한 모세보다 나아도 요단에 들어갈까 말까 두렵고 떨어야 됩니다. 생각이 그래야 됩니다.
 
건강이 따라가지 못하고 신앙이 따라가지 못하고 가족 형편이 그래서 한 번 더 못 올지라도, 마음으로는 어쨌든 기를 쓰고 한 번이라도 더 가봐야 될 건데, 마음이 이리되면 하나님은 그거 참 소망이 있다. 오겠다니 한번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봐 줄까 이리되어지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교회 올 수 있는 분이 이래저래 슬금슬금 빠지면, 아주 그냥 오른쪽 무릎을 분질러서 그냥 집에 푹 쉬게 할까? 왼쪽 고관절을 갖다가 빼서 그냥 톱니바퀴를 달고 침대생활만 하게 해줄까? 하나님 연구가 그리 갑니다. 이게 자유의 율법입니다. 너 좋은 대로 택해라 이게 자유입니다. 근데 율법이란 말은 이치대로 해준다 그 말입니다. 있는 건강, 있는 경제, 있는 가족, 있는 시간, 쌓아놓고 죄지으러 갈 때는 탈탈 털어서 막 목숨 걸고 달려가고, 말씀 배우고 예배생활 할 때는 코로나 때문에 이렇고 또 오늘은 또 비가 오려고 그래서 그렇고, 저 어느 가정에 게으른 사람 하나 보니까, 아침에 저 하늘을 보다가 꾸무리하면 가다가 비 와버리면 헛일이니까 안 가렵니다. 그냥 연장 나버립니다. 여자는 속이 터져 죽어버리는데. 그 남자가 키가 커서 전봇대라고 결혼하고 온 겁니다. 속으로 속아도 싸다 싶지. 키 크고 멋 적지 않은 사람 없다. 뭐 다 그런 말 알지 않습니까? 요즘은 다 커서 죄송하지만은.
 
게으른 인간 아침에 날이 꾸무리하니까 아마 갈 때 비가 올 거야 아마. 그러고 또 하루 또 개겨 버립니다. 다음 날은 일기예보에 이제 비가 옵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장마철이 돼서 비가 온다 해도 안 올 수 있고, 안 온다 해가지고도 올 것처럼 했다가 안 올 수 있으니까 어쨌든 가봐라 그러는데, 일기예보 비 온다면 안 가버리고 그날 날이 맑으면 기상청이 그래서 그랬지 이러고, 날이 꾸무리하면 딱 보니까 비올 것 같고, 어쨌든지 죄 지을 것 게으를 거 망할 것 못된 것만 졸졸 추리고 앉았으면 자유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에게는 값이 갑니다. 그걸 율법이라 그럽니다. 네가 콩 심었으니 콩 거둬라 네가 팥 심었으니 팥 거둬라. 네가 게으름을 심었으니 개미만도 못한 사람 되거라. 이게 자유의 율법입니다. 못하는 건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해보겠습니다. 세상이야 먹고 사는 거니까 일단 제쳐놓고, 믿는데 열심내고 신앙에 노력해 보겠습니다. 마음이라도 그렇게 가질 때, 그 마음이 희망이 있으니 이 사람에게 교회 갈 수 있는 건강을 줄까 경제를 줄까? 하도 직장이 없어 교회를 못 간다니 직장이라도 구해줄까? 하나님이 자꾸 마음이 이렇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이게 천군만마를 얻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뒤로 몰래 봐준 사람들 텔레비에 들켜서 다 우사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마음먹고 잡아주면 얼마든지 좋은 직장 다 빼주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은 그런 거 뉴스 들을 때 욕하는 거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이 특별히 뒤로 빼돌려서 요셉도 만들어주고 다니엘도 만들어주기 때문에, 남들 9급 공무원 7급 공무원 장관 이런데다대고 자기사람 이리 빼서 올려놓고 저리 심고 그럴 때, 잘한다! 느것들은 그거해라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요셉처럼 들어 쓰도록 난 요셉의 길을 갈란다. 백 좋은 거다. 써라 나는 하나님 백 쓸란다. 하나님 백을 좋은 단어로 말하면 은혜라 그럽니다. 은혜. 뇌물과 선물이라는 단어는 같습니다. 나쁘게 쓰이면 뇌물이고 좋게 쓰이면 선물입니다. 세상과 정의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는 복은 전부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는 복 아닌 것은 합법적으로 줘도 하나님은 전부가 다, 부정채용이라고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보십니다. 사는 법이 없고 되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 저녁 간단하게 줄여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더 모이기를 헤치고 말자고 그럴 거다. 이게 바로 어두워지는 때다. 그럴 때에 빛이라는 것은 힘을 내서 한 번이라도 더 가보는 것, 간다고 나서다가 대문에서 돌아올망정, 간다고 옷이라도 입고 나가다가 도무지 안 돼서 주저앉을망정, 연극이라도 그렇게 할 때 그 어린 것이 살아보려고 애를 쓴다.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곱게 보고 곱상으로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면, 그다음부터는 전부 은혜로 부어 버립니다. 모세가 잘 나서 모세입니까? 떠내려가다가 잘 걸려 모세 된 거지. 모세가 뭐 잘 걸려 다 잘 됐습니까? 걸리기를 갖다가 바로공주한테 걸렸으니 그 자리에서 확인 사살을 당할 뻔했는데 하나님이 그 마음을 바꿔버리니까 왕자가 된 거지. 40년 바로 왕궁의 모든 호화스러운 걸 다 누리고, 40살에 자기 백성 하나 구하려다가 그날 잘못 걸렸으면 그날이 죽는 날입니다. 살려주시니까 또 40년을 받았지. 모세 자기생명과 자기에 걸어간 순간순간도 보면 전부가 은혜였습니다.
 
히스기아 같은 사람은 죽을 병 걸렸다가 15년 더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15년 더 사는 바람에, 수 백 만 명이 전부다 노예 되고 처참하게 전부 다 말살되었습니다. 아무리 내 생명이라도 수 없는 생명을 죽여 가며 산다.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헤롯 왕궁에 들어가지 않고 직행했더라면 동방 박사는 주님 모시고 성공했을 건데, 저것들은 가서 주님 모시고 주님을 영접했지만은 가다가 헤롯 궁전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는 바람에 그 지경에, 두 살 아래의 남아들은 전부다 죽는 꼴을 만들었습니다. 나 살았으니까 됐지 그걸로 끝날 일입니까 이게? 너 하나 살고 죽은 저 아이들의 호소를 영원토록 천국 가서도 그걸 들어야 되고 그걸 봐야 되고 마음이 아파야 됩니다. 천국도 아픔이 있는가? 회계의 아픔 복된 아픔은 있습니다. 그 아픔이 있어야 천국이 더 천국 되지. 주님의 십자가 얼마나 고난을 당했는지 지금 아는 것과 천국 가서 아는 것과 어느 것이 클 것 같습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아팠을까를 실감적으로 느끼는 것이, 오늘과 천국에 들어가서 아는 것과 어느 것이 더 강하게 느끼겠습니까? 천국 가서 느끼는 것이 더 강하게 돼 있습니다. 천국 가서 주님의 고난이 얼마나 센지를 더 강하게 느낄 건데, 그러면 그 고통이 지옥의 고통이 됩니까? 더 강하게 느끼는 순간 그러니 이렇게 감사를 한없이 해야 되겠구나, 바로 감사로 바뀌어버립니다.
 
지옥은 오늘은 주님이 재수 없이 처형당한 것 같다가, 지옥 가니까 천국 갈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대신 처형당한 것과 주님을 처형할 때, 자기도 거기다 대고 못 박은 죄를 알 때 통증 고통을 느끼게 돼 있습니다. 죄송해서. 그런데 그 고통은 해소가 되지 않고 복으로 바뀌지를 않습니다. 영원한 절망과 영원한 저주의 고통이 되어 집니다. 지옥 간 불택자들도 천국 간 우리들도,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야 비로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이제 더 알게 되어 있습니다. 더 아는 순간 천국에서 아는 것은 전부 감사로 다 바뀌어버려서 무한한 감사로 이어지고, 지옥에 간 사람들의 예수님의 고난의 느낌은 해독이 되지 않고 해결이 되지 않고 절망적인 고난이 되어, 영원토록 가중이 되고 가중이 되어 못 견디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시켜 지옥에 보내는 겁니다. 영원토록 그 고난을 다 견딜 수 있도록 특수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서 지옥을 보내버립니다. 모이기를 모든 면에서 계산하고 좀 노력하십시다. 이렇게 설교로 몇 번 부탁하면 그 다음 한 주간 성의 표시하느라고 한 번 더 나온 정도 하고 그다음 주간에 또 빼고 그러지 마시고, 한 며칠 몇 주간 계산을 잘해서 작년보다는 올해 한 번은 더 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그 정도입니다.
 
한 분은 신앙생활 잘하고 한 분은 신앙생활을 모르는 분 이렇게 결혼을 하면, 신앙 있는 분들한테 주일 오전만 그냥 부탁하시라 보통 그럽니다. 그리고 한 몇 년 지나거든 한 일 년 지나거든 주일오후 한 번 더 부탁해 보시라 그럽니다. 그 말이 쉬울 것 같지요? 신혼에 멋모를 때는 두 번 세 번 따로 나오지만은, 신혼에 한 번 나오고 1년 2년 지내서 알 것 다 알고 나면 그 다음, 주일 오전 나가는 것도 빼먹고 싶은데 거기서 오후로 더 더하기 그거 불가능합니다. 근데 그렇게 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주일오전 한 번으로 시작해서 1년 뒤에 2년 뒤에는 주일오후까지 나오게 하려면, 1년 2년 종노릇 하면 됩니다. 종의 종이 되면서 목숨 걸고 추구하면 이심전심으로 전해지게 돼 있습니다. 그 정성 봐서라도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오전으로 시작했다가 오전오후까지 나오게 되면 밤 예배 한 번을 더 나와 달라고 1년 2년 3년 5년을 부탁해서 기어코 한 번을 더 늘려나가시라. 그리고 한 10년이 되었을 때 대예배 네 번을 다 나오면 100명 중에 한 명 나오기가 어려운 겁니다. 우리교회는 그런 가정이 한 가정이 있긴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두 가지은 없는데 한 가정은 기억하고, 그러고 나서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새벽 나오는 사람을 만들려면 또 10년 기다려야 됩니다. 그 기도한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사람이 무서운 사람은, 우선 조용하고 훗날을 보고 10년 뒤를 보고 끝을 보고 변치 않고 조용히 나가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안 짓는 개다 그럽니다. 안 짖는 개는 와서 물어버립니다. 막 죽겠다고 짖어대는 개들은 공통적으로 그 놈들은 못 무는 개입니다.
결혼 날 자기남자를 자기여자를 성자 만들 것처럼 온갖 각서 다 쓰고 가고, 다음 날부터 둘이 놀러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 년 뒤 갔던고? 10년 뒤 갔던고? 늙어서 갔던고? 가봐야 아는 거죠. 90년 8월 15일 우리교회 재출발할 때, 그날 있기 전에 8월 15일 이전 8월 절반 앞에 1990년 1월 1일, 조사님 가는 길은 저 혼자 끝까지 갑니다. 그런 분계십니다. 그러고 저한테다 대고 아마 욕을 한 천 번은 아니고 만 번은 더 했을 걸요? 저는 그분 때문에 여기에 붙들렸습니다. 부산 갈 사람을 여기에 붙들어 놓은 사람은, 수천 번이 아니라 수만 번 저를 보고 그냥, 오늘 큰소리 오늘약속, 오늘 뭐 지장을 찍고 인감을 찍고 막 한 잔 먹고 그냥, 과거를 잊었니? 이제 이렇게 하기로 했니? 뭐 연두교서를 발표하고 대통령 공약을 내놓고, 뒤를 보는 겁니다. 대통령 되고 뒤에 보면 알지, 시장 되고 뒤에 보면 알지, 결혼하고 뒤에 보면 알지, 화장실 갈 때가 아니라 올 때 보면 알지, 어쨌든 한 번이라도 작년보다는 한 번이라도, 쉬운 거 같으나 그게 참 어려운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그 한 번에 하나님의 모든 복이 댐 무너지고 쏟아지듯이 쏟아지고, 기다리던 하나님의 모든 진노가 다 막혀버리는 것이 이런 작은 하나에 달렸습니다. 건강에도 좋고 두뇌 회전에도 좋고 가족에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나도 좋고 모두가 다 좋은 길.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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