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2.6.22 막9:22 주님께 의문, 주님이 지적, 아버지의 변화 - 자세와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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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22.6.22 막9:22 주님께 의문, 주님이 지적, 아버지의 변화 - 자세와 표현

서기 0 96 2022.06.23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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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2 수밤

제목 : 주님께 의문, 주님이 지적, 아버지의 변화 - 자세와 표현
 
찬송 : 18장(내 진정 사모하는)
 
본문 : 마가복음 9장 22절 -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오.
받은 복음으로 내 속의 말씀과 다른 내 생각 내 습관, 나의 지난날을 다 꺾어버리며 복음에 다 바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 말씀으로 자기를 희생하고 또 말씀을 전하여 자타 속에 있는 죄짓게 하는 모든 귀신의 세력을 쫓아내버리는 이 한 가지에, 주님 자신을 다 녹임처럼 우리도 뒤를 따라 그리 될 수 있는 이 밤 또 남은 때가 되도록,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음 마음 깨닫게 하시고 결심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리하게 해 주시려고 어둡고 어려운 때를 주신 주님, 소돔보다 더 악한 때인데 우리는 롯보다 못한 상태이오니, 은혜만 바라고 주님만을 향하여 말씀으로 자기를 녹이며 고치며, 말씀 전하는 이 일에 헌신하는 한 소망으로만 이 밤도 예배를 향하고 또 주님을 향하고, 사모하고 준비하는 8월의 집회와 우리공회 모든 난제들, 또 우리 교회에 함께 기도하며 애절하게 호소하는 모든 일들이, 감사하며 영광 될 수 있도록 다 해결해 주옵소서. 이 밤도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 찬송가 18장입니다.
반주하시는 분들은 18장 찬송 때는 가사가 좀 빠르고 짧습니다. 그래서 약간 속도를 좀 조절해서 늦춰주십시오.
 
『 잠깐만요. 저 서인이하고 서진이. 다시 저 문까지 나가봐요. 이 서진. 일어서서 저 현관문까지 다시 나가봐요. 서인이도 다시. 거기 딱 서있어요. 잠깐만. 예배당 들어올 때는 살살 들어오는 겁니다. 그지요? 이렇게 토끼처럼 하면 안 돼! 언제든지. 자 두 사람 다시 들어오고. 』
 
 
똑같은 말이라도 22절처럼 말을 하면 나쁜 말이 되어 집니다. 할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주님이라고 다 하냐? 다 되냐? 오기는 뭐 하려고 옵니까? 주님이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을지라도 말로는, 아 주님이면 다 합니다 도와주옵소서. 말이라도 요래 말을 해야 얻어 라도 먹습니다. 말이 괘씸하면 먹을 것도 못 먹습니다. 자기한테 불리합니다. 말이야 돈 드는 거 아니거든요. 주님은 주님 자신을 하나님이라 그러셨는데 “할 수 있거든” 할 수 있거든 도와주옵소서. 귀신이 들어간 것을 주님이라고 다 내쫓겠습니까? 아무리 운전을 잘한들 서울까지 무사히 가겠습니까? 아무리 힘이 있어도 나를 도와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항상 도와주겠습니까? 그럴지라도 날 도와주시면 제가 신세질 테니까 그저 도와주옵소서. 못 믿을지라도 말이라도 믿는 척 해야 될 것이 되고 안 될 것도 얻어먹고 그렇습니다.
 
주님한테 대고 귀신 쫓아낼 수 있습니까? 자신 있습니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 기본적으로 말이 이리되면 그 말이 나쁜 말이 됩니다. 나쁜 말이 되면 자기 입도 더러워지고 가질 것도 못 가집니다. 어릴수록 말이 나쁘게 나오고 전부 그렇게 말을 나쁘게 해봐가지고, 세월 속에 계산을 해보니까 말은 일단 말은 곱게 하는 게 좋겠구나. 이제 철이 들고 많이 당해보면 그 다음 나이가 많아지면서 말이 고와집니다. 나이가 많아 가지고도 말이 곱지 못한 사람들은, 이건 저 하나님께서 그냥 노년에 가정을 엉망을 만들어 가지고, 너 말 조심할래? 안 할래? 이렇게 고칩니다. 버티면 큰 거 때리고 그래도 안 되면 둘째 것 때리고 그래도 안 되면 셋째 거 넷째 거, 나중에는 자기 몸의 마지막에는 죽을 때도 곱게 죽지도 못하도록 딱 밀어붙입니다. 속으로 안 믿어지는 것이야 할 수가 없지만은. 다 같이 말은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요? 말은 곱게 하는 게 좋습니다. 아니 강단 목사 네 말이라도 좀 곱게 하지. 저희 집이 철공소 출신이 돼가지고 쇠 깨는 소리 쇠 가는 소리 쇠 두드리는 소리만 많이 어릴 때부터 듣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그냥 말이 곱지 못합니다.
 
나무 다스리는 목공보다 쇠를 자르고 가는 철공이, 소리가 더 깨지는 소리 또 아주 소리가 큽니다. 소리가 크니까 이제 사람을 불러도 악을 쓰고 불러야 들릴락 말락 하니까, 사무실에 분위기에서 크는 사람들 도서관 분위기에서 크는 사람은, 조용히 얘기해도 다 통하니까 말이 조용하고 잘 들리고, 시끄러운 난장판에서 살아 놓으면 부르는 사람도 악을 써야 들릴락 말락 그렇지, 또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목소리가 커지고 목소리가 커지다보면 이왕이면 급하니까 말이 강해지고, 그 강해진다고 좋은 거는 아닌데 미개하면 그리 됩니다.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하면 할 수가 없지만 전쟁터에서 신사적으로 말하다가 다 죽으면 어떡하겠습니까? 덮어놓고 이기고 봐야지. 근데 이게 습관이 돼가지고 신앙생활의 주일날 또 가족끼리 좋은 날 요즘처럼 좋게 살아가며, 이왕이면 악쓰는 사람 깨지는 소리 그런 거는 좋지를 못합니다. 아이가 귀신이 들려 거품을 물고 막 지금 정신도 없는데 파리하게 죽어 가는데, 이 다급하니 주님을 붙들고 해결을 해야 되겠는데. 주님을 붙들고 해결을 하려면 주님이 안 될 것 같으면 오지를 말았어야지. 주님이면 100% 된다든지 혹시 주님이면 우리 아이를 해결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 절반만 믿었든지 다 믿었던지 일단 주님으로 해결을 하려면, 온 김에 말은 곱게 하는 게 지혜로운 겁니다. 주님 틀림없이 낫게 하십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옵소서. 안 될망정, 앞에 여학생들만 말은 좋게? 나쁘게? 좋게 곱게? 악하게? 곱게 하는 게 좋아요. 인물도 다듬어서 모두 요즘은 다 곱지 않습니까? 얼굴이 곱고 보기가 고우면 말도 고와야지. 타고난 얼굴은 곱지를 못해도 말은 마음먹으면 곱게 할 수가 있습니다.
 
22절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조건을 딱 붙여서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말이야 곱게 했겠지. 그런데 그 말 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보면, 우리 아이 이지경인데 고칠 수 있나요? 이래 물어본 겁니다. 그 우리 교회에 거쳐 간 분 중에 타고난 인품이 부드러워 말을 제일 곱게 하는 분 혹시 기억하십니까? 남자 분 중에 병원에 차 선생님은 말이 고운 분입니다. 항상 보면 모습도 동글동글하게 덕스럽게 생겼고 말씀도 보면 따뜻하게 합니다. 근데 사택에 머리를 다쳐 죽느냐 사느냐 이렇게 머리 수술을 해야 될 때 전화를 해보니까, 의사한테 대고 머리 수술 해봤냐? 딱 들이밀고 그냥 냅다 질러버리랍니다. 평생에 곱게만 부드럽게만 좋게만좋게만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 시내 상가로 성가롤로 병원 신경외과 머리 자르는 수술하는 의사한테다가 대고, 막 갔다가 그냥 딱 다그쳐 버리랍니다. 수술하는 의사한테 잘못 보이면 곤란한 거 아닌가요? 이러니까 의사는 자기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합니다. 다하는데 지방에 온 의사 중에 머리를 열고 수술을 해본 의사가 있고 자신 있는 의사가 있고, 자신이 없는데 한 번 두 번 연습을 하는 의사가 있답니다. 그거는 어떻게 구별하느냐? 점잖게 말하면 그거는 구별을 못 한답니다. 해봤다 그러고 자신 있다 그러고. 그러고 나중에 잘못되면 이렇고 저렇고 이래서 그냥 최선을 다했으나 이거는 이렇습니다. 이렇게 말을 잘한답니다.
 
근데 수술하는 의사한테 대고 머리 수술 해봤냐? 탁 들이 밀어서 갑자기 그냥 다그쳐 버리면, 많이 해본 사람은 실력 있으면 느긋하게 대답이 차분하게 나오고, 서툰 의사들은 딱 다그쳐버리면 서툰 게 나온답니다. 목사 체면에 말하지를 못하고 순천에 조사님한테 가르쳐서, 조사님이 의사한테 대고 머리 수술 해봤냐고 그냥 들이 밀어버렸습니다. 해봤다고 잘 한다고 그래서 맡겼습니다. 알고 보니까 전대병원에서도 교수로서 수술을 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훗날 여수 순천 많이 살펴보니까 여수 순천의 신경외과 의사는 대부분은 그 당시 수술도 안 해본 사람들입니다. 여기 예수님한테도 대고 수술해 보셨습니까? 자신 있습니까? 할 수 있으면 하고말고, 사람이 사람한테 하는 방법으로 만유 주, 주님한테도 대고 하실 수 있거든 조건을 딱 갖다 붙였습니다. 돌팔이 아니냐 그 말입니다. 네가 너를 어떻게 믿냐? 다른 데 가서 고칠 수 있으면 다른 데 가서 고쳤을 것이고, 이 아이를 고치는 길이 없어 주님 앞에 왔으면 더 이상 다른 데가 없으면, 이거 뭐 고칠 수 있으니 고쳐달라고 요렇게야 그게 말을 빨리 해도 단어가 억세도 그게 고운 말입니다. 아무리 말을 곱게 해도 하실 수 있거든 조건을 붙이는 순간, 네가 하나님이냐? 라는 말이 됩니다. 굉장히 나쁜 말입니다. 모두 한번 다 같이 따라 하시죠. 고운 말 나쁜 말(고운 말 나쁜 말).
 
서울 쪽으로 올라가면 인간은 나빠도 말은 좀 곱습니다. 부산 여수 쪽으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속에 든 인격은 좋을지라도 말이 못 되고 말이 험합니다. 저도 모두 다 좀 고쳐야 됩니다. 아이도 어른도 노인들까지도 가실 날이 가까운 노인들까지도, 아이 똑같은 말이라도 저렇게 할까? 그 어려운 때를 살고 생존을 위해 버티느라고 여수 서 시장에서 별별 일을 다 하다 보니까 습관이 돼서 그렇다는 것은 이해를 해도, 이 좋은 때가 지금 수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악과 독으로 땅까시 같은 말로 가지고, 똑같은 말을 갖다가 상대방을 다 찍고 꺾어 놓으면 좋지를 못합니다. 22절은 나쁜 말입니다. 못된 말입니다. 부산에서부터 여수까지 남쪽에 사는 우리들은 모두가 내가 나를 볼 때는 아무리 선하고 착해도, 말은 이왕이면 고운 말이 좋습니다. 표현까지 고우면 더 좋은데 이 말은 나쁜 말 좋지 않은 말입니다. 그 다음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야단을 쳤습니다. 근데 이 말씀은 고운 말입니다. 환자를 고치는 게 고운 말 아닙니까? 주님을 선생님으로 모시는 아버지가 와서 뭐 쌍욕 했겠습니까? 애걸복걸 사정을 했지. 근데 말에 들어가 있는 내용이 똑같은 말인데 다 되냐? 당신 하나님이냐? 하나님 맞냐? 지금 신분 좀 보자합니다.
 
주님이 말을 다시 가르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나쁜 말이다. 악한 말이다 먹을 것도 못 먹는다. 거지가 얻어먹어도 말은 곱게 얻어가는 게 훗날에 좋습니다. 부잣집 대문 앞에 와가지고 욕을 해가지고 안 줄 수 없게 만들어서 한 입이라도 더 먹고 가는 것은, 거지는 재주인줄 알고 있지만은 부자는. 너 같은 놈 두 번째는 없다. 내가 미리 막아놓겠다. 이리되어집니다. 똑똑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 걸 적게 먹고 큰 걸 못 먹습니다. 장사도 큰 장사하는 사람은, 속아도 주고 모른 척도 하고 훗날을 보고 밑을 많이 깔아놓습니다. 22절에 아이의 아버지는 말이 미운 말입니다. 못된 말입니다. 주님이 그 말을 고쳐줍니다. “할 수 있거든” 말버릇이 이게 뭐냐 인간아. 머리를 쥐 박으면서 말을 해도 고운 말입니다. 아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줬으니, 이제 여기다 대고 표현까지 고우면 더 좋은 겁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교회를 향하여 신앙생활 하다가 또는 세상에서 이웃끼리 또는 사장님 종업원끼리도 그렇습니다. 30대는 뭐 안 그럴 거고 여기 20대 10대는 잘 들어 놓으십시오. 회사 일하다가 사표 낼 때 딱 보면 속에 것이 다 나옵니다. 아 이놈이 사무실 더러워서 안한다고. 뭐 이제 뭐 사표 낼 테니까 사장이 겁나겠습니까? 과장이 겁나겠습니까? 참 미련한 일입니다. 자기 밥그릇을 톡 깨는 짓입니다.
 
그 회사 사표 내고 나올 때는 사장이 믿고 그동안 당한 게 아무리 억울해도, 나올 바에는 마지막으로 부족한데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 인간 뒤에 어찌 될지 모릅니다. 또 그 집에 가가지고 새로 신세질지 모르는데 나이 어린 철없는 것들은, 이제 내가 여기 두 번 다시 오나. 두 번 다시 안 올 확신이 있어가지고 그냥 퍼부어 버리는데, 그 인간 제 마음대로 그리 못 사는 겁니다. 이게 지금 저 성찬이 같은 10대 중반 학생들이, 이런 말이 머릿속에 딱 들어가면 인생사는 데 서울대 졸업장보다 더 나을 겁니다. 시골학교인데 교장이 서울대 찾아가 가지고 서울대 국문학과 제일 좋은 학생 영문학과 제일 좋은 학생, 과목별로 제일 좋은 학생들만 어떻게 꼬셔서라도 거창 산골에 데려다가 앉혀 놓았었습니다. 국어 선생은 서울대 국문학과 영어 선생은 서울대 영문학과, 독어 선생은 서울대 동문학과 물리 선생은 서울대 물리학과, 서울대 물리학과가 얼마나 센지 모르시지요? 지금은 의대보다 밑인데 옛날에는 의대보다 훨씬 셌습니다. 그래가지고 시골구석에 데려와서, 이 시골 놈들을 좀 가르쳐 대한민국을 좀 일으켜 보자고 이렇게 가서 설득해서 데려다가, 1년 2년 3년 몇 년 해보더니만 그 교장 입에서 하는 말입니다. 서울대 물리학과 뺀돌뺀돌 뺀돌뺀돌 이놈들 두 번 다시 쓰는가보자. 대한민국 교육계의 최고의 전설이라는 이런 기록을 세운 그분 입으로, 대한민국의 국어 영어 수학 물리 화학 과학 제일 잘하는 애들이 제일 좋은 선생인 줄 착각을 했더라 그 말입니다.
 
실력이 떨어져도 관심 있고 방향이 있고 자세 있는 놈들이 낫더라.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경북대 정도 교사들 데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그분도 나이 죽을 때쯤 돼서 철든 겁니다. 서울대 물리 대라는 말은 국어 영어 수학 물리화학 역사 이런 과를 문과 이과 물리 대라고 그럽니다. 서울대 문리대, 뺀돌뺀돌한 놈들 막 그냥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여기 마가복음 9장에 의하면 그분 속에도 귀신이 들어가서 그런 겁니다. 누가 데려왔습니까? 자기가 데려왔지. 자기가 모셔놓고 왜 또 뒤 꼭지에 욕은 왜 해? 그 머리 좋은 것들이 뺀돌뺀돌하지 머리 좋은 것들이 성실할 겁니까? 대한민국 최고인데 값을 하겠지. 결혼도 예쁜 거 갖다 놓으면 예쁜 값을 다 합니다. 예쁜데 값을 해야지 비싼데 값을 해야지. 여학생들도 남자들 예쁘게 생기고 성실하고 좋다 싶으면 그놈 반드시 값합니다. 남의여자 보고 뒤로 돌아 댕기든지, 잘난 게 한 여자에 만족합니까? 직장가면 하나 있고 집에 오면 하나 있고 출장가면 하나 있고 몇을 거느리지. 여자도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냥 딱 낮춰서 대충 살아라. 딱 계산해 보면 계산이 그리나오는데. 그러다가 평생 이제 속고 나면 그러지 말아라. 이러면 시작하는 것들은 당신만 그리 당했지 세상 사람이 다 그러냐? 또 이렇게 이제 대듭니다. 그 말이 나쁜 말입니다. 인물만 보고 갈지라도 말은, 그렇습니까? 조심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천하에 예쁘다고 다 나쁘게 하겠습니까? 가끔 아닌 것도 있겠지. 어쨌든 조심하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지혜롭고 고운 말입니다. 불신자도 이게 낫고 믿는 사람은 말할 것 없고. 주님을 상대로 할 수 있거든. “할 수 있거든” 이게 교회냐 이게 진리냐 이게 전능이냐 이게 하나님이냐, 이건 뭐 그냥 있는 욕을 다 해 붙인 겁니다. 고쳐주기 전에 너 말버릇 고쳐라. 만유 주 하나님 앞에다 대고 할 수 있거든 없거든 그 무슨 말이냐? 아무리 곱게 살살 꿀 녹이듯이 엿 녹이듯이 달콤하게 말을 해도 내용이 이리되면 못된 말입니다.
 
오늘 이 저녁,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평소 말버릇을 어떻게 하느냐? 서울로 올라갈수록 억양과 단어와 표현은 곱습니다. 속에 거는 곱다말 안 합니다. 서울 쪽으로 올라가면 뺀돌뺀돌 합니다. 근데 뺀돌뺀돌 한 게 나쁩니까? 이해 계산을 잘해서 남한테 실례 안 하고 내 거 안 당하겠다는 건데 정당한 거지. 서울 쪽으로 올라가면 말이 곱습니다. 일단 말이 고운 것은 손해 볼 것 없습니다. 부산과 여수 밑에 쪽으로 오면 올수록, 원래 중국에 살다가 한국에 왔지, 한국에 서울에 주저앉아야 되는데 서울에서 밀려서 충청도 왔지, 충청도에서 밀려서 경북 전북으로 왔지, 전북 경북까지 밀려온 것들이 또 밀려서 전남까지 왔지, 전남 안에도 좀 위에가 있는데 거기서 밀려서 바닥까지 내려온 게 부산 여수입니다. 그래서 부산 여수 이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안 봐도 족보가 밀려서, 밀려서 보따리로 밀려서 왔기 때문에 한이 맺혔을 겁니다. 그러니 뭐 악이 바칠 겁니다. 악이 바치는 사람은 똑같은 말이라도 이마를 뭐라 그러는지 아십니까? 이마 그러면 되는데 마빡 이럽니다. 마빡. 눈 그래도 알아들을 건데 눈깔, 귀라고 그러면 될 건데 왜 귀때기라 그러죠? 볼이라 해도 다 알아듣게끔 왜 볼때기라 그럽니까? 입술이라면 단어도 두 글자고 좋은데 왜 입수부리, 이 하면 한 자인데 이빨, 턱은 왜 턱 쪼가리입니까? 또 하필? 목은 모가지고. 그 목이라 해도 좋겠구만, 목구멍이라고 그러고 제 단어가 이런 게 함부로 나가지고 많이 고쳐도 지금 이렇습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주님 앞에, 할 수 있거든 고쳐 주옵소서. 뭐 의사야 다 고친다고 약장사 하지만은, 뭐 고칠 수도 있고 안 고칠 수도 있고 그러겠지 변호사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겠지, 제까짓 게 언제 다 이기겠습니까? 정권도 잡을 수 있고 뺏길 수 있고 그러고 언제 다 잡겠습니까? 세상 것은 그런데 하나님 앞에 와가지고, 할 수 있을지 몰라. 저한테 부탁하는 분도 저를 흔드는 방법인데, 뭐 목사라고 이런 걸 할지 모르겠지만, 오기가 발동돼서 내가 해 주마 그러도록 이렇게 약을 올리는 건데, 해줄 만하면 해주지만 속으로는 참 자기로서는 지혜롭고 처세술이 능하여 나를 딱 홀까 세운다. 라고 너는 생각했겠지만, 나한테 많이 얻어먹지는 못하겠구나. 못줘서 못주는 게 아니라 주면 줄수록 욕을 더 해서 그 사람이 불행해집니다. 어리면 처음이면 있는 힘을 다해서 돕습니다. 반복하면 이 사람 습관 되면 나쁜 사람 됩니다. 알고 고의로 하면 악독한 사람 됩니다. 아무나 돕고 무조건 하는 것 아닙니다. 반대로 주님 앞에 할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네가 왕 이어든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그리스도란 유대인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네가 구세주라 유대인의 왕이라 네가 왕이거든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한번 뛰 내려와 봐라! 이렇게 조롱을 했습니다. 여기에 주님이 피동을 받으면 죄인 됩니다. 그러면 십자가에서 뛰 내려와도 패배가 됩니다.
 
왕관이라고 가시를 가지고 왕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우면서 고문을 하고, 아무 옷이나 입혀놓고, 허어 임금 봐라 자기가 왕 이란다. 침을 뱉고 뺨을 치고 그러면서 주님을 계속 놀려 대는 겁니다. 놀려대면 화가 나서 어느 날 벌컥 하면 예수 너도 죄지었지, 귀신이 이기는 겁니다. 여기에 아비는 뭘 모르고 급해서 할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했지만은 이걸 여기 기록한 이 기록을 오늘 저녁에 우리가 보면서, 말은 곱게 하도록 하는 게 이왕이면 좋습니다. 특별히 교회 신앙 문제는, 보이는 것은 사람이나 그 사람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상대해야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저는 교인들을 쳐다볼 때 교인 뒤에 있는 하나님, 교인 머리 위에 지켜보는 하나님 때문에 조심하면 좋은 목사입니다. 또 교인들은 목사 그거 뭐 아무나 요즘 뭐 굴러 댕기는 게 목사인데, 목사 죄 안 짓습니까? 실수 안 합니까? 그러나 목사 안에도 하나님이 있고 교인 위에 하나님이 있듯이 목사 위에도 하나님이 계실 수 있으니, 그냥 조심하는 게 서로가 좋은 겁니다. 말을 곱게
 
22절 “무엇을 할 수 있거든” 주님 앞에다 대고 이 말을 딱 갖다 붙였습니다. 주님이 23절에 할 수 있거든 말부터 고쳐라. 말이란 안에 있는 게 나오면 말입니다. 말을 고쳐라가 아니라 그 말이 나오는 네 속에 있는 인격을 고쳐라. 인간을 고쳐라. 인간을 고쳐라. 둘째들이 부모한테 억지 부릴 때는 형님만 해주고 장남만 해주고 이렇게 찔러대는 게 둘째입니다. 또 첫째는 혼자 다 받아놓고 부모를 뒤흔들 때, 맨날 동생들만 챙기고 난 맨날 쥐어 박고 또 이제 이럽니다. 또 막내는 할 말이 없습니까? 나는 꼴찌라고 맨날 이 모양이냐 전부 우는데 한 가닥씩은 다 합니다. 못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하지. 입이라고 달렸다고. 막내라면 부모와 형들이 전부 막내라고 나를 봐주고 돌봐줬을 터인데, 제가 그냥 깜빡하느라고 이게 부족합니다. 한 번만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이왕 손을 내밀어도 요래 내밀면 좋은데, 막내라고 그냥 뒹굴기만 뒹굴면 나중에 어찌 해결하더라. 이게 습관이 되어놓으면 우리 공회 안에 저 막내 어느 인간 여기 한 몇 년 지금 엉망으로 뒹구는 거 보셨죠? 그 요만할 때 길가다가도 드러누워 버립니다. 시장터 뭐 그냥 막 물이 있든지 없든지, 어디서든지 뒤로 벌렁 넘어지면 온 가족들이 막내라고 오냐 오냐 해놓으니까, 결국은 총 공회 지도자가 돼가지고도 아무 데서나 막 드러눕고 그러지 않습니까? 막내는 90대도 막내 짓합니다.
 
저보다 연세 많은 90의 막내는 돌아보셔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나는 막내인데 막내 습관을 떨쳤던가? 안 떨쳤으면 그 막내라는 습관 속에 귀신이 들어가서 나를 평생 끌고 댕긴 거니까 그것도 해결하셔야 됩니다. 장남이라고 네 꺼 내꺼 남의 것까지 전부 제 것인 줄 알고 거머먹고 보는 장남도 그 도둑심보 고쳐야 됩니다. 둘째는 첫째한테 밀렸다고 당했다고 언제든지 보면 여기 혁명적이고 언제든지 야당 노릇을 잘하는데, 역사적으로 둘째라는 사람들은 발명이 많이 나오고 개혁과 혁명이 많이 나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둘째들은 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첫째한테 당했다고 발버둥을 치다보니까 그게 습관이 되어 그런데, 그래가지고 위대해지든지 말든지 반발이라는 것은 별로 좋지를 못합니다. 말조심해야 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22절 “주님이 할 수 있거든” 할 수 있거든, 할 수 있거든 이 말이 무슨 말이냐? 능치 못한 일이 없는데, 할 수 있다. 능치 못하심이 있다. 전능이냐 무능이냐 그 얘기도 중요하지만은, 말버릇을 지금 고치고 있는 겁니다. 이제 복된 것은 24절 보십시다. 이렇게 꾸지람을 들었으면, 여기 지금 예수님하고 단둘이 방에서 오가는 말 아니지요? 14절에 보면 주님이 오셨을 때 제자가 9명이 있고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도 있었고 변론이 벌어졌고, 15절에 “온 무리가” 온 무리가. 또 뒤에 보면 온 무리가 또 나오지요? 온 무리가 25절에 예수께서 “무리에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라는 무리라는 말을 지금 세 번이나 계속 적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아이가 급해서 고쳐달라니까, 그 너 말버릇이 그게 뭔 버릇이냐? 말버릇을 안 고치면 말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말을 하게 된 그 속의 인격 사람을 못 고치면, 못 고친 사람한테 주님이 은혜주면 더 나쁘게 됩니다.
 
강도가 칼만 가져도 난리인데 강도한테 총 줘 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강도한테다가 대고 비행기 주면 어떡하겠습니까? 저 북쪽 저 떼강도들이 총만 가지고 탱크 가지고도 3년간 수백만 명을 죽였는데, 저것들 손에 지금 폭탄 핵폭탄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버릇 때문에 주님이 감정 상해가지고 말싸움 하는 게 아닙니다. 말이란 속에 들어있는 마음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겉 사람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을 딱 들어보면 억울한 세월이 참 많았겠구나. 그 많은 억울한 세월 속에 이를 갈고 갈다 보니까 독사가 됐구나. 사람은 곱게 생겼는데 안에는 독사 소굴이구나. 어이구 저기 근처에 갔다가는 독사한테 언제 물릴지 모르겠구나. 그럼 얼른 인사하고 도망가는 게 수지. 그 앉아서 얘기해봐야 남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 때문에 독사까지도 다 사탄아 물러가라 그러지만은, 세상 살 때는 억울한 게 많고 증오가 많고 분노가 많은 사람 옆에는 안 가는 게 그만 좋은 겁니다. 억센 사람 옆에 있으면 천벌 받습니다. 불신자들도 그럽니다. 복음을 가진 우리들은 순교 각오로 이건 이 사람 상대하다 죽어도 하나님 앞에 할 수 없다. 그럴 때만 알면서 접하는 겁니다.
 
14절에 주님이 왔을 때 큰 무리가 있었다 했습니다. 큰 무리가. 17절에 무리 중에 한 사람이 그랬습니다. 그다음 25절에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많은 무리가 있는데 말버릇도 더럽게 한다. 주님이 이렇게 말부터 고쳤습니다. 아버지 속에 귀신이 들어 가가지고 안할 말을 하니, 아버지 속에 귀신이 즈그 아이한테 내려가지 뭐 옆집부터 가겠습니까? 윗물이 흐리면 섬진강 지리산 물이 흐리면 섬진강 물이 흐리지, 지리산 물이 흐린데 한강이 흐리겠습니까? 중국의 황하 강이 흐리겠습니까? 출애굽기 20장 아비의 죄를 아들에게 주어 3, 4대까지 이르게 한다 아이가 귀신이 들렸습니다. 안 봐도 아버지 속에 귀신이 들어간 겁니다. 아이는 경련이 일어나면 눈이 돌아가고 거품을 물고 그냥, 머리는 땅으로 발은 하늘로 난리가 납니다. 그리고 그냥 그 죽어가듯이 새파랗게 그냥 기운을 다 쏟아버리고, 이거 그냥 가겠습니다. 도무지 그냥 둘 수가 없습니다. 난리를 내서 아이를 데려왔는데 아이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난리인데 주님이 보니까, 데리고 온 아버지 속에 귀신이 더 큰 귀신입니다 한 번 두 귀신을 비교해 볼까요? 19절에 주님이 19절 뒤입니다.
 
“그를” 아이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래서 아이를 데려옵니다. 20절에 아이를 데리고 오니 아이 속에 귀신이 예수를 보고, 아이를 뒤집어 난리를 내고 있습니다. 귀신은 누구를 알아봤지요? 자기를 내쫓을 주님을 미리 알아보고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아이를 고장 낸 귀신은 예수가 누군지는 아는 귀신입니다. 그 아이 귀신 들렸다고 데려온 아버지 속에 들어있는 귀신은, 주님한테다 대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까? 아니 못 해도 인정하고 그냥 원망은 안 하겠습니다. 아무도 못 고치는데 주님이라고 고치겠습니까? 근데 혹시 할 수 있거든 또 해주면 고맙겠고, 해도 되고 말아도 되고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절에도 가봤고 공자도 가봤고 점도 쳐봤고 또 교회도 와봤고, 절에 가서 되면 절 연보 할 거고 점쟁이가 잘 치면 사주 돈 많이 줄 거고, 또 교회가 잘해주면 또 교회도 회비 한 번 낼 수 있고, 보자 어느 종교가 맞는지 이 종교 저 종교 쇼핑을 하러 댕기다가, 어디가 싸고 어디가 좋고 나한테 어디를 잘해주고 좋은지 딱 계산해서. 요즘 교회는 다 그래 교회를 고르고 앉았습니다.
 
우리가 미개하다고 쥐어박는 옛날 사람 미개한 사람들이 다른 거는 미개해도, 신을 선택할 때는 신에게 붙들려 벌벌 떨었지, 어느 귀신을 갖다가 불러볼꼬? 어느 종교를 경쟁을 시켜서 한 번 입찰을 시켜볼까? 이건 귀신 위에 자기가 올라가는데 그렇게 나쁜 시대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교회하고 절하고 그냥 원불교하고 한번 나와서 도로 청소해봐라. 도로 청소 잘하면 좋은 종교라고 인정해 줄게. 구청장이 상장도 줄게. 교회가 구청장 상장 받고 또 이제 예배당에, 우리는 구청장 상장을 받은 좋은 교회입니다. 총 공회 안에 서울에 있는 교회 이야기입니다. 총 공회 안에. 서울에서 알아주는 구청장님이 총 공회 서울에 있는 이 교회가 청소 잘하고 지하철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사 잘하고 떡 나눠준다고 표창장을 줘서 목사가 구청장한테 표창장 받았습니다. 또 교회자랑입니다. 절이 더 잘하면 어떡할까요? 또 이번엔 또 절 칭찬해야 되겠지. 시민단체가 잘하면 어떡할까요? 시민단체가 교회보다 낫네. 또 그래야 되지 미쳐도 이 정도 미치면 귀신도 엄청 센 귀신이 들어간 겁니다. 이 아이 귀신은 지금 작은 귀신입니다. 아이 속에 들어간 귀신은 지금 주님을 알아봤습니다. 아버지 속에 들어간 귀신은 하나님 맞습니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신 없으면 말고. 뭐 그렇다고 제가 뭐 섭섭하게 그냥 그렇게 그러고 그럴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통이 크고 이해심이 넓어, 주님이 고치려다가 못 고치면 또 그럴 수도 있지 저는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예수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지금.
 
예전에는 병원에 가서 우리가 의사를 마음대로 못 골라잡았습니다. 지금은 의료법이 법이 바뀌어서 환자는 어느 병원이든지 환자가 병원을 선택할 수 있고, 병원에 가서 의사를 환자가 선택할 수 있고, 나 수술 치료의 방법을 요즘은 환자가 선택하게 돼 있습니다. 의료법이 그렇습니다. 의료법이. 예전에는 환자가 찾지도 못했지만 의사한테 가면 의사 말도 안 하고 제 멋대로 다 해버립니다. 환자 위의 의사 지금은 의사 위의 환자. 대통령도 왕이 아니라 우리가 뽑습니다. 국회의원도 우리가 뽑습니다. 교회도 내가 선택해 갑니다. 저거 오라 그런다고 내가 가나? 안가면 그것뿐이지 뭐. 기분만 나빠 봐라 그냥 방 빼버리지. 애들도 자세가 그렇습니다. 친구 집으로 그냥 보따리 싸서 갑니다. 그러면 부모가 벌벌 죽으니까. 부모 아니면 뭐 내가 있을 데가 없나? 아이 돌봄 시설 꽉 찼는데, 청소년 돌봄 시설 더 좋은데, 미혼모 돌봄 센터도 있는데 남자 꼴보기 싫으면 석 달 공짜로 밥 먹여주는 호화판 호텔도 있는데. 석 달 채우고 하루 방 뺐다가 그다음에 또 들어가면 또 석 달입니다. 그게 병원의 입원 법하고 원리가 같아 그렇습니다.
 
귀신이 요래 놓고 세상 좋아졌지? 교회도 네가 선택해라. 교회도. 신도 네가 선택해라 나쁜 겁니다. 그거. 이러고저러고 이러고 저래서 저는 하나님이 다한다고 보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 하겠지만 사람 되어 오신 주님은, 사람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다 할 수 있느냐? 그 그리 될지 안 될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제 학설은 틀립니다. 제 입장은 다릅니다. 아무리 곱게 말해도 이 말 속에 들어있는 그 생각은, 귀신이 아주 세게 들어간 겁니다. 그 귀신부터 뽑아내야 그 밑에 귀신을 치료하는 겁니다. 뿌리를 고쳐야 둥치를 고치고 둥치가 고쳐져야 가지 위에 열매를 어떻게 해보지. 너 말 나쁜 거다 할 수 있거든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그리고 주님이 어리니까 잘 달랩니다.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는 거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올바른 말로 가르치면, 내 자존심을 건드려? 친구들 보는데 내가 뭐 된다고? 여자보다는 남자가 이게 대체로 강합니다. 가정의 왕이라고. 여기에 엄마가 데고 온 게 아니고 아버지가 데리고 왔습니다. 이 아버지라는 인물은 식구 하나 놓고도 왕 노릇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모여든 무리 앞에 주님이 공개적으로 너 말버릇 그 고쳐라. 그 어찌 좋은 말도 있는데 하필이면 그런 말을 할까? 이 아버지가 복되게 24절입니다.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믿나이다.” 믿나이다. 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나이다. 되냐 안 되냐 할 수 있거든 말을 붙였으니 이거는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활용하려고 했지. 죄송합니다. 돌아섭니다. 저는 믿음이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쉬운 것 같지요? 그게 그렇게 쉽지를 않습니다. 아마 81 년이지 싶은데, 그 수없이 모인 서부교회 있는 데서 백 목사님이 저 옷이, 옷이 여기 앞에 있는 저 문짝 감색 정도 이 문짝 색깔을 입었는데, 설교를 하시다가 저한테 다 대고 너 빨간 옷 입었네, 그 빨간 옷을 입는 놈들은 여자를 꼬시려고 그러는 거다 이래요. 집안에 식구가 그냥 남는 게 있어서 입어봐라 딱 맞아서 입고 가라 그래서 그냥 걸쳤는데, 저야 뭐 이거든 저거든 걸치면 되는 사람인데, 생각도 없이 줘서 걸쳤는데, 빨간 옷을 입고 여자를 꼬시려고 그냥 강단에서 야단을 쳐서 기다리고 있다가, 목사님 설교 마치고 나오는데 이게 어찌 빨간색이냐고 제가 물어봤습니다. 참 방정맞지 여기 있는 이 아비처럼 했더라면 더 난리 났겠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말로 또박또박 대드는 사람이 있으면, 참 나같이 잘 하고 앉았다. 나중에 고생 많이 하겠다. 뻔한 거 말하면 그냥 예 해놓고 보지.
 
우리 교회 교인을 주일학교 100명을 넘긴 공로자, 이 시골에 100명을 10년 전에 올린 공로자 설교를 시키니까 넥타이를 안 맸어요. 신풍교회 강단은 새벽기도라도 넥타이 하는 거라고 쪽지를 올려줬지만은, 날 보라고 이게 어때서 이래요 강단에서. 아무리 천하 위대해도 자세가 그리나오면 그 귀신에게 평생 못 벗어납니다. 그리고 그 귀신 옆에 얼씬거리면 같은 귀신 들어갑니다. 코로나하고 제일 좋은 거는 옆에 안 가는 겁니다. 치료하려면 방진복을 입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냥 만나면 그냥 똑같은 사람 되는 겁니다. 여기 이 아이의 아비가 잘못됐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믿음이 있고 주님께 믿음으로 낫게 한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틀렸습니다. 아버지 속에 귀신이 나갔습니다. 아들 귀신은 바로 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잘 됐으니까 좋은 거 아닙니까? 오늘저녁 말 하나만 가지고 모두들 신앙의 표현 신앙의 자세를 돌아보시자 좋은 뜻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어쨌든지 집에서 어릴 때 자꾸 말버릇을 좋게좋게 발라놓는 것이, 아이 좋고 부모 좋고 하나님 좋고 평생의 이 아이와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되어 집니다.
 
 
1차: K.Y.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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